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들고는 아줌마에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샤워부터 시켜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방문을 닫자마자 화를 못 이겨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 순간 그는 다시 사람이 되었다. 나의 어떤 부분이 그의 변신을 도모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찝찝한 기분인데, 그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웃으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그만 좀 해! 나체로 그러고 싶어! 내가 여자인거 안 보여?]

그는 그제야 사람 약 오르게 만드는 미소를 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다 봐놓구선 이제와 남녀유별이냐..성격도 참..]
[내 성격이 어때서? 이것부터 입어!]

침대 가에서 집히는 대로 그의 얼굴에 던진 게 백합무늬 파자마였다. 사실 그건 희한한 패션감각을 지닌 스승님의 하사품이고, 아무리 내가 스승님을 좋아해도 차마 입을 수 없어 모셔두기만 했던 거라 새거나 진배없었다.

그는 그 옷을 입은 후, 허락도 없이 침대 위에 앉았는데, 나와 키 차이가 제법 나다보니 파자마가 그의 무릎 가까이 까지 올라가 상당히 우스운 몰골이었다.

[그러니까..고양이로 있으면 내 생각이 들리고, 사람으로 돌아오면 안 들린다 그거지?]
[응]

우리는 알고 보니 나이가 동갑이었다.

[매우 기분 나쁘고 불쾌해]
[왜?]
[마치 발가벗겨진 거 같잖아. 누가 내 머릿속을 들락날락 한다고 상상하면..]
[어쩔 수 없어. 나도 기분 나쁘긴 마찬가지지만 니 생각이 밀려들어오는 걸 어떡하냐. 온갖 잡생각이 파도치듯이 쉬지 않고 달려든다고 생각해봐. 피곤해서 돌아가실 지경이다]

갑자기 똑똑..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로 문이 열리자 그는 알아서 고양이로 탈바꿈했다.

[어머~고양이가 파자마 속에서 꿈틀거리네. 귀여워라]

고개를 들이민 아줌마는 침대가로 다가가 백합무늬 파자마 안에서 고양이를 꺼내 입을 맞췄다. 또다시 내가 속으로 으웩...하자 나도 으웩이긴 마찬가지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세요?]
[저녁 식사 하셔야지요. 시간이 벌써 3시에요]

그 말에 벽을 바라보니 정말 시간이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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