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저수지의 개

2024.02.18 15:2802.18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장례지도사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조금 다르다. 스스로 삶을 끝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찾아와 자신을 고통 없이 죽여줄 것을 의뢰한다. 혼자 죽을 용기가 나지 않거나 아니면 그것을 준비하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작업을 의뢰하곤 한다. 그들은 단지 내가 죽음의 과정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나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을 최대한의 존중과 배려로 대한다. 그들은 한강에서 뛰어내리거나 창문 틈을 막고 번개탄을 피우는 식으로 혼자 비참하게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격식과 존엄,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 봐준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 나는 그동안 꽤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의뢰인의 마지막을 최대한 격식 있고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작업한다. 상담을 마치고 작업을 시작하기 직전 내 의뢰인들은 나에게 언제나 진심을 담은 감사를 표한다. 나 또한 그들에게 나의 직업의식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작업한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을 사랑한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나는 내 의뢰인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내 의뢰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실연의 아픔을 겪는 젊은 여성, 자식들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노년의 신사, 투자에 실패한 중년 남성 등 그들의 사연은 끝없이 다양하다. 그러나 나는 위와 같이 그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죽음을 결심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복합적인 불행과 미래에 대한 비관들이 합쳐졌을 때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나에게 찾아온 젊은 여성이 죽음을 결심한 것은 단지 13년을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해에 당신이 응원하던 유명인이 자살했고, 대출이자 체납 문자가 도착했으며, 그날 아침 집에 쌀이 떨어졌고, 엄마가 전화로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다음날 당신의 오랜 연인이 약혼을 파기하고 당신에게 이별을 고했을 때, 그때야 비로소 내 의뢰인은 지갑에 오랫동안 간직해온 나의 명함을 꺼내 들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작업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내가 직접 만든 약물을 그들의 혈관에 흘려보내면 된다. 약물의 조성에 대해 밝히는 것이 분명 좋은 생각은 아니기에, 그저 세포호흡의 한 단계를 저해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 까지만 밝혀 두겠다. 내 의뢰인들이 삶의 마지막에 원하는 것은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하는 이유들만큼이나 다양하다.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나를 찾아온 노년의 신사는 나에게 세족식을 부탁했다. 나는 당신에게 훌륭한 자식의 전형처럼 다정한 인사를 건네고 당신의 발을 정성스레 닦았다. 나는 당신의 짙은 외로움을 생각하며 당신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삶의 의미를 잃은 중년 여성은 함께 전주를 여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어릴 적부터 사귀었던 당신의 남편과 다녔던 골목길들을 함께 걸으며 추억에 잠긴 의뢰인의 손을 잡아드렸을 때, 비로소 작게 미소 짓던 당신의 얼굴을 보고 나는 다시 한번 내 직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젊은 의뢰인들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성관계를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몸을 가꾸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았다. 관계가 끝나고 정염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침대에 엎드려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내 의뢰인을 볼 때면 나 또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요청하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 의뢰인이지만, 간혹 남성도 있다. 나는 결코 의뢰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느꼈을 외로움과 압박감을 생각하면 나의 성향과 다르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내 의뢰인의 마지막 부탁을 소홀히 대할 수 없다. 나는 의뢰인의 만족을 위해 수없이 많은 학습을 했다. 어떤 부위를 어떻게 접촉하는 것이 여성이나 남성의 정욕을 조화롭고 아름답게 자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탐구했다. 바로 그런 열정과 섬세함이 나를 이 업계에서 살아남게 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누군가는 내 직업을 두고 살인자와 다름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의뢰인의 의사를 최대한으로 존중한다. 나는 작업여부를 결정하기 전 그들에게 한 달 남짓한 시간을 주고 반드시 다시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그러면 그들은 한 달 뒤에 나를 다시 찾아와서는 차가워진 머리로 그때서야 자신의 진심을 담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판단은 전적으로 의뢰인에게 맡기기 때문에 나는 그깟 한심한 이상성욕이나 증오심, 또는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충동에 의한 범죄인에 불과한 그들과 달리 나의 직업은 신성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생의 끝맺음을 스스로의 의지로 행할 수 있게 인도하는 성스러운 조력자, 바로 그것이 나의 직업이자 사명인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내 동생과 관련이 있다. 아니, 그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가 작고 웃는 게 귀여웠던 너는 어릴 적부터 유난히 정이 많았다. 파지를 넘칠 듯 싣고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는 노인을 등굣길에 볼 때면 너는 절대로 지나치지 못했다. 어느 신사가 떨어트린 지갑을 보면 현금이 두둑한 것을 보고도 너는 반드시 그에게 달려가 지갑을 돌려주고는 했다. 장을 보고 돌아오던 아주머니의 장바구니 밑이 터져 도로에 사과가 나뒹굴면 너는 어김없이 어디선가 비닐봉지를 들고 와서는 학교에 늦는지도 모르고 사과를 담아 아주머니에게 건네주고는 했다. 너는 학교에서도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정이 많은 성격 탓인지 귀엽게 생긴 외모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은 너를 좋아했다. 너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에게 떡볶이를 해주겠다며 자주 집으로 데려오고는 했었다. 별것 없는 요리였지만 그것을 만들며 행복해하는 너와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나까지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그날도 너는 친구들 몇몇을 데리고 집으로 오고 있었을 것이다. 친구들과 ‘이번엔 치즈를 넣어볼까’하는 대화를 하며 마트에 들렀다가 집으로 오는 너를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친구들과 길을 걷던 너는 한 원룸 건물 앞에서 무거워 보이는 상자를 들고 끙끙대고 있는 남자를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이 이야기하기로 너는 ‘너희들끼리 먼저 우리집에 가 있어. 나 좀 있다 갈게’ 라고 말했다고 했다. 너는 무거운 짐을 혼자 들고 있는 50대의 남자를 그저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집까지 찾아온 네 친구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나는 네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났을 때까지 네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너의 친구들과 나는 급하게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온 동네를 뒤졌다. 그러나 너를 찾을 수 없었다. 친구들을 집에 돌려보내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지 보름이 지났을 때, 비로소 네가 나타났다. 우리 집에서 17km 떨어진 논 옆의 농수로 아래에서.

