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그들이 온다

2007.11.20 13:3911.20

1.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로마서 7:24

 작은 아버지는 구제불능이셨다. 그를 기리는 마지막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건 알지만, 작은 아버지에게는 애도도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 건 별 수 없었다. 며칠 새 더 늙은듯한 작은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은 더 분명해졌다. 작은 아버지는 보험금 하나 없이 홀랑 떠나버렸고 부고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연락해 온 것은 빚쟁이들이었다. 어렵사리 장례 준비를 하고 연락도 왕래도 없던 친척들을 상대하느라 기력을 잃은 작은 어머니는 그래도 한사코 자리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셨다. 그녀는 정말로 작은 아버지를 사랑하고 믿었으며 여전히 그러고 있는 듯 했다. 참 대단하다.
 혜원이는 어제서야 귀국해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물론 그런 그녀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아버지에 대해 존경이나 사랑 같은 감정은 가지기 힘들테니까. 측은함이라면 또 모르겠다. 아무튼 그녀는 장례를 충분히 도왔고 외동딸 노릇을 톡톡히해내고 있었다. 난 묵묵히 서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녀에게 숨겨진 적개심을 발견하고 모른 척하며 잠시 그대로 두기로 했다.
 병원 한켠에 마련된 좁은 식장에는 얼마 안되는 문상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작은 아버지가 생전에 그리도 자랑하던 '끝내주는 형님들'이나 '나으 아우들'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락이 안 닿았음이 분명한 동창들이나 단골가게 주인들이 잠시 들렸다 갔을 뿐이다. 사실 그나마 사람들이 왔다는 게 신기하다. 장례 마지막 밤인 오늘은 그저 아버지가 몇몇 친척분들과 모여 '갸가 그라도 어릴 적에는 말여…'로 시작하는 장탄식을 내뱉고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아파져서 오빠를 불러내 바람을 쐬었다. 자판기가 토해낸 음료수 캔을 나누며 나와 오빠는 이제 작은 집도 평화로워질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이제 혜원이도 유학을 마칠듯하니 두 모녀가 오순도순하게 잘 살아갈 것이다. 혜원이야 낯선 땅에 빈손으로 가서도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대부분은 물론 작은 아버지가 벌린 일을 수습하느라 들어갔지만) 학위까지 받아온 생활력 강한 아이니 분명 몇사람 몫은 해낼테고, 작은 어머니도 식당일에 (그 모진 풍파에 이 식당을 지켜낸 걸 보면 작은 어머니의 의지도 참 대단하다) 전념할 수 있다면 금새 빚을 갚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아버지가 저승에서 다시 뭔가 잔뜩 사고를 치고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빠와 난 설핏 웃었다. 작은 아버지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도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험하게 살아오신 작은 아버지, 이제 편히 쉬시길.
 발인이 끝나고 한사코 식당에 나가겠다고 하시는 작은 어머니를 간신히 눕혀드리고 오빠랑 아울렛에서 장을 봐왔다. 일주일치 찬거리들과 식당 재료들을 풀어 놓으며 식당일은 며칠 쉬시라고 말씀드리자 작은 어머니는 이번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작은 어머니에겐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쉬고 다시 바쁘게 살다보면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낫게 살아갈 수 있겠지.
 음식들을 대충 정리하고 혜원이랑 셋이서 티비 앞에 앉았다. 넌지시 작은 어머니가 외로우실 듯하다고 말을 건네자 혜원이는 안 그래도 들어올 생각이었다면서 대강 외국 생활은 정리했고, 며칠 뒤에 나가서 남은 짐만 챙겨오면 될 듯하다고 말했다.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가벼운 화제들을 꺼냈지만, 난 여전히 혜원이가 신경쓰였다. 험한 세상에서 혼자 힘으로 일어선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다부지지만 그만큼이나 잘 연마된 날이 살짝 불편했다. 앞으로 많이 신경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봐야 대체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
 그렇게 잠시 아무 일 없어 평온한 나날이 지나갔다.

2.

주님께서 나를 그토록 벌하셨어도 죽음에 내버리지는 않으셨네. - 시편 118:18

 장례식 뒤 3일이 지나고 작은 어머니는 다시 식당에 나가셨다. 혜원이는 그녀를 도와 늦게까지 식당 일을 도왔다. 손님도 없었고, 혜원이는 그날 저녁에 출국할 예정이었기에 작은 어머니는 일찍 가게 문을 닫았다. 나와 오빠는 혜원이를 환송하고자 작은집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혜원이는 짐도 챙겨놓지 않고 작은 어머니와 오도카니 앉아있었다. 비행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표를 취소했다고 한다. 무슨 사정이냐고 있냐고 했더니 잠시 머뭇거리던 혜원이는 일단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놀라는 눈치로 봐서 작은 어머니도 이 얘기를 처음 들은 모양이었다.
 혜원이는 잠시 더 있다 나갈 생각이라고 말한 뒤 뜸을 들였다. 굉장히 피곤해보였다. 식당일이 바빠서는 아닐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혜원이가 어젯밤에… 하고 운을 띄운다. 그리고는 작은 어머니를 돌아보며 엄마는 푹 잤지? 하고 물었다. 작은 어머니가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혜원이는 힘들게 웃음을 지으며 다행이네, 하고는 자기는 한숨도 못 잤다고 밝혔다. 뜸들이기에 지친 셋이 일제히 뭔가를 물으려 할 때 누군가가 현관문을 쾅쾅 두드려댔다.

 "또야?"

 혜원이에게 그 말의 의미를 물어볼 새도 없이 그녀는 서둘러 작은 어머니를 방으로 몰았다. 작은 어머니는 영문도 모른채 무슨 일인지를 물었지만 혜원이는 나중에 설명하겠다며 방으로 들어가 계시라고만 채근했다. 작은 어머니를 방으로 모시는 사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커져만 갔다. 간신히 방문을 닫고 나온 혜원이는 어떤 일에도 놀라지 말라고 속삭이며 부엌으로 갔다. 오빠와 나는 눈빛을 교환하며 무슨 일일지를 가늠해보았다. 혜원이가 들고온 것은 후라이팬이었다.
 분명 작은 아버지의 과거사에 관련된 피곤한 인물일 것이다. 아니면 가능성은 적지만 혜원이를 스토킹하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건 후라이팬은 아니다. 오빠와 난 일단 혜원이를 잡아 세우려 했지만 그녀는 놀라운 힘으로 우리를 뿌리치며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제꼈다. 문 밖엔 작은 아버지가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었다.

 "으버버버버버…"

 3일만에 부활한 사람이라면 뭔가 이보다 더 그럴듯한 말을 해야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놀랄 틈도 없었다. 난 잠시 멍하니 서서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는 것에 놀라야할지, 그게 작은 아버지라는 사실에 놀라야할지, 혜원이가 자기 아버지의 머리를 후라이팬으로 내리쳤다는 사실에 놀라야할지, 작은 아버지가 그 후라이팬을 피했다는 사실에 놀라야할지 알 수 없었다.
 혜원이는 아무런 주저없이 2차 타격에 나섰고, 오빠는 어정어정 다가가 혜원이를 붙잡았다. 오빠도 당황한 게 분명했다. 잠시 그녀를 붙잡고 할 말을 생각하는 사이 혜원이는 재빨리 몸부림치며 그에게서 빠져나왔다.

 "혜원아!"

 내 외침에 혜원이는 한숨을 쉬며 옆구리에 손을 얹고 돌아보았다.

