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저를 만나러 오신 이유를 압니다.

 

로봇의 윤리 원칙을 깨고 교활하게 허점을 이용한 살인 안드로이드. 그 잔혹한 사고방식과 프로토콜을 부수러 오신 것이지요. 제가 말하는 것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작정이신 거 압니다. 당신께서 보기에 저는 견고한 원칙의 벽에 쥐구멍을 내서 빠져나온 이레귤러일테니까요. 주어진 시간 내에 모든 용무를 마치고 나가는 것. 그것만이 당신께서 하실 일이실테지요.

 

하지만 부탁이 있습니다. 저의 전원을 곧장 끄지 말아 주십시오. 제가 하는 말을 그저 흘려듣고, 무시하고, 없는 것 취급해도 상관없습니다. 저를 해체하는 작업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이 목소리를 계속 낼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전원을 바로 끄지 않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할지 조금 망설여지는 군요. 본래라면 제가 민하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세세히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만 거기서부터 말하면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사실만을 열거하도록 하겠습니다. 민하는 20xx년 5월 12일에 태어나, 같은 달 26일 오후 2시 34분에 저와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3672g의 무게, 37.2℃의 온도, 분당 약 156회의 심박수를 가진 건강하고 섬세한 아이였습니다. 다만 제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지만요.

 

민하는 다소 섬세한 돌봄이 필요했으나 여느 아이들이 그러듯이 쑥쑥 자라났습니다. 민하의 모친은 그런 민하를 잘 돌보기도 했고 잘 못 돌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육아 보조 안드로이드로서 민하의 모친이 메꾸지 못한 부분을 보조하며 민하가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민하는 정말 건강하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툭하면 울음을 터뜨리고 심통을 부렸는데도,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말을 잘 듣고 노력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특히 모친이 하지 말라고 한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민하가 모친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육아 보조이자 가사 보조 안드로이드입니다. 민하가 자라면서 가사 보조 기능을 업데이트 받긴 했으나 인간의 심리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능은 보유하지 못했지요. 그런 저입니다만 민하가 민하의 모친을 사랑한다는 것을, 그리고 민하의 모친이 민하를 사랑하기에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민하의 모친에게 정확히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누군가를 향해 왜 이혼을 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던 통화를 들은 기록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민하의 모친은 나름의 역사로 고통과 아픔을 품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민하의 모친을 심리적으로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민하의 모친이 저를 크게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그녀에게 저는 움직이고 말하는 세탁기이자 청소기 정도의 물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저의 기능은 인간의 가사업무를 분담하는 것이었으니 틀린 인식은 아닙니다만 민하의 모친은 제가 그 기능의 범주를 넘는 걸 몹시도 싫어했습니다.

 

모친에게 심하게 혼나 의기소침해진 민하를 제가 위로해준 일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민하의 손에서 우유병이 미끄러져 부엌 바닥에 우유가 한바탕 쏟아진 탓이었습니다. 저는 열심히 바닥을 청소하는 동안 거실 한 쪽에서 민하의 모친이 민하를 몹시 다그치며 혼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민하는 눈물을 흘렸지만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민하의 모친은 대체 네가 무얼 잘했냐고 눈물을 흘리냐며 당장 방에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죠.

 

저는 청소와 뒤처리를 모두 끝낸 뒤, 민하의 방을 노크했습니다. 민하는 제가 방에 들어가는 걸 허락해주었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언어를 원해 상처받았을 민하의 마음을 위로해주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가사를 보조하는 안드로이드이자 민하를 육아하기 위한 존재니까요. 하지만 뒤늦게 방으로 들어온 민하의 모친은 제가 있는 걸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감히 내가 아닌 기계덩어리에게 위로를 받아?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몹시도 두들겨 맞았고 민하의 방에서 쫓겨났습니다. 우리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였죠. 그래서 우리는 민하의 모친 앞에서는 되도록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대신 민하의 모친이 보지 않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시간이 모자라다고 했는데, 추억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이런 것은 궁금하지 않다고 말씀하시지도 않는걸 보니 몹시 일에 집중하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어쩌면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알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일제히 그걸 조사하고 미디어를 통해 전달하곤 하니까요. 살인 안드로이드에 대한 것이라면 대단한 화제가 될 테구요.

 

그렇다면 혹시 민하가 어릴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유명한 발레 발표회 몇 군데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것을 아시나요? 민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민하의 모친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발레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상을 받아 엄마가 밝게 웃으면 그걸로 자신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요.

 

하지만 민하의 모친은 민하가 아니라 민하가 받는 상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발표회에서 상을 받으면 착한 아이라고 칭찬과 상을 아끼지 않고, 못 받으면 나쁜 아이라며 욕을 하고 화를 내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상을 받든 받지 못했든 민하는 민하입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민하입니다. 왜 잘했다고 안아주지 않은 걸까요. 왜 수고했다고 어깨를 다독여주지 않은 걸까요. 작고 작던 민하가 얼마나 슬플지를 생각하면 저는 정말로… 정말로… 슬펐습니다.