 너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두 팔이 노끈을 이용해 허리 뒤로 묶인 채로, 발목도 같은 종류의 노끈으로 묶인 채로, 너의 입에는 조악하게 급조한 재갈이 물린 채로. 너의 사인은 아사였다. 범인은 너를 묶은 뒤 살아있는 너를 농수로에 던지고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너는 며칠동안 사람 한 명 지나가지 않는 그곳에서 온 몸이 묶인 채로 고통에 신음하며 혹시나 들을 지 모를 누군가를 향해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너를 죽인 범인은 얼마 가지 않아 붙잡혔다. 네가 발견된 날짜로부터 보름 전 우리 동네 원룸촌으로 이사 온 50대 남성. 길을 지나가던 네 앞에서 이삿짐을 옮기고 있던 바로 그 남성.

 기자들이 그 남성의 집 앞을 둘러쌌다. 경찰들은 원룸 건물 앞에 인간 울타리를 만들었다. 바람막이의 후드를 깊게 눌러쓴 그 남성은 현장검증을 하고 있었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것부터 길을 지나가는 너에게 도와줄 수 있겠냐고 묻는 것, 함께 짐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 그 모든 것을 재연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전부 지켜봤다.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은 그 남성은 네 역할을 하는 마네킹을 뒤에서 붙잡고 목을 조르는 것을 재연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은 듯 바닥에 쓰러진 마네킹의 손목과 발목에 노끈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렸다. 남성은 마네킹에게 물었다. ‘죽기 전에, 네 마지막 소원이 뭐야? 내가 그거 하나는 들어 줄게’. 경찰들은 네가 했던 말을 전해 듣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형에게 전화하게 해달라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게 네 마지막 소원이었다고.

 그 남성은 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위치를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너의 진짜 소원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너는,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왔던 너는, 가족들과 함께 사막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너의 마지막 소원이었을 것이다. 몽골이 되었든 이집트가 되었든, 너는 우리 가족들 다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너의 소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아마 범인이 나에게 전화하는 것을 허락했다면, 너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형, 우리 같이 여행가고 싶었는데 못 가게 돼서 미안하다’고. 내가 아는 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의문을 가진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왜 범인이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는지. 단지 네가 원룸의 위치를 말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너를 유기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범인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을 그 17년간 품고 살았다. 왜 죽였는지는 애초에 궁금하지도 않았다. 범인은 살해동기를 묻는 기자들에게 ‘화가 나서’ 라고 대답했다. 불행한 자신과 달리 행복해 보이는 너의 모습에 화가 나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왜 당신은 내 동생의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않았느냐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내 동생은 그때 분명히 살아있지 않았느냐고. 그저 전화통화 한 번일 뿐인데, 하다못해 목에 칼이라도 들이대고 전화하게 시켜주면 되지 않았던 것인가. 왜 마지막 소원 하나 들어주지 못해서 그렇게 착한 아이가 죽어서도 원한을 품게 만들었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내 직업생활을 그렇게 시작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나는 우연한 계기로 이 일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열성적으로 배웠다. 유니폼으로 입는 내 검은 정장의 무릎과 소매는 서서히 닳아가기 시작했다. 내 사수는 나이가 꽤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나에게 그 누구에게도 본 적 없는 재능이 있다고 했다. 의뢰인을 나처럼 진심으로 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그들의 마지막 소원이 가지는 그 간절한 의미를 너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 고 말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내 동생, 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너를 보냈기 때문에.

