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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치유되지 않는 상처

2007.01.31 18:3001.31

<단 편>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테마로 한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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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영원한 악몽을 잠재우고 니 곁으로 갈테니깐. 그리고 같이 잠드는 거야. 사랑하는 나의 로제트 .

[노...바??!!]
“로제...트??”
.
.
[노.바!!]
“로..제트!!”
.
.
“또 농땡이 피우시는 거예요? 노바 아저씨?”
눈을 감고 잠시 단잠을 청하던 난 은연중에 들려온 내 옛 이름에 정신이 들었다.
깨어보니 주변에 들려오는 건 옆 공방에서의 칼 가는 소리와 무구를 운반하는 수레바퀴 소리가 가득히 울려와 내 어설피 들었던 잠을 일깨운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아 있는 건 내가 속한 용병대의 홍일점인 뮤엘. 계약 이후 나를 그나마 인간같이 대해주는 몇 안 되는 이상한 성격의 당찬 여인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상물정 모르는 여동생 같기도 하지만 꽤나 심지가 곧은 호흡이 느껴지는 아이다.
그렇다쳐도 누군가의 방해 받는 것을 피해 공병 창고구석으로 숨어 들어왔지만 이 녀석은 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위험해 위험하다고..
누군가가 나를 깨우는 건 정말로 질색이다. 내 몸에 흐르는 호르몬이 병에 담겨져 마구 흔들려지는 생각만 해도 울렁거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오만상을 찌 뿌리며 짜증오로라를 내뿜었지만 뮤엘은 이런 나의 반응을 분명 즐기고있다. 분명히!!
“난 노바가 아냐 노브리엘이다. 그리고 .아저씨는 좀 관둬주지 않겠니? 아직 그렇게 불릴 나이는 아니라고 보는데?”
“예?? 하지만 노바 아저씨는 너무 아저씨 포스가  팍팍나오는 걸요. 미켈씨 라던가 티리온 씨랑 틀리 말투도 그렇고 또...행동이라던지 말이죠.”
“노바가 아니라도 난 노브리엘이란 말이다. 멋대로 부르지마!”
뮤엘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주변 가득 울리는 공방의 소음 속에서 그 날 따라 유난히 청명하게 떠있는 달과 밤하늘을 바라보며 주저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요번 전쟁이 끝나면... 다들 같이 모여서 새롭게 용병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용병이라니.. 너 발키리 전대(여자들로 구성된 특전사 집단)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 아니였나?”
나에게 이 다음은 없다는 것은 이미 뮤엘도 알고 있을텐데 동정당하고 있는건가, 나도 참.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 오늘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전장에서 이런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뮤엘이 싫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직 경험을 더 쌓아야할것같기도 하고 이렇게 다니는 게 왠지 더 재밌는
것같고요.”
“흐응~확신이 아직 안선 모양이로구나. 그건 그렇고 지금 이곳에서 이렇게 태평스럽게 맘 놓고 내일을 얘기를 하고 있는건 너랑 나뿐일 것 같구나. “
“그런 점에서 저랑 노바 아저씨가 통한다니깐요 하하핫 ”
“...별로 기쁘진 않은걸;;그리고 말야 자꾸 노바라고 불르지말래도(뿌드득)”
“!!??”

