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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진실의 순간(2)

2014.12.27 12:4912.27

 

20층 높이의 펜트하우스에서 바라본 뉴마드리드의 시내는 그 외곽선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시의 첨탑들과 일정한 간격대로 구획을 가로지르는 정방형의 도로를 넘어 뻗어있는 지평선 너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검은 색뿐이었다. 간간이 연기가 여기저기 지면으로 새어 올라오는 검은 땅만이 둥그런 구형의 도시를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발타자르는 잠시 지평선을 말없이 쳐다보더니 잦아 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남아프리카와 호주는 도시들이 다시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하지만 유럽에서는 여기가 최초이자 최후의 방사능 피난도시야. 그나마 이 정도로 발전하면서 토지를 늘려나간 것은 후안 회장이지. 그 양반 덕에 우리도 있는 거고.

발타자르는 미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미겔은 입술을 내밀고 있었다.

 

“원래 저 곳엔 뭐가 있었지? 미겔 당신은 알아? 내가 이 도시에 들어온 게 열 세살이야. 하수도를 통해서 광장 한가운데 정화조로 들어왔지. 모두가 잡혀갔지만 나만 멀쩡했어. 나만 멀쩡한 인간이었으니까. 내 부모는 대서양을 배로 건너오다가 검은 해안가에서 죽었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뭘 먹으면서 이 도시까지 왔는지 생각도 하기 싫어. 이 도시를 맨 처음 봤을 때, 한 밤중에 저 멀리서 휘황찬란한 빛을 봤을 때의 그 기분, 당신은 그게 뭔지 알어?

 

“널 구해주고 투우사로 키워준 건 나야. 빌 스나이더.

미겔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발타자르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지만 미겔은 이제 발타자르에서 창문의 풍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검게 타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도시 외곽에는 탄화된 목재들이 아직 남아 있었고, 탄화된 목재들은 뉴마드리드 전력사업의 주자원이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탄화된 목재를 가지러 가는 인부들은 모두 뉴마드리드에서 태어나지 못한 자들이었다. 미겔의 시선은 지평선 너머의 추억을 더듬었다.

 

“미국 남부의 꼬마를 스페인 혈통으로 둔갑시켜서 키운 인간은 삼십 년 전, 똑 같은 방법으로 뉴마드리드에 건너 온 멕시코 출신의 치코 데이에로지. 위대한 발타자르 데 베르가가 박살 난 아메리카 대륙의 꼬마난민 중 하나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치코 데이에로 밖에 없어. 내가 아니었으면 넌 지금쯤 침 흘리는 노부인의 변기나 닦고 있었을거다. 아니, 이걸 후안이 알게 되면 넌 스테이크가 되어서 잡아 먹혔을거야.

 

“미겔 루이스가 치코 데이에로라는 걸 아는 사람도 발타자르 뿐이고.

발타자르는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미겔, 당신의 말대로야. 난민은 넘치고 도시는 좁아. 후안은 난민들을 벌레취급하지.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황금박차를 신길 수는 없어. 운명에 의해 선택된 소수가 있을 뿐이지. 선택된 사람들에겐 부과된 의무와 특권이 있는 법이고. 그래서 내가 레벤톤을 원하는 거고 말이야.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미겔은 발타자르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우리 말고도 수많은 난민출신이 이 도시에 있어. 그리고 어차피 이 도시를 만든 사람들도 애초에 난민들이었고.

 

“시대가 바뀌었어. 미겔.

미겔의 고개가 크게 움직였다. 더 이상 자신의 제자와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는 행동이었다. 늙은 프로모터의 입에서 한숨과 대답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아마 다음 주에는 헬기가 도착할 거야. 방사능 폐자재 속에서 발견한 샘플이라 검역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채취하여 인공자궁에서 배양하는 것만 해도 6개월은 걸릴 거라더군.

 

6개월이면 기다릴 수 있어. 미겔.

