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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침입

2007.05.21 22:0905.21




  <주온>의 흉가에서 사다코의 비디오를 보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질문을 네이버 지식 KIN에 올린 사람이 있었다. 질문도 질문이지만 대답도 보통이 아니어서, <주온 집에서 링 비디오를 본다면 틀고 있던 TV에서 아이 ― 사다코가 아니라? ― 가 나온 후 주온 귀신과 맞붙어서 같이 소꿉놀이를 할 겁니다>였고, 결정판(?)격인 리플은 이러하였다. <둘이 소꿉장난 그때 갑자기 주인공한테 핸드폰 이상한 소리 들리고 주온귀신이랑 링귀신이랑 같이 받았는데 착신아리의 그 미친 재수없는 귀신 그래서 셋이서 소꿉놀이 주인공은 구경하다가 그 세명 귀신 날새는 줄 모르고 소꿉놀이하다가 저승사자가 그 세명 귀신들 끌고 감>. 이쯤 되면 감상은 하나다. "니마 짱드셈."




  상당히 잘 지어진 전원주택이었고, 조건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값이 쌌다. 여기까지만 서술해도 그 집이 뭔가 심상치 않은 사연을 간직한 집이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정문구 씨는 중개인이 소개한 집에 들어가는 순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집이다.

  물론 정문구 씨는 결코 영적인 감각이 발달했다거나 오컬트적으로 민감한 체질이 아니다. 다만 정문구 씨가 그런 느낌을 받은 근거는 <싼 게 비지떡>이라는 고금의 진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싸고 조건 좋은 전원주택의 매력은 거절할 수 없는 것이어서, 정문구 씨는 마침내 그 집을 계약했다.

  정문구 씨의 평생 소원은 아늑한 전원주택에서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데리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 결혼 15년째 생이별 아닌 생이별 상태로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은 끝에, 그 소원이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 당당히 자신의 집이 된 전원주택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기다리며, 정문구 씨는 잠시 동안 처음의 꺼림칙한 기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의 모든 시름을 잊었다.

  <그것>이 나타날 때까지는.




  처음에는 집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줄 알았다. 지붕과 연결된 3층 다락방에서 삐걱삐걱 꺽꺽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을 때 정문구 씨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이 차례로 열리는 덜커덩 소리가 났을 때는 바람 탓이라고 생각했다. 3층에서 2층으로 통하는 계단에서 무엇이 내려오는 끼익끼익 소리가 났을 때는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나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긴 머리의 여자 귀신이 2층에서 1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엑소시스트>의 스파이더 워킹으로 내려왔을 때, 정문구 씨는 그대로 정신을 잃을 뻔했다. 정문구 씨를 버티게 한 것은 이미 계약금을 잔액까지 다 지불했고 등기 이전을 마쳤으며, 사흘 후면 아내가 두 아이 ― 초등학교 6학년인 딸, 3학년인 아들 ― 를 데리고 짐을 정리하여 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아늑한 전원주택에서 네 가족이 오손도손 사는 것>은 정문구 씨가 평생을 꿈꿔 온 소망이었다. 그 소망의 실현이 이제 눈앞에 있는데, 겨우 이까짓 귀신 하나로 인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문구 씨는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정문구 씨가 기절하지도 도망가지도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버티자, 계단을 스파이더 워킹으로 내려온 귀신이 도리어 놀라는 기색이었다. 계단참에서 멈춘 귀신은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긴 머리카락으로 바닥을 질질 쓸며 팔다리를 거꾸로 움직여 다시 계단을 올라가 다락으로 사라졌다.




  정문구 씨는 15분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 집을 포기할 수는 없다.

  상대는 귀신이라지만, 나보다 연하 ― 로 보이는 ― 이고 여자다.

  게다가 바닥을 기어다닐 뿐이다.

  정당한 값을 지불하고 등기까지 마쳐 완전히 내 소유가 된 집에서 나를 몰아내려 하는 못된 년이다.

  이년을 그냥 두면 내 가족이 위험한 것은 물론이며 집값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이년을 족쳐야 한다.

  정문구 씨는 결론을 내렸다. 사흘 후면 가족들이 온다. 그 전에 해결을 내야 했다.




  다음날 밤, 같은 시각.

  다락에서 삐걱삐걱 꺽꺽꺽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정문구 씨는 결전의 때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문들이 덜컹덜컹 열리고, 계단이 끼익끼익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문구 씨는 어제의 그 자리에 떡 버티고 선 채 기다렸다. 마침내 귀신이 긴 머리로 바닥을 쓸며, 여전한 스파이더 워킹으로 2층 계단을 내려왔다. 귀신이 1층에 도착하여 자신을 향해 기어오기 시작하자, 정문구 씨는 즉각 작전을 실행했다.