태양력 415년.
현재 이곳은 이민전쟁이라 불리우고 있는 전쟁이 치뤄지고있다.. 1년이 다되어가는 이 전쟁은 태양의 신을 받드는 집단중하나인  성 디아드릭교의 새 교주가 이교도 탄압이란 명목하에 성 크루세이더 신성군단을 거병하여 1050명의 별 대륙의 이방인을 통째로 땅에 묻은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이민 세력은 크게 위기감을 느껴 성 디아드릭교에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이민 집단은 점점 더 세력을 결집하여 성 크루세이더 신성군단에 대항하였다.
하지만 성 디아드릭교의 힘의 원천인 제국의 지원 덕분에 이민 집단의 정화라 불리는 학살이 더욱 더 자행되었지만 제국 또한 내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터져나와 성 디아드릭교의 전쟁의 명분에 더 이상 동의하지 못하고 성 디아드릭교의 지원과 보급을 멈추었다.
이 때가 이민세력의 전환기였다. 이미 분노에 극이 다달은 이민세력은 성 디아드릭교와의 협상을 무시하고 오로지 성 디아드릭교의 해체만을 외치고 있었다. 테러와 게릴라 전으로 끝없이 이어져오던 이 전쟁도 1년이 다되가는 이때 어느덧 성 디아드릭교의 성소 앞까지 이민 세력들이 진을 치면서 끝이 보이는 듯했다.

왠지 피곤해 보이는 인상. 힘 없는 눈초리 하지만 날카로운 눈매. 듬성 듬성 나있어 지저분해 보이는 수염. 검은 머리에 지저분하고 군데 군데 성치않은 로브를 입고있는 나를 내 검에 비추어 보니 내가 전부터 이런 모습이였던가 생각이 들때가 있다.
[내가 이렇게 생겼었던가??]
지금 앉아있는 작전 연구실에 있는 미켈이라던지 디리온, 포프 녀석들은 어디서 씻고 오는지 항상 얼굴이 말끔해보였다. 전에 보니 꼬마로 보이는 시종들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그 녀석들이 챙겨주는 걸까? 왠지 부러운 감정도 들긴했지만 워낙 얘들을 싫어하는 것도 그렇고 그 사건이 후에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곳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된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고 하더라고 분명 사양하게 될것이다.
그들은 지금 전쟁의 최종막인 성소 침입작전 전략연구에 한창이다. 나는 그저 앉아서 시간만 잡아먹고 있는 중이다. 하늘에 떠있는 먼지를 세고 있다고나 할까? 그들은 나를 동료로 취급해준다. 동료라고 하는게 서로 듣기 좋겠지. 이들은 각자만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성 디아드릭교에 의해 아무의미없이 쓰러진 가족이라던가 연인, 그리고 정의감,이 있겠지만 그런건 별로 신경쓸 필요없다. 나는 이들의 명분을 이용하여 성 디아드릭 교주인 내 형의 목만 베어 가지면 되니깐..난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니깐. 그들도 그것을 위해 나와 조우하고 있을뿐.
이제 이름도 잊혀져 가는 내 연인을 위해 보내주는 내 마지막 선물이 될꺼야 로제트..
파파팟. 내 머리의 회로가 엉켜 과부하를 일으킨 듯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지난 내 연인과의 일을 회상하려고만 하면 머리에 극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이 것도 저주의 휴우증인가.
저주.. 그래.. 나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레베스라고 자칭한 악마는 그 사건이 있은 뒤 내 꿈 속에 찾아와 끝없이 끝없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는 나에게 달콤한 독을 내려주었다. 광분의 잔. 내 육신과 정신을 모두 바치고 얻은 새로운 힘. 복수를 위해. 내 온몸의 피와 영혼을 대가로 악마에게 모든 것을 베어버릴수있는 마검을 얻었다. 그리고 이 고통받지 않는 새로운 육신을. 지금도 내 입에선 피가 끓고 있는 듯한 탁한 저주스런 계약의 숨이 흘러져 나오고있다 .예전 불타는 나방 이야기를 로제트와 함께 나눴던 기억이난다. 파파팟