 

“발타자르. 굳이 홀스타인 잡종이 아닌 투우의 표본을 재생할 이유가 있는 걸까? 어차피 아레나에 모이는 인간들은 자신의 부를 자랑하러 오는 이들이야. 그들은 자기 손가락이 여섯개나 일곱 개가 아니라는 걸 뻐기는데 온 정신이 팔린 인간들이야! 얼룩박이 젖소와 투우의 차이점도 모르는 이들이지. 그들은……솔직히, 자네의 날렵한 엉덩이를 보러 오는 인간들이란 말이야.

 

발타자르는 웃었다.

“맞아 미겔.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지. 소들 머릿속에 칩이 들어가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것도 모를 테지. 안다 해도 귀부인들은 내 엉덩이를 보러 아레나가 메어 터지게 들어올거야.

 

“그런데 왜?

 

“후안의 말마따나, 진실의 순간이 필요해. 방사능 먼지를 뒤집어썼던 피난민 꼬마가 아니라……진짜 황소 앞에서 두려움 없이 칼을 꽂는 마타도르의 혈족이라는 증명 말이야.

 

미겔의 입이 무겁게 열렸다.

“발타자르, 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

 

“나도 알아. 그냥 내가 필요로 하는 거야.

 

“욕심은 고뇌를 가져 올 뿐이야.

미겔의 말에 발타자르는 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웃고 있지도 않았다.

 

 

-5-

 

시간은 평면적인 일과를 타고 입체적으로 흘러갔다. 발타자르가 매 주 한번씩 투우들과 맞서는 동안 미겔이 보장한 시기가 눈깜짝할 새에 코 앞으로 다가왔다. 발타자르는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줄기차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고, 황소의 코앞에서 칼을 어깨 사이로 찔러 넣었다. 그의 발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죽은 황소들은 영원한 장수와 무궁한 발전을 비는 호사가들의 입속으로 알맞게 구워져 들어갔다.

 

“오늘도 좋은 경기였어.

 

“감사합니다. 회장님.

발타자르는 자신이 죽인 황소가 요리되어 나오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두뇌 칩의 영향이 육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몰랐지만(아마 JM바이오의 연구원이 옆에 있다면 알려주었을 것이지만 구태여 알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퍼포먼스가 식도락을 위한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 발타자르의 속내를 아는 지 모르는지, 후안은 열심히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고 있었다. 그들과 같이 합석한 마리아 역시 조용히 애인이 잡은 고기를 먹고 있었다. 발타자르는 이런 자리까지 마리아가 같이 나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회장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기력이 충천했고, 그 활력은 발타자르와 비견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들 주위의 귀빈들이 두 사람을 슬쩍 곁눈질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레나 옆의 레스토랑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최소한 JM의 중견간부나 시 고급공무원, 그의 식솔정도나 들어오는 곳이었다. 하지만 발타자르 데 베르가와 후안 회장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화려한 유명인이었다. 회장은 발타자르 만큼이나 대중의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갈수록 자네의 움직임은 화려해지고 공격적이 되는군.

 

“전 별달리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니야. 달라졌어. 훨씬 강렬한 분위기를 풍긴달까?

후안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손을 피라미드처럼 모았다.

 

“자네 덕이야, 세뇨르 베르가. 그 날 이후 우리 ‘이베리아 시민전선’에 참여하겠다는 유권자들이 부쩍 늘어났지. 지금쯤이면 중간평가를 하자는 목소리를 낼 때가 되었어.

어젯밤 뉴스에서 마리아는 후안 회장의 ‘이베리아 시민전선’정식 출범을 보도한 뒤였다. 마리아와 발타자르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회장님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는 게 사실이죠.

 

“자넨 우리 시민전선의 홍보담당이 될 걸세. 열매는 과수원에서 일한 사람이 가져가는 거야. 그게 자연의 순리지.

