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도깨비 검사』

2006.10.16 21:2710.16

                                                                                        [N 소설]
Written By K.kun




                                         『도깨비 검사』



  서 론

  아아, 안녕하십니까?

  제목을 보고 짐작은 하셨겠지만 어쩜 이영도 님의 글을 좋아하시는 분이
라면 이 단편을 싫어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편을 팬픽션이나
패러디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나 저는 단편의 장점이 무한한 소재들을
끌어올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이걸 컨의 단편 중 하나라고 주장할 겁니다.

  이 단편의 세계는 케이O 드라O가 나가를 잡아먹던 시대도, 원시제 그리O
가 제국을 만들던 시대도, 대호왕 사O 페O가 마루나O를 타고 하텐그라O
로 달려가던 시간도 아닙니다.

  그저 도깨비가 나오고 나가가 나올 수 있으며 인간이 나오고 레콘이 나올
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유료도로당O이라던지 규리O의 장녀 정우 규리O
는 나오지 않습니다. 또 하나, 컨의 단편이라니까요.

  이런 젠장. 정우의 이름이 나와 버렸네……. 그럼 시작합니다.




「흑사자가 대지를 달리고 용이 하늘을 날아다니던 시절, 한 도깨비가 검
을 들고 세상에 나왔다. - 사과나무 아래에서 해도 모르네의 수기 중…….」




“젠장. 웃겨서 배가 아프네.”

  도깨비의 주먹이 작렬하자 참을 수 없는 통증에 허리를 굽히고 양손으로
배를 부여잡은 소년의 말에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본 도깨비는 잠시 말을 잃
어버린 듯 했다. 보통은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야 정상이다. 그러다
가 갑자기, 소년이 허리를 굽힌 상태 그대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

“욱!”

  아무리 인간보다 체격이 큰 도깨비라지만 레콘이 아닌 이상 온힘을 다한
소년의 공격을 맞고도 멀쩡할 리가 없었다. 뒤로 주춤주춤 물러난 도깨비
는 화난 표정을 지으며 다짜고짜 팔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맞아라!”

  배의 통증은 거짓말이었는지 소년은 언제 그랬냐는 듯 보는 사람에게 때
려주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얄미운 미소를 지으며 혀를 날름거
린 다음 잽싸게 도깨비의 팔을 피했다.

“헤헷. 이래보여도 무법도시 페이그라쥬에서 자라며 키운 맷집이라고. 도깨
비의 약해빠진 주먹질에 내가 당할 거 같아?”

  자신의 복부를 때린 도깨비를 향해 코웃음을 날리며 뒤로 돌아선 소년은
곧장 달려 나갔다. 어차피 들어온 문에는 자신을 잡아온 도깨비가 막고 있
는 탓에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반대편으로 달려가 멀쩡한 나
무 의자를 잡아 창문에 던지자 오래된 나무창이 박살나면서 소년이 드나들
만한 탈출구가 생겼다.

“어딜 도망가려고!”

“우앗 뜨거!”

  창문으로 몸을 던지려던 소년은 뜨거운 열기에 움찔하며 멈춰 섰다. 소년
의 공격에서 금세 회복한 도깨비가 좌우로 양팔을 쫙 벌리자 창문이 있는
벽에서 시뻘건 불기둥들이 솟아올라 도주로를 차단했다.

“이런 미친 자식! 사람을 태워 죽이려고 하다니! 그러고도 네가 도깨비냐!”

  욕설을 내뱉으며 뒤돌아서자 방에 불을 지른 도깨비는 불기둥에서 나오
는 빛 때문에 더욱 환해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대로 나는 미쳤을지도 모르지.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건 즈믄누리
무사장만이 사람을 태워 죽일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도깨비는 등 뒤로 손을 가져가 자신의 허리에 매달린 물건
을 꺼냈다. 소년의 눈에 비친 긴 물체는 특이한 모양의 검이었다.

