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네크로포비아 _ 11

2014.05.23 20:1705.23

일하는 척 하면서 키보드에 무어라고 두들겨 적었다. 무엇을 적고 있는지 스스로 인식 할 수조차 없다. 너무나 신경이 쓰인다. 살짝 고개를 들어 데스크 건너편의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그 또한 무엇인가를 작성하는 듯, 키보드에 머리를 박고 무엇인가 열심히 써 내리고 있었다. 이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숙이려던 찰나에 무언가 강한 시선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홱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분명한 시선교차. 소름이 돋았다. 눈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숙여버리긴 했지만, 저 반대편의 사람이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확실해 진 것이다. 평소라면 텅 비어있어야할 사무실의 공기가 다급함과 불안함으로 가득 들어찼다. 진득한 공포가 느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현실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납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고개를 숙이고 랩탑에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건너편 사람의 눈길이 머리에 꽂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평상시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도 근처에 있었다면 불안함이 덜했을지도 모르지만, 어째서인지 저 사람과 나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출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문득 날카로운 생각이 들었다.

이 방안에 있는 것은 나와 저 사람 뿐. 근처에는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일까지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그 이상한 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어째서. 그런 것은 싫었다. 내게는 나이프가 있다. 그 고양이를 믿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그 고양이가 한 말들이 사실이라면 나는 이 기회에 저 사람을 없애버릴 수 있다.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니, 아니야. 그렇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 거북이는 가짜 거북이다. 그 거북이를 진짜라고 말한 쌍둥이가 말한 것이 진실일리는 없다. 이곳에서 사람을 죽인다 한들, 그 곳으로 돌아가게 되어버린다면 살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윗머리에 건너편 사람의 시선이 내리꽂히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시금 생각에 몰두했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저 사람을 죽여 버린다고 가정한다면, 그 쌍둥이의 말이 거짓이었을 경우 나는 그 어두운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만약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비약이 심하다. 꼭 그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짜증이 치밀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해? 시간은 엄청나게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떨어지는 초침의 무게가 엄청나게 무거웠다. 상식과 의식이 흐려져 갔다.

어차피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아닌가. 저 사람이 없더라도 나는 편하게 살 수 있다. 일하고 잠이 드는 반복적인 삶으로 얼마든지 돌아갈 수가 있는데 어째서 내가 저 알지도 못하는 사람 때문에 망설여야하지? 두 눈동자가 커졌다. 피가 거꾸로 쏠리는 것 같았다. 책상 서랍을 살짝 열어 안을 더듬었다. 있다. 역시 있다. 날카로운 쇠붙이가 대충 싸매둔 A4지 안에서 느껴졌다. 살짝 살짝 칼날을 끄집어내었다.

쉽게 끝날 일이었다. 현실에서 살인범이 될 지언정 그 곳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짜증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버스를 타지 않는 멍청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소매 단에 단검을 숨겼다. 눈에 독기를 품었다. 내가 조용히 의자를 밀고 일어났는데도 건너편의 사람은 날 쳐다보지도 않았다.

저것이 너무나 싫다.

나를 바라보지 않아. 심지어 내가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데도!! 날 보라고 고함을 치고 싶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내리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모르는 척 하지 말고 나를 보란 말이야. 내가 여기에서 너를 죽이려고 하는 데도 나를 보지 않아. 너는 살아있기는 한 거니? 어째서 여기 뻔히 숨 쉬고 있는 나를 보지 않지? 스륵, 손아귀에 단검이 쥐어졌다. 찌르면 끝날 일이었다. 어떻게든 된다. 지금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아아악!!”

무엇인가가 치밀어 올라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엎드려 일에 열중하던 사람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저 눈동자와 수동적인 몸동작이 나를 참을 수 없는 격화로 몰아넣었다. 돌연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몸에 칼날이 내리꽂혀도 저렇게 침착하게 있을 수 있을지 보자. 내가 너를 상처 입혀야만, 그래야만 나를 알아주겠다면 그것도 좋아. 내가 너를 상처 입히는 것도 결국은 하나의 관심이니까!

단도를 높이 치켜 올렸다. 그 아래에서 사람이 무어라고 비명을 지르며 손을 휘두르는 게 보였다. 무슨 소리인지 들리지도 않았다. 귀가 막힌 것처럼 먹먹하게 바람소리만이 들렸다. 어딘가에서 그 고양이가 보고 있다면, 그 유혹하여 나락에 떨어뜨릴 악마에게 네가 이겼노라고 말하고 싶어졌다. 그가 드리운 미끼에 나는 이렇게 저항할 수가 없으니까.

