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네크로포비아 _ 3

2014.05.22 02:2505.22

해골이 아래턱을 미묘한 각도로 비틀었다. 잘 모르겠지만 살가죽을 씌워놓는다면 승리의 미소 정도의 표정이 나올 것 같다. 그가 갈비뼈를 확 펴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겔겔겔... 아가씨 운이 아주 좋군. 오늘이 바로 나한테 가당치도 않는 이 저주받은 무덤을 나가기로 작정한 날이거든. 나만 따라오시오! 내 금방 바깥 풍경과 금방 만나게 해 드리지.”

“뭐라고요? 여기서 나갈 수 있다는 건가요?”

서광이 비쳤다.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상대가 해골이건 무엇이건 좋았다. 내 표정이 많이 밝아졌는지, 해골은 더욱 의기양양해했다.

“두말하면 잔소리요. 내 274년 전 마지막 한번을 제외하고는 거짓말을 해본 역사가 없지. 바로 내 관 아래에 20년에 걸쳐서 기다란 탈출구를 만들어 놓았단 말이지. 덕분에 빌어먹을 숟가락이 닳아 없어져서 끼니를 거르게 되긴 했지만, 사실 뭐 난 안 먹어도 크게 상관은 없거든. 그보다 뭔가 약간 사소한 문제가 있긴 하다만 그 부분은 신경 쓸게 아니오. 원한다면 지금 바로...”

“얼른 안내해줘요!”

그 약간 사소한 문제가 신경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이곳을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일단 사람 있는 길목까지만 나가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내 목은 좀 놔주슈...”

화들짝 놀라 붙잡고 있던 해골의 목뼈에서 양 손을 땠다. 정신 나간 듯 양 손을 휘저어대다가 왠지 서글픈 눈... 같은 느낌이 드는 해골의 머리를 보며 양손을 숨겼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몸단장을 거른 적은 없소만.”

“아무래도 괜찮으니까 빨리 안내해 주세요.”

 

해골의 뒤를 따라, 정확히는 골반 뼈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계속 따라가고 있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시시때때로 저 해골이 던지는 시시껄렁한 자기 이야기들만이 들리는 소리의 전부였다. 별로 위안이 되지 않았다. 내 시간감각에 의하면 벌써 이 구불구불한 통로를 오르내리기 시작한지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슬슬 체력에 한계가 다가온다.

“이 부분이 바로 내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지. 근처에 커다란 나무뿌리가 있었거든. 그놈들이 자꾸 잡아채려 하는 통에 흙이 무너져서 진짜로 죽을 뻔 했다 이 말씀. 덕분에 거리가 멀어졌다오. 원래는 여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아무래도 좋으니까 빨리 가기나 해요!”

날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해골은 흠칫하더니 발발거리며 움직이는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오 분을 더 기었다. 다음 순간 찾아온 불빛은 내 심장에 터질 듯 한 기쁨을 전해 주었다. 하지만 그 기쁨이 그렇게 오래가지가 않았다. 해골이 말했던 그 사소한 문제가 곧바로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기 때문이다.

“나와라 이 망할 고양이야!! 내가 또 왔다!”

굴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뒤, 흐릿한 등이 달린 지하실로 들어온 다음, 해골이 처음으로 외친 말이었다.

“게으름뱅이 고양이놈. 아가씨. 잠시만 기다리시오. 오늘은 내가 꼭 저놈을 요절을 내서.”

저 해골이 덜썩거리며 걸어 다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질 않았다. 뼈를 움직여줄 근육은커녕 살점하나 없는 저건 차라리 생물이라기 보단 유령이다. 저 유령이 터덜터덜 걸어 나간 곳은 지하실의 나무문이었다. 똑똑, 하고 뼈와 나무가 부딪히는 정말이지 딱딱한 소리가 났다.

“나와. 이 시커먼 자식!”

한참이나 그렇게 저 해골이 씨름을 하고 있는 사이 나는 자리에 앉아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에 달린 쪽문이 살짝 열렸다. 아마 문 건너편에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또 왔습니까.”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여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오래된 기억도 아닌 가까운 기억속의 누군가. 하지만 확실하게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래 또 왔다. 이 망할 고양이야. 이번엔 전과 다를걸. 이 나의 치밀한 연구의 결과물을 보여주마!”

열을 내는 해골과는 달리 문 건너편의 상대는 침착했다. 건조하다 못해 냉랭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그럼 뭐, 오늘도 시작해 보지요. ‘살아 있다’ 라고 주장하는 당신이 자신 있어 할 만한 문제입니다.”

