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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학교의 살인자(1)

2014.06.28 14:2106.28

학교의 살인자


1

 

K선생은 양호실에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학교 건물 동쪽에 난 양호실 창문 옆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학교 정문과 후문을 잇는 울타리 안에서 가장 사람을 만날 확률이 적은 장소는 바로 이 양호실, 그 중에서도 바로 동쪽에 접한 침대였다. 양호실에는 세 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그 중 볕이 비쳐드는 창문 쪽 침대가 제일 인기가 없었다. K선생은 양호 선생에게 동쪽 침대를 요구했다.

"동쪽 창문이요?"

양호 선생은 눈썹을 찌푸렸다. 빨간색 솜털이 보슬보슬한 앙고라 스웨터에 하얀 진주목걸이를 건 그녀는 눈과 털 색깔이 뒤바뀐 토끼 같았다.

", 동쪽 창문 옆에 놓인 침대요."

K선생은 대답했다.

"거긴 햇빛이 많이 들어서 불편하실텐데요."

"괜찮습니다."

K선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K선생은 부임하자마자 가장 중요한 작업에 착수했는데 교실과 창고, 교무실과 각종 활동실, 운동장을 포함한 학교 전체에서 가장 누군가와 마주칠 확률이 적은 장소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K선생은 이 일을 위해 수학 선생을 끌어들였는데 수학 선생은 그 작업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면서도 K선생에게 보충 수업을 세 번이나 떠넘겼다. K선생이 낯선 아이들의 백오십 분의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보내는 동안 수학 선생은 노트와 공학 계산기를 들고 학교를 쏘다니다가 결국 0.0.0.0으로 표시되는 스팟을 찾아냈다. 그러나 그 제로 스팟은 토끼 양호 선생의 영역이었다. 수학 선생은 알콜과 약품 냄새를 하늘하늘한 선녀 날개처럼 휘날리는 그녀 앞에서 단 오 분도 견디지 못했다. K선생은 비염 약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다음 당당히 그녀의 따뜻한 보호 아래 있는 제로 스팟에 입성했다. 그리고 양호 선생 몰래 침대 쇠기둥에다 몰래 샤프 펜슬로 ‘0.0.0.0’라고 새겨 넣었다. 수학 선생은 비분강개한 나머지 교장에게 수학 경시대회 준비용 교실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그 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뒤 K선생은 두 학기째 수학 선생을 만나지 못했다.

"머리 아프셔서 오셨지 않아요? 햇빛이 많이 들면 머리가 더 아플수도 있는데요."

"아스피린 먹으면 괜찮겠죠. "

토끼 양호 선생은 아스피린을 꺼내 건넸다. K선생은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약을 들이켰다. 하도 자주 와서 어디에 물과 컵이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K선생은 침대로 걸어가 구두를 벗고 누우면서 말했다.

"매번 올 때마다 성가시지요? 다음 번엔 제가 약 찾아 먹을게요."

"약장은 열쇠로 잠가 둬요."

"? 왜요?"

"약 찾는 애들이 하도 많아서요. 진통제를 열심히 먹으면 살이 빠진다나요."

토끼 양호 선생이 말하면서 하늘색 파티션을 끌어와 K선생이 누운 침대를 가렸다. 뭔가 보기 싫은 걸 가린다는 느낌이었다. K선생은 자켓 안주머니에서 수면 안대를 꺼내 눈을 덮었다. 오전 동쪽 하늘의 부러진 창날같이 빛나는 광선은 작은 안대로 간단히 가려졌다. K선생은 학교의 모든 공간을 GPS로 표시한다면 자신이 누워있는 침대야말로 0.0.0.0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양호 선생이 깨끗이 치우는 이 하얀 침대는 0.0.0.0 네 개의 동그란 숫자에 잘 어울렸다. 오늘은 빨간 앙고라 스웨터의 솜털 몇 개가 떨어져 있었지만 양호 선생의 따뜻한 몸이 눕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K선생은 몸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한밤중 바람난 젊은 아내의 등짝을 바라보는 노인네처럼 일어나 앉아 버렸다. 스물여섯 시간 전, K선생은 소위 교편이라는 것을 잡은 이래 최대 위기에 봉착했던 것이다. 승표란 학생 때문이었다. 승표는 학생회 선거에 출마하고자 했던 것이다. 학생회장 선거는, 감히 입에 올려서도 머릿속에 담아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적어도 A고등학교에서는 말이다.

