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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반 요정 오다

1

밤은 매우 적막하다. 아니 그 반대다. 하지만 내게는 적막하다. 너무나도 많은 소음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적적함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그러한 밤이었다. 적당히 들려오는 도심의 차들. 지치지도 않는 지 경적소리를 울려대면서 지나가는 차들. 그 안에는 야심한 시간에 돌아다닐만한 이유를 가진 연인 또는 사람들이리라. 그에 못지않게 같이 흘러들어오는 불빛 또한 묘하게 내 맘을 스산하게 만들고는 했었다.

처음 이렇게 높은 곳에 집을 얻었던 이유 역시 별다른 거 아니었다. 그저 전망 하나가 끝내주게 좋아서였다. 깨끗한 시설 또한 마음에 들었지만 고층에 위치한 전망은 비교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낮의 모습은 그것대로, 밤의 모습은 그것대로 마음에 들었다.

무어 내 직업의 밑천인 꿈을 꾸려면 밤에는 빨리 자는 것이 더 이득이기 때문에 금세 수면에 드는 바람에 야경을 볼 기회는 없었지만 말이다.

어떤 사람이 맨 처음 이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이건 간에 난 엎드려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 사람 덕분에 난 이리도 편안한 삶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난 글쟁이다.

물론 50년 전의 글쟁이들과 비교한다면 큰 오산이다. 하긴 그런 오산이 있었기에 “그녀”의 목소리 또한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여간 그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글을 쓰려고 수면에 들던 차에 알게 된 수면기의 고장 적신호를 발견하고 나서였다. 수면기의 고장 신고를 센터에 하고나자 금세 친절한 미소와 목소리를 가진 한 여성의 영상이 떠올라서 답변을 보내오고 있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작가님. 신고해 주신 수면기의 고장은 금방 수정해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이에 대한 피해 보상은 작가님께서 작성해 주신 보험 계약 사항 중 제 ** 조항에 의하여.... //

확실히 50년 전의 세상과는 다르다. 지금의 이 곳은 백년의 거의 절반이 되는 시간이 흘러있었으니 말이다.

2.

예전의 글쟁이들은 이른바 글의 내용을 머리에서 떠올려서 원고지에 또는 워드 프로그램에 입력해서 올리는 것으로 했었다 한다. 물론 옮기는 도중에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내용들의 소실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은 한 글쟁이가 자신이 알고 있던 한 과학자와 같이 일을 한 끝에 글에 대한 아이디어를 잠을 자면서 꾸는 꿈 그 자체를 그대로 글로서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기계를 발명해 낸 것이 말이다.

물론 그 글쟁이와 과학자는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 대기업들은 많은 글쟁이들을 자신들의 기업에 고용을 했다. 당연히 글쟁이들이 쓰는 성공적인 각본 아니 꾸는 꿈 그대로는 대기업의 성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신도 노력하면 뛰어난 글쟁이! 이런 참고 서적 종류들이 나돌게 된 것도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세간에서는 글을 좀 쓴다 싶은 사람들은 거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들은 거의가 다 행복한 삶을 살았다. 아니 그렇다.

물론 몇 가지 요소가 첨부가 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서 글을 잘 쓸 수 있는 문학적인 재능을 유전적으로 타고 난다던가, 책을 좋아해서 언젠가는 나도 이런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던가, 무어 대충 이런 요소들 말이다. 물론 돈도 어느 정도는 중요하다.

좋은 작가는 좋은 꿈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물론 좋은 꿈을 꾸기 위해서는 다량과 다종의 책들을 다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양한 상상을 꿈으로 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잠을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른바 글이 난 밤에만 써진다던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치명적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수면기는 매우 유용하다. 거기다가 편리하기까지 하다. 만일 당신이 글쟁이라고 치자.

좋은 글 또는 이른바 명작을 쓰고 싶다면 그저 이 수면기에 들어가서 잠만 자면 당신의 꿈을 통해서 걸러지고 살이 붙여져서 나온 그것이 바로 베스트셀러이자 뛰어난 명작이 되는 것이다.

