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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진실의 순간 (1)

2014.12.19 01:0612.19

바에 앉아 있던 늙은 프로모터는 내키지 않는 말을 억지로 꺼내야 한다는 듯 술잔을 입에서 떼더니 입술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앉아 있던 준수한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잘 생긴 사내는 문득 자신을 새삼스레 쳐다보는 오래된 지기의 시선을 받자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레벤톤의 DNA를 찾아냈어.

 

120층 높이 ‘그라나다 아시엔다’의 펜트하우스에 마련된 바(bar) 360도 전체가 유리로 둘러싸인 뉴마드리드 최고의 전망대였다. 하지만 미겔은 창 밖의 광경은 하도 봐서 넌더리가 난다는 듯 창을 등진 채 술잔을 손으로 까닥거리더니 자신의 옆에 있는 투우사에게 방금 한 이야기를 반복했다.

 

“레벤톤의 뼈를 멕시코에서 공수해오는 중이라고 했어. 연락이 왔어.

 

발타자르의 눈이 둥그레지는가 싶더니 곧 투우사의 입은 양옆으로 히죽 벌어졌다. 발타자르는 굳이 감정을 숨기려 들지 않았다.

 

“그 ‘레벤톤 말하는 거 맞지?

 

미겔은 눈살을 찌푸리며 술잔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동차를 몰겠다고 떼쓰는 어린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그래, 그 레벤톤 말이야. 위대한 투우사 펠릭스 구스만을 죽인 그 레벤톤.

 

“언제쯤 출전이 가능한 거지?

 

미겔은 딱 소리가 나게 술잔을 바에 내려놓았다. 흠칫 놀라는 발타자르를 바라보는 미겔의 눈초리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어느 무너져가는 식당에서 얻어온 꼬리뼈인지 알 바 아니야. 1940년대에 활약하던 황소의 뼈다귀가 방사능 천지인 멕시코 흙더미 어디에서 나왔는지 누가 알겠나? 그게 레벤톤이라면 내 할아버지의 뼈가 바티칸에 있다고 믿는 게 낫지! 만에 하나, 그게 진짜 레벤톤의 뼈라면 더 큰 문제고.

 

 “무슨 소리야, 미겔?

미겔은 슬쩍 발타자르를 노려보더니 술잔을 내려놓은 손을 방아쇠처럼 당겨 자신이 총애하는 투우사의 콧잔등을 노렸다.

 

“이 일은 하지 말았어야 해. 그게 진짜 레벤톤, 아니 토로(torro)라면 자네는 일 분도 못 버티고 모랫바닥에 내장을 쏟을 거야. 500kg에 가까운 진짜배기 황소가 덤벼드는 걸 본 적이 있어? 온순한 가축이 지옥에서 끌려 나온 야수가 되어 모랫바닥을 뛰어다니는 걸 본 적이 있느냐고.

 

“자넨 있어?

 

“본적은 없어도 그게 뭔지는 알아.

 

“프로모터가 마타도르보다 야수에 대해 잘 안다는 건가?

발타자르의 눈이 슬쩍 반달처럼 올라가며 하얀 이를 드러내었다. 모래가 휘날리는 아레나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보이던 그의 미소엔 격식을 모르는 아이와 요조숙녀의 몸매를 훑어보는 바람둥이가 같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미겔 루이스는 사내의 미소를 빤히 보더니 무겁게 도리질쳤다.

 

“야수? 자넨 아무것도 몰라.

 

“치코, 나한테서 무슨 대답을 듣기를 원하는 건데?

발타자르의 눈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입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부조로 새겨진 그리스 신화의 두상을 닮은 준수한 청년의 구릿빛 얼굴에 진지함이 돌아오자 미겔 루이스는 아까보다 더욱 험상궂은 얼굴이 되었다. 발타자르 데 베르가, 뉴마드리드 최고의 투우사는 자신의 프로모터에게 말했다.

 

“아레나에 들어선 순간부터 원했던 거야. 아니, 마타도르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라고 해야 옳은 말이겠지. 칩이 없는 황소 말이야.

 

“그게 그렇게 중요해? 자네의 고집은 미친 광대질로 끝날 거야.

 

“난 뉴마드리드 최고의 광대야. 난 토로(torro)가 필요해. 스페인에 남아있는 황소의 유전자는 없어. 알잖아? 멕시코까지 보낸 건 마지막 도박이었다고.

