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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조유, 점프하다

2024.03.19 19:4403.19

  나는 높은 곳이 무서웠다. 번지 점프 도우미로서 자격미달이었다. 조유가 죽고 난 뒤부터 그랬다. 걸을 때마다 추락을 반복했다. 조유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다니. 나를 겁쟁이라고 놀릴지도 몰랐다. 그럴 만도 했다. 자주 악몽을 꿨던 그는 깨기 위해 꿈속 높은 데서 떨어지기 일쑤였으니까. 

  이를테면 옥상 같은 곳.

  죽은 작가 귀신이나 제가 쓴 소설 속 살인마에게 쫓기는 등의 꿈속에서 그는 늘 높은 곳을 찾아 헤맸다. 조유는 실제로 옥상을 좋아했다. 옥상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소설가를 꿈꾸었던 그는 어느 건물이든 옥상에서 글쓰기를 즐겼다. 나는 조유에게 옥상 소설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옥상에 있으면 마음이 안정된다고 했다. 그는 언제든 떨어져 꿈에서 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옥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조유. 내가 좋아했던 아이.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뛰어내리는 사람들은 이따금 조유의 뒷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는 방학 중반에 들어선 전문대학교 레크리에이션학과 2학년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사람들의 등을 떠미는 순간, 죽은 조유를 떠미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들숨과 날숨이 뒤얽혀 호흡이 가빴다. 몸에 잔 경련이 일며 척추를 훑는 서늘한 감각에 오금이 저렸다. 

  고소공포증일까, 아니면 조유에 대한 죄책감과 망상이 만들어 낸 환각일까.

  정체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일을 계속 이어갔다. 점프대까지 올라가는 길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걸음씩 위로 내디딜 때마다 조유의 심장 가까이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희미하던 박동 소리가 어느새 발소리에 맞춰 쿵, 쿵, 다가왔다. 꼭대기에 도착하면 그것은 내 심장 박동 소리로 바뀌어 귓가에 울렸다. 제 수술비를 벌기 위해 방학 동안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A는 내 기색을 살피며 체하거나 감기에 걸리기라도 했냐고 물었다. 

  몸살이 난 것 같아.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사무실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게 조유가 죽어서라고 생각했다. 한동안 그에 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 유명한 흰 곰 실험처럼, 어떤 특정 대상을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떠올리고 집착하게 되었다. 나는 안전장비 없이 맨몸인 조유의 등을 밀고, 조유가 그에 떠밀려 추락하는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아보거나 나름대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지만 조유는 더 빈번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공포, 연민, 슬픔, 분노, 등 다양한 감정들로 내게 찾아와 사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묶어놓는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이 모든 건 조유가 죽어서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다. 조유, 개새끼. 조유, 씨발새끼, 조유, 불쌍한 새끼…….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학창시절 조유와 함께 자주 들르곤 했던 타로 카페의 휴업 안내문을 확인했다. 

  -요즘 꿈자리가 사나워 며칠 쉬려 합니다.

  안내문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읽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은 낮고 켜켜이 쌓인 먹구름으로 짙었다. 금방 수만 개의 빗방울로 부서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다. 가만히 있어도 스치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떨어지는 중이 아닐까, 하는 상상에 젖었다. 그걸 정지되어있다고 착각하는 것뿐……. 조유의 부고를 받은 것도 이 카페에서였다.

  그때는 폐업 전이었다. 나는 초코 스무디를 마시며 사장에게서 그날의 꾼 꿈의 해몽을 듣고 있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였다. 나는 무시할까, 하다가 받았다. 오늘 새벽의 꿈은 그저 개꿈에 불과하다는 사장의 말을 들은 직후라 불안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조유의 모친이라고 밝힌 여자는 기가 다 빠진 목소리로 그의 죽음을 알렸다. 빈소에 와주면 고맙겠다고. 정말 고맙겠다고. 나는 처음에 조유가 누군데요, 되물을 뻔했다. 가까스로 말을 삼켰으나 그때의 아찔함은 이후에도 생생했다. 대학교 2학년까지 교류하다가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아이. 가겠다는 말이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통화가 끊어지고 나서야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후회하기엔 늦었다.

  장례식장에 가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잠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보다 정확한 말은 없었다. 그러나 보통의 관점으로 볼 때 ‘살아있는’이 전제로 붙을 뿐이다. 사장은 자신의 검은 정장을 빌려주었다. 

  장례식장은 일산병원 지하에 자리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탔다. 그리 길지 않은 여정이었다. 그동안 나는 핸드폰 게임을 했다. 