“겔겔겔... 얼마든지 내어 보라고!”

해골은 팔짱을 끼며 벽에 기대어 섰다. 그 반쯤 벌어진 턱에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지상생물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장기는?”

“야!! 지난번이랑 문제가 다르잖아!”

“어차피 당신이 살아있었을 적에 몸에 달려있던 장기들 아닙니까.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너 같으면 500년도 지난 일이 멀쩡하게 기억나겠냐! 그보다. 난 살아있다고! ‘살아있었을 적’ 같은 얼토당토 않는 표현은 그만하지!”

한 참의 정적이 지났다. 열 받은 해골이 문을 아무리 때려도 문 건너편의 누군가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한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쉽지만 기회는 하루에 한번 뿐입니다. 그럼 안녕.”

쾅! 쪽문이 닫혔다. 맙소사. 그제야 확 정신이 들었다. 그래. 저 수수께끼 같지도 않은 수수께끼만 맞추면 문을 열어 준다는 거 아닌가? 해골이 비치적거리며 다가왔다.

“아가씨... 안됐지만 내일을 기약해야 할 것 같은걸. 벌써 내가 300번이 넘게 도전하고 있지만 저놈의 수수께끼는 도무지 풀 방법이 없어 보입디다. 하지만 말이오 내가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

“잠시 만요!!”

미친 듯이 달려가 문을 두들겼다. 제발, 가버리면 안 돼. 여기서 하루를 더 버티라니. 그것도 저 해골과? 죽어도 싫다. 제발. 제발 응답해!

“가지 말아요!! 돌아와요!!”

정신없이 문을 두들겼다.

“...그렇게 시끄럽게 하지 않아도 여기 있습니다.”

“아,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저도 수수께끼를 풀겠어요!”

“그러셔도 상관없습니다만, 기회는 하루에 한번. 그리고 이 수수께끼는 당신이 절대로 풀 수 없는 것인데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제가... 절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요?”

“예. 당신은 절대 풀 수 없습니다.”

문 밖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럼 뭐 하러 수수께끼 같은걸 내는 거죠!! 차라리 여기에 그냥 가둬두라구요!! 뭐하는 거예요 이건!”

“그래서 수수께끼를 푸실 겁니까 말겁니까.”

화를 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가씨. 저놈은 허풍선이야. 내가 꼭 저놈의 문제를 풀어낼 테니 오늘은 그냥 돌아가도록 하세 응?”

“풀겠어요.”

옆에서 해골이 달그락거렸다. 그쪽은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지요. 여기 문제입니다.”

숨을 참았다. 침이 꿀떡 넘어갔다. 과연 어떤 문제가 떨어질까. 어려운 수학문제, 역사문제,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왕이 죽은 연도? 어떤 것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두 주먹에 힘을 꽉 넣었다. 여기에서 나가고 싶었다. 여기에서 하루를 더 머무는 것은 죽기보다 더 싫다.

 

반드시 맞추고야 말 것이다. 억지로라도.

“당신 어머니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머리가 하얘졌다. 주변은 완전한 적막에 휩싸였다. 해골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 어머니의 이름? 나의 어머니. 아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어째서, 나를 낳고 나를 사랑하였을 어머니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지? 아니. 그녀의 얼굴도, 냄새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하나 아가씨. 어서 답하라구!”

그래, 어서 답해야 정상이다. 하지만 나에게.. 어머니가 있었던가? 태어났으니 낳아준 사람이 있어야 정상이지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문제를 절대로 풀 수 없다.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항의를 할 수도 없다. 목이 틀어 막힌 것처럼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마치 순간 죽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봐, 이봐... 아가씨! 아무 이름이나 말해!”

“뭐라고요?”

해골이 어깨를 흔들었다.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조금 마음에 안정을 주는 것 같았다.

“어서 아무 이름이나 말해!! 저 놈은 당신 어머니의 이름 따위 몰라!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라고! 아무 이름이나 말해버리고 진짜라고 말해버리면 그만이야! 어서 말해요 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어머니의 이름은 김 복순 입니다!! 김 자! 복 자! 순 자!“

......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 험험. 옆에서 해골이 헛기침을 했다. 그에게 헛기침할 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할 기운도 없었다. 주저앉기 직전에서 목소리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제가 틀렸다고 잡아 땔 수 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까?”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었어요.”

몸에 힘을 넣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럼 문을 열어드리지요. 정답, 정답. 당신의 승리입니다. 그럼.”

