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화창한 어느 아침, 조용한 숲 속에 위치한 작고 낡은 대장간에서 정적을 깨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상당히 젋은 목소리가 우렁차게 숲 속에 울리고 있었다.

“이 놈아! 내가 언제부터 네 놈 사부냐! 어서 꺼지지 못할까?”

그 젊은 목소리에 답하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걸걸했다.

“아이구, 참 이제 포기하고 절 제자로 받아 주세요! 저만한 제자는 어딜 가도 찾기 힘드시다고요.”
“흥, 날고 기는 놈들도 네 제자가 못 되었는데 네 놈 따위가?”
“전 절대로 포기 안 합니다! 못 합니다! 제발 제자로 삼아주세요!”
“아, 아니! 이 놈이? 놔라! 놓지 못할까!”

  고즈넉한 숲 속의 아침은 이미 깨어진 지 오래였다. 대화 내용으로 보면 스승을 구하는 열성적인 젊은이와 그걸 귀찮아 하며 완고히 거부하는 늙은이의 대화였다. 그리고 대장간 앞에 상황도 그 대화와 다를 바 없었다. 다부진 몸집의 젊은이가 대장간 앞에 각종 취사도구를 가져다 놓고, 텐트를 쳐놓고, ‘제자로 삼아 주세요.’라고 쓰인 커다란 푯말을 텐트 앞에 박아 놓았다. 그리고 젊은이는 대장간에서 막 나온 사람의 발을 붙들고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젊은이가 필사적으로 발을 붙들고 늘어지는 사람은 작은 키에 자신의 발을 붙들고 늘어지는 젊은이처럼 다부진 몸집을 가진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이었다. 주름이 가득한 작은 눈에 너무 굳게 다물려 약간 삐뚤어진 듯한 입이 무척이나 고집 세고 완고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이런 소동을 보면 누구나 이런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이런 작고 낡은 대장간에서 무슨 배울 것이 있어 저 젊은이는 저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일까? 하지만 저 대장간에 걸린 간판을 본다면 누구나 젊은이가 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 이다.
‘소드-마스터 핸드(Sword – Master hand)’. 그렇게 적힌 금과 은으로 장식된 화려한 간판이 이런 낡은 대장간에 걸려 있었다. 그 간판은 왕이 직접 최고의 명장들이 물건을 만드는 곳에만 하사하는 간판이었다. 이 대장간은 명장의 가게, 그것도 왕국 내에서 3명 밖에 없다는 검의 명장이 운영하는 대장간이었다. 그런 탓에 검을 만드는 것으로 최고가 되고 싶은 대장장이라면 이곳에서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평생의 영광이었고, 마스터 핸드의 제자가 되면 그 자신이 그 칭호를 물려받을 기회를 얻게 된다는 것이니 검의 명장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저 젊은이처럼 제자로 삼아달라고 필사적으로 매달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도 수많은 대장장이들이 이 노인을 찾아와서 이 젊은이처럼 제자로 삼아달라 매달렸지만 이 노인은 그 모든 필사적인 요청을 퉁겨내버렸다.
어느 날 찾아와 이렇게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청하는 이 젊은이도 노인에게는 그런 어중이 떠중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그 끈질김만으로 본다면 이제까지 찾아온 사람들과 수준이 완전히 틀렸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애걸복걸하다 떠날 것이라 생각했거늘 아주 본격적으로 대장간 앞에 텐트를 치고 매일 아침 이 짓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벌써 한 달째, 하지만 젊은이에게는 물러날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노인과 젊은이는 힘이 빠져 헉헉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서로 마주 보며 바닥에 주저 앉아 있었다. 한숨을 돌리고 노인이 말했다.

“이 아둔한 놈아! 네 놈이 아무리 매달려도 내 뜻은 변함이 없다! 난 제자 같은 것은 안 키우는 주의야!”
“아, 글쎄 한번 시험이라도 해 보고 말씀하세요. 스승님 기술을 이어받을만한 인재가 여기 있는데 시험이라도 한 번 해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이험?”