  정문구 씨는 입고 있던 바바리 앞자락을 확 벌렸다.

  그 안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슬금슬금 다가오던 귀신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췄다. 눈으로 보이는 부분이 크게 벌어지더니 입으로 생각되는 부분에서 "끼익"과 "꽤액"과 "꺄악"과 "꺼꺼꺼"의 중간쯤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신은 서둘러 은신처로 사라지려고 계단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나 관절이 꼬여 바닥 위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정문구 씨는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 미리 준비해 둔 실팍한 각목을 움켜잡았다.

  쩗! 배를 정통으로 맞은 귀신은 태질친 개구리처럼 자빠져 거품을 물며 사지를 버둥거렸다. 몽둥이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정문구 씨는 용기백배하여 다시금 각목을 고쳐잡고 무자비하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펇펇! 쩗쩗! 읅쩙! 욾뚧뚧! 왅긑좛! 출처불명의 효과음과 함께 귀신은 묵사발이 되었고 정문구 씨의 몽둥이질은 그칠 줄을 몰랐다.




  정문구 씨의 아내는 새 집을 보고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셋방살이로 주인집 눈치보기에 한이 맺힌 아이들은 널찍한 마당에서 강아지처럼 뒹굴며 뛰어놀았다. 이삿짐을 옮기는 정문구 씨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대문 옆에는 대형 분리수거 봉투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무엇인지 모를 허옇고 꺼먼 물건이 구깃구깃 뭉쳐져서 들어 있었다.

  "여보, 저건 뭐예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건데, 그냥 버리면 돼. 신경쓰지 마."




  괴기탐정 반행신은 의뢰인에게 말했다.

  "편히 앉으시죠."

  "……."

  동춘서커스단 정도가 아니라 평양 교예단이나 중국 곡예사라도 오래 유지하기에는 불편한 자세임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은 고개를 저었다. 반행신은 두 번 권하지 않았다. 의자를 젖히고 등을 기대면서 반행신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무엇을 의뢰하고 싶으십니까?"

  "……! ……, …… ……. …… ……, ……! ……! ……, …… ……!"

  "……."

  의뢰인은 온몸으로 장렬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공옥진 여사가 보면 병신춤의 후계자로 당장 낙점하고도 남을 그 감동적인 공연을 지그시 바라보던 반행신은, 의뢰인이 숨을 헐떡이며 퍼포먼스를 그치자 말했다.

  "알아듣게 말씀하세요."

  "……! ……! ……!!"

  "아니면 통역자를 데려오십시오. 알아들을 수 없는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

  의뢰인은 답답한지 가슴을 쾅쾅 두들겼지만 반행신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제풀에 지친 의뢰인은 바닥에 널부러진 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반행신을 노려보았다. 똑같이 답답한 심정으로 창 밖을 쳐다보던 반행신은 관점을 바꾸어 보기로 했다.

  "아나따상, 니혼징데스까? 나니가 몬다이데스까?"

  "……!"

  의뢰인의 몸뚱이가 뭍에 올라온 생선처럼 바닥 위에서 한 길은 될 만큼 펄쩍펄쩍 뛰었다.

  "아니라고요?"

  "……!!"

  "어휴."

  반행신은 깍지낀 손 위로 이마를 처박았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상황이 이 정도 되자, 의뢰인도 어떻게 하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지 몹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 그러면 되겠군. 괜히 고민했네."

  반행신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의뢰인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반행신은 노트북을 켜서 워드프로세서를 실행하고 의뢰인 앞에 갖다 놓았다.

  "이거라면 어떻습니까?"

  의뢰인은 맹렬한 속도로 ― 타법은 독수리였지만 ―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아니라 머리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오타가 한심할 정도였지만 읽을 수는 있었다. 반행신은 의뢰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화면에 조합되는 글자들을 읽어내려갔다.

  "…… 주거 침입…… 성희롱…… 폭행…… 유기…… 이게 답니까?"

  아마 <그래요>라는 의도였을 <ㄱㄹ우ㅡㅀ페ㅐㄴㅌㅇ호ㅛ>라는 자모의 조합이 나타났다.

  "고소 및 고발을 원하십니까?"

  마찬가지로 <그래요>라는 의도였을 <ㄳ뤄ㅡㅎㅍ러ㅏㅐㅍ휴ㅛㅗ>라는 자모 조합이 나타났다.

  반행신은 벌떡 일어났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저희 괴기탐정 사무소에서는 사건 조사와 해결을 법의 규제 범위 내에서 담당할 뿐, 사법 소송을 대행하지는 않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문은 저쪽입니다."

  "……."

