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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수박

2022.09.19 12:3709.19

그 해 수박은 12억3천만원이었다.
신의 과일이라 일컬어지는 수박은 구름보다 높이, 대기권의 끝까지 뻗은 나무의 가지에서 자라나
여름이 되면 잘 익어서 1000km 아래 지상으로 떨어졌다.

수박을 맞고 사망하는 건 번개맞을 확률과 비슷했지만
신의 축복을 받은 죽음으로, 천국행 티켓처럼, 호상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진짜 신의 축복은 따로 있었다.

파도치는 바다에 떨어진 온전한 수박을 주운 어부.
건설현장 그물을 뚫고 떨어지면서 속도가 완충되어
깨지지 않고 바닥에 떽떼구르 구르던 수박을 집어올린 현장인부는 팔자를 고쳤다.

수박을 먹으면 암도 낫는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3년마다 수박을 먹었던 재벌회장이 식물인간이 된 걸 보면 썩 믿을만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수박을 둘러싼 산업은 현대에 들어와 나날이 커져갔다.
실험실에서 재배된 유전자변이 수박,
수박나무를 신성시하는 수박교,
유난히 수박이 많이 떨어지는 멕시코 소노라 사막의 모래를 원심분리하여 수박성분을 추출했다는 수박농축액은 엄연히 경제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정부의 고민은, 수박 낙하의 폐해가 경제적 이득보다 크다는 데 있었다.
비행고도보다 높이 솟은 수박나무는 항공사고를 유발했고,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우회하는 경로는 석유소비를 증가시켰다.
또한 송전시설이나 통신탑등에 낙하하는 수박은 도시기반시설에 큰 위협이었는데,
뉴욕 대정전의 원인이 수박이었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수박나무 해체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지름이 여의도 반만한 나무밑둥을 자르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
나무가 넘어졌을 때 예상지역의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킨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았다.
더구나 나무를 윗단부터 조금씩 절단하는 것도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했고
수박교의 신도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의 정치적 문제도 엮여있었기 때문에
낙하하는 수박은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로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해결방법이 제시되었으니~
수박나무에 성장주사를 쏟아붓고, 비료를 퍼부으면서
수박나무야 자라라 쑥쑥 자라라 노래를 부르는 것!

수박나무는 급속도로 자라나 대기권을 뚫고 지구중력장을 벗어나면서
중력이 없는 우주공간에 자신의 가지를 머리카락처럼 풀어놓았다~!

그리고 자라난 수박들은 더이상 지구에 떨어지지 않고 우주공간을 둥둥 떠다니게 됐으니~
지구는 신성과 기적을 하나 잃었지만 더 안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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