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영웅의 꿈.

2006.08.13 22:1108.13

독서실을 나온 현성은 주변을 한번 둘러본 뒤 마이 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매캐한 느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며 순간 역한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삼켰다. 이제 1년 남았을 뿐이야, 1년 빨리 시작하나 그 때 하나 그게 그거지. 속으로 그렇게 주워 섬기면서도 그는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열시 경... 아직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에게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는 약간 우울한 만족감을 느끼며 혀끝으로 도넛을 만들어 허공에 띄워보냈다. 도넛은 독서실 간판에 걸린 D-97이란 현수막 귀퉁이를 잠시 맴돌다 바람에 흩어져 날려갔다.
교복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바람 방향을 등지고 서 담뱃재를 털어내고, 꽁초를 골목 귀퉁이에 대강 던진 현성은 가방을 추슬러 메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96번... 집으로 가는 차다. 그런데 옆에 저 아반테는 뭐지? 접촉사고라도 났나?
“...글쎄, 왜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 앞으로 끼어든 게 누군데?”
“이봐, 여긴 정류장 앞 아닌가? 사람들 타려고 기다리는데, 그쪽은 승용차니 좀 기다려도 되잖아? 정류장 앞에서 그러고 있어야겠어 꼭?”
“아 진짜 짜증나네 거. 어쨌든 내 차가 먼저 왔잖아!”
앞 문이 벌컥 열리더니 젊은 남자가 내린다.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 수군거리면서 그 모양새를 지켜보고 있고, 늙수그레한 버스 운전사의 얼굴이 당황과 분노로 붉어진다.
“이봐, 내가 어디 틀린 말 했나? 아니 것보다, 자넨 애비애미도 없어? 어디서 반말이야, 젊은 놈이!”
“썅, 나도 내 아버지한테는 이렇게 막말 안해. 어디서 놈놈이야?”
“이거, 어허....”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좀 더 물러선다. 몇몇은 시계를 들여다 보고,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속으로 뭐라 중얼거린다. 바로 몇 미터 물러서서, 그 얼마 되지도 않는 간극을 두고서 모두는 똑같은 얼굴을 하고서 방관하고 있다. 현성은 입속으로 낮게 욕설을 퍼부었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차들이 빵빵거리기 시작하자, 차에서 내린 젊은 사내는 입속으로 씨팔, 하더니 거칠게 차로 들어가 문을 탁 닫아버린다. 물러나 있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루루 몰려가 버스에 올라타고, 현성도 회색 아반테를 외면하며 버스에 올랐다. 문이 닫히고... 그런데 버스가 출발할 생각을 않는다. 뭐야, 신호등 걸렸나? 앞창으로 밖을 보자 아까 그 차가 출발하는 대신 비스듬히 버스를 가로 막고 있는 게 보인다.
“어머, 뭐야 저 차? 가지 말란 거야?”
“야, 경찰 불러야 되는 거 아냐?”
“내버려 둬, 뒤에 다른 차들도 있는데, 지도 눈치 보이면 언제까지고 저렇게 못 있겠지.”
“아까 눈 부라리는 거 봤어? 누가 잘못했건, 어떻게 아버지 뻘 되는 사람한테 그래? 나이도 젊은 거 같던데.”
“차에 타고 있던 여자 봤어? 옆에서 그러고 있는데 말릴 생각도 안하고 화장 고치고 있더라. 하여간에...”
현성은 울컥하고 치미는 걸 느끼며 여전히 앞을 비스듬히 막고 있는 차를 노려봤다. 젠장, 난 그 자리에 없었고, 누가 먼저 잘못했는 지는 알 바 아냐. 그래도 그렇지, 지금까지 버스 기다리던 딴 사람들은 한가한가? 뒤에 차들은 어떻고? 지만 기분 더러워? 지가 뭔데 길 한 중간에서 막고 있고 지랄이냐고, 그것도 나이 한참 많은 운전사 상대로. 개념은 어디 팔아먹었는데?
젠장.
내가 나설 수 있었으면.