 

미겔은 발타자르를 노려보던 눈을 돌려 바 위의 천장과 그 옆의 장식장을 수놓은 수많은 금빛 편액과 트로피들을 훑어보았다. 위대한 투우사, 이 달의 투우사. 올해의 명경기, 최고의 퍼포먼스, 수 많은 제목의 글귀와 수많은 형상의 조소가 놓여있었지만 맨 아래 적혀있는 이름은 동일한 인물의 것이었다. 발타자르 데 베르가. 마타도르 중의 마타도르, JM의 화신과 같은 사나이. 프로모터 미겔 루이스 최고의 작품.

그리고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미겔의 눈썹이 완만한 각도를 만들며 다시 수평에 가깝게 돌아왔다. 사내는 고개를 흔들더니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섰다. 미겔은 아까보다 훨씬 우호적으로 변한 목소리를 바에 남겼다.

 

“최고의 광대에게 최고의 프로모터가 한 마디 하지. 절대로 그 놈에게 등을 보이지마, 그랬다간 넌 그 날로 죽을 거야. 마리아가 울면서 탑 뉴스로 보도할거다. 아레나의 모래 위에 쏟아지는 네 피를 보면서 후회하게 될 거고.

 

데킬라 한 병을 모두 비웠지만, 미겔은 보폭 하나 변하지 않은 걸음걸이로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발타자르는 빤히 그의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고,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미겔은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그의 친애하는 투우사를 흘끗 쳐다보며 한마디 던지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다시는 치코라고 다시는 부르지도 말고. 알겠어. ?

 

“해 줄 거라고 믿겠어. 미겔.

발타자르의 술잔이 인사처럼 하늘로 들렸고, 바의 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바에 남은 것은 투우사 하나뿐이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비행선의 불빛이 석양을 대신하여 서서히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일몰시간에 맞춰 JM발전소에서 만들어지는 전력이 빛의 형태로 변하며 중심부부터 완벽한 동심원의 형태로 확장되고 있었다. 곧 시커먼 도시의 외곽구역에 도달한 빛살은 그 성장을 멈추었다. ‘해바라기의 도시 뉴마드리드의 별명은 밤에 그 진가를 발했다. 창문 근처로 흐느적대며 걸어간 발타자르는 자신의 발 아래에서 밤의 거리로 탈바꿈하는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사내의 힘에서 피식 웃음이 올라왔다.

 

“빌이라니.

 

-2-

 

 분홍과 노란색으로 양면이 덧대어진 카포테(투우를 흥분시키는 양면의 색이 다른 천)가 풍차처럼 아레나 안에서 돌아갔다. 새로 들어온 노비예로(Novillero: 견습투우사)는 자신의 어깨보다 훨씬 넓은 카포테를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리며 투우를 도발하고 있었고, 투우는 가볍게 달려들며 분홍과 노란 색의 휘장을 젖혀올렸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파도소리처럼 여기저기서 들끓었다. 미겔이 좋은 노비예로를 데려왔군. 발타자르는 조각 같은 구릿빛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얼굴이 아레나의 와이드 스크린에 잡히자 잦아들던 환호성이 갑자기 기름뿌린 장작불처럼 확 하니 타올랐다. 발타자르 데 베르가는 손을 흔들었다.

 

“오늘 소가 좋아!

 

엔리케가 말에 탄 채로 발타자르에게 인사를 했다. 가장 노련한 피카도르(Picador: 창잡이)중 하나인 엔리케의 입에는 알루미늄으로 된 앞니가 번쩍이고 있었다. 발타자르 역시 사내의 웃음에 이를 내보였다.

 

“저 노비예로는 누구야? 저렇게 카포테를 흔드는 미친 놈을 본 적이 없는데!

 

“세비야에서 데려온 녀석이야! 물건이지! 뉴마드리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 만나는 여자가 세 명이더구먼!

 

“세비야?

이미 도시라고 불리기에 민망한 동네였다. 그리고 그 곳은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난 곳이기도 했고……여전히 금지구역이었다. 엔리케는 발타자르의 의도를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예의 그 웃음을 지어보였다. 발타자르도 따라 웃었다.

 

“최근에 너무 난민들이 많이 들어오는군 그래. 저 놈 팔다리는 제대로 붙어 있던가?

 

“잡초 사이에서도 장미는 피어나는 법이야, 마타도르!

