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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세 아이

2022.04.18 18:5204.18

 

 

  "야 쪼개? 쪼개냐고."

 

 어른들은 찾지 않는 그림자가 깊게 진 골목에서 덩치 큰 아이들 사이로 민화가 몸을 둥글게 웅크린 체 차이고 있다. 휘두르는 발길질 사이로 힐끗힐끗 민화의 미소가 보였다. 별로 아프지 않은지, 아픈 게 즐거운지 소리 없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분이 꺼질 때까지 발길질을 하고 나니 아이들도 그제야 헐떡이는 숨을 들이마시며 그늘 밖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민화가 입은 하얀 반팔티는 이곳저곳이 얼룩말처럼 검은 발자국으로 가득 찼다. 태어날 때부터 갈색 머리를 가진 민화의 머릿결은 헝클어지고 나뭇가지처럼 엉켜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민화를 가만히 보고 있잖니 여전히 입가에는 미소가 흐트러짐 없이 올라가 있었다.

"아파?"

민화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면서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아파."

 미소 짓고 있는 얼굴에 그렇지 못한 대답에 나는 의아해했다. 민화는 우리 중에서 키도 크고, 몸도 좋은 아이였다. 동네 어른들도 우리 중에서 민화가 가장 듬직하다고 민화의 어깨를 두드리며 종종 말씀해 주셨다. 민화는 온몸을 털더니 일어나며 말했다.

"이러다가 약속 시간에 늦겠다, 빨리 가자."

 긴 다리로 그늘 사이를 빠져나가는 민화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민화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우리가 정해둔 약속의 장소로 향했다. 기다리 마트 앞에는 무지갯빛으로 둥글게 진 큰 파라솔 여러 개가 햇빛을 등진 체 큰 그늘을 펼치고 있었다. 저녁은 쌀쌀하고, 점심에는 후끈했다. 벚꽃잎 여러 개가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모습도 보였다. 파라솔 밑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장기나 바둑을 둘 수 있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원탁 책상과 등받이 의자도 여러 개 있다. 그곳에 얇은 책을 읽고 있는 우석이 보였다. 따가운 햇빛 사이로 고개를 내민 그늘 안으로 들어가자 온도가 순식간에 내려가듯 했다.

"오늘은 늦게 왔네."

 우석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한 체 아무 표정 없이 말했다. 나와 민화는 끈적한 땀으로 젖은 등을 의자에 기댄 채 흐물거리고 있었다.

"중간에 일이 있었어."

 민화는 웃는 얼굴로 말하고 긴 다리를 뻗어 바람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민화의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자 바람이 얇은 반팔 사이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눅눅한 땀을 훔쳐 갔다. 이곳에 있으니 우리가 평범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 우석은 책을 덮으며 아무 표정 없이 저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 민화는 길쭉한 입꼬리를 올리며 슬며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우석과 민화의 모습을 따라 하며 슬며시 눈을 감고 고개를 올리니 이제야 그림자 안에 완벽하게 몸을 숨긴 것 같다.

 

 아침 등교 시간에 맞춰 우리 셋은 기다리 마트에 모여 같이 출발했다. 같은 옷을 입은 아이들은 언덕과 평지에서 조금씩 나오다 한 무더기로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교실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는 부식돼 보이는 벽면과 낡은 사물함은 학교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남학생으로 가득 찬 교실은 답답하고, 아침부터 먼지로 목이 막혔다. 창가 자리인 나는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두고 굳게 잠긴 창문을 활짝 열었다.

"백무진 해 뜨고 창문 열어, 지금 너무 추워."

 뒷자리에 앉은 해찬은 카디건 단추를 목까지 잠그며 말했다. 해찬은 창문이 닫힐 때까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닫지 않고 책상에 앉아 가방을 정리했다.

"야, 창문 닫으라니깐? 이따가 열자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해찬의 목소리에 궁금해하며 물었다.

