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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죽을 때 웃는 여자

2022.03.25 16:1603.25

시원하다. 9월이 들어서자 언제 더웠냐는 듯이 찬바람이 불었다. 준비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렇게 가을이 온 것 같았다. 서영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옷은 아직 반소매였다. 한강의 시원한 강바람이 서영의 통 넓은 반소매 소매 사이로 들어왔다. 서영의 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지자 서영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하늘을 봤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속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서영은 가끔 이렇게 일을 마치고 서강대교를 걸어 집으로 돌아갔다. 홍대 앞에서 일하고 있는 서영은 가까운 양화대교를 두고 상수역을 지나 서강대교로 한강을 건넜다. 사람이 많고 번잡한 양화대교보다 길이 넓고 사람이 없는 서강대교가 편했다. 해가 지고, 다리 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바람을 맞으며 강을 건너고 있으면 서영은 말할 수 없는 자유, 해방감을 느꼈다. 그 시간만큼은 엄마 생각도, 먹고 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로지 자기 자신을 생각할 수 있었다. 

사실 서영이 다리를 건너면서 느끼는 감정은 자유와 해방감만이 아니었다. 언제든 뛰어내리기만 하면 죽을 수 있다는 아슬아슬한 긴장감도 있었다. 가끔 힘든 날이면 정말 뛰어내려 버릴까 다리 난간을 붙잡고 있기도 하고, 다리 중간에 있는 벤치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서영을 다리 위에 붙잡아 둔 건 친구들과의 우정, 남겨질 가족들 같은 따뜻한 생각들이 아니었다. 서강대교 밑에 있는 어두컴컴한 밤섬이 서영을 막았다. 밤섬 안에서 나무가 시커멓게 자라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너무 커서 서강대교에 닿을 것 같았다. 어두운 밤섬이 죽음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서영은 아직 서강대교에서 뛰어내리지 못했다. 죽음을 마주 보니 무서웠던 거다. 

서영은 음악을 들으며 앞에 보이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어갔다. 맞은편에서는 웬일인지 사람이 오고 있었다. 서영은 난간으로 붙어서 걸었다. 마주 오던 사람과 가까워 졌다. 하지만 걸어오던 사람은 지나가지 않았다. 그 사람은 서영의 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서영은 지나가지 않는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누구더라

얼굴은 낯이 익는데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반가웠는데 누구인지 모르니 함부로 친한 척을 할 수도 없었다. 그 남자도 서영을 보고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르고 서영은 그 남자가 누구인지 기억해 냈다. 병원에서 봤던 사람이었다. 정확히는 응급실에서 봤던 의사. 자신의 손을 꿰매주었던 의사. 

 


 

서영은 가게 부엌에 서서 홀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서영이 서 있는 곳은 엄마 식당의 부엌이었다.  

서영은 원래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중간한 인서울 대학의 경영학과를 나와 어중간한 회사에서 사무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작년, 어중간한 회사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서영이 다니던 회사도 경영난을 핑계로 인원감축에 들어갔다. 대학 졸업장 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서영은 자연스럽게 회사에서 나오게 되었고 서영은 월세라도 아끼고자 자췻집을 정리하고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몇 달을 집에서 놀았다. 외국 여행을 두번정도 가고 나니 쥐꼬리만 한 퇴직금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런 딸에게 엄마는 같이 식당이나 하자고 말을 꺼냈다. 엄마는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친구가 하는 식당 일을 몇개월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음식을 썩 잘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서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은 알바같이 도와주고 용돈 벌이나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엄마의 류머티즘이 도졌다.

엄마는 서서 요리를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식당을 닫을 수는 없었다. 서영은 궁여지책으로 엄마의 지시를 받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칼과 불이 어색했던 서영의 팔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생겼다.