재빨리 노비예로가 황소의 앞에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나팔이 우렁차게 다음 차례를 가리키며 아레나를 울렸다. 엔리케는 재빨리 말을 몰고 단창을 쥔 채로 흥분해 있는 투우를 향해 튀어나갔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투우는 고개를 들어 말을 타고 달려오는 창잡이를 쳐다보았다. 짐승 특유의 경계심을 발휘하며 투우는 투레질을 쳤다. 하지만 엔리케라면 아무 문제없이 원하는 곳에 창을 꽃을 것이다. 위험하지 않으니까. 발타자르는 먼지투성이 아레나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JM의 비행선이 날고 있었다. 거대한 풍선 아래 붙어있는 대형화면에서 붉은 글자가 선명하게 점멸되며 땅의 사내들에게 계시를 내리고 있었다.

 

‘뉴마드리드, 이베리아의 혼이여, 축복받은 땅이여, 위대한 전통이여. 그대는 이 땅의 자랑이어라.

 

늘 화창한 뉴마드리드의 하늘에 비는 오지 않았다. 태풍이 물려올 때에도, 어두운 구름이 몰아닥치며 검은 비를 뿌려댈 때에도 늘 천사 같은 날개를 지닌 비행선들이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위대한 도시를 자장(磁場)의 방패로 보호하고 있었다. 마치 신의 계시를 지상에 대언하는 천사들의 군집인 양, 수백 대의 은빛 비행선이 소리 없이 허공에 떠서 같은 글자들을 반복해서 내 보이고 있었다. 비행선 옆에서는 마천루들이 거울의 숲을 만들고 있었다. 아레나는 거대한 숲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사원이었다.

아레나는 ‘화염의 날’이 오기 전 유행했던 양식으로 적벽돌을 하나씩 붙여서 올려 놓은 유일한 건축물이었고, 모든 것이 유리로 만들어진 뉴마드리드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전적인 잔재였다. 아레나는 특별했다. 유려한 건축물에 고풍스러운 옷을 지어 입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만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살찐 귀부인과 늙수그레한 부자들, 그리고 오직 이베리아인의 피와 혼을 담은 마타도르만이 함께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발타자르의 입술 한쪽이 묘하게 들렸다.

 

“위대한 발타자르 데 베르가!

순간, 우렁찬 팡파레가 아레나를 진동시켰다. 그제야 시선을 돌린 발타자르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수많은 대중의 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을 보았다. 옛 무어인들은 사람의 시선에 힘이 있다고 믿었다고 했지. 발타자르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었다. 수 많은 사람의 눈빛이 그의 가슴에 뜨거움을 선사하고, 그의 손과 발에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 때 어린 보조원이 발타자르의 뮬레타(붉은 천)을 들고 뛰어와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위대한 발타자르! 전 당신 팬이에요!

 반사적으로 발타자르는 천진한 소년의 얼굴대신, 그의 뮬레타를 잡고 있는 소년의 일곱 갈래 손가락을 먼저 쳐다보았다. 순간 소년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공포와 죄책감이 물들어 올라왔다. 발타자르는 소년의 손에서 뮬레타를 받고 싱긋 이를 드러내 보였다.

 

“고맙다, 어린 친구.

  발타자르는 얼굴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천, 뮬레타를 한 손에 들고 천천히 아레나를 향해 걸어나왔다. 사람들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는 것이 발타자르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노비예로와 피카도르에게 던져진 찬사는 일순간에 날려버릴 만큼 강렬한 함성이 벽돌로 지어진 아레나를 징징 울렸다. 어깨가 피로 흠뻑 젖은 투우가 사방에서 울려 나오는 함성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발타자르의 온 몸을 휘감은 금색과 은색, 적색의 갑옷이 움직일 때마다 햇빛이 그의 몸에 반사되어 마치 신이 아레나의 모래 위에 강림한 듯싶었다. 관중들의 손이 모두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발타자르는 그를 경배하는 신도들을 향해 모자를 던지고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붉은 물레타가 방황하는 야수의 눈 앞에 펼쳐졌다. 언제나 그렇듯, 뉴마드리드의 기사, 발타자르 데 베르가의 움직임은 바람같이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간결했다. 투우는 마치 발타자르의 신호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재빨리 투우사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전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관중들의 환호가 비명을 바뀌는 순간, 뮬레타는 재빨리 발타자르의 등 뒤로 돌아갔다. 황소는 신호를 기다렸다는 듯 머리를 급격하게 틀며 발타자르의 등 뒤에서 나풀대는 뮬레타를 향해 돌진했고, 붉은 천은 황소의 머리를 휘감으며 허공에 휘날렸다.

