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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1세기 미운 오리 새끼

2024.01.29 12:5201.29

 

!

잠자는 아침을 깨우는 총소리가 울렸다.

퍼드득!!

기러기떼가 총소리에 밀려 V자로 날아갔다.

파다닥!!

오리들도 날갯짓했지만 흉내만 낼 뿐이었다.

이 시끄러운 아침에 오직 엄마 오리만은 꿈쩍하지 않았다.

알을 낳고 있었다. 이마엔 주름이 가득, 눈과 미간은 잔뜩 찌푸렸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다. 모두 아홉 개 알.

아니다, 잠시 후 한 개의 알이 엉덩이 아래로 들어왔다.

마지막 한 개의 알은 특별했다. 색깔이 흰색이 아닌 회색, 크기도 더 컸다.

엄마 오리는 알들을 보며 그제야 온 몸에 힘을 쪼옥 뺐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피곤할새가 없었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알을 품기 시작했다.

특이한 알도 다 같은 생명이라 정성들여 품었다. 얼마 후 오리 새끼들이 알에서 모두 깨어났다.

회색 알에서 나온 오리는 몸 색깔도 회색이었다. 덩치는 다른 오리들보다 조금 더 컸다. 원래 오리 부리는 뭉툭한데 이 오리는 약간 뾰족했다.

다들 DNA가 이상한 오리라고 수근거렸다. 볼품이 없었다. 좀 더 자라자 오리와는 생김새가 조금씩 달랐다. 오리를 닮은 듯 아닌 듯. 나이 많은 오리가 한 마디했다.

혹시 돌연변이 오린가? 오리 인생 20년에 이런 오리는 처음이오.” 나이 많은 오리는 갸우뚱했다.

외국에도 이런 오리는 못 봤어요. 도날드 덕이 조금 특이하긴 했지만요.” 나름 유학파 오리가 말했다.

생김새가 좀 다를수도 있지요. 저한테는 모두 귀한 자식이에요.” 엄마 오리는 애써 침착했다.

엄마 오리는 특이한 오리에 더 애착을 가졌다.

 

다른 오리들은 모두 싫어했다. 미운 오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꽥꽥 소리도 낼 줄 몰랐다. 한참 뒤에야 겨우 흉내만 냈다.

다른 어른 오리들은 혹시 칠면조가 아닐까 생각했다. 칠면조는 헤엄을 잘 못치기 때문에 물가로 데려갔다. 엄마 오리는 자신있었다.

헤엄은 다른 오리보다 더 잘 쳤다. 자유형, 평형, 배영, 접영까지. 박태환, 황선우를 능가하는 오리였다.

오히려 이것 때문에 더 괴롭힘을 당했다.

너 오징어 게임에 나가 봐. 얼굴이 오징어잖아! 하하하!!”

넌 인간들이 좋아하는 오리야. 오리 패딩, 오리 파카, 오리 이불에 딱 좋은 오리거든. 하하하!!”

엄마 오리는 미운 오리를 계속 다독여 주고 위로해 주었다.

넌 나중에 자라면 아주 특별한 오리가 될 거란다.”

좀 더 자라자 더 따돌림을 당했다.

미운 오리는 깡이 생겼다. 여기서 살아남기로. 더 독하게 살아야 한다고. 격투기 오리가 꿈이었다. 그래서 자신을 괴롭힐 때 같이 싸웠다.

하지만 여러 마리가 한 번에 덤비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집단으로 부리로 쪼고, 물칼퀴 발바닥에 싸다구를 맞으니 정신을 못차렸다. 덕분에 맷집은 좋아졌다.

도대체 내 정체가 뭐지?’

미운 오리는 견디기 힘들었다. 결국 몰래 무리에서 떠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강가에 갔다. 청둥 오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색깔도 회색으로 비슷했다. , 헤엄 치며 다가갔다. 새끼 청둥 오리에 섞였다. 하지만 어미는 금방 알아챘다.

얘가 참 뻔뻔하구나! 짝퉁 주제에 우리 청둥 오리 흉내를 내다니!”

미운 오리는 부끄러워서 나왔다.

어두워지자 강가 늪지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러다 부스럭 소리에 잠이 깼다. 기러기 세 마리가 껌을 씹고 쳐다보고 있었다. 부리로 툭툭 미운 오리를 쪼았다. 부리가 몸에 닿을땐 살기를 느꼈다.

한 마리 기러기는 덩치가 컸다. 다른 기러기는 왼쪽 뺨에 흉터가 있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배에 문신이 있었다. , , 호랑이 등등.. 극사실주의 풍의 그림이었다. 다들 일진 기러기였다.

격투기 선수 꿈은 깡패 기러기를 보자 물 건너 갔다.

, 먹을거 좀 내놔!” 흉터 기러기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며칠 굶어서.”

그럼 너라도 잡아 먹어야겠다.” 문신 기러기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럼 나부터 먼저 맛봐야겠어.” 덩치 기러기가 뾰족한 부리를 갖다댔다.

미운 오리는 두 발이 떨려 도망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브향 소금에 찍어 먹을까? 치즈가루를 뿌려 먹을까?” 덩치 기러기가 부리로 슬쩍 미운 오리 배를 눌러보았다.

난 미디움!” 흉터 기러기도 부리로 눌러보았다.
그래도 이런 건 자연식품이니 생으로 먹는 게 최고지!” 문신 기러기도 거들었다.

다들 미운 오리를 에워쌌다. 미운 오리는 눈을 감았다. 차라리 안 보는 게 덜 비참할 것 같았다.

!

!

! 소리에 미운 오리는 눈을 감은 채 죽었다.

곧 뾰족한 부리가 미운 오리 배에 박혔다. 아팠다. 이상했다.

자신이 죽은 게 아니었다. 나머지 두 기러기는 퍼드득 날아갔다.

눈을 살며시 떴다. 덩치 기러기 부리가 배를 짓누르고 그대로 고꾸라져 있었다.

늪지대 풀숲에서 뭔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냥꾼이었다. 미운 오리는 얼른 반대편 늪지대 풀숲으로 도망쳤다.

오늘은 비만 기러기구나! 좋았어!”

사냥꾼은 축 늘어진 비만 기러기 목을 잡더니 사라졌다.

미운 오리는 강가 늪지대를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강가 늪지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들어왔다. 저기 꿩이 보였다. 미운 오리는 자신이 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가갔다. 아니 꿩이고 싶었다. 꿩이어야만 한다.

아니야, 너 같이 못생긴 애는 꿩일 리가 없어. 우리 봐봐.”

꿩의 긴 꽁지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다. 색깔도 알록달록했다.

미운 오리는 또 실망했다.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갔다.