사람이 바닥에 엎드린 채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칼날을 한번 휘둘렀다. 너무 높았다. 저래서야 죽일 수가 없다. 그가 무어라고 입을 벙긋거리는 것을 보았다. 잠시 이성이 돌아온 찰나, 저 입모양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구세요.’

뭐야 이게. 이 상황에서도 저 사람은 나를 몰라.

“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저 지독한 무시에. 상처나 위협마저도 무시하는 저 높은 벽에 절망감이 느껴졌다. 저 사람과는 소통할 수 없다. 아무리 나 자신을 어필하고 말을 걸고 심지어 칼을 치켜 올려도 저 사람에게 나의 존재를 알릴 수는 없다. 이 세계의 모두는 나와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이 현실이라고? 이런 곳이 현실이라면 돌아가고 싶지 않아.

누군가 말을 걸어주고, 누군가는 나를 위협하며, 누군가는 나를 알아줄 수 있는 곳. 이곳이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는 저 사람을 헤칠 수가 없다. 도덕이나 양심 같은 것이 아니라. 저 사람에게 칼을 휘둘러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이프를 바닥에 내던졌다.

챙그랑.

쇳소리가 바닥에 울렸다. 머리가 멍해졌다. 내 발치에서 뒹굴던 사람이 문을 향해 도망쳤다. 내가 아는 한 해골이 해준 말이 생각났다.

도덕을 운운하지는 않겠소. 다만 아가씨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 되.

하지만 아저씨. 나는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는 걸요. 하지만 왠지 이렇게 하고 싶어요. 이러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나요? 차라리 돌아가고 싶어요. 이곳에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나는 외로운 걸. 너무나도 외로워서 어느 누구라도 좋은 걸.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나를 상처 입혀주고 때로는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땅이라면 해가 비치지 않아도 좋은 걸. 꽉 막힌 미로라고 해도 손잡고 가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걸.

 

탁탁탁탁-!

수많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경비들이, 어쩌면 경찰들이 몰려오고 있을 것이다. 한 낮에 근무하는 동료에게 단검을 휘둘렀다. 어디로 가게 될까? 감옥? 정신병원? 어디든 격리되겠지. 어디라고 해서 상관이 있을까? 누구와도 만날 수 없는 것은 여기나 여기 아닌 어디나 마찬가지다.

벌컥 문이 열렸다.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들어올렸다. 경찰들을 앞세운 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들이 무어라고 고함을 질러대었다. 경찰들 중 몇 명은 몽둥이를 들고 있었다. 저것으로 나를 때리려는 생각일까? 그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내 발치에서 뒹굴고 있는 단검을 의식하는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안할 테니 어서 잡아가요.”

그렇게 말했는데도 의심을 풀지 못한다. 살금살금 다가와서는 어떻게 하면 내 양손을 묶을까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뭔가 엄청나게 답답한 기분이 되었다. 양 손을 스스로 앞으로 내밀었다. 수갑을 채우기 좋도록. 경찰들 중 하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앗.”

깜짝 놀랐다. 경찰이 내 손을 꽉 잡아 온 것이었다. 나는 다급히 그의 얼굴을 살폈다. 맙소사. 그는 사람이 아니었다. 고양이였다. 그가 모자 아래에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지금은 일단 절 따라 오십시오. 이런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말입니다.”

“자, 잠시만 지금 뭘 하려고!?”

고양이가 한쪽 입술을 끌어올렸다. 그는 비릿하지만 기분 나쁘게만 여겨지지는 않는 미소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을 구할 겁니다. 이 지리멸렬한 것들로 부터요. 그렇게 결정했으니까요.”

고양이가 내 팔을 확 잡아당겼다. 주위의 사람들이 무어라고 외쳐대는 것이 들렸다. 그는 날 잡아채고는 우악스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가 이끄는 데로 끌려갔다. 그는 창가로 바짝 다가서더니 창문을 확 열어젖혔다. 경찰 몇 명이 다가서려고 하자, 그는 모자를 확 집어던지며 등줄기를 곤두세웠다.

“기야아아아옹!!!”