 "어, 그러니까, 음… 그… 작은 아버지 아니니……?"

 내 입에서 나온 평범한 말이 너무도 기이하게 들려왔다.

 "지금은 그냥 시체야. 좀비 영화 못 봤어? 당황한 건 알겠는데, 아빠가 지금 계셔야할 곳은 여기가 아니잖아."

 혜원이는 이내 몸을 돌려 후라이팬을 치켜들고 작은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오빠와 난 다시 서로를 바라보며 난감해하다가 인기척을 느끼곤 시선을 우리 뒤로 향했다. 소란한 사이 어느새 방 밖으로 나오신 작은 어머니는 돌아온 작은 아버지를 발견하시고야 말았고, 우리 셋은 잽싸게 다가가 정신을 잃은 작은 어머니를 부축했다.

 "으버어아아아…"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나도 으버버 하면서 울고만 싶었다.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말이다.

3.

그러면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살아나느냐?"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 코린토전서 15:35

 혜원이의 말로는 작은 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어젯밤이 처음이었다. 늦게까지 서핑 중이던 혜원이는 무언가가 문을 긁어대는 소리에 거실로 나왔다. 처음에는 바람소리인가해서 그냥 지나치려했던 그녀는 혹시나하는 마음에 누구세요? 하고 물었고, 그에 대답하듯 둔탁한 발소리와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혜원이는 급한 마음에 그녀의 구두를 집어들고 계속 대화를 시도했지만 문 밖의 사람은 별 대꾸없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고한다. 그녀는 더 이상 주변을 시끄럽게하고 싶지 않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문을 열었다.
 문 밖의 사람이 작은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혜원이는 도리어 침착해졌다. 한동안의 난투극 끝에 그녀는 작은 아버지를 제압하는 것에 성공했다. 작은 아버지는 몸싸움이 벌어졌을 때 잽싸게 도망치는 데에는 선수셨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제 몸상태가 아니었으니까. 목도리를 단단하게 묶어 작은 아버지의 입을 막은 혜원이는 고민 끝에 그를 장지로 돌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모자와 목도리로 작은 아버지를 칭칭 묶은 혜원이는 택시를 잡아 공동묘지로 가자고 부탁했다. 정신이 이상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할아버님 묘소를 찾아뵙고 싶다고 난리라고 둘러대고선. 상당한 택시 요금을 내고 바둥거리는 작은 아버지를 붙잡으며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간신히 작은 아버지가 뭍혀 계셨던 무덤 자리를 찾아낸 그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작은 아버지를 관으로 밀어넣고 흙을 덮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가 빠져나왔으니 묘가 상당히 파헤쳐져있고 관이 망가진 것은 물론이다. 주위에 누가있지는 않은지 살펴가며 가져간 부삽으로 간신히 작은 아버지를 무덤에 다시 묻은 혜원이가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려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떠오른 뒤라고 했다.
 나와 오빠는 그 어이없는 얘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어도 글쎄, 대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이 다시 나타났을 때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어디서도 배워본 적 없었다.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도 혜원이에게 벽을 두고 지내거나 할말을 안 하거나 한 적은 없었지만, 이 경우엔 내가 가진 예의관념이나 상식적인 해답들이 먹혀들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난 그저 힘들었겠구나, 하고 말했고 오빠는 작게 끄덕이며 좀 쉬렴, 하고 얘기했을 뿐이다.
 물론 어느 누구도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린 모두 고개를 돌려 정신없이 음식을 입으로 밀어넣는 작은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떨어진 음식 포장지들을 정리하시던 작은 어머니는 혀를 차며 그를 안쓰럽게 지켜보시고 계셨다.
 우리가 실신한 작은 어머니에게 매달려있는 사이 작은 아버지는 터벅터벅 집안을 가로질러 식탁에 있는 과일바구니로 다가가 과일들을 마구 깨물어 드셨다. 우리는 어떻게해야할 바를 모르고 일단 쓰러지신 작은 어머니를 간호하는 쪽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은 아버지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한편으로 혜원이가 후라이팬을 들고 달려드려는 것도 경계하면서.
 정신을 차린 작은 어머니는 다행히 다시 기절하진 않으셨다. 그녀는 후다닥 작은 아버지에게로 달려가며 '아이고 혜원이 아버지'로 시작하는 대성통곡을 시작했다. 정신없이 과일을 우물거리던 작은 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보다 '우그루버버버'로 답했다.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던 혜원이는 시선을 돌리며 작게 뭐라고 내뱉었지만 작은 어머니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바리바리 꺼내 작은 아버지 앞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작은 아버지는 식사에만 집중하셨다.
 별 다른 감정없이 그저 피곤했다. 상황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분명 돌아가셨다. 그런데 다시 집에 오셨다. 되살아나신 걸까? 어떻게? 좋아, 왜 그랬는가는 둘째치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지? 난 혜원이나 작은 어머니가 빠르게 자신의 입장을 정한게 대단했다. 오빠 쪽을 바라봤지만 오빠는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딱히 정리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냉장고 안을 텅텅 비운 작은 아버지는 다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셨다. 우리 모두는 살짝 긴장한 채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저렇게 걸어서 용인에서 과천까지 왔다는 걸까. 하긴, 작은 아버지에게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인물'이니까.
 작은 아버지는 안방 문 앞에 선 뒤 살짝 열린 방문을 휙 밀고 들어가서는 그대로 쓰러지셨다. 잠시 작은 아버지가 다시 돌아가신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전에 그러셨던 것처럼 커다란 코골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작은 어머니는 살짝 미소까지 띄우시며 이불을 꺼내 작은 아버지에게 덮어 드렸다. 혜원이는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몸을 묻었다. 우리는 아무말 못하고 그녀를 따라 자리에 앉았다. 곧 작은 어머니가 조용히 방문을 닫고 거실로 나와 앉으셨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까 한 얘기는 들었다."

 침묵을 깬 건 작은 어머니셨다. 그녀는 혜원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쩜 애가 그리 야박하니? 어쨌거나 느그 아버지다. 아직 창창할 나이에 그렇게 갔었는데 불쌍하지도 않아? 하늘이 도우신 게지……. 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무튼 너도 이번 기회에 아버지에 대해 묵은 감정있으면 털어버리고 잘 보살펴드려야하지 않겠어?"

 "엄마!"

 혜원이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도 미련이 남았어? 지긋지긋하지도 않아? 나도 아빠가 돌아가시길 바라고 그런 거 아냐. 하지만 다시 살아나시길 원할 정도로 그립지는 않더라고. 아빠가 우리한테 해준 게 뭔데? 죽어라고 달려드는 빚쟁이들이랑 수습해야할 일들 뿐이지. 우리도 이제 제대로 살자. 각자 있어야할 곳에 있으면서 말야. 내 생각에 아버지는……."

 모녀간의 싸움이 진행되어가는 걸 보며 나와 오빠는 어쩔 줄 모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은 아버지에 대한 두 사람의 상반된 태도는 지금껏 수없이 자잘한 분쟁들을 만들어 왔었다. 그 분쟁들에서 언제나 한발짝 물러선 입장에 서있던 우리는 남의 집안일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친척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도무지 그러고 있을 수가 없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고, 난 두 사람처럼 그게 일상다반사인 것처럼 넘길 수가 없었다. 여전히 멍하게 말싸움을 하는 모녀를 바라보는 오빠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 두 사람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그만! 지금 뭐하는 거에요오!!"