달그락, 찰칵! 열쇠가 문에 맞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철문이 비척거리며 열리기 시작했다. 혹시나 맘이 변할 새라 문에 손을 대고 같이 밀어젖혔다. 콰당! 어지간히 오래도 닫혀 있었던 듯, 거의 안개만큼이나 짙은 먼지가 피어올랐다. 콜록, 이래서야 문 뒤의 누군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바깥에는 개가 돌아다닙니다. 차라리 여기에 머무는 편이 나을 텐데요.”

침착한 목소리가 들렸다. 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이놈 고양이야! 서라 내가 너를 오늘 요절을!! 콜록..!”

어째서 해골이 먼지에 기침을 해야 하는 걸까... 팔을 휘저었다. 옅어진 먼지 속에서 눈앞의 사람의 옷자락을 본 것 같았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슥. 무엇인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옆에서 해골이 미친 듯이 켁켁거리고 있었다. 먼지가 다 걷히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문 뒤의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앞길이 열려있었다. 기다란 계단이 이어져 있었고, 그 끝에는 어슴푸레한 빛이 보이고 있었다. 맙소사. 이제야 이 지루한 악몽이 끝났다. 제발 이 길만 끝나면 이 악몽이 끝나 있길 바랬다. 냅다 달렸다. 맘이 급해서 높은 구두도 벗어서 던져버렸다.

 

“이보시오, 아가씨! 아가씨!”

두 발이 여태껏 이렇게 빨리 움직여 본 적이 있었을까. 빛이 가까워졌다.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지나치는 차를 잡아 탈거야. 그리고 두 번 다시 오늘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온 평화를 두 번 다시는 놓쳐버리지 않을 것이다. 빛이 다가왔다. 뒤에서 달그락 거리는 해골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다가온 것은 익숙한 절망이었다.

“이게... 무슨....”

입이 헤벌어졌다. 아무런 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가씨. 구두를 놓고 갔소. 이 앞길은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아니지. 구두 한 켤레 소중히 하지 않으면 발을 고생시키고 말거요. 듣고 있소?”

듣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것들은 절대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눈을 몇 번이고 감았다가 다시 떴다. 장관이라면 장관이었다. 순간 압도되어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보름날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하고 꽉 찬 느낌의 저 달. 그리고 폭풍 치듯 흘러가는 짙고 짙은 먹구름. 그 아래로 살점이 툭툭 떨어지는 거대한 생선이 척추를 들어내고 비치적거리며 날아가고 있었다. 언덕으로 이어진 조그마한 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고, 종류를 알 수 없는 가시 풀들이 괴기한 모양으로 꼬아져 있다. 풀섶에서 뭔가 끔찍한 작은 생물들이 퍼드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하-. 아름다운 밤이오. 그렇지 않소? 도대체 몇 년 만의 바깥인가. 햇수로 50, 60...”

옆에서 아래턱을 덜그럭거리며 감탄하는 해골에게는 전혀 공감하고 싶지 않았다. 전혀 아름답지 않다. 무시무시하고 비비꼬인 세계. 여기는 도대체...

“그래서. 아가씨가 가려고 하는 곳은 어디요? 솔직히 나는 나오고자 하긴 했다만 딱히 정해둔 정처 같은 것은 없소만.”

“모르겠어요.”

홱 돌아보았다. 해골의 갈비뼈가 엮여있는 것이 보였다. 기분이 확 나빠졌다.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짜증과 화가 치밀었다. 이곳은 묘지였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아니 이런 곳이 존재 자체가 의심스러운 무시무시한 묘지. 하늘에는 죽은 물고기가 떠다니고 대화상대로는 저 뼈다귀 아저씨가 전부인.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풀고 이제야 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고? 그건 이상할 것이 없군. 우리 살아있는 것들은 죽은 것과 달리 항상 정처가 없지. 살아있는 대로 살아있고 싶은 데로 마음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이 해골의 살아있다는 주장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아저씨 혼자서 해요. 난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구요!!”

“그렇담 돌아가면 되지 않소. 이제 저 칙칙하고 아무것도 없는 묘지에 가두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하늘을 보았다. 한숨이 나왔다.

“저 한테는 이곳이나 저 묘지나 다를 바가 없어요.”

“이 아름다운 하늘이 아가씨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단 말이오? 거참 이상하군. 아가씨는 어디에서 왔소?”

해골의 텅 빈 눈구멍에 호기심이 스쳤다. 맙소사. 있지도 않은 걸 느끼고 있는 걸 보니 저 해골에게 나도 어지간히 적응이 되었나보다.

