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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10)

2014.06.28 14:2706.28

10

 

김윤수가 돈까스를 뺏으러 돌아다니던 놈의 머리를 식판으로(그것도 세로로) 때려박은 순간 정신병원 남자 전용 식당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정적은 불난 개미집(만약 개미들이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면)만큼이나 시끄러웠던 식당을 갑자기 저녁 무렵의 황금빛 황혼이 드리워진 평화롭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드리우는 동시에 하얀 환자복을 입은 새파란 청년들이 돈까스 조각을 두고 싸우는 홀로코스트적 상황이 공존하는 부조리하고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플라스틱 식판은 몇 조각으로 깨어져 배식이 시작되기 20분 전에 청소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머리에 식판 조각을 꽂은 돈까스 보이는 바닥에 대자로 퍼져 누워 덜덜 떨고 있었다. 김윤수는 손에 깨어진 식판 조각을 들고 방금 휘두른 물리력의 결과를 감각하고 있었다. 식당 안에 존재하는 합리성은 딱 엄지손가락만한 돈까스 조각크기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누구나, 이제 덩치가 백곰만한 남자 간호사들이 달려와 김윤수의 두 팔과 목을 안아 바닥에 쓰러뜨리고 구속복을 입힌 뒤 억지로 팔에 주사바늘을 꽂은 뒤 양심수들이나 갇혔을법한 하얀 벽에 변기가 딸린 방에 녀석을 밀어넣거나, 아니면 사지를 어깨에 나눠 멘 뒤 침대에 꽁꽁 묶어놓고 입을 억지로 벌려 돈까스 튀김 가루 녹인 물을 부어넣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남자 간호사들도 식사중이라면, 적어도 부원장이나 원장이 뒷짐을 지고 나타나 윤수의 턱을 손가락으로 잡고 눈꺼풀을 찢어지도록 벌린 다음 동공을 레이저 포인트로 비추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사춘기성 폭력장애가 극에 달했어. 안정부터 시킨 다음 전기충격 치료 시작해!”라고 말한 뒤 입에 묻은 밥알을 떼며 달려온 남자 간호사들에 의해 구속복이 입혀진 다음(결과는 똑같지만) 역시 독방에 처넣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누구나 생각한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지만, 심지어 김윤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일은 그렇게 신속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윤수는 잠시 서서 이제 앞으로 닥칠 고난의 행군을 생각하고 모든 희망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도 식판을 얻어맞은 돈까스 보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었다. 윤수는 어이가 없다가, 그 다음엔 잠깐 망설이다가, 몇 초 후엔 돈까스 보이 옆에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식당에는 여전히 서정적인 침묵이 흘렀다.

눈은 풀려 있었지만 머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많지 않았다. 뇌출혈은 확실했다. 윤수는 목의 경동맥을 짚었다. 맥박이 빠르고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학생회단 리더십 트레이닝에서 배운 거였다.)

의사 불러.”

...?”

의사 말이야.”

윤수는 일어섰다.

뇌출혈일지도 몰라. 빨랑 불러와!”

식사중이던 남자 간호사들이 입가에 묻은 밥알을 떼어먹으며 달려왔고 돈까스 보이는 두 팔과 다리, 목을 제압당한 뒤 구속복이 입혀지고 팔에는 진정제가 놓아졌다. 남자 간호사들은 돈까스 보이를 영차, 메고 독방으로 향했다. 따라가던 윤수는 그럼 그렇지 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찰실이요! 진찰실! 독방 말구요!”

진찰실에서는 원장이 밥을 시켜먹고 있었다. 식당에서 매일 식사를 제공했지만 원장은 가끔 별식을 먹고 싶어했다. 생선초밥이나 양고기 스테이크를 먹고 싶어지면 원장은 식당 카탈로그를 펼치고 음식을 직접 주문했다. 병원 입구까지 배달원이 음식을 가져오면 경비원이 비서를 내선 전화로 부르고, 비서는 진찰실까지 음식을 날라 주었다. 비서는 원장의 음식을 날라 준 다음 식당으로 혼자 밥을 먹으러 내려갔다. 원장은 소독한 진찰용 나이프로 고기를 썰고 솜을 집는 가위로 초밥을 집어 먹었다.

돈까스 보이가 진찰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순간 원장은 마지막 생선초밥을 남겨놓은 상태였다. 마지막 초밥의 재료는 문어였다. 별로 좋아하는 재료가 아니어서 원장은 가위를 든 채 먹을까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찰실 문이 열렸고, 돈까스 보이가 두 팔과 다리와 목을 제압당하고 구속복이 입혀진 뒤 팔에 진정제 주사를 맞은 채 실려들어왔다.

윤수는 진찰실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식당으로 되돌아왔다. 식당에는 여전히 평화가 흘렀다. 개미들이 모조리 불타 죽은 것 같았다. 돈까스를 뺏던 녀석들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식판을 앞에 놓고 밥을 먹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도 조용했다. 돈까스 보이를 진찰실에 실어다준 백곰 같은 덩치의 남자 간호사들도입에 밥알을 묻히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윤수는 조용히 식판을 집어들었다. 게걸음으로 움직이자 식판에 밥, , 김치, 단무지, 그리고 돈까스 두 조각이 차례로 담겼다. 자리로 걸어가자 통로에 서 있던 소년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물러섰다. 윤수는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빡빡머리 소년이 기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윤수는 시멘트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국물부터 떠 마셨다. 옆건물에서 메추리알이 부딪치는 듯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긴장이 풀리자 밥과 김치, 단무지가 차례로 없어졌다. 식당은 여전히 평화로웠고, 황혼은 서서히 광채를 거두어 들이고 있었다.

이제 식판에는 돈까스 조각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윤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젓가락을 들고 돈까스를 살짝 건드렸다. 빡빡머리 소년은 더욱더 큰 웃음을 얼굴 가득 지었다. 윤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젓가락을 섬세하게 놀리기 위해 손에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집어 올렸다. 그는 잠시 감동에 젖어 돈까스 조각을 바라보았다. 노란 튀김옷은 봄날의 황혼처럼 풍요로운 색채를 띠고 있었고, 통통한 모양은 흡사 소녀들의 엉덩이 같았다. 윤수는 젓가락 끝을 입으로 가져갔다. 황홀한 찰나였다. 빡빡머리 소년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음 순간 윤수의 두 팔과 다리와 목은 백곰 같은 남자 간호사에 의해 제압당했고 3초 뒤 그의 몸에는 구속복이 입혀져 있었다. 윤수는 불타 죽어가는 개미 백만 마리가 내는 비명을 지르며 반항했다. 그러나 그의 팔에는 진정제 주사가 꽂혔고, 잠시동안이었지만 그의 미각은 돈까스 조각을 느낄 감각을 잃었다. 황혼을 느끼는 시각이 흐려져가는 마지막 찰나 문어 초밥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원장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돈까스 보이를 진찰하느라 안그래도 맛없는 문어 초밥은 더 맛이 없었다. 원장이 말했다.

우린 네놈을 내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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