노인은 젊은이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먼지를 털고 일어나 진지한 표정이 되어서는 젊은이를 똑바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래, 시험을 받고 싶다?”
“당연하죠! 한 번 해 보시라니깐요.”
“좋아… 그래 그렇다면…….”

노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젊은이에게 차근차근 말하기 시작했다.

“소드 - 마스터 핸드의 칭호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 무릇 마스터 핸드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네 놈이 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아라.”
“어떻게요?”
“검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만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검을 부수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검 한 개를 부숴 보아라.”
“그래요? 그거야 간단한 일이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젊은이는 얼굴에 화색을 띄며 냉큼 대장간 벽에 걸린 큼지막한 투 핸드 소드(Two hand sword)를 모루 위에 놓더니만 자신이 지니고 있던 쇠망치로 냅다 두들기려 들었다. 그러자 노인은 안색이 변해 다급하게 외쳤다.

“이 미친 놈이! 이 놈아 그 검이 아니다!”
“예? 그럼 어떤 검을 부숴요?”

노인은 투 핸드 소드를 모루에서 치운 후 그걸로 건너편에 보이는 산을 가르켰다.

“저기 산 너머에 가면 옛날에 낡은 성이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의 영주였던 페레그린 가(家)의 성이였지만 페레그린 집 안은 이상한 저주를 받아 10년 전에 멸족하였고 그 성만이 남았지. 그 성에 옛날 영주의 집무실에 가보면 바닥에 검 한 자루가 있을 것이다. 그걸 부순 다음 검 손잡이를 내게 가져 오너라. 그럼 네 놈을 제자로 삼아 주마.”
“정말이요?”
“그래. 정말이다.”
“예,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젊은이는 날아가듯이 간단한 짐을 챙겨 달려나갔다. 노인은 젊은이를 보내고 나서 뭔가 떠올리듯이 슬픈 눈으로 건너편 산을 보았다.

“저주받은 검이라…….”


젊은이가 산을 넘어 영주에 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사방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성의 모습은 무척이나 황폐해 보였다. 성 주위는 잡초가 무성했고 두터운 나무문은 썩을 대로 썩어서 조금만 건드리면 곧 부서질 것 같았다. 사방에서는 늑대의 울음소리며 나무가 바람에 흔들려 바스락 거리는 소리까지 들려 분위기는 점점 더 스산해져 갔다.
그래도 젊은이는 이를 악물고 용기를 내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이곳저곳이 먼지가 쌓이고 부셔졌지만 예전에는 무척 화려했을 듯한 홀이 보였다. 젊은이는   홀 안에 먼지가 쌓여 남아있는 화려한 장식품 따위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곧장 계단을 통해 올라가 영주의 집무실을 찾기 시작했다. 영주의 집무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커다란 문에 금 글자로 ‘집무실’이라 새긴 현판이 붙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은이는 낡은 문손잡이를 돌려 집무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불쾌한 소리를 내며 조용히 문이 열렸다. 정면으로 영주의 책상의 보였고 방 중앙에 노인이 말한대로 검이 한 자루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검 주변에는 놀랍게도 두 구의 해골이 된 시체가 놓여 있었다. 입은 낡은 옷으로 보아서는 한명은 여자이고 한명은 남자인 듯 했다.

“누가 도대체 여기서 죽은거지?”

젊은이는 매우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에게는 노인의 시험이 우선이였다. 그는 나중에 시체를 수습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우선 검을 부수기로 했다. 검은 손잡이에 화려한 장식이 붙은 롱 소드(Long sword)였다. 굉장히 오랫동안 이곳에 놓인 채 한 번도 손질하지 않았을 그 검은 기이하게도 달빛에 반짝반짝 검신이 빛나고 있었다.

“좋아, 어쨌든 이 검을 부수면 되는 거겠지?”

젊은이는 일말에 주저함도 없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허리춤의 대장장이용 쇠망치를 꺼내 검신의 중간 부분을 노려 그대로 망치를 내려쳤다.