  레콘은 평생을 함께 할 무기를 별철로 만든다. 허나 즈믄누리의 대장장이
들은 일반적으로 쇠를 이용해 무기를 만든다. 허나 도깨비가 들고 있는 검
은 나무와 쇠가 합쳐져 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다니는 검보다 훨씬 커서 소
년의 키만큼 긴 검신의 바깥쪽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지만 안쪽은 빛을 반사
할 정도로 반짝반짝 닦인 쇠가 채워져 있다. 어찌됐든 그건 검이었고 바깥
쪽이 나무로 되어 있어 베어지지는 않겠지만 맞으면 꽤나 아플 것 같아 보
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걸 느낀 소년의 외침이었다. 그러자 도깨비가 한쪽
눈을 감았다.

“말도 안 되는 건 나도 마찬가지네. 자네의 맷집이 그리 세서야 주먹으로 기
절시킬 수도 없지 않는가. 전심전력으로 자네를 기절시켜 죄인도(罪人島)
로 끌고 가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겠네. 나도 이것만큼은 사용하고 싶지 않
았지만…….”

“도, 도깨비 검사라니! 이게 말이나 돼?! ‘그걸’ 무서워하는 주제에 검을 들
어?”

  소년이 말한 ‘그걸’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 아는 도깨비는 잠시 인상을 찌푸
렸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 천천히 자세를 잡은 도깨비는 눈으로 상대를 노
려보며 말했다.

“…글쎄― 그건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 끝나자 소년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깨비의 눈을 쳐다봤을 뿐
인데 마치 마법에 걸린 토끼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움직이지 말게나. 만약 자네가 움직여서 잘못 맞으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
네.”

  상상만 해도 무서운 협박을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하는 도깨비가 검을 든
손을 치켜 올리자 소년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통증을 느낄 사이도 없이 순
식간에 기절해버렸다. 머리에 살짝 검을 맞았을 뿐인데도 소년이 쓰러지자
도깨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검을 거뒀다.  아무래도 협박이 상당한 효
과를 거둔 모양이다. 그때 바깥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 누구시죠?”

“이 방에 의자 하나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의자를 바깥으로 날려버리지 않았냐는 물음에 도깨비는 멋쩍은 듯 웃으
며 머리를 긁적였다. 문을 열자 여관 주인이 빠르게 눈을 굴리며 방 안의 상
황을 살폈다. 도깨비가 여관을 찾아와 현상금이 걸린 도둑이라며 인상착의
가 똑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냐는 질문을 했을 때  여관 2층에 머물고 있었
던 소년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식탁에는 도깨비가 직접 들고 올라간 음식
이 남아있었고 의자가 하나 부족한 건 분명한데 불기둥이 활활 타오르
고……. 자기도 모르게 여관 주인은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우악! 불이다! 불이다! 맙소사 우리 여관에 불이 났어!”

  여관 주인보다 더 당황해버린 도깨비는 황급히 팔을 휘둘러 불을 껐다. 미
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그는 방안에 피어있던 불기둥은 물건을 태울
만한 열기는 가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벽면에 그을린 흔적이 없고 침대
와 장롱이 타지 않았다는 점을 차근차근 설명하자 여관 주인은 그제야 간신
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두려운 표정이다.

“창문에 대한 수리비는 나갈 때에 숙박비와 함께 지불하겠습니다. 정말 죄
송합니다.”

“아니 괜찮아요. 그, 그럴 수도 있는 거지요.”

  여관 주인이 주는 나무 의자를 받고 방문을 닫은 도깨비는 한숨을 내쉰 다
음 바닥에 쓰러진 소년을 바라봤다.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밥은 먹어야 내일 또 걸을 수 있을 건데.”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아…… 죽겠다.

“이 악당 같은 놈아! 배가 고프단 말이야!”

“…….”

  화훼애호가로 널리 알려진 지코마의 성주 지타타가 애지중지 키우던 희귀
종 ‘사마귀꽃’을 훔쳐 무법도시 페이그라쥬의 암시장에서 당당하게 본인이
경매한 죄로 현상금 금편 50닢이 걸린 소년의 이름은 케이타. 열다섯 살. 페
이그라쥬 출신이다.

  케이타의 손을 묶은 포박에 연결된 줄을 붙잡고 뒤따라가던 도깨비는 어
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락 악을 지르는 소년의 뒤통수를 쳐다봤다.

“악당은 내가 아니라 자네고……. 그러게 자네가 어제 도망치려고 하지 않
았으면 저녁밥을 먹고 새벽에 출발했을 거 아닌가?”