 "창문 닫으면 먼지가 너무 많아서 공기가 답답할 텐데? 나중에 열면 이미 많은 먼지를 마시고 난 뒤라서 아침부터 여는 게 맞아."

 해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창문을 닫으러 갔다. 창문은 다시 굳게 잠기며 먼지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다. 텁텁한 공기가 코로 빨려 들어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창문을 열러 갈 때 해찬은 어이가 없다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아, 진짜 아침부터 또 시작이네. 정신병자들, 그래 열어 내가 한 겹이라도 더 껴입을게."

 해찬은 포기한 듯 가방에서 마이를 꺼내 익숙한 듯 카디건 위에 한 겹을 더 입었다. 창문은 활짝 열리며 뻥 뚫린 네모난 구멍으로 시원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풍성한 가르마를 넘기며 앞문으로 선생님이 들어오자 아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고 정적을 만들었다.

 "다들, 아침에는 조용히 자습하고. 오늘 시간표 보고 서랍 안에 미리미리 챙겨놔라. 그리고 우석아 너는 잠깐 선생님 좀 보러 와라."

 우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생기 없는 표정으로 선생님 뒤를 따라갔다. 교실 밖으로 선생님이 나가자 아이들은 다물고 있던 입을 조금씩 열어 말했다.

"저 새끼 맞지? 눈앞에서 비둘기가 차에 밟혀 죽었는데 아무 표정도 없이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는?"

"맞다니깐, 내가 똑똑히 봤어. 모든 사람들 다 기겁해서 놀라 있는데, 자기 혼자만 아무런 표정 없이 가만히 보고 보고 있었다니깐."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 들렸다. 우석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는 아이다. 무서운 영화를 봐도, 눈앞에서 사람이 다쳐도 항상 생기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습의 반 애들은 신기했는지 죽은 쥐를 가져와 책상 위에 올려놓거나, 가끔은 웃어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우석은 그럴 때마다 아무런 반응 없이 쳐다만 봤다.

 앞문으로 우석이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틀어 떠들었다. 아이들은 각자의 둥지 밑에서 친구를 찾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쉴 새 없이 짹짹 거렸다. 찬 바람을 느끼며 앞자리에 앉은 민화를 쳐다볼 때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민화는 여전히 긴 입꼬리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민화가 웃고 있는 모습을 똑같이 따라 했다. 높게 미소를 짓자 눈도 반달처럼 반쯤 감겼다.

 해는 빠르게 올라오고, 수업 시간은 쉴 새 없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고 있었고, 선생님은 한 손에 교과서를 들고 진도 할당량까지 쉬지 않고 나갔다.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니 몇 개월 전만 해도 빼빼 마른 나뭇가지들은 살을 터트려 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뻣뻣하게 곧은 허리를 구부려 창밖을 보니 구름 한 점 없는 넓은 파란 하늘은 시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니들 인생이니깐 아끼고 소중하게 살아라 제발, 한 놈도 공부하는 녀석이 없어."

 선생님은 나가면서 혼잣말 같지 않은 말도 큰 소리로 뱉으며 나갔다. 애들은 선생님이 있는지 나갔는지 모르게 깊게 잠에 빠진 듯했다. 가방을 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화랑 우석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셋은 약속이라도 한 듯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아이들도 마지막 시간이 끝난 거를 눈치챘는지 조금씩 잠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 셋은 동네에 있는 작은 놀이터를 각기 다른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놀이터에는 나무껍질이 부스스 나오는 미끄럼틀과 바람에 맞춰 끼익 소리를 내는 그네 세 개가 전부였다. 놀이터라 말하기에 사람도 기구도 없었다. 항상 이곳을 들르는 우리는 어김없이 책가방을 내려놓고 그네에 몸을 맡겼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시곗바늘같이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민화는 웃음을 지으며 그네 줄을 베베 꼬으고 있었고, 우석은 옆에서 아무 표정 없이 바람에 머리카락만 흔들거리며 움직였다. 그네의 시작점은 낮지만 어느새 하늘에 닿을 듯 멀리 올라왔다. 떨어지며 느끼는 심장의 차가움은 그네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기분이었다. 그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보기 위해 정면으로 세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흔들리는 배경 사이에 검은 물체가 눈에 스쳐갔다. 두 발로 그네 속도를 멈추자 미끄럼틀이 만든 그늘진 공간이 또렷하게 보였다.