큰 나무 밑에 도토리들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도토리를 부리로 쪼았다. 단단한 부리가 쓸모가 있었다.

너 뭐하니? 왜 우리 식량 먹고 있니?” 다람쥐가 뒤에서 짜증냈다.

그 다람쥐 뒤에는 여러 마리가 미운 오리를 향해 레이저 눈빛을 쏘았다.

배가 고파서.”

우린 더 배고파! 우리 거야!”

미운 오리는 다른 곳으로 갔다. 저쪽에도 도토리가 떨어져 있었다. 주위를 살피고는 다람쥐가 없자 얼른 달려갔다. 그런데,

쾌엑!

목에 뭔가 걸렸다. 나무 기둥에 매어 놓은 철사줄 고리 모양 덫에 걸렸다. 발버둥 칠수록 더 조여왔다. 더 움직이다간 숨을 못 쉴 것 같아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자신의 정체도 모르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은 귀밑머리로 흘러 뺨을 타고 긴 목줄기로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을수도 없었다. 정말 서러웠다. 목에 힘을 꽉 주고 서서히 당겨 보았다. 혹시 철사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나였다. 더 조여왔다.

조금전 꿩이나 다람쥐를 부르고 싶었다. 부리를 하늘로 향하고 목소리를 낼 찰나!

나뭇가지에 무시무시한 놈이 눈앞을 가렸다. 덩치가 큰 뱀이 혀를 낼름거렸다.

미운 오리는 나오려던 목소리가 쏙 기어들어갔다. 너무 놀라 숨쉬는 것도 멈춰버렸다. 자세히 보니 한쪽 눈이 감긴 뱀이였다. 다쳐서 애꾸눈 뱀이 된 모양이었다. 애꾸눈이라 더 소름끼쳤다.

스으으윽!

뱀이 조용하게 대가리를 들이밀며 미운 오리를 향해 다가왔다.

비슷한 너라도 복수를 해주지!!” 뱀은 혀를 물결처럼 빠르게 낼름거렸다.

“??”

덫에다가 뱀까지!

억울했다. 너무 허무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이미 많이 맞아봐서 맷집은 세계 최강이었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격투기처럼 싸워 보기로 했다.

정식 애니멀 UFC 첫 게임이다.

상당히 불리하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너무나도 불공평한 경기다. 마치 지옥에서 싸우는 듯 했다. 악조건에서도 용감히 싸웠으니 애니멀 격투기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다. 이렇게 미운 오리는 혼자 위로했다.

위로할 틈도 없이 뱀대가리 공격이 들어왔다. 미운 오리는 얼굴을 뒤로 빼 공격을 피했다. 지옥이라 생각하니 독기가 올라 없던 힘도 생겼다. 믿을 건 오직 딱딱한 부리와 물칼퀴 같은 넓적한 발바닥뿐!

부리가 송곳처럼 생기지 못한 게 억울했고, 발톱도 낚시 바늘처럼 생기지 못한 게 억울했다.

애꾸눈 뱀은 이미 미운 오리의 절대적 불리함을 파악했다. 서둘지 않았다. 이미 K.O로 승리한 것처럼 여유로웠다. 미운 오리는 잔뜩 몸을 움츠렸다. 선빵 날리고 싶었지만 철사줄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애꾸눈 뱀은 대가리를 쨉처럼 툭툭 던졌다. 미운 오리는 그때마다 대가리를 뒤로 몇 번 피할 뿐이었다. 애꾸눈 뱀은 자신감이 붙었다. 더욱 세게 공격했다. 더 깊숙이 대가리를 오리 얼굴로 쳐들어왔다. 이젠 얼굴을 더 뒤로 뺄 수가 없었다. 철사줄은 이미 팽팽해졌다. 타이밍을 찾았다.

드루와! 드루와!’

애꾸눈 뱀이 입을 크게 벌린 채 들어왔다.

!

미운 오리도 입을 벌려 부리로 물었다.

서로 지그재그로 물었다.

좋았어!’

어차피 딱딱한 부리를 물어봤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애꾸눈 뱀도 이렇게 물어서는 효과가 없는 걸 알았다. 뱀은 몸을 뒤로 홱 당겨 입을 부리에서 빼냈다. 철사줄 때문에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뱀은 작전을 바꿨다. 정면 공격은 부리 때문에 힘드니 측면 공격이다. 정면 공격하는 척 하면서 측면으로 오리 모가지를 물면 끝이다.

다시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는 혀를 내밀어 정면으로 들이밀었다. 미운 오리는 더 크게 부리를 벌려 들어오길 기다렸다. 뱀은 정면으로 오다가 오른쪽으로 얼굴을 비틀어 오리 모가지를 향했다. 미운 오리는 이미 작전을 알아차렸다. 거의 동시에 왼쪽으로 부리를 비틀어 뱀을 물었다. 구조상 미운 오리가 입을 더 크게 벌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뱀 입 전체를 물어서 입을 닫게 했다. 뱀의 세모난 얼굴이 부리에 짓눌려 납작 빈대떡이었다. 힘을 꽉 주어 압사 작전이었다.

애꾸눈 뱀은 입을 꽉 다문채 숨쉬기가 힘들었다. 대가리를 움직이지 못하니 온 몸을 배배 꼬우며 몸통을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공중에서 긴 몸뚱아리가 트위스트 춤을 추었다. 꼬리를 휘두르며 운 좋게 몇 번 미운 오리 얼굴에 강타했다. 하지만 꽉 다문 부리를 절대 벌릴 생각은 없었다.

애꾸눈 뱀은 꼬리를 허공에 휘젓다 나뭇가지에 꼬리를 꽉 감았다. 그리고 당겼다. 미운 오리가 조금 딸려 왔다. 애꾸눈 뱀 몸뚱아리가 팽팽해졌다. 미운 오리 목에 철사줄도 팽팽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미운 오리 목에 철사줄이 조여왔다. 딸려가지 않으려고 뒤로 당길수록 더 조여왔다. 숨이 막혔다. 당장 입을 열고 거친 숨을 내 몰아치고 싶었다. 애꾸눈 뱀도 미운 오리도 둘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치 숨 오래 참기 대결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철사줄 때문에 미운 오리가 더 불리했다. 더 버티다간 모가지가 잘릴 것 같았다. 할수없이 부리를 벌려 놓아주었다.

! ! !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으니 힘이 다 빠졌다. 목에 조였던 철사는 느슨해지키는커녕 꽉 조여진 채 여전히 숨쉬기 힘들었다.

애꾸눈 뱀도 빈대떡 얼굴이 점점 다시 부풀어 올랐다. 곧 원래 모습을 찾았다.