안 그래도 짜증나는데, 저 면상에 한대 갈길 수 있었으면.
그 때, 버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풀에 지쳐 비킨 모양이다. 운전사는 얼굴이 붉그락해져 있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던 승객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아직 11시도 안 됐네, 피방에서 좀 죽치다 들어갈까. 현성은 엠피를 주섬주섬 귀에 꽂았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독서실에서 오는 거니?”
“예.”
현관을 열어주던 어머니의 표정이 순간 굳는다.
“너... 담배 펴 혹시?”
“아니에요.”
현성은 외면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1시... 좀 더 있다 올걸 그랬나? 어머니의 걱정과 질책이 섞인 시선이 등을 찌른다.
“다른 애들이 휴게실에서 피니까... 뱄나 보죠. 어쨌든 저 잘래요, 피곤해요.”
“....그래, 배 안고파? 뭐라도 차려줄까?”
“됐어요.”
대강 대답하며 현성은 2층의 자기 방으로 올라갔다. 1년 빨리 시작하는 거 뿐이야... 나도 다 컸다고. 다시금 속으로 스스로에게 말하며 현성은 가방을 책상 위에 내던지고, 대강 옷을 갈아입은 뒤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내가 힘이 있었으면.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피곤하다.

“니놈은 말야, 응? 대학 갈 생각이 있냐 없냐, 응? 한국은 말야, 아직까지는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어딜 가도 먹어준다고, 응? 난 니들 나이 건너 뛴 줄 아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 학교 이름 듣고서 난 그런 대학 따윈 안가, 하지. 그래도 지금쯤이면 너도 알 거 아냐, 응? 2류가 됐건 3류가 됐건 일단 가고 봐야 된단 거, 응? 아니면 아예 니가 영어를 엄청 잘하든가, 컴퓨터를 엄청 잘하든가, 운동을 엄청 잘하든가, 뭐 그런 특기라도 있냐 하다못해, 응?”
담임은 침튀기면서 출석부로 경환이의 머리를 연신 퍽퍽 내리친다. 씨근덕대며 이마의 땀을 닦던 담임은 자리에 앉아 있던 우리를 한번 휙 둘러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교단 위에 출석부를 집어 던진다.
“니들도 잘 들어 둬, 손경환이한테만 해당되는 말 아니니까. 응? 아무렴, 내가 나 좋자고 이러냐? 까놓고 말해서 우리 학교가 돈 많은 사립이거나 해서, 응? 애들 대학 많이 보낸 선생한테 인센티브를 주기라도 하냐, 응? 다 니들 잘 되라고 하는 소리 아냐? 내가 틀린 말 했냐, 응? 이 지랄 해봤자, 나중에 니들이 졸업하고 한번 찾아오기라도 하냐, 응? 선생질 해봤자, 보람 밖에 남는 거 없다고. 나도 이 더운 날에 힘빠지게 이러고 있어야 되냐, 응?”
교실은 조용하다. 형광등 불빛이 까무룩하게 죽으려다가 다시 밝아온다. 경환이를 잠시 째려보던 담임은 내뱉듯이 한 마디 하고 돌아선다.
“...자습해 각자, 잘 놈들은 자고. 그나마 공부 좀 해보려는 애들 방해만 하지마, 응?”
“....예.”
“아참... 그리고, 손경환, 넌 교무실로 잠깐 좀 따라 와. 저번에 모의고사 본 거 갖고 할 얘기 있으니까.”