"얘들아, 저기 뭐가 있는데?"

 우석과 민화는 고개를 돌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바라봤다. 우석은 그네에서 일어나 미끄럼틀 가까이 걸어갔다. 나와 민화도 그네에서 내려 뒤따라갔다. 어두운 그늘과 가까워질수록 쾌쾌한 냄새와 귓가에 날아다니는 파리 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죽었네. 이것 봐 뼈랑 살이 완전히 붙었잖아."

 민화는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민화 말대로 고양이의 갈비뼈는 곧 튀어나올 것 같이 빼빼 말라 있었다. 그늘진 공간에 보호색을 두른 검은 고양이는 자신의 생을 다한 듯 차가운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우석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책가방에서 자를 꺼내 고양이 등을 툭툭 치며 말했다.

"지금 고양이 아픈 거야?"

 여러 번 쳐봐도 꼬리는 축 처진 체, 고양이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가만히 바라만 지켜볼 때 우석은 죽은 고양이를 손으로 끌어왔다. 우석은 어떤 표정도 짓지 않은 체 조용히 고양이를 안았다. 뒷모습으로만 봤던 고양이 얼굴을 제대로 보니 누군가 이곳에 와서 고양이 얼굴을 정리했는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었다.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고양이 묻어두자."

 우석은 그렇게 말하며 한 손으로 책가방을 들어 어깨에 걸쳤다. 나와 민화도 책가방을 들고 함께 했다. 우석이 가는 방향은 학교 안, 우리 반 선생님이 직접 가꾸시는 텃밭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빠져나와 아무도 없는 학교 정문은 쓸쓸히 삐걱거리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식수대를 지나니 그 뒤로 학생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게 설치해둔 초록색 펜스가 쳐져 있었다.

 우석은 아무 말 없이 고양이를 민화에게 맡겼다. 민화는 징그럽지도 않은지 입꼬리를 올린 체 안고 있었다. 우석은 펜스 입구에 있는 숫자 자물쇠를 만지작거렸다.

"너, 그거 비밀번호 알아?"

 우석은 여전히 대답 없이 두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식수대에 엉덩이를 기대고 우석의 등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우석의 귓가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떨어졌다. 끙끙 앓는 소리를 몇 번 하다 탁 소리와 함께 자물쇠를 열렸다. 그 소리가 승전보라도 된 듯 나와 민화도 서로를 아무 말 없이 바라봤다. 우석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새싹도 자라지 않은 가지런하고, 평평한 흙 밭이 깔려있었다. 민화는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푹신한 흙 위에 내려놨다. 우석은 소매를 걷고 무작정 땅을 파기 시작했다. 민화와 나도 뒤따라 우석이 판 땅에 손을 넣어 같이 파기 시작했다. 고양이 한 마리 정도는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우석은 고양이를 안아 손등이 바닥에 닿을 때까지 고양이를 내려놓지 않았다. 죽은 고양이에 애정이라도 갖은 듯 우석은 정성껏 묻어주었다.

 퍼낸 흙을 그 위에 다시 덮으며 검은 고양이의 털이 더는 보이지 않게 완전히 가렸다. 온몸에는 흙먼지 자국이 가득 남았다.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우리 셋은 펜스 밖으로 빠져나왔다. 우석은 주머니에 있던 자물쇠를 다시 걸고 식수대에 물을 틀어 손을 닦았다. 민화도 그 옆에서 손을 닦으며 말했다.

"고양이가 오래오래 잘 자야 할 텐데."

 우리는 정문 앞에서 아무 말 없이 헤어졌다. 집 가는 방향은 달랐지만 만나는 곳은 큰 그늘이 져있는 기다리 마트 앞인 것을 약속 한 체.