 나의 열 두 번째 고객이자, 내가 독립하고 나서 받은 첫 번째 고객은 바로 내 사수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고객이 되는 순간을 상상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죽음에 대해 초연해진다고,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줬으니 이제 자신도 성불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는 지금의 나만큼이나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했다. 적어도 나의 철저한 프로의식의 대부분은 그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하고 있었다.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 무엇일지 알고 싶었다. 당신과 나는 적막한 한 모텔의 방 안에 앉아 차분히 대화했다. 당신의 머리는 어느덧 흰머리가 자라 희끗희끗해져 있었다. 32년의 직업생활동안 타인의 마지막 소원들을 헌신적으로 수행해온 그의 마지막 소원은, 맛있는 식사를 차려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사수를 여느 다른 고객들과 전혀 다르지 않게 대했다. 헌신적이고, 존중을 담아서. 그도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이 후배를 제대로 가르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도 한 달의 시간을 줬다. 나를 찾아오는 고객들에게 한 달은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기에 어느정도 충분한 시간이다. 순간적인 충동으로 나를 찾아온 고객들도 그 한 달을 거치고 나면 자신의 진심을 얘기할 용기가 생긴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자신이 잘못 생각했다고, 다시 살고 싶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새로 태어난 당신의 삶을 응원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런 경우에 보수는 받지 않는다. 그렇게 해도 내 일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에 속한다. 나를 찾아오는 고객들 중 간혹 자신의 마지막을 지켜준 나에게 자신의 재산의 전부를 주겠다고 말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에. 내 사수도 그렇게 말했다. 한 달의 시간을 보낸 당신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결정했다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나에게 주겠다고, 마지막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구할 수 있는 선에서 최고로 신선한 양질의 소고기를 준비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고기를 구웠다. 온도계로 내부온도를 파악한 뒤 은박지로 감싸 레스팅을 했다. 후식으로는 약과와 유자차를 준비했다.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이다. 여느 고객과 달리 나는 당신에게 음식 취향을 묻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 대한 모든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신은 완벽하게 관리된 구형 그랜저를 타고 식사전에 물로 입을 헹군다. 차에서 내린 뒤에는 바닥에 침을 한 번 뱉고 넥타이를 정리한다. 왼손잡이지만 식사는 오른손으로 한다. 검은 정장과 잠옷을 제외하면 당신에게 다른 옷은 없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은 내가 아는 바로 그 모습으로, 구형 그랜저에서 내려 침을 뱉고 넥타이를 정리한 뒤 내가 작업할 건물로 들어왔다. 왼손으로 자켓을 옷걸이에 걸고 오른손으로 나이프를 쥐고 고기를 자른다. 옷은 역시 검은 정장이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유니폼을 입는 당신의 프로의식에 다시 한번 존경심을 느꼈다.

 “훌륭한 식사였어. 정말 고마워.”

 당신은 다시 자켓을 입고 침대에 누울 준비를 하며 말했다. 마지막 순간을 위해 옷 매무새를 정리하는 당신의 모습은 진정 아름다운 직업인의 모습이었다. 나는 준비해온 약물과 주사기를 가방에서 꺼냈다. 당신은 내가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나는 주사기에 약물을 채우고 편안히 누운 당신의 옆에 앉았다. 우리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선배,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 있으세요?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은 내 말에 조금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꺼냈다.

 “너, 이제 혼자서 해야 할 텐데… 잘 할 수 있겠어?”

 “그럼요. 아직 걱정되세요?”