“우아악! 내 밥을 네가 먹어치웠잖아!”

“자네가 일어나지 않기에 본의 아니게 내가 먹었지. 식은 음식은 맛이 없다
네.”

“우오오! 이거 당장 풀어! 때려죽일 테다!”

“아직 어린 킴이 험한 말을 하는군. 험한 혀는 건강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
라 수명단축에도 큰 영향을 끼치지. 조심하게.”

“아아아! 이 망할 자식! 당장 이거 풀어! 내가 왜 죄인도로 가야하는 건데!
그건 내가 정당하게 일해서 번 노동의 대가였다고!”

“나도 정당하게 일해서 먹고 살아야하기에…….”

“…….”

  케이타는 잠시 말을 잃은 듯 했다.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줄 깨달은 소년
은 버럭 악을 질렀다.

“그게 말이 되냐! 도깨비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어디 있어!”

“비우 구마리. 내 이름은 비우 구마리지 도깨비가 아니네.”

“비우 구마리라고? ……내가 말하는 건 그게 아니잖아! 멋대로 화제 돌리
지 마!”

  비우는 큼직한 손가락을 귓구멍에 넣어 휙휙 돌려 귀지를 파낸 다음 인상
을 찌푸렸다.

“그렇게 악을 쓰면 목이 아프지도 않은가? 나가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겠
네.”

“으아아! 헛소리 그만 지껄이고 날 풀란 말이다!”

“계속 말을 할수록 배고파질 텐데.”

  1시간 후, 케이타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쉬어버린 목소리로 중얼거렸
다.

“아아, 더는 못 가. 다리 아프고 배고파. 차라리 날 죽여.”

  아예 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는 케이타의 모습을 본 비우는 곤란하다는 표
정을 지었다. 소년에게 다가가 수통의 뚜껑을 열어 입에 물을 흘려보낸 그
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왜 새벽에 출발한 줄 아는가?”

“헉헉헉. 뭐라고?”

“자네에게 걸린 현상금 말인데, 생존여부는 상관없단 말일세. 여기서 거 뭐
시냐, 목을 잘라서 가져가도 되는데 그 방법은 아무래도 그걸 보니까…….
흠흠. 그래서 난 자네를 살려서 죄인도로 압송하는 거네. 이 근방에 있는 현
상금 사냥꾼은 나 말고도 레콘 타유다가 있는데 그 친구는 워낙 난폭해서
말이지.”

  비우는 손으로 목을 써는 동작을 취하며 말을 마쳤다.

“킴 정도는 손쉽게 요리할 수 있을 거야.”

  시퍼렇게 질러버린 얼굴로 케이타는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고도 네가 도깨비냐! 사람을 협박하다니!”

“그러게 목소리 높이지 말란 소리네. 조금만 더 걸으면 작은 냇가가 나오니
까 거기서 쉬도록 하지. 어서 일어나게.”

  케이타는 곧바로 일어섰다.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도저히 상냥하고 친절하게 보이지 않는 도깨비
의 이름은 비우 구마리. 이름에도 드러나듯 구마리에서 태어난 도깨비다.
그는 도깨비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기형검 이도(二刀)의 주인이며 앞
서 말했듯이 검사이자 현상금 사냥꾼이다.

  비우의 말을 믿고 냇가까지 조금만 더 걷기로 한지 2시간. 냇가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케이타가 입을 다물고 있는 이유는 입에 육포를 물
고 있었기 때문이다. 질겅질겅 육포를 씹으며 ‘언젠가 나오겠지.’라는 심정
으로 걸음을 걷던 케이타는 갑자기 비우가 멈춘 탓에 넘어질 뻔 했다.

“아씨. 이게 무슨 짓이……웁!”

  빠르게 달려와 케이타의 입을 막고 그를 들쳐 업은 비우는 길에서 벗어나
숲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뭔가 심각한 일이라는 걸 알아차린 케이타도
비우의 긴장된 표정을 보곤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
와 함께 거대한 양손검을 어깨에 걸친 하얀 깃털을 가진 레콘이 하늘에서
내려와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었던 길에 착지했다.

“쳇. 잠깐 사이에 눈치를 채고 도망갔나?”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레콘은 부리를 딱 부딪친 다음 무릎을 굽혔다 폈
다. 그 반동을 이용해 다시 힘차게 뛰어오른 그는 순식간에 하얀 점이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그제야 비우는 케이타의 입에서 손을 땠다.