 

 교실 뒷문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고요한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재미있는 일이라도 터졌는지 쉼 없이 입을 떠들고 있었다.

"와 대박, 어떤 미친놈이 담임쌤 텃밭 싹 다 갈아엎고 심지어 고양이 시체까지 넣어뒀다는데?"

 몸이 먼저 움찔거렸지만 찔리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민화랑 우석도 마찬가지로 평상시와 같이 아무 말 없이 책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텁텁한 공기가 목구멍 안쪽까지 밀려 들어와 잠긴 창문을 활짝 열었다. 해찬은 이미 카디건 위에 마이까지 껴 입은 체 엎드리고 있었다.

 앞문이 강하게 열리며 벽과 부딪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얼굴 근육이 찌그러진 선생님이 들어오며 꾹꾹 참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놈이 펜스 넘어서 고양이 시체 하고 텃밭을 뒤집어엎은 거지?"

 반 아이들은 자기는 아니라며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졌다. 우석은 아무 표정도 없이 가만히 선생님을 바라보고, 민화는 미소가 끝까지 올라간 모습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듣고 싶은 답을 찾지 못해 숨을 크게 쉬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당장 나오는 게 좋을 거야. 당장."

 선생님은 고개를 푹 숙였다가 다시 올리셨다. 얼굴에는 꾹꾹 참은 화가 터질 것처럼 빨개지고 있었다. 고양이에 잠자리를 만들어 줬다 생각했지만 싸늘한 반응에 괜히 궁금했다.

"저희가 묻어줬어요. 고양이가 죽어서 잘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반 아이들의 시선은 한순간에 나를 찢어질 듯 노려봤다. 선생님도 책상을 치시며 이제 곧 터질 것처럼 목소리를 긁으며 말했다.

"뭐? 묻어줘? 미쳤어!? 누구야, 누구랑 같이 했어."

 선생님 말이 끝나자마자 민화와 우석도 일어났다. 선생님은 어이가 없단 듯이 목덜미를 꾹꾹 누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듯 가만히 서 있으셨다. 정적이 흐르자 선생님은 감정을 억지로 내리며 말했다.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묻어주고 싶었으면 근처에 있는 화단이나 아니면, 길 건너 있는 공원에 묻으면 되는데, 왜 내 텃밭에 묻었는지 이해가 안가네. 세 명 중에 아무나 말할 사람 있어?"

 우리는 뭐가 잘못된 거지 몰랐다. 죽은 고양이를 흙 속에 묻어둔 일이 자리에 일어나 혼이 나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누구도 말없이 가만히 선생님만 바라보다 나와 두 눈이 마주쳤다. 뾰족한 눈동자는 나를 계속 찌르듯 답을 원하는 듯했다.

"고양이한테 제일 안전한 장소라고 느꼈어요."

 어렸을 적 분수대에 물이 하늘 위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고 온몸으로 구멍을 막은 적이 있었다. 발바닥 틈새로 물이 새어 올라왔지만 나를 밀어내지 못했다. 분수가 다시 들어가 다음 차례로 나올 때는 발바닥을 따끔하게 찌르며 하늘 위로 높게 솟구쳐 올랐다. 선생님은 내 대답을 듣고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분수처럼 폭발했다.

"진짜 미쳤구나!? 세 명 다 복도로 나와!"

 선생님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겼는지 반 아이들은 속닥거리며 웃고 있었다. 발걸음이 남긴 흔적 위로 우리 세명은 뒤따라 나갔다. 쉬는 시간이 아닌 복도는 한산하고 차가운 기운이 발끝으로 올라왔다. 선생님은 우리를 한 줄로 세우고 말했다.

 "너희 내가 저번에도 눈감아준다고 했지. 어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거야? 저번에는 죽은 사람을 보고 왜 슬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지를 않나. 민화 너는 거기서도 계속해서 웃고 있더라?"