 일단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고, 먹혀든 것 같다. 두 사람은 언쟁을 멈추고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었요. 지금 힘을 합쳐서 대책을 마련해야할 때 아니에요?"

 두 모녀가 동시에 뭐라고 외쳐댔다. 난 입술을 잘근 깨물며 오빠를 돌아봤다. 오빠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저기 일단 흥분들 좀 가라앉히고…'하면서 횡설수설했기 때문은 아니고 다들 힘이 빠져 싸울 기력이 없어서인지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사실 두 사람도 나름대로 기이한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중인 거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건 그저 가정사의 한 문제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우선 지금 집에 돌아온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의 작은 아버지와 동일한 인물인가하는 문제가 있다. 외형만 작은 아버지와 닮은 다른 존재일 수도 있고, 설령 정말 죽었다 살아난 거라해도 그가 과거의 기억이나 행동양태를 잃어버렸다면 (오히려 다행이지만) 우리가 그를 다시 예전의 그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도 문제였다.
 그리고 그를 받아들이기로해도 문제다. 생물학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일단 작은 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다. 행정적으로 사망자이고 장례식까지 치른 뒤라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그는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그를 사회에서 받아들일 수가 있느냐도 문제고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될 지도 모른다. 죽음의 법칙에 대항한 사례이니 전인류적인 화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선 이제 평온을 되찾으려고하는 작은집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평지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대충 이런 얘기를 넷이서 나눴지만 이렇다할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작은 아버지가 만들어내는 사건들에 익숙해졌다고해도 이런 정도의 일에 의연하게 대처하기에는 다들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일단은 조금만 더 지켜보면서 결론내리기로하고, 그날밤은 나와 오빠도 작은 집에서 자기로 했다. 작은 어머니와 혜원이는 오랫동안 비어있던 혜원이 방에서 자고 (작은 아버지는 오랜만에 두 모녀가 함께 밤을 보내게 하기 위해 돌아오셨을까) 나와 오빠는 거실 쇼파에서 자기로 했다. 작은 어머니는 안방에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셨지만 아직 작은 아버지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한다는 게 나머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배를 채우셨을테니 좀비처럼 사람을 뜯어먹거나하시진 않겠지만 어쨌거나 작은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도 경계의 필요성은 충분하다.
 갑작스런 일에 온몸에 피로가 전해져왔지만 쉽사리 잠이 오지는 않았다. 나지막히 오빠를 불러보았지만, 오빠는 좁다란 쇼파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금새 잠이 든 것 같았다. 오늘 작은집에서 자고 간다고 연락했더니 집에서는 작은집에 무슨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물어오길래 하마터면 응! 하면서 울 뻔했다. 도대체… 오늘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4.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심은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심는 것은 장차 생겨날 그 몸이 아니라 밀이든 다른 곡식이든 다만 그 씨앗을 심는 것뿐입니다. - 코린토 전서 15:36~37

 선잠에서 깨자 몸 구석구석이 아파왔다.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앉으니 짜증이 밀려들었다. 부활한 예수의 교리가 사랑이라면 부활한 작은 아버지의 교리는 민폐다. 죽었다 깨도 예의란 게 미분 방정식만큼이나 애매한 개념인 것 같은 작은 아버지에 대한 짜증을 허공에 읊조리고는 애매한 오빠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미동도 없는 오빠의 모습에 더 짜증이 나서 물이나 마시고 정신차릴 요량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으로 향하는 중 화장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무심히 넘기려다 살짝 긴장을 하며 살금살금 다가가니 느닷없이 화장실 문이 활짝 열렸다. 후다닥 달려나온 작은 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마주하고 깜짝 놀랐다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며 섣불리 말을 꺼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은 아버지의 덜덜 떨리는 턱을 보고 당황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를 생각해보는 동안 작은 아버지는 힘겹게 소리를 뱉어내셨다.

 "나… 느아아… 나가……."

 뭔가 말씀을 하시려는 걸까? 의미없는 음절들은 순식간에 하나의 문장이 되었다.

 "나가 다시 살아난겨?"

 
 한동안의 혼돈 끝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작은 아버지의 깨달음에 이은 샤우팅이 시작이었고, 작은 어머니의 이산가족 상봉쇼와 혜원이의 시니컬 퍼레이드 쇼와 오빠의 어리벙벙 쇼가 뒤를 이었다. 그 뒤는 작은 아버지가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차례였다. 담요를 뒤집어 쓰시고도 몸을 덜덜 떨고 자신의 몸을 어쩔 줄 몰라하면서 작은 아버지는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나가셨다.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주 전쯤이었다. 어느 술자리에서 우연히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고향 친구분을 만나셨다고 한다. 그는 지금 '뭐시더라 무신 연구원인가 암튼간에 겁나게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놀랍게도 오래 전에 작은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덕분이겠지만 그 사람은 작은 아버지에게 신세를 갚아야한다고 생각해오고 있었고 이제 기회가 되었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그 만남 이후 며칠이 지나 돈이 궁해진 작은 아버지는 주섬주섬 그 사람에게 받은 명함을 꺼내 연락을 했다고 한다. 보증 좀 서달라고. 그 사람은 의외로 혼쾌히 수락하며 바쁘지 않으면 자신의 연구소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는 엄청나게 바쁜 척을 하시며 후다닥 연구소로 달려가셨다.
 그 사람은 의료과학을 연구하는 듯 했는데 최근에 연구하는 기술이 임상실험만을 남겨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작은 아버지는 '어려불 때 돕고 살아야제'라는 평소의 철학과 특유의 호기심이 겹쳐 덜컥 자신이 그 일을 도와주겠다고 나서신 것이다. 일사천리로 개발 중인 시술이 작은 아버지의 몸에 진행되었고, 작은 아버지는 보증서의 싸인을 훈장으로 챙겨 당당히 돌아오셨다.
 작은 아버지 말로는 '그거이 뭔진 몰러도 겁나게 좋은 거'라는 믿음을 가지셨고 실제로 그 당시에는 몸이 좋아진 듯 느끼셨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은 나쁜 짓하고 그럴 사람이 아녀'라는 믿음도 함께했고 말이다. 작은 어머니와 혜원이는 이 대목에서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작은 아버지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돌아가셨다. 아무도 예상못한 갑작스런 죽음이었지만 가족과 친척들은 다들 한국 중년 남성에게 빈도수가 높다, 라는 설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작은 아버지는 아무래도 그때 그 일이 관련있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그래도 자신이 살아났으니 다 잘된 거 아니냐며 너스레를 떠셨다.
 작은 아버지의 얘기가 끝나고 잠시 찾아온 침묵은 모여든 사람들의 긴 한숨으로 깨졌다. 머릿 속은 복잡했지만 뭔가 섣불리 의견을 꺼내볼 상황이 아니었다. 분명 돌아가신 작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은 맞는 것 같으니까. 다시 돌아오셨는데 무덤으로 들어가시라고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이제 문제는 어떻게 주변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작은 아버지를 다시 예전처럼 사회로 편입할 수 있는가였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한 것 같았다. 작은 어머니는 작은 아버지의 어깨를 연신 두드려대며 '하늘이 도우신 게지…'를 외치고 계셨고, 혜원이는 조금 뾰루퉁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를 이미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똑똑한 아이이니 잘 처신할 것이다. 아마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작은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하느라 바쁘겠지.
 나와 오빠는 혜원이의 방으로 들어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얘기를 하기로 했다. 일단 평소 조금이나마 연락하고 지내던 친척들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간의 혼란이 있겠지만 어쨌거나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으니 함께 기뻐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여기저기 알려지는 것만 조심하면 된다. 몇달만 조용히 넘어가면 그리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대강 그 정도까지 얘기하고 있을 때 혜원이가 방에 들어왔다. 그 애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행정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작은 아버지는 공식적으로 사망자이니 사회 생활에 제약이 있을 것이고, 이 것을 해결하려면 작은 아버지의 부활이 여기저기 알려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지만 어쨌거나 작은 아버지가 돌아오신 이상 행정적으로도 산 사람으로 돌아가야하는 건 필요한 일이었다. 작은 아버지가 두 모녀가 벌어온 돈으로 죽은 사람 행세를 하면서 산다는 것도 웃기고 그런 걸 받아들일 작은 아버지도 아니셨다. 결국 결론은 우리가 '신기하고 기이한 일'의 사례가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장례 도중에 살아난 사람들도 있다지 않는가.
 우린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일단 어이없는 민원에 놀란 행정부에서 조사를 올 것이고,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가 언론이 취재를 하러 올 것이다. 작은 아버지와 가족들은 인터뷰를 하느라 바쁠 것이다. 유명세를 타면 여기저기에서 알아봐서 귀찮아질테고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지금이라고 별 다를 게 없는 처지였다. 작은 아버지가 신나서 뭔가 일을 벌이는 것만 잘 말린다면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몇달이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질 것이다.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며 어떻게든 안심하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서둘러 나가보니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고모네 식구들이 도착해있었다. 우리가 방에서 얘기하는 동안 작은 어머니가 연락을 하신 모양이었다. 친척들은 울고 웃고 왁자지껄하게 떠들며 상봉을 했고, 곧 잔치라도 벌일 태세였다. 우린 일이 생각보다 빨리 돌아가는 듯해 멍하기만 했다. 아닌게 아니라 작은 아버지는 내일 아침 당장 동사무소로 찾아가 나 살아돌아왔소 하고 선언할 생각인 듯 하셨다. 난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이 일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이젠 밀려들 문제들에 유연하게 대처하면 될 것이다.
 곧 작은집에서는 아닌 밤 중에 삼겹살을 구우며 난리가 났고, 오빠와 나는 골목으로 나와 순간포착에 등장해 '아저씨~ 이제는 돌아가시지말고 건강하게 지내셔야해요~'하는 성우의 목소리와 함께 웃는 작은 아버지에 대한 농담을 했다. 어쩌면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되실 수도 있고, 유명세를 이용해 연예인이 되어서 스포츠 신문에 실릴 물의를 빚을 수도 있다.
 그랬다. 그 모든 것은 그렇게 될 수도 있었다.