A고교에는, 간단히 말해, 학생회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학생회가 존재한 게 3년 전, 그러니 지금 2학년인 승표가 입학하기 1년 전이었다. A고등학교의 학생회 선거의 모든 규정은 규정집에 적혀 있었고, 이제까지 모든 학생회 선거는 그 규정에 따라 치러졌다. 규정에 어긋나는 선거는 치러질 수 없었다. 그 규정집은 교장실에 보관되어 있는데, 교장실 책장에 꽂혀 있는 갈색 모조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꺼운 성경책 모양 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책을 실제로 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교장실 청소를 맡은 학생들은 물론 교감과 학생주임 선생들도 사실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정을 모르는 선생은 없었다. 아무 평교사건 교장이나 교감이 다가와 툭 치면 책장이 주르르 넘어가듯 규정이 좔좔 쏟아져 나왔다. 규정집을 보지도 않고도 이렇게 규정을 다 알고 있다니 스스로도 신비로워 할 노릇이었다.

이렇게 모든 규정을 모든 교수가 모두 꿰고 있으니 사실 규정집이 따로이 있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규정을 찾기 위해 규정집을 뒤져볼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K선생도 학생회에 대한 규정을 외우고 있었다. 학생회에 대한 규정은 민주주의적 소양을 키워주기 위해 학생들의 자율적인 책임과 교사의 체계적인 지도 하에 학생회 선거를 치러야 한다이라고 알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생회에 대한 규정이 적힌 페이지 맨 아래에는 학생회 선거에 대해 교장은 재량 하의 지도를 할 수 있다는 규정또한 함께 적혀 있다는 사실은, 교장과 교감 외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참고로 교칙이 모두 적혀 있는 검정색 모조가죽으로 만든 이 규정집에서 핵심적인 규정은 대개, 페이지 아래쪽 여백에 아주 조그맣고 예쁘고 동글동글한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어 눈꺼풀이 발발 떨리던 날 아침 마그네슘 한 알을 삼키다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손글씨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학생의 사연을 들은 교장은 무릎을 쳤던 것이다.

옳지, 우리 학교 애렷다!”

교장은 그 여학생을 불러다가 규정집을 펼치고 불러주는 대로 적게 했다. 손글씨 아르바이트 여학생은 일할 때에만 쓰는 칼라펜 세트를 챙기러 집으로 우다다다 뛰어갔다.

교장과 여학생의 노력한 결과 현재 규정집의 학생들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규정한 장을 펼치면 남학생은 목덜미를 가리지 않는 선까지, 여학생은 올리거나 묶는 한에서 머리를 기를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그 쪽 여백을 자세히 살피면 아주 조그맣고 예쁜 파란빛 글씨로, ‘교장은 위 경우에 관해 재량 하의 지도를 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규정집을 거꾸로 뒤집은 다음,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펼치면 역시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어린아이 같은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규정집에 열거된 모든 교칙에 대해 교장은 재량 하의 지도를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치 연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나 쓰일 듯한 깨알같이 작고 사랑스럽고 애절하기까지 한 아름답기 그지없는 글씨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규정이 있었다. ‘위의 교칙에 대해 교장은 무제한의 재량을 가진다’. 그동안 교장들이 부임하면서 뭔가 규정집에 몇 줄 더 적어 넣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규정집의 모든 여백이 채워지면서 현 교장은 규정을 좀더 추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교장은 여학생을 내보낸 다음, 교장실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면서 규정집 페이지의 오른쪽 여백에 다음과 같이 왼손으로 만년필을 잡고 조심스럽게 적어 넣어야만 했다. ‘이 규정집의 모든 규정에 대해 교장은 영구하고도 무제한적이며 침해불가능한 재량을 가진다. 이에 대한 세부 사항은 여백이 모자라므로, 역시 현재 부임 중인 교장에게 권한을 맡긴다.’