  빈소는 적막했다. 조문객은 몇 사람이 전부였다. 조유의 부모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는 예절을 몰라 그들을 보자마자 무턱대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그의 모친은 나를 보더니 찾아와줘 고맙다며, 네가 재혁이가 맞냐고 물었다. 나는 맞는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조유가 말한 것처럼 잘생겼네. 

  그녀가 말했다. 조유가 말한 것처럼, 나는 앞의 말을 곱씹었다. 

  절을 올렸다. 사진 속의 조유는 내가 알던 조유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이었다. 특유의 흰 피부와 얼굴의 여드름 자국, 날이 선 턱, 굵고 길게 뻗은 목. 내가 좋아하던 요소들이 생생했다. 손을 뻗으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하나 그와 나 사이엔 가늠할 수 없이 먼 거리가 놓였다. 뒤돌아서 탁자로 갔다. 육개장과 편육을 내오는 조유의 모친 앞에 앉았다. 편육은 질겼다. 육개장은 싱거웠고 식은 후였다. 그녀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뭐라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아 어떻게 나를 알고 소식을 돌리셨냐고 물었다. 

  네가 즐겨찾기로 등록되어있는 번호 두 개 중 하나였어. 나머지는 알아보니 무슨 타로 카페로 연결되더구나. 

  그녀는 조유가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나에게 발신한 흔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다. 의문이 들었다. 왜 2년 넘게 연락도 하지 않은 내가 연락처에 즐겨찾기로 등록된 유일한 번호였는지. 나는 사실 조유와 연락한 지 꽤 됐다고, 오래전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말에 짐짓 놀란 표정이었다. 우리는 더는 말을 주고받지 않았다. 마침 저녁을 먹지 않았던 나는 육개장 한 그릇과 편육 두 접시를 비웠다. 조문객들은 조금씩 계속해서 다녀갔다. 감사하다고 조유의 모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 했지만 어디로 갔는지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조용히 빈소를 나와 다시 카페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가 지금 타고 있는 이 버스였다. 나는 꿈자리가 좋지 않아 이만 쉬려 한다는 폐업 안내문을 여전히 되뇌었다. 사장은 어떤 꿈을 꾼 걸까. 궁금증이 일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빈소에서 조유의 모친이 흘리듯 한 말을 나는 기억했다. 

  계속 떨어지는 악몽을 꿨다고 하더라. 그게 내가 그 애한테 들은 마지막 말이었고. 

  떨어지는 내용의 악몽에서 깨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떨어져도 깨지 않는 꿈. 나는 현관문 도어록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빈소에 다녀온 이후, 뜸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들로부터 조유에 대한 뒷말을 들었다. 주로 그가 대학교 졸업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추측성 얘기들이었다. 애가 생겨 일찍이 결혼했다가 이혼했다느니, 사업을 했는데 실패해 막대한 빚을 떠안아 자살한 거라느니 등등. 무엇 하나 신뢰할 수 없었지만 무엇 하나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조유에 대해 빠져들었던 듯싶다. 조유는 빈번히 내 꿈속을 찾아왔다. 노크도 예고도 없이. 나는 예기치 못해 당황해하며 최대한 그를 잘 구슬려 내보내려 했다. 쉽지 않았다. 그는 자리하고 앉아 떠날 줄 몰랐다. 꿈에서 깨려 조유의 비법대로 높은 곳을 찾아 부러 몸을 내던졌으나 통증 없는 통증만 반복되었다. 여전히 꿈속이었다.

  눈을 떴을 땐 비도 오지 않았는데 날이 맑게 갠 후였다. 기억해낼 수 없는 악몽을 뒤로 하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침이 심했다. 몸이 열에 들떴고 목이 아팠다. 병원에 갈 기운조차 없었다. 나는 침대에서 잠시 바닥을 내려보다가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누가 망치로 미세한 힘 조절을 하며 때리는 양 머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에 가기가 어려웠다. 친구 A에게 전화해 근무 일정을 바꿔줄 수 없냐고 물었다. 흔쾌히 바꿔주겠다는 말에 나는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집은 고요에 차 있었다. 사물이 내는 소리마저 시간에 갈려 나간 듯한 그 고요에 어딘가 기시감을 느꼈다.