선생님은 눈까지 내려오는 웨이브 있는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석이 너는 돌아가신 사람에 관심이 없나 봐 다들 걱정하고, 슬퍼하는 눈빛인데 너는 끝까지 어떤 표정도 없이 장례식장에 남아 있더라. 선생님은 너희 세명만 보면 기분이 이상해."

 

 장례식장, 그때 일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은 그날 우리를 흘기는 눈으로 바라봤다. 신혁이의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같이 장례식장을 가자고 말했다. 몇몇 애들은 눈시울이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고, 다른 애들은 좋다고 선생님 의견에 따랐다. 우리는 그날 학교가 끝나고 큰 그늘을 지고 있는 기다리 마트 앞에 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근데, 죽으면 아픈 거야?"

우석은 얇은 책을 덮으며 머리에 뒷짐을 지고는 차분하게 내가 말한 질문에 답했다.

"아프니깐, 죽은 거야."

 민화는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만 흥얼거리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발가락부터 목젖 아래까지 온 부분을 검은색으로 칠했다. 사이로 빠진 얼굴과 손 말고는 그늘에 완전히 가려진 모습 같았다. 평범한 날씨, 별거 없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큰 병원이었다. 장례식장은 병원과는 떨어진 곳에 지어져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과,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상쾌한 바람을 들이마시는 사람도 보였다.

 장례식장 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향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주변은 어둡고, 조명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유리 문을 밀자 매끈하게 빠진 바닥에 그림자 안에 숨은 우리들의 모습이 비쳤다.

 장례식장 안은 조용하지만 슬펐다. 주위에 보이는 사람들은 자신을 검게 숨긴 체 아무 표정 없이 인사를 하고, 웃음기 없이 허한 마음만 느껴졌다.

"너희들도 왔구나."

 선생님은 눈시울이 빨개진 체 우리한테 다가오며 말했다. 한 손에는 휴지도 잔뜩 움켜쥐고 계셨다. 선생님은 우리 어깨를 두드리시고 신혁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셨다. 이미 안에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그림자를 두른 체 가득 차 있었다. 다른 곳보다 훨씬 서늘하고 차갑게만 느껴졌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서명을 하라고 알려주시고 안으로 들어가셨다. 서명하는 순간에도 기분이 이상했다. 우석은 아무런 표정 없이 자기 이름 석 자를 쓰고 신발을 벗었고, 민화는 해맑은 미소로 이름을 쓰고 들어갔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신혁은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고개를 숙인 체 서 있었다. 장례식장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또 다른 절차가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서 들어가렴."

 키가 큰 어른이 우리를 살살 밀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다른 장소와 달리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그림자가 짙게만 느껴졌다. 신혁이는 우리가 들어와도 여전히 고개를 숙인 체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신혁이 아빠는 미소와 함께 우리를 바라보고 계셨다. 우리는 가만히 서서 인자한 미소로 웃고 있는 신혁이 엄마 사진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제 국화를 한 송이 들어 영정 앞에다가 놔줄래?"

 신혁이 아빠는 나긋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민화부터 시작해 한 명씩 국화를 뽑아 하얀 꽃잎이 사진에 향하도록 내려두었다. 사람이 세상을 완전히 떠난 것처럼 느껴졌다. 신혁이 아빠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고맙다고. 말해주며 내 손을 어루만졌다. 한참 동안 어루만지다 따뜻한 손등 위로 찬 눈물이 떨어졌다. 사람이 슬퍼 보였다. 우석과 민화도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궁금했다.

"사람은 죽는 게 슬픈 일이에요?"

 신혁이 아빠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순식간에 주저앉아 흐느끼며 울었다. 모든 어른들과 애들은 가만히 서 있는 우리를 정신병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어금니 사이로 혀를 꽉 깨물고 있는 볼. 선생님은 그 사이로 뛰쳐나와 우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신발도 신지 않은 체 매끈한 복도 위를 빙판처럼 미끄러져 나왔다.

"미쳤어?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야?"

"궁금했어요. 죽음은 왜 아프고 슬픈 거지."

