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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음 날. 새벽부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져 내렸다. 둘은 잠에서 깨어나 커다란 나무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비는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고 계속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둘은 하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숲을 헤맸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아마 오후가 될 무렵.

둘은 마을을 발견했다. 숲 속에 숨어서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며 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의했다. 스텐은 마을에 들어가 보자고 소피를 설득했고, 소피는 내키지 않았지만 스텐이 배가 고플 것을 걱정해 결국 마을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 맨 얼굴로 마을에 들어갔다가 마을 사람에게 들키면 큰 일이 생길 것이 분명해 소피는 마을 근처 밭에서 외로이 비를 맞고 있는 허수아비를 발견하고는 그 옷을 벗겨 얼굴을 가린 뒤 마을로 들어갔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마을은 한산해서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소피는 조금 안심 할 수가 있었다.

둘은 하릴없이 마을을 누비다가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가보니 어떤 작은 집 창가에서 파이가 놓여있었다. 방금 만들었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스텐은 파이를 보며 군침을 흘렸다. 둘이 비를 맞으며 파이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창문으로 통해 부엌일을 하던 한 아주머니 눈에도 보였다.

그 아주머니는 둘의 모습이 안타까워 둘을 창가로 불러 파이를 조금 나눠주었다. 스텐은 신이 나서 받은 파이를 허겁지겁 먹었지만, 소피는 받은 파이를 바라만 보다가 소피가 더 먹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파이를 바라보고 있자 소피는 웃으며 자신의 몫까지 스텐에게 주었다.

파이를 준 아주머니는 얼굴을 가린 이상한 아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가 자신도 배가 고플 텐데 자신의 몫까지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건네주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파이를 더 주려고 할 때, 뒤에서 그녀의 남편이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응? 그 애들은 누구야?”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모르는 앤데, 배가고픈지 파이를 바라보고 있어서요.”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알았다는 듯이 시큰둥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볼일을 보려고 돌아서려고 할 때, 문뜩 남자아이의 모습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돌려 아이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본 적이 있는 아이었다. 남자가 창가로 다가가 물었다.

“너. 나무꾼 짐보 아들 스텐 아니니?”

그제야 스텐은 여기가 자신이 아버지인 짐보와 함께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했고, 그리고 이 남자를 본 기억이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 인사를 했다. 한 참을 숲 속에서 헤매 멀리 온 줄 알았는데 사실 그렇게 먼 거리를 걸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남자는 스텐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괜찮았구나. 네 아버지가 뱀파이어에게 살해당했다는 소리를 듣고 걱정했었는데, 무사하니 다행이구나.”

그 소리를 들은 소피는 화들짝 놀랬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짐보는 분명 그 병사들이 죽였는데.. 그리고는 짐보 또한 정말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슬픔에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스텐을 걱정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옆에서 있는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는 이상한 아이를 바라보았다.

천으로 얼굴을 가린 이상한 아이.. 남자는 또 다시 화들짝 놀라며 며칠 전 마을 회의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떠올렸고, 창가에서 손을 뻗어 소피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천을 벗겨버렸다. 소피도 갑작스러운 일에 반응 하지 못했고, 소피의 맨 얼굴이 남자와 그녀의 부인의 눈에 들어왔다. 둘은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뱀파이어다!!”

소피는 도망쳐야 했다. 소피는 어디로 도망쳐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그냥 아무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텐도 소피가 달려가자 당황 하면서 소피의 뒤를 쫓았다. 집에 있던 두 부부는 집 밖으로 나가 큰 소리로 소리치며 뛰어 다녔다.

“뱀파이어가 나타났다! 그 뱀파이어가 우리 마을로 나타났어!”

그러자 비를 피해 집에서 쉬고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고, 남자들과 용기 있는 여자들은 무기로 쓸 집에서 쓰던 농기구를 들고는 집 밖으로 나왔고, 그러다 몇몇 사람들은 나오다가 도망치고 있는 소피를 발견하고는 그 들 또한 소리치며 소피가 있는 위치를 알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를 쫓아 모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피는 얼마 도망치지 못했다.