 “아니, 걱정은 안되지. 네 실력과 마음가짐은 정말 훌륭해. 다만… 그 어떤 고객이 와도 지금처럼 진심을 다해서 작업할 수 있겠는지를 묻는 거야.”

 ‘그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나는 진심을 다해 마지막 소원을 수행하고 작업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다. 나는 내 직업정신을 믿는다.

 “물론이죠.”

 “그래. 작업하지.”

 “편히 잠드세요, 선배.”

 나는 당신의 손목을 왼손으로 받쳐들고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다. 천천히 주사기를 누르자 약물이 당신의 혈관 속으로 뿜어져 들어갔다. 당신은 편안한 표정으로 온 몸의 힘을 풀었다. 주사기를 끝까지 눌렀을 때 나는 주사바늘을 뽑았다. 당신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다시 내려놓고 두 번 절을 했다. 방 안을 정리하고 내 흔적을 지웠다. 혹시나 떨어졌을지도 모르는 머리카락 한 올 놓치지 않기 위해 방안을 완전히 청소했다.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나는 밖으로 나갔다. 선배의 그랜저에 올라타 발신자표시제한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자살한 사람이 있다고. 수습을 부탁한다고. 나는 경찰과 소방관들이 건물로 올 때까지 건물 앞에 주차된 그랜저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

 

 선배의 장례가 끝난 지 5년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일곱 건의 의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나는 어느덧 혼자 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함께 일할 후배를 뽑을 생각은 아직 들지 않았다. 아직은 힘에 부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도 고객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었다. 나는 선배에게 물려받은 구형 그랜저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리고 있었다. 유난히 날씨가 추운 날이었고 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며 정차했을 때 차 유리창 위로 눈송이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을 느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의뢰인들에게 번호를 주는 휴대폰으로 걸려온 것이었다. 나는 글로브박스를 열고 작업용 휴대폰을 꺼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잠시 받지 않고 기다리자 전화가 끊어졌다. 이내 다시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고 두 번째 전화가 끊어졌을 때 나는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명함 보고 전화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나이가 꽤 있는 것 같은 남성의 목소리였다.

 “명함 뒷면 표의 4행 2열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상대방은 명함을 찾아보는 듯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에… 복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네 접수됐습니다. 문자로 주소 보내주세요. 첫 번째 상담을 위해서 3일 후에 찾아가겠습니다.”

 새로운 의뢰였다. 나는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넥타이를 정리했다. 의뢰가 올 때마다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 느낌은 적응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의 죽음을 또다시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선배의 그랜저는 조금 더 무거워진 나를 싣고 강변북로를 빠져나와 달렸다.

 3일 후 의뢰인의 집으로 찾아갔다. 의뢰인의 집은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빌라촌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휴대폰 화면에 적혀 있는 주소의 빌라 갓길에 차를 주차하고 내려 넥타이를 정리했다. 옷 매무새를 정리하며 다시 한번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이번 의뢰도 프로답게 해내야 한다. 절대 실수는 없다. 함부로 의뢰인을 동정하거나 의뢰인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그런 사소한 감정들이 실수로 이어진다. 내 일에 있어서 실수는 치명적이다. 나에게는 한 명의 의뢰인일 뿐이지만 의뢰인에게는 삶의 마지막 경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셔츠와 자켓을 정리하고 다시 한번 마음 속으로 선배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그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진심을 다해 대할 것’. 나는 빌라 입구의 번호를 누르고 초인종을 눌렀다.

 벨이 울리고 잠시 후 빌라 입구의 문이 열렸다. 나는 왼손에 검정색 가방을 들고 빌라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참에는 이제는 더 이상 타지 않는듯 녹이 슨 자전거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의뢰인의 집은 2층이었다. 문 앞에 서서 넥타이를 한 번 만지고 벨을 눌렀다. 띵동. 응답이 없었고 다시 한번 벨을 눌렀다. 띵동. 한참이 지나자 문이 열렸다. 문고리를 잡은 손에 주름과 검버섯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혈관이 툭 불거진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3일 전에 전화 주신 분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들어오세요.”

 의뢰인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적게 잡아도 70세는 되어 보였다. 허리는 잔뜩 굽어졌고 집 안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살았다. 주방으로 들어서는 그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그의 사연을 상상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집 안에는 가구가 별로 없었다. 이사를 온지 얼마되지 않은 것인지 그 흔한 사진이나 화분 하나 없었다. 그의 집에는 그에 대한 정보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벽지는 깔끔하게 도배되어 있었고 집에서는 새집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다. 주방에는 한 명 분의 식기와 작은 쟁반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가 혼자 사는 노인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마치 집 전체가 나에게 필사적으로 정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한 그 집에서 나는 새하얀 백지의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 집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었다. 오직 잔인할 정도로 차가운 현재와 적막한 소음만이 있는 공간이었다.