교실문을 막 나서던 담임이 한 마디 한다. 경환이가 묵묵히 담임을 따라나서자, 교실은 순식간에 하품 소리와 욕설 소리, 연습장 구기는 소리로 가득 찬다. 조까라고 해. 씨발 담탱이 새끼, 오늘 따라 더 심하네. 복날도 아닌데 개 쳐먹다 체했나? 약빨 떨어진 거 아냐? 벌써? 바로 지지난 주에도 우현이네 엄마가 봉투들고 찾아왔잖아. 그 소리 못들었냐? 옆 반 창민이가 지난 주에 사거리 갔다가 담탱이가 지 딸 뻘되는 여자애 끼고 다니는 거 봤다더라. 아놔, 선생부터가 그 지랄인데 애들이 공부를 퍽도 하겠다. 야야, 그래도 선생인데 설마. 만일 진짜로 그렇다고 쳐도 그렇게 티나게 하고 다니겠어? 쟤도 선생질 한두 해 하는 것도 아니고. 원우도 같이 봤다던데? 뻔하지. 진짜? 심하다. 영계 찾으니까 돈이 모자라지. 이번에도 뭐, 쩐좀 달라겠지. 경환이네가 좀 살잖아. 경환이 새끼도 졸라 불쌍해. 공부하자니 대가린 안되지, 좆도 아닌 게 선생은 성적표 고쳐줄테니 돈 달라지. 야, 오늘은 야자 째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요즘 분위기 개판이던데? 학주가 야마돌아서 나돈다더라. 괜찮아, 늘 돌던 데만 가니까. 학주 하루이틀 보냐? 광견이 교내 도는 거만 조심하면 돼. 수위는 담배 한보루 찔러 줬으니까 그거 다 필때까진 태클 안 걸꺼야.
“야야.”
옆에 앉은 광진이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길래 돌아보자 집게와 중지를 모아 입술 앞에 갖다 대는 제스쳐를 취해 보인다.
“됐어... 그새 또 피냐, 골초새끼.”
“씨발놈아, 담배 가르쳐 준 게 누군데. 얼른 한 대만 빨고 오자.”
막 일어나려는 참에 와당탕하고 앞문이 요란스레 열렸다. 놀라서 그 쪽을 보니... 한 쪽 눈이 퍼렇게 멍든 담임이 교탁 옆에서 쓰러져 있다.
“너, 너 뭐야, 응?”
반쯤 벗겨져 가는 머리를 가리기 위해 정성껏 빗질한 머리칼이 흐트러지는 것도 모른 채 담임이 주섬주섬 일어난다. 그리고... 그가 들어온다.
낯선 얼굴이다. 담임을 내려다 보는 큰 키에 바싹 밀은 머리. 교복 상의를 벗어던져 런닝 셔츠에 바지차림이다. 딱 벌어진 어깨에 실팍한 가슴. 왼쪽 어깨에는 한자로 뭐라뭐라 문신이 새겨져 있다. 그는 주춤주춤 물러서는 담임을 째려보며 천천히 담임에게 다가간다.
“못 보던 얼굴인데 너, 몇 반이야? 이 새끼가, 선생한테 이래갖고서...”
퍽.
뭔가 움직인다 싶더니 묵직한 발길질이 날아가 담임의 배에 꽃힌다. 신음을 토하며 고꾸라지는 위로 다시 여지없이 발길질이 날아든다. 쓰러진 담임의 배와 가슴을 짓밟는 운동화 아래 잔인한 소리가 연신 터져나온다. 쓰러진 채 코와 입에서 흐르는 피로 만신창이가 된 담임의 목을 한손으로 잡아 치켜 들면서, 그는 나직하게 한 마디했다.
“...몰라서 쳐 묻냐.”
“흐거... 너, 너.....”
“점수 고쳐준다고 애들한테 삥 뜯고, 나가서는 그 돈으로 영계끼고 모텔가고.... 니가 아는 만큼은 알지.”
어린애 머리통만한 주먹이 담임의 면상에 날아든다. 흐억, 소리와 함께 다시 쓰러진다. 후드득 후드득 쏟아지는 피가 담임의 옷과 교실 바닥을 적신다. 앞니 몇 개가 그 안에 섞여 있는 게 잠깐 보인다.
“니가 선생이냐? 양아치지.”
“너, 그거, 어떻게...”
“아, 그러고 보니 조금 더 알아. 장학사랑 교장한테 돈 바른 것도. 스스로도 ‘잊고’ 있었지 아마? 니 기준으로는 약소한 성의 표시니까 그냥.”