3

수면기가 고장이 나자 난 정말이지 할 일이 없었다. 아니, 가장 고역이었던 것은 잠을 자야할 시간에 잠을 못 잔다는 것에 있었다. 그렇다고 수면 시간이 모자라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내가 이러면서 빈둥빈둥 깨어있을 무렵에 다른 누군가가 아주 뛰어난 명작을 한 편 만들어 낼 것 같다는 그런 조바심이 들어서인 듯 했다.

그러한 와중이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와 더불어서 이마에 와 닿는 차가운 통유리창의 감촉과 더불어서 느껴졌던 소음과 야경들. 무언가 아주 기묘한 어우러짐이었다.

        “누구십니까?”

난 접속채널로 접근해 온 낯선 노래를 듣다가 누가 보냈나 싶어서 차가운 유리창 위에 키보드를 붙여놓고서 한손으로 가볍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힐끔 둥실둥실 공중에 떠다니는 이동성 모니터를 들여다보니, 다소 낮은 해상도의 평범한 소녀가 보이고 있었다. 맙소사, 저것은 아주 구닥다리이잖아? 어딘가 매우 수준이 낮은 제 3국가에서 보내는 영상인가보군. 난 그렇게 생각하면서 잠시 한숨을 내 쉬었다.

        “.... 씨인가요?”

        “네?”

내 이름같이 들렸지만 워낙에 잡음이 심했기 때문에 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셈치고 반문했다. 요행히도 소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게 곧은 시선을 보내왔다.

        “다행이네요. 연결이 안 되면 어찌되나 했어요. 난 ... 라고 합니다. 지금 그 곳은 새벽 3시 반인가요?”

        “네.”

그녀의 말 중간 중간에는 아주 듣기 거북한 치직거리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런데 용케도 내가 그 영상을 중단시키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들려주기 시작한 노래 때문이었다.

        “당신의 글을 매우 좋아한답니다. 종종 노래도 지어보고는 합니다. 아, 전 ... 예요. 그래서 노래도 가끔 만들고 하지요. 오늘은 ... 께 몇 가지의 곡을 들려드리고 싶어서요.”

        “아, 감사합니다.”

가끔 팬이라면서 사람들이 보내주는 물건이라던가, 그림 또는 음악 같은 것은 매우 도움이 된다. 그러했기에 난 고맙다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소녀의 영상은 거기서 끝났지만 소녀가 보내준다고 했던 음악은 다소 치직거리는 잡음이 있긴 했지만 잔잔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매우 오래된 스타일의 음악이었다. 그래. 마치 내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그런 종류의 음악이었다. 묘하게 젖어들게 만드는 목소리. 꽤나 오래된 가수인데. 이 사람. 누구였더라. 난 시선을 잠시 찌푸렸으나 곧 고개를 흔들면서 방 안의 조명을 어둡게 하고 창 밖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침대 위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싫어해서 가구를 그다지 많이 배치를 안 한 탓에 다소 휑해 보이는 내 방 안을 그저 선율뿐인 음악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확실히 음악과 함께 바라본 도시의 야경과 음악 없이 바라봤던 도시의 야경에는 차이가 있었다.

4

내게 주어져 있는 글쟁이의 소질은 다분히 할머니에게서 온 것이다. 할머니께서는 당시 유행했던 환상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제법 날리시던 글쟁이셨다. 할머니는 종종, 당신의 글에 대한 영감을 음악에서 많이 얻었노라고 하시면서 좋은 음악을 많이 접하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글은 근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꽤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타는 작품이다. 할머니의 책의 서문에는 꼭 이 책의 모토가 되어 준 ... 씨의 ... 곡에게 감사를 바칩니다. 이런 헌사가 적혀 있었고, 그와 더불어서 .... 씨 라던가 ... 씨라던가, 하여간 그 곡을 부르거나 작곡한 음악인들은 할머니의 작품 덕에 앨범을 그나마 몇 장이라도 더 팔고는 하였다.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결혼하실 수 있으셨던 이유도. 무어 할아버지는 음악인은 아닌 연기자이시긴 하셨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 그 바닥이다 보니-. 아 하긴. 할머니께서 유일하게 집필하셨던 작품 중에는 환상소설이 아닌 일반소설이 딱 한 편 있었다. 그리고 그 소설 또한 인기를 끌면서 영상작품화 된 것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만나실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하셨다. 영상 글쟁이와 배우의 만남이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무어 요즘같이 거의 자신들이 꾸는 꿈으로 작품을 만들고 찍어대는 것이 쉽지가 않았던 시절이기에, 할머니의 글쟁이로서의 솜씨가 매우 중요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건 그렇게 두 분은 만났고 나의 아버지를 낳으셨다. 그리고 아버지 또한 어머니를 만나서 날 낳으셨다.

