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집을 파는 법

2022.07.30 01:3707.30

 

“어어?! 이거 왜 이래.”

침대 위에 널브러져 휴대폰을 만지던 세현은 순간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세현의 아리폰 22mini가 갑자기 꺼진 것이다. 미친 거 아냐? 아리폰! 빨리 일어나! 아리폰의 양 옆구리를 연신 깊게 눌러 깨웠다. 세현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리폰은 먹통이었다. 세현은 귀찮음을 이겨내고 몸을 일으켜 아리 서비스 센터에 갈 준비를 했다. 아마 9시부터 오픈할 테니 지금 출발하면 딱 맞을 것이다. 아씨, 오늘 집 구하기로 했는데! 휴대폰이 안 되면 불편한 일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서비스 센터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일단 점검이 필요하다며 하루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결국 휴대폰을 맡기고 세현은 어제 알아봐뒀던 부동산을 찾아갔다.

 

백수가 된 세현은 월 100만 원의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마침 계약기간이 이번 달까지로 끝나기 때문에, 기존의 보증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50만 원의 월세집을 구해야 했다.

‘딸-랑’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을까요?”

“아니요. 원래 미리 연락드리고 방문하려고 했는데 휴대폰이 고장 나서 그냥 왔어요. “

“그렇군요. 방 보시는 거죠?”

“네.”

“원룸? 월세집?”

세현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아파트를 구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 행색으로 판단 끝이라는 거야 지금?

“네….”

근데 사실이니까 순순히 답했다.

“가격은?”

은근히 말을 놓는 공인중개사의 말에 자존심이 또 상했다.

“가격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지 않은 표정을 눈치챈 것인지 공인중개사는 서둘러 말을 덧붙인다. 반말을 할 의도가 아니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너도 나도 안다.

“보증금 2000에 월 50이요.”

“월 50? 그 정도의 집은 없어요. 10년 전에나 있었지. 지금 현재 사는 집이 어떻게 되죠?”

“2000에 100인데 제가 당분간 백수 할 거라서요. ”

“글쎄, 그 집도 5평이 채 안 될 거예요. 그렇죠?”

“네….”

“50이면 정말 어느 부동산을 가도 없을 거예요. 특히나 여성분이시잖아요. ”

“아닌데요.”

“네?”

“안드로진인데요.”

잘못 걸렸다는 공인중개사의 아차 하는 표정이 스쳤다. 아, 지금 2030년이었지. 중년의 공인중개사는 잠시 세월을 잊었다. 잠시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공인중개사. 아마 안드로진이 뭔지 검색 중일 것이다.

“풀옵션 원하죠?”

“가구는 지금 있는 거 가져가면 돼서 상관없어요. 근데 어차피 저렴하게 산 거라, 만약 풀옵션이면 캐럿 마트에 올려도 상관없어요. 이사 비용에 보태죠, 뭐.”

“….”

공인중개사는 잠시 휴대폰을 보며 매물이 있는지 보는 듯했다.

“조금 구석진 곳에 있긴 한데, 방은 넓거든요. 가구도 다 있고요. 치안도 꽤 괜찮고요. 씨씨티비가 있어서. 월세도 집주인이 관리비 포함 40까지 해줄 수 있다고 하시거든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가죠. 혹시 차 있으세요?”

“아, 네.”

“주차도 가능하다고 하니 더 좋네요.”

 

둘은 공인중개사의 차에 올라탔다.

“휴대폰이 고장 나서 어떡한대요?”

“그러니까요. 제가 오늘 아침에 아리폰 24mini 가 출시됐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가격이랑 다 검색 중이었죠. 백수 된 김에 저 자신에 대한 선물로 바꾸려고요.”

“그런데요?”

“그래서, 결제 방식 다 선택하고 집 주소를 막 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꺼지는 거예요."

“아니, 하필 그럴 때 꺼지냐….”

공인중개사의 건조하고 기계적인 공감 능력은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요. 클릭 한 번만 더 했으면 휴대폰 바꿀 수 있는 건데.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반응을 안 하더라고요. 제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화면이 켜졌던 아리폰이 말이에요. 켜지는 거 자체가 안 되니까 일단 서비스센터에 가보니까 뭐가 문젠지 알아봐야 한대요. 그래서 맡기고 왔고요.”

“아이고….”

5분 정도의 정적.

“집이 좀 멀죠? 자차 있으니까 그래도 이동하기 수월하실 거예요."

“괜찮아요. 솔직히 차로 30분 거리까지는 괜찮습니다.”

“다행이에요.”

보통 부동산은 인접 지역만 소개해 주는 거 아니었나? 의아함을 느꼈으나 가격이 가격인 만큼 일단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근데, 휴대폰이 왜 고장 났을까요?”