“믿기 힘들겠지만, 저는 도시에서 왔어요. 높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물론 일 외의 이야기는 하지 않지만... 그리고 그 어느 구석에는 제가 살고 있는 조그만 방도 붙어있어요. 전 거기에서 잠을 자지요.”

해골이 머리를 기울였다.

“썩 매력적으로 들리지는 않는데?”

“저한테는 충분히 매력적이예요.”

“그것밖에는 없소? 글쎄... 이 동네에 그런 곳이 있던가. 금시초문인걸? 좀 더 인상적인 것을 말해봐요. 그런 따분한 곳이라면 나 같으면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겠지만.”

하늘에 썩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이곳 보다는 나아요. 거기는 미친 토끼도 없구요. 살하나 없이 삐쩍 마른 사람은 있어도 아예 해골인 당신 같은 사람도 없어요...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다.

“그래도 제 고향이니까요.”

“아하. 향수병이구료. 나도 그것에 고생한 적이 있지. 참고로 내가 태어난 곳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스틱스 강물보다 훨씬 짙은 검은색 물이 사철 흐르는 강에...”

신경을 껐다. 해골의 고향자랑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배가 고파졌다. 익숙한 굶주림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배가 고픈 걸 보니, 나는 아직 살아있다. 살아있는게 확실하다면 이건 꿈이어야 하는데. 이 만큼이나 했으면 이제 해가 뜰 때도 됐는데.

“아저씨! 여기 해는 언제 뜨나요?”

문득 드는 생각에 해골에게 물었다. 해가 뜨고 날이 밝아진다면 이 정체불명의 상황이 좀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해, 해라고 했나? 뜬다고? 새의 일종인가? 모, 모른다는 말은 아니오. 다만 내 기억력이 썩 좋지 않다는 사실...”

“그러니까요!! 낮에 하늘을 밝히는 태양이요! 땅에 생명을 주고 아침을 가져오는 불덩어리요!”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모르겠군. 확실히 빛은 중요하지. 땅에 빛과 따스함을 주는 거라면 저기 떠다니고 있지 않소?”

해골은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커다란 물고기가 떠다니고 있었다.

“빛이 필요하다고 여왕이 판단하게 되면 여왕의 병사들이 저기에 불을 붙이지. 저 커다란 생선이 불타오르게 되면 지상에 아침이 온다오. 물론 그 시기가 순전히 여왕 마음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불유쾌하긴 하지만.”

해골은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오래전에 한 녀석이 낮이 너무 불규칙하다고 불평을 한 적도 있었지. 물론 미친 머리장수에게 그날로 팔려가긴 했지만.”

“그러니까... 제 말은 해 말이예요! 태양이요!”

“그런 건 없단 말이오.”

머리를 부여잡았다. 해가 없어? 아침이 오지 않아? 그런 세계는 존재 할 수 없다. 해가 없으면 모두는 죽는다. 으슬으슬 날이 추웠다. 갑자기 온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근처에 온기를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다 미쳐 있었다.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상’으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다. 이것은 바르지 않다.

모두 미쳤어.

“아가씨. 이봐요. 괜찮소?”

해골이 닿았다. 자지러지게 놀랐다!

“꺼져요!! 나한테 닿지 말아요!! 저리가!!! 미쳤어!!... 다 미쳤다고!! 이런 것 인정할 수 없어!! 비켜요!! 제발 깨어나... 제발 깨어나... 제발 깨어나... 제발... 제발... 으아아...”

“이봐요. 갑자기 왜 그러는 거요? 낮이 오지 않아 불만이라면 조금 기다리면 되오. 여왕의 병사들은 명령에 충실하지. 여왕 궁에도 빛이 필요하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낮이 오긴 할 거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낮이 온다는 사실을 내 보증하지.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저리가!! 싫어!!! 싫다고!!”

퍽!

해골의 손목을 내리쳤다. 손목뼈가 뚝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에구구.”

굴러가는 손목을 따라서 해골이 언덕을 내리 달렸다.

“나는 괜찮소!! 괜찮으니까 걱정 마시오!!”

해골이 달려가면서 무어라고 소리 지르는 것이 들렸다. 나는 주저앉아 머리를 다리사이에 파묻었다. 눈을 감으면 어둠. 그것만이 현실과 똑 같은 것이었다. 두 귀만 틀어막으면 이제 현실로 돌아간다. 이 저주받은 세계는 안녕. 그리운 내 방 침대야. 두 팔을 들어 올리려던 찰나에.

“그런데 말입니다.”

