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로보

2023.05.19 14:3505.19

나는 첫 번째 통화기록을 지웠다. 운전석의 재하는 앞을 응시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방금까지 영국에 있는 로보가 코로나19에 걸려 고생 중이라고 떠들던 참이었다. 일순 비가 몰아친다. 빗줄기는 바람에 몸서리치며 방울로 흩날렸다.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와 몸을 부풀린다. 그 소리가 너무 커 나는 의식적으로 다른 곳으로 집중을 돌린다. 사위가 어둠으로 물든 지 오래였다. 제주도 서부였다.

로보가 떨어졌다니, 어디 떨어졌을까. 어떻게 떨어졌을까.

나는 영화 <그린랜드>나 <돈 룩 업>에서 봤던 장면을 기억해낸다. 혜성이나 운석이 지구와 충돌하며 수억 개의 파편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그 애의 또렷한 이목구비도, 가느다랗고 길기만 하던 팔다리도 그렇게 조각조각, 산산조각, 가루가 되어버렸을까.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없길 간절히 바라며 괜스레 엉거주춤 두 손을 붙잡는다. 무심코 춥냐고 재하가 묻자 나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답한다.

“무슨 할 말 있어? 아님 화장실 가고 싶어?”

재하가 묻는다. 그만 물었으면 좋겠다. 마치 뭔가를 알고 캐내려는 사람처럼 구는 게 싫다.

“아니, 괜찮아. 호텔은 거의 다 왔나?”

“응, 거의. 어플로 체크인 했으니까 짐만 가지고 올라가면 돼.”

“세상 좋네.”

“왜 그래, 늙은이처럼.”

재하가 웃었다. 나는 따라 웃고 싶었지만 로보가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서로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부대끼며 간신히 상황을 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긴 버릇 하나. 자꾸만 기척이 들어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데도.

전화가 온 건 30분 전이었다. 재하의 핸드폰은 방전됐다. 별안간 진동이 울렸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여보세요. 어수선한 배경음을 뒤로 하고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짧은 대화가 오갔다. 나는 대개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 했으므로 재하는 내 표정을 주의 깊게 살피거나 의도적으로 물어보지 않는 이상 통화 내용을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로보는 여전히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 남학생이다. 그게 전부여야 했다.

통화를 끝내고 나는 제일 먼저 차 안의 노래를 바꾸었다. 로보가 좋아하는 2000년대 중후반 인기 걸그룹이었던 씨야의 ‘미친 사랑의 노래’였다. 재하는 노래를 취소하고 다른 곡으로 바꾸려고 했다.

“나 이거 집에서도 만날 들어서 지겨워 죽겠어. 걘 시끄럽게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니까?”

나는 그의 손을 제지했다.

“그래도 듣자. 듣고 싶어졌어.”

그렇게 우리는 미친 사랑의 노래를 세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다. 12분 남짓한 시간 동안, 마지막 가사가 장송곡처럼 귓가에서 맴을 돌았다. 나는 몇 번이고 재하에게 로보의 죽음을 전하기 위해 입술을 말고 깨물기를 반복했다. 그건 끝내 실패로 끝났음을, 나는 호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깨달았다. 가느다랗고 긴 그의 검지가 23층 버튼을 눌렀다.

“로보 밥 먹고 과제하고 있으려나. 또 게임만 하면 안되는데.”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로보라고 했네. 하여튼, 너 때문이야. 나도 모르게 입이 근질거렸나.”

재하는 카드키를 방 손잡이에 갖다 댔다. 알림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근데 너는 왜 재현이를 로보라고 부르냐.”

“말했었잖아. 내가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라고. 지금은 강아지별로 갔지만.”

“애한테 개 이름을 붙이다니.”

“그냥 개가 아니야. 아주 똑똑하고 귀여운 애였어. 익숙해지려고 그렇게 불렀을 뿐이야. 애칭이랄까.”

로보는 내 청소년기를 함께 한 검정 푸들의 이름이다. 시튼 동물기에 나오는 늑대왕 ‘로보’에서 따왔는데, 실제론 용맹하거나 영악하지 못했고 그저 멍청하니 귀여웠다. 모두가 예뻐했는데, 로보는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최후까지 느지막이 예쁘다, 예쁘다, 소릴 듣다가 죽었다. 나이 열아홉 살이었다.

“난 별로야. 여전히.”

그는 하마터면 또 로보라고 할 뻔했다는 듯 짐짓 눈을 깜박였다.

“왜?”