“글쎄요. 솔직히 오래 쓰긴 했는데, 어제까지는 분명 멀쩡했거든요.”

“…혹시 휴대폰이 유기 공포를 겪고 있는 건 아닐까요?”

“유기…뭐요?”

“유기 공포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불안 말이죠. 요새 제가 퇴근하고 평생교육원에서 관련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혹시,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아리폰 22mini는 벌써 22번째 혁신을 계속한 거나 다름없잖아요. 그런데 인간들은, 아리폰이 얼마나 혁신을 거듭하건 간에 2년 정도 쓰면 버려요. 이해가 안 되죠. AI가 우리들의 친구라면서, 하다못해 먼지만 먹을 줄 아는 로봇청소기조차도 고장 나면 울며불며 수리를 맡기면서, 하루 24시간 붙어있는 휴대폰은 질렸단 이유로 그냥 교체해버리죠. 심지어 6개월에 한 번씩 충전해도 되는데 말이죠. 휴대폰 기능이 뭐 별거 있나요? 그래봤자 동영상 보고, 메시지 보내고, 가끔 안면인식 기능이나 쓰고, 물건 길이나 재고 말이죠.”

생각해 보니 그렇긴 했다.

“흠…. 근데 휴대폰으로 결제도 하고, 음악도 듣고, 검색도 하고 하는데요?”

“그건 10년 전에도 있었던 기능이죠. 인간이 쓰는 기능 자체는 그렇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유기 공포는 뭔가요?”

“아, 유기 공포 얘기를 했었죠. 아리폰은 이미 인공지능으로서는 10년째 발전을 거듭했어요. 작은 인공지능 친구나 다름없단 말이죠. 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김세현이요.”

“세현 씨가 그 아리폰으로 새 휴대폰을 찾아볼 때, 얼마나 배신감을 느꼈겠어요?”

“배신감이요?”

“아리폰은 이미 인공지능이라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은 ‘느낄’ 줄 알아요. 2년간 서로 사랑했는데, 하루 종일 세현 씨는 아리폰을 만지고, 아리폰도 세현 씨의 따뜻한 품에서 잠들었는데, 한순간에 그렇게 버리다니…. 이건 유기 공포 수준이 아니라 그냥 유기네요.”

“…실은 저도 살짝 신경 쓰이긴 했는데, 맵북으로 결제했었어야 했을까요.”

“그럼 차라리 낫죠. 세현 씨가 새 아리폰을 결제하는 것을 보고 아리폰은 ‘정신적’ 충격을 받고, 스스로 자신을 버린 게 아닐까요? 맨 처음 눈을 떴을 때 세현 씨의 얼굴을 봤고,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존재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는데 그렇게 무참히 버리다뇨.”

생각해 보니 공인중개사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세현의 지나간 휴대폰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10년 전에 4년을 쓴 엘토끼의 V40이었나? 그 휴대폰도 늘 꺼질 듯, 말듯하며 살아있다 내가 새 휴대폰을 사기로 한 다음 날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화면이 나갔다. 보상판매로 5000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V40은 지금처럼 똑똑한 휴대폰도 아니었기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의 일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일리가 있네요.”

“그렇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전 인류의 수보다 생산된 물건의 수가 훨씬 많잖아요. 심지어 그 물건들에게 지능을 부여한 것도 인간이고요. 물건 없이 우리는 단 1초도 살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버리는 건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아리폰은 정말, 나에게 크나큰 배신감을 느껴서 자기 스스로의 삶을 포기한 걸까?

“이 차 있죠? 6년 됐어요. 최초의 완전 자율주행차라고 해서 샀는데, 글쎄 제가 최근에 바꾸려니까 얘가 어떻게 한 지 아세요?”

”어떻게 했는데요?”

“스스로 바다에 뛰어드려고 하더라고요."

“네? 그래도 돼요?”

“자동차가 이대로 폐차되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바엔 차라리 주인인 저와 함께 바닷속에 묻혀 해양 쓰레기가 되려고 했나 봐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급히 인공지능 모드를 껐죠. 껐는데, 안 꺼지는 거예요. 아무리 버튼을 누르고 따뜻하게 얘기를 해도 절벽으로 향하더라고요. 차체가 달달달 떨리고 있었어요.”

“그럼 어떡해요? 차를 버리고 뛰어나가야 하나?”

“그랬으면 제가 여기 있지 않겠죠. 이 차의 이름이 뽀삐에요. 그저 한마디만 하면 됐죠. 뽀삐야, 엄마는 널 버리지 않아.”

“그랬더니, 멈췄나요?”