미운 오리는 계속 쾍!!! 했다. 누군가 철사줄을 느슨하게 해주지 않는 이상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을 판이었다. 목에 피가 통하지 못해 얼굴로 피가 쏠렸다. 회색 얼굴이 붉게 변했다. 하지만 뱀은 점점 제대로 숨을 쉬고 있었다. 애꾸눈 뱀이 또 공격하면 그대로 죽을 상황이었다.

정신을 차린 애꾸눈 뱀은 고통스러워 하는 미운 오리를 보았다. 바로 입을 벌려 다시 모가지 공격 폼을 잡았다. 미운 오리는 거친 숨을 쉰다고 부리를 벌릴 시간이 없었다. 남은 무기는 넓적한 물칼퀴 같은 발바닥!

! 뱀이 들어왔다.

동시에 바로 싸다구를 날렸다!

철썩!

큰 파도가 방파제 부딪힌 소리가 났다. 넓적한 물갈퀴가 싸다구에는 적격이었다.

애꾸눈 뱀은 예상치 못한 싸다구에 대가리가 홱 돌아갔다. 그리고 땅바닥에 철썩 나뒹굴었다. 한쪽 뺨이 부어올라 눈깔 사탕이 들어있는 모양새였다. 뱀은 제 정신이 아니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운 오리는 고개를 높이 들었다. 딱딱하고 뾰족한 부리로 내려 찍어 짓이겨 죽일 작정이었다. 힘껏 내려찍었다.

쾌에엑!!

거기까지였다. 목에 철사줄을 잊은 채 내려찍다가 허공에 멈췄다. 동시에 숨도 멈췄다. 붉은 얼굴이 이젠 퍼렇게 질려 저승사자가 손짓했다. 콧구멍으로 산소를 들이킬 힘도 없었다.

정신차린 애꾸눈 뱀은 찢어진 눈을 하며 마지막 공격을 했다. 미운 오리는 점점 감기는 눈으로 앞을 쳐다보았다. 뱀대가리가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입을 벌렸다. 바늘같은 송곳니가 정면으로 쳐들어 왔다. 그걸 보며 기절했다. !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목이 따가웠다.

드디어 저세상?’

저세상치곤 숨쉬기도 좋았고 경치도 좋았다. 위에는 나무들이 내려다 보고 있었고, 옆에 눈을 돌리니 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다시 눈을 들어 위로 쳐다보았다.

! 인간의 얼굴?, 진짜 죽어서 오리털 패딩, 파카, 이불이나 돼란 말인가?’

아니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구해준 것이다. 손에는 피묻은 스틱을 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에스라인을 뽐내며 뱀이 널브러져 있었다.

내 살다 살다 눈깔 사탕 좋아하는 뱀은 처음보네. 윙크는 또 왜 하고 있는데? 플러팅 희한하게 하고 있네.” 등산객은 어이없어 했다.

등산객은 오리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다행히 숨을 쉬고 있네. 하마터면 세계 최초로 인공호흡 아니, 동물호흡 할 뻔했네! 근데 이건 오리야, 아님 새야?”

마음씨 좋은 등산객은 오리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자연인처럼 오두막집을 짓고 혼자 살았다.

이 아저씨 집에는 고양이와 닭을 기르고 있었다.

넌 나를 위해 꼭 살아야 한다.”

아저씨는 정성들여 치료해주었다.

아저씨가 오리한테만 사랑을 쏟자 고양이와 닭은 질투가 났다.

넌 오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처럼 닭도 아니고 도대체 뭐니?”

돌연변이겠지 뭐.” 고양이가 핀잔주듯이 말했다.

돌연변이?’

오랜만에 듣는 기분 나쁜 말이었다.

넌 나처럼 쥐 잡을 수 있어?” 고양이는 죽은 쥐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나처럼 알도 낳을 수 있어?” 닭은 자신이 낳은 알을 보여주며 우쭐댔다.

미운 오리는 숫놈이라 알도 낳지 못했다.

 

! 오랜만에 멧돼지 사냥이다.”

아저씨 말에 고양이와 닭은 긴장이 된 듯 침을 꼴딱 삼켰다. 미운 오리는 왜 그들이 긴장하는지 갸우뚱했다.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멧돼지 구경시켜 줄게.”

아저씨는 미운 오리를 품에 안고는 산속으로 향했다. 미운 오리는 멧돼지라는 동물과 그 사냥이 궁금했다.

아저씨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익숙한 산길을 걸었다. 고깃덩이 몇 점과 밧줄, 몽둥이를 들고 갔다.

오솔길이 나왔다. 아저씨는 멧돼지가 뭘 좋아하고 어딜 지나가고 언제 나타나는지 다 파악하고 있었다. 긴 밧줄로 미운 오리를 나무에 잠시 묶어 놓았다. 목은 상처가 있으니 한쪽 발에 묶었다. 고양이와 닭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아저씨! 어차피 전 도망갈때가 없다구요!”

아직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것에 섭섭해했다.

곧 신뢰관계가 형성될 테니 걱정 마.” 닭이 불쌍히 바라보며 말했다.

아저씨는 능숙하게 준비를 했다. 앞쪽 저만치 오솔길에 고깃덩이를 2미터 정도 간격으로 놓았다. 발로 땅을 아주 조심히 밟으며 준비했다. 바로 앞에는 낙엽과 누런 솔잎들이 흩어져 있었다.

미운 오리는 기대했다. 멧돼지라 하니 뚱뚱한 돼지가 떠올랐다. 아저씨가 어떻게 잡을지 상상이 안 갔다. 사냥총 같은 무기도 없었다. 밧줄과 몽둥이로 잡는다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겉모습은 그리 튼튼해 보이지도 않았다. 잔꾀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마 멧돼지는 나처럼 작은 동물일 거야.’

아저씨는 시계를 보았다.

곧 나타나겠어. 오리야 잘 부탁한다. 오늘은 너한테 달렸어.”

아저씬 뜻모를 소릴 하며 옆 산속으로 숨어버렸다. 닭과 고양이도 따라가버렸다.

미끼였다.

! !

미운 오리는 자기도 데려가라고 고함을 뿜어댔다.

좋았어! 그렇게 계속 큰 소리쳐!” 아저씨는 숲에 숨어서 응원했다.

닭과 고양이도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었다.

미운 오리는 부리를 꽉 다물어버렸다.

더 소리치란 말이야!” 아저씨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속았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럼 나를 살려주고 정성스레 치료한 것도, 잘 대해 준 것도 오늘 이날을 위해서였구나!’

배신감에 눈물이 나왔다. 겨우 좋은 인간을 만났나 싶었는데 팔자가 왜 이럴까 했다. 미운 오리는 발에 묶인 줄을 보았다. 묵직했다. 튼튼했다. 족쇄 같았다.

