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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인지 사람인지 때문에 아까운 내 하루가 다 지나갔다. 내가 말없이 일어서자 아줌마가 고양이를 든 채로 따라왔다.

[아직 못 씻겼는데..]
[제가 좀 있다 샤워할 때 같이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안돼요! 아..내 말은..내 고양이니까 내가 씻기고 싶다고요]

내가 기겁을 해서 갑자기 멈춰 서자 아줌마가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난..뭐 상관없는데~~]
[시끄러워!..아..아줌마에게 한 말이 아니라..그러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줌마를 계단에 내버려두고 난간을 넘어 1층을 향해 뛰어내렸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파카글라스에 담긴 혈액과 아줌마의 저녁인 유리병에 담긴 가공된 피, 그리고 고양이의 밥인 듯한 음식찌꺼기가 납작한 접시에 놓여 있었다.

나는 코를 막고 파카글라스를 들어 입에 부었다. 매번 느끼지만 뱀파이어인데도 입으로 피를 마셔야 하는 건, 정말 미치게 싫다. 어찌나 역한 맛인지, 누가 무슨 맛이냐고 물어보면 한 번 먹어보라고 하고 싶다. 장담컨대 바로 다 뱉어버릴 음식이다. 지금 먹은 피는 특히나 더 구역질이 났다.

[이거..좀 이상해. 약간 상한 거 같은데..유효기간 확인해 본거에요?]
[아가씨..그게..]

아줌마가 눈을 안 맞추는 게 뭔가 이상하다.

[돈도 없고, 혈액도 떨어져서..급한 데로 구한 거라..]
[무슨 핀데요?]

아줌마는 고양이를 탁자에 내려놓고 발끝만 바라본다. 왠지 속이 거북해지는 느낌이 들며 채근했다.

[쥐요]

그 즉시 변기로 달려가 입에 손을 넣고 몽땅 게워냈다. 쥐라니..쥐라니..

[쥐가 문제 있어?]

전혀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한 그의 목소리.

[쥐피가 얼마나 더러운데! 뱀파이어들은 줘도 안 먹어!]
[쥐..맛있는데. 냄새도 안 나고 쫄깃한데다가 잘만 고르면 배에 새끼도 많이 들어서..]  
[악!!!!!!!!!!!!!!!!]

그의 어처구니없고 끔찍한 답변이 귀로 넘실넘실 들어오자 나는 변기를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가 밥을 먹다말고 뛰어왔는지 입가에 피가 그대로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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