사람의 목에서 낼 수 없는 괴상한 고음이 울려 퍼졌다. 달려들던 경찰들 몇 명이 자리에 멈추었다. 그가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날 번쩍 안아 올렸다. 아찔한 높이에서 하늘과 지상이 뒤집혔다. 다음 순간 느낀 감각은 날아오를 때의 바로 그것이었다.

사무실이 눈 깜짝 할 새에 멀어지고,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삭풍이 휘몰아쳤다. 나는 고양이의 가슴팍에서 무력한 공주처럼 가만히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반쯤 눈을 뜨고 낑낑거리고 있는 것을 본 고양이가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현실감이 흐려졌다.

“걱정 마십시오.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고양이는 없습니다.”

상승이 극점에 달했다. 이제는 눈을 뜨고 있을 수조차 없었다. 치솟아 오른 것은 으레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이를 꽉 악물고 덮쳐올 낙하감에 대비했다. 하지만,

탁, 하고 경쾌한 발소리가 났다. 살짝 눈을 떠 보니 여전히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고양이는 높은 건물의 꼭대기들을 밟고 곡예 하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새하얗고 생기가 없는 얼굴. 그에게서는 살아있는 자의 따스함이 아니라 시체의 싸늘함이 느껴졌다. 나의 시선을 눈치 챘는지 그가 고개를 숙여왔다.

“그런데 말입니다.”

상투적인 어조로 어두를 땐 그가 가만히 날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그렇게 바보 같은 선택을 할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해 버려서야 이 도시에 남을 수 있다고 해도 범죄자나 정신병자 취급밖에 받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탓. 그가 다시금 고층 빌딩의 꼭대기를 밟고 치솟아 올랐다. 낙하감과 상승감에 조금 익숙해지자 간신히 말문이 열렸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독한 바람이 내 목소리를 죄다 집어삼켰다. 하지만 고양이는 확실히 내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는 바람 속에 섞여 들어온 바다냄새같은 웃음을 머금었다.

“당신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아니라 어느 바보 같은 인간, 혹은 고양이라고 해도 그 상황에서는 죽이거나, 죽이지 않거나를 선택하겠지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위협이라니요.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고양이의 목소리는 마치 대기를 통해 들려오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선명하게 들려왔다. 중천에 뜬 해가 찌릿하게 비추고 있었다. 고양이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리곤 마치, 뛰어오른 일 따위 없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한 빌딩의 옥상에 내려섰다.

“내, 내려줘요!”

두 다리를 바둥거렸다. 고양이는 싸악 하고 표정을 굳히고는 나를 빌딩 꼭대기에 내려주었다. 두 발이 땅에 닫자 그제야 조금 마음이 안정되었고, 무언가를 따지고 들 여유가 생겼다.

“도대체 왜 자꾸 내 일에 참견하는 거죠?”

고양이는 슬쩍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는 아래턱을 치켜 올리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당신에게 가진 관심 때문이지요. 좀 더 쉽게 예를 들자면 말입니다. 신이 인간에게 갖는 관심과 비슷한 겁니다. 신은 이 땅에 지표 없이 인간들을 풀어놓았지요. 하지만 인간들이 싸그리 굶어죽기를 바란 것은 결코 아닐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지요. 당신을 재미있는 상황에.”

“하나도 재미없어요!”

“어쨌거나 흥미로운 상황에 던져두긴 했지만 당신이 최악까지 몰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재미없는 교도소 안에서 하루 종일 철창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본다거나, 온 몸을 동여매는 옷에 칭칭 감겨서 뒤뚱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에요. 그런 것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지요.”

기가 막혔다. 이 고양이가 나를 구한 이유는 겨우 저런 것이었다. 단지 재미있으니까. 내가 잡혀 들어가 버리면 재미가 없으니까. 집에 가고 싶어졌다. 아무도 없는 방안이 그나마 내가 바라는 평화에 제일 가까울 테니까. 하지만 어디인지도 모를 이런 고층빌딩 옥상에서는 좋으나 싫으나 이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됐으니까 집으로 보내 줘요. 아니면 회사로 돌려보내 주던지. 당신 놀이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요.”

“왜 그러십니까? 분명 재미있을 텐데. 당신이 장난감 역이라는 사실만 너무 신경 쓰지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당신의 삶과 두발자국 정도 떨어져 있지요. 당신의 비극이 제게 희극으로 느껴진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저 뻔뻔한 얼굴이 너무나도 싫었다.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싸악 사라지고 있었다. 홱 돌아섰다. 분명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을 것이다. 택시라도 잡아서 집으로 가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잠시만.”