이미 저항할 힘을 완전히 잃은 담임은 그의 손아귀 안에서 축 늘어진 채로 꺽꺽 거린다. 그래도 아직, 그 작은 두 눈은 공포에 질려서 눈 앞의 그를 보고 있다.
“하는 김에, 지난 주에 장학사랑 골프치러 간 것도 안다고 해둘까? 공립고교 선생 박봉으로 그 돈은 다 어디서 났을까? 애들한테 삥 뜯는 것만으로는 좀 부족할 거 같은데. 안 그래, 차기 교감? 내가 말할까, 니 입으로 말할래?”
“......자, 잘못했....”
“끝까지 쓰레기같은 새끼네, 이걸론 안되겠다.”
그는 담임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선, 휘청거리는 그를 반쯤 질질 끌다시피해서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꿈은 언제나 쓸 데 없다.
현성은 멍한 눈으로 천정을 올려다 봤다. 아직 잠이 덜깼는지 벽지의 무늬가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한숨을 푹 내쉬고,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빠져나올 즈음 타이밍 절묘하게 시계가 울기 시작했다. 아침 6시. 머릿속이 뻑뻑함을 느끼며 시계를 끈 그는 대충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챙겼다. 정석이랑, 단어장, 모의고사 기출문제집 몇 권, 그리고 두툼한 문제집 사이에는 애들과 돌려볼 맥심 두어 권. 가방을 들고 1층으로 내려오자, 어머니가 아침을 차리고 계셨다.
“벌써 나가게? 입맛 없어도 대강이라도 좀 먹지?”
“....별로, 가다가 사먹을께요.”
“조금만 먹고 가지 않을래? 내가 보기가 좀 그래서...”
어머니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현성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내려놓았다.
“...알았어요, 씻고 나올테니 얼른 차려줘요.”
대강 세수하고 다시 거실로 나오니 식탁엔 이미 밥이 차려져 있었다. 김치찌개에 얇게 썰어 구운 햄, 달걀 프라이에 멸치볶음. 꽤 신경쓰신 듯 하다. 어머니도 일하시느라 피곤하실텐데...
“.......”
김이 피어오르는 김치찌개의 시뻘건 국물을 한 숟갈 뜨니 꿈에서 본, 담임의 피투성이가 된 얼굴이 떠올라 순간 역해졌지만 현성은 꾹 참고서 숟갈을 입에 넣어, 그걸 목구멍으로 넘겼다. 얼큰하고 짜릿한 국물이 뱃속으로 들어가자, 문득 허기가 치밀었다. 바쁘게 숟가락을 놀리며 현성은 생각했다. 그 꿈은, 대체 뭐였을까? 꿈에서 나온 그 놈은, 누구였을까?

버스에서 내린 현성은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간만에 제대로 공부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정도로 괜찮은 걸까. 현성은 주먹을 쥐었다 펴 보았다. 어젯밤에 꾸었던 그 꿈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마치 그토록 당당하게, 그토록 힘있게 담임을 두드려 패던 게 자신이었던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히, 남이 치는 걸 구경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주먹에 와 닿던 감촉, 뜨끈한 피의 느낌, 씨근덕대던 담임의 숨결이, 마치 자신이 그렇게 했던 듯이 생생이 떠올랐다. 몸이 가늘게 떨려온다.
학교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선생들 중 반수는 이젠 귀찮다는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이고, 나머지 반수는 팔을 걷어부치고 한 손에 쇠자를 든 채 으르렁거리며 복도를 돌아다닌다. 애들도 이젠 지칠 때가 됐는지... 노골적으로 개기거나 하는 경우는 많이 줄었고 그저 꾸벅꾸벅 졸거나, 적당히 노가리를 까며 시간을 죽인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은 야자 같은 거 안 하고 대신 학원이나 독서실을 간다. 그리고 그런 애들은, 성격좋고 애들 잘 챙겨주는 선생만큼이나 드물다....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오늘도 담임은 누구 걸리는 놈이 없나 애들을 뒤룩뒤룩 살펴보다 제 풀에 지쳤는지, 형식적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오늘따라 거리에 인적이 없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그를 비췄다. 집 근처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옆에 서 있던 가로등 불빛이 깜박이더니 퍽 하고 완전히 나가버렸다.
