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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바닷가의 언덕 위에 마녀의 집이 있다고 했다. 사시사철 눈이 내리고 건장한 청년의 장딴지 두께의 얼음이 바다를 뒤덮고 있어 큰 배가 정박하지 못하는 고장. 그러나 일 년에 딱 한 달, 칼날처럼 몰아치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약해지는 시기가 있는 곳. 내륙에선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동쪽의 사람들이 여름 축제를 벌이는 동안, 빙하가 인간이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깨지고 뱃길이 열리는 곳의 언덕에 마녀가 살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마녀라고 불리는 그 늙은 노파는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면 비척거리는 몸을 이끌고 항구에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누군가는 그녀가 오래전 고깃배를 탔다가 실종된 남편을 기다린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본토로 넘어가겠다며 상선에 몸을 실은 어린 아들을 기다린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녀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미쳐버려 언덕 위에 있는 낡은 오두막에서 자신을 괴롭게 한 남자들에게 끔찍한 주술을 걸고 있다고 했다. 바닷길이 열리는 날에 그녀가 마을로 나오는 것은 그 남자들이 고통에 못 이겨 용서를 빌러 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을에서 유난히 용감한 소년이 그녀를 쿡 찌르며 누구를 기다리는 것이냐 물어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고 일 년에 한 번 들어오는 배들에 정신이 팔린 마을 사람들은 늙은 마녀를 길 한가운데서 말라죽은 그루터기나 유난히 흉물스러운 동상처럼 없는 듯 피해 다닐 뿐이었으니 그녀가 마을로 나오는 진짜 이유를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황금가지와 출간계약을 맺게 되어 뒷 내용을 삭제합니다. 이후 내용은 브릿G에서 확인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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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훈 22.07.23 23:21 댓글

    처음에는 읽기 힘들었지만 갈수록 인물과 갈등이 분명해지면서 읽기 수월했습니다. 인물과 인물의 상징이 표현하고자 하는 속깊은 주제의식이 있겠지만 그것을 생각하며 읽지는 않았습니다.(적어도 1회독에서는 그랬습니다. 다시 읽고 무언가 깨닫게 된다면 더 쓰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재밌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문체가 유려하고 셀키의 행방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환상'문학웹진에 어울리는 좋은 환상문학입니다. 간만에 판타지를 읽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좋네요 하하. 보통 요즘은.. 환상문학은 SF잖아요. 응원합니다 작가님.

  • 정상훈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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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이아람 22.08.17 13:36 댓글

    정상훈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미지와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했던 글이라 초반부가 읽기 힘든 문제가 있었군요.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재미있다'니 정말 최고의 칭찬입니다. 네, 소설 속 인물의 이미지와 역할은 전부 의도된 것입니다. 다만 어느정도는 글의 해석을 독자님들께 맡기고 싶어서, 또 이야기 속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생각해서 말을 아끼고자 합니다.

    판타지는 정말 좋죠... 저도 SF를 좋아하고 쓰고 있지만 제 첫사랑이 판타지 문학이었고 SF와는 다른, 판타지의 환상문학으로서의 매력을 포기할 수가 없어요. 다시 한 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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