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4.

 

내가 그들에게서 받은 대우 중에서 부당한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과분할 정도였다. 매일 호사스러운 산해진미를 대접받았고, 피곤을 느낄 시에는 언제든 내키는 대로 잠을 자도 좋았다. 조깅을 할 수 있는 헬스 시설도 갖춘 방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나는 분에 넘치는 귀족 대우를 갑작스레 받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호화로움의 이면에는 조금씩 나의 영혼을 갉아먹어가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네크로노미콘의 비밀에 다가가면 갈수록 구체적인 형체를 띄어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물질적인 형체를 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꿈과 영혼 속에서 암시적인 형태를 띄면서 나타날 뿐이었고, 때문에 나의 잠은 항상 악몽에 시달려야만 했다. 내 영혼은 광기의 그림자에 날이 갈수록 잠식되어 갔으며, 그 그림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어느 날에는 질식해 버릴 것 같은 공포감에 젖어서 하루를 보내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검은 옷의 아름다운 마녀는 그 날 이후로 내게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저 내가 책상 우측에 놓인 벨을 눌러서 내가 원하는 음식과 커피를 주문하면 그것을 가져다주기만을 할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피하려는 듯 했고 거의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나는 어느날 밤에 그녀에게 간신히 질문을 던질 만한 용기를 내보았다



대체 제가 이 이상한 저택에 갇히게 된 날이 몇날 며칠이 지난 것이지요? 손톱이 자라는 모양과 달이 일그러지는 모양을 줄곧 관찰해 왔어요. 적어도 일주일은 넘긴 것은 확실해요. 왜 나를 이런 곳에다 가두어 두는 겁니까? 대체 언제쯤 내보내 줄 것이죠?”



그녀는 하현달이 희뿌연 빛을 발하고 있는 아치 모양의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검은 바다와 끝이 없는 수평선, 내가 있는 방에서는 창문 밖의 풍경이라고는 하늘과 바다가 구분이 되지 않는 광대하고 막막한 수평선일 뿐이었다. 이 저택 어디를 가든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런 것뿐이었다. 저택은 높고 가파른 절벽 위에 지어진 것이 분명했다. 가끔 고개를 내밀어 왼편을 바라보면 만의 툭 튀어 나온 부분이 보일 때도 있었고, 그곳으로 고기잡이배가 드나드는 광경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런 것도 희뿌연 안개가 어느 정도 걷히는 정오의 한 때쯤에야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 저택은 세상과는 완전히 고립된 곳이었고, 두 부녀는 마을 사람들과 아무런 접촉도 하지 않는 듯 했다. 그 두 부녀는 하인들 같은 사람들도 거느리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그 넓고 거대한 저택에서 아버지는 2층의 방 두 칸을 작업실로 쓰면서 오로지 점토와 데라코다만을 가지고 자신의 환상과 흉측한 괴물을 조화시키는 싸움에 홀로 몰두하고 있었고, 나는 그보다 한층 위에서 방대한 장서들에 둘러싸여 장서들에 쓰여진 오래된 무덤의 비문(卑門)들의 비문(秘文)을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별들의 배열이 일정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 별들이 질서정연한 연상으로 배열되는 날, 그것이 우리를 마음의 차원에서 다른 우주의 차원으로 인도해줄 거예요. 그리고 어둠속의 존재로만 이해되는 그들이 실재의 존재로 부활하는 것이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이건 아이들 장난 보다 못한 유치한 짓거리에 불과하단 말이야!”



당신 스스로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순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시군요.” 그녀는 나의 분노에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은 채 냉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곧 다시 창문 밖의 달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곧 별들의 모양이 완벽하게 배열될 거에요. 그것은 삼각에서 사각으로, 이제 오각의 천체로 환원되고 있어요. 그 모양이 거꾸로 배열될 때까지, 당신은 그 문서를 인간의 언어로 해독하는 작업을 마쳐야 해요.”



그건 이미 압둘 알하즈레드라는 사람이 이미 했잖소. 아랍어도 인간의 언어가 아니오?”