 의뢰인은 나에게 차를 권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의뢰인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더 이상 이 집의 풍경에서는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곧바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우선,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고민하고 저에게 전화를 주셨을지를 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할 조력자로서, 당신의 편안한 마지막을 인도해드리는 사람입니다. 저에게는 그 어떤 말씀도 하셔도 됩니다. 제가 당신의 사연을 발설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비밀 보장과 신뢰, 그게 제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그럼, 어떻게 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되셨는지 말씀해주세요. 물론 말씀하고 싶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노인이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는 동안 나는 차를 조금 마셨다. 얼마 우리지 않은 옅은 보리차였다. 평소에 만들어 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올 것을 알고 급하게 준비한 것 같았다. 노인은 결심한듯 입을 열었다.

 “저는 젊은 날 사람을 죽였습니다.”

 노인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지만 침착한 얼굴을 유지했다. 범죄경력이 있는 의뢰인은 지금껏 꽤 있었지만 살인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일에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날… 아니 그리 젊은 시절도 아니지요. 물론 지금보다는 젊었지만.”

 노인은 차를 한 모금 다시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나는 어리석고 분노에 찬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 날 나도 남들처럼 결혼해서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꿨지만, 성장하면서 사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약혼녀와의 결혼에 실패하고 직장에서 해고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특유의 불 같은 성격 탓이었습니다. 나는 충동을 참기 힘들어했습니다. 부모도 나를 버렸고 사랑도 나를 버렸습니다. 단 한 번의 행운도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어요. 아니, 내가 잡지 못한 것이겠지요. 내 삶은 비참하고 비루했습니다. 당신도 이 나라에서 이룬 것 없이 늙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겠지요. 이 닭장과 같은 나라에서는 끝없이 남들과 나를 비교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들, 행복한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것을 지키는 사람들, 하다못해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것을 만끽하는 사람들. 나는 그 중 어떤 것도 되지 못했어요. 나는 매일 그들과 비교하며 남루한 나의 삶을 비난하고 괴로워했어요.

 결국 나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시며 수십차례의 폭력전과를 쌓고, 절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나는 세상을 비웃고 능욕하려고 발버둥쳤습니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너희들도 가져선 안 된다. 그런 마음이었지요.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을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비참하게 찢어져 있을지언정 나도 생명은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 아이가 내 눈에 보인 것은 그때였습니다. 나는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없습니다. 그때도 교도소에서 2년의 복역을 마치고 나오자 주민들이 나를 내쫓지 못하면 죽이려고 들더군요. 그래서 이사를 갔어요. 작은 동네였는데, 고즈넉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어쩌면 나같이 비루한 사람도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는 새 삶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때 그 아이를 본 거예요. 교복을 입고 동무로 보이는 아이들과 장을 보고 나와 웃으며 길을 걷는 그 아이를.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았는데 너는 네 동무들과 웃으며 행복한 삶을 시작하려 하고 있구나.

 그래서… 그 아이에게 짐을 들어달라고 했어요. 이삿짐이 많은데 좀 들어줄 수 있겠느냐고. 그 아이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불안한 마음에 노인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 동네가 혹시 광현시 유서동이었습니까?”

 “네 맞아요. 제가 말을 했나요…? 아무튼, 짐을 들고 내 방으로 따라 들어오더군요. 나는 문을 닫고 그 아이의 목을 졸랐어요. 그러고 그 아이를 묶고 죽여버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막상 용기가 안 나더군요. 겁이 났어요. 일단 데리고 들어와 묶어 놓긴 했는데 어찌할 줄을 몰랐어요. 때는 이미 늦었죠. 그 아이를 풀어주면 나는 다시 교도소로 갈 게 분명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그 아이를 처리해야 했어요. 재갈을 문 채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이 너무 처량해서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를 하게 해달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전화를 시켜주면 곧바로 경찰들이 들이닥칠 텐데.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나는 그 아이를 직접 죽이지 않았어요. 나는 그 아이를…”

 “농수로에 유기했겠군요.”