 발타자르의 허리는 유연하게 돌아가며 돌진하는 황소를 보내주었다. 투우사의 두 다리는 굳건하게 아레나를 밟은 채 흐트러지지 않았고, 붉은 뮬레타는 새파란 하늘 아래서 달려가는 황소를 배웅하듯 위로 들린 채였다.

 

“브라보!

  첫 번째 합이 지나기도 전에 아가씨들이 던지는 장미꽃이 아레나 안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발타자르의 서글서글하던 눈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날카로운 칼처럼 버려져 있었고, 사내의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아레나의 와이드스크린에 살아있는 신, 마타도르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그려지자 환호성이 일순간 잦아들며 오오 하는 경외감 섞인 신음이 관중석에서 일제히 새어 나왔다. 발타자르의 물레타가 다시 회전하자, 황소의 뿔이 성난 파도처럼 붉은 대지를 향해 뛰어들었다. 이번에도 발타자르의 몸이 가볍게 황소를 보내며 성난 파도를 희롱했다.

 

“언제 봐도 대단해요. 저건 춤이죠. 발타자르는 타고난 사냥꾼이에요.

 

“타고났지.

격벽 근처에서 대기하던 엔리케가 미겔 루이스와 함께 발타자르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얼룩배기 황소가 붉은 장미를 뿔로 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붉은 꽃잎은 낭창한 금빛 뿌리와 은색 가지를 흔들며 꽃잎을 탐하는 황소의 뿔을 스치며 피해나갔다. 느껴지지 않는 미풍에 흔들리는 장미였다.

 

“저 정도면 타고난 재능이지. 진짜배기하고 붙어도 되는 진짜 투우사.

발타자르의 오른손에 얇은 세검이 들리자, 관중들의 환호는 절정에 달했다. 왼손에 잡은 막대 달린 붉은 천이 천천히 황소의 눈을 향해 다가갔고, 오른손은 활시위를 당기듯 한껏 뒤로 돌아가며 새파랗게 벼려진 칼날이 조각 같은 투우사의 얼굴과 평행이 되게 놓였다. 화려한 무대의 마지막을 위한 마지막 한 순간을 위한 찰나였다. 황소는 온 몸에 피를 흘리면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위대한 마타도르, 발타자르의 기예는 흉맹한 야수의 육신에서 활력을 빼앗아가고, 심신을 피로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발타자르의 눈초리가 슬쩍 찌푸려지더니 조심스럽게 쥐고 있는 뮬레타의 지지대를 살짝 눌렀다. 황소의 눈이 거짓말처럼 마타도르의 눈과 마주쳤다.

 

황소의 발구름이 시작되자 일순간 관중들은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조용해졌다. 발타자르의 물레타가 모래판에 닿을 듯 낮춰지고, 칼날이 얼굴 앞으로 나오며 황소의 양 어깨 사이를 노렸다. 모래를 긁던 황소의 앞발이 앞으로 뻗는가 싶더니만, 순식간에 포탄이 튕기듯 발타자르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순간, 뮬레타를 향해 코를 처박는 황소의 어깨 사이로 은빛 칼날이 소리없이 박혔다. 괴성과 함께 황소의 입과 코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1-2m의 짧은 거리에서 십 초도 안 돼 벌어진 일이었다. 발타자르는 물레타를 젖히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검날은 견갑골 사이를 뚫고 황소의 심장을 일격에 관통한 뒤였다. 붉은 천을 왼손에 감고 천천히 오른손을 드는 마타도르의 모습이 와이드 스크린에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천둥 같은 환호성이 폭포처럼 하늘 위에서 떨어졌다. 쓰러지는 소와 그를 둘러싸는 노비예로와 피카도르의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아레나 사방에서 붉은 장미꽃이 노란 모래위로 쉴새 없이 쏟아졌다.

 

“브라보! 발타자르!