‘퍽-!’

하지만 쇠와 쇠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대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젊은이는 놀라 바닥을 보았다. 그가 부쉈어야 할 검은 어느 새인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었다. 젊은이는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방 안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아리따운 얼굴에 예쁜 청은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젊은이가 부수려 했던 그 검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입을 열어 말했다.

“당신도 나와 비트를 갈라 놓으려 하는 거야?”
“예?”

그 아가씨는 달빛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고왔지만 젊은이는 그런데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어째서 아무도 없다는 이 성에 왠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가 갑자기 나타났는지, 그리고 자신이 부수려는 검을 왜 들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다, 당신은 누구요?”
“내 이름은 아이샤. 다시 물을게 당신도 나랑 비트 사이를 갈라 놓으려 하는거야?”
“아, 아니…. 난 지금 당신이 들고 있는 검을 부수려…..”
“역시! 나랑 비트 사이를 갈라 놓으려는 거구나!”

아이샤는 손에 있는 검을 들어 젊은이를 겨눴다. 젊은이는 당황해서 손을 내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자, 잠깐!! 비트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당신과 내 일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니깐요!”
“이 검을 부수려고 한다며! 그게 그거지!”
“아니, 그러니깐!!! 그 검하고 당신하고 무슨 상관인데!”

젊은이는 큰 소리로 항변했고 아이샤는 그 말에 휘두르려던 검을 잠시 멈췄다. 그러고는 아무런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낡은 성이였던 주변의 풍경이 마치 물감이 흘러내리듯 뭉개졌다. 그리고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풍경에는 한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아버님! 제발 허락해주세요.”
“영주님, 꼭 부탁드립니다. 저와 야이샤님의 결혼을 허락해주십시오.”

영주의 집무실 바닥에는 허름한 옷을 걸쳤지만 무척 준수해 보이는 청년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예쁜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 아이샤가 그 남자 옆에 서서 영주가 집무를 보는 책상 앞에 서 있는 중년 남자에게 눈물 섞인 호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고급스러운 옷을 걸친 그 중년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락 할 수 없다! 이 천한 것, 썩 물러가라!”
“아버님!”

아이샤의 필사적인 설득에도 중년 남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더 노기를 띄며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은 뭘 하느냐! 당장 이 놈을 끌어내 성 밖으로 내쫓아라!”
“예!”

중년 남자의 고함에 집무실 안에 건장한 병사들이 들어오더니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를 끌어내었다. 아이샤는 눈물을 글썽이며 중년 남자에게 매달렸지만 중년 남자는 그것을 뿌리치며 그녀를 방에 가두라고 명했다. 그녀도 집무실 밖으로 끌려나가고 중년 남자는 노기에 찬 얼굴로 의자에 몸을 묻었다. 잠시 그러다가 뭔가를 생각하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알프레도! 알프레도! 거기 있느냐!”


풍경은 다시 바뀌어 달빛이 교교하게 비추고 있는 우물가 근처. 영주의 집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가 한숨을 쉬며 우물가에 있었다. 그의 얼굴은 어디서 맞았는지 이곳 저곳 조금씩 부어서 성한 곳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멍하니 우물가에 앉아있을 때 수풀 쪽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비트! 역시 여기 있었구나.”
“아, 아가씨?”

수풀 속에서 나온 것은 다름아닌 아이샤였다. 아이샤는 비트에게 달려가 그의 품속에 안겼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여긴 어떻게…..”
“몰래 창문으로 빠져나왔어. 그것보다 넌 괜찮아?”
“예, 전 괜찮아요.”
“비트……”

아이샤는 그대로 비트의 입을 막듯이 키스했다. 달빛 아래에서 두 남녀는 그렇게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키스하고 있었다. 그 영원 같은 순간이 지나가고 아이샤는 비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애절하게 말했다.