 “네 그렇죠. 농수로. 잘 아시네요. 당신도 사람을 죽여본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제대로 아시네요. 내가 한 건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던져 놓고 갔어요. 누군가 지나가는 사람이 풀어주겠지. 그렇게 재수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살아가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네요.”

 “그렇죠. 거기가 사람이 그렇게 없는 곳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는 사람이에요. 어쨌든 그 아이는 죽었더군요. 경찰들이 내 집에 들이닥쳤고, 나는 22년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교도소에서 출소하고 지금이 된 거예요.”

 “…그렇군요.”

 “어디 몸이 안 좋으십니까?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아 보이는데.”

 나는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손에 든 찻잔 속의 보리차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붙잡았지만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저… 저는 의뢰인분들께 꼭 한 달의 시간을 드립니다. 다시 생각하실 시간을 드리는 겁니다. 제가 한 달 뒤에 찾아왔을 때, 그때 결정하시면 됩니다.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할 말이 조금 더 있는데…”

 “아뇨. 다음에 듣겠습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나는 노인의 집을 뛰쳐나왔다. 온몸이 떨렸다. 도저히 침착할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러나 다시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 당장 다시 뛰어들어가 저 노인을 죽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선배의 그랜저 트렁크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시 너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너를 어떻게 보냈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잊었는데.

 너를 죽인 저 살인자는 멀쩡히 살아 70대 노인이 되어있다. 그러고는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겠다며 염치없게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던 것이다. 가슴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이를 세게 물었다. 이가 부서질 것 같을 때까지 물었다. 나는 그랜저에 올라타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진정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랜저는 빠르게 달렸다. 옆 차를 무시하고 차선을 바꿨다. 도로에 클락션이 빵빵거리는 소리가 가득 찼다.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이렇게 달리다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를 들이받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아니, 죽여버리고 싶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너 같은 살인마에게 내가 공들여 만든 약물은 과분하다. 그랜저는 속도를 늦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집에 도착해 진정제를 먹었다. 진정제는 효과가 좋다. 머리를 차갑게 해주고 마음속에 들끓는 분노를 가라앉힌다. 나는 거실 한 가운데에 걸어 둔 선배의 사진을 바라봤다. 당신은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당신이 나였다면 그 알량한 프로의식을 발휘할 수 있었겠습니까. 액자 속의 선배는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진심을 다해 대할 것’.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것은 내 직업이 걸린 문제였다. 너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분명히 죽은 것보다 산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복수하면 내 직업생활 전부는 의미를 잃는다. 프로답게 의뢰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고 그들을 편안한 안식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나의 사명 아니었던가. 의뢰인이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나는 잠을 쉽게 들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놈을 고통스럽게 죽여야 할까. 아니면 한 명의 고객으로서 편안하게 죽음에 들게 해줘야 할까. 그러던 중 나는 노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감정이 차올라 노인의 집을 뛰쳐나오면서 그에게 듣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왜 죽음을 결심했는지. 바로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나는 노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보내 달라고. 얼마 뒤 노인에게 답장이 도착했다.

 

 그때 못했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회개했습니다. 교도소에 오랜 기간 복역하면서 나는 신을 만났어요. 신을 만난 이후로 나는 지금 진심으로 나의 죄 많은 삶을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하나, 신께서 어떤 뜻인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 늙은 몸을 살려 두셨습니다. 분명히, 나는 백 번 죽어 마땅해요. 내가 당신에게 전화를 한 것은, 이 죄 많은 삶을 끝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부디, 나를 죽여주세요. 나는 늙었고 살아서 속죄하기에는 힘에 부칩니다. 나의 죄를 죽음으로 갚고 싶습니다.

 