“야, 거기.”
낮은 목소리가 뒷덜미를 잡아끈다. 흠칫해 돌아보니... 몇 미터 뒤, 옆 학교 교복을 입은 누군가가 서 있다. 어둑어둑한 너머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 일루 와봐.”
“....”
이 근처에서 삥뜯고 다닌다는 양아치들인가? 현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상대의 체구를 가늠해 보았다. 잘 보이진 않지만 꽤 큰 키. 붙어서 이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도망칠까? 조금만 더 가면 집인데.
“씨발, 귓구멍에 좆박았냐? 오란 소리 안 들려?”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던 손을 꺼내는 기색이 있더니 따르락 소리가 들린다. ...커터칼 칼날 뽑는 소리. 그와 함께, 방금 지나온 골목 어귀에서 서너 명이 더 나타난다. 여기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적당한 상대가 보이면 삥을 뜯는 패거리인 모양이다. 현성은 마른 침을 삼키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미 꽤나 늦은 시간의 골목길이다. 소리쳐도 누가 와 줄리 없다. 도망쳐도 잡힐 거 같고...
너 같으면, 올 텐가?
현성은 문득 자문했다. 피식, 웃음이 새 나온다.
“이 새끼가 돌았나? 야, 까.”
두 놈이 달려든다.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뒤에서 뻗어온 팔에 덜미를 잡힌다.
“어디서 좆만한 새끼가...”
무릎 뒤쪽을 걷어 채였는지 화끈한 통증이 오더니 무릎이 꿇려진다. 퍽, 퍽퍽. 인형가지고 장난치는 것처럼 가볍게 쓰러져서 나뒹구는 몸 위로 발길질이 쏟아졌다. 몸 여기저기서 날 것 그대로의 둔탁한 통증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나 뭔가 머나먼 느낌이 드는, 현실감이 없는 고통이었다.
거친 손길이 마이 안 주머니를 뒤지더니 담배를 꺼내간다. 시계가 끌러져 가고, 지갑도 뺏긴다.
“뭐야, 디스아냐? 씨발, 필려면 좋은 것 좀 사 피지.”
찰칵찰칵, 탁.
“야, 우리 얼굴은 못 봤겠지?”
여기서, 얻어맞고 삥까지 뜯겨서 나뒹굴고 있는 건 과연 나 자신인가?
“어두우니까 못 봤을 꺼야... 저번처럼 얼굴에 뭐 씌우고 깔 걸 그랬나?”
마치 타인이 그러하듯이, 이렇게 추레한 모양새인 나를 한 발 떨어져 조소하고 있는 건 누구인가?
“됐어, 딴 학교니까 모르겠지. 것보다 빨리 튀자, 혹시 누구 올라.”
누가 온다 쳐도, 도와줄 것인가? 만일 내가 지나가다 이런 꼴을 봤다면, 구해주려고 했을 것인가?
“야, 이 새끼 폰 있나 좀 더 뒤져봐. 나중에라도 짭새부르면 귀찮아져.”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그럴 리 없지.
“엠피 챙겨라. 팔면 좀 나가겠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어이, 거기 양아치들 동작 그만.”
“......!?”
익숙한 목소리다.
“씨발, 뭐야?”
“......?”
현성은 설핏 눈을 떴다. 세상이 세로로 눕혀져 있다. 사지를 파고드는 아련한 욱신거림...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현실의,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이었다. 아까 불이 가버렸던 가로등이 다시 켜져 빛을 뿌리는 아래, 그가 나타나 있었다. 바싹 깎은 머리에 형형한 눈빛. 딱 벌어진 체구.
“...아?”
현성은 누가 얼빠진 듯한 신음소리를 내는 걸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거 꿈에 나왔던 그 새끼 아냐? 순간 머리가 핑 돌며, 그 소리를 낸 게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급작스럽게 깨달았다.