“비트…. 우리 도망가자. 도망가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자.”
“아가씨…..”
“제발, 아버님은 우리 사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거야. 차라리 우리끼리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비트는 아이샤를 품에서 살짝 떼어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아가씨.”
“왜?! 날 사랑하지 않아?”
“아니요, 아이샤 아가씨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비트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전 아직 아버지에게 모든 기술을 배우지 못했어요. 전 마스터 핸드가 되고 싶어요. 그것도 이 왕국 최고의 마스터 핸드.”
“………”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이제 제 수련도 끝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아버지도 절 인정하시기 시작했고요. 제가 왕궁에서 마스터 핸드의 칭호를 하사 받고 다시 당당하게 영주님에게 아이샤 아가씨와 결혼을 허락해달라 할 겁니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샤는 불만스러웠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트의 꿈을 알고 있었고 꿈을 향해서 묵묵히 노력하는 그의 모습에 반하여 그와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이였다. 비트는 아이샤를 계속 달랬다.

“자, 여기 있으면 영주님의 화만 더 커질거에요. 얼른 성으로 돌아가세요.”
“알았어. 하지만 비트도 몸 조심해야 해.”
“괜찮아요. 아버지가 왕궁에서 돌아오시면 괜찮아지겠지요. 마스터 핸드의 가족을 건드릴 사람은 없을테니요.”
“그럼, 나 이만 가볼게.”

그때 저쪽 수풀에서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복면을 쓴 남자가 새파랗게 날이 선 롱소드를 들고 나타났다. 비트는 놀라서 아이샤를 감싸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냐!”

하지만 그 복면인은 아무 말 없이 비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비트는 아이샤를 감싸며 겨우겨우 그 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때 뭔가 느낀 아이샤는 비트 앞으로 나서더니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누구야? 아버님이 보낸 사람이야?”

복면인은 아이샤가 앞으로 나서자 주춤했다. 아이샤는 비트 앞에 서서 절대 비키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복면인은 한두발짝 뒤로 물러서다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아이샤와 비트를 향해 검을 찔러왔다. 검 끝이 지척까지 다가왔을 때 아이샤는 질끈 눈을 감았다. 하지만 절대로 피하려 하지 않았다.

“위험해요!”

그 순간, 비트가 아이샤를 밀쳐내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 검이 꽂혔다.
“비트!!!!!”

아이샤의 깨지는 듯한 비명과 함께 비트는 그대로 선혈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는 검을 손에 쥐고 놓지 않았다. 복면인은 용을 쓰며 검을 빼내려 했지만 사력을 다해 검을 잡고 있는 비트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아이샤는 울면서 복면인에게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복면인은 당황해서 다시 수풀 속으로 도망갔다. 복면인이 도망가고 아이샤는 얼른 비트에게 달려가 울며 비트에게 매달렸다.

“비트! 비트! 정신차려!! 죽으면 안돼!”
“아…..아가씨, 무, 무사……”

비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그대로 눈을 감았고 아이샤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다음 날 아침, 성 안은 큰 소동이 일어났다. 방에 갖혀 있던 아이샤가 침대 시트를 연결해서 창 밖으로 탈출을 한 것이었다. 다들 아이샤를 찾으러 우왕좌왕 할 때 아이샤가 성문 앞에 마을 사람 몇 명과 함께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커다란 나무궤를 지고 아이샤를 따라 왔다.

“이제 돌아가세요.”

아이샤의 목소리는 겨울 북풍처럼 한없이 시리고 차가웠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흐를 눈물도 없는지 메마르고 초점 없는 눈이 되어 있었다. 아이샤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얼른 나무 궤를 놓고 도망치듯이 뒤로 돌아 달려가버렸다. 아이샤는 당황해 하는 병사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버님을 뵈어야 겠습니다. 이걸 좀 아버님 앞으로 옮겨주세요.”

병사들은 알 수 없는 위압감에 아이샤의 말대로 했다. 성 안으로 들어온 아이샤는 걱정하는 가족들도 모두 무시하고 그대로 영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이샤!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냐! 모두들 걱정했지 않느냐!”