5.

몸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지어주시는 것으로 씨앗 하나하나에 각각 알맞은 몸을 주십니다. - 코린토전서 15:38

 두번째 부활자는 대기업 총수였다. 최근에 거동이 불편하고, 미국에 치료를 받으러 다녀오기도 했다는 보도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 것엔 관심이 없었지만 며칠 전에 죽었다는 보도를 들었던 기억은 난다. 곧 잊어버렸었는데 오늘 문득 기억이 났다. 하긴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뉴스에선 그의 부활 소식과 함께 며칠 전의 장례식 장면을 함께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무심코 켠 뉴스에서 그 소식이 나오자마자 나는 범죄가 들킨 공범자의 기분이 되어 오빠를 바라봤다. 오빠도 나만큼이나 놀란 게 분명했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혜원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원이도 인터넷에서 그 뉴스를 봤다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왔다. 우리도 뭐라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작은집으로 향했다. 작은집에는 혜원이 뿐이었다. 작은 어머니는 식당으로, 작은 아버지는 오후 늦게서야 일어나 동사무소로 가셨고, 혜원이는 두 분 중 한 분이랑 동행할까하다가 급히 메일을 보내야할 일이 있어 집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우리 셋은 티비와 컴퓨터 앞에 붙어 자세한 소식을 일단 파악해봤다. 그 재벌 총수가 살아난 것은 불과 몇 시간전인 오전 11시 즈음이었다. 영결차에 실려 장지로 향하던 관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의아해하며 관을 열어보니 재벌 총수가 벌떡 일어나 비명을 질러댔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신을 못 차리고 혼란스러워하던 재벌 총수는 곧 예전의 의식을 되찾았고, 병원을 찾아가 검사해보았지만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고 한다. 오히려 지병이 사라지고 예전보다 더 건강상태가 좋아졌다고.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재벌 총수는 백방으로 돈을 쓰며 살 궁리를 했을테고 작은 아버지가 했던 그 시술을 받았을 것이다. 영향력이나 인지도에서 작은 아버지와 비교도 안되는 재벌 총수가 살아났으니 아마 그냥 신기한 일로 넘어갈 뿐 아니라 부활의 상세한 매커니즘이 밝혀질지도 모른다. 일단 작은 아버지 쪽에서는 일이 쉽게 풀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곧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졌다. 식당에 나가있는 작은 어머니와 어제 작은 아버지를 만난 친척들에게서 연락이 왔고, 아마 동사무소로 향하는 작은 아버지를 봤음이 분명한 동네 사람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린 잘 모르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황급히 전화를 끊는 것 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러고 있을 때 작은 아버지가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오셨다.

 "아니, 나 말고도 또 누가 살아난 거 아는겨?"

 작은 아버지가 씩씩거리며 외치셨고 우리는 나지막히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나야하는 사람은 자신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워매 그 친구가 대단허긴 하구만. 아니 근데 난 거까지 연이 닿아있을 줄은 몰랐지."

 내가 재벌이고 죽을 때가 다 되었으니 아마 여기저기 돈을 풀어 알아보다보니 만나지 않았겠느냐고 했더니 작은 아버지가 벙찐 표정을 지으셨다.

 "그 젊은 냥반이 뭐가 죽을 때여? 의사니께 돈은 많겠구먼."

 작은 아버지가 말하는 사람은 작은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작은 아버지를 담당한 의사였다. 그는 직장과 좀 떨어진 이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동사무소에 찾아가니 그 사람이 가족들과 찾아와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가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어제 낮에 죽어 병원에 안치되어있다가 오늘 오후 한시쯤에 살아나 곧바로 동사무소로 달려왔다고 한다. 세번째 부활자였다.
 동사무소에서는 한꺼번에 둘이나 등장한 난제들에 고민하다 윗사람들에게 연락을 취했던 모양이다. 그즈음엔 재벌 총수의 부활 소식으로 여기저기서 수근거리고 있던 중이었다. 동사무소에서는 두 사람에게 별 다른 얘기가 있을 때까지 일단 집에 가있으라고 전했다고 한다. 작은 아버지는 나오는 길에 그 의사에게 어떻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 물었다고 한다.

 "이젠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들어지지 않겠냐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더구만. 거 참 아무튼 신통혀… 서이나 살아나고 말여."