 민화도 우석도 나도 알지 못했다. 죽는 게 왜 슬픈 일인지. 선생님은 어이없는 헛기침을 뱉으며 큰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떠났는데, 그게 안 슬퍼? 그동안 쌓은 추억과 행복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데 말이야."

선생님의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민화가 해맑은 웃음으로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 행복을 갖고 살아가면 되잖아요."

 선생님은 말이 안 통한다고 느꼈는지, 손을 저으며 당장 집에 가라는 사인을 보냈다. 우리 셋은 어두운 조명길 계단을 걸어 올라 근처에 있는 나무 벤치에 걸터앉았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손을 짚고 기대어 있을 때 우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차가웠어, 바닥도 냄새도, 사람들도." 민화의 미소가 조금은 내려오며 그 말에 동의하듯 끄덕였다. 입가에 피어난 미소가 완전히 내려앉으며 말했다.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도 느껴보고 싶어."

 우석도 나도 그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감정이 뭔지 몰랐다. 몸으로 닿고, 보고 느껴지는 게 우리에게 전부였다. 장례식장 안에서 사람들이 흐느껴 울고, 누구 하나 미소 짓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은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죽음은 슬프다. 사람들은 죽음에 눈물 흘린다. 우리는 아직 모르겠다. 죽음이 왜 슬프고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지. 내 손등에 떨어진 눈물방울은 그 자리에 찬 기운을 내는 듯했다. 장례식장 건물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세상을 떠나지만 우리는 알지 못한다.

 

"죽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어요."

 우리를 부릅뜬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에게 말했다. 고양이는 어두운 그늘 밑에서 죽어있었다. 차갑고 우울했다. 우석이 고양이를 안고 텃밭에 간 이유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죽음은 차갑지 않다. 따뜻하기를 바랬다. 슬픔을 원치 않았다. 자라나는 모종 가운데 생명을 느끼며 고양이가 가루가 되기를 원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석도 한마디 거들었다.

"차가운 곳에 우울한 모습으로 죽는 걸 바라지 않았거든요."

 선생님은 우석의 대답에 말이 통하지 않는 거를 느꼈는지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복도에 서 있었다. 복도의 한산한 기운은 끊임없이 올라왔다. 발끝을 타고 종아리에 돋은 털들을 지나 옷 구멍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온몸은 서늘했지만 민화의 웃음소리를 시작으로 우리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고양이는 분명 따뜻할 거야."

 작은 미소를 지으며 우석이 말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차가운 곳도 따뜻해지는 방법을. 학교 수업 시간은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났다. 얇게 뜬 두 눈으로 선생님은 우리를 지켜봤지만 아무런 말 없이 퇴근하셨다. 민화와 우석도 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나왔다.

 선생님은 텃밭에 들어가 흙을 다시 평평하게 고르고 있었다. 오른쪽 주머니에는 숫자 자물쇠가 아니라 열쇠로만 열 수 있는 교무실 자물쇠같이 두꺼운 걸 걸고 있었다. 선생님은 단단히 마음을 먹었는지 온몸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가꾸고 있었다.  멀리서만 봐도 선생님의 입모양은 우리를 욕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바람은 살랑 불며 꽃잎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각기 다른 발걸음으로 따스한 햇빛 사이에 피어난 기다리 마트 앞 큰 그늘 안으로 몸을 숨겼다. 우석은 가방을 의자에 내려두고, 민화는 축축하게 젖은 몸을 의자에 털썩 기대며 고개를 젖히고 바람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편안했다. 나도 의자에 앉아 오늘 하루를 생각하며 양다리를 벌리고 머리에 뒷짐을 졌다. 크게 숨을 마시니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지금 이 순간은 우리가 평범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성인이 되는 시간은 훌쩍 다가왔다. 해찬은 매일 나에게 욕을 날리면서도 마이를 입고, 그 위에 패딩을 덮기도 했다. 1년 동안 아침마다 느껴지는 교실의 공기는 텁텁했다. 한 번도 변하지 않았고, 그 점에 조금 놀랐다. 우석은 반 아이들한테 돌아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졸업식 날까지 몇몇 애들은 우석을 돌아이라고 부르다 머쓱해하기도 했다. 민화는 해맑은 미소로 매일을 살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선생님은 매일을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항상 텃밭을 나올 때면 굵은 자물쇠로 펜스 문을 굳게 잠그셨다. 이별이 다가올 때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셋은 작은 동네에서 벗어나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이야기했다.