신의 향한 찬양과 진배없는 관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발타자르 데 베르가는 조각 같은 미소를 드러내고 그들을 향해 깊게 허리를 굽혔다. 뉴마드리드에서 이런 찬양이 허락된 사람은 발타자르 데 베르가 하나뿐이었다. 투우사의 미소는 없어질 줄 몰랐다. 하지만 고개를 숙인 사내의 웃는 얼굴 미간에 깊은 주름이 하나 만들어지고 있음을 와이드스크린은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3-

 

“오늘의 방사능 지수는 평년보다 낮겠습니다. 증설된 500기의 역장비행선이 시 외곽이 비치되면서 방사능 지수는 더 내려갈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당분간 풍향의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연이어 이어지는 난민들의 실종사건이 반 시민단체와 연결된 징후가……”

은은한 조명이 깔린 펜트하우스를 또렷한 콘트랄로의 목소리가 가득 채우는 가운데, 집주인인 발타자르는 저녁뉴스를 벽 한 쪽을 다 차지하는 패널로 시청하고 있었다. 기상예보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육감적인 미소를 지니고 있었다. 몸매는 더 끝내주지. 발타자르가 슬쩍 웃음을 지으며 뉴스를 보고 있자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에 비친 내가 더 좋은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옆을 바라본 발타자르의 눈에 화사하기 그지없는 미녀가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들어왔다.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을 입은 여인의 남성적인 옷차림은 그녀가 맵시 있는 미녀라는 사실을 더 확연하게 보여주는 장치였다. 여인의 조곤조곤한 말이 계속되었다.

 

“당신 옆에 살아있는 사람이 있어.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은 싫은 거야?

 

“왜 이래 마리아. 내 마음 속에는 항상 그대를……”

여인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발타자르의 입을 막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고 빙긋 웃음을 지었다. 발타자르 데 베르가와 마리아 히메네스. 한 사람은 뉴마드리드 최고의 마타도르였고, 한 사람은 JM 미디어의 간판 앵커였다. 마리아와 발타자르는 공식석상에서 서로의 팔짱을 끼고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곤 했지만, 종종 벌어지는 발타자르의 플레이보이 행각은 타블로이드지를 먹여 살리는 귀중한 재원이기도 했다.

 

가끔은 발타자르도 모든 것을 묵인하는 것 같은 마리아의 행동에 의구심을 가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포용하려는 그녀의 모습이 병사를 조련하는 여왕의 행동처럼 보여서 섬찟 할 경우도 있었다. 차라리 화끈한 밤을 한 번 보내는 것이 훨씬 나을 텐데. 마리아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한 번도 자신과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이 발타자르의 애인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각인시키기에 바빴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간에 발타자르도 마리아가 필요했다. 그녀는 JM그룹과 발타자르 데 베르가 사이를 이어주는 자리였다 엄밀히 말하면 후안 메데이로스 회장과 발타자르를 이어주는 다리. 그녀는 JM그룹의 본사를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인이었다. JM미디어가 JM그룹의 자사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후안의 ‘특별한’여자 임에 분명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발타자르는 그녀의 미소가 다시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사귀기 시작한 것은 5년 전, 발타자르가 명실상부 최고의 마타도르가 된 시점부터였다. 하지만 5년이 아니라 훨씬 오래 전부터 마리아는 JM 본사를 들락거린 게 분명했다.

 

“오늘 경기는 어땠어?

마리아는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데도 능한 여자였다. 자신이 먼저 문제를 던져주고, 상대가 당혹해 할 때, 다른 쪽의 문을 열어주는 여자. 하지만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잊어먹지 않는 종류의 여자였다. 발타자르는 여인의 물음에 자기도 모르게 덜컥 답했다.

 

“좋은 노비예로가 나와서 분위기를 띄워줬지. 손가락이 일곱개인 피난민 소년이 아레나에서 일해. 귀엽게 생겼더군. 오늘은 엔리케도 나왔어. 엔리케가 있으면 경기가 물결처럼 자연스럽지. 나는 팡파레에 맞춰서 그냥 걸어가기만 하면……”

 

“소는 어땠어?

마리아의 눈과 발타자르의 눈이 마주쳤다. 흑색과 갈색의 눈이 동시에 서로의 시선 너머를 살폈다. 먼저 눈을 내린 것은 발타자르였고, 그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좋은 소였지. 좋은 소였고, 내가 찔렀지.

 

“여전히 부족해?

 

“내가 덤비게 만들었고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멈추게 만들었어. 됐어?

마리아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여전히 짓고 있었다.

 

“난 자기가 그걸 왜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아니니까.

 

“뭐가?

 

“진짜 황소가 아니잖아.