  실망과 피곤에 사무쳐 느른해진 모습으로, 의뢰인은 반행신이 가리킨 문을 향해 스파이더 워킹으로 느릿느릿 기어나갔다.




  원주은 ― 정문구 씨의 전원주택에 나타났던 귀신의 이름이다 ― 은 저승사자들의 불법이승체류 단속을 피해 기어들어가 근근이 머무르고 있던 집에서 주인의 처절한 몽둥이질을 당해 쫓겨나고, 그나마 희망이었던 괴기탐정 반행신으로부터도 거절을 당하자,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을 뜻을 잃었다.

  "……, …… ……!" (통역: 사람들은 죄다 한통속이야!)

  원주은 자신도 한때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접어놓기로 하자.

  주은은 마지막으로, 저승으로 찾아가 염라대왕에게 직접 호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주은은 순찰 중이던 저승사자에게 나타나 자수했다.

  "어차피 자수할 테면 도망다니지나 말지."

  "……." (통역: 저도 사정이 있었어요.)

  "무슨 사정이 그리도 절박해서, 이미 죽었는데 저승에도 안 와?"

  "……! ……!" (통역: 여자의 과거를 묻지 마세요! 성희롱으로 고발할 테야!)

  주은은 저승으로 들어갔다.




  주은의 원한이야 사무치든지 말든지, 입저승사무소에서부터 직원들은 처절하게 농땡이를 부렸다. 주은은 매일같이 입저승사무소에서 줄을 섰지만, 땡 하면 출근하여 땡 하면 퇴근하는 직원들의 업무 시간으로는 제 명에 죽어 바로 저승으로 온 영혼들 ― 이들의 수속은 우선 처리된다 ― 을 처리하는 것에도 벅찼다. 그 다음으로는 비명에 죽었으되 제때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으로 온 영혼들이었다. 주은처럼 한동안 이승에 불법체류했던 영혼은 직원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최대한 따돌리며 늑장부리기> 대상이었다. 주은이 아무리 사무실에서 발악하며 항의하고 뒹굴어 봤자, 이미 그런 상황에는 넌더리가 나도록 익숙해진 직원들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꺽꺽꺽 소리를 지르며 스파이더 워킹으로 사무실을 열 바퀴나 돌아도 뉘 집 개가 짖나 정도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직원들을 상대로, 주은은 차라리 이승에서 남의 집 다락을 전전하던 시절이 그리워질 지경이었다.

  기다림과 항의와 반항과 보류와 절망을 되풀이한 끝에 간신히 입저승 수속을 마쳤을 때쯤, 주은은 자기가 왜 저승에 왔는지조차 기억에서 희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주은은 염라대왕 앞에서 억울함을 호소할 정도의 정신은 유지하고 있었다. 입저승 수속 과정에서부터 처절하도록 겪은 직원들의 업무 농땡이와 늑장 처리를 고발할까, 아니면 당초의 목적대로 이승에서의 억울함을 호소할까를 놓고 상당한 갈등이 있었으나, 주은은 망설임 끝에 최초의 목적을 관철하기로 결심했다.

  "……!" (통역: 이러저러하옵니다!)

  "불법체류 영혼으로 그런 대접을 받아 싸지 뭘 그러느냐? 그러면, 옛날처럼 오구굿이라도 베풀어 줄 줄 알았느냐?"

  "……!" (통역: 하지만 몽둥이질을 할 것까지는 없지 않사옵니까!)

  "그래서 뭘 원하느냐?"

  주은은 염라대왕이 특별히 발급한 단기 관광 비자를 받아 이승으로 다시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상전벽해라더니, 정문구 씨의 전원주택이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주은은 행여 무슨 단서라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파트 안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사흘째 되는 날.

  "오호라, 바로 너였구나!"

  보글보글 파마를 한 아줌마 다섯 명이, 입으로는 풍선껌을 씹고 손으로는 각목을 손바닥에 두드리며 주은의 앞을 막아섰다.

  "남의 집값을 떨어뜨리려 드는 이 요망한 년!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주은은 이번에도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재활용 쓰레기통에 갇혔다.

  다행히 순찰 돌던 저승사자가 주은을 발견했고, 마침 비자 기간도 만료되었기에 주은을 데리고 저승으로 돌아갔다.




  염라대왕이 주은에게 물었다.

  "또 이승에 가고 싶으냐?"

  "……!" (통역: 지긋지긋하옵니다!)




          Real Cast

  정문구 씨: 송강호
  괴기탐정 반행신: 시영준
  염라대왕: 신구




* 이것은 옴니버스 <기역에서 히읗까지> 중 <느낌 / 느릿하다 / 늑장>을 묶은 것입니다.
황당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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