  정체는 다름 아닌 조유의 빈소였다. 나는 그 빈소와 이 집이 지나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함부로 살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눈길을 돌리면 그 끝에 조유가 있을 것 같았으므로. 오랫동안 벽 귀퉁이를 노려보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 후에야 고개를 돌릴 수 있었다. 물론 조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냉수를 꺼내 마셨다. 몸 전체를 관통하는 차가운 감각에 부르르 떨었다. 라면 봉지를 꺼내고 물을 올린 뒤 부엌 식탁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좀 쉬어야지. 문득 화장된 조유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가루의 형태가 되어 납골함에 담겨 승화원에 안치되어있을 그를. 그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이젠 그 가능성마저 영원히 봉인해버린 채 사라진 그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 

  물이 끓었다. 나는 면과 스프를 넣은 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인근 고등학교가 내다보였다. 점심시간이라 운동장에 나와 뛰노는 몇 무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조유는 구기종목을 싫어했다. 운동을 싫어한 건 아닌데, 스포츠에 통 관심이 없었다. 체육 시간이 되어 억지로 할 때도 통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재능이 없던 걸까. 축구를 좋아하고 나름 체육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하던, ‘평범한 남자애’였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조유를 싫어하거나 그와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조유의 소설을 처음 읽은 후부터 팬이 되었다. 언제든지 그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읽겠노라고 말했다.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동의했다. 

  재미없으면 꼭 알려줘. 억지로 다 읽거나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느 날 학교 옥상에서 조유는 말했다.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열심히 쓰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했다. 따뜻한 햇볕에 옥상의 초록색 페인트 바닥이 잔디처럼 푸릇푸릇 반짝였다. 조유는 버려지거나 망가진 책상 위에 노트를 펼치고 잉크펜으로 소설을 썼다. 나는 그런 그를 힐끗 훔쳐보거나 난간 가까이 다가가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정말 꿈 같았다. 파릇파릇한 꿈. 높아서 무섭기는커녕 행복했다.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병원을 갔다 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국내소설 매대에 있는 조유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소설집을 나는 집었다. 일순 낯선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조유의 책을 들고 자리에 서서 집중해 들여다보았다. 나는 조유의 애인을, 여자친구, 일찍이 결혼했다 이혼했다던 아내를 상상하며 여자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그의 책을 집었다가 내려놓고, 다른 책을 뒤적였다. 그리고는 다시 조유의 책에 몰입해 읽더니, 어느 순간 눈물을 흘렸다. 나는 혼자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그 애의 소설 중에 눈물을 흘릴 만큼 슬픈 게 있었나 자문했다.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나도 모르게 기척을 냈는지 여자는 재빨리 책을 내려놓고 매대 앞을 떠났다. 나는 여자가 만지던 책으로 바꿔 들어 카운터로 향했다. 

  근처 카페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읽어나갔다. 몇 번이고 읽은 이야기들이었다. 개중엔 고등학교 때 읽은 소설이 모태가 된 작품도 있었다. 조유는 대학교 2학년 때 모 문예지로 등단했다. 이른 출발이었다. 그는 등단하자마자 내게 소식을 알려왔다. 자신이 드디어 데뷔했다고. 그전까지 그는 텀블벅 펀딩으로 단독 소설집을 내거나 앤솔로지로 참여하며 작품을 발표해왔다. 정식으로 책을 출간한 적은 없었기에 늘 그것이 마음에 부침으로 남아있었던 조유에겐 희소식이었다. 나는 그 주 주말에 그와 함께 술집을 갔다. 그는 등단 턱이라며 술값을 전부 치렀다. 

  진짜 작가가 됐네. 축하해. 

  나는 건배를 하며 말했다. 그는 술에 취한 상태였고, 나도 반쯤 취한 상태로 서로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작가가 돼서 기쁘다, 축하한다는 말도 벌써 몇 번째 반복하는지 모를 말이었다. 조유는 고맙다고 내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당선 소식을 들은 날 새벽에 네가 나오는 꿈을 꿨어.

  그가 말했다. 

  그래? 무슨 내용이었는데?

  내 물음에 그는 벌게진 얼굴로 아무것도 아니라며 얼버무렸다. 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그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모습이 아직도 선연하다. 무슨 꿈이었을까. 야한, 내용이었을까. 나는 실실 웃음을 흘렸다. 조유도 웃었다. 그는 분명 기뻐 보였다. 그러나 마냥 즐거워하진 않았다. 불안이랄지, 두려움이 그의 얼굴에 묻어났다. 나는 무슨 걱정이라도 있냐고 물었다. 

  실은 애인하고 헤어졌어. 저번 주에. 