그건 아직 완전하지 못해요. 알하즈레드도 자신이 미처 이해하지 못했고, 번역해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에이본의 서와 그 책을 대조해보라고 같이 보여주는거예요. 서둘러야 해요. 별들이 위치를 잡아가고 있어요. 물론 당신은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 우리는 의심치 않아요. 우리들이 아니라 그들이 당신을 조종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녀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다시 그 커다란 방에 오직 나 혼자만이 남게 된 것이다. 나는 희뿌연 달빛이 너무나 소름끼치고 혐오스러워서 창문에다 커튼을 쳐버렸다. 그럼에도 달빛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달무리는 날이 지날수록 회오리치는 모양으로 빙글빙글 창밖에서 맴돌고 있었다. 나는 미쳐가고 있는 인간이 나 혼자뿐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라는 느낌을 지워낼 수가 없었다.



그날 밤에 나는 네크로노미콘을 50여장 정도 번역하고 피로에 지쳐서 실신하는 듯이 책상에 쓰러졌다. 나는 깜빡 잠이 들었다. 다시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환영들이 실체를 띄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처음에는 오래된 필름의 영사기에서 깜박이는 빛의 고리 같은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수차례 점멸하고 난 뒤에는 달무리로 변하는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흡수하는 회오리바람의 달무리 같은 것으로. 그리고 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 달무리의 회오리바람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그 후에 내가 보는 것은 어떤 고대 도시의 풍경이다. 항상 비가 내리는 것인지 어느 곳에 가든 물에 흠뻑 젖어 있는 그 고대의 도시는 어느 곳을 가든 축축한 습지대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도시의 주변을 큰 강이 에워싸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어느 곳을 가든 사악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육체가 없는 영혼의 상태(혹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그 도시의 이곳저곳을 내 뜻과는 상관없이 거닐었는데, 도시의 주민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나를 자신들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혹은 이미 그 도시의 사람들에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듯이 보였다. 그들을 사람으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의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얘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보았으므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도시의 거주민들은 디프원이었거나, 거의 디프원에 다가간 데이곤 밀교의 숭배자들이었다. 인스머스라는 어둠의 마을을 장악한 그곳의 그림자속으로 나 자신이 숨어든 것이다. 나는 인간에서 물고기로의 퇴화 양상을 분명하게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 육식성 어류에게서 볼 수 있는 날카로운 이빨, 심해 생물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공허한 어둠이 지배하는 죽은 눈동자, 그리고 처음에는 인간의 것이었겠지만 이제는 완전히 퇴화되어 지느러미와 갈퀴가 붙은 그들의 손과 발, 그리고 무엇보다도 축축하고 징글맞게도 끈적한 피부. 나는 개구리의 음성을 닮은 그들의 개골개골거리는 울음들 속에서 때때로 인간의 메시지를 담은 뜻이 있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쳤다. 물론 그 메시지의 정확한 의미는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이 실재가 아니라 꿈에서 보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꿈속에서 나 자신을 납득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현실적인 삶이 오직 네크로노미콘의 비문에 속박되어 있는 상황에서, 내가 네크로노미콘의 암호들을 해독할수록 그들의 형체도 나의 꿈속에서 점점 더 강렬하고 구체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나 자신이 인간의 정신과 이해력을 그토록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나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나 자신이 이미 외관적으러는 적어도 디프원이 되버린 것이 아닐까.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나의 신체는 디프원의 형상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 축축한 늡지대의 도시에는 어느 곳에도 거울을 볼 수 있는 곳은 없었기에, 나는 나의 정체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어쩌면 나의 정체는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신체없는 환영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이 기이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보고서를 읽고 계신 분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태고의 도시를 생생하게 묘사할 능력이 없다. 그 도시의 건축과 구조물들의 외관이 내가 살아왔고 경험했던 문명의 문화의 그것과는 전혀 비교할 수 없는, 완전한 이질적인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를 꿈의 세계 속에서 그 어둠의 도시로 인도하고, 그 이종의 생명체들과 마주하게 하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네크로노미콘의 지배력이란 사실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내게는 태고의 도시가 전해주는 경이로움에 대한 외경심보다 디프원과 그들을 낳아준 이종의 신 데이곤이 불러오는 공포가 더 구체적인 것이었다. 날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더 뚜렷해지고 더 강해져가고 있었다. 마치 현실의 세계로 곧 뛰쳐나올 준비를 마쳐가는 것처럼.