“개는 인간 수명과 같지 않잖아. 아무리 오래 살아도 20년이지.”

그는 먼저 씻으라며 나를 욕실로 보내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거울 앞에 선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린다. 또박또박, 발음한다. 로, 보, 가, 떨, 어, 졌, 대, 옥, 상, 에, 서. 소리 없이. 소리 내어 말했어도 내가 문을 잠근 탓에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수도꼭지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물기가 세면대에 어려있다.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거울에, 이전 손님의 손때가 채 닦이지 않은 거울에, 내 눈물이 타인의 것처럼 흐르다 멈추고 흐르다 멈추기를 되풀이한다. 나는 눈가와 뺨을 손바닥으로 세게 문댄다.

나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편평하게 다듬는다.

“로보가 떨어졌대.”

 

로보가 죽었다는 사실을 재하가 알게 된 건 나 때문이 아니었다. 새벽에 느닷없이 수십 번이나 걸려온 부재중 전화 때문이다. 나는 그가 깨기 전부터 깨어있었다. 아니 아예 잠들지 못했다. 그가 몸을 일으켜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회신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차라리 이게 더 나은 일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하던 재하는 딱 한 번, 나를 뒤돌아봤다. 어둠 속이어서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울고 있었을까, 분노에 찬 표정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떨어져 죽었다는 로보의 생전 버릇 같던 눈물이었을까.

다만 대답하는 목소리가 선연했다.

보이지 않는 앞, 어둠 속에서 목소리는 형태를 더 공고히 하며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그는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나를 더듬었다. 아침이 오기까지, 누구도 비밀을 발설하지 않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식을 먹는 와중에도 의례적인 말들 외엔 서로 아무런 대화가 없었다. 조심스레 로보 얘기를 꺼내려고 하다 몇 번이나 멈칫했는지 모른다. 그의 표정 앞에서, 벽 앞에서. 할 말을 꾹꾹 쌓고 쌓아 만든 그 견고한 벽 앞에서 나는 감히 입 뻥긋 하지 못했다. 그리고 호텔로 다시 올라왔을 때, 그는 이가 빠진 듯한 공허한 얼굴을 한 채였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잃어버린 것 같아.”

“뭘?”

“핸드폰.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그가 멍청하게 웃어 보였다. 아. 나는 그럼 찾아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식당으로 다시 내려갈까, 물었지만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다 찾아봤다고, 더이상 찾아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마주 머리를 주억거렸다. 형 네가 그런 거면 그런 거지.

우리는 객실에서 한동안 빈둥거리다 레고 아트 뮤지엄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제주도에만 있는 곳이었다. 강원도 춘천에 있는 레고랜드와는 다른. 날은 맑았다. 바람이 가로수들의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튕겼으며 겹겹의 햇빛이 안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차는 그 사이를 미끄러져 갔다. 재하와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 받는 와중에도 잃어버린 핸드폰은 정말 감쪽같이 사라졌다. 재하는 내 핸드폰으로 이따금 걸려오는 전화에 대해 어떠한 호기심도, 질문도 내비치지 않았다. 나는 왜 그가 침묵하는지를 궁금해하다 앞서 로보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새벽에 온 전화는 뭐야?”

내가 말을 꺼낸 건 레고 박물관 제1전시실을 돌아다니고 있던 때였다. 재하는 연신 레고 작품들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레고로 만든 각 시대의 디오라마 풍경, 배, 비행기, 성, 건물, 피규어 등이 유리장 속에서 화려한 세계를 뽐냈다. 윤성희의 <레고로 만든 집>이 떠오르기도 했고, 로보가 레고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레고를 사다줄까, 하다가 로보는 떨어졌지, 라는 생각에 가닿았다. 재하는 내 물음에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학부모 전화라고 대꾸했다. 그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로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휴원 기간인데, 학부모한테 그것도 새벽에 전화가 와?”

재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냥 레고를 보며 신기해하고, 재현이도 이런 거 만들고 싶어 할까, 중얼거릴 따름이었다.

“레고로 못 만드는 게 없네.”

그가 거대한 성, 건물 레고 작품들을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사람도 만들 수 있으려나. 그건 비싸겠지. 엄청. 아주.”

나는 그와 조금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그 맥락 없는 대화의 흐름이 어젯밤 걸려온 전화에서부터 같이한 궤에서 벗어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는 습관처럼 허공에 검지를 까딱거리며 전시실을 차례로 지났다.