둘만의 비밀 여행. 부모님 몰래 대궁정의 저택을 말을 타고 빠져 나와 조그만 시골마을의 오두막을 내 기사단의 문장을 맡기고 빌려 밤새며 지냈던 즐거운 추억. 오두막 앞 공터에 장작들을 한데 모아 불을 지피었을때 로제트는 오두막 앞 타오르는 불의 아지랑이 앞에서 내 어깨에 부드럽게 기댄채 나에게 말했다.
“저거 보여? 노바”
“나방말하는거야?”
내 눈앞에는 뜨거운 불길 주변을 맴도는 나방들이 보였다. 불길을 맴돌던 나방들은 단지 불길 속에서 춤추듯 사그러 들어 갈 뿐이였다.
“왜 나방들은 자신이 타들어가는 것을 알텐데도 불길속으로 뛰어드는 걸까나?”“...그건 마법에 걸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마법?”
“그래. 나방들은 태어날 때부터 혼자였기 때문에 태어나자 마자 외롭지 않는 방법을 찾으라는 마법에 걸리는 거야.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 불을 찾아 다니는 거지. 너무나도 외롭고 외로워서 말야. 불에는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법이 있어서 일순간 자신의 마음을 위로받을 수있지. 그들은 불속에서 자신을 태워가며 위로 받고 있는게 아닐까?”
“그래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위로받을 필요가 있을까?”
“흐음...그건 아무도 나방의 마음을 못알아주니깐 어쩔수없었던게 아닐까?”
“왠지 노바의 말, 나방전문가라도 되는 듯한 말투,”
“하하. 전문가라고 불러줘. 로제트. 하하하”
그렇게 우리 둘만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행복했던 추억. 파파팟

불타는 나방인가..지끈거리는 머리를 짊어진채 고개를 숙인 난 내 모양새가 딱 그 때의 그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미 최종회의도 끝나가는 모양이다. 모든 준비가 끝난듯. 다들 비장한 표정으로 유서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왠지 웃음이 나올뻔했다. 이런 공간에 여러 감정들이 뒤엉켜 흐르는 공기는 몇 번 느껴보아도 정말 적응이 안된다. 참으로 시덥잖다.
“그럼 오늘 03시를 기준으로 거사를 치루도록 모든 준비를 마치도록 하지.”
“아, 드디어 결전이로구만.”
“마지막이고 적의 심장부이니 많은 피해가 있을건 자명하지만 우리 꼭 살아서 다시 만나
도록하자!!“
결전인가.. 그들의 결전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저들의 시체의 산을 밟고 형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이 검으로..절대..용서하지않아!!
회의를 끝마치고 덜렁덜렁 본부 막사를 나오니 왠일인지 뮤엘이 기다렸다는 듯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댔다.
“노바~아저씨!!”
“쿨럭”
나는 뮤엘의 부름을 못들은채 그저 고개를 돌려 쉴만한 곳을 탐색하러 발을 옮겼다.
뒤의 기척을 보아하니 뮤엘은 역시나 내 뒤를 쫗더니 코맹맹이 소리를 내대며 짜증오로라를 지멋대로 내뿜어대었다.
“거참,왜 저를 무시하시는 거예요!!”
“너는 뭣하고있는 거야. 내일 새벽에 출발할테니 미리 자두라고 나도 이제 잠자리 찾아서 갈 꺼니깐 말야.”
갑자기 뮤엘의 발소리가 멈췄다. 왠지 미묘한 공기가 뒤에서 흐르는 것을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뮤엘의 보기드문 진지한 표정이 내 눈에 들어왔다.
“저 노바아저씨가 어떤 상처를 지니셨는지 모르지만 내일이 마지막이 될 거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저 아저씨하고 쭈욱 같이 용병생활하고 싶단말이예요. 아저씨가 혼자서 상처를 짊어지고 힘들어하는거 더 이상 보기 싫어요. 조금은 의지해도 괜찮잔아요,”
나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앞을 바라본채 가볍게 입을 열었다.
“바보같구나.뮤엘.”
“!!??”
“그런걸 어리광이라고 하는 거야. 뮤엘. 나에게는 내가 갈 길 , 너에겐 너가 갈 길이 따로 있는거다.”
“...”
“내 잔소리는 이게 마지막이다 뮤엘. 내일 전장에서 살아남아라.”