  그가 대답했다. 나는 멍한 상태로 더 좋은 여자 만나겠지, 라고 안 하느니만 못한 위로를 건넸다. 그때 나는 무심코 나 너 좋아해, 라고 말할 뻔했다. 더 좋고 예쁜 여자 만날 거야. 나는 재차 위로했다. 그 말에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왜 여자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난데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여자가 아, 아니면 뭔데?

  나는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래, 아니면 뭐겠냐. 여자지. 여자야. 더 좋은 여자 만나겠지. 

  그가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중얼거리며 술을 따라 들이켰다. 어쩐지 그때 일이 불쾌해 나는 한동안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뼛속까지 여자 좋아하는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이면서, 왜 아닌 척, 여지를 주는 척 행세하냔 말이다. 

  책을 덮었다. 세 작품을 읽었고, 다음 소설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능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점심시간 이후 수업이 시작되었는데도 그 애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른 아이에게 물어보니 일찍 조퇴했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 아픈 거냐고, 왜 말도 없이 조퇴하느냐고, 덕분에 밥 혼자 먹었다는 시답잖은 말들이었다. 한참 후 조유는 나더러 자신의 팬이 맞냐고,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나오는 애니 윌크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넘버원 팬이 맞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꾸했다. 그는 수업 끝나고 학원 옥상에서 잠깐 만나자고 했다. 그러겠다는 대답을 보냈다. 더 이상의 메시지는 없었다. 나는 전전긍긍하며 따라 조퇴할까, 마음먹고 교무실 근처를 기웃거렸다.

  수업이 파하자마자 학원 옥상으로 향했다. 조유는 물탱크 난간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실기에서 떨어졌어.

  나는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 다음에 좋은 결과 있을 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조유 옆에 앉았다. 어느 순간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살짝 얹었다. 그처럼 흥분된 순간은 삶에서 다시 없을 것이었다. 얘가 왜 이럴까, 무슨 의도지, 어떤 생각이지, 하는 의문에서부터 그냥 힘드니까 친구한테 기대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확대해석하지 마, 하는 체념까지 나는 양극단 사이를 수십 수백 번 오갔다. 조유는 힘들다며 눈을 감았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의 뺨을, 살갗을 살짝 매만졌다. 느끼지 못한 건지 그는 가만히 있었다. 손끝에 곱고 부드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말캉했다. 

  학원에 내가 좋아하는 애가 있는데, 걔는 붙었대. 근데 걔는 나한테 위로 한 마디 없더라. 

  불쑥 그가 말을 꺼냈다. 나는 서둘러 손을 물렸다. 글 잘 쓰는 여자애를 떠올렸다. 기고만장해 한껏 잘난 척하는 아이를 상상했다. 그의 편을 들어주며 가상으로 그려낸 그 아이를 욕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침이 마르도록 그 애를 저주하고 조유를 추켜세우는데 문득 그가 내 어깨에서 머리를 떼며 말했다. 

  너무 욕하지 마. 그래도 내가 좋아했던 애야.

  나는 무슨 소리냐며, 그 애 면상 좀 보여달라고 했다. 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네가 이토록 앓는 거냐고. 조유는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자신과 상반된 좋은 결과를 맞이한 그 애, 그리고 자신을 본체만체도 하지 않는 그 애에 대한 상실감과 실망감이 더 큰 듯 보였다. 그러나 조유는 사진이 없다면서 보여주지 않았다. 

  이만 마음 접어야겠지. 걘 대학에 갈 거고, 난 재수해야 하니까. 

  걔가 뭐 얼마나 잘 쓴다고 그러냐. 

  나는 그 애를 계속 입에 올리며 비난했다. 반은 허풍이었고 반은 진심이었다. 나는 가지지도 못하는 그를 그 애는 가질 수 있는데도 버리는 셈이니. 내 정성에 반응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조유는 어느덧 나와 함께 그 애를 욕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조유가 배고프다고 하자 나는 용돈을 탈탈 털어 포장마차 분식을 거하게 대접했다. 나는 어깨 한쪽이 아릿한 동시에 쓰린 것을 느끼며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갔다. 

 

  아르바이트 근무에 복귀했을 즈음엔 몸살이 다 나았다. 그러나 번지 점프대로 올라가는 내내 나는 오들오들 떨었다. 점차 땅과 멀어지는 느낌이 공포에 질리도록 만들었다. 나는 그 애의 소설 속 문장을 외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 꼭대기에 도착했을 땐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나는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기대와 설렘 반, 걱정하는 마음 반으로 읽히는 눈빛이었다.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이는 없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떨어진 뒤에도 자신이 살아있을 것임을, 이건 그저 놀이에 지나지 않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누군가에겐 떨어지는 게 놀이가 아니었음을 나는 알았다.