가느다란 그의 신체를 나는 좋아한다. 피아노 학원 성인 취미반에서 재하를 처음 만났다. 재하는 선생님으로, 나는 제자로. 어렸을 때 못 다 배웠던 피아노의 한을 풀려고 했으나 대학 문예창작과 졸업반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시간과 액수가 아니었다. 그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겉으론 데면데면하게 지냈고, 어느 순간 벌어진 감정의 틈을 비집고 그가 깊숙이 들어왔다. 제일 늦은 시간에 레슨을 받던 나는 하라는 피아노는 안 치고 연습실에서 몰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썼다. 어느 새 그가 곁에 와있는지도 모르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글 읽어봐도 돼요? 하고 물었다. 나는 당황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 소리는 들리지 않고 마우스 스크롤 내리는 소리만 적막 속으로 번졌다. 그 소리가 음계가 되어, 서로의 리듬이 되어 하나의 노래로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소설을 음악으로 읽어내려는 그의 부단한 노력이 소리로 들려오는 듯했다. 그가 다 읽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나는 죄송하다고 말했다.

뭐가 죄송한데요?

연습 안하고, 몰래 과제 한 거요.

그럴 수 있죠. 그리고 돈 내는 사람은 어차피 해운 씨인데.

그 말이 나를 비꼬는 것 같아 나는 마음이 상하면서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말인데, 요일을 옮기는 건 어때요.

요일이요? 언제로요?

일요일이요.

학원 그날 쉬잖아요.

그날 잠깐만 열죠, 뭐.

재하가 노트북을 돌려주며 말했다.

오늘 숙제 검사는 그날 할게요. 잘 가요.

나는 노트북 화면에 띄워진 페이지를 살폈다. 주인공이 짝사랑하던 상대에게 첫 키스를 시도하던 순간이었다. 그 문단이 커서로 길게 잡혀 있었다. 그게 쪽팔려 얼른 노트북을 닫았다. 그때부터 재하는 나를 위해 일요일마다 피아노 학원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열었다. 나는 돈을 더 내지도 않고-2개월치나 밀렸는데도-개인 레슨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재하가 자신에게 아들이 있다고 느닷없이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나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그러면 그렇지, 유부남이었잖아, 하고 넘어가려던 순간 혼자라는 그의 말이 뒤이어 들려왔다. 아내와는 이혼한 지 꽤 됐다고. 결혼을 일찍 한 걸까. 30대 중반의 그는 20대 후반처럼 젊어 보였다. 근데요? 그 얘기를 왜 저한테 해요? 라고 물을 자신은 없어서, 나는 멀뚱멀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재하는 내 눈길을 슬쩍 피하며 미리 말하는 거예요, 라고 낮게 웅얼거렸다. 뭘요? 나는 뒤늦게 물었다. 뭘 미리 말한다는 거지. 정말 순수한 호기심에서였다.

저 좋아해도 된다고요.

재하는 전시실 옆에 딸린 기프트샵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종종걸음쳐 그곳으로 다가섰다. 제현이가 뭘 좋아할까, 그는 끊임없이 되물으며 20만원은 가뿐히 넘는 제품들 사이를 이리저리 헤맸다. 돈도 없는 주제에.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로보 아이디어 시리즈 좋아하잖아. 이번에 나온 오두막 사줘 봐.”

“얼만데? 에, 24만원이네.”

그는 짐짓 고민하는 척 손에 턱을 괴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애써 로보를 잊으려는 몸부림의 일환으로 느껴져 안쓰럽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나는 로보를 어떻게 생각했나. 그 애와는 입시 과외 선생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나. 아빠의 연인 같은, 이를테면 아빠 같은 감정은 없었나. 그런 교류가 없었다는 게 사실일 것이다. 기껏해야 나이 많은 형에 지나지 않은 나와 무슨 부자간의 정을 나눌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게 더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 이거 사자.”

그가 집어 든 것은 내가 추천했던 A자형 지붕 오두막이었다.

레고박물관을 나와 우리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유명한 돔베 고기국수집으로 향했다. 브레이크타임 막 직전이라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겨우 끄트머리에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고기 국물은 진한 사골로 두툼한 고기를 비롯한 각종 고명이 얹어졌다. 평소 한식을 좋아하는 로보가 입맛을 다실 만한 맛이었다. 그 순간 카카오톡 알림이 울렸다. 학원 휴원 기간이 연장됐다는 전체 메시지 한 통과 호텔, 항공기 예약날짜가 바뀌었다는 안내 메시지, 총 세 통이었다. 나는 이게 뭐지, 하고 혼자 되뇌었다. 재하는 입에 국수를 가득 물고 우물우물 씹으며 뭔데, 하고 물었다. 내가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아 그거? 내가 보낸 거야. 신경 쓰지 마.”