돌아서는 내 발길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뮤엘의 표정이 안보고있어도 그려진다.
나도 참 바보같은 소리를 해버렸구만. 마지막으로 가볍게 포옹이라도 해주는 게 좋았을텐데
, 마지막으로 말야.


다음날 새벽.
공격 개시 시간에 맞춰 간 공격대 간의 최종 점검이 한창이다.
나는 본진 공격대 전열을 빈둥빈둥 휘젓고 다니며 병사들이 마시는 스프를 한접시 얻어 먹고 다니다 지도를 보고 한창 씨름중이던 파란머리의 미청년 미켈과 참모진들을 찾을 수있었다.
“여어, 미켈.”
“아, 노브리엘님. 오셨군요. 선봉부대가 이제 곧 출발할 겁니다. 아마도 노브리엘님이 전투에 임하실 본진 3은 선봉부대가 전열을 흔드는 동안 측면으로 돌아가 미리 배치해둔 공성병기로 외벽을 부수고 침입하게 될겁니다. 모든 준비는 완벽합니다.”
“아. 그래. ”
미켈이 옆참모에게 몇 번 쑥덕 거리자 곧 30대 중후반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듯 반듯한 인상의  제나스라는 자가 나타났다.
“이 자가 본진 3의 책임자인 제나스님입니다. 제나스님 이쪽이 얘기해드렸던 노브리엘님입니다.”
제나스와 상투적으로 악수하며 전해져오는 그의 숨소리는 전투의 시작을 앞두고 격양되있지만 나름대로의 관록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있는듯 무겁게 느껴졌다.
“일단 내벽안으로 들어간다해도 저희 본진3의 역할은 본진과 후발대의 내벽 진입이 마칠때까지 위치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내벽에 침입한 후에는 전에 미켈님께 전해 들은바대로,  단.독. 행동을 하셔도 무방합니다. ”
제나스의 호흡은 꽤나 딱딱한 전통 전투 방식이 몸에 배여있어서 그런지 내가 따로 행동한다는 것에 대한 어투에 꽤나 못마땅스러워 함이 전해져온다.
후하 후하 후하
이미 마지막 결전를 앞둔 병사들이 집결한 주변에 공기는 모든 것이 가라않을 듯이 무겁고 뜨겁다. 고무병이라 칭하는 자들은 어느 이민국의 전투방식인지는 몰라도 전투를 앞둔 병사들에게 다가가 투구를 한 대씩 주먹으로 쥐어박으며 사기를 북돋아주고 있다. 또한 서기병들이 작성한 응원메세지들 또한 나눠주고 있어서 나 또한 그것을 받아 읽어 보았는데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 ... 여러분을  삶, 죽음. 승리. 패배. 이런 간단한 단어들로는 후세에 어리석은 자들은 표현해낼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업적은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지 못하고 어떤 자들도 흉내내지 못할 숭고하고 성스럽고 명예로운 행보인것이다. 자 같이 달리자!! 내일을 위해!!! 우리들의  떠오르는 해를 지켜내자!!  ... ]

사방에 울려퍼지는 선봉대의 함성과 피리소리가 하늘 전체를 가득 메운다.
본진3에 포함된 나는 이미 작전대로 측면 외성을 향해 이동을 시작한 상태였다. 이미 마지막 전쟁의 종막을 알리는 전투는 시작한것이였다. 지금 내 안의 검은 게 끓어오르고 있다.

<<두 근>>
[ 이제 갈 수있다. 형에게.   이 저주받은 내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리겠어!!]