제발 멧돼지가 나타나지 않기만를 고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감도 잠시,

킁킁! 쿠룽! 쿠룽!

미운 오리 6개월 인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다. 작은 심장에서 두둥둥둥 북소리가 났다. 눈알을 이리저리 돌리며 멧돼지를 찾았다. 오솔길 저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스윽 스윽!

멧돼지 발걸음에 긴 풀이 스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미운 오리는 호흡이 가빠지며 단단한 부리 콧구멍에서 거친 숨소리가 나왔다. 저쪽 소리만 들어도 작은 동물이 아니었다.

드디어 저쪽에서 뾰족한 뿔이 두 개 보였다. 어금니처럼 양 옆에 툭 튀어나온 뿔! 긴 코도 보였다.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쩌벅쩌벅 걸어왔다. 미운 오리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보는 괴물이었다.

나보다 못생긴 동물이 또 있다니!’

멧돼지는 눈싸움을 원했지만 미운 오리는 고개를 돌렸다.

뒤를 돌아 날개를 파닥거리며 달렸다. 헛수고인줄 알면서도 달렸다. 날지 못할 걸 알면서도 날갯짓만 반복했다. 발에 묶인 밧줄이 허락하지 않았다.

킁킁! 쿠룽! 쿠룽!

멧돼지는 미쳐 날뛰는 오리를 보더니 더 흥분했다. 뒷발로 흙바닥을 몇 번 차더니 돌진했다. 미운 오리는 계속 날갯짓하며 날아 올랐다. 3미터 정도. 신기록을 깼다. 하지만 다시 바닥에 고꾸라졌다.

떠벅덕! 떠벅덕!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뒤통수를 뚫을 것 같았다. 뒤로돌아 괴물을 쳐다 볼 용기도 없엇다

쿠우웅!

멧돼지는 지랄발광하는 신메뉴를 보자 더욱 신이 나서 소리쳤다.

떠벅덕! 떠벅덕!

뒤통수에서 소리가 커질수록 미운 오리 심장 박동도 덩달아 빨라졌다. 발버둥 치며 날개짓 했지만 다리에 묶인 밧줄만 팽팽해졌다. 발에서 피가 났다.

쿠룽! 쿠우우웅!

드디어 멧돼지가 3미터 정도에서 박차고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미운 오리는 고개만 돌려 쳐다보았다. 어금니 뿔과 툭 튀어나온 긴 코의 콧구멍, 크게 벌린 입사이로 누런 잇빨만 눈에 보였다. 자신을 덮치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왔다.

미운 오리는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그 짧은 순간 미운 오리 머릿속에는 6개월 인생이 스쳐갔다. 별 거 없는 인생이었다. 따돌림만 당하던 인생이었다.

어쩌면 이렇게라도 죽어서 따돌림 인생을 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또 위로했다.

더 이상 자신을 덮치는 멧돼지를 쳐다보지 못했다. 눈을 감고 고개를 집어 넣었다.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돌렸다.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털썩!

파지직!

꾸우욱! 꾸에엑!!

 

아니었다. 미운 오리가 죽는 소리가 아니었다.

파다닥! 파다닥!

웬 날개짓 소리?’

미운 오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조금 빼냈다. 서서히 뒤로 돌아보았다.

멧돼지가 파다닥거렸다. 그것도 앞 발로 말이다. 그러다 비닐에 미끌려 밑으로 빠졌다.

미운 오리 바로 앞에는 함정이었다.

미리 아저씨가 함정을 깊게 파놓고 비닐을 깔아놓았다. 그 위에 낙엽과 누런 솔잎을 덮어 놓은 것이다. 밑바닥에는 나무를 송곳처럼 깎아서 꽂아 놓았다.

꾸엑! 쿠우웅! 크릉! 크릉!

송곳에 찔리는 소리였다. 멧돼지의 점프가 자신의 죽음을 재촉한 셈이다. 날카로운 고통의 숨소리는 점점 옅어졌다.

!

멧돼지가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온 몸에 시뻘건 피가 흘렀다. 네 발은 아직도 경련이 난 마냥 떨고 있었다.

좋았어! 신메뉴라 더 높이 점프했나 봐!”

배신자 아저씬 구덩이를 빼꼼히 쳐다보았다. 열심히 죽은 멧돼지를 보며 얼굴에 긴장을 풀었다.

미운 오리는 온 몸을 떨며 긴장된 얼굴을 펴지 못했다.

아저씨의 얼굴과 미운 오리의 얼굴이 대조를 이뤘다.

 

오늘 아저씨는 몇 주분의 식량을 확보했다.

지옥 갔다 온 기분 어때?” 고양이가 수염을 가다듬으며 웃었다.

너무 놀라지마. 우린 열 번도 더 갔다왔거든!” 닭이 역시 웃으며 말했다.

근데 왜 너흰 아저씨한테서 도망가지 않았지?” 미운 오리 얼굴은 아직도 지옥이었다.

그건 말이야, 지옥 갔다 온 만큼 우리한테 먹을 걸 많이 주고 잘해 주기 때문이지. 세상엔 공짜는 없거든. 함정 때문에 우린 죽을 일이 없었지. 적응되면 할 만해.” 고양이는 모든 걸 통달한 듯 침착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미운 오리는 이런 삶이 싫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도망치기로 했다.

 

또 정처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목과 발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가진 채 돌아다녔다. 또 숲속이었다.

스윽! 스윽!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또 멧돼지?’

미운 오리는 발걸음을 멈추고 나무 뒤에 숨었다. 뿔이 보였다. 멧돼지라 생각하니 온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부들부들 떨렸다.

흰 뿔이 아닌 거무스름했다. 얼굴도 정체를 드러냈다. 멧돼지가 아닌 꽃사슴이었다. 뿔 모양이 나뭇가지였다. 멋진 자태의 꽃사슴이었다.

하지만 미운 오리한테는 저 뿔이 멧돼지 어금니 이빨 같았다. 곧 자신을 들이받을 뿔이었다. 미운 오리는 서서히 뒷걸음을 쳤다. 꽃사슴은 한발자국씩 다가왔다. 인상은 귀엽지만 뿔을 보고는 멧돼지 트라우마가 생겼다. 더 빨리 다가왔다. 그 뒤로 여러 마리 꽃사슴이 뒤따랐다.

오 마이 갓이다!’

미운 오리는 뒷걸음 치다 넘어질 뻔 했다. 꽃사슴 떼가 오리를 보자 신기한 듯 더 빨리 달려왔다. 미운 오리는 파닥거리며 날았다. 바로 땅에 내려앉자 다시 달렸다.

! ! !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분명 개였다. 뒤를 돌아보니 늙은 개 한 마리가 꽃사슴떼를 막아서며 짖어댔다.