 나는 진정제를 한 알 먹고 노인의 답장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노인은 자신의 죄를 알고 있다. 그리고 반성하고 있다. 하마터면 어리석은 짓을 할 뻔했다. 복수의 감정에 사로잡혀 나의 신념을 놓아버릴 뻔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일을 시작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들어주지 못한 내 동생의 마지막 소원을 대신 들어주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설령 그것이 너를 죽인 자의 소원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들어줘야 한다. 그것이 너의 죽음을 위로하고 나의 사명을 다하는 방법일 것이다. 나는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죽은 너를 생각했다. 이것은 너를 위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다시 검은 정장을 꺼내 입었다. 노인에게 가야 한다. 나는 서류가방에 여분의 주사기들과 약물을 준비했다. 약물은 노인의 혈관을 타고 흐를 것이다. 박동하는 심장으로 갔다가 온몸으로 퍼질 것이다. 노인의 모든 세포 속으로 들어가 세포호흡을 막을 것이다. 노인은 그렇게 서서히 온몸이 질식해 잠들 것이다.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넥타이를 만졌다. 셔츠를 정리하고 자켓을 입었다. 나는 내 눈가를 오랫동안 응시했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나의 직업을 수행하며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너를 죽인 살인자를 죽이러 간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한 명의 고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러 가는 것이다. 거울 뒤로 거실에 걸린 선배의 초상이 보인다. 선배의 눈을 응시한다. ‘어떤 고객이 오더라도’.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랜저는 털털거리며 달렸다. 오늘도 눈이 오고 있었다. 노인의 집 앞에 서서 넥타이를 만졌다.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노인은 문을 열었다. 노인의 얼굴은 전과 똑같았다. 심경의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좋은 징조다. 노인은 다시 나를 식탁으로 안내하고 보리차를 내줬다. 나는 조용히 앉아 그것을 마셨다. 나는 노인에게 잘 지내셨냐고 물었다. 노인은 그렇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본론을 말했다.

 “저는 의뢰인분들께 마지막 소원을 묻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하고 싶은 경험을 말씀해주시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준비해드립니다. 아마 결심을 하셨을 텐데… 어떤 소원이 있으신지 말씀해주세요. 제 진심을 담아 준비해드리겠습니다.”

 “…”

 노인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지막 소원을 고르는 것은 으레 그렇듯이 노인에게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가만히 기다렸다. 노인은 한참을 고민한 뒤 입을 열었다.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제 마지막 소원은…”

 노인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제 마지막 소원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저는 당신이 준 그 한달동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음을 바꿨습니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애초에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신께서 죄 많은 저를 살려 두신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한낱 미천한 인간인 제가 생과 사를 결정하는 것은 신성모독이지 않겠어요?  제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랐을 때, 저는 마음을 바꾼 겁니다. 그리고, 당신의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이 바뀌었어요. 미안한 말이지만, 당신의 직업은 살인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삶의 마지막은 신께서 정하는 것이에요. 당신은 자신을 의뢰인을 마지막 순간으로 편안하게 인도하는 조력자라고 했지만, 그건 핑계예요. 삶의 의지가 약해진 사람들을 죽음으로 꼬드기는 ‘악마의 개’일 뿐이죠.”

 나는 노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런 것이었다. 악마의 개. 나는 노인의 말을 머릿속에 담았다.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나는 조용히 일어서서 창가로 향했다. 그리고 커튼 줄을 내려 끊었다.

 

*

 

 그랜저는 한참동안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차창으로 휘날리는 눈발이 부딪혔다. 겨울이라 그런지 엔진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트렁크 쪽이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차를 바꿔야 할 것 같다. 겨울의 저수지는 적막하다. 주위에는 사람 한 명, 민가 한 채 없었다. 그저 개들만 저수지 주변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나는 그랜저를 저수지 물 속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주차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넥타이를 만지고 옷 매무새를 정리하려다 이제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만뒀다. 옷이야 어떻게 되든 이제 알 바가 아니다. 나는 그랜저의 트렁크를 열었다. 두 손목과 발목이 커튼 줄로 묶여 있고 입에는 재갈을 문 노인이 트렁크 안에 누워 신음하고 있다.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 했어.”

 나는 혼잣말을 하고 트렁크를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나는 노인의 입에 채워진 재갈을 풀고 말했다.

 “마지막 소원을 들어 줄게. 말해봐.”

 노인은 살려달라고, 재산을 다 줄 테니 제발 살려달라고 했다. 고작 그게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라니. 나는 트렁크를 다시 닫았다. 그랜저의 번호판을 떼고 내부를 청소했다. 나는 집에서 가져온 선배의 초상화를 물 속에 던졌다. 초상화는 이내 가라앉았다. 운전석으로 가서 사이드브레이크를 풀었다. 그리고 그랜저의 뒤로 가서 차를 있는 힘껏 밀었다. 선배의 그랜저는 서서히 밀려 저수지의 물 속으로 들어갔다. 큰 기포가 올라오며 그랜저는 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랜저를 삼킨 저수지의 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잔잔해졌다. 옷 매무새가 엉망이 되었다. 이제 상관없다.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수지에는 개들만 짖고 있을 뿐이었다.

감동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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