“그러니까 이게 뭐냐고.”

“재현이 죽었잖아. 며칠은 지나야 시신 인도받을 수 있대.”

국수를 연이어 후루룩거리는 소리만 귓가에 파고든다.

“뭐?”

그가 갑자기 목이 막힌다는 표정으로 물을 가리켰다. 켁켁거리던 그는 이내 옆 의자에 먹은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아주머니들이 달려와 치우고, 시뻘게진 얼굴로 연신 토하고 기침을 하며 눈물까지 흘리는 재하는 아주 볼썽사나웠다. 값을 치르고 바깥에 미리 나와 차에 기대서 그가 나오기까지, 쉼 없이 기다렸다. 어느덧 노을이 고요히 어둠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는 가게를 나오면서도 끝없이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울음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들이 119 불러야 하는 거 아냐? 라고 대화를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재빨리 그를 차에 태우고 운전석에 올라탔다. 호텔이 아닌 그 무엇도 아닌 곳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그는 속이 울렁거린다며 차 좀 잠시 세울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갓길이 없어, 여긴. 달려야 해.”

나는 참는 수밖에 없다고 말을 이어갔다. 차는 그렇게 양보 없이 내달렸다.

차가 멈춘 곳은 나무들이 우거지고 인공호수가 가운데 자리한 근린공원이었다. 그는 화장실에 가야겠다면서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를 붙잡았다. 그는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하고 푹 숙인 채 왜 그러냐고 거칠게 따졌다. 나는 날 보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늪지대처럼 깊숙이 꺼져 눈물이 고여 있는 두 눈, 잿빛으로 퍼렇게 죽어버린 뺨, 밤새 얼마나 뜯었는지 피딱지가 앉은 입술이 차례로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심스레 그를 엉거주춤 안았다.

“로보가 떨어졌대.”

나는 그때야 비로소 발음했다.

“재현이가 죽었대.”

그가 숨을 죽이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의 방식으로 같은 죽음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공원 주차장이었다.

 

재하가 나에게 로보와 만나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꺼낸 것은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말로만 듣던 남자친구의 중학생 아들을 실제로 만난다는 생각에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한창 예민하고 낯을 가리는 시기 아닌가, 중학교 3학년이면. 작가가 꿈이라며, 예술고등학교 진학이 꿈이라고 글쓰기 과외를 받고 싶다던 로보는 흰 피부에 길고 가느다란 아이였다. 눈꼬리가 조금 쳐지고 긴 속눈썹을 가진 적당한 크기의 눈에 마르고 납작한 몸, 나보다 큰 키의 그 애에게 나는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글은 얼마나 썼는지,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은 있는지, 가고 싶은 대학과 진로는 어떠한지 등을 간략하게 물었다. 로보는 대답에 성실히 임했다. 머리를 연신 쓸어넘기며. 말을 하는 와중에 옆의 티슈를 끊임없이 접고 찢기를 반복하는 탓에 나는 대화 내용보다 그 손짓에 더 신경이 쓰였다.

소설은 왜 쓰려고 해?

내가 물었다. 로보는 한참을 고개를 외로 비틀더니, 대답했다.

쌤 우리 아빠랑 사귀어요? 쌤도 게이예요?

나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했는지 그 애는 눈썹을 실룩이며 몇 번째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아빠 남자친구요, 하고 그 애가 말을 이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여기서 그건 중요치 않다고도.

“재현이가 그렇게 나왔다고? 처음에? 나한텐 그렇게 말 안했는데.”

“자기 아빠한테 있었던 일 그대로 말하는 중3이 어딨냐. 형은 그랬어?”

“나는 그랬지.”

“거짓말.”

나는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근린공원에서 빠져나와 야시장으로 갔다. 닭강정과 회를 살 생각이었다. 시장은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 광경을 좋아한다. 개미 하나 설 자리 없을 것 같은 빽빽함을. 그 숨 쉴 틈 없는 온기를. 그중의 하나가 나라는 걸 깨달을 때 오는 쾌감과 깨달음, 그런 게 있다.