그리하여 3년 전, 교장은 자신이 왼손으로 직접 쓴 맨 마지막 규정에 의거하여 학생회 선거에 대한 최고의 지도는 선거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판단이 정당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 판단에 대해 교장은 교감을 불러 판단을 요구하였고, 교감은 교장의 판단에 대해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판단을 내린 다음, 교감은 교장의 판단에 대해 갑자기 담배 연기처럼 일어나는 의구심을 느꼈다. 왜 갑자기 교장은 학생회 선거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가? 그러나 교감은 순간적으로, 이 의구심을 얼른 담배 꽁초처럼 눌러 지우고 꺼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왜냐하면 교장의 얼굴에 한탄스런 근심이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장은 자신이 왼손으로 집필한 규정이 가진 최대한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대상이 고작해야 학생회라는 데에 존재적 슬픔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후 A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도 학생회 선거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선거에 대해 불만이 없었던 교장으로 하여금 갑작스럽게 학생회에 대한 최고의 지도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움켜쥐게 한 이유는 평범한 한 남학생에서 비롯되었다. 그 남학생은 매우 건전하고 학생답게도 학생회장이란 누구나 하고 싶은 학생이라면 출마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나쁘게도 출마자가 한 명뿐이었기 때문에 그 학생은 당선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학생회장이 활동을 시작한 뒤 교장은 학생회에 대한 최고의 지도는 학생회 선거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학교 구조상의 문제였다. 텔레비전에나 신문에서 근본 구조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교장은 지금도 화딱지가 났다. 근본 구조라는 말은 우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해결할 의지도 없으며, 사실 해결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은데 자꾸 해결하라고 해서 짜증이 나지만 어쨌든 관심있는 척은 하겠다는 긴 말의 줄인 표현이 아닌가. 학교 재정의 근본 구조상 예산이란 건 쓰다보면 어쩔 수 없이 자꾸 구멍이 생기기 마련이다. 때마침 트집을 잡아 감봉을 할 선생도 딱히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교장은 별 도리없이 커피나 마시면서 여름방학을 보내다가 개학하자마자 잡비를 걷는 공문을 발행하기로 했다. 그 결과로 생겨난 시끄러운 잡음들이 일차적으로 해결된 뒤 1년 동안 교장은 학생회장을 죽도록 미워했고, 그 다음 1년 동안은 아주 조금 후회했다. 기껏해야 몇백만 원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어쨌든 늦여름의 따스함이 가시지 않은 교정에 들어선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자 되도록 잉크를 아끼려고,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흐릿하게 인쇄된 회색 종이 공문을 받아보게 되었다. 공문을 다 돌린 담임은 잊지 말고 사흘 내로 돈을 가져오라며 교실을 나갔다.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모였다. 논의 끝에 한 사람 하숙 보증금만 빼면 모두 편안해진다는 결론이 나왔다. 공책을 찢어 쪽지를 만들고 제비뽑기가 펼쳐졌다. ‘좆됐다고 적힌 쪽지를 집는 학생이 마이너스 돈벼락을 맞는 셈이었다. 기숙사에서 홀로 지내는 여학생이 당첨되었다. 그녀는 책가방 위에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운나쁘게도 기숙사 보증금 액수와 딱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해방된 아이들은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갔다. 청소 당번들이 먼지를 일으킬 때까지 불운한 기숙사 소녀는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다며 엉엉 울면서 소리쳤다.

이걸 도대체 왜 내야 하는 건데? ? 어디다가 쓰는 돈인데?”

학생회장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쪽지를 들고 있었다. 남자애라면 우리집에서 같이 살아도 괜찮은데, 학생회장은 생각했다. 옆반의 부학생회장은 여자애니까 기숙사에서 짐을 가져다가 졸업할 때까지만 같이 살아도 되냐고 물어볼까. 학생회장은 옆반 부학생회장을 찾으러 나갔다. 마침 그녀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학생회장은 기숙사 보증금을 잃게 된 기숙사 소녀에 대해 얘기했다. 부학생회장이 말했다.

바보, 돈을 안 내면 되잖아.”

무슨 돈을 안 내면 되는데?”

걷으라는 돈을 안 내겠다고 하면 되잖아. 어차피 몇천 원씩 걷는 건데 누가 알겠어.”

기숙사 소녀 혼자 내야 되는데?”

돈이 없어서 안 내겠다는데 어쩌겠어? 학교에서 쫓아내겠어?”

부학생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걸레질로 관심을 돌렸다. 그녀는 청소를 아주 좋아했다.

학생회장은 잠시 자신이 기숙사 소녀의 잘 곳을 알아보러 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부학생회장 말대로라면 돈을 안 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기숙사 소녀 스스로 돈이 없다는 말을 하기에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 학생회장은 용기를 냈다. 학생회장은 가방을 멘 채 교무실로 갔다.

교무실 안에도 교실 못지 않게 먼지가 안개처럼 일고 있었다(좀 다른 얘기지만 K담임은 그날 선생들도 돈을 요구하는 공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학생 액수에 비하면 열 배나 되었는데 말이다. 선생들은 살지도 않는 기숙사 보증금을 그날 내야 했던 것이다. K담임은 홧김에 전세 보증금을 빼서 펀드에 집어넣고 자신만의 0.0.0.0에 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학교 건물은 밤 열 시에 모조리 문을 잠가버렸기 때문에, K선생은 막판에 캠퍼스 생활을 포기하고 돈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고, K선생은 끝까지 돈을 내지 않은 채 조용해질 때까지 0.0.0.0에 숨어있을 수 있었다). K담임을 비롯한 선생들은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무도 학생회장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문간에 서 있었지만 누구에게 이 돈의 의미를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비와 쓰레받기를 든 여학생이 먼지를 거느리고 빗자루를 놀리면서 지나쳐갔다. 학생회장은 먼지구름을 피해 살며시 한 걸음 뗐다. 교장이 교무실을 들어섰다.