우오오오!!!! 쾅 쾅
이미 선두 선봉대의 전투가 시작된 듯하다. 행군중인 병사들의 갑옷의 마찰음과 긴장 속 녹아내리는 뜨거운 입김에 이미 이 주변은 맑은 밤하늘 공기가 아닌 눌러붙는 끈적한 온기 만이 느껴진다. 기어코 공격개시지점에 다달은 본진에 공병들이 기민하게 움직이며 공성병기들을 설치 조립하는 동안 병사들은 넓게 산개해서 주변을 경계하였다.
두두두둑 쾅쾅쾅!!!
두두두둑 쾅쾅쾅!!!
성의 외벽은 생각보다 견실했다. 망치를 든 병사들이 성벽을 달려가 마구 두둘겨 댐과 동시에 공병들이 성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공성병기가 성벽을 때릴때마다 전해져오는 진동음은 새벽잠이 덜깨있던 정신을 버쩍 일깨우는 소리였다. 적군도 이미 본진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준비해논 기름병과 불화살로 성벽 부근 일대를 모두 검은 불로 잠재우듯 뒤덥혀 씌웠다.
“으악!!!”
“으아아아~~”
멀찌감치 뒤 떨어져 그 광경을 보던 나는 타오르는 검은 불덩이와 하얗게 사그라드는 인영.그리고 고통스런 음성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고통과 절규가 내 검은 심장속으로 흘러들러오고 있었다. 그들이 흘리는 피와 고통이 내 몸을 채우고있는 것이다.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두두두둑 쾅쾅쾅!!
두두두둑 쾅쾅쾅!!
이미 외벽을 두들긴지 1시간이 다되어간다. 공성병기에 유린된 외벽은 이미 본래의 성벽의 자취를 잊은지 오래되었다. 지독히 풍겨져오는 기름내음과 타다남은 주검들의 냄새가 뒤 섞여 코가 마비되어가는듯하다. 아직 타들어 가고있는 불타는 검은 기름들이 사그러들면 일제히 돌진명령이 내려질 기세이다. 저 쪽또한 이미 궁수들과 마나응집포를 앞세운 포수들이 성벽 위에서 우리들과의 결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   “후!!”  “후!!”  “후!!”
아군들이 일제히 기합을 불어넣고 있다. 돌진할 준비가 다되었다는 신호이다.  
전장의 소란함에 잠이 깬듯한 해는 어느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해가 이들을 모두 다 드리우는 순간 일제히 본진3 병력이 제일 먼저 적의 성벽으로 돌진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을 마무리 짓는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돌격하라~~~!!!!”
“우와~~” “우와~~” “우와~~” “우와~~”
이미 짜여진 순서대로 제3본진이 제일 먼저 적 외성 안으로 돌격을 시작하였다.
일제히 돌격과 동시에 적군의 불화살이 하늘을 날으며 포물선을 그린다.  
덩치큰 아군병사한명 뒤에 바싹 붙은 나는 날아오는 화살에 몸을 숨기고 앞에서 달리는 병사와 호흡을 같이하며 날아오는 화살을 튕겨내었다.
주변에는 날아오는 화살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로 내 귀를 위협한다. 가끔씩 마나응집포가 지면에 다달을 때면 튀어오르는 인영들과 함께 날카로운 고함이 내 귀를 가득채웠다.