 기다리 마트의 넓게 펼쳐진 그늘 위로 비가 떨어지는 날 처음으로 민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고 말했다. 우석과 나는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이 빗소리를 듣다가 민화의 말에 집중했다.

"얘들아, 나 글 써보고 싶어."

 민화는 입꼬리를 반달 모양으로 지으며 우리를 바라봤다. 민화는 이미 계획을 세운 듯 책가방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하얀색 노트에는 민화가 그동안 느껴왔던 순간을 글로 간직해 두고 있었다. 우석도 내 곁에 의자를 가져와 붙으며 천천히 한 문장씩 읽었다.

 "바람이 분다. 큰 그늘 밑에 흘긋 지나가는 바람이 땀 위를 뛰놀며 여러 곳으로 사라진다. 웃는 표정밖에 짓지 못하는 이 순간은 소중하다. 다시 오지 않는 추억은 바람처럼 뛰놀다 사라지지만 시원함은 영원히 기억된다. 날씨가 옷을 입어 사계절을 펼치는 동안 우리의 옷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없다. 그렇기에 나는 그걸 추억이라 부른다."

 우석이 말과 민화의 글이 마침표로 끝이 났다. 빗방울은 점점 두껍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늘 안에도 물방울들이 슬며시 발을 내밀며 들어오고 있었다. 우석도 의자에 몸을 기대어 말했다.

"나는 여행 가고 싶어. 생각 없이 전 세계를."

 우석의 말에 민화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미소만 지었다. 우석이 다운 목표였다. 의자에 몸을 편하게 맡기고 곰곰이 생각했다. 살면서 바라거나 원하는 일은 없었다. 우석이 가면 갔고, 민화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고스란히 느꼈다.

"그냥 이대로 살래. 제일 나답잖아."

비가 걷어지고 물웅덩이 위로 햇빛이 떨어지며 반짝이는 빛이 났다. 우리 셋은 아무 말 없이 앉아 그늘을 가만히 느꼈다.

 

 우석은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사라졌다. 민화와 나는 우석의 행방을 몰랐지만 가끔 오는 편지에 만족했다. 새로운 도시나 나라를 갈 때마다 우석은 특색 있는 편지지에 글을 써서 우리에게 보내주었다. 우리는 그 편지를 갖고 항상 기다리 마트 그늘 안에서 같이 읽었다. 우석이 이집트에 가서 피라미드를 보고 감탄하고, 입을 벌리면서 찍은 사진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무런 표정 없는 우석은 새로움을 볼 때마다 말랑한 찰흙처럼 표정이 흐트러지는 듯했다. 몇 년이 지나고 우석은 앞으로의 계획도 편지로 전했다. 유럽을 기점으로 러시아를 거쳐 한국에 숨겨진 지방을 여행하겠다고 보내왔다. 편지지 뒤에는 항상 우석의 표정이 담긴 사진도 같이 들어있었다. 민화와 나는 이런 우석을 볼 때마다 딴 사람이 대신 편지를 써준 거는 아닌지 의심도 들었다.

우석이 한국으로 들어올 때쯤 민화는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면 무작정 도시로 올라갔다.

"출판사에 들어가면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 돈도 벌고 책도 읽고."

 민화는 작은 원룸을 이미 구했다고도 덧붙였다. 우리 셋 중에 행동이 말보다 빠른 아이는 민화가 단연일 것이다. 민화는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이 동네를 벗어났다.