 

“하지만 회장님, 전 그저 투우사일 뿐이고 정치는……”

 

“정치는 자네 같은 사람이 하는 거야! 위대한 스페인 사나이. 무적불패의 마타도르! 저열한 난민들이 들끓는 이 도시에서 자네야말로 순수한 희망이 될 걸세! 마리아와의 결혼! 그야말로 엘 시드와 히메나의 결혼이겠지!

 

“난민이 시민보다 많아지는 상황이라는데 괜찮겠습니까?

후안이 마지막 말을 덧붙이지만 않았어도 발타자르는 난민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터였다. 그런 연인의 기분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마리아가 회장 대신 발타자르에게 답했다.

 

“도시의 발전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빨라요. 기존의 시민들로 충당할 수 있는 이상의 인력이 필요할거에요.

 

“그냥 일 없이 다니는 난민들도 많던데 말이야. 내 사랑.

아레나를 벗어나면 볼 수 있는 것이 난민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데로 몰려다니며 수십 가닥, 혹은 손가락이 나지 않은 조막손을 뻗으며 사람들에게 돈과 음식을 구걸했다. 아레나의 VIP들은 모두 손사래를 흔들며 자신의 마차를 향해 가는 것이 일쑤였지만 마타도르들과 피카도르들은 그들에게 어느 정도씩 돈을 주는 것이 상례였다. 후안 회장이 발타자르의 말을 받았다.

 

“일자리가 없는 난민은 더 이상 없을 걸세. 발전용량이 늘어나는 만큼 난민 수용소를 더 확충하고, JM에서 마땅한 직업을 줄 거야. 그들은 우리 유권자가 되겠지. 그렇지 못한 자들에게는 함부로 특혜를 줄 수 없어. 추방할 거야. 이 도시는 엄연한 스페인 사람의 도시야. 스페인을 위해 봉사할 사람들에게만 특혜를 주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세뇨르 베르가?

발타자르는 자신의 옆에서 시중을 들던 종업원이 멈칫하더니 눈동자가 슬쩍 후안과 발타자르를 오가는 것을 감지했다. 후안 회장의 뒤에 나 있는 식당 입구 위,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걸려있는 주의 문구가 투우사의 눈에 들어왔다.

‘뉴마드리드 시민 외 입장금지

표지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조심스레 말했다.

 

“물론입니다. 회장님.

회장의 호기어린 미소가 다시 떠올랐다.

 

“자네 뭔가 새로운 걸 계획하고 있다더군. 히메네스 양이 그러던데……어때 잘 되어가나?

갑자기 고기가 목에 탁 하니 걸렸다. 발타자르가 흠칫 놀라며 마리아를 돌아보았다. 마리아는 어깨를 들썩거리며 천연덕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발타자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자 후안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투우사의 용기만큼 중요한 덕목이 세상에 어디 있겠나.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기지. 하지만 알아두게. 자네의 목숨과 몸뚱어리는 뉴마드리드와 JM의 재산이야. 스페인의 고귀한 혈통을 조심해서 다루게.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 하지 말라고. 이건 명령이야.

 

“예, 회장님.

 

“좋아. 이런 식당에서 난민 찌꺼기들을 안 보는 날도 머지않았어.

후안 회장은 냅킨으로 거칠게 입을 닦더니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타자르는 후안이 식당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리다 옆의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마리아 역시 빤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내의 말투에 가시가 돋쳤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마리아. 이런 이야기까지 후안에게 하는 거야?

 

“당신이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발타자르.

마리아의 표정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뻗어 발타자르를 안으려고 했지만, 발타자르는 두 손을 어깨 위로 들면서 포옹을 거부했다. 마리아는 어쩔 수 없는 아이를 본다는 듯 슬쩍 눈살을 찌푸렸다.

 

“다치더라도 내 선택이야. 마리아, 왜 이러는거야?

 

“미겔에게서 말을 들었어. 지금 하는 일은……”

 

“이렇게 계속 살라는 말이야? 난 마타도르야! 피에로를 원해? 단추 하나 누르면 엎어지는 소들이 대체 저 경기장에 왜 필요한 거야? 난 꼭두각시야?