눈이 번쩍 떠졌다. 차가운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의 조각이 짜 맞추어 졌다. 저 목소리는 낮에 사무실에 쳐들어온 이상한 남자의 그것과 똑같았다.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까운 나무 위에 남자는 서 있었다. 가지 끝에 발끝만 대고 있어서 마치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호의를 베푸는 사람의 손목을 쳐내 버리다니 몰상식한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특히나 친구하나 없는 이런 세계에 홀로 떨어져 있을 때 말입니다.”

“다, 당신!! 날 알지요? 여긴 어디죠? 당신 짓인가요? 어서 날 꺼내줘요!!”

남자는 두 팔을 쫙 펼쳤다. 날렵한 동작이었다. 갖추어 입은 정장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을 여기로 대리고 온건 시간에 쫓기는 토끼 한 마리. 저는 토끼가 아니라 고양이지요. 당신을 도울지도, 돕지 않을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알지만 모든 것을 하지 않는,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밤 고양이입니다.”

번뜩. 그가 눈을 날카롭게 떴다. 그 눈에는 눈동자가 없었다. 온통 하얀 흰자만이 들어찬 그 눈에는 핏줄 하나 솟아있지 않았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당신의 정체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여기서 날 꺼내 달란 말이야!”

“스스로 나가십시오.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아주 중요한 사실을, 사실 알지 않아도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사실 하나를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뿐이지요. 당신이 여기에 온지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곳에서 당신이 머문 시간이 일주일을 넘기면, 당신은 이곳의 주민이 됩니다.”

그는 두 팔을 비극적으로 내렸다.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얼굴 근육이 굳어버린 것처럼.

“즉, 죽는다는 거지요. 이 세계에 살아있는 것 따윈 없으니까.”

“그.. 그만해요.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뭐든지 할 테니까. 돈이라면 줄 테니까!”

그가 귀를 쫑긋거렸다. 고양이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그는 손가락을 기묘하게 들어 아래턱을 긁었다.

“무엇이든지 하겠다. 그럼 하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살아 날 수 있을 법 한 일을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시간이 없어요. 바쁘지 않나요?”

그가 나무에서 몸을 휙 날렸다. 새하얀 두 눈이 내 눈앞에 마주 닿았다. 코가 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는 마치 이곳에 없는 것 같았다. 등줄기가 곤두섰다.

퍽!!

뼈다귀가 날아왔다. 남자의 목이 볼썽사납게 꺾였다.

“기야야야아옹!!!”

남자가 퍼뜩 놀라 묘비 뒤쪽으로 숨었다. 마치 고양이같은 동작이었다. 그는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렸다. 놀란 고양이가 하는 짓 그대로였다.

“이놈아! 당장 꺼지지 않으면 이번엔 더 무거운걸 던져주마!!”

한쪽 다리를 집어던져버린 해골이 한발로 뛰어오면서 외쳤다.

“망할 뼈다귀가... 아무튼, 잊지 마십시오. 시간이 없습니다.”

남자는 묘비 뒤에서 머리만 내밀고 차갑게 말했다. 다음 순간, 그가 어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치 고양이처럼, 허리를 잔뜩 굽힌 체 내달리는 그는 짧은 순간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돌처럼 굳었던 몸이 풀어지며 한숨이 나왔다.

“아가씨. 괜찮소? 저 돼먹잖은 놈이 무슨 짓을 하려 했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

“... 그보다. 저게 무슨 소리죠? 이곳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게 되면 제가 이곳 주민이 된다는...”

해골은 집어던졌던 다리를 주워와 골반에 다각거리며 끼워 넣었다. 그는 텅 빈 눈구멍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손목을 끼워 넣으며 말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원래 살아있는 생명들은 주변 환경에 동화하는 법이지. 이 세계에 제대로 살아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도 얼마 되지도 않소, 썩은 내가 진동하는 곳에 오래 있으면 멀쩡한 사람의 옷자락에도 썩은 냄새가 풍기는 법이야.”

고양이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깊고 깊은 덤불. 그 어둠 뒤쪽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수렁이었다. 이제 와서 그를 따라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하려 했던 이상한 이야기들을 조금 더 듣고 싶었다. 나는 해골을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상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포도 아닌, 위화감도 아닌 어떤 것. 해골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좀 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이 세계가 살아있는 사람이 살기에 썩 적절하지 않은 땅이라는 거요. 이 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고, 밖에는 미친 사냥개가 돌아다니지. 솔직히 나와 당신을 제외하고는 이 주변에 올바르고 건전한 사상을 가진 사람은 존재하지 않소. 애초에 이곳을 다스리는 여왕마저도 제 정신이 아니거든.”

문득 호기심이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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