하현달이 일그러져 가던 그날의 밤에, 태고의 도시를 방황하던 나의 영혼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폭포수의 소리였다. 그리고 나는 어둑한 도심을 아무 목적 없이 배회하거나 혹은 길바닥에 엎드려 있거나, 혹은 - 내가 나의 삶속에서 간혹 그러하는 것처럼 - 저편의 검은 밤하늘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일그러지는 달의 모양과 별들의 배열을 관찰하는 일로 시간을 노닥거리는 디프원들이 갑자기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도 또한 그들 무리 속에 섞여서 영문도 모르는 채 그들이 가는 곳으로 함께 가고 있었다.



나는 내가 왜 이러 혐오스런 무리들 속에 뒤섞여서 그들과 함께 향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산의 언덕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디프원들의 무리가 몸을 잔뜩 웅크리며 물갈퀴가 달린 앞과 뒷발을 사용하여 폴짝폴짝 뛰어가며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아직 진화 과정의 단계에 형성 중인 데이곤 숭배자들이 허우적거리는 몸동작으로 그러나 디프원 그룹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나또한 그들의 그룹 속에 섞여있는 듯 했다. 모두들 물고기와 개구리의 포즈가 뒤섞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필사적이었다. 그제서야 나 자신 또한 이곳에서 일정한 신체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숨이 가팔라 왔고, 가습이 답답해져왔다. 내 발이 땅을 딛는 충격 때문에 흔들리는 몸의 동작을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산언덕의 중턱에 이르렀다.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지는 골짜기였다. 낙뢰와 같은 물소리가 사위 가득히 퍼져가고 있었다. 호수의 중앙에는 작은 섬이 하나 떠올라 있었는데, 그곳에는 흉측한 모양을 한 큰 나무 한그루가 자라 있었다. 아마도 떡갈나무의 일종인 듯 싶었는데, 그토록 흉측하고 요상한 사악함을 풍기는 나무는 지금까지도 본 기억이 없다. 음산한 요기가 뿜어 나오는 그 나무는 잎이 거의 떨어져 메마르고 앙상한 가지를 사방으로 뻗어내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과일 같은 것을 가지 몇 군데에다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있었는데, 자세히 눈여겨보니 그것은 과실이 아니었다. 그 형체는 인간의 유골이었다. 거의 다 썩어 문드러진 인간 유골 수십여 개가 밧줄에 묶여 거기에 주렁주렁 매여 있는 것이었다. 소름끼치는 혐오가 망치로 두개골을 강타하듯 뇌신경을 때려왔다. 그 혐오스런 광경이 디프원과 데이곤 숭배족들에게는 환희로 느껴지는지 그들은 희열에 찬 울음소리로 내면서 골짜기로 우글우글 몰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개구리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그 폭포수의 아래에 큰 동굴이 하나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폭포수의 낙염을 뚫고 무엇인가가 그곳에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인간 포로들을 싣고 오는 다섯 채의 소형 카누였다. 몇 사람의 데이곤 숭배자들이 노를 젓는 배 위에 인간 포로들이 쇠감옥 속에 갇혀 있었다. 모두 벌거벗은 창백한 나신의 남녀들이었다. 남녀의 수는 거의 동수 인 듯하였으나, 여자의 비율이 약간 더 높은 듯이 보였다. 황인종과 흑인, 백인등 거의 모든 인종이 혼성 없이 뒤섞여 있었다. 모두들 겁에 질려 더 이상 저항할 기력조차 상실한 듯한 체념과 낙담의 창백한 표정이었다. 그들을 태운 배가 그 커다란 떡갈나무의 섬 주변을 한 바퀴 빙그르르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그 불쌍한 희생양들의 비참한 처지를 데이곤 숭배자들에게 전시라도 하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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