“넌 뭐야?”
한 녀석이 앞으로 나섰다. 현성의 가슴을 짓밟고 있던 놈이 그쪽으로 돌아서더니 잭나이프를 빼든다.
“면상에 금가기 싫으면 꺼져, 깝치지 말고. 뒈진다.”
칼날이 번뜩이는 걸 보고서도 그는 히죽 웃어보이더니 한쪽 어깨에 걸쳐 메고 있던 가방을 한쪽으로 집어 던지고는, 손을 풀며 내 뱉듯이 한 마디 했다.
“말은 필요없고... 일단 좀 맞자.”
“씨발!!”
앞으로 나섰던 녀석이 커터칼을 집어던진다. 움찔하며 옆으로 피하는 그 놈. 동시에 옆에 있던 다른 놈이 대뜸 달려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좆도...”
저대로면 당한다, 이 자식들 여럿이서 하나를 까는데 익숙한 놈들이다. 현성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달려든 놈이 악 하고 비명을 지르더니 손을 털고 물러섰다. 그 놈은 주먹을 피하는 대신 달려 들어, 충분히 힘이 실릴만큼 뻗지 않은 그 주먹을 이마로 들이받은 것이다. 순간 둘러싼 녀석들이 움찔하고....
“후!!”
놈의 그림자가 골목을 가득 채웠다. 옆의 가로등을 차고 허공으로 뛰어 오른 것이다. 다음 순간 현성을 밟고 있던 녀석이 정수리를 발 뒤축으로 얻어맞고선 주저 앉고, 거의 동시에 오른 쪽에 있던 녀석이 어딜 어떻게 당했는지 잭나이프를 떨어뜨리고 쿨럭대며 물러난다. 착지하는 도중에 목을 친 모양이다. 왼쪽 놈이 뒤에서 달려 들었지만 놈은 순식간에 몸을 돌려 그 팔을 붙잡고는 주저 앉은 녀석 위로 집어던져 버렸다. 두 녀석이 서로 엉켜 나동그라지는 가운데, 놈은 이미 자세를 고쳐 처음의 녀석에게 앞차기를 날리고 있었다. 주먹을 감싸쥐고 있던 그 녀석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올려서 막으려 드는 동시에 몸을 뒤로 뺐지만 올려 차지던 놈의 다리가 허공에서 꺾이더니, 순간적으로 옆차기로 변해 녀석의 관자놀이를 후려갈겼다. 녀석은 신음소리도 못내고선 쓰러져 버리고, 놈은 자세를 고쳐 아직도 뒤엉켜 있는 두 놈을 무작스럽게 짓밟기 시작했다. 일종의 리듬감마저 느껴지는 퍽퍽 소리가 날 때마다 두 놈이 겹쳐져 끙끙거리는 걸 본 현성은 무심코 웃어버릴 뻔 했다. 목을 맞은 녀석과 관자놀이를 맞은 녀석 둘은 아직도 쓰러져 꼼짝도 못하고 있고, 처음 정수리에 찍어차기를 맞은 놈은 그새 도망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후- 이제 좀 손 풀리네.”
한참 두 녀석을 밟아주던 놈은 현성이 몸을 일으키고 있는 쪽으로 돌아서며 히죽 웃어 보였다. 분명 낯선 얼굴인데 왠지, 꽤 익숙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뭐야, 넌.”
현성은 코피를 훔치며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그게 중요해?”
“...아니. 고마워... 어쨌건.”
대강 몸을 추스린 현성은 바닥에 흩어진 책과 필기구 등을 대강 주워모아 가방에 주섬주섬 쓸어 넣었다. 한쪽에 나 뒹굴고 있던 지갑도 챙겼다. 여기저기 흙이 묻고 신발자국이 찍힌 마이를 벗어 허공에 털더가 그 놈 쪽을 흘긋 보니, 놈은 쓰러져 있는 양아치들을 얼굴이 보이도록 발로 뒤집고 있는 참이었다. 무척이나 가벼운, 일말의 따분함마저 엿보이는 몸놀림. 현성은 자신도 모르게 한 마디 던졌다.
