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일기

2007.05.21 17:3105.21

내 나이 41. 내 손으로 일기를 써본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그것은 마치 먼지와 곰팡이로 도배되어진 오래된 창고를 뒤적거려야 한다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까마득 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나에게 있어 다이어리란 것은 회사 사업자 미팅, 상사들과 직원들간의 회의 일정 등등을 적어서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기도 하다. 거기다 쓴다고 쳐도 눈앞의 희어멀건 줄무늬 종이에 자신을 그날 곤궁에 빠뜨리게
하거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던 직원들이나 상사들의 저주의 글자들만을 국숫줄기처럼 뽑아낼것이 뻔했기 때문에 최근 자식놈과함께 보러 갔던 데스노트란 영화같은 패러디 노트를 만들지 않을 셈이라면은 포기하는게 낳겠지 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쓰게 된것이, 오늘 아들 놈이 대뜸 나에게 다이어리를 하나 가져다 주는게 아닌가. 저번 내 생일날 선물을 못챙겨줘서  새로운 영어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받은 다이어리를 선물로 주는거라나, 참 고마워해야할지 어처구니없어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고맙다"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받아두긴 했는데 , 쿨럭, 뭐 그렇게 됬다는 것이다.
또 내가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다른 이유를 열거하자면 회사일을 쓴다고치면 그 날 어떤 보고서를 결재맞았는지 어떤 직원 녀석이 지각을 했으며 그날 어떤 점심을 어디 회사 사람들과 먹었는지와 같은 시덥잖은 이야기 밖에 없을텐데  그런 일기를 쓰느니 인형을 수십개 사다가 그날 내 호르몬을 뒤흔들었던 놈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넣어서 대 바늘을 꽂아 목에 줄을 묶어서 서재 한 벽면에 주욱 걸어놓는 편이 내 마음을 가볍게 할것이라는 것이다.
또 쓸 말을 생각해 보자면 가족 얘기를 쓸수 있을 텐데. 내 마누라 이야기를 쓰자면 일기보다는 영화가 나을 것이라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상하자면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한편이 극성맞은 부인이라던지 아님 다른 한편이 애처가 남편이라던지의 설정에  한가족 안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이야기들로 서로 아웅다웅 알콩달콩 다퉈가면서 활기 넘치는 가정을 상상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바램은 오히려 부인의 극성스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싶은 심정인 것이다. 마치 나와 내 부인이 집안에 자리하고 있을 때면 아들 놈과 주말 마다 가끔씩 하는 ps게임인 "하지메의 일보" 였던가? 하는 게임같은 보이지 않는 권투 링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모니터 안이라고나 할까 나와 부인의 존재는 액션게임 속의 서로서로 누가 더 깔끔하고 잘 정돈해서 트집잡힐 일을 하지 않는지를 겨루는 일종의 대전자라고 생각되어질 뿐이다.
누가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었던가. 아마도 그것을 지은 영화 감독자는 나와 같은 인생의 대 선배가 분명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들 놈들 이야기를 쓰자니 기가 막혀 일단 숨부터 돌리고 생각해 내야겠다.
어느 날인가 큰 놈이 다니던 학교에 행사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곳의 수업과 수업 분위기를 한번 살펴보려 스윽 학교 전경을 둘러보고 클래스를 몰래 드려다 보니 아주 과관이 아닐 수없었다. 수업 시간은 학교 선생님의 가르키는 목소리보다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고 수업 시간에 공부하는 녀석들 보다 드러누워 자는 놈들이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방치해논 콩나물 줄기같이 매가리 없는 놈들 투성이들 속에서 큰 놈이 다니고 있다니
그 날로 나는 큰 녀석이 다니는 학원 수를 하나 더 늘리게 하는 특단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작은 놈은 아주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골치가 아파온다. 한가지 일화를 써보자면 작은 놈과 어느 날엔가 충청도에 위치한 큰집 시골에 같이 내려가서 [나 잘 지내고 있소]라는 팻말을 목에 걸어놓듯이 양손에 잔뜩 먹을 거리와 (분명 그날 저녘에 같이 먹을 내가 좋아하는  반찬거리가 들어가 있었던 건 확실하다.) 조카놈들 줄 현금들을 미리 뽑아 간적이있다.