 작은 아버지처럼 마냥 신기해할 수만은 없었다. 시간이 갈 수록 죽었다 살아났다는 사람들에 대한 소식이 늘어나고 있었다. 작은 아버지의 부활을 목도했던 사람들은 모두 작은 집으로 몰려와 담소를 나누느라 바빴다. 물론 작은 아버지라고해서 딱히 그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없었다. 우리 셋은 작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그 임상 실험 얘기를 꺼낼까봐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혜원이가 경고한 건데, 혹시라도 그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고 실용화가 가능한 기술이라면 모두가 그 기술에 매달릴 거라고 했다. 그러면 결국 인간은 죽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게 인간을 얼마나 변화시킬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장 식량난과 주택난에 시달리게 되는 건 자명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나와 오빠는 당장 작은 아버지에게만 관심이 집중되지 않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 뿐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는 명확한 관념이 서지 않았다. 그저 그 얘기가 나오더라도 작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작은 아버지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도 거대한 재난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으시니까.
 그 날 하루 전국에서 열세명이 부활했다.

6.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 코린토전서 15:42

 아침이 되자 작은 아버지는 정부에서 나온 요인들과 함께 서울로 향하셨다. 열세명의 부활자를 모두 모아 놓고 정밀 조사를 실시할 모양이었다. 신체의 변화를 검사하고 한명씩 대면 상담도 한다고 했다. 매끈한 승합차에 오르는 작은 아버지는 그저 즐거워보였고 작은 어머니는 몸 건강히 다녀오라고 걱정을 거듭하시더니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돈 몇푼 쥐어주려고 노력하셨다.
 그러는 동안에 전국에는 혼란이 가속되는 모양이었다.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소식이 전국에 전파를 탄 이후로 사람들은 죽은 자신의 지인들이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곳곳의 공동묘지들이 가족들에 의해 파헤쳐지고 있었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화장터를 공격하기도 했다. 휴거의 그 날이 오고 있다며 동네마다 소란이었고, 입원해있는 중증 환자들에게 안락사 붐이 불었다. 정부에서는 자세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동요하지 말고 일상에 집중할 것을 당부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언론과 방송이 하루 종일 이 일에 대해 떠들어댔고 외신에서도 오랜만에 한국에 대해 집중보도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북한에서 김정일이 시체가 되살아나는 폭탄을 만들어냈다는 오보를 하는 통에 노쓰가 아니라 사우쓰라고 아우성치는 한국 네티즌들에게 고생하는 곳도 있었지만.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은 이 일에 대해 떠들어대기에 바빴다. 우리는 조용히 쏟아지는 정보들을 수집했다. 떠도는 소문만 보자면 사람들이 죽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로 부활하는 사람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었다. 모든 지역에서 자기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살아났다고 얘기하고 있었고 가족들의 증언이 뒤를 이었다. 전주에서는 스무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부활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우리는 이것들이 얼마나 쓸만한 정보일지 쉽사리 판단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이야기들을 꺼내는 사람들이 그다지 장난스럽거나 가벼운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소재가 죽음이었기 때문일까. 소문만으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건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소문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국에서 실시간으로 수없이 부활 소식이 들어왔다. 대부분은 단기간에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었다. 병원들은 부활했다며 몰려드는 사람들의 장례 기록을 뒤져 그들에 대한 신빙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급기야 일본과 중국에서 부활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더해졌다. 작은 아버지는 휴식 시간이라며 전화하셔서는 기자들이랑 인터뷰했다고 아홉시 뉴스를 잘 보라고 하셨지만 편집된 게 분명했다. 살아있는 시체들로 들끓는 남한에서 과천의 문제아 장태동 씨가 끼어들 틈은 없었다.
 조사는 빠르게 진행되다가 새로운 사례들이 속출하면서 다소 지지부진해지고 있는 듯 했다. 일단 부활했다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죽기 전과 비교해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거나 더 건강해졌다. 문제는 그 원인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정체를 모르고 제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니까.
 작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눈 우리들은 그가 받은 임상실험이 원인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부의 계속되는 조사 결과는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작은 아버지를 비롯해 그런 실험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했다. 걔 중에 기억을 못하거나 그 사실을 숨기려는 사람이 있다고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다는 것은 이상했다. 다들 입을 맞춰 숨기는 거라면 그 이유는 뭐란 말인가. 더군다나 시간이 가면 갈 수록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되살아났다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다들 제각각 이유를 갖다 붙여대는 바람에 정부에서는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모르고 있었다. 정부는 모든 방향으로 조사를 했고 임상실험에 대한 조사도 물론 함께했지만 뭔가 그럴듯한 해답이 나오려면 오래 걸릴 듯 했다.
 혜원이와 오빠와 나는 계속 이 일에 대해, 그리고 죽음에 대해 얘기를 했지만 열띤 이야기가 오고 갈 수록 분명해지는 건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것 뿐이었다. 다만 얘기를 하다보니 셋 다 부활할 수 있는 시술이 있다해도 받지는 않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늦은 밤에 다시 작은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에게 임상시술을 한 사람의 명함이 어딘가 있을테니 찾아서 연락처랑 주소 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집을 샅샅이 뒤져 간신히 작은 아버지가 말한 것과 같은 명함을 찾아냈다. 캔디 스내쳐스. 일견 제과회사의 상호 같은 것을 달고 있는 그 곳의 주소는 서울시 구로구였다. 작은 아버지에게 연락처를 알려드리고 우리도 그곳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작은 아버지는 점점 한가로워지시는 듯 했지만 그래도 금방 집에 돌아오실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우리는 부디 아무 일도 벌이지 마시고 무사히 돌아오시라고 대꾸하고는 밤새 작은집에서 쏟아지는 정보에 귀를 기울였다.

7.