“...너, 세더라?”
“부럽냐?”
“.......”
현성은 입을 다물었다.
“가 봐라, 늦었다.”
놈은 그 말만을 남겨놓고 몸을 돌렸다.
“잠깐.”
“뭐야?”
아까 던져둔 가방을 걸쳐메던 놈이 고개를 돌렸다. 묻고 싶은 건 많다. 교복을 보니 같은 학굔데, 왜 학교에선 한번도 안 보였는지. 싸우는 걸 보니 우리 학교 정도에선 가볍게 짱먹을 수준인데 왜 그렇게 조용했는지.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 잘 맞춰 나타날 수 있었는지. 자신을 전부터 알고 있었는지. 뭣보다... 어떻게 남의 꿈에 얼굴을 들이밀 수 있었는지.
“나도 세지고 싶어.”
난, 네가 되고 싶어.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얼굴이 퉁퉁부어 들어온 현성을 본 어머니는 기겁을 해 어떻게 된 거냐, 깡패라도 만났냐, 그냥 돈 줘버리고 오지 그랬냐 하며 약을 발라줬다. 간만에 집에 들어오신 아버지도 걱정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현성은 귀찮을 뿐이었다. 전 괜찮아요, 마침 순찰돌던 경찰이 와서 그놈들은 그냥 도망갔어요, 뺏긴 것도 없어요, 다음부턴 주의할께요...
오늘은 도서관 가지 말고 집에서 쉬었다 오후부터 책 들여다 보라고 당부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현성은 거실에 앉아 무심히 TV를 켰다.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 어깨에 국화무늬 세 개를 단 자이툰 파병부대장의 인터뷰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 어, 형? 왠일이야?”
-어, 쉬는 날이잖냐. 가끔은 집에도 전화해야지.
....저희 부대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의료봉사 활동으로 현지인들에게도 큰 인망을 얻고 있으며, 부대 내부의 사고도 전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형 이라크 파병 지원했다며? 지금 뉴스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됐어?”
-다다음 주에 결과 나오긴 하는데... 안될 거 같아, 전역임박자라고. 아씨, 제대해서 뭐 해먹고 살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해 주면 안되나? 여섯 달만 있으면 이, 삼천은 번다던데.
...언제 적의 공습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저흰 만전의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으며 어떤 위협에도 민간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리라는 걸 자신할 수 있습니다...
“안 위험해?”
-위험은 개뿔, 이게 월남전도 아니고. 교전 같은 거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후방에 짱박혀서 훈련 받고, 대민나가고... 그 외엔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 된다던데 뭘. 작업을 빡세게 하냐, 지랄하는 간부가 많냐? 되기만 하면 대박 땡보지, 가기 전에 훈련이야 빡세다지만... 거기다 수당이 얼만데. 사제에서 그만큼 벌기가 어디 쉽냐?
...저희 모두는 병사, 간부를 떠나 전 인원이 열사의 햇볕 아래서, 현지인들과 하나가 되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고된 나날들이지만 전쟁 가운데서 평화를 지켜나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한 발 더 나아가 이라크 민중들의 자유와 안녕을 위해 헌신한다는 긍지로...
“요즘은 뭐하고 지내?”
-당직 부사관, 내가 분대장이잖아. 어젯밤도 당직 서서 졸려 죽겠는데 대장 올라와 있어가지고 오침도 못하고 있어, 젠장... 휴일 정도는 가족과 좀 지내보라고 해. 건 그렇고, 어머니 계시냐? 있음 좀 바꿔줘.
“그렇게 말해봤자 난 못알아먹어... 난 고삐리지 군바리가 아냐. 암튼 좀 기다려. 어머니, 형한테서 전화왔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김영민 기자, 이상 현지 연결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뉴스입니다...