  안전장비 없이 맨몸으로 허공에 몸을 내던지는 건 용기가 아니라 절망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안다. 장비를 잘 착용했는지 점검하고, 줄이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한 뒤 머뭇거리는 사람의 등을 살짝 밀었다. 그들은 소릴 지르며 떨어진다. 그건 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이의 안도에서 비롯된 과장된 반응에 불과하다. 이내 줄이 팽팽해지며 강 위에 매달려 있으면서 깨닫게 되겠지. 나는 안전하다고. 

  그러나 조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공포는 여전했다. 작은 소란이 있었다. 한 손님이 내가 자신을 안전장비도 없이 밀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안전장비를 매고 있지 않았고, 내 두 손도 비어있었다. 

  안 그래도 무서워 죽겠는데, 사람 죽이려고 환장했어요?

  뒤에선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킥킥대며 저 새끼 존나 긴장했나 보네, 쫄리나 보네, 한 마디씩 얹었다.

  떨어져서 죽으면 책임질 거냐고요.

  나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되풀이했다. 그는 끝내 점프하지 않았다.

  친구 A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근처 김밥천국으로 걸음을 옮겼다. A는 아까 위에서 무슨 소란이 있던 거냐고 궁금해했다. 나는 하마터면 맨몸인 사람을 그대로 아래로 밀려 했다고, 여전히 반신반의하나는 기분으로 말을 늘어놓았다. 

  쫄보 새끼, 어차피 떨어져도 안 죽는데. 아래가 강인데 왜 죽어. 

  A는 그렇게 말하며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나를 살폈다. 나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점심을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일어나 먼저 계산을 했다. 

  가방에 챙겨온 조유의 책을 들고 상가 옥상으로 올라갔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 몇이 구석에 몰려 있었다. 나는 아무 데나 걸터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네 번째 작품, 〈재회〉를 앞에 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재회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그의 유일한 퀴어 소설이었다. 나는 그 작품의 모체를 알고 있었다. 대학교에 들어가 막 등단한 조유가 내게 보여주었던 소설이었다. 

  그날은 조유의 대학교 옥상에서 마른안주를 곁들은 맥주를 마셔댔다. 그는 이따금 비틀거리며 난간으로 다가섰다. 소설이 써지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여기서 떨어져야 할 날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설가가 꿈이었고, 난 그 꿈을 이뤘는데...... 그게 알고 보니 악몽이었을 줄이야. 

  그러더니 정말 팔다리를 버르적거리며 난간을 넘어서려 했다. 나는 놀라 달려가 그를 말렸다. 그렇게 술에 취한 우리는 옥신각신하다 몸이 뒤엉킨 채 넘어졌다. 우리는 그대로 사이좋게 나란히 대 자로 누웠다. 바람이 빈 맥주캔을 드리블하는 요란한 소리에 한참 귓가가 따가웠다. 문득 그가 보여줄 게 있다며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소설이었다. 첫 청탁을 받은 단편소설이었다. 나는 가방 속에서 뒹굴며 구겨진 종이를 애써 펴 읽어내려갔다.

  소설에서 동성애자 주인공은 트랜스젠더 친구로부터 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기가 미래에서 온 자신을 보게 되었다는 친구의 말로 시작된 이야기는 주인공이 친구를 따라 강령술 비슷한 것을 해서 미래에서 온 중년의 자신과 마주친다는 내용이었다. 서사 구조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인물과 결말이 문제였다. 동성애자인 주인공에게 과거 동성으로부터 강간을 당해서 게이가 되었다는 설정이 부여된 것도 그랬고, 미래의 자신이 에이즈에 걸려 비참하게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억지로 여자와의 소개팅에 나간다는 결말도 그러했다. 나는 그 소설을 읽고 평을 해달라는 그에게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썼냐고 물었다. 

  별다른 생각 없어. 그냥 재밌으니까 쓴 거지. 

  그가 대답했다. 

  넌 재밌으면 끝이야?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데? 

  야, 그거 그냥 소설이야. 왜 이렇게 진지충처럼 구냐.

  그의 말에 나는 조유의 뺨을 갈기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내가 그를 사랑해온 만큼 그 배신감이란, 그 감정의 낙차란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소설을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완강했다. 이 소설을 문예지에 발표할 거라고, 이게 제일 잘 쓴 거라고. 