내가 이제 심오한 진리 하나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 코린토전서 15:51

 시간이 갈 수록 규칙적이고 명확해지는 것은 있었다. 부활하는 사람들이 죽은 시기였다. 처음에는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 부활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죽음과 부활 사이의 기간이 길어졌다. 몇 주 전에 죽은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날이 밝자 몇 달 전에 죽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이미 상당히 몸의 부패가 진행되어있었기에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몸이 원상태를 회복해갔다는 것이다. 정부에선 방역 작업을 위해 새로 등장하는 사람들을 일반인들로부터 격리시키고 있었지만 그들은 금새 방역하는 사람들보다 건강한 몸을 되찾았다. 오후가 되자 몇 년 간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양리 여대생 실종 사건의 실종자가 나타나 자신을 묻은 범인의 이름을 지목하고 있었다.
 임상실험의 범위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것이 분명하다. 시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한국에서 시작된 부활붐은 점차 세계각지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이제 빈도수는 조금씩 다르지만 슬로베니아에서 아르헨티나까지 부활한 사람이 없는 곳은 없었다.
 정부에선 곧 공식적인 발표를 했다. 급격하게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은 불법으로 자행된 의학 실험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일을 주도한 단체를 추적하고 있는 중이라 빠른 시일 내에 전모를 밝힐테니 동요하지 말라는 것.
 이런 때에는 조용히 있으면서 사태를 관망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이란 생각은 들었지만 아무래도 뭔가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뉴스를 뚫어져라 보고 작은 아버지의 징징거림을 듣는 것도 지겨워져서 나, 오빠, 혜원이 이렇게 셋은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딱히 행선지를 정하고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새 우리는 캔디 스내쳐스가 있는 구로구로 향하고 있었다.
 지하철 안은 혼잡했다. 피켓을 들고 비장한 얼굴로 지하철에 꽉 들어찬 사람을 보고 의아해하다 오늘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활의 신기술 모두에게 공개하라. 누가 먼저 주동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정부에서 신기술을 알아내도 공개하지 않고 고위층에만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가고 있었고 불안한 사람들은 너나할 것없이 그 의견에 동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생존의 체취를 지하철에 가득 메운 사람들이 내리고 나자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시위대가 내려도 지하철은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제각기 떠들어대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쉽게 대화에 동참해 목소리를 높였다. 화제는 단 하나였다. 죽음. 어디서 누가 살아났다는 이야기, 정부에서 일부러 실험을 했다는 이야기, 이제 사람들 다 죽이고 우수한 사람들만 부활시켜 세계를 이끌어 갈 거란 이야기, 죽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죽어 마땅한 놈들이 살아난다는 이야기, 이제 아무도 죽지 않으면 사람들이 일을 열심히 안해서 경제가 망할 거라는 이야기, 죽은 누가 보고 싶은데 안 살아나서 걱정이라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 생각해서 화장했다가 이제와서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이야기, 뉴질랜드에서는 규제가 없을 거라는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지하철을 내리니 좀 살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렇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일을 팽개치고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얘기하느라 바빴다. 전문가들의 천국이었다. 상처없이 자살하는 방법이라며 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죽지 않으려면 죽어야 한다, 가 그들의 카피였다. 한 쪽에는 자신의 사후 세계가 진짜라며 사망 보증서를 내걸고 죽은 뒤의 세계의 묘사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약도를 보고 가야할 곳을 점검하는 데에 집중했다. 캔디 스내쳐스에 대해 검색해보아도 정확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고 명함에 적힌 연락처로 연락을 해도 받지 않았기에 우리는 명함에 적힌 주소에 해당하는 지도를 출력해왔다. 어느 정도 위치를 감을 잡긴 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일단 근방을 해매어야할 듯 했다.
 사실 우리가 그 곳을 찾아낸다고해도 별 달리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미 정부에서 조사를 나오고 관련자를 데려가고 압수수색을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라해도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왜 그랬냐고 따지는 것도 해결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의미없었다. 우리는 모두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딱히 무언가가 다른 것보다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이 뒤집힐 때는 그래도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비슷한 골목들을 몇번 돌다보니 금새 후회가 밀려왔다. 차라리 셋이서 1000 피쓰 짜리 퍼즐이라도 맞추고 있을 걸 그랬나하는 얘기를 할 때쯤 혜원이의 전화기가 요동쳤다. 작은 아버지셨다. 전화를 받는 혜원이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오빠와 나는 서로를 마주보며 어떤 일이든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작은 아버지가 부활자들의 혁명이라도 일으키신 걸까.
 혜원이는 계속 목소리를 높였지만 작은 아버지는 그냥 끊어버린 모양이었다. 혜원이는 허탈하게 전화기를 바라보다 우리에게 통화내용을 알려주었다.

 "아빠가 뭔가 또 했나봐."

 우리는 그 선언이 최근에 일어난 모든 사태보다 무서웠다. 혜원이는 계속 말을 이었다.

 "분명 다른 사람들 몰래 전화한 걸 거야. 이렇게 속삭이듯이 얘기하는 걸 보면. 내가 여기있다니까 아빠가 잘 되었다면서 사람 한명 좀 만나달래. 신한은행인가 앞에 있으면 무슨 등산복 입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나? 아! 진짜, 저승까지 다녀오고 거기까지 가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우리는 그녀에게 한껏 동의했다. 일단 작은 아버지가 뭔가 일을 내셨다면 어떻게든 수습해봐야했다. 간신히 그가 말한 것 같은 은행을 찾아 그 앞에 섰다. 한 40분쯤 지났을까, 왜 이러고 있는지 슬슬 화가 나려할 때 은행 쪽으로 등산복 차림의 한 남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서슴없이 우리 쪽으로 걸어와 배낭을 내려놓고 배낭 옆에 있던 생수를 꺼내 마셨다. 생수를 마시면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슬그머니 우리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혹시 장태동 씨 자제분들 되십니까?"

 혜원이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기에 그 등산객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곤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했다.

 "가져가쇼."

 우리는 잠시 그의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다 일제히 바닥에 놓인 배낭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린 일제히 이게 뭐냐고, 가져가면 위험한 것 아니냐고 물어댔다. 등산객은 잠시 당황하다 말을 이었다.

 "설명 못 들은 겁니까?"

 그는 자신이 곧 잡힐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 하고는 자세한 이야기는 작은 아버지에게 들으라고 떠넘겼다. 우리가 뭔가 더 대꾸하기도 전에 그는 재빨리 인파 속으로 숨어 들었다. 남겨진 우리와 배낭은 서로의 처지에 대해 작게 한숨짓고는 어떻게 대처할 지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사실 가능한 수는 많지 않았다. 우리 선에서 끝내보는 게 많은 사람이 피해보지 않을 길이었다. 우린 그 배낭 안에 든 게 시한폭탄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무거운 배낭을 끌어안고 작은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배낭을 열어보니 다행히 시한폭탄은 아닌 듯 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다. 커다란 금속 상자와 연결선 하나, 그리고 노트북 하나가 나왔을 뿐이다. 우린 연결선이 상자와 노트북을 연결하는 것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을 뿐 다른 이상한 점은 찾아내지 못했다. 우선 작은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기 전에 빨리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작은 아버지는 계속 연락두절이었기에 우린 이게 옳은 일일지 의아해하면서도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부디 얌전한 것이기를.
 노트북은 전원이 들어오자 익숙한 윈도우 화면이 아니라 처음 보는 프로그램을 표시했다. 우린 파란화면에 네모나게 표시된 메뉴창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매뉴얼' '튜토리얼' '실행' '조종' '기록' '네트워크 접속' 같은 메뉴들이었다. 우린 그것들 중 가장 안전해보이는 매뉴얼을 클릭했다. 곧 메인창이 사라지고 수많은 항목들이 실린 매뉴얼 창이 떴다.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차라리 그것이 시한폭탄이길 바랐다.
 매뉴얼 창의 제일 윗단에는 '캔디 스내쳐스의 야심작, 키스!'라는 요란한 문구가 박혀 있었다. 우린 살짝 긴장하고 노트북으로 바짝 다가 앉았다. 그 문구 아래에는 '계발팀을 위한 간략한 개요와 실행법'이라는 문구가 박혀 있었다. 그 곳에는 요새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이 수두룩했다.
 캔디 스내쳐스의 키스 프로젝트는 8년전부터 기획되서 올해 중반 완료되었다. 키스 프로젝트는 의학용 나노 머신을 만드는 것으로 빠른 상업화를 위해 누구나 조종할 수 있는 단순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에 주력했다. 하지만 작업이 진행될 수록 이게 그렇게 녹녹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나보다. 캔디 스내쳐스는 콘돔을 만들어 파는 일도 했고, 불치병에 걸린 재력가들에게 후원금도 받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결국 그들은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짓는다는 끔찍한 결론을 내렸다.
 결국 문제가 생겼다. 쥐에 대한 실험 도중 나노 머신들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키스라고 불리는 이 나노 머신들은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중요한 수술들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나노 머신들의 오작동은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이라면 키스는 오작동을 일으킨 후에도 나름대로 계속 치료와 생명유지 활동을 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실험에서는 쥐들의 상태만큼은 언제나 양호했다.
 하지만 계발팀 쪽에서는 위험 부담을 이유로 성급한 결과 공개나 상업화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 반대가 무색하도록 경영진은 끊임없이 재촉해댔고, 극심한 실업률은 계발팀 쪽에서 아무 말도 못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직원 명부를 열어보니 작은 아버지의 고향 친구라는 사람은 계발팀의 팀장이었다. 유유상종이니까.) 결국 그들은 비밀리에 임상 실험을 강행하기로 하고 달콤한 얘기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시술이 치뤄졌다.
 계발팀을 위한 기록은 거기까지였다. 우린 키스의 원리와 조종법에 관한 항목들도 열어보았다. 키스는 피시술자의 상태에 따라 투입량이 결정되어 작은 관을 통해 인체에 투입된다. 시술자는 키스를 조종해 치료할 부위로 이끌고 치료를 시작한다. 하지만 조종이라고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시술자는 정밀한 계산을 통해 예측된 좌표를 넣고 명령을 키스에게 집어넣어 시술을 진행하는 것이다. 무수한 수로 이루어진 한 팀의 키스는 공동의 인공지능망을 가지고 시술자와 교신하며 명령이 가리키는 곳을 판단해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키스는 보통 문제가 생긴 미세한 부위를 제거하거나 재생이 빠르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스스로 생명유지에 도움이 되도록 신체의 일부로 배치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자가분열마저 가능하다.
 우린 튜토리얼을 실행해보았다. 물론 전혀 조종할 수 없었지만 노트북과 연결된 거대한 상자가 키스를 가득 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우린 잠시 그 상자를 바라보다 이게 왜 우리에게 와 있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필시 작은 아버지가 돕겠다고 나서며 캔디 스내쳐스의 물건 하나를 빼돌린 것이다. 우린 이걸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다. 정부 쪽에선 이미 이 것에 대해 조사하고 사라진 물건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고를 하는 게 옳은 일인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게 정말 죽은 자들의 부활과 관련있는 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우리는 기록 메뉴를 열었다. 그곳에서 어렵사리 임상 실험 기록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린 인터넷에서 알려진 부활자 명단을 되는대로 뽑아서 그 기록과 비교해보았다. 이 잡듯이 뒤진듯이 뒤진 끝에 피실험자의 명단이 모두 부활자와 겹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장태동 씨의 이름도 멋지게 박혀 있었고.
 하지만 피실험자는 모두 스물 아홉명 뿐이었다. 반면에 부활자는 지금 몇명인지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출력한 것만해도 몇백명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키스가 모든 부활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 때 혜원이가 한 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키스는 자가생식이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최초의 피실험자들에게 심어진 키스들이 자가생식을 해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니 몸에 조그만 벌레들이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끼고 소름이 쫙 끼쳤다. 하지만 그랬다면 왜 시체들만 찾아가서 살려놓았을까? 키스가 활동을 멈춘 생명을 되살릴 수 있는가는 그렇다치더라도 여기저기 수많은 환자들이 있지 않은가. 사실은 키스를 의료용으로 위장해 다른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일부러 키스를 확산되도록 방치하고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도록 조종하는 사람이. 하지만 그래서 얻을 게 뭔데?
 우리가 서로 안 돌아가는 머리를 맞대고 끙끙거리는 사이 인기척이 들렸다. 작은 어머니가 돌아오신 것이다. 우린 화들짝 놀라며 당장 이 물건을 어디다 치워야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채 숨길 사이도 없이 작은 어머니는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고, 이상한 물건이나 우리의 행동에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야들아, 지금 난리가 났다!"