고양이가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돌다가 발이 엇갈렸다.

“앗, 앗!!”

몸의 중심이 크게 기울었다. 바닥이 얼굴을 향해 급히 밀려오던 찰나, 갑자기 끼어든 여윈 어깨에 얼굴을 처박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놀랄 필요 없지 않습니까? 당신은 거대한 사냥개와도 만나고 머리장수와의 말싸움에서도 이긴 여장부중의 여장부. 저는 그저 쓸모없고 연약한 고양이에 불과하지요. 제가 당신을 헤칠 방법은 없습니다.”

홱, 하고 팔을 펼쳐 그를 밀어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엇인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멀쩡한 말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지, 집에 갈 거예요. 더 이상 건드리지 말아요. 비명을 지를 테니까.”

“그렇다면 건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집으로 가신다니 어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횅 하고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머리카락이 한쪽 방향으로 휘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것을 정리할 생각도 못한 체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죠?”

“저는 길고양이입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집에 관한 것은 잘 모르죠. 어쩌면 당신이 머물고자 하고, 거기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곳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을 합니다만.”

고양이는 거기에서 말을 끊고 느릿느릿 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마음에 와 박혔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감과 당신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줄 누군가 아닙니까? 이 도시에 그런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당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일 뿐이지요. 그렇다면 이곳 어디에도 당신의 집은 없을 텐데.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로 돌아간다는 겁니까?”

나는 숨을 느리게 쉬었다. 더 이상 유혹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내 집이요. 재깍재깍 해가 뜨고, 내 안정된 직장과 수입. 그리고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는 내 보금자리로 돌아가겠다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더 이상 상관하지 말아요.”

“제가 아는 것과는 다른 것 같은데요.”

고양이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 상태로 눈을 치켜떠서 나를 바라보았다.

“제가 드린 나이프를 필사적으로 휘두르면서 당신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그렇게나 염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틀리는 법은 결코 없지만 당신이 나이프를 정신 나간 것처럼 휘두를 적에 한 생각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 인 것 같은데요.”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얼굴 근육이 바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살짝 입술을 열었을 때, 고양이는 내 말을 자르듯 말을 이었다.

“사실은 이곳보다 그곳이 더 좋은 거지요?”

“그렇지 않아요!”

반사적으로 빽 하고 고함을 질렀다. 고양이는 돌연 미소를 지었다. 그는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미소 없는 고양이라니 상상도 하기 싫지요. 고양이 없는 미소 역시 생명을 잃을 겁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스스로 생의 자각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 타인이라는 거울에 의해 존재를 자각하곤 하지요. 이 도시에서 당신이 스스로 내쉬는 숨을 느끼며 그것에서 행복을 찾겠다면 그것도 당신의 선택이겠지만 저는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저랑 관계없잖아요. 목까지 올라온 말이 좀처럼 내뱉어지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고양이는 가는 미소로 날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신을 돕지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어째서 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모르는 것 따위 없지요. 아마 당신이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원하신다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잠을 청하세요. 두 번 다시 이상한 나라에 떨어질 일은 없을 겁니다. 당신이 저질렀던 일들은 제가 어떻게든 처리하도록 하죠. 오늘의 당신에 대한 일은 모두가 잊게 될 겁니다.”

“그 말은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요?”

다급하게 물었다. 고양이는 한 손을 들어올렸다.

“당신에게 그런 일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련한 쌍둥이를 속이는 일은 저에게 맡기십시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오늘이 지나면 저나 다른 불쾌한 것들과 마주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다만.”

그는 입가에서 미소를 지웠다. 그는 한 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시선을 나에게 던져왔다.

“이 세계의 누군가가 당신을 반겨 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나 당신 마음이 변했을 때를 생각해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나는 못 박듯이 말했다. 고양이는 내 말에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문을 열어 두겠습니다. 당신이 저와 처음 만난 날 퇴근길의 버스정류장. 그 곳으로 그때와 같은 시간에 와 준다면 저는 당신을 다시 한 번 공격적인 이상한 나라로 모셔다 드리죠. 그 곳이라면 당신의 끝없는 외로움을 조금은 채워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득한 유혹이었다.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고양이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돌렸다. 등 뒤에 와 닫는 시선이 왠지 무겁게 느껴졌다. 두 번 다시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나는 발걸음을 때었다.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 지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있어야만 하니까. 그렇게 정해져 있으므로. 어깨가 바르르 떨렸다. 고양이는 아직도 나를 보고 있을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듯 한 쇠문을 비집어 열고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 그가 아직까지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 문을 닫았다. 텅- 하고 쇠가 부딪히는 무딘 소리가 났다.