학생회장, 여기서 뭘 하고 있나?”

교장은 학생회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학생회장은 교장의 손길에 기분이 좋아져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잡비를 꼭 내야만 하는지, 왜 내야만 하는지 말했다. 당시 문간 옆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K담임은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스프링처럼 튀어 일어났다.

K담임은 지금도 학생회장이 입밖에 낸 액수가 기숙사 보증금을 전교생 머리숫자로 쪼갠 금액인지, 아니면 기숙사 보증금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교장이 학생회장의 오른쪽 귓바퀴를 꽉 잡은 채 청소 당번 여학생과 문간 책상 앞에 발끝으로 일어서 있던 K담임을 지나쳐 교무실 한가운데의 통로를 질질 끌고 가는 걸 막기엔 너무 늦었다. 아무도 교장을 막을 수 없었다. 학생회장의 신발이 교무실 바닥을 삐익하며 긁고 지나간 뒤, 교무실과 바로 연결된 교장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가 쾅 닫혔다. 교장이 부임한 이래 교장실 문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게 움직인 건 처음이었다.

교장실 안은 부드러운 결의 검정색 원목 가구로 장식되어 있었다. 학기 중에는 매일 청소를 하기 때문에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구타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학생회장은 교장실로 끌려들어가다 문간에 얼굴을 부딪쳐 피가 조금 났다. 교장은 근육 속에서 치솟는 아드레날린을 주먹에 집중시켜 학생회장의 왼쪽, 오른쪽 얼굴을 강타했다. 그리고 허벅지와 무릎, 명치에 발길질을 날린 다음 머리카락을 쥐어 이마를 원목 책상에 몇 번 찍은 뒤 대리석 상패들이 늘어선 책장으로 다시 학생회장을 내동댕이쳤다. 돌덩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리며 학생회장의 몸을 강타하자 교장은 자신이 어느 정도 권위를 회복한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화가 풀렸으니 지금이야말로 사랑의 매를 들 때였다.

학생회장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대리석 상패 하나가 무릎 위로 떨어져서 몹시 아팠다. 그러나 그는 왜 이렇게 교장이 화가 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몹시 아파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섰다. 비틀거리며 몸을 세우자 교장이 뺨을 후려쳤다. 얼굴에 닿은 것이 주먹인지 손바닥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회장은 얼른 바닥에 머리를 대고 다리를 오그렸다.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교장은 천천히 회초리를 골랐다. 먼저 그의 마음에 든 것은 아이언 골프채였다.

학생들과 선생들이 모두 학교를 떠난 뒤에야 학생회장은 석방되었다. 교장은 자기 사무실을 직접 청소했는데, 부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음날 학생회장은 결석하지 않았다. 지각도 하지 않고 평소 시간에 맞추어 자기 책상 앞에 앉았다. 아이들은 학생회장의 얼굴이 누구의 작품인지 궁금해했다. 학생회장은 고개를 천천히 들자 천장 오른쪽 구석에 매달린 텔레비전의 검은 브라운관이 눈에 들어왔다. 브라운관에 조그맣게 보라색 피멍으로 물든 얼굴이 비쳤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실신했다. 아이들은 앞다투어 학생회장을 메고 양호실로 갔다.

교장은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점심을 먹으러 승용차를 몰고 학교를 비웠다. 아침 아홉 시 반이었다. K담임은 학생회장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교장이 갑자기 사라지고 입장이 난처해진 교감은 당구 큐대를 반으로 잘라 한쪽에 청테이프를 감은 지휘봉을 들고 학교를 한바퀴 돌았다. 아이들은 대충 죽는 시늉을 해주었다(학교 생활 하루 이틀 하는가?). 분위기를 잡는 데 성공한 교감은 교장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었다.

아침 조회가 취소되자 선생들은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학생회장은 정말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병원에 가서야 몸 곳곳에 난 타박상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머리도 이상해졌는지 퇴원하고 집에 있던 텔레비전을 의자로 때려부쉈다고 했다. 정신과 의사는 환경증후군을 의심하고 약물 치료를 시작했다. 선생들이 면회를 가기 싫어했기 때문에 평소에 친하지도 않았던 부학생회장이 학생회장을 보러 가야 했다. 부회장이 병원에 다녀온 뒤 학교에는 소문이 퍼졌다.

