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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1

어두운 밤. 날짜대로라면 보름달이 밤하늘에 떠 있어야 했지만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 잔뜩 낀 구름에 달빛이 가려져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날에 한 남자가 숲속을 걷고 있었다. 남자는 술에 취한 듯이 연신 딸꾹질을 해대며 비틀비틀 용케 넘어지지 않고 걷고 있었다.

숲 속은 어둠에 가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웬일인지 밤새든지밤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지 않았고, 오직 바람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의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남자도 술에 취해 있었지만 으스스한 분위기를 감지하고는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평소에는 이런 날 숲속을 거닐 만큼 용기 있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옆 동네에서 같이 술을 마신 친구가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던 권유도 마다하고 이렇게 어두운 숲을 지나 집으로 가려는 까닭은 집에서 무서운 얼굴로 기다릴 마누라 보단 어두운 숲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그였다.

하지만 역시 숲속은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무서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그런 숲처럼 느껴졌고, 당장이라도 수풀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였다. 그런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풀이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그 속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고, 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남자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리에 힘이 풀려 도망가지도 못하고는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눈이 점점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그 무언가의 정체가 밝혀졌다. 정체는 바로 토끼였다. 웬 토끼 한 마리가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놀래 킨 정체가 토끼라고 깨닫자 안심도 되고 웃기기도 하면서도 화가나 토끼에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있는 욕, 없는 욕 자신이 아는 욕이란 욕은 총동원해 가며 토끼에게 분풀이를 했지만 토끼가 알아들을 턱이 있나. 토끼는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욕을 하고 있는 남자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다른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남자는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한참을 그렇게 욕을 하다가 허무해져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대며 일어나더니 자신이 한 짓이 본인도 웃겼는지 피식 웃었다.

그렇게 한 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니 술도 깨고 두려움도 사라져 남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숲을 빠져나왔다. 숲이 끝나고 평원이 나타나자 남자는 다시 집에서 기다릴 마누라의 얼굴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서두르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 길 옆에 누군가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그대로 앉아 꼼짝도 않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이 아직도 술에 취해 헛것이 보이는가 싶어 머리를 흔들어보고 두 손으로 눈도 비벼봤지만 여전히 그의 눈에는 앉아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덩치가 꼭 어린아이 있었고, 이런 시간에 어린아이가 왜 저기에 저러고 있는지 궁금해 하며 바라보았다. 남자는 더 이상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고, 아이의 바로 옆까지 다가가 서 있었지만 아이는 잠을 자고 있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저기 꼬마야?”

그제야 아이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더니 남자를 발견하고는 몸을 튕기듯이 일어서더니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불안한 듯 몸을 떨었다. 어둠속에 가라져 아이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기른 것으로 보아 여자아이인 듯싶었다. 남자는 아이가 두려워하자 당황하며 아이를 안심시킬 요량으로 목소리를 최대한 부드럽게 해서 아이에게 말했다.

“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나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야.”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두려움에 떨며 남자와 시선을 마주치치 못하며 고개를 숙이고 계속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 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남자는 아이가 이렇게 까지 두려워하자 난감해 하면서도 아이가 이런 늦은 시간까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 궁금해 아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꼬마야. 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집에서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빨리 집에 돌아가.”

하지만 아이는 남자의 말에도 그 자리에 서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보름달을 가리고 있던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달빛이 지상을 비추기 시작했고, 어둠에 가려져 있던 아이의 모습이 서서히 들어나기 시작했다. 아이는 신발도 신고 있지 않은 맨발이었고 그래서 흙투성이로 지저분했다. 팔과 다리에는 곳곳에 생체기가 많았고, 커다란 상처도 몇몇 눈에 띄었다. 무릎까지 오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온통 흙 같은 뭔가가 묻어 지저분했다.

머리카락은 붉은 빛이 돌았고 푸석푸석하고 너저분했다. 그리고 이마에도 커다란 상처가 있었고, 작은 입술과 그 입술을 삐져나와 커다란 두 개의 송곳니가..? 다시 구름이 달빛을 가렸고, 아이는 다시 어둠에 가려졌다. 남자는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고, 아이는 이제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남자는 뒷걸음질로 아이에게서 멀어지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뱀.. 뱀파이어..”

남자는 뒷걸음질 치다 그만 길가에 있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남자가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아이는 깜짝 놀라며 남자에게 반발자국 걸어가자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오지 마! 괴물아!”

남자는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훑더니 돌멩이를 주어 아이에게 마구 던졌고, 그중 하나가 아이에 이마에 명중해 아이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부여잡고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남자는 이때다 싶었는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마을 쪽을 향해 언덕을 넘으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자꾸 넘어졌고, 그래도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기어서라도 걸으며 기어코 언덕을 넘어가버렸다.