아들 놈과 오래간만에 내려 온 시골이라 조상님들께 성묘도 드리고 여기저기 제초도 하며  담배밭이라던지의 인삼밭이라던지큰집의 전원생활을 보여주며 나 또한 과거의 기억에 빠져들었고 아들 놈도 이것 저것에 흥미를 가져 나를 나름 기쁘게 해주었다.
"기성아, 오래간만에 시골 내려오니깐 어떠니??"
"냄새가 심해.."
"...원래 자연의 냄새는 구수한 법이란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골집에서는 나와 아들놈이 내려왔다고 마침 여름철이고 해서 키우던 개를 한마리 잡는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나는 아들놈에게 개인적으로 아이 정서상 좋지 않는 영향을 미칠까 싶어 개 잡는 광경을 보여주지 않으려 집안으로 들어가라 시켰지만 오히려 작은 놈은
개 잡는 모습에 불쑥 관심을 내비치며 두눈을 붉히며 개가 깽깽거리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였다.
"자 이제 들어가자. 기성아."
"싫어! 더 보다 갈꺼야."
나는 적지않게 당황했다. 작은 놈이 이렇게 무언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는 작은 놈의 저렇게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 잡은 개의 내장을 뺴고 부랄을 빼자 그것을 본 아들놈은 자신도 그거를 먹고 싶다고 난리를 쳐서 참으로 곤란했었다.
이제 개 털을 없애기 위해 가스 불로 몸 전체를 지지자 개의 겉이 시꺼멓게 타 그을려지었다 . 그러자 작은 놈은 대뜸 "직접 보니깐 별거 없네."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들놈의 적잖은 발언에 나는 점점 놀라고 있었다.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였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판 순간 아들놈은 불로 지져서 시커멓게 그을려져버린 개에게 다가가  그 발로 걷어차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에 나를 포함해 주위 사람들도 모두 놀라 한순간 주변의 분위기가 솨하게 얼어버렸다.
"기성아! 뭐하는 짓이야!"
"게임에서 저렇게 시꺼먼 개가 죽어있는 척하다가 금방 일어난단 말야. 그때에 미리 발로 걷어차줘야해."
이 사건을 끝으로 나는 시골 큰집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고 무안해져 아들 놈과 조용히 그 날 식사자리에서 한마디의 말도 내뱉지 않은채 개고기를 낼름낼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시골에 안내려간지 어느덧 3년째인 것이다.
그러고보니 어느날엔가 동창생 친구와 술자리에서 요즘 젊은이들에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정신세계가 어설프게 일본물만 먹어서 허황된거랑 뜬구름만 쫗는 의지박약아 또는 이상한 취미를 가지는 녀석들이 많아 지고 있다고 했었다. 아무리 그렇다치더라도 내 자식놈들까지 그렇게 만들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번 방학때는 내가 직접 손을 쓰는 한이 있더라도 학원을 한두달 쉬게 하고 이곳저곳 병영체험이라던가 국토대장정이라던가 자연학교라던지로 보내 정신단련을 시켜야지 원 걱정이다.걱정. 쯧쯧쯧.
내 안사람은 도대체 자식놈들이 모하고 지내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원. 또 젊은 회사놈들 사이에서 히히닥거리다 저번처럼 성추행했다고 소문 나돌기만 해봐라. 이미 서류는 준비되었으니까 말이야.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간다.
아들 놈이 오늘 나에게 준 다이어리로 이렇게 끄적거려본 일기를 훌터보니 이게 일기인지 신세한탄인지 회고록인지 자서전인지 성격이 불분명한 글이라는 게 확실한 것같아 왠지 부끄러워진다. 이래서 일기란 것은 잘 숨겨둬야하는 것같다. 비상금 캐비넷에 같이 잘 넣어두면 되겠지. 이런 걸 안사람이 본다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 진다. 그래도 가끔씩 와인한잔에 잠이 안오는 밤 이 일기장을 펴놓고 조금 조금씩 글을 써나가는 것이 나름 나에게 즐거운 자극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 어색한 문장터치와 글 문맥에 그리고 지저분한 글씨체가 또 다른 부끄러움으로 다가오지만 이것또한 나름 멋아니겠는가. 하하 다음 번 이 다이어리를 열 날을 기억하며 오늘은 이만 내 넋두리를 덥도록 하겠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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