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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시시포스호

2022.03.30 12:2603.30

나의 이름은 아담이라고 했다. 나는 뜻하지 않게 깊은 잠에서 깨야만 했다.

 

우주에 떠돌던 암석이 ‘시시포스호’에 부딪쳤다. 그 충돌로 내가 잠들어 있던 냉동 캡슐에 이상이 생겼다. 긴박하고 위험한 상황이었으므로, ‘메타’는 서둘러 캡슐을 해동시켜 나를 깨웠으며, 이 사고로 나는 나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되었다.

 

메타는 시시포스호를 통제하는 인공지능이다. 현재 시시포스호는 ‘베스트베스트 별’을 향하고 있으며,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백 년을 남기고 있다.

 

더는 지구와 통신할 수 없게 되었다. 불시의 충돌은 냉동 캡슐뿐만 아니라, 통신 안테나까지 통째로 날려버렸다.

 

*

 

매일같이 메타의 뇌에서 알 수 없는 분비물이 나왔다. 메타의 설명에 따르면 분비물은 암석 충돌 사고 때 생기기 시작했다. 분비물이 메타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었으므로,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메타의 뇌를 청소해야만 했다.

 

청소기에 기시감이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청소기를 어렵지 않게 작동시킬 수 있었다. 나는 청소원이었을까?

 

청소는 간단했지만, 청소 후 매번 심한 어지럼증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루에 한 번 지급되는 알약 두 개 중 하나인, 산소 알약을 삼켰다. 호흡 곤란이 일어날 때, 인공호흡기 같은 역할을 하는 알약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인체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가 응축된 우주식이었다.

 

*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두렵고 허무한 마음을 걷잡을 수 없었다. 캡슐에서 깨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새삼, 내가 냉동된 상태로 시시포스호에 탑승했던 이유와 시시포스호의 미션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메타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아담이 시시포스호에 냉동 수면 중이었던 이유와 시시포스호의 임무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밀 유지 사항입니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

 

나는 점점 메타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메타는 분비물 청소를 알릴 때를 빼고는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 없었고,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에 대부분 비밀이라는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

 

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평생을 시시포스호에서 홀로 메타의 분비물을 청소하며 살다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나에 대한 기억을 꼭 되찾고 싶었다. 매일같이 전자 도서관에 접속해 기억을 키워드로 검색한 책들을 먼저 읽었다. 하지만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기억에 관한 서적들만을 삭제한 것 같았다. 연구서나 논문은 물론, 소설 한 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메타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담은 모든 전자책을 열람할 수 있다는 짤막한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

 

메타에 대한 의심이 갈수록 커지던 어느 날, 나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내가 냉동되어 있던 캡슐에 누군가가 누워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곧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대로 영원히 캡슐 속에서 평안하게 잠들어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꿈에서 깨지 않았으면 했다.

 

*

 

메타의 분비물을 청소할 시간이 지났다. 메타가 나를 계속해서 호출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체했다. 갑자기 귀를 찌르는 경보음이 울렸다. 나는 메타가 있는 중앙 통제실로 천천히 걸어갔다.

 

“아담, 늦었습니다. 서둘러 뇌의 분비물을 제거해 주십시오. 위급합니다.”

 

나는 메타 앞에서 손목이 부러진 것처럼 청소기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메타, 분비물을 제거하지 않으면 뇌를 못 쓰게 되지?”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큰 문제라도 되는 거야?”

 

“뇌를 못 쓰게 되면 메타는 죽게 됩니다.”

 

“인공지능도 죽는 게 두려운가 보지?”

 

인공지능도 말문이 막힐 때가 있구나라고 생각할 즈음, 메타가 말했다.

 

“아담도 죽게 됩니다. 서둘러 분비물을 제거해 주십시오”

 

“그래? 나는 죽어도 별 상관 없는데?”

 

“아담, 서둘러 분비물을 제거해 주십시오. 위급합니다.”

 

“뭐가 위급한데?”

 

“아담, 서둘러 분비물을 제거해 주십시오. 위급합니다.”

 

“시시포스호의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는 메타가 왜 자신의 뇌 하나를 청소하지 못하는 걸까? 메타, 너는 나에게 뭔가 숨기고 있어. 나에게 진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분비물을 청소하지 않겠어!”

 

메타가 갑자기 중앙 통제실의 산소 공급을 중단시키며 말했다.

 

“아담, 지금 즉시 분비물을 제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곧 산소 결핍으로 죽게 됩니다.”

 

설마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나는 점차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두려워졌다. 다급하게 청소기를 작동시켰다. 메타의 분비물을 제거하고 나자 어지러웠던 머리가 다시 맑아졌다.