얘는 너의 친구가 아니야. 그러니 딴데 가서 놀아라 얘들아!” 늙은 개가 아이 달래듯이 말했다.

늙은 개는 마치 주인인냥 능숙하게 꽃사슴 떼를 다루고 있었다. 꽃사슴들은 멍멍 짖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돌아서 가버렸다.

늙은 개가 미운 오리를 불쌍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불쌍하긴 늙은 개도 마찬가지였다. 때가 묻어 정돈되지 않은 개털에 배는 굶어서 홀쭉했다. 크게 짖던 소리와 달리 이빨은 무뎠다. 무엇보다 눈 촛점이 이상했다.

킁킁!

이런 냄새는 처음이야. 넌 무슨 동물이냐?” 늙은 개는 오리 가까이 와서 냄새를 맡았다.

? 저도 그게 알고 싶어요.” 미운 오리는 초점없는 늙은 개 눈을 쳐다보았다.

, 내가 눈이 좀 어두워. 바로 앞만 겨우 볼 수 있지. 늙으면 이렇게 된단다. 넌 젊었을 때 눈 영양제 잘 챙겨 먹으렴.”

킁킁! 또 냄새를 맡았다.

오리 같기도 하고, 넌 좀 특별한 동물 같구나.”

개 아저씨, 제발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알다시피 내가 앞을 잘 볼 수 없구나. 원래 우리 개들은 후각이 발달했잖아. 못 맡아 본 냄새가 나서 이리로 와 봤지. 저 장난꾸러기 꽃사슴이 있어서 널 도와준 것 뿐이야.” 늙은 개는 미운 오리 얼굴을 앞발로 만져보았다.

그럼 개 아저씨도 저와 같이 있지 못하겠군요. 절 버리시겠군요.” 미운 오리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떨궜다.

아니, 그 반대야.”

반대라뇨?” 미운 오리가 얼른 고개를 들었다.

난 얼마전 주인한테 버림받았어. 늙고 병드니 버리더구나. 어렸을땐 엄청 귀여움 받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초라하게 살고 있어.”

미운 오리는 모처럼 비슷한 처지의 동물을 보고는 반가움에 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나도 니가 무슨 동물인지 궁금하구나. 니 정체를 찾을 동안 내 눈이 되어 주겠니? 그럼 나도 너를 도와주마. 죽기 전에 새로운 동물 하나 더 알고 간다면 저승에서도 기쁘겠지.”

미운 오리는 저승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았다. 몇 번이나 저승으로 이사 갈 뻔 했다.

제 소원이 죽기 전에 제 정체를 알고 죽는 거예요. 개 아저씬 죽기 전에 뭐 하고 싶으세요?”

어린 동물이 죽음을 얘기하니 늙은 개는 웃음만 피식 나왔다.

? 난 죽기 전에 조금만 더 살았으면 하는 거지. 단지 그것 뿐이야. 나이가 들수록 꿈이 작아지거든. 그냥 살아있는 게 감사하지.”

 

미운 오리가 눈이 되어 둘은 여행을 떠났다. 미운 오리가 앞장 서고 늙은 개는 코로 냄새를 맡으며 따라갔다.

앞에만 보지 말고 가끔 위로도 보거라.”

그 말에 미운 오리는 위로도 쳐다보았다. 시커먼 그림자가 자신을 향해 날아왔다.

엎드리세요! 개 아저씨!”

늙은 개는 반사적으로 엎드렸다.

매였다. 검을 날개를 활짝 펴고 스칠 듯 공격을 해왔다.

날아갔느냐?” 늙은 개는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 , 아니요. 다시 돌아와요!”

매가 큰 날개를 휘저으며 불법 유턴을 했다.

빨리 도망가요!” 미운 오리는 뛰려고 했다.

아니, 어차피 우리가 늦어. 우릴 덮치기 3초 전에 말하거라.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물어버릴 테니. 나보다는 널 공격할 거야.”

, 알겠어요.”

미운 오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에서 돌진하는 매만 쳐다보았다.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초를 세었다. 늙은 개도 돌아섰다. 귀를 쫑긋 세웠다.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 맡을 준비를 했다.

오초, 사초, 삼초에요!

늙은 개는 네 발을 땅바닥에 눌러 도움닫기 직전 폼을 잡았다. 입은 꽉 다물었다. 매의 야생 냄새가 코 끝에 다가왔다. 그리고 점프!!

다물었던 입을 크게 벌려 정면으로 돌진하는 매와 얼굴 박치기 직전이었다. 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 벌린 개를 보자 가까스로 옆으로 비켜 가며 날았다.

!

매 얼굴대신 오른쪽 날개를 물어뜯었다. 절반의 성공이었다.

처음엔 늙은 개가 딸려 올라가다가 무게에 못이겨 매는 곧 곤두박질 쳤다.

으으응!

늙은 개는 물고 놓칠 않았다. 매는 파닥거렸다. 늙은 개는 아이가 엄마 치맛자락 잡듯 놓지 않았다.

파다닥!과 으으응!의 결투였다.

매는 날카로운 발톱으로 개를 할퀴며 떼어내려 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늙은 개는 오직 낡은 이빨에만 힘을 쏟았다. 10여 미터 끌려가며 둘은 이종격투기를 벌였다.

! !

보다못한 미운 오리도 매를 뒤에서 쪼아댔다. 늙은 개는 있는 힘을 다해 날개를 물어뜯었다.

까아악!

매는 까마귀 같은 비명을 지르며 오른쪽 날개를 흔들어 댔다. 또 흔들어 댔다.

퍼드득!

드디어 날개가 늙은 개 입에서 떨어졌다. 동시에 늙은 개 틀니도 빠졌다. 매는 비틀거리며 중심이 흔들린채 날아갔다. 술주정뱅이 같았다.

내 틀니! 찾아다오!”

, 여기 있어요.” 미운 오리는 얼른 주워 끼워 주었다.

개발에 땀나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 늙은 개는 한숨을 쉬며 틀니를 오물거렸다.

고마워요. 오늘 두 번이나 절 구해주셨어요.”

앞으로 이렇게 전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절박한 상황이 되면 못 하는 게 없거든.”

이미 그렇게 살았다구요!’

 

둘은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녔다. 여러 동물을 만났다. 하지만 미운 오리가 누군지 아는 동물은 없었다.

아직 어려서 완전한 모습을 못 갖춰서 그럴 거야. 좀 더 자라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늙은 개는 위로해 주었다.

미운 오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느덧 몇 주가 지났다.

둘은 호숫가를 지나게 되었다. 목이 말랐다. 바람이 살랑 불어 호숫가 물결이 일렁거렸다. 잔잔한 파도가 일 듯이 물결이 퍼져 나갔다.