30층이 넘는 높은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1층까지 곧바로 내려왔다. 수 없이 많은 층을 지나왔지만 단 한 번도 멈춰 서지 않았다. 누구도 타거나 내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무리도 아니었다. 이 도시에서 내게 익숙한 거리라고는 출근길 밖에 없으니까.

1층에 도착했다. 횅하게 넓은 홀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접수처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나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나 역시 그들과 관계가 없었기에 서둘러 바깥으로 나왔다. 해가 약간 기울어 있었다.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자동차들 중 택시 한 대를 간신히 붙잡았다. 기사는 불친절했다. 집에 가는 길을 설명하고는 시트에 몸을 눕혔다. 누적된 피로에 몸이 침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눈을 감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만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유리창 너머로 변색된 도시가 시간 속을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익숙한 거리가 나타났다. 택시가 회사를 지나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잠잠했다. 고양이가 한 말이 사실이었을까. 하지만 도무지 일을 하러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돌연 고맙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그 말을 내 뱉은 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누구에게? 그 고양이에게? 해골에게?

가만히 입모양을 흉내 내어 보았다.

‘고마워요.’

택시기사는 날 돌아보지도 않았다. 주변 풍경이 미끄러지듯 스쳐 지나갔다. 창문으로 좀 더 다가섰다. 익숙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음습하고 으스스하게 느껴졌던 저 정류장도 햇빛 아래에서는 그저 평범하게 보일 뿐이었다. 고양이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저 곳으로 그 시간에 돌아갈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동반하는가를 온 몸으로 깨달았기 때문에.

하지만 저 정류장에게서 쉽게 눈을 땔 수는 없었다. 문득 결론이 궁금해졌다. 정말 그 정신 나간 삼월 토끼는 가짜 거북이 네의 아가씨를 덮쳤던 걸까? 아무래도 좋은 일들이었지만

눈앞의 무덤덤한 도시보다는 좀 더 흥미를 끌었다. 택시는 어느 틈에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늘이 조금 흐려졌다. 하늘 어디를 찾아보아도 거대한 물고기는 떠다니지 않는다. 안도감이 아니라 공허감이 들었다. 고개를 거세게 흔들었다. 이제 집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 방안에 눕기만 하면 모든 것들은 끝나버릴 것이다.

끽. 택시가 멈췄다. 나는 바로 집 앞에서 내렸다. 해가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다. 느릿느릿 돌로 된 차가운 계단을 올라간다. 낮은 굽의 구두가 저벅거리는 소리를 냈다. 키를 꽂아 돌리고 문을 열었다. 집 냄새가 났다. 마음이 조금 안정되었다.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도 전에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아 보았다. 시트를 털어야 하겠지만, 지금 일단은 이렇게 하고 싶었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머리맡에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자명종 시계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평소보다 약간 삐뚤어진 방향으로 놓여있다.

강박증 같은 것은 아니다. 지금은 가장 정돈된 방 안에서 가만히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손을 뻗어 자명종을 잡고, 살짝 방향을 틀려고 했다.

하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인가가 꽉 붙잡고 있는 것처럼.

째깍, 째깍.

시계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손아귀에 힘을 넣었다. 팔목만 덜덜 떨릴 뿐, 자명종은 엇나간 각도 그대로 움직여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시계 뒤편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팔에 힘을 넣었다. 하지만 내 행동과는 아랑곳 않고 기이한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삐죽, 자명종 시계 위로 토끼의 흰 귀가 솟았다. 그리고 곧이어 머리가 불쑥 올라왔다. 시체 냄새가 무섭도록 역하게 풍겼다. 텅 빈 눈구멍이 나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헙-.”

숨을 들이마셨다. 비명을 지를 수조차 없었다. 토끼는 입을 비죽거렸다. 이빨 사이에 무언가 살점 같은 것이 끼어있었다.

“끝나기 전까지는 벗어날 수 없다니까... 너도, 나도 말이야.”

홱, 하고 몸이 젖혀졌다. 온 몸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움직였다.

“크케케케케케케케케케케!!”