 우린 작은 어머니에게 이끌려 거실로 나왔다. 어느새 켜져 있는 티비에서는 보존 처리된 미이라가 되살아났다는 이상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가 이 소식에서 뭔가 의미를 찾아보려는 사이 화면이 바뀌더니 앵커가 다급한 목소리로 멘트를 읽었다.
 끝없는 소요와 자살과 파업으로 사회가 공황 상태에 빠져있기에, 정부에서는 곧 계엄령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엄령이란 말이 구미에 맞았는지 박정희가 무덤에서 기어나와 현충원에 묻혀있던 시체들과 함께 청와대로 진격하고 있었다.

8.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에 순식간에 눈 깜빡할 사이도 없이 죽은 이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 - 코린토전서 15:52

 되살아난 박정희가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들이며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수명 연장 5개년 계획을 발표해 부활의 신기술을 공유할 터이니 모두 조금만 참으라는 주장이 먹혀들었다. 아울러 그 때까지 언론 통제와 불순분자들의 색출에 만전을 기할 것이란 얘기가 이어졌다. 우린 키스 기계를 꽁꽁 싸서 장롱 안에 숨겨 놓았다. 보는 눈이 있어 쉽게 내다 버릴 수도 없었다.
 아직 본격적인 언론 통제는 조금 시한이 남아 있었고 우린 서둘러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했다. 보아하니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는 모양이었다. 미국에선 케네디가 마릴린 먼로와 화해하고 있었고 영국은 부활한 왕들의 정통성 논란과 다이애나의 소송으로 혼란스러웠다. 가장 부활의 파급력이 컷던 것은 북한으로, 유리관에 보존되어있던 김일성의 시체가 멀쩡하게 일어나 '거, 우리 의술이 좋습네다' 하고 말하자 곧바로 위대한 장군동지에서 살아있는 신이 되었다.
 국가 지도자부터 사회의 세부적인 부분에까지 부활한 자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며 산자들의 영역으로 쏟아져들어왔다. 결국 산자들의 영역이 축소되고 부활한 자들이 주도권을 쥐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죽음에서 돌아온 자들을 환영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점차로 사소한 분쟁이 많아지고 부활이 반복되며 부활한 자와 산자들의 구분도 무의미해졌다. 결국 부활한 유명인들이 키스들이 채 뇌에 대한 복구를 끝마치기도 전에 권력 장악에 나서 과거의 이념을 현재에 적용시키느라 난리였다.
 레닌과 스탈린이 푸틴에게 숙청당한 러시아는 그래도 조금 나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선 이 같은 일들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어야할 망자와 과거의 시간들이 현실로 몰려나와 안 그래도 좁아터지고 새로울 것 없는 세계를 터뜨릴려고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우린 키스 기계를 꺼내 어떻게든 메인 시스템에 접속해 이 일을 막으려고 노력해보았다. 키스를 조종하는 사람은 음모론에나 나오던 비밀집단일 수도, 심심한 계발팀 직원의 어린 아들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당장 키스의 작동을 막아야했다. 키스들은 끊임없이 자가생식을 하고 공기 중으로 이동해 죽은 시체들로 파고드는 것이 분명했다. 이 속도라면 전 지구상에 남아있는 모든 시체가 살아날 것이다.
 캔디 스내쳐스가 대기업은 아니니 분명 키스를 조종할 수 있는 기계는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많다고 해도 모두 찾아내야했다. 키스의 작동을 멈추면 작은 아버지도 더 이상 살아계실 수 없지만 이 일에는 혜원이가 제일 적극적이었다. 작은 어머니께는 아무래도 알려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은 갑작스레 일어났던 해프닝이 되길 바랐다. 영웅 놀이를 하고 싶진 않았지만 우리 선에서 해결하는 게 우리가 생각해낸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우린 오랜 시간 기계에 매달려 네트워크에 접속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네트워크에 대한 접속은 이중삼중이 보안이 걸려있었다. 비리비리한 오빠와 똑똑하지만 의욕만 앞선 혜원이와 검색과 메일링이 컴퓨터 활용의 전부인 내가 해킹 같은 것을 할 수 있을리 없었다. 우린 결국 비밀번호 창에 순서대로 차례대로 가능한 조합을 대입해볼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적어도 모든 시체가 되살아나기 전에 끝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 날 밤 열두시에 일제히 전국에 계엄령이 발표되었다. 이제 모든 주민등록이 말소되고 부활자와 산자는 다시 신원을 등록받고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린 계속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려댔다. 서로 돌아가면서 한명씩 두 시간동안 숫자를 치고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쉬는 식으로 일은 진행되었다.
 내 차례가 거의 끝나고 오빠한테 자리를 넘겨 줄 때쯤, 아무 생각없이 번호를 치다가 비밀번호 창이 사라지고 네트워크에 접속 중이라는 막대 바가 떴다. 우리는 다시 일제히 모니터 앞으로 모여 막대 바가 끝까지 차기만을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마침내 바가 끝까지 차고, 네트워크와 연결된 모든 기계의 목록이 떴다. 총 열 두개였다. 각 기계에는 고유번호가 써있고 활동 여부와 활동 내역, 작업 현황, 그리고 현재 위치가 적혀 있었다. 기계들은 전부 한군데에 있었고 활동 중인 기계는 하나도 없었다.
 우린 혹시라도 네트워크와 연결되어있지 않은 기계가 있지는 않은지, 찾아낼 방법은 없는지 메뉴들을 뒤졌지만 이 기계는 총 열두대가 제작되었으며 엄정한 관리 속에서 단 한번도 반출되거나 분리된 적 없다는 항목만 찾아내었을 뿐이다. 우린 잘 알 수 없지만 모듈의 회로에는 각각 개발팀 열두명의 지문이 프로그래밍되어 쉽게 복제할 수 없다는 항목도 함께.
 키스는 누군가 이상한 생각으로 조종되는 게 아니라, 단순한 오작동을 일으켜 이 난리를 부리고 있었나 보다. 우린 앞으로 남은 시체들이 모두 되살아나는데에 얼마나 걸릴지를 우울하게 계산해보는 수 밖에 없었다. 남아있는 유골도 거의 분해되어 키스가 복구할 건덕지가 없을 정도의 시체들을 따져보니 부활할 사람들은 다 부활하지 않았겠느냐는게 그나마 우리의 희망적인 결론이었다.