“점점 느려지더니 시동이 꺼지더라고요. 나 삐졌다 이거죠. 잠시 차 안에서 함께 생각할 시간을 가졌어요. 뽀삐가 생각 정리가 됐는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봐요. 뽀삐와 저는 영원한 신뢰가 있어요.”

엄마의 말에 화답하는지 뽀삐는 워셔액을 창문에 찍찍 뿌려댔다.

"우리 뽀삐... 엄마도 눈물겨워."

“근데 그게 사실이라면, 소송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증거가 없잖아요. 인공지능과 함께 살지 않는 게 불가능한 시대가 오기도 했고요. 이젠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군요. 증거가 없다라….”

“도착했네요. 뽀삐야, 고마워.”

둘이 내리자 뽀삐는 전조등을 두 번 깜빡이더니 스스로 시동을 껐다.

 

둘은 집 앞에 도착했다. 평범하게 생긴 빌라였다. 비록 도심에서 30분가량 떨어져 있긴 하지만, 차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집주인이 해수면 상승을 고려해서 지은 빌라라, 지대는 좀 높아도 오히려 이게 좋을 거예요."

“좋네요.”

둘은 402호 앞에 가서 섰다. 문은 단단하고 부식되지 않는 철문으로 되어있었다. 집 내부는 평범했다. 에어컨, 책상, 침대 등 없는 게 없었다. 전자레인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토스터까지 있었다. 채광도 잘 드는 것 같았다. 습하고 관리가 안 된 집의 경우 곰팡이 냄새가 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원룸이긴 하지만 9평 정도로 넓어 보였다. 거리를 고려하더라도, 전혀 이 가격은 아닌데 왜 이렇게 저렴하지?

“근데, 왜 이렇게 저렴하죠?”

“사실 다른 집들은 조금 더 비싸요. 근데 집주인분께서 이 집은 다른 곳보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바람이요?”

“네. 여기가 바람 길인지 뭔지, 이 벽 튼튼한 거 보이시죠?”

창문 쪽을 내다보니 벽은 두께가 50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샷시는 3중이었다.

“이렇게 벽이 튼튼한데도, 종종 곳곳에서 바람이 들어오나 봐요.”

“근데 이렇게 저렴하다고요? 가끔 바람이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엔 생각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나 원룸 같은 작은 공간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죠. 갑자기 이유 모르게 싸해질 때 있죠? 그럼 딱! 바퀴벌레를 마주치게 되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세현 씨가 예민하지 않은 성격 같아서 이 집을 소개해 드린 거예요."

“전 이 집 맘에 들어요. 물도 잘 나오고, 채광도 괜찮고.”

세현은 벽을 똑똑 두드려봤다. 텅 빈 공기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아 방음도 잘 되는 게 확실했다.

“괜찮죠? 그럼 계약할까요?”

“좋아요.”

공인중개사와의 대화 후에, 난 집을 계약했고 아리폰 22mini와도 계속 함께하기로 했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말하길, 아리폰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오류가 발생한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는 물건들을 소중하게 여길 생각이다. 이사 첫날밤, 잠을 자는데 물건이 몇 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확실히 많이 드는군. 미세먼지가 다른 집보다는 많을 테니 공기청정기를 하나 더 들이면 되겠다. 그리고 토스터가 혼자 켜지더니 심한 과열로 인해 탁자가 까맣게 그을렸다. 아무래도 내가 토스터는 버려야겠다고 혼잣말하는 걸 듣고 서운해서 그런 것 같다. 물건들이란….

 

“실장님, 이번에 그 집 계약하셨다면서요?”

“어, 그랬지.”

“거기 귀신의 집이라고 한동안 안 빠지더니, 웬일이래요?"

“2030년에 무슨 귀신이야. 믿을 걸 믿어야지.”

“아니, 그래도 막 계속 살면 미쳐서 생쌀 씹어먹고 조기구이 산처럼 쌓아서 뼈째로 씹어먹는다고 집주인이 집 버리려고 하지 않았어요? 물건도 막 떨어지고요. 악몽도 꾼다던데. 세입자들이 튀느라 가구도 다 못 챙기고 갔잖아요.”

“사람은 믿는 바에 따라 달라. 생쌀 먹는 건 건강 문제로 생식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아무 문제가 없어. 조기구이 뼈째로 씹어먹는 건 칼슘 섭취할 수 있으니 더 좋고.”

“아니, 그래도…. 거기 제가 갔을 때 막 춥던데요. 아직도 소름이….”

“지대가 높으니 추운 거지 뭐.”

“그래도 그건 좀….”

“뭐 어때, 귀신이 있다는 증거 있어?”

“증거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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