토끼가 미친 듯이 웃으며 온 몸을 뒤틀고 있었다.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더니 창문을 열어 젖혔다. 상체를 반쯤 내밀었다. 바깥바람이 매섭게 휘몰아쳐왔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간신히 유지한 이성이 경고했다.

“어둠이 닥쳐와도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면, 그냥 죽어라. 이봐. 너의 시간에는 의미가 없다고. 째깍째깍. 소리만 듣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가는 것처럼 보이지?”

토끼가 이죽거렸다.

“네 살덩어리는 그저 시간의 쓰레기통일 뿐이야.”

비명을 지르려 했다. 하지만 입마저 열리지 않았다. 내 몸이 거침없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 하고 있었다. 누구, 누구 없어요?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지나가는 행인 하나 없다.

아니, 누군가 있다고 한들 나를 구해줄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죽은 토끼가 내 어깨 위로 껑충 뛰어올라왔다. 그가 내 귓가에 무어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코를 틀어막을 수조차 없었다. 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났다.

“너에겐 시간이 아까워. 그러니까 그냥 죽어라. 뛰어 네 몸을 나락에 처박는 거야.”

지상이 까마득했다. 떨어졌다간 분명히 죽는다. 살고 싶었다. 공포를 넘어선 날카로운 감각이 온 몸을 지배했다. 만약 내가 지금 내 몸을 움직일 수 만 있다면. 이대로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가고 싶었다. 어디로?

나를 지켜줄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사냥개로부터 나를 지켜주었던 해골의 가냘프고 듬직한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다. 짜증이 치밀었다.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요. 돌아가고 싶어요. 그 황폐하고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그러니까 제발 누가 날 좀 도와줘. 이 토끼를 제발 때어내 줘. 제발 이 토끼 좀 때어내 달라고!!! 제발 날 좀 살려줘요!! 누가 날 구해줘!! 구해 달란 말이얏!!

“쉿, 쉿! 저리가, 저리가!!”

토끼가 이상한 각도로 목을 꺾었다.

“뭐냐, 너는 왜 왔어!”

“당신이 묶어놓은 내 장난감 찾으러.”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목을 돌릴 수가 없었다. 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빨라졌다. 토끼가 고개를 비틀었다.

“젠장 시간이 없어. 늦었어, 늦었다고. 꺼져버려 쓸모없는 고양이야. 이대로 끝내버리면 그만이야.”

“그 전에 그 목을 비틀어버리겠어.”

그르르륵...

짐승이 낮게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렸다. 명백한 적대였다. 어깨 위에 올라타 있던 토끼가 부들부들 떠는 것이 느껴졌다.

“네놈이 상관할 일이 아니야!!”

“애초에 내가 상관할 일 같은 건 없지.”

펄쩍. 무엇인가가 뛰어올랐다. 토끼가 내 어깨에서 팔짝 뛰어내려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텅 빈 눈구멍이 카악 하고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내 어깨 위로 올라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한 번 말해보십시오. 그 입으로.”

“흡... 흡!”

호흡이 돌아왔다.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배를 쥐어짜는 느낌으로 외쳤다.

“돌아가고 싶다고요!! 그 정신 나간 세계로요! 살아있는 것 따위 아무것도 없는 무서운 곳이 차라리 여기보단 낫다고! 인정해요!! 인정할게요!! 그러니까 날 구해줘요! 나한테 말을 걸어줘요. 날 위로해줘요. 날 위협해줘요. 내게 관심을 가져줘요. 누군가가 필요해. 외롭다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부끄러웠다.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하지만 말을 멈출 수는 없다고.

“그러니까 날 데려가줘요! 나를 아는 누군가가 있는 곳으로!”

목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크게 외쳤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득한 어둠속으로 물방울이 가라앉았다. 부드러운 무엇인가가 귓가에 닿았다.

“그 외침. 접수했습니다.”

고양이가 머리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온 몸에 힘이 풀렸다. 맙소사. 창을 잡고 버티고 있던 손마저 놓아버렸다. 나락에 온몸이 파묻혔다. 이어지는 무시무시한 추락감. 그리고 모든 것을 찢어놓을 것 같은 바람. 두 눈을 꼭 감았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했다. 그 순간, 기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누군가의 따스한 시선.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누군가의 얼굴도 떠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락이 덮쳐오는 것이 훨씬 빨랐다. 다음 순간 자각할 수 있었다. 밑바닥을 알 수 없는 어둠속에 스스로를 다시금 내던졌음을.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나는 어느 때보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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