늙은 개는 고개를 숙여 호수를 바라봤다. 눈이 어두워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솔직히 늙은 얼굴을 보기 싫었다.

눈 어두운 게 좋을 때도 있구나.’

미운 오리도 호수를 바라보았다. 일렁거리는 물결에 하늘과 구름, 저 멀리 날아가는 새들이 일그러지게 비쳤다. 그속에 일그러지는 자기 얼굴도 보았다. 처음엔 일그러져 얼굴을 알아 보지 못했다. 역시 미운 오리도 자기 얼굴을 보기 싫었다.

어떠냐? 이제 너도 청소년 오리니 얼굴이 좀 뚜렷해졌을 걸?” 늙은 개는 미운 오리쪽으로 고개를 돌려 물었다.

글쎄요.”

용기를 내 호수를 쳐다보았다.

바람이 멈추고 물결이 잔잔해지자 작은 심장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시작됐다.

더 못생겨졌으면 어쩌지?’

그런데 달랐다! 확실히 달라졌다!

오징어 얼굴이 사라졌다. 남의 얼굴이 아닐까 하며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오리를 닮았지만 뭔가 성숙한 얼굴!!, 귀품이 났다.

개 아저씨! 뭔가 다른 것 같아요!” 미운 오리는 얼굴을 개 아저씨한테로 가져갔다.

어디 보자····.” 늙은 개는 어슴푸레 눈을 떠 미운 오리 얼굴을 보았다. 발로 얼굴도 만져보았다. “정말이구나! 달라졌어! 넌 오리가 아니야. 더 고귀한 새 같구나!” 개 아저씬 계속 발로 미운 오리 얼굴을 쓰다듬었다. 킁킁! “냄새도 더 고귀한 향기로 바뀌었어!”

그때 저쪽에서 놀고 있던 기러기 무리들이 수근거렸다. 뭔가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다 저기서 크고 하얀 날갯짓의 새떼가 날아오자 기러기는 도망치듯 날아갔다.

허연 새떼가 호수에 내려 앉았다. 그 자태가 곱디고운 한폭의 인상주의 화풍이었다.

미운 오리는 그 새들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대장 새가 미운 오리를 보고는 부리를 갸웃거렸다.

넌 여기서 뭐하니? 무리를 놓친 거냐?”

? , 네에. 어려서 많은 걸 놓쳤어요. 제 무리를 아세요?”

하하하하!!” 허연 새무리들이 어이없어 하며 웃었다.

미운 오리는 어안이 벙벙했다.

너도 백조잖아. 우리 같은 백조라구! 몰랐어?”

백조? 제가 백조라구요? 정말요?” 미운 오리는 다시 고개를 숙여 호수를 쳐다보았다.

맞았다. 호수에 비친 얼굴과 저 허연 새무리들 모습이 비슷했다.

무리를 자세히 보니 자기 또래 청소년 백조들이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오호, 그래! 백조라는 동물이었어! 넌 백조야!” 늙은 개는 감탄했다. “난 예전에 주인집에만 있어서 저런 고귀한 동물을 본 적이 없었거든. 그래서 백조 냄새도 몰랐던 거지. 정말 잘 됐어. 잘 됐다구!” 늙은 개는 자신의 일인냥 기뻐했다.

미운 오리는 확인, 또 확인했다. Ctrl+C, Ctrl+V 무한 반복했다. 아무리 봐도 지겹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 못생겼던 얼굴은 고귀한 품격의 얼굴이 되기 위한 고난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곧 미운 오리는 다시 힘이 빠졌다. 얼굴엔 그늘이 졌다.

근데 전 날 수가 없잖아요?” 미운 오리 얼굴이 다시 오징어가 됐다. 고개를 떨궜다.

아니야, 그건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아서 그래. 몇 번 연습하면 날 수 있어.” 늙은 개가 말했다.

맞아. 백조가 날지 못하면 오리와 뭐가 다르겠니? 날아 봐!” 대장 백조가 부추겼다.

오리와 다를게 없다란 말에 미운 오리 눈엔 힘이 들어 갔다. 자존심이 상했다.

절박하면 다 할 수 있어!’

스스로 최면을 걸고 시도를 했다.

땅에서 뛰면서 날았다. 10여 미터 날았다. 날갯짓을 빠르게 했다.

! 땅에 떨어졌다. 포기 하지 않았다. 분명 될 것 같았다.

도움닫기를 더 길게 해서 날아 봐! 부딪히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잘 이용해. 저항하지 말고 몸을 맡겨서 바람을 이용하면 돼. 고개 들고 날개 각도도 잘 맞춰 봐. 처음에 너무 파닥거리면 안돼. 서서히 젓는다는 기분으로.” 대장 백조가 조언했다.

다다다다····

이번엔 더 먼 거리에서 발걸음을 빨리하며 뛰었다. 바람을 맞이했다. 저항하지 않았다. 날개 깃털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더 가벼웠다. 고개를 들었다. 부리를 앞으로 내밀고 콧구멍으로 바람을 한껏 들이마셨다. 온 몸에 공기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날갯짓을 했다.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알아차렸다. 파닥거리는 게 아닌 한 번에 크게 저었다. 떴다. 정말 떴다. 45도 각도로 날아 올랐다.

날았어. 날았다구요!” 미운 오리가 아래를 보며 외쳤다.

왼쪽으로 조금씩 회전을 해봤다. 또 왼쪽으로 회전 해봤다. 호숫가로 돌아와 내려앉았다.

철퍼덩!

호수에는 불시착이었다. 하지만 나는 데는 성공했다.

착지 연습만 좀 하면 10점 만점에 10점 되겠어. 넌 백조가 확실히 맞아!” 늙은 개가 말했다.

내가 백조라니! 아직도 믿을 수 없어요!” 미운 오리는 호수에 떠 있는 자신의 몸을 신기한 듯 훑어보았다.

넌 백조 맞아! 그럼 이제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어때? 우린 겨울 철새라 여긴 곧 따뜻해지거든.” 대장 백조는 물을 한 모금 축였다.

하지만 가기 싫었다. 또 못생겨졌다,

? 가기 싫어?” 늙은 개는 갸우뚱했다.

복수하고 싶어요. 그놈들한테 복수하고 싶어요.” 미운 오리는 다른 백조들을 쳐다보고는 늙은 개를 쳐다보았다. “제가 이렇게 멋진 백조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이젠 제가 그놈들을 따돌릴 거예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계속 못생긴 얼굴이 되었다.

복수라. 이미 넌 백조야. 그들과 상대할 일도 없잖아. 이젠 백조 무리 따라서 행복하게 살면 돼.” 늙은 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래. 따뜻해지기 전에 떠나자. 우린 곧 가야 돼.” 같은 또래 청소년 백조가 재촉했다.