행여 다른 이들이 들을 까 한껏 낮춘 발타자르의 목소리는 짐승의 으르렁댐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리아의 얼굴 표정은 눈썹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당신은 우리 시의 상징이야. 회장님의 말처럼 우린 불굴의 상징이 필요해.

 

“난 부서지지 않아. 난 진실하고 싶어! 난 가짜가 아니야. 당신은 그 심정이 뭔지 알아?

 

“내가 부탁해도 안 되는 거야?

 

“당신은 날 모르는 건가?

 

“내가 당신을 모르는 걸까, 당신이 나를 모르는 걸까?

발타자르와 마리아는 말없이 서로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6-

 

“현재 시청광장에는 5천명 추산의 불법체류난민들이 모여 ‘이베리아 시민전선’의 백색테러에 대해 항의하는 중입니다. 지난 일주일간 치안대에 의해 끌려나가 추방된 난민들의 수는 점점 급증하고 있으며……”

펜트하우스의 와이드 패널에서는 마리아의 청아한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의 뉴스를 쏟아내고 있었다. 미겔은 흘끗 시내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빛나는 물결들이 불규칙한 운동을 하면서 이합집산을 하고 있었다. 시위자들과 치안대의 숨바꼭질 같았다. 집주인 발타자르는 계단에 앉아 물끄러미 와이드패널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겔이 입맛을 다시더니 먼저 말을 꺼냈다.

 

JM에 들려서 성체를 확인했어. 레벤톤인지 뭔지 알 도리는 없다만, 진짜 토로(torro)가 맞아. 소가 아니라 야수야. 레벤톤이라고 불러도 될 거야. 어설픈 마타도르를 죽이기 딱 알맞게 생겼더군. 끔찍한 뿔하며 어깨하며.

 

“좋군.

 

“왜 그래? 겁먹은 거야? 그렇게 달라고 소리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비루먹은 말상인가?

미겔은 표정 없는 발타자르를 보고는 주름진 얼굴을 바에 내려놓았다. 풀어진 얼굴이 피곤한 불독처럼 보였다.

 

“일단 아레나에 넣어뒀어. 그렇다고 내일 바로 경기를 하자는 건 아냐. 자네가 한 번 보고 결정하게.

 

“미겔.

발타자르는 마리아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프로모터를 불렀다. 미겔 역시 천천히 다가와 발타자르 옆에 앉았다. 오늘따라 마리아는 새카만 정장을 입고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마치 상복과 같은 의상이었다. 발타자르는 그 옷이 자신을 위한 것임을 직감했다.

 

“말해 봐, 발타자르.

 

“정말 내가 하는 일이 미련한 짓거리일까? 그냥 두뇌제어가 되는 소들을 쓰러트리면서 사는 게 제대로 된 삶일까? 그게 지금 내 주위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일까?

 

“주위 사람들을 생각하지 말고 널 위해 살라고 말하고 싶다만……”

미겔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 일은 위험해.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를 생각해 봐. 진짜 토로를 만나건 가짜 투우를 만나건 마타도르가 갈 수 있는 최고의 정점이 지금 이 상태야. 발타자르, 여기서 네가 더 모험한다 해도 네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하지만 잃을 것은 한도 끝도 없겠지.

 

“미겔.

 

“널 잃고 싶지 않아. 발타자르. 더군다나 이렇게 뒤숭숭한 시기에 그런 일을 자청해서 할 필요가 없어. 자네가 죽기라도 하면 바로 혼란일거야.

미겔의 말을 듣던 발타자르가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혼란이라니. 내가 무슨 왕이라도 된단 말이야?

 

“다음 소식입니다. 속보입니다. 현재 뉴마드리드 시 치안대가 후안 메데이로스 회장 저택과 사무실, JM그룹 본사를 압수, 수색하고 있습니다.