“설마 저 레콘이?”

  소년의 물음에 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레콘이 타유다다. 여관 주인에게 우리 얘기를 들었나보군. 예상보다 빠
르게 좇아왔는데.”

  별철로 만든 양손검이 자신의 목을 뎅강 자르고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하
던 케이타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에 잡아먹히는 동안 비우는 인상을 찌푸
리며 고민에 빠졌다. 죄인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요 앞에 있는 냇가를 건
넌 다음 나룻배를 타고 테막스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는 거다.

  조금 전까지 길에 있었던 레콘 타유다가 뛰어오른 방향은 냇가가 있는 곳
이었다. 그도 현상금 사냥꾼인 만큼 여기서 죄인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알고 있다. 비우는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수 없군. 정말 싫었는데.”

  허리에 찬 기형검 이도의 손잡이를 꽉 붙잡은 비우의 모습을 본 케이타는
얼어붙었다. 설마…….

“나, 날 죽일 거야?”

  그러자 비우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케이타의 목을 자른 다는 걸 상상해버
린 것이다. 어렵사리 마음을 추스른 그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네. 여관 주인이 수다스런 사람이라면 다른
현상금 사냥꾼도 뒤좇아 오겠지.”

“그래서 날 죽이겠다고?”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도깨비에게 그런 말은 고문과도 같다. 단단히 마음
먹었기에 간신히 동요하지 않은 비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번은 싸워야겠지.”

  그는 비장한 각오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해는 중천에 떠있었다.

  냇가에 도달한 비우와 케이타는 냇가 건너에 서서 사람 머리만한 돌덩이
를 위로 던졌다가 받는 하얀 레콘을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찾― 았― 다―!”

  레콘 타유다가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폭풍처럼 소리쳤다. 레콘 특유의 계
명성을 들은 비우와 케이타는 상당히 먼 거리에 있음에도 귀가 멍멍 울리
자 얼굴을 찌푸렸다. 비우의 신호에 맞춰 두 사람은 제자리에서 멈춰 섰다.
자기 목숨이 달려있는지라 불안한 마음에 케이타가 비우의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저기 비우. 냇가에 다가가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

“냇가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면 저 돌덩이가 날아와 우리 둘을 뭉
개버리겠지.”

  비우의 무덤덤한 대답을 들은 케이타는 치를 떨었다.

  비우가 살짝 고개를 숙여 목례를 한 다음 두 손을 입에 모아 큰소리로 외
쳤다.

“좋은 꿈 꾸셨습니까! 저는 비우 구마리라고 합니다!”

“나는 레콘 타유다다! 네놈 옆에 있는 게 도둑놈 케이타가 맞나?!”

“네! 맞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비우의 말에 레콘 타유다는 부리를 딱 부딪친 다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현상금 사냥꾼끼리 지랄하네. 누가 그렇게 말하면 넘어갈 줄 알고.”
타유다는 다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그놈을 죄인도까지 데리고 가
겠다! 얌전히 녀석의 목을 넘겨라!”

  목을 넘기라는 말이 나오자 케이타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빠져나갔
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케이타가 비우의 뒤로 잽싸게 몸을 감췄다.

“죄송합니다! 케이타가 싫어하는 거 같은 데요! 제가 압송하면 안 되겠습니
까!”

“닥치고 어서 넘겨! 네놈이 기어이 ‘피’를 보고 싶은 거냐!”

  레콘에 대한 대부분의 평가 중 공통적인 건 ‘조심성이 부족하다’라는 거
다. 레콘을 제외한 나머지 세 종족은 도깨비 앞에서 함부로 ‘피’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는다.

  비우 구마리는 도깨비였고, 감히 자신에게 ‘피’를 얘기한 레콘 타유다를 충
분히 손봐줄 용의가 생겼다. 그가 뒤에서 검을 꺼내자 타유다는 “호오”라는
탄성과 함께 사냥감을 주시하는 매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상대를 관찰했다.