아버지의 호통에도 아이샤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나무궤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비트의 시체와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당혹스러워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이샤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아버님….. 이였군요.”
“……..”
“이 검, 비트가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드린 검이였지요. 아버님도 이 검이 좋다 하시고는 아버님이 아끼는 기사….. 알프레도에게 주었지요 아마?”
“아이샤……”

아이샤는 무섭도록 처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검을 들었다.

“이렇게 아버지를 추궁 한다 해도 비트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지요……”

아이샤의 목소리는 오히려 점점 더 가라앉고 차분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들어 바라보며 말했다.

“전 이제 비트와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 비트가 만든 이 검이 저희 둘을 영원히 지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지체 없이 검으로 자신의 목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베었다. 아이샤의 목에서 붉디 붉은 피가 솓구쳐 나오고 아이샤는 그대로 비트의 시체 옆에 쓰러졌다. 아이샤의 아버지와 가족들은 아이샤의 죽음에 오열하고 슬퍼했다. 그들은 큰 슬픔 속에서 장례를 치루려고 시체를 수습하려는데 검이 갑자기 붉어지면서 시체를 수습하려는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져 죽었다. 그 다음 사람도 그 다음 사람들도….. 결국 모두 두렵고 무서워 아무도 그 둘의 시체에 접근하려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모두 두 사람 옆에 있는 그 검이 저주를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샤의 아버지는 대노하여 그 검을 부러뜨리려 했지만 아이샤의 아버지도 피를 토하고 그대로 죽어버렸다. 결국 아이샤의 가문이였던 페레그린 가는 그 충격과 공포로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모두 죽고 만 것이였다. 그리고 페레그린 가의 성은 저주 받았다 하여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성이 되었고 비트와 아이샤의 시체는 영주의 집무실 바닥에서 그렇게 나란히 누워 삭아들어갔다.


아이샤의 모든 회상이 끝나고 주변은 다시 먼지 쌓이고 낡은 영주의 집무실로 되돌아왔다. 젊은이 앞에 있는 아이샤, 아니 아이샤의 유령은 이제 피눈물을 흘리며 젊은이를 쏘아 보았다. 그녀 손에 들린 검도 어느 새 붉은 기운을 띄고 있었다.

“이 비트의 검은 나와 비트를 지켜주는 것이야! 그걸 부수려 하다니!”
“그, 그러니깐……”
“죽어.”
아이샤는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젊은이에게 다가와 칼을 휘둘렀다. 젊은이는 겨우 바닥으로 굴러 그녀의 검을 피했다. 젊은이는 자신의 쇠망치를 손에 꼭 쥐고 아이샤와 거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외쳤다.

“그, 그런 검이 없어도 당신 내들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이제 없다고!”
“거짓말! 이 검은 우리를 지켜주었어! 그리고 이 검만 있으면 앞으로도 영원히 비트와 나는 함께라고!”

아이샤는 재차 검을 휘둘렀고 쇠먕치를 들어 그 검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아이샤의 검은 유령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젊은이의 쇠망치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검날이 눈 앞까지 다가왔다. 그 순간 젊은이는 문득 생각난 듯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비, 비트…… 비트는 어디……. 있는거야?”
“응?”

아이샤는 허를 찔린 듯 검에 들어간 힘이 빠졌다. 젊은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틩겨냈다. 그리고 숨을 잠시 몰아쉬고는 다시 물었다.

“당신이 사랑했다던 그 사람! 그 비트는 어디있냐고!”
“비, 비트? 저, 저기. 저기 있잖아!”

아이샤는 바닥에 놓여있던 남자의 유골을 가르켰다. 하지만 젊은이는 그 대답을 단숨에 부정해버렸다.

