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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옛날 이야기

2004.08.19 01:4508.19



밤 하늘 높이 달이 떠 있었다. 오누이 얼굴이 달빛이 아래 빛난다. 한 아이의 것은 더 짙고, 다른 아이의 것은 무척이나 맑은, 네 개의 푸른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옛날 얘기 하나 해줘.”

누나는 잠자코 바람 부는 소리와 나무들이 휘청대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당나귀와 돌멩이 이야기.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나뭇가지들이 휘늘어진 산길에서- 거기에는 사방에 장애물도 널려 있었는데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당나귀 한 마리가 여기저기에 부딪쳐 비틀거리며 넋놓고 걷고 있었단다.

나뭇잎을 어그적어그적 씹으면서 당나귀는 도착하면 먹을 먹음직한 홍당무를 한창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었어. 도착만 하면, 도착만 하면……. 그런데 당나귀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당나귀를 기다리는 홍당무는 어떤 걸까? 아무도 그걸 몰랐고, 당나귀도 알 도리는 없었단다.

길모퉁이에선, 햇볕을 쬐어 따뜻하고 반짝거리는 돌멩이 하나가, 당나귀가 오는 것을 쳐다보고 있었어. 매끈매끈하고 하얀 돌멩이는 아무것도 훼방 놓는 것 없는 자유로운 몸이었지. 당나귀가 길쭉한 자기 코앞을 날아다니는 예쁜 잠자리 쪽으로 주둥이를 내밀려고 할 때, 당나귀의 귀여운 발이 돌멩이 가까이에 살짝 얹혀졌어. 짓궂은 잠자리가 당나귀의 오른쪽 콧구멍을 건방지게도 콕콕 찌르고 있는 동안, 돌멩이는 당나귀의 발뒤축을 붙잡았단다. 당나귀는 깜짝 놀라서 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이렇게 깜찍하게 생긴 잠자리가 요술을 다 부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어. 당나귀가 어안이 벙벙해서 기다란 속눈썹을 세 번 깜짝거리니까 잠자리는 날아가 버렸어. 그런데 아직도 요술을 풀리지 않았지. 당나귀의 다리가 움직이질 않는 거야. 당나귀는 이리 비키고 저리 날뛰고, 이쪽에선 뒷발로 차고 저쪽에선 앞발로 차면서 껑충껑충 뛰었단다. 힝힝거리던 당나귀가 비틀거리다가 뒤로 털썩 주저앉아 버렸을 땐 이미 때는 늦었지. 당나귀는 도대체 내 앞다리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어. 당나귀는 세 번 속눈썹을 깜짝거리고서 제 긴 다리를 쳐다봤어. 그대로였어. 이번에는 눈을 깜짝거려 봤자 아무 소용없었지. 당나귀는 자기 다리를 잡아당겨 봤지만 다리는 꼼짝도 않았어.;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어. 당나귀는 어여쁜 얼굴을 숙이고 길쭉한 귀를 갸우뚱거리면서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하려고 애썼어.

“자, 다리야 착하지, 조금만 움직여봐.”

아무 반응이 없었어.더구나 마치 누군가 오른쪽 발을 껴안고 있는 것처럼 그 쪽 다리가 으슬으슬 떨렸어.

그런데 당나귀는 그 편이 차라리 기분이 좋았단다. 아주 아주 좋았지. 그래서 당나귀는 다른 쪽 다리를 쭉 펴고서, 천천히 땅바닥에 배를 깔고 두 발 사이엔 주둥이를 얹었어.지진 걸까?

그런데 이건 또 뭐야? 하얀 홍당무가 다 있나? 당나귀 콧구멍 밑에는 하필 당나귀 발에 밟혀 땅 속에 박혀버린 어여쁜 돌멩이가 있었단다.

“어여쁜 돌멩아, 넌 어쩜 그렇게 반짝거리니? 내 다리를 붙잡은 게 너니? 아냐, 놓지마. 자, 우너한다면 다른 쪽 발도 마저 줋게.”

당나귀는 커다란 눈을 감으며 말했어.

“안녕 잘생긴 당나귀님, 내각 당신이 길가는 걸 막았어요. 당신은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만, 난 당신에게 키스해 달라고 부탁하고 깊었거든요.”

“자, 내 키스예요. 아름다운 태양이여. 내가 네 곁에 머물러 있어도 좋겠니? 네 살결을 너무나 매끄럽고 투명하니까”
“당신 입술은 달콤하군요. 가지 마세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난 움직이지도 못하고, 까다롭고 불길해요. 사람들은 내가 단단하다고 말하죠. 만약 내 몸이 뾰족하다면, 난 기뻐서 어쩔줄 모르겠죠? 난 내 마음대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할 수가 있을 테니까요.”

“돌멩아, 너도 명심해야 한다. 여기 내 발자국이 찍힌 곳엔 앞으로 아무도 오지 못할 거야. 난 이제부터 영우너히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을테니까. 사람들은 내가 당나귀처럼 고집불통이라고 말한단다.”

그리고서 둘은 서로 껴안은채 떨어지지 않았어. 따사로운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쪼였지.

어느덧 날이 저물기 시작했어. 돌멩이가 추워서 오들오들 떨자 당나귀가 따뜩하게 몸을 감싸주었어. 당나귀가 무서움을 타자 이번엔 돌멩이가 꼬옥 껴안아 주었지.

새벽이 되었어. 이른 아침 사람들이 시내로 가기 위해 풀이 빽빽하게 자란 그 길모퉁이를 지니갈 때, 그들은 그만 너무 깜짝놀라 소리를 질렀단다. 감격한 나머지 그들은 눈을 꼭 감고 눈시울을 적셨어.

거기엔 돌멩이 대신 백금과 흑옥으로 된 아름다운 아가씨와 당나귀 대신 커다란 사파이어 빛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 있었단다.

둘을 벌거벗은 채로, 영원히 놓치 않으려는 듯이 서로 손을 꼬옥 쥐고 있었지. 그들의 <사랑>은 돌처럼 <단단>하고 당나귀처럼 <고집스런> 것이었어.







“하지만 넌 그냥 당나귀야. 아니지, 벼슬도 안 달린 수탉이야.”

누나는 동생을 떠밀었다.

절벽으로 동생이 사라진다.

댓글 4
  • No Profile
    wicked 04.08.19 08:12 댓글 수정 삭제
    오누이는 오빠와 여동생입니다 (...)
  • No Profile
    장우열 04.08.19 18:37 댓글 수정 삭제
    앗, 수정.
  • No Profile
    chae 04.08.25 14:58 댓글 수정 삭제
    꼭 오빠와 여동생이란 뜻은 아닌데요..
    그냥 남매랑 같은뜻인데.. 즉, 남자와, 여자 형제자매를
    가리키는... 사전에도 보면 남매와, 오누이의 뜻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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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ay 04.09.30 09:04 댓글 수정 삭제
    오누이와 남매는 비슷한 말이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닙니다. '오라비(오라버니) + 누이'이지요. 억지를 써서, 누이를 누나와 같은 뜻이라고 보고 오라버니를 남동생이라는 뜻으로 쓰겠다면 딱 잘라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둘을 동의어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용례와 어감상 맞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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