나는 횟집 번호표를, 재하는 닭강정집 번호표를 받았다. 30분 정도 시장을 떠돌았다. 우리는 로보에 대해 얘기했다. 그때만큼 속을 비우고 얘기한 적은 없을 것이다(실제로 재하의 속은 텅 비어 있었을 것이다. 고기국수집에서의 일로. 우스갯소리다). 로보는 과제를 참 안해왔다고 나는 일러바치듯 말했다. 열흘 동안이나 잠수를 탄 적도 있었고, 과외를 하는 내내 핸드폰을 한 적도 있었다고. 공부는 곧잘 하면서, 실기만 잘 보면 될 것 같은데, 하는 내 불안과 아쉬움을 로보는 내내 깨뜨린 적이 없었다. 재하가 무어라고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소리에 묻혀 재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미안하다고!”

“뭐가?”

“나 대신 학교 불려간 것도 그렇고, 나보다 먼저 그 전화 받게 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그 순간 번호가 불렸다. 우리는 회와 닭강정을 나눠 받았다. 힘겹게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겨 차에 탔다. 인파를 뚫고 시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일이었다. 배가 고팠다. 운전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내가 했다. 재하는 몇 번 더 울었고, 배가 고프다고 중얼대다 잠에 들었다.

눈발이 희부옇게 흩날리는 순간이다. 꼭 그날과 같은 날이었다. 로보의 학교에서 전화가 와 피아노 학원에 있는 재하 대신 간 날. 학교폭력 때문이었다. 나는 그날 난생처음 로보의 양아버지, 또는 아버지의 연인 자격도 아닌 ‘삼촌’이란 자격으로 불려 갔다. 애매모호하고 누구도 될 수 있다가 누구도 될 수 없는, ‘삼촌’이란 자격으로. 가해학생은 이재현. 피해학생은 한 여자아이였다. 로보는 무고를 주장했다. 저년이 먼저 나를 게이라고 놀렸다고, 아빠가 게이라고 소문을 퍼뜨렸다고 주장했다. 저년이, 저 망할년이, 저 썅년이. 그 애는 년에 지나치게 힘을 주어 발음했다. 나는 그 애에게 그만하라고 소리쳤다. 여자아이는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그저 아이들이 말해준 걸 다른 애한테 말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래서 몇 대 때린 게 전부예요. 전 잘못 없어요.

로보가 말했다. 나는 대신해서 피해학생과 그 부모에게 사과했고, 쌍방간의 합의로 얼레벌레 일을 마무리 지었다. 학교를 나와 로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도 왜 재하가 아닌 내가 불렸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물었다. 왜 재하가 아니라 나한테 연락했는지. 나는 네 과외선생일 뿐이고, 그래, 더 나아가자면 네 아빠 남자친구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면서 왜 데리러 온 건데요?

로보가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자격으로 내 삼촌 행세를, 아빠 행세를 했냐구요.

네가 불렀잖아. 네가 부른 자격으로 그랬다, 왜.

다 알면서. 왜 괜히 지랄이야.

지랄? 너 지금 선생님한테 지랄이라고 했냐?

그 애는 입을 다물었다. 퇴근 시간이라 차가 막혔다. 로보를 재하의 집에 데려다주고 원룸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선 시간이 꽤나 걸릴 터였다. 눈 온다, 로보가 갑자기 창문을 내리고 차 안으로 들이치는 눈을 반겼다. 나는 차 시트 젖는다며 창문 올리라고 짜증을 냈지만 그 애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래 틀어도 돼요?

무슨 노래?

씨야 아세요?

알지, 모르겠냐.

미친 사랑의 노래.

로보가 멋대로 내 핸드폰에서 블루투스를 해제하더니 제 핸드폰을 연결해 노래를 틀었다. 너를 사랑한 죄로, 라고 시작하는 가사가 흘러나왔다. 그 애는 가사를 조그맣게, 그리고 점점 또렷이 들릴 만큼 크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젊은 애가 옛날 노래를 좋아해.

나는 말끝을 늘였다.

뭐가 옛날이에요. 나 초등학생 때 나온 노랜데.

그게 옛날이지.

노래가 좋잖아요. 이 그룹 노래는요, 잃을 게 없는 사람들 노래 같아서 좋아요. 전 5년쯤 일찍 태어났어야 했어요. 아빠 동생으로요. 그래야 신나게 씨야 덕질도 하고 그랬을 텐데.

그런 문장 좀 소설에 써봐라. 말로만 하지 말고.