그 날도 서영은 정신없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서비스로 나갈 미역국을 끓이면서 고등어조림 아래 깔릴 무를 썰고 있었다. 무가 속까지 꽉 차서 단단했다. 동글동글. 무는 도마 위에 가로로 누워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와 사투를 벌이는 사이. 미역국이 갑자기 끓어 넘쳤다. 엄마는 홀에서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영은 손은 도마 위에 두고 고개를 돌려 가스렌지 위를 보았다. 순간 손이 따끔했다가 뜨거워졌다. 도마와 무가 서영의 피로 붉어져 있었다. 무를 썰던 칼이 서영의 손을 베어버린 것이다. 서영은 허겁지겁 미역국의 불을 끄고 옆에 있던 행주로 베인 손을 감쌌다. 살짝 행주를 걷어 상처를 보았다. 왼쪽 새끼손가락이 꽤 깊게 베여 있었다. 

손이 아픈 것보다 엄마가 혼내는 게 더 무서웠다. 가뜩이나 서영이 주방을 맡은 이후로 가게에 대한 모든 이유가 서영이 되고 있었다. 장사가 잘 안 되어도 서영이 탓. 가게가 더러워도 서영이 탓. 그날 사 온 재료가 좋지 않아도 서영이 탓이었다. 더 어떤 이야기도 듣기 싫었다. 서영은 정신없는 와중에 무를 음식물 쓰레기 통에 버리고 칼과 도마를 싱크대에 넣었다. 피를 뚝뚝 흘리며 홀로 나가자 그제야 엄마는 무슨 일이냐며 달려왔다. 병원에 가야 하는데 엄마가 서영의 앞을 막으며 설명을 요구했다. 

"뭐 할게 있다고 손을 다치니. 내가 뭐 대단한 거 시켰니."

지나가는 엄마의 말에 서영은 가슴도 칼에 베인 것처럼 뜨끔했다. 서영은 미안하다며 주방은 대충 치워놨다고, 병원을 다녀오겠다며 가게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고 가까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의 응급실로 향했다. 

접수창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수납을 기다리고 있었고 누구는 의자에 기대어 넋을 놓고 있었다. 접수와 수납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서영은 차례를 기다렸다. 서영의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영의 피 흘리는 손가락을 못 본 것은 아니었지만 누구 하나 순서를 양보하지는 않았다. 접수실에 있는 누구나 아팠고, 누구나 급했다. 

서영은 접수를 하고도 한참을 기다려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뼈와 신경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서영은 응급실 한 쪽에 있는 방에 앉아 있었다. 의사는 망설임 없이 서영의 앞에 섰다. 물건을 보듯 서영의 손가락을 들어 살폈다. 그리고는 주사기에 물을 채워 상처를 벌리면서 물을 뿌렸다. 서영은 아파서 다른 손으로 바지를 꽉 쥐었다. 이가 악물어졌다. 의사는 서영의 아픔같은건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바로 손가락 곳곳에 주사를 놓았다.

"아파요."

서영이 말했다.

"마취 주사에요. 이제 안 아플 거예요. 마취가 되면 봉합 할게요. 5분 정도 걸려요." 

의사가 대답했다. 

몇분이 지나자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졌다. 주사를 놓고 다른 환자를 보기 위해 자리를 떠났던 의사는 다시 돌아와 서영의 손가락을 눌러보았다. 감각이 없다고 서영이 얘기하자 의사는 봉합을 하기 시작했다. 한땀 한땀... 조그만 상처 위에 네 땀이나 바느질이 이어졌다. 깊이 베인 모양이었다. 봉합이 마무리 되자 서영은 긴장이 풀렸다. 힘을 줘서 하얗게 변해있던 오른손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무릎 위에 있었다. 하하 별거 아니네! 서영이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의사는 서영의 손가락 위에 이것저것을 붙이기 시작했다. 메디폼인가. 그러면서 서영에게 주의 사항을 말했다. 

"이틀에 한 번씩 가까운 외과 같은데 가셔서 소독 받으세요. 여름이라서 처음에 몇 번은 가시는 게 좋아요. 나중에 익숙해지시면 혼자 하셔도 돼요. 실밥은 열흘정도 있다가 푸시면 됩니다."

서영은 집에 있는 응급 상자가 생각났다. 뭔 약이 있기는 했던가.

"메디폼도 사야겠네. 비쌀 텐데." 