<두근>

외마디와 함께 마나가 다 떨어진 인체인형처럼 그 자리에 고꾸러지는 이름모를 아군들을 뒤로 하고 본진 3 병력과 함께 외벽에 들어서자 보이는 건 새하얗게 진을 치고 있는 크루세이더들이였다. 십자가를 가슴에 크게 새긴 풀 플레이트 갑옷에 기다란 우유빛 검을 들고 진을 치고 있던 녀석들은 진입하고 있는 아군들을 기다렷다는 듯 무참히 베고 있었다.
나 또한 아군의 뒤에 숨어있다 적의 칼과 경합할 때 쯤 배후에서 칼을 찔러넣으며 본진 3의 병력들과 함께 조금 씩 조금 씩 자리를 잡아갔다. 내 어깨엔 이미 외성에 설치된 망루에서 쏟아지고 있는 화살이 처음으로 내 몸에 와 닿았다.
[하아 하아]
칼을 내지를때마다 적 병사들의 풀헬름 사이로 가려진 얼굴에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호흡이 전해져 오고있었다. 저들의 숭고한 영혼을 쌓아올라 내가 지금 다가가고 있다. 이 모든 악몽의 원흉에 말이다.
이미 외성 안쪽에는 망루가 이곳 저곳 세워져있어 궁수와 포수들의 일제 사격으로 진입이 더뎌지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아군또한  예상했다는 듯 일부 병력이 소부대로 나뉘여 망루의 다리를 공략하면서 외성의 적군을 한곳에 붙잡아 둠과 동시에 망루의 제거가 하나 둘씩 되가고 있었다. 이런 병력의 일사 분란한 움직임에 속으로 탄복할 새도 없이 나는 본진 병력이 좀 더 자리를 잡을 때까지 위치를 고수하고 적의 병력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따로 돌아들어갈 방향을 찾아보았다.
[내성으로 통하는 통로가 반드시 있을터!!]
본진병력이 서서히 밀고 들어올때 쯤 나는 이미 봐 놨던 길을 통해 돌아 내성으로 통하는 통로를 찾아보았다.
이미 성소는 성내 전쟁을 대비해 주요 거점마다 새하얀 돌성이 쌓여져 있어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구분이 되지 않았다. 새하얀 돌담이 불규칙 적으로 새워져 있는 어지러운 성소 건물중 한군데에 올라가 제일 커다란 건물을 파악하고 다시 재빠르게 움직임을 계속했다.
하지만 움직임도 잠시 이미 내성 쪽에 새워져있던 망루에 의해 내 위치가 발각남으로서 나는 익숙하지 않는 공간에서 차가운 흰색의 벽에 몸을 기댄채 적의 정찰병이 자신을 잡으러 오기를 기다렸다.
[[ 온다!! ]]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검을 내빼들었다.
나의 검이 그들의 기척을 따라 수를 놓든 미끄럽게 휘어져 적의 정찰병들을 하나둘씩 쓰러뜨려갔다.
하지만 점점 몰려드는 적의 정찰병의 수가 만만치않아 나는 벽으로 몸을 숨기려는 찰나 뒤에서 돌아들어가  나를 노리던 궁수들의  화살 중 하나가 내 가슴을 꽤뚫었다.
“컥!!”
모든 시간이 정지해버린듯 멈춘 내 의식속에서 느껴지는 건 내 가슴 속 마나가 구멍난 그것처럼 빠져나가는 듯하다.  
적은 정지해버린 내 움직임에 일치에 망설임도 없이 칼부림을 내려꼳아 내 온몸을 짓니겨뜨렸다.
“!!! ”
“하아하아하아...해치웠습니다. 주여 이 자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
“동지여, 아직 더 있을 지 몰릅니다 우리들은 주변을 더 탐색합시다. 쓰러진 아군들을 살피고 어서갑시다!!!”
“...큭”
“!!??”
주변의 적들은 내가 주섬주섬 몸을 다시 일으키자 놀란 듯 움직임을 멈추고 멈짓 거렸다.

<두근>

“이 나를 해치웠다고 하기에는 좀 검이 얇다고 보는군. 검을 좀 더 깊숙이 박으라고 산산조각을 내란 말이야!!”
내 오른손에 전해져 오는 감각으로 드디어 내검이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내 호흡에 깊은 피냄새가 진동한다. 내 오른손의 잠에서 깨어난 마검은 전의 닳고 헐은 자신의 형체를 내 계약의 피를 들이킴으로서 그 모습을 붉고 짙게 그리고 저주스럽게 드러낸다. 또한 거기에 반응하듯 내 몸도 점점 힘을 개방함과 동시에 녹아내릴 듯 뜨거운 저주스런 억겁의 화가 내몸을 짓눌렀다. 내 이성의 끈이 깨끗하게 잘려져나간다.

