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2007.06.12 14:1606.12





        <녹>




  임형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창을 찾아내는 것이었고, 다음으로 한 일은 닫힌 창문을 밀어올리는 것이었다. 밀어올리려고 시도하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녹이 심하게 슨 창틀은 어찌나 삭았던지 창문과 거의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유압 잭이라도 동원하지 않고서는 그 창틀에서 그 창문을 밀어올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조차도 일단 그 잭을 밀어넣을 만한 틈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물론 그런 물건이 수중에 있을 리 없었고 ―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를 갖지 않는 한 ― 창문은 밀어올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형우는 15분 동안 창문을 밀어올리려고 시도했다. 그 결과 임형우는, 자신이 이 빌어먹을 창고에 갇혔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을 15분 동안 보류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를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가게에서 장례를 치르게 된 장의사라든가, 자신의 병원에서 사망한 ― 그것도 의료사고로 ― 의사라든가, 좀더 운명의 장난이라는 요소를 첨부하면 물고기를 잡으려고 던진 다이너마이트가 자신의 보트 밑에서 폭발한 낚시꾼이라든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쉰다는 것조차 지긋지긋한 아내를 죽이려고 만반의 계획을 세웠는데 그 계획이 자신을 목표로 작동한 남편이라든가 등을 떠올릴 것이다. 뭐, 후자의 두 예는 아이러니라기보다 인과응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이러니란 기본적으로 사기당한 사기꾼이라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임형우는 이 창고의 문이 열리면 일정 시간 후 자동으로 닫히고 닫히면 즉시 자동으로 잠기며 잠기면 바깥에서만 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겠구나>였고, 이 창고 문의 설계자가 안에 갇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그놈은 다윈상을 탔겠구나>였다. 하루에서도 수없이 그 앞을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최초의 공포를 극복하고 그 안에 들어가 물건을 나르기도 하면서 ― 물론 문에는 닫힘을 막는 버팀대가 있었고, 만약 닫힐 경우 당장 문을 열어 줄 동료들이 밖에 서 있었다 ― 임형우는 그 두 가지 생각 이외에는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에 반질반질하게 기름을 바르고 터무니없이 비싼 넥타이에 쇠사슬이 치렁치렁한 핀을 보란 듯이 꽂고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그 싸가지 없는 양아치가 자신을 걷어차고 과장 자리를 꿰어찼을 때부터, 임형우는 창고 문에 대해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밖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저놈이 창고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입사 당시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아리따운 여직원에게 그 양아치가 껄떡거린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임형우는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밖에 아무도 없는 시간에 저놈을 창고에 들여보내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마침내 그 아리따운 여직원이 그 양아치의 투스카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한 순간부터, 임형우는 진심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목격자가 없는 시간에 저놈을 창고에 집어넣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자세한 과정은 생략한다. 어쨌든 임형우는 아무도 목격자가 없는 시간에, 수면제를 탄 술을 먹인 양아치를 업고 창고에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양아치의 넥타이에 꽂힌 핀의 사슬이 임형우의 머리카락에 걸려 단단히 얽혔고, 증거를 남기게 될까 두려웠던 그가 사슬에서 머리카락을 꼼꼼히 빼내는 동안 창고 문은 닫혔다.

  양아치는 목격자 없이 창고에 갇혔다.

  임형우와 함께.

  익히 알고 있는 바, 창고의 문은 닫히면 자동으로 잠기고, 잠기면 밖에서만 열 수 있다.

  창문은 녹이 슬어 열리지 않는다.

  약기운이 떨어지면 양아치는 깨어날 것이다. 그 전에 질식해서 죽지 않는다면.

  창고의 문이 도로 열리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만약 깨어난다면, 양아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질식해서 죽는다면 누가 먼저 죽을까?

  언제가 되든 창고의 문은 열릴 것인데,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임형우는 알 수 없었다.

황당무계
댓글 2
  • No Profile
    라스니 07.06.12 20:02 댓글 수정 삭제
    진퇴양난이군요. 예전 '베스트 미스터리 2000'인가에서 읽은 '사용중'이라는 소설이 연상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은림 07.07.11 15:48 댓글 수정 삭제
    뒤가 더 궁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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