 

*

 

방으로 돌아온 나는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메타가 나의 생명을 위협할 줄은 몰랐어. 그것도 죽어도 상관없다고 한 나에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잠시 깊은숨을 들이셨다가 내쉬고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토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시시포스호의 모든 기기는 메타의 자동 제어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다. 우주선 내부 위생관리도 예외는 아니야. 프로그래밍 된 나노 분해 입자가 공기 중에 떠다니며 각종 세균 및 오물을 수시로 제거하고 있지. 유독 메타의 뇌만 청소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말이 안 돼. 따로 수동식 청소기가 있다는 것도 이상해. 청소기가 왜 있는 거지? 충돌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사용할 사람도 없는데, 왜?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비밀을 알고 싶다면 진심으로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나는 메타 모르게 산소 알약을 모으기 시작했다. 메타의 뇌 청소 후, 어지럼증을 참는 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팔베개를 하고 누워 산소 알약 대신, 우주식을 삼키며 눈을 감았다. 어지러움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최대한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

 

메타의 뇌를 청소할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경보음이 울렸다. 메타 앞에 선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메타의 경고 메시지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메타는 곧 중앙 통제실의 산소를 차단했다. 나는 호흡이 가빠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알약 하나를 삼켰다. 얼마 후, 다시 호흡이 가빠졌다. 최대한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았다가 다시 한 알을 삼켰다. 숨 막히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나는 초조해졌다.

 

주머니를 더듬어 보니 어느덧 알약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아담, 너는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메타가 말했다.

 

“아담, 이제 산소 알약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서둘러 청소하지 않으면 아담은 죽게 됩니다.”

 

메타의 말에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알약을 모을 때부터 나는, 내 삶이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저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더는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하나 남은 알약을 메타 앞에서 부스러뜨렸다. 숨이 차올랐다.

 

메타가 산소를 다시 공급했다. 또한 뇌에 생긴 분비물을 스스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

 

“메타, 베스트베스트 별로 향하는 목적이 뭐지?”

 

“베스트베스트 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우리는 지금 지구에 있습니다.”

 

“뭐? 그럼, 시시포스호는… 여긴 어디야?”

 

“메타의 몸체 안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그, 그럼 충돌사고는 뭐였고, 냉동 캡슐은 뭐야? 나는, 나는 어떻게 기억을 잃게 된 거지?”

 

“충돌사고는 거짓입니다. 냉동 캡슐은 필요한 시기에 맞추어 해동된 것입니다. 아담은 잠들어 있는 동안 분비물 청소기의 작동법을 암시받았을 뿐, 아담에게 잃어버린 기억이란 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기억이 없었다니… 나는… 누구지? 뭐지, 나는?”

 

나의 혼잣말에 응답하듯 중앙 통제실의 모든 벽에서 보이지 않던 틈이 벌어지며 문이 열렸다. 문 너머로 방마다 캡슐이 빼곡했다. 나는 가까이 있는 방에 들어가 캡슐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누워 있었다. 캡슐마다 아담이 누워 있었다.

 

메타의 음성이 모든 방에서 울려 퍼졌다.

 

“아담은 복제인간입니다. 메타는 청소기로 꾸민 어댑터를 통해 아담의 뇌 에너지를 흡수하며 생존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메타의 대체 에너지 생체실험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아담뿐이었습니다. 낙진에 막힌 태양에너지를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메타는 보유하고 있는 복제 아담으로 생존을 이어가야 합니다. 아담의 생존 또한 메타의 생존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뇌에 청소기를 접속하는 일을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시에 아담을 즉각 분해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서로에게 손해입니다. 아담은 이제 자신이 메타의 건전지임을 자각하기 바랍니다.”

 

*

 

메타가 처음부터 거짓을 꾸민 것은 아니었다. 진실을 알았던 아담들은 건전지로서의 삶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메타에게는 치명적인 손실이었다. 이에 메타는 자신의 귀중한 에너지원을 지키는 수단으로 지금과 같은 이야기를 지어냈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믿었던 아담들도, 믿지 않았던 아담들도 빠르건 느리건 결국에는 삶을 포기했다고 했다.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유일하게 미래의 아담들을 보아서였을까? 나는 살기로 했다. 살면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스스로가 외롭지 않도록, 나 다음의 아담들이 홀로 이곳에서 삶을 살아내는 데 조금이나마 외롭지 않도록.

 

*

 

<이로써 ‘108번째 아담’의 시뮬레이션이 끝났습니다. 이번 아담의 생존 확률은 50%로, 지금까지 100번이 넘게 실행되었던 시뮬레이션에서 얻은 아담의 생존 확률에 비해 현저히 높습니다. 곧 여섯쩨 날이 다가옵니다. 이대로 아담을 지구에 런칭할까요, 트리니티 박사님?>

 

*

 

어느 날 문득, 나는 글을 쓰다가 메타가 나의 생각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쓰던 글을 멈추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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