  기형검 이도를 꺼낸 비우의 모습에서 타유다는 나무로 된 검을 보곤 비웃
을 준비를 했다. 그러다 부리를 다물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멋지다고 생각
하는 벼슬을 쓰다듬었다. 비우가 기형검 이도의 손잡이를 비틀자 검이 찰칵
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안쪽에 있던 쇠와 바깥쪽에 있던 나무가 서로 위치
를 바꿨다. 예리한 양날을 가진 검으로 멋지게 바뀐 이도를 든 비우는 타유
다에게 검을 들어 겨냥했다.

“날 가르친 킴은 도발해오는 상대에게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건 무기를 든 모든 레콘에게도 통용되는 말이다. 부리로 돌덩이를 씹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타유다는 옆에 꽂아놓은 자신의 무기를 집어 들었다.

“좋다―! 철의 대화다―!”

  이길 리가 없어! 케이타는 속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레콘은 지상 최강의
종족이다. 도깨비가 아무리 불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서로 검을 들고 싸우다가 피 튀기는 장면을 보게 되면 벌벌
떨다가 도망갈 게 분명했다.

  타유다가 단숨에 뛰어올라 냇가를 건너 이쪽으로 달려오는 동안 비우는
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케이타에게 말했다.

“물러서게. 자네가 다치면 내가 곤란해.”

  비우가 줄을 놓자 케이타는 있는 힘을 다해 옆으로 뛰었다. 소년이 사라지
자 비우는 다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킴이 내게 이런 말도 했었지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최고다.”

  말을 마친 비우는 품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머리에 썼다. 그리고 그는 사라
졌다. 비우를 향해 달려오던 타유다는 눈앞에서 그가 사라지자 달리기를 멈
추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뭐, 뭐냐?”

  타유다가 당황하여 이리저리 둘러보는 동안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
던 케이타는 온몸에 돋아 오르는 소름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도깨비 감투!”







“도깨비 감투라고?”

  케이타의 말을 듣고 그게 무엇인지 떠올린 타유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비겁한 놈! 어서 모습을 나타내라!”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말을 들을 까닭이 없겠지요.”

  타유다는 재빨리 목소리가 들린 왼발을 들어올렸다. 이미 몇 개의 깃털이
잘린 다음이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그는 닥치는 대로 검을 휘
두르려다가 움찔했다. 오른발에서 그의 하얀 깃털이 우수수 떨어졌기 때문
이었다.

“이 녀석!”

“포기하시죠.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레콘 파라솔도 당신과 같이 반항을 하
다가 포기하고 돌아갔습니다.”

  목소리는 뒤에서 났다. 엄청난 속도로 힘차게 검을 휘두른 타유다는 울분
을 토해냈다. 검에는 아무것도 맞지 않았다.

“그놈은 이미 만났다. 지코마 근처에서 네놈에게 졌다며 막걸리를 퍼마시
고 있더군. 하지만 녀석에게 상처는 없었어. 그런 위협으로 레콘은 절대 도
망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파라솔을 이겼지?”

“알려주면 포기하실 겁니까?”

  이번엔 앞이었다. 빠르게 앞으로 검을 내리친 타유다는 바닥에서 자갈이
튀어 오르자 팔을 휘둘러 그것들을 거칠게 쳐냈다.

“미꾸라지 같은 놈. 내가 도깨비 검사 따위에게 질 거 같으냐! 애초에 도깨
비란 족속에 검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네놈들이 어떻게 검을 들
어! 이건 무사에 대한 모독이다!”

  말을 마친 타유다는 몸을 움츠렸다.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한 게 몸에 닿았
다는 신호에 반응한 것이다. 목 근처에서 깃털이 우수수 떨어지자 타유다
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피하지 않았다면 분명 목에 큰 상처가 났
을지도 모른다.

  이 도깨비는 진심이다.

“내게 검을 가르친 킴이 말하길, 세상에 되지 않는 일은 없다고 하더군요.
자신에게 그걸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그걸 하려고 마음먹는다면 할 수 있
는 일은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도깨비의 마음은 진심이다. 만약 이대로 자신의 몸
에서 피가 나온다면 저 정신 나간 도깨비가 확 불을 질러버릴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생각을 마친 타유다는 엄청난 속도로 케이타가 숨
어있는 나무로 뛰어올랐다. 그를 붙잡고 단숨에 도망칠 작정이었다.