  욕만 먹을 거야. 이거로는. 안 돼.

  나는 말했다.

  야. 네가 뭔데 내 글을 판단하냐?

  네가 읽어달라며. 그래서 말해준 것뿐이야.

  그러니까, 읽기만 할 것이지, 네가 뭔데. 네가 뭔데!

  그가 내 어깨를 손으로 툭 밀쳤다. 

  씨발, 네가 뭘 아냐? 

  조유는 그렇게 소리치다 옥상을 떠났다. 나는 쓰레기와 함께 남겨졌다. 

  이후 미안하다고, 그때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는 사과 메시지가 왔지만 나는 무시했다. 나도 이제 그를 놓아줄 때가 된 것 같다고 깨달았던 걸까.

  잠시 후 A에게서 어디냐고 채근하는 전화가 올 때까지 나는 책을 무릎 옆에 늘어뜨린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조유가 뭐라고 말이라도 하는 양. 그러나 조유는 죽을 때까지도 내게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그의 모친이 그가 내게 연락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게 뒤늦게 기억났을 뿐이었다. 

 

  중고서점은 아이를 데려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직원들은 바삐 책을 나르고, 꽂고, 계산했다. 책을 매매하러 온 사람들도 많아 40분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를 들을 정도였다. 나는 조유의 책을 한 권 팔러왔을 따름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수십 권을 가져온 게 아니었는데도 대기 시간은 똑같았다. 아르바이트는 끝난 뒤였다.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조금 일찍 그만두었다. 곧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동안 할 게 없어 읽지 않고 남겨둔 그의 소설 〈재회〉를 읽기로 했다. 

  손님. 계산해드리겠습니다.

  직원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여전히 뒤로 사람들이 길게 대기하는 중이었다. 내 차례가 된 모양이었다. 나는 조유의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직원이 바코드를 찍어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이건 매입 불가 도서인데요. 현재 재고가 많거나 오래된 책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나는 머뭇거리다 그냥 가져가겠다고 말했다. 

  서점을 구경하다 팔지 못한 조유의 책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햇빛이 쨍하니 길 곳곳에 내리쬐었다. 나는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일했던 번지 점프대로 향했다. 평일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친구 A는 내가 하던 일을 맡고 있었다. 그는 수술비를 벌어야 했다. 나는 점프대로 천천히 올라갔다. 여전히 땅과 멀어지는 게 무서웠고 떨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다가섰지만 전보다는 덜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A가 웬일이냐고 반가워했다. 나는 그에게 수술비는 다 모았느냐고 말했다.

  아직. 좀 모자라. 그나저나 나 목소리 수술도 하기로 했어. 좀 굵은 목소리 내고 싶거든. 지금도 일부러 그렇게 내곤 있는데, 어때? 남자 같아?

  그가 아아, 했다. 나는 웃으며 누가 봐도 남자라고 말했다. FTM 트랜스젠더인 A는 대학교 퀴어동아리에서 사귄 친구였다. 사장은 모르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에게 소설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소설? 책 말이야? 안 읽은 지 오래됐지. 예전엔 좋아했는데. 

  이거 읽어볼래?

  나는 그에게 조유의 책을 건넸다. 

  뭔데?

  그냥 소설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 나오는 소설이 하나 있어. 〈재회〉라고.

  재회?

  그가 물었다. 

  이따 읽고, 일단 나 점프 좀 하게 장비 좀 매줘. 

  나는 웃으며 아래 장비를 가리켰다. 

  A는 내가 안전장비를 매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는 발판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 널따랗게 펼쳐졌다. 안전장비를 점검한 뒤 마음을 먹었다. 동시에 조유를 떠올렸다. 조유는 홀로 아무도, 아무것도 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늘 언제나 내가 그의 등을 떠민 건 아니었는지 의심하고 자책했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도 털어낼 때가 되었다고, 조유를 영영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것을 흐릿하게나마 깨달았다. 지금 아래로 떨어져도 나는 조유가 죽은 이 악몽에서 깨지 못할 터였다. 다만 잠시나마 그와 함께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그가 외로이 가지 않도록 곁에 순간이나마 머무르고 싶었다.

  뒤에서 A의 손이 내 등을 살짝 떠민다. 나는 허공으로 발을 내밀며 뒤를 확인한다. 그 자리에 A는 없고 조유만 환히 장난스레 웃으며 서 있었다. 네 꿈은 악몽이 아니었다고, 나는 속으로 되뇌며 점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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