미운 오리는 망설였다. 한참 백조 무리를 쳐다보았다.

머릿속엔 그놈들을 떠올렸다.

아니에요. 전 복수 할 거예요. 이미 전 어려서부터 날씨에 적응됐어요. 철새 의미가 없어요. 사계절 내내 견딜수 있는걸요.” 미운 오리는 이젠 결정했다는 각오를 한 얼굴이었다.

다른 백조들은 목을 축이고는 굳이 더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 그럼 할 수 없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보자꾸나.” 대장 백조가 먼저 날갯짓을 했다.

다른 백조들도 날아갔다.

늙은 개는 안타까웠다.

미운 오리는 방금 백조들처럼 우아하게 호숫물을 한 모금 축였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물은 제주 삼다수처럼 고귀함 그 자체였다. 늙은 개는 미운 오리를 지그시 쳐다만 보았다. 그리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그들을 찾아가 보자꾸나. 나도 여행도 하고 아마 마지막 추억이 될 거야.”

미운 오리는 신이 났다. 미운 오리는 하늘 위에서, 늙은 개는 땅에서. 평행선처럼 찾아갔다. 나는 법을 익혔으니 그놈들을 찾아가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미운 오리가 먼저 도착했다.

여전히 오리 그놈들이 있었다. 그놈들도 자신처럼 청소년 동물이 되어 있었다.

오리들은 하늘에서 멋진 날갯짓으로 내려오는 새를 보았다. 그리고 저멀리 땅에서 늙은 개가 오는 것을 보았다. 희한한 광경이었다.

미운 오리는 그들 위로 몇 바퀴나 돌았다. 알아채지 못했다.

! 날 알아챌 리가 없지! 불쌍한 놈들!’

더 낮게 그들 위로 날았다.

! 정말 아름다운 새야!” 제일 많이 괴롭혔던 놈이 소리쳤다.

맞아. 맞아다른 놈들도 맞장구를 쳤다.

하하하! 바붕, 멍충이들아! 나라고! 나란 말이다!!” 미운 오리는 제발 얼굴을 보란 듯이 낮게 날았다.

오리들은 분명 들어본 목소리였다. 하지만 얼굴과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곧 늙은 개가 혓바닥을 내밀며 도착했다. 오리들은 늙은 개한테는 관심이 없었다.

저 새가 바로 너희들이 괴롭혀서 가출했던 그 미운 우리 새끼 아니 아니, 미운 오리 새끼야.” 늙은 개가 가쁜 숨을 몰아내며 외쳤다.

모두들 굳어버렸다. 엄마 오리까지도.

이제 알겠냐? 못난이들아! 난 원래 백조 새끼였다구! 너희같은 오리 새끼가 아니였단 말이다! 이젠 미운 오리가 아니고 미운 백조란 말이야! 제대로 알고 날 미워했어야지 이 오리들아! 하하하!” 미운 백조는 그동안 쌓였던 감정의 더러운 찌꺼기를 쏟아냈다. 저 어둑 컴컴하고 깊숙한 서러움 밑바닥에서 끌어올려 내뱉었다. 큰 덩어리였다. 그래도 아직 다 쏟아내지 못했다.

정말 니가 그 백조 맞아?” 엄마 오리는 너무 반가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맞아요 엄마! 저라구요! 이렇게 멋진 백조로 컸단 말이에요!”

그제야 오리들은 기억이 났다. 따돌림 받던 오리가 저렇게 멋진 백조였다니 너무 얼토당토 않았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저놈은 백조였던 것이다. 부러웠다.

다들 차라리 자기가 미운 백조 새끼로 태어날 걸 하는 표정이었다.

미운 백조는 그놈들의 부러워하는 표정을 보고는 마음껏 즐겼다. 다시 몇 바퀴 휙 돌더니 늙은 개와 옆 동네로 가버렸다.

옆 동네 다른 동물들도 부러워했다.

이제 좀 속이 시원해?” 늙은 개가 물었다.

당연하죠. 아까 부러워하는 눈빛들 보셨죠? 하하!”

미운 백조는 당분간 떠나지 않고 주변을 날아다니며 마음껏 뽐냈다.

가는데마다 부러움을 받았다. 감히 다른 동물들은 백조에 접근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지나자 더이상 친구가 없었다. 다들 자신을 너무 고귀한 존재로 여기니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이젠 뽐내는 것도 지겨웠다. 오히려 평범하게 노는 저들이 약간은 부러웠다.

늙은 개는 이렇게 될 줄 다 알고 있었다.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이제 나도 늙어서 더 이상 돌아다는 게 힘들어. 마지막을 여기서 마감을 해야겠구나. 내 마지막 소원 좀 들어 주겠니?”

소원요? 그럼요. 생명의 은인이신데 들어들여야지요.”

그럼 다시 널 괴롭혔던 친구들을 만나러 가보자.”

네에? 왜요? 난 그놈들이 싫어요. 그놈들도 절 싫어하잖아요?” 미운 백조는 납득할 수 없었다.

그건 서로가 잘 몰라서 그랬던 거란다. 내 마지막 소원은 우리 동물끼리 잘 지내는 거란다.”

그놈들이 날 싫어할 텐데.”

내가 말해 볼 테니까 일단 가보자. 언제까지 너 혼자만 뽐내면서 살 순 없잖아?”

그 말은 맞았다.

마지막 소원이니 일단 따라나섰다.

 

오리들은 다시 찾아 온 미운 백조를 보고는 주눅이 들었다. 또 뭔 자랑질을 하려나했다. 다들 백조와 늙은 개 주위로 모여들었다. 엄마도 함께 있었다.

늙은 개가 죽기 전에 마지막 조언 한 마디 하려 합니다.”

늙은 개가 죽는다는 말에 다들 엄숙했다.

나도 인간들한테 주워 들은 말을 빌려서 말하자면,

하늘은 땅이 있어 높아 보이고, 검은색은 흰색이 있어 더욱 검어 보이지.

축구에서 골을 넣은 사람이 박수받는 이유는 누군가 어시스트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늘이 따스한 햇살보다 못해 보이지만 더운 여름에는 그늘을 찾게 마련이지.

결국 다 필요한 존재들이란다. 서로 다르다고 따돌릴 게 아니지.

백조라고 품격이 높아보일 이유가 없으며 오리라고 하찮게 보일 이유도 없단다.

나름대로 다 제 역할을 해서 우리 동물의 세계가 돌아가는 거란다.

난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어.”

미운 백조도 청소년 오리들도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 오리도 뭔가 깨달은 것처럼 말을 꺼냈다.