여름밤답잖게 쌀쌀한 날씨다. 눈 앞으로 허옇게 피어오르는 입김이 보일 정도다. 날씨 탓이 아니라... 내 마음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현성은 부르르 떨며 공원으로 들어섰다. 새벽 2시가 가까운 시간, 텅 빈 공원 안은 호젓했다. 풀벌레 소리마저 들려오지 않는 고요. 흐릿한 달빛이 그 고요를 채우는 가운데,  그 곳에는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왔냐? 날 좋다, 오늘.”
여느 때처럼 히죽 웃어보이는 그 놈.
“어제도 잠깐 한 얘기지만, 강해진다는 건, 막상 되놓고 보면 그 자체로는 별 거 아냐. 하지만 꽤 편하긴 해, 강자가 되면 주변에서 전부 굽실대거든. 정말, 그렇게 되고 싶냐?”
“어.”
“내가 누군지, 진짜 안 궁금해?”
씩 웃어 보이는 놈의 이빨이 어둠 속에서 희게 빛나 보인다.
“그게 중요해?”
“....별로 안 중요하지, 별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거, 준비해 왔지?”
현성은 대답대신, 어깨에 걸쳐 멘 가방에서 아버지가 쓰던 사냥칼을 꺼내들었다. 탁한 달빛 아래서 잘 갈아진 날이 스산하게 푸른 빛을 발했다. 현성은 사냥칼을 쥐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곳은 바람 한점 없었지만, 저 하늘 높은 곳에서는 빠르게 흐르는 구름이 달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줘, 이리.”
현성은 그에게 다가가, 날쪽을 그에게 향하고는 사냥칼을 건넸다. 놈의 손이 뻗쳐오고, 자연스럽게, 건네는 손놀림을 조금만, 더 빨리해...
찔렀다.
마치 고목나무를 찌르는 것처럼 뻑뻑하다. 방향이 좀 틀렸나? 현성은 손목이 뻐근해 지는 느낌에 인상을 찌푸리며, 조용히 숨을 내뱉으면서 양손으로 사냥칼의 자루를 움켜쥐고는 코등이가 위로 향하도록 뒤틀어, 약간만 더 힘을 줘서,
푹.
이번엔 깊이 들어갔다. 옷 위로, 거무칙칙하게 보이는 피가 훅 번져나오는 게 보인다. 찝질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내음이 코를 찔러왔다. 현성은, 그는 서로를 찔렀다. 한명은 칼로, 한명은 피로.
“좋아, 잘했어.”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현성은 여전히 칼자루를 단단히 움켜쥔 채 놈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놈의 단단한 인상은 처음 봤을 때와 변함 없었다. 일말의 당혹도 고통도 없는, 언제까지나 견고하고 불변하는, 그 힘으로 가득찬 얼굴. 어째서지? 현성은 의아해했지만 그 의구심은 단지 지적인 호기심의 차원일 뿐, 불신이나 경악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리고 그 희미한 호기심마저도, 이내 사냥칼을 쥔 손에서부터, 전신으로 파고드는 비릿한 혈향으로부터 흘러드는 활력에 밀려 사라져 버렸다.
“이제, 넌 힘을 얻었다. 이걸로 넌 강자다.”
한 때 그 무언가였던 고깃덩이의 무릎이 펄썩 꺾여서 공원의 풀밭 위로 널부러졌다. 남은 것은, 그 위로 일렁이는 달빛 뿐-.
이제는 죽음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을 것이다. 이전에 있었던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현성은 미미한, 미련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며 자신의 배에 꽃혔던 사냥칼을 뽑아냈다. 그토록 바랬던 것을 손에 넣었는 데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특별히 기쁘다거나 하는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자신은 강자다.
홀로 공원에 남은 현성은 손에 사냥칼을 쥔 채 하늘을 올려다 보며 안도의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건, 나약하고 비겁하던 자신의 죽음에 바치는 제문(祭文)이었다.
저 먼 하늘 위에서는 바람이 강해지는 모양인지, 구름이 격렬히 춤추며 혼탁한 달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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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21장 5절.

댓글 1
  • No Profile
    윽. 95일...공부해야되는데(...)

    잘 읽었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좀 빨리 끝났다...란 느낌이 든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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