마리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짝을 쳐다보는 여인의 눈동자는 연인의 것이라기보다는 다 큰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과 같았다. 입에서 나오는 말도 그러했다.

 

“그게 중요한 거야? 지금 나와 당신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건강하게 이 자리에 있다는 거야. 그게 당신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는 거야? 소소한 즐거움이야?

발타자르는 마리아의 눈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손을 어깨 위로 들면서 항복한다는 몸짓을 취한 쪽은 발타자르였다. 마리아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기는 이 도시의 상징이야. 설사, 당신의 붉은 천 막대기에 제어기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도 누구 하나 당신을 비난하진 않을 거야. 이 바람둥이 아저씨.

 

“비난 할 걸.

 

“진짜가 아니라서? 이미 그게 전통이야. 뉴 마드리드 투우사들의 전통.

마리아는 고개를 흔들더니 옷걸이에 걸어놓은 코트를 집어 들었다. 잠시 동안의 해후는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시점이었다. 여인은 그 점에서 무섭도록 정확했다. 신데렐라가 마리아를 닮았더라면 절대로 유리구두를 흘리는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마리아의 코트를 뒤에서 입혀주는 투우사에게 우아한 여인은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으로 코트를 여몄다.

 

“내일 오전에 후안 회장이 광장에서 연설할 거야. 늦지 마.

 

“오늘도 본사에 들렸나? 그 이야기를 회장에게 들으러 갔던 거야?

마리아는 고개를 돌리고 사내를 쳐다보았다. 여인의 미소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럴 리가. 내 사랑. 난 당신을 보러 온 거야.

사내의 두꺼운 손이 여인의 어깨에서 등으로 흘러내렸다. 하지만 여인의 손은 가볍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묘한 미소만을 지어 보였다. 발타자르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리아,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거야? 혼배성사를 할 때까지 아무 것도 못 하게 할건가?

 

“아니, 당신이 내 영혼까지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면 그 때 하자고.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 마리아. 나같이 순수한 영혼이 어디 있다고……”

마리아의 날렵한 손가락이 재빨리 발타자르의 입을 막았다. 여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만간 확인할 순간을 주겠어.  

 

-      4 -

 

붉은 포석을 소용돌이 문양으로 깔아놓은 넓은 광장의 가운데에는 이름 모를 동상이 하나 서 있었다. 깡마르고 늙은 기사가 뚱뚱한 종자와 함께 말에 탄 채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형상이었다. 사람들은 이 동상을 [왕의 동상]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떤 왕인지, 왕 옆에 서 있는 농부차림의 뚱뚱한 종자는 누구인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오늘은 그 거대한 광장의 앞에 흰 색 천막과 넓은 연단이 자리잡은 뒤였다. 동상 위에 높이 솟은 연단은 왕의 동상이 연단 뒤의 사람을 호위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였는데, 이건 다분히 의도적인 배치였다.

 

“친애하는 뉴마드리드의 시민 여러분, JM그룹이 제작한 역장비행선 3000기 운항시대가 도달했습니다. 이제야말로 청정한 하늘, 이베리아의 하늘을 여러분에게 선사하는 의미에서 이런 공청회를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천막들에는 음식과 함께 JM그룹의 발자취와 후안 메데이로스의 경력이 빽빽하게 그려진 타블렛과 와이드패널들이 광장의 가장자리를 메우고 있었고, 사람들은 인산인해를 이루면서 흰 정장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후안회장의 풍채와 옆 테이블에 있는 음식을 번갈아 쳐다보는 중이었다. 발타자르는 마리아를 찾았지만 이 자리에 마리아는 오지 않았다.

 

“투우사들의 용어 중 모멘또 델 라 베르닷 (Momento De La Verdad)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실의 순간! 황소와 마주쳐서 생사를 가늠하게 되는 그 순간,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마주치는 순간 인간은 모든 가식을 집어 던지고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용기와 지혜! 그것만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여 자연의 재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후안 메데이로스의 말은 힘이 있었고, 쉬운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사람들을 한 곳으로 몰아대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손을 올리고 그의 말에 동의하는 함성을 질렀다.

 

 “그동안 JM은 뉴마드리드를 위해 일했습니다. 바이오매스를 통한 청정에너지로 도시를 정화했고, 에너지 지급률 250%를 달성했습니다! 난민들을 철저히 통제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물론 드라마와 뉴스도 함께요. 여러분이 그 산 증인 아니겠습니까!