맞아. 서로 부러워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단다. 각자 자기 할 일 하면 되고 다양성을 인정하면 돼. 우리 각자가 습관이나 성격,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다르듯 겉모습도 그냥 다른 거란다. 서로를 잘 봐봐.”

오리들과 미운 백조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직 얼굴엔 장난끼 어린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다.

오리들이 자기를 쳐다보자 미운 백조는 이제 뽐내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백조 니가 이 오리들한테 나는 법 좀 가르쳐 주면 되겠네.” 늙은 개가 다시 말을 이었다. “비록 너처럼 멀리 날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파닥거리는 것보다는 좀더 멀리 그리고 높이 날게 할 수 있을 거야.”

오리들은 날게 해준다는 말에 기대가 잔뜩됐다.

그거 잘 됐네.” 엄마 오리도 맞장구를 쳤다.

개 아저씨 정말 저희도 지금보다 더 멀리, 높이 날 수 있어요?” 제일 많이 괴롭혔던 오리가 물었다.

그럼. 그러면 너희들은 아마 오리 올림픽에서 멀리 날기 선수가 되겠는 걸? 허허허!” 늙은 개는 틀니가 빠질만큼 웃었다.

오리들은 모두 웅성댔다.

모두들 미운 백조를 쳐다보았다. 더 이상 미운 백조가 아닌 고마운 백조를 대하듯 쳐다보았다.

늙은 개가 슬쩍 미운 백조에 다가와서는 귓속말로 얘기했다.

이제 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걸로 뽐내면 돼. 그럼 얘네들 모두가 널 진정 고마운 백조로 대할 거야. 적보다는 동지가 낫지 않아?”

미운 백조는 귀로 들으면서 오리들 표정을 봤다. 마음이 움직였다.

모두들 더이상 자신을 괴롭히던 표정이 아니었다.

한 번 해볼게요.”

와아!!” 오리들은 폴짝 뛰었다.

 

고마운 백조는 잘 적응했다. 혼자 잘난 척 하느니 이렇게 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어느새 자신이 겨울 철새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채 오리들과 변함없는 생활을 했다.

오리들은 모두 예전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나는 오리가 돼 가고 있었다.

엄마 오리도 그 모습을 보며 또한번 눈물을 흘렸다.

늙은 개는 이 모든 걸 지켜보며 따스한 햇살아래 눈을 감았다.

 

# 못다 한 이야기

 

!

잠자는 아침을 깨우는 총소리가 울렸다.

퍼드득!!

기러기떼가 총소리에 밀려 V자로 날아갔다.

파다닥!!

오리들도 날갯짓했지만 날아가는 흉내만 낼 뿐이었다.

이 시끄러운 아침에 오직 엄마 오리만은 꿈쩍하지 않았다.

 

꽤괙!!

엄마 오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났다.

엄마 백조였다. 엄마 백조가 총을 맞은 것이다.

멀리서 사냥꾼이 억새풀을 헤치고 오는 소리가 났다.

엄마 백조도 알을 낳은데다가 총까지 맞아서 움직이기 힘들었다. 아랫배에서 피가 났다.

점점 사냥꾼이 다가오는 소리가 커졌다.

할 수 없었다. 힘을 다해 움직였다.

알이 네 개지만 모두를 살릴 순 없다. 그중 가장 큰 걸 부리로 물어서 움직였다. 최대한 억새풀이 많은 곳으로 도망갔다.

아이, 이런! 어미도 도망가고 알만 남았잖아! 이거라도 가져가야지.” 사냥꾼은 짜증난 목소리로 남은 알을 낚아채듯 가져가버렸다.

엄마 백조는 눈물이 났다.

죽어라 도망가다 저 앞에 알을 품고 있는 오리를 발견했다.

그래 오리한테 부탁해야겠어!’

좀 더 힘을 냈다. 하지만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다.

알을 품는 오리 뒤에서 커다란 뱀이 혀를 내밀며 오리에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같은 엄마로서 그냥 보고 있을 수만 없었다. 엄마 백조는 본능적으로 뱀이다!” 라고 웅얼거렸다. 그 순간 부리로 물고 있던 알이 떨어졌다.

털썩!

천만다행히 푹신한 풀숲에 떨어졌다.

뱀이다 라는 소리에 알을 품던 엄마 오리가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큰 뱀이 있었다. 그 뒤에는 다 죽어가는 백조가 땀흘리는 얼굴로 있었다. 하지만 엄마 오리는 알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 도와주세요! 백조 엄마!!”

백조는 본능적으로 부리로 뱀을 쪼아댔다. 뱀은 이제 오리가 먼저가 아니었다. 저 피흘리는 백조를 먼저 죽여야했다. 고개를 바로 돌려 공격했다. 피흘리는 걸 보자 더욱 과감히 공격했다.

뱀대가리를 백조에게 들이밀자 백조는 단단한 부리로 막았다. 뱀대가리와 부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퍽퍽 나름 크게 울렸다. 하지만 단단한 부리를 물거나 부딪혀봤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뱀은 작전을 바꿨다. 피흘리는 배쪽으로 공격했다. 백조는 점점 힘이 빠졌다. 마지막 힘을 냈다.

뱀이 배를 공격하자 넓적한 오른발로 싸다구를 날렸다.

! 뱀대가리가 허물허물 180도로 돌아가 억새풀에 나뒹굴었다. 그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엔 넓적한 왼발로 뱀의 목을 꾹 밟았다.

뱀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대가리만 들어 흔들어 제치면서 백조를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고 혀를 낼름거렸다. 헛수고였다. 목을 꽉 밟고 있는 이상 뱀대가리만 흔들뿐이었다. 백조도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저 엄마 오리를 살려야 백조 알도 살릴 수 있었다. 흔들어 제치는 뱀대가리를 향해 부리로 쪼아댔다.

쑤욱! 강력한 한 방이었다. 부리가 뱀의 한쪽 눈을 쪼았다. 피가 났다.

뱀은 몸부림을 쳤다. 계속 쪼아 죽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점점 힘이 빠졌다. 마지막을 오른발로 뱀대가리를 차버렸다. 동시에 힘이 빠져 뱀이 발에서 벗어났다. 뱀은 큰 한 방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틀거리며 숲속으로 달아났다. 그렇게 뱀은 복수를 꿈꾸며 애꾸눈 뱀이 되었다.

 

정말 고마워요. 백조 엄마!!” 엄마 오린 여전히 움직이지 못했다.

백조 엄마는 옆에 알을 부리로 살며시 집었다.

이 알 좀 같이절대 백조 새끼란 말은 하지.” 백조 엄마는 알을 오리 엄마 엉덩이 아래 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며 쓰러졌다.

백조 엄마! 백조 엄마!” 오리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엄마 오리는 백조 알도 함께 품으며 다짐했다.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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