텔레비전이 있는 곳에는 절대 가지 않겠대.”

!!!!!”

약물치료에 실패한 정신과 의사는 학생회장을 시골에 지어진 정신병원에 추천했다. 학생회장은 면 붕대로 미이라처럼 타박상을 칭칭 싸매고 검은 안대를 한 채 실려갔다. 시골 정신병원은 학교에서 너무 멀었기 때문에 학생회장의 친구들은 대부분 면회를 가지 못했다(사실 가깝더라도 가고 싶은 아이는 없었던 게 아닌가 하고 K담임은 의심하고 있었다. 이후 K담임의 심복이 될, 여학생 청소반장 경화는 출석 처리와 봉사 점수만 주어졌다면 단체 문병도 했을 거라는 주장을 폈다). 한 달 후 부학생회장은 학생회장에게 받은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메일에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정신병원에서도 인터넷이 된다며 놀라워했다. 사진 속의 학생회장은 혈색이 좋아 보였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학생회장에게 이상한 귀신이 들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 학기가 끝나고 학생회장은 자퇴했다. 그리고 더 먼 병원으로 옮겨 갔다. K담임은 학생회장의 집에 찾아가 보았지만 이사를 가버린 후였다. 학생회장의 사건은 잊혀졌고, 같이 학교에 다닌 아이들도 졸업을 하고 그리고 학생회도 선거도 기숙사 보증금도 함께 망각되었다.

 

K담임은 조심스레 물었다.

꼭 학생회를 하고 싶니?”

승표는 몸을 꼼지락거렸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려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아뇨, 학생회장이 되고 싶은 거라구요.”

그의 어조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K담임은 그 확신을 귓등 파리 미끄러뜨리듯 넘기면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일단, 왜 꼭 학생회장이 되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승표는 몸을 흔들어대며 외쳤다.

왜요! 이 학교 학생은 본인이 원하면 누구나 학생회장이 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요. 왜 자꾸 당연한 걸 물어보시는 거죠?”

승표의 목소리에 담배에 막 불을 붙이려던 옆자리의 선생이 이쪽을 보았다. K담임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그러나 등에 막 식은땀이 흐르기 전에 승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선생님, 저는 꼭 학생회장이 되어야만 해요. 그래야만 해요.”

승표는 허리를 구부려 발밑에 놓인 가방에서 책 한 권을 끄집어냈다. K담임도 그 책을 알고 있었다. 급우들의 놀림에도 불구하고 승표의 책상 위를 항상 지키고 있던 책, 수업시간에도 선생들이 수차례 주의를 주었지만 석고라도 부은 듯 책상에 단단히 붙어 있던 책이었다. 절대로 가방이나 책상 속으로 모습을 감춘 적이 없는 책이었다(덕분에 가끔 식판받이가 되는 수난도 겪었던 책이었다). 승표는 K담임에게 책을 두 손으로 건넸다. 책의 제목은 서울대가 아니라 아이비 리그를 노려라였다.

선생님, 저는 아이비 리그에 가야 해요. 아이비 리그에 가려면 학생회장 경력이 꼭 필요해요. 다른 것도 많이 필요하지만, 학생회장은 꼭 해야 하는 거예요. 꼭요. 선생님, 제발요.”

승표의 진지하고 간절한 눈빛과 목소리에 K담임은 입술까지 마악 도착한 너도 맞아서 고자되고 싶냐는 말을 위장 저편의 심연으로 밀어넣었다.

A고교의 학생회에 얽힌 역사는 이야기해 줄 수 없는 노릇이고, 좀 질질 끌다가 포기시키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교무실에서 K담임은 승표의 어깨를 되도록 다정하게, 그러나 권위가 실리도록 무게가 조절되도록 노력을 실어 다독이면서, 승표 아버지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서울대가 아니라 아이비 리그를 노려라를 소중하게 가방에 집어넣은 승표가 교무실을 나가자 비로소 K담임도 퇴근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K담임은 교무실을 나가기 전 계속 줄담배를 피우는 말라빠진 선생에게 툭 던졌다.

학교는 금연구역이잖습니까. 선생님.”

새 담배를 물면서 담배 선생이 대답했다.

내가 학생으로 보이오?”

그게 아니라 교무실은 금연……

시끄럽군.”

담배 선생은 라이터를 칙 하고 켰다.

교장에게 저놈 얘길 하겠소.”

다음 순간 K선생은 담배 선생이 제일 아끼는 새까만 돌재떨이를 들고 전속력으로 교무실 바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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