개울이 소피의 도주로를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로 마을 개울은 수면이 상승했고, 붉은 흙 때문에 얼핏 보면 피처럼 보이는 흙탕물은 무서울 기세로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그 덕에 마을에 유일한 다리는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는지 흔적만 남아 있어 더 이상은 갈 수가 없었다. 소피가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하고 있을 때, 겨우 스텐이 소피를 따라잡았고, 스텐은 숨을 고르며 소피를 불렀다.

“소피.. 괜찮아?”

하지만 소피는 스텐의 말도 듣지 못하고 절망하는 표정으로 세차게 흐르는 개울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은 수십 명이나 모였고, 때를 지어 소피를 둘러 싸버렸다. 더 이상 소피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사람들은 소피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면서 뱀파이어가 맞는다는 것을 확인했고, 뛰어오느라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

“이 못된 뱀파이어!”

마을 사람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 착한 짐보를 죽여?!”
“못 된 것!”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심한 욕으로 소피를 모욕했고, 소피는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하나 같이 다 난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피는 아니라고 반문 하고 싶었지만 절망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성난 군중들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너도 죽여주마!”

성난 마을 사람들은 소피를 붙잡기 위해 포위망을 점점 좁혀 갔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깨달은 스텐은 소피를 가로 막고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안돼요!”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스텐을 보고 소리쳤다.

“안되긴 뭘 안 돼!”
“네 아빠를 죽인 녀석이라고!”
“너도 위험하니까 이리로 와!”

사람들은 스텐을 자신들 틈으로 옮기려고 스텐을 끌어 당겼고 스텐은 소리치며 소피의 곁으로 가려고 발버둥 쳤다.

“아니에요! 소피는 아무 잘못 없어요!”

하지만 성난 관중들에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소피가 붙잡히는 모습을 본 스텐은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겨우 사람들에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스텐은 소피의 곁으로 가려고 달렸다. 사람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려도 스텐은 소피에게 필사적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만 사람들에게 이리 저리 밀쳐진 스텐이 그만 발을 헛디뎌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피를 붙잡는데 정신이 팔려 스텐이 빠진 것도 모르고 있었지만 소피는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물에 빠진 스텐은 발버둥 치며 뭍으로 나오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세찬 물살이 발버둥치는 스텐을 덮쳤고 결국 그대로 물속으로 깊이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소피는 계속 멍한 표정으로 개울을 바라봤지만 스텐의 모습은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소피를 붙잡고 이리 끌고 저리 끌며 점점 개울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소피는 다 포기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또.. 죽었다.. 소중한 사람이.. 또 다시.. 소피는 사람들에게 끌려가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엔.. 짐보가.. 다음엔.. 스텐이.. 어떻게 생긴.. 가족인데.. 어떻게 생긴 행복인데.. 소피의 머릿속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은.. 소피에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소피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은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왜.. 소피의 손톱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왜... 소피는 이를 부득부득 갈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피의 변화를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체 소피를 어디 론가로 계속 끌고 가고 있었다. 소피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갔고 손톱은 어느새 무척 길어져 있었다.

“왜..”

소피가 중얼거렸다.

“왜!!!”

소피는 오열하며 소리쳤고 그제야 사람들은 소피의 변화를 눈치체고는 걸음을 멈췄다.

“용서 못해..”

소피는 중얼거렸다. 소피는 고개를 쳐들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소피의 얼굴은 분노에 일그러져 있었고, 커다랗게 뜬 눈에선 공포가 느껴졌다. 사람들은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고 점점 소피에게서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용서 못해!!”

소피가 갑자기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버렸다. 그 사람은 붉은 피가 흐르는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고, 다른 사람들도 공포를 느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피는 다시 손톱으로 그를 찌르며 마무리 했고, 소피는 피 묻은 얼굴로 다음 목표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또 다시.. 그리고 또 다시.. 그렇게 마을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 한참이 흘렀다. 비는 그쳐 있었고, 소피는 쓰러져 있는 사람들 틈에서 서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소피는 온몸이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소피는 한참을 그렇게 서서 있었다. 소피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바라보다가 식욕을 느끼고 핥아 먹었다. 그러고는 실성한 것처럼 소리 내어 웃으며 어디론 가로 걸었다. 피로 붉어진 소피의 얼굴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눈에는 얼굴에 묻은 피 때문에 붉어진 눈물이 뚝뚝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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