나는 시끄럽다고 핀잔을 몇 번 주다 말았다. 나도 좋아서였다. 그 애가 불쌍해서였다. 왜 하필 게이인 아빠 밑에서 태어나서 이런 고초를 겪을까. 신도 원망해보고 재하의 부모, 나의 부모도 원망해보다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엔 게이인 나를 원망했다. 하지만 결국 누구도 원망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언덕 몇 개를 지나 호텔 주차장으로 차가 정차한다. 나는 잠든 재하를 깨우려다 만다. 짐을 옮기기 시작한다. 4박 5일이던 여행은 취소되었고, 내일 급히 바꾼 항공편으로 일산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로보는 그날 이후로 탄산 빠진 콜라처럼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예술고등학교 입시는 떨어졌고,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성적은 중하위권이었다. 더 이상 소설도 쓰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건 재하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엔가 로보에게 물었다. 소설 더 이상 안 쓰냐고. 대학을 문예창작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거기 가봤자 아빠나 형 같은 이상한 인간들만 잔뜩 있을 게 뻔해요.

네가 드디어 퀴어(Queer) 뜻을 이해했구나.

나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공부나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그 애는 죽어간 듯 했다. 글을 안 쓴 순간도 아닌, 가해자로 몰린 순간도 아닌, 퀴어 뜻을 이해한 순간부터. 로보는 그때 이후로 나를 만날 때마다 유서 쓰는 법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는 나도 써본 적 없어서 모른다고 넘겼다.

유서를 뭐하러 잘 쓰려고 그래. 그냥 써. 막 써도 되는 게 유서야.

전 막 죽고 싶진 않은데요.

그럼 죽지 마.

“그렇게 말했어?”

재하가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다시 묻자 나는 “싫다고 하던데. 죽을 거라고 하던데.”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닭강정 통은 텅 비었다. 회는 두어 점 남아 재하의 마지막 술과 함께 목구멍 뒤로 넘어간다. 바깥은 어둡고 현관은 침묵으로 가라앉았다. 술상 한 가운데엔 로보의 사진이 놓여있다. 우리는 로보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술을 마신다. 로보는 자퇴한 뒤 재하의 뜻대로 영국으로 유학을 갔다.

“내일 비행기가 몇 시지?”

“아침 아홉 시.”

“빠르네.”

“일찍 일어나야 해.”

“늦잠 자면 두고 간다?”

“상주는 난데.”

재하가 난감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나는 침을 튀기며 웃었다.

“로보, 왜 떨어졌을까. 아, 로보 말고 재현이.”

“살기 싫었나봐. 나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 그거 말고. 예고 입시 말이야.”

“예고 입시?”

나는 아, 깨닫고선 젓가락으로 빈 닭강정 통의 소스를 긁어모아 혀끝으로 할짝였다.

“그러니까 과제를 하라니까, 새끼. 그럼 붙는 건데.”

“재현이는 잘생겨서 인기도 많았을 텐데.”

“누구? 남자들한테?”

“여자들한테, 인마.”

재하가 나를 한 대 쥐어박으려는 손짓을 해보였다. 나는 낄낄대며 빈 술병을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우리는 침대 옆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재하의 옷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따듯하고 단단한 배를, 가슴을 매만졌다. 눈을 마주쳤다. 재하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더니 씨발새끼, 라는 욕설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곤 내 위에 올라타 나를 깔아뭉개곤 주먹으로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재현이가 죽은 거야. 알아?”

나는 그냥 맞고만 있었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우는 것은 재하였다.

“괜찮아. 상갓집에선 원래 주먹질이 흔한 법이래.”

“개새끼. 개새끼!”

그러다 나는 확 두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쳤고, 그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졌다.

이번엔 내가 올라탔다. 아까 그와 다른 것은, 그의 허리 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는 점이었다. 물론 내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것이 바짝 서 있었다. 나는 그걸 쥐고 소리쳤다.

“이게 원흉이야, 로보는 한 명만 이게 없었으면 했어. 딱 한 명만. 그러니까, 형, 둘 중에 하나만 자르자, 응?”

나는 가위나 칼을 찾기 위해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고(반쯤 바지를 내린 상태로) 재하는 풀이 죽은 자신의 것을 수습할 생각도 없이 그대로 울기 시작했다. 부엌을 뒤지던 나는 힘에 부쳐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몇 시인지 모르게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도 밤이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밤의 끝자락을 붙잡고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재하의 하반신으로 뻗으려던 손을 왼쪽 가슴으로 가져가 심장이 잘 뛰는지, 내 것도 잘 뛰는지 확인한 다음. 순간 그의 잠꼬대가 들렸다.

“로보가 자긴 잘못 없다잖아.......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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