서영의 상처만 보고 있던 의사는 그 소리에 서영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서영은 가난한 마음이 들킨 것 같았다. 부끄러워 눈을 피했다. 의사는 아무 말도 없이 잘라내고 남은 메디폼과 붕대를 서영의 가방에 앞에 놓았다. 서영은 의사를 다시 바라보았다. 의사는 말없이 붕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작은 친절에 서영은 감동을 받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누구에게 친절이라고는 받아본 적 없었다. 차가운 도시에서 누구 하나 아무 이유 없이 서영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없었다. 사근사근 다가오는 사람들은 꼭 그 값을 받아 갔다. 

 


 

그렇게 병원을 나온 후 다시 만나길 바랐지만 응급의학과 의사를 병원에서 다시 보는 일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다만 작은 호의에 감사하며 며칠을 보냈다. 다리 위에서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서영이 고개를 숙이며 의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의사는 아니라며 자기는 자신의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는 길이냐고, 같이 걸어도 되겠냐고 물어왔다.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서영은 자신이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어디로 가고 있었나. 집이었나. 아직 밝은데 가게는 어떻게 하고 나와 있는 거지? 서영은 가게를 생각하니 멍해졌다. 

"무슨 일 있어요?"

의사가 물었다. 

가게를 이렇게 두고 와도 되나.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 서영은 뒤돌아봤다. 엄마가 미우나 고우나 자신이 없으면 가게는 돌아가지 않았다. 엄마는 어떡하고 있으려나. 엄마를 생각하니 가슴이 또 답답해졌다.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왔으면 또 엄마한테 한 소리 들을 것이다. 돌렸던 고개를 바로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에는 서영도 기대에 차 있었다. 친구들과 갔던 맛집들처럼 아기자기한 소품을 가게에 가져다 놓고 특색있는 메뉴도 개발 하리라. 조금만 특색 있으면 인터넷에서 소문을 타고 대박집이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서영은 가게를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메뉴를 찾아 엄마와 만들어보며 차근차근 가게를 준비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서영은 그 모든 게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가게에 돈 쓰는 것을 싫어했다. 모든 것이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 있기를 바랐다. 서영은 엄마가 신경 쓰지 않는 모든 가게 일을 처리해야 했다. 당연히 서영이 돈을 쓰게 되었다. 서영의 예전 집 전세금은 인테리어에 쓰였고 남은 퇴직금은 식자재와 집기를 사는데 쓰였다. 서영의 수중에는 이제 더 돈이 없었다. 집에서 살고 식당에서 일하니 먹고 자는 걱정은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편의점에서 음료 하나를 사더라고 남은 잔고가 신경 쓰였고, 꾸준히 하던 도예 수업도 이제는 더 들을 수 없었다. 

가게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었다. 한다고 하는데도 돈을 아끼려니 궁핍한 티가 났다. 정말 가게는 최소한의 구색만을 갖추게 되었다. 더 뭘 하려고 해도 더 돈이 없는 상태가 되자 서영은 자신감도, 희망도 잃어버렸다. 이제 와서 엄마가 도와줄 리도 만무했다. 처음에는 손님이 조금 있었지만 오픈 특수였나보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었고 가게는 그렇게 조용히 망해갔다. 평범한 메뉴에 평범한 맛, 평범한 인테리어에 사람들은 가게를 쉽게 잊어버렸다. 손님들이 뜸해진 식당에는 신선한 재료들이 있지 않아 맛도 여느 가게들 보다 못한 가게가 되어있었다. 엄마는 그 모든 것이 서영의 탓이라고 했다. 저 가게는 맛도 없더니만 손님만 많네. 우리가 가게가 조금만 넓었으면... 저거저거 다 가게 넓어서 잘 되는 거다. 너는 왜 이런 가게가 좋다고 해서는. 엄마는 맛, 인테리어, 옷차림까지 넘나들며 서영을 탓했다. 

"좀 꾸미고 있어라. 옆의 가게 종업원이 예쁘게 입고 있으니 가게가 다 환하더라."

"의자는 푹신푹신한 걸로 놓자니까. 불편한 의자에 누가 앉으려고 하니." 

그러면서 요즘에 잘나간다는 요리를 메뉴에 넣으려고 하면 그게 되겠냐는 눈빛으로 핀잔을 줬다. 

"이러면 안될 거 같은데. 이거 아닌데. 엄마가 몰라서 그러는데 이거 원래 이런 맛이니? 이걸 요즘 애들이 잘 먹는다고?"