 

“후안! 당신이 최고요!

군중 중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자 곧 벌떼 같은 박수소리가 그 뒤를 이어 울려 퍼졌다. 연단 뒤에 앉아서 이 장면을 지켜보던 발타자르는 조용히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자선행사라기보다는 정치적인 세력과시였다. 후안 메데이로스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는 연이어 사자후를 토해냈다.

 

“지금 정부는 이 청정한 도시 안의 얼마 남지 않은 우리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난민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유입시키겠다는 거지요! 지금 사용하는 에너지 자원을 난민보호시설에 더 투자하고 시민 분담률을 높이겠다는 겁니다!

 

“미쳤구만!

누군가의 고함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후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이 자리를 일궜습니까! ‘화염의 날 이후! 지구가 타오르던 날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은 누굽니까!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미친 짓거리 속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이 자리를 만든 시민들, 스페인의 혼 아니었습니까! 누가 파이를 나눠먹어야 합니까?

 

“우리들이오!

관중석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자 동조하는 함성이 곧이어 울려퍼졌다. 후안은 손을 귀에 갖다대며 다시 외쳤다.

 

“누구라고요?

 

“우리요!

사람들의 함성이 이구동성으로 외쳐대자 후안의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두 손을 불끈 앞으로 뻗었다. 마치 투우를 조련하는 투우사 같은 노련함이었다. 광장에 피켓이 올라왔다. ‘난민들은 꺼져라! ‘기형아는 신의 저주! ‘뉴마드리드는 이베리아의 것이다등등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피켓에 배설했다. 참으로 고색창연한 광경이었다.

 

“우리는 절대 이대로 멈추지 않겠습니다! JM은 뉴마드리드의 모든 시민들이 행복한 그 날이 올 때까지! 어떤 동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어떤 재해도 돌파해 나가겠습니다. 두 다리를 당당히 땅에 붙이고! 위대한 발타자르 데 베르가처럼 말입니다!

 

후안이 손을 뒤로 좍 펴면서 연단 뒤를 가리켰다. 후안의 눈이 발타자르를 향해 걸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발타자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연단 앞으로 걸어나갔다. 일순간,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광장을 휘몰아쳤다. 마치 아레나의 열기를 그대로 몰고 온 듯,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미소짓는 발타자르의 어깨에 후안 회장의 손이 지그시 얹혔다.

 

“좋아, 바로 이거라고.

후안 회장의 눈가에 깊은 주름이 패였다. 두 사내는 환하게 웃으며 연단 아래 사람들을 향해 힘차게 손을 내저었다. 관중과 연사 사이에 서 있는 노기사의 상이 어울리지 않게 뻘쭘하니 손을 하늘로 치켜세운 채 사람들을 막아서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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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쇼하는 건 후안의 마음이겠지. 하지만 시의회는 별반 달가워하지 않을거야.

미겔의 말에 발타자르는 쓰다 달다 말없이 손에 든 잔을 비울 뿐이었다. 아직 점심을 먹지도 않았는데, 두 사내는 펜트하우스의 방 안에서 데킬라를 비우는 중이었다.

 

“뉴마드리드의 사업 중 JM이 안 들어가는 곳이 없지. 여론을 장악한 사람이 권력을 노리지않는 건 이상한 거야. 의회는 물론 그걸 용인할 리 없지. 그래서……”

 

“그래서 후안 회장이 드디어 정당을 창설하려는 거잖아. 엊그제 일은 말 그대로 선전포고지.

 

발타자르의 말에 미겔이 불독처럼 턱을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타려면 등자가 있어야 해. 후안은 황제가 될 셈인거야.

 

“못마땅해 하는군. 미겔.

 

“후안의 욕심이니까.

 

“그게 어때서? 뉴마드리드 치안대의 반은 JM에서 월급이 나가. 우리 일자리도 JM문화사업의 일부분이고. 그 사람이 권력을 잡는 게 우리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지 나쁜 일은 아니라고.

 

“도시가 황제를 위한 성()이 될 거야.

미겔의 말에 발타자르가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니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곧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들이 위로 올라가면서 뉴마드리드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타자르가 흥행사인 양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고결한 미겔 루이스! 저 밖을 봐. 원래 이 도시는 성 아니었나? 저 도시 밖에 빛나고 있는 게 푸른 초장인가? 다른 도시로 통하는 도로인가? 아니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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