        “そうだね僕たち新しい時代を 그래 우리들은 새로운 시대를
迎えたみたいで奇跡的かもね 맞이해보고 싶어 그리고 기적적일지도 몰라
二度とはちょっと味わえないよね 두 번은 조금 맛보지 못할 거야
もう一度 思い出して 다시 한번 떠올려봐
この地球に生まれついた日 이 지구에 태어난 날
きっと何だか嬉しくて 분명 왠지 기뻐서
きっと何だか切なくて 분명 왠지 서글퍼서
僕達は泣いていたんだ 우리들은 울고 있었던 거야.”

할머니는 이해하지도 못하셨던 이국의 언어로 된 노래를 주로 많이 들으셨다. 그런데 왜 그러셨던 것일까? 물론 할머니 당신도 다른 언어를 한 가지 정도는 하실 수 있었던 데다가, 그 당시에도 간단한 번역은 구하기가 쉬웠을 터이다.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이국의 언어가 무엇을 그리도 당신의 글쟁이로서의 재능을 아니 꿈을 자극하셨던 것일까?

        “확실히 불편하다고. 노래는 좋긴 하지만 알아듣지 못하잖아? 꿈에서라면 다 이해가 될 텐데 말이지.”

        //그렇지 만은 않을 텐데?//

정신이 순간 확 들었다. 아니 몽롱하게 흐려져 있었던 정신이 다시 되돌아왔다고 해야 할라나. 난 눈을 뜨고 침대에 일어나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음악만이 흐르고 있었을 뿐이었다. 안전 경보는 안전함을 나타내는 푸른색으로 깜빡이고 있었고, 창 밖의 야경 역시 여전했다.

        “뭐가?”

왜 그때 내가 반문했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난 소리를 내어 질문했고, 목소리는 노랫가락 사이사이로 키득키득 웃으면서 대답해왔다.

        //물론 꿈이 그대로 글이 된다면 그거야 말로 근사할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말이야. 네 할머니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거든. 진정으로 좋은 글은 약간의 꿈에 작가가 어떻게 펜 끝으로 종이 위에 또는 키보드를 두들기면서 모니터 안의 워드 프로그램 위에 써가거나, 또는 두드려대면서 풀어나가는지에 달렸다고 생각하셨거든. 그래서 나라는 존재도 창작하셨고 말이지.//

        “창작?”

그리고 보니 할머니의 작품 중에서 한 작품은 유일하게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할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오시면서 아버지께서 침울하게 중얼거리시던 것이 생각이 났다.

        //응. 가급적이면 당신의 문학적인 소질을 이어받으신 후손이 날 발견하기를 원하셨지. 그녀는 잊혀진 너희들의 언어로 .... 이거든. 하지만 난 알겠지만, 특정한 시간이 아니면 나타날 수가 없어. 그것도 특정한 조건 위가 아니면. 슬슬 나란 존재를 네가 알아차리지 못 하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이렇게 실례를 하게 된 거지.//

        “과연.”

뭔가 기묘하게 공감이 가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할머니의 변호사를 만나고 오신 아버지께서 낮에 내 수면기를 잠시 바라보셨던 것에도 다 이유가 있었군. 힐끗 시선을 준 시간 알림의 모니터는 분명히 3:30 AM을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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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삽하게 49주제도 겸사겸사하여- 랄라- 제목을 만들어주신 명비님께 뮤즈의 축복이 있기를 (............)
댓글 1
  • No Profile
    unica 04.03.20 04:50 댓글 수정 삭제
    앗차- 중간에 잠시 나온 노래는 하마사키 아유미 양의 Evolution 의 일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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