 분위기라도 바꾸려고 인테리어 소품이라도 가져다 놓으면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서영이 없어지면 소품을 마음대로 치워버렸다. 서영은 그럴 때면 아무 일도 하기 싫어졌다. 내 가게도 아니니 모르겠다. 가게 같은 거 신경 쓰지 않고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영은 돈이 없었다. 어디 도망가서 며칠 먹고 잘 돈도 서영에게는 없었다. 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자존감도 돈과 같이 사라져버렸나보다. 다 싫다. 서영은 틈날 때마다 기도했다. 

'죽게 하소서. 빠른 시일 안에 고통없이 죽게 하소서.'

죽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삶이었다. 스스로 죽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상처를 주는 것 같으니  전염병이나 사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죽여달라고 빌었다. 내일이라도 죽게 해달라고, 주변 사람들이 덜 슬퍼할 수 있게 죽여달라고 빌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빈다는데 서영은 매일 울며 죽여달라고 기도했다. 이 저녁이라고 자는 듯이 죽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는 게 너무 피곤하고 지루하고 힘들었다. 

 


 

하지만 버티다 보면 좋은 날도 오는 걸까. 이렇게 호감을 가졌던 사람도 다시 만나고,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사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날이 기다리고 있다면 힘든 삶도 괜찮은 걸까. 

서영은 옆에서 걷고 있는 의사를 보았다. 그때는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었다. 사람을 선하게 보이는 쳐진눈. 여드름 흉터가 약긴 있는 하얀 피부. 귀엽게 생겼다. 나란히 걷고 있는 두 사람 사이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하늘도 예뻤다.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 같이 있을 수 있을까. 같이 밤을 보낼 수도 있을까? 헛된 생각에 서영의 볼이 빨개졌다. 

'쾅'

그때,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리는 웅성거리는 소리.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

 


 

서영이 새끼손가락을 다친 일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그 뒤로도 똑같은 일상은 반복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픈을 하고 재료를 손질한다. 손님들이 오면 요리를 하고 남는 시간에는 유튜브로 시간을 때웠다. 마감 시간이 되면 쓰레기를 버리고 집기를 정리했다. 그날도 똑같은 하루였다. 다만 저녁에 엄마의 잔소리가 더 심했다. 

"마감을 이렇게 하면 안되지. 쓰레기는 좀 그때그때 버리고. 가스는 잘 잠갔니?"

어련히 잘 할까. 엄마는 어제 한 것 같은 잔소리를 하고 또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말대꾸를 하면 잔소리가 더 길어지니 서영은 움직이며 엄마의 지시를 따랐다. 서영이 생각하기에 엄마는 혼자 잘난 사람이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서영이 움직이지 않으면 계속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했다. 빨리 끝내버리자. 엄마가 카운터로 돌아간 틈에 가스 밸브를 움직였다. 이미 잠궛지만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 이쪽이 푸는 쪽이었지. 밸브를 여는 쪽으로 움직였나보다. 가스 세는 소리가 들렸다. 쉬익. 

 


 

쾅 하는 큰 소리가 들리고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하얀 천장에... 조명들이 아래로 움직이고 있었다. 병원인가보다. 엄마가 옆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나보다. 그리고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내 손을 봉합해 주셨던 응급 의학과 의사 선생님이다. 침대를 밀며 나와 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서영씨 정신 차려요. 정신 잃으면 안 돼요."

아, 다정한 말들. 이대로 죽어도 좋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쩐지 나는 지금 서강대교를 건너고 있다. 의사 선생님과 함께. 이상하긴 했지만 모든 게 다 좋았다. 멈출 생각은 없었다. 서영은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예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었어요. 사람이 죽을 때는 강을 건넌다고.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한 저승사자가 마중을 온다고. 나는 지금 죽은 건가 생각이 들어요."

서영은 그 말을 하며 자신의 옆에서 걷고 있는 의사를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들은 의사는 소리 없이 빙긋 웃었다. 씩 웃는 것이 귀여웠다. 신은 있을 지도 모른다. 간절히 바라니 이루어졌다. 빠른 시일 안에 죽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입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죽었구나. 드디어 내가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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