 햇살이 떨어지는 공간 사이로 넓게 퍼진 그늘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한 손에는 짧은 이야기가 있는 단편 소설책을 기다리 마트 앞에 있는 책장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는다. 의자를 한곳으로 몰아 쌓인 먼지들을 털어냈다. 그늘진 공간에 가만히 등을 기대고 솔솔 거리는 바람 냄새를 맡으니 편안했다. 우석이 옆에서 넘기는 책 소리, 민화가 흥얼거리는 콧노래도 들려왔다. 눈을 감고 있으니 민화가 우리에게 보여준 글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나는 그걸 추억이라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몇 년 뒤에 민화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순조롭게 아르바이트를 잘하고 있고, 사람들도 좋게 봐준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민화의 웃는 표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쓴 글도 보내주고, 재미있게 읽은 책들도 소개해 주었다. 우석의 편지도 매달 내 앞으로 도착했다. 그 안에는 딱딱하게 굳어진 형태가 완전히 풀어진 웃음기 있는 얼굴로 가득 찬 사진이 함께 들어있었다. 나는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두 명의 친구가 있다. 웃는 얼굴밖에 짓지 못하는 민화와 무표정으로 세상을 살았던 우석.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은 영원하듯 했다. 매주 주말마다 기다리 마트 앞에 있는 파라솔에 붙은 거미줄을 치우고 꽉 채워진 작은 책장을 보면서 뿌듯해했다.

 기다리 마트는 이미 망한 지 오래된 마트로 사람도 주인도 없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앉았던 의자도, 넓게 그늘진 파라솔도 학교에서 몰래 갖고 오거나 돈을 조금씩 모아서 산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작게 시작한 이 공간은 동네 어르신들이 장기나 바둑을 하는 공간으로, 할머니들이 떠들 수 있는 공간으로 조금씩 넓어져 갔다. 기다리 마트에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지만 대화는 끊임없이 잇고 이어졌다.

 파라솔 위에 달라붙은 나뭇잎을 빗자루로 쳐내자 열매 떨어지 듯 내려왔다. 파라솔에도 수많은 흔적이 보였다. 비를 막아주며 생긴 얼룩들, 나뭇잎이 지나가 생긴 가루들. 보이지 않는 공간에도 발자국은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기다리 마트를 정리하고 추억을 보관하는 일.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메마른 나무들 사이에 피어나는 벚꽃 나무들이 종종 보였다. 가는 길목 사이마다 벚꽃들은 날이 갈수록 터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자원봉사를 나갈 때면 벚꽃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준비하고 있었다. 두꺼운 외투에서 얇은 셔츠를 입고 서점에 갈 때면 핑크빛으로 물든 벚꽃이 가득 핀 나무들과 아직 그러지 못한 나무들도 보였다. 서점에서 민화가 추천해 준 책을 읽기도, 우석이 좋아할 만한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서점을 둘러보다 겉표지에 관심이 가는 책이 보였다. 하얀 눈 밭 위에 한 소년이 검은 옷을 뒤집어쓴 체 멀리서 지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지구랑 맞지 않아 보였지만 그 모습이 꼭 우리들의 모습 같았다.

"우리는 멀리 떠나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서점 아르바이트생은 능숙한 손으로 바코드를 찍었다. 한 개씩 찍히면서 화면에 뜬 가격대와 제목을 보고 나답게 골랐다고 생각했다.

 오른손에 책 4권을 들고 기다리 마트로 향한다. 주변은 온통 부드러운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 사이로 피어난 그늘진 곳에 다리를 길게 뻗고, 얇은 책을 읽고 있는 우석과 안경을 쓰고 해맑게 미소 짓는 민화가 보였다. 우리는 오늘이라고 약속한 듯 눈이 마주쳤다. 우석과 민화는 넓은 그늘에서 빠져나와 팔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살랑이는 바람, 4월에 눈이 내리고 있다. 온 세상에 하얀 눈이 머리 위로 흔들 거리며 떨어졌다. 우리는 이날 처음으로 그늘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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