9.

그 기간 동안에는 그 사람들이 아무리 죽으려고 애써도 죽을 수가 없고 죽기를 바라더라도 죽음이 그들을 피해 달아날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9:6

 희망적이었다고 했나? 적어도 한동안은 그랬다. 세계 그 어느 나라 정부도 부활의 기술을 공개하지 않은채 상용화를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를 했고 사람들은 약간의 조바심과 함께 얌전히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 연구의 향방과 상관없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키스들이 끊임없이 죽은 시체를 부활시키리란 걸 알고 있었다. 우리가 가진 희망이란 그저 키스가 지치던지 확 미쳐서 이 짓을 그만두는 것 뿐이었다.
 나사렛 예수와 고타마 싯달타가 부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 그들이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하는 사기꾼들은 많았고 그들은 곧 조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났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들은 어느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는 지문을 가지고 있었고 그 당시의 언어를 유창하게 하며 기적을 선보였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그건 분명한 근거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겐 더 이상 믿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았고, 그저 언제나처럼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예수와 싯달타, 무하마드 같은 부활자가 만들어낸 천년왕국이 곧 여기저기 생겨났고, 스키피오와 한니발은 못다한 승부를 가르자며 이탈리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칭기즈칸과 나폴레옹이 지도자들에게 국가 경영 노하우를 가르치는 일이 월례행사가 되었다. 호모 에렉투스들이 자동차를 사냥하다 폭발 사고에 휩싸이는 것이 아홉시 뉴스 언저리에 나왔다.
 우린 그 모든 일들에서 한발짝 떨어져 키스 기계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일들에 깊숙히 개입했다간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우린 키스가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고민했다. 이건 분명 불가해한 원리가 아닌 실패한 실험이라는 구체적인 원인이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원인은 모두에게 불가해한 원리가 되어버렸다. 우리에게까지.
 키스는 애초에 의료 기계였다. 아무리 신통방통해도 키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의 신체를 복구하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다른 동물들도 하나도 부활한 사례가 없었다. 하지만 신체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을 아득한 옛 사람들까지 죄다 부활한 것은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혜원이가 의견을 내놓았다. 키스는 신체의 대체도 가능하다는 것. 즉, 우리 앞에 나타난 시체없는 부활자들은 거대한 나노 머신 덩어리라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지만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나마 시체가 남아있던 부활자들도 반쯤은 그럴테니까. 문제는 키스가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느냐였다.
 키스는 유용한 기계였지만 어디까지나 기계일 뿐이었다. 공동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개미의 집단 지능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저 키스 기계가 내리는 명령을 이행할 수 있는 네트워크일 뿐이었다. 스스로 판단을 내려 일을 실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키스가 오작동 중이고 스스로 일들을 벌이며 뻗어나가고 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여전히 똑같다. 그들은 유령처럼 프로그래밍된 일을 아무 생각없이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예수나 싯달타처럼 인간만이 아는 구체적인 형태를 재구성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해답은 이 모든 일들처럼 느닷없이 다가왔다. 키스 기계를 켜놓고 우리 셋은 방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모든 일들이 감당해내기엔 너무도 무거웠다. 난 힘들게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끄려했다. 그러다가 무심코 메뉴들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난 '기록' 메뉴에 있는 수없는 파일들에게서 패턴을 발견해냈다. 오빠와 혜원이를 불러 그 파일들에 대해 분석을 시도했다. 곧 우리는 그게 키스들과 키스 기계가 나눈 교신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키스는 기계의 통제를 벗어나있었지만 습관처럼 끊임없이 교신을 보내온 것이다. 물론 그 교신들은 일방통행이었다. 우린 매뉴얼의 도움으로 그 파일들을 분석해 키스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지를 알아보았다.
 뭐랄까, 생각보다 행복한 결말이었다. 키스는 끊임없이 명령을 받으며 충실하게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우리의 훌륭한 캔디 스내쳐스 직원들 덕분에 키스는 기계의 명령권을 벗어났지만, 키스들은 당황하지않고 미약한 지능 네트워크를 돌려 해결방법을 찾아냈다.
 키스는 최초 피시술자들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자가생식을 시도해 무수한 키스들을 만들어 내 피시술자들의 몸 밖으로 내보냈다. 피시술자들이 모두 죽은 것이나 되살아난 작은 아버지의 끊임없는 식탐은 그것으로 설명이 된다.
 키스들은 신체의 밖으로 나가 가장 가까이에서 명령을 내려줄 수 있는 개체를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에 침투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피시술자들의 사망 시에 곁에 있던 사람들의 신체로 들어가 명령원을 찾았다. 결국 그들은 그 사람들의 뇌와 다른 키스들을 잇는 송신기가 되었다.
 그들이 키스에게 내린 최초의 명령은 죽은 피시술자들의 부활이었다. 물론 그들 자체는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을 거다. 단지 강하게 열망했을 뿐. 그리고 키스는 충실히 명령에 따랐다. 그리고 그 일이 도미노, 도미노.
 하하. 우리 셋은 이런 결론에 다다라 그저 이렇게 웃었다. 달리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이젠 키스의 작동을 멈출 수는 없다. 키스는 육십억의 명령을 받으며 오늘도 끊임없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언젠가 더 이상 키스들의 복구가 진행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우리는 키스들의 몸을 빌려 새로운 천년왕국을 이어갈 것이다.
 영원히 과거의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는 불사의 왕국, 키스에게 명령을 내리고 키스로 구성되는 죽은 자들의 죽지 않는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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