부여잡은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따뜻한 피가 흘러내려 바닥에 몇 방울이 떨어졌고. 아이는 한참을 그렇게 주자앉아 아픔을 참다가 겨우 일어나 남자가 넘어간 언덕을 쓸쓸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보던 아이는 발걸음을 돌려 아까 그 남자가 나왔던 숲을 향해 천천히 힘없이 걸었다.

그런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뒤들 돌아보았다. 그곳은 아까 남자가 넘어간 언덕이었는데 작은 불빛도 보이고 있었다. 아이는 그 불빛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불빛은 밝아지며 점점 커져갔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같이 커져갔다. 그리고 정체가 들어났다. 언덕에는 마을 사람전체가 나온 것 같은 숫자의 사람들이 각각 횃불과 농사지을 때 쓰던 농기구들을 들고 서로 웅성거리며 언덕을 넘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무리들은 아이를 발견하고는 가던 길을 멈춰 섰고, 웅성거리는 소리도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멈춰진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사람들을 헤집고 튀어나왔다. 아까 언덕으로 도망간 그 남자였다. 그 남자는 손가락으로 아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애야. 저 애가 바로 뱀파이어야!!”

그러자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져갔고, 남자는 가만히 서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소리쳤다.

“뭐해! 당장 죽이지 않고! 이것 봐! 이 상처가 바로 저 뱀파이어가 낸 상처라고! 가만히 두면 무슨 일어날지 몰라!”

남자는 아까 언덕을 기어 넘어가면서 생긴 상처를 마을사람에게 보이며 그렇게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래! 죽이자!”

그 소리를 신호로 사람들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듯이 죽이자는 소리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 둘 씩 환호 비슷한 소리를 내며 아이에게 달려가기 시작했고, 곧 사람들 전체가 아이를 향해 달렸다. 다른 사람에게 뒤처지는 사람들은 바닥에서 둘을 주워 아이를 향해 던지면서 선두무리의 뒤를 쫓았다.

아이는 그 장면을 보면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얼음처럼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이 던지는 돌 하나가 아이의 팔에 맞고 나서야 아이는 숲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힘껏 달리자 마을 사람들로써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고, 그러자 사람들은 약이 올랐는지 욕을 하며 있는 힘껏 아이를 향해 돌을 던졌다.

사람들이 던지는 돌이 하나 둘씩 아이에게 명중했고, 아이는 너무 아파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런데 아이를 쫒아오는 사람들은 지친기색도 없이 무섭게 아이에게 달리고 있었지만 아이는 점점 지쳐서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힘없이 꺾이곤 했다. 아이는 그럴 때에도 용케 넘어지지 않고 달렸지만 사람들이 던진 돌 중 하나가 아이의 다리를 맞혔고 그 충격에 아이는 그만 바닥을 구르며 넘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아이가 넘어지자 환호를 하며 저마다 자신이 던진 돌에 맞아 넘어진 거라며 자랑을 하며 아이에게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이는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고 고개를 이리저리 둘려 어디 숨을 곳이 없나 샅샅이 찾았고, 그러다 수풀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숨으려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다리에 더 이상 힘이 들어가지 않아 도저히 일어설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가까워져만 갔고, 아이는 이제 팔로 기어가며 수풀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수풀에 난 가시들이 아이의 연약한 피부를 찌르고 찢었지만 아이는 꾹 참아가며 수풀 속으로 들어가 숨었고, 조용히 소리를 죽이고 수풀 속에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넘어진 곳 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아이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는 짜증을 내며 화를 냈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람이 숨을 만한 수풀이 있으면 농기구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찌르고 다녔고,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면서 혹시라도 숨소리라도 들려 들킬까봐 숨을 죽였고,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마저 혹시 사람들에게 들릴까 조마조마 하면서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데 수풀 사이로 사람들을 보고 있던 아이의 눈에 아이가 숨은 수풀 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그 남자는 아이가 숨은 수풀 앞까지 걸어와 멈춰서더니 들고 있던 농기구를 높이 들고는 수풀 속을 찌르려고 했다. 아이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제발 농기가구 자신을 비켜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수풀을 향해 농기구를 찌르려고 한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아. 비다.”

정말 그 말대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씩 떨어지더니 곳 주륵주륵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으로 비를 막아가며 짜증을 내더니 곳 하나 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아무도 없었지만, 아이는 여전히 수풀 속에 비를 맞으며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는 눈물이 나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아보려고 했지만 눈치 없는 눈물은 아이의 노력을 무시한 채 비와 함께 아이의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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