“웃기지마! 그건 단지 썩어빠진 해골이야! 당신이 좋아했던 비트가 아니라고!”
“그, 그건!”
“당신이 좋아했던 비트는 마스터 핸드가 되고 싶어한 꿈이 많은 사람 아니야!?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던 사람 아니야!? 저런 말 한마디 못하는 해골이 아니라고!”
“마, 말도 안돼……”

아이샤는 젊은이의 말에 점점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젊은이를 향해 겨눴던 검도 어느새 떨궜다. 젊은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아아아아!!!!!”
‘쨍-!’
맑디 맑은 소리를 내며 검이 부러졌고, 그 순간 엄청난 빛이 젊은이를 감쌌다.


‘아이샤 아가씨……’
‘비, 비트?’
‘오래 기다렸습니다. 오랫동안 찾았고요. 이제 함께 가요.’
‘비트……’
‘이제 영원히 곁에 있겠습니다.’

젊은이가 눈을 떴을 뜨니 영주 집무실의 작은 창의 하늘은 막 동이 트려는지 어슴푸레 밝아졌다. 검은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아이샤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젊은이는 부러진 칼의 손잡이를 집어넣고 두 사람의 유골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성 안 뜰에 그 두 사람의 유골을 묻고는 다시 길을 떠났다.
젊은이가 노인의 대장간에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젊은이는 노인에게 부러진 검의 손잡이를 내밀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제 제자로 삼아주시는 거죠?”
“…….”

노인은 말없이 그 검의 손잡이를 보고는 조용히 젊은이에게 말했다.

“그래….. 좋다. 넌 이제부터 내 제자다. 지금부터 검을 만드는 법을 철저히 가르칠 테니 각오하도록.”
“에엑!? 이래보여도 전 죽을 위기까지 넘겼다고요!”
“흥, 네 놈은 오늘부터 날밤을 새고 배워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시간이 아까우니 잔말말고 따라와!”

젊은이는 투덜투덜거리며 웃통을 벗고 검을 만들 준비를 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스승님. 그런 저주 받은 검을 왜 스승님은 부수지 않은거에요? 스승님도 일단 마스터 핸드이시니 그런 검은 가볍게 부술 수 있을 것 아니에요? 설마….. 저주 받는게 무서워서?”
“이 놈이?! 잔말말고 일이나 해라!”

젊은이가 준비를 하는 사이 노인은 부러진 검 손잡이를 쥐고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노 앞에서 중얼거렸다.

“이 검을…… 차마 부러뜨릴 수 없었지.”

그리고 그 검 손잡이를 노 안으로 집어 넣었다. 불길에서 조금씩 녹아가는 손잡이에는 작은 글씨로 ‘아버지처럼 훌륭한 소드-마스터 핸드가 되길 바라며 – 비트’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글 올리는 아키입니다... 요즘은 학교도 졸업 예정이고 이제는 취업 준비로 게임회사 이곳 저곳에 이력서를 찔러 넣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는 어떤 게임회사에 입사원서를 넣으며 같이 찔러 넣은 이야기입니다.(거기 필요한 서류중 하나가 회사측에서 제시한 모티브로 만든 이야기 였거든요) 뭐... 서류를 낸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감감 무소식인걸 보면 떨어진듯..(크흑 안구에 습기가..) 그래도 이왕 쓴글이라 그냥 묻기는 아까워 이렇게 올립니다. 허접한 글이라도 예쁘게 봐주세요..(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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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단편 명조호텔 1907-8호 hybris 2006.12.23 0
351 단편 버스 refrain 2006.12.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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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 단편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욱일아파트 339-2303 나비 2006.12.14 0
348 단편 무기를 부수는 자(하) 화룡 2006.12.12 0
347 단편 무기를 부수는 자(상) 화룡 2006.12.12 0
346 단편 채널(The Channel)(본문 삭제)1 Inkholic 2006.12.10 0
345 단편 선택(하) 화룡 2006.12.08 0
344 단편 선택(상) 화룡 2006.12.08 0
343 단편 마피아게임 JINSUG 2006.12.07 0
342 단편 [현서의 도서관] 카프카에게 바치는 짧은 우화 - 낙엽 현서 2006.12.07 0
341 단편 [현서의 도서관] 까마귀 기르기 현서 2006.12.0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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