<<번 뜩>>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울컥.
나는 검붉은 피를 한줌 토해냄과 함께 정신이 되찾았다. 파파팟
연이은 두통에 이어 역시 전과 같이 기억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전쟁은 시작한 것인가. 그렇다면 여기는!!”
온통 주변은 고급스런 분위기의 낯익은 하얀 돌담과 조각상 그리고 건축물들이였다.
희미한 정신이 점점 더 몽롱해진다.
쾅!! 쾅!! 쾅!!
멀지 않은 곳에서 포성이 들려온다. 이곳이 어딘지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내 오감이 점점 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검을 고쳐잡았다. 그리고 내 의지를 따라 정면의 커다란 하얀 대문을 향해 진흙이라도 밟은 듯 끈적한 소리를 내는 발을 옮기며 걸어 나갔다. 자신이 정면의 하얀 대문에 다가가면 다가갈 수록 내 타버린 심장이 다시 살아 숨쉬는 것과 같은 깊은 착각을 일으켰다.
[ 저 문 안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였다.
“형...내가 왔어.”
끼익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보이는 건 길게 깔린 레드카펫 끝자락 제단에 앉아 있는 나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의 낯익은 미소였다.
집회장인듯 한 이 장소는 미묘한 위화감이 몰려와 온 몸을 조여들었다.

[이 감각. 너무나도 슬픈 이 감각.]

파파팟 여느 때와 다른 극심한 두통이 내 머리를 쪼아댔다.
내 두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나온다. 형을 바라보는 나는 형을 향해 입을 웅얼거렸지만 아무말도 나오지 않았다.
교주 복을 입고 있던 형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머리에 쓰고 있던 법관을 내려 놓고선 내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 오고 있었다.

“결국 돌아왔구나 . 여기를 기억하는가? 나의 동생이여?”
형의 한걸음 한걸음에 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다.

“내 결혼식장이였잔아.”
형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가슴이 깨지는 듯하다.

“나와 로제트의 ... ”
나의 수그러든 고개는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제 괜찮단다. 아우야. 돌아올줄 알았다. 너의 죄를 이제 용서할테니 그만 쉬도록 해라.
이미 로제트는 내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어. 난 지금도 로제트를 느끼고 있단다. 슬퍼할 필요 없어.“

파파팟 파파팟.
내 어긋났던 기억의 퍼즐이 하나 둘씩 제 짝을 찾아 다시 끼워맞쳐져 나간다.
로제트의 미소, 손짓, 숨소리 말 어느 하나에도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걸음 떨어진 발치에서 형과 로제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모든 왜곡된 기억들이 형의 익숙한 미소를 보자 허물처럼 벗겨져 나간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인채 자신을 위한 읍조림을 멈추지 않았다.
“용서 못해 용서 못해!! 내가 이렇게 사랑하는데 내가 이렇게 가슴 아파하는데...!! ”
형은 인자한 미소로 떨고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우여, 너가 일으킨 전쟁에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다. 이제 그만 쉬도록 해라. 너의 영혼이 그만 쉴수 있도록. 너의 아픔은 이 형이 다 보드담아 주마.”
“...”
나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며 내 오른손에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웃음이 나온다.
“큭큭큭...형..형은 그래서 안되. 너무 마음이 약해 . 용서? 사랑? 그런게 될 것같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왔지만 아직도 내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어!! ”

[결국 아무것도 난 이뤄낸 것이 없었어. 이 모든 꿈같은 곳을 벗어나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어!!]

“아우여. 슬프구나. 너를 위해 난 기도만 해줄뿐이더냐. 너또한 나는 ...컥...컥...컥”

풀썩

아무도 없는 집회장 안에 흰 의복을 입은 남자가 조용히 홀로 잠자듯 누워있다.
모든 정적은 집회장에 가득차 있었다. 단지 바람 한결이 집회장안으로 불어 붉은 모래한줌을 하늘로 날려 보내주었다.
붉게 흐트러져가는 모래는 반짝 반짝거리며 그 빛을 하늘 속으로 감추어 들어갔다.
사그러 들어갈 줄 모르는 붉은 빛은 하늘에 머물지 못하고 정처없이 떠돌뿐이였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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