순간, 두 사내의 대화가 끊어지고 거의 동시에 고개가 와이드 패널을 향해 돌아갔다. 마리아는 명징한 말투로 또박또박 뉴스를 보도하고 있었는데, 웬지 모르게 여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리아의 멘트는 계속 이어졌다.

 

“메데이로스 회장은 현재 살해 및 시체유기, 사기 및 조직범죄 구성의 죄명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안 메레이로스 회장의 가장 큰 죄목은 난민살해죄로써 그 내용은……”

 

“맙소사.

미겔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발타자르는 입을 벌린 채 멍하니 화면만을 응시할 따름이었다.

 

“탄화목재와 함께 난민들을 바이오메스 연료로 사용했음이 정황조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이번 사건은 저희 JM미디어의 단독 촬영영상이 그 제보가 되었는데요. 저희는 몇 시간 전 이미 시 치안대에 이 자료를 넘겨주었습니다. 잔혹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아이들의 시청을 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부터 나오는 장면은 매번 죽음과 마주하는 발타자르도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시 외곽에서 나온 탄화목재와 함께 죽은 듯 누워있는 수 많은 사람이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끝없이 JM발전소의 내부로 실려 들어가는 광경이었다. 미겔은 자기도 모르게 잊고 있던 성호를 그었다.

“영문도 모르는 난민들이 지원소로 들어갑니다. 이들은 몇 분 후 강력한 수면가스를 맞은 뒤 대규모 생체전지실로 들어가 시의 전력을 생산합니다. 40일간의 발전용량이 끝나면 이들은 공장 내부에서 장기가 적출된 채 미생물 발효과정을 거쳐 탄화목재와 함께 발화됩니다. 장기들은 재 가공되어 발효청정균의 먹이가 되어 도시 정화시설을 운용하는 데 쓰이게 되며...

환하게 웃던 사람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데드마스크와 같은 무표정으로 바뀌며 거대한 JM기업 본사의 지하로 실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광경은 거대한 저수조에 둥둥 떠 있는 사람들의 하얀 몸뚱어리들이었다. 발타자르는 지금 보는 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성모님, 마리아 이게 무슨……”

그때였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광장의 건너편에서 엄청난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JM그룹의 본사가 있는 부근, 발전소 부근이었다. 그와 동시에 발전소를 기점으로 암흑이 마치 물에 떨어진 잉크처럼 삽시간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벽면에 붙은 와이드스크린 화면이 지직대더니 더 이상 뉴스가 나오지 않았고, 급기야는 펜트하우스의 모든 조명이 일순간에 나가버렸다. 몇 초 뒤,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비상전원이 들어왔지만 끊어진 통신망은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미겔이 비틀거리며 창가로 다시 다가갔다.

 

“맙소사 발타자르.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있어.

 

“정전이니까 그렇겠지. 마리아, 마리아를 찾아봐야겠어! 지금 무슨 짓을 벌인거야?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불을 지르고 있다고!

미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발타자르는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붙였다. 여기저기 도시로 횃불을 든 것 같은 사람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 외곽, 난민구역부터 시작된 듯 보이는 불꽃의 행렬이 여기저기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명확하게 그 불꽃은 시내 중심부를 향해 밀려오는 중이었다. 폭동이었다.

 

“나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올게.

 

“위험해, 미겔!

 

“걱정하지마, 난 난민이었잖아.

넥타이를 풀어헤친 미겔이 재빨리 문을 열어젖히고는 바깥으로 나서다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발타자르도 그를 쳐다보더니만 문 앞을 보고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자리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마리아가 숨을 헐떡이며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발타자르를 보더니 싱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정신을 수습한 발타자르가 입을 먼저 열었다.

 

“무슨 일이야? 어떻게 여기까지……이렇게 빨리?

 

“녹화해 놓은 걸 틀고 왔어. 발타자르. 여기서 나가. 같이 뉴마드리드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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