  타유다가 하얀 기둥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오자 케이타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달려갔다. 소년의 작은 몸을 가리는 나무들이 움직임에 방해되자 양손
검을 휘둘러 잘라버린 그는 팔을 쭉 뻗었다.

“앗 뜨거!”

  레콘 타유다는 팔을 거두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깃털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뜨거운 손을 훅훅 불어 열기를 식힌 그는 분노로 타오르는 눈동자
를 굴려 검을 잡고 있는 도깨비를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도깨비가
아니었다. 검을 잡은 도깨비 모양을 한 도깨비불이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비우가 말했다.

“당신이 졌습니다.”

  타유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그의 심정은 지코마에서 막걸
리를 퍼마시다 잠들어버려 주막 주인을 상당히 곤란하게 하고 있는 파라솔
과 같을 것이다.






  죄인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선착장.

  기묘한 모양을 가진 검을 찬 도깨비가 한 소년의 포박을 풀어주고 있었
다. 포박이 풀린 소년은 곧장 죄인도를 관리하는 인간들에게 끌려갔고 금
편 50닢이 담긴 주머니를 받은 도깨비는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가 뒤돌아서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할 때 뒤에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다고 했지!?”

“으음?”

  간수의 배를 머리로 들이박은 소년은 뒤에서 자신을 붙잡으려던 다른 간
수의 사타구니에 발차기를 날렸다. 허리를 구부린 두 간수를 모두 배 밖으
로 떠밀어버린 그는 묶여있지 않은 손으로 노를 저어 배의 방향을 바꿨다.
도깨비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
가 걸쳐있었다.

“현상금이 늘겠군.”




- 끝 -








<글쟁이 후기 1>

안녕하세요 환상문학웹진 미러 여러분
글터 개인연재란에서 컨의 단편집 II를 개장하게 된 컨이라고 합니다.
단편을 쓴다고는 쓰는데,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녀보니까
정말 좋은 글을 써주시는 분들이 많아
제 글을 단편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지 차마 부끄러워
고개를 들기가 힘드네요;;ㅅ;

<글쟁이 후기 2>

별로 하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아마 서론에 다 해버린 듯 해요.
주제는 너무 쉽게 드러났고
내용은 나름 재밌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이영도 님이 사용하신 소재에 먹칠을 했다는 소리를 안들으면 다행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엉엉;;ㅅ;
너그럽게 봐줘요>_<;;
처음 뵙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_+/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20 단편 꽃의 집합4 amrita 2006.10.20 0
319 단편 [엽편]『고양이』1 K.kun 2006.10.19 0
318 단편 [꽁트?]어느 연구실의 풍경 - 카이미라2 미소짓는독사 2006.10.18 0
317 단편 실제가 환상이 되는 때 루나 2006.10.18 0
단편 『도깨비 검사』 K.kun 2006.10.16 0
315 단편 『죽어야 하는가, 언제, 사람은』 K.kun 2006.10.16 0
314 단편 단순한 요청1 異衆燐 2006.10.13 0
313 단편 예언 이야기 wj 2006.10.07 0
312 단편 [엽편]작은 문학도의 이야기 - 꿈2 미소짓는독사 2006.10.01 0
311 단편 시간 정지자(Time Stopper ) Enigma 2006.09.22 0
310 단편 반역자(The Traitor) 나길글길 2006.09.18 0
309 단편 버추얼 월드(Virtual world) 나길글길 2006.09.05 0
308 단편 그것이 돌아왔다3 감상칼자 2006.08.27 0
307 단편 왕국의 방패, 민초의 검. 그리고 고약한 무장6 JustJun 2006.08.23 0
306 단편 아르실의 마녀 포가튼엘프 2006.08.17 0
305 단편 B급 망상극장 : 무뢰도 - 아미파 최후의 날8 異衆燐 2006.08.16 0
304 단편 영웅의 꿈.1 2006.08.13 0
303 단편 내가 그대를 부르고 있어요. 뤼세르 2006.07.25 0
302 단편 그녀가 원했던 것1 감상칼자 2006.07.22 0
301 단편 뱀파이어 앤솔러지 2차 수록작 발표 mirror 2006.05.17 0
Prev 1 ... 90 91 92 93 94 95 96 97 98 99 ... 110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