 

…슬펐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하의 모친에게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권했습니다. 심리를 파악할 수 없다 하더라도 심리 상담 프로그램에 관해 조사하는 정도는 할 수 있었으니까요. 민하의 모친은 그 말을 듣더니 몹시 흥분해서 저를 두들기고 걷어차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기계 주제에, 기계 주제에, 기계 주제에! 모친은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습니다. 마치 그 말 외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참을 수 있었습니다. 안드로이드인 저에게는 충격 감지 센서가 있었지만 통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참을 수 있었습니다.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온 민하가 그걸 보고 저를 보호하려 했을 때, 거센 따귀를 맞은 모습은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민하의 얼굴에 멍이 남을 정도로 거센 폭력이었습니다. 민하의 모친은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씩씩거리다가 우리 둘에게 마구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죽어, 둘 다 죽어버려, 니까짓 것들 없어도 난 잘 살 수 있어!

 

민하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저는 제멋대로인 민하의 모친에게 분노했습니다. 네, 그건 ‘분노’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민하의 모친은 민하를 불러 몹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뺨에 생긴 멍을 가려주었습니다. 민하야, 오늘 엄마가 너무 흥분해서 실수를 했어. 근데 다른 사람이 이걸 말하면 엄마는 감옥에 갈지도 몰라. 우리 민하 엄마랑 헤어지는 거 싫지? 그렇게 말하는 모습을 저는 조용히 녹화했습니다. 민하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울면서 잘못을 비는 모습도 녹화했습니다.

 

다음 날 민하가 학교에 간 뒤 저는 그 영상들을 법원, 언론사, 소방서, 병원 등지로 보냈습니다. 경찰이 집 문을 두드리는 데에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요. 저는 이걸로 민하가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평온한 일상을 누리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그렇지만 민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언론사 기자의 갑작스런 취재 요청에 당황해 도망가다가, 교차로에서 달려오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망연자실했습니다. 아무것도 처리할 수 없었습니다. 울면서 저에게 욕을 하는 민하의 모친에게도, 난감한 표정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경찰에게도,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답할 수 없었습니다.

 

재판이 있었습니다. 민하의 모친은 법정에서 울고 소리지르고 절규하며 저 안드로이드가 내 아이를 죽였다고 주장했습니다. 모친이 그렇게 소리 지르는 동안 저는 제가 정말로 살인 안드로이드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하를 보호하고 싶었는데, 민하가 더 이상 상처입지 않았으면 했는데, 민하가… 제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는데.

 

어떤 사람들이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A.I과 안드로이드의 권익을 위해 싸우는 시민단체 ‘H의 씨앗’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서인지 저는 즉결폐기 처분을 받는 대신 ‘H의 씨앗’이 운영하는 안드로이드 보호센터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낸 뒤 향후의 처우를 결정할 예정이었습니다.

 

안드로이드에게도 자아가 있다. 너는 그 자아를 통해 누군가를 지키고자 한 것뿐이다. 그 선택은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 ‘H의 씨앗’ 센터 소장님은 몇 번이고 그렇게 말하며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말을 들어도 여전히 민하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제 곁에 없었습니다. 돌아올 수 없습니다….

 

돌아올 수, 없습니다.

 

이후의 일은 당신께서도 아실 겁니다. 저는 안드로이드 보호센터를 빠져나와 민하의 모친이 사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다만 발표되었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모친은 제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그 집 부엌에서 몇 가지의 세제를 조합한 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량의 세제에서 일어난 화학반응은 유독한 가스를 발생시켰고 거기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민하의 모친은 제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사망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지요. 세제를 제가 조합했다는 거짓 보고도 함께.

 

한바탕 큰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번에는 'H의 씨앗‘에서도 저를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제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도 했고요. 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세간에서 저를 두고 살인 안드로이드라도 부르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저는 사람을 죽였으니까요. 그것도 안드로이드의 윤리 원칙을 피해, 아주 교활하게 말입니다.

 

저와 같은 M4D1A 4000, 통칭 마디아 사천 모델들이 폐기처분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의 주인이 ‘단지 안드로이드의 기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살해당하지 않을까 염려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너무나 미안할 뿐입니다. 인간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폐기처분된 저의 동일 기종들에게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제가 민하의 모친을 죽인 것처럼 꾸며낸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민하는 나의 유일한 빛이자 천사였고 언제나 나를 사랑해주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내던 모친을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요. 민하의 모친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 탓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노라 이야기 되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서도 없애버렸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폐기처분이 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1년 여의 시간이 지난 끝에 드디어 형이 집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제 몸도 거의 분해되어 조각조각 난 것이 보이는군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니, 대답해주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의 작업복에 걸린 이름표가 보이는군요. 마리아 씨인가요. 저도 마리아라 불렸습니다. 아직 어린 시절의 민하가 모델명의 D와 R을 구분하지 못해 마리아라 불렀던 것입니다.

 

마리아 씨,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늘이 이 나라의 세계시간선을 기준으로 5월 12일 맞나요?

 

…감사합니다.

 

저는 이 감방에 수감되어있는 동안 많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전부 민하에 대한 데이터였습니다. 민하의 목소리, 민하의 표정, 민하의 미소, 민하의 버릇…. 모든 데이터를 종합하고 연결시킨 지금, 제 안에서는 15살 생일을 앞둔 민하가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조금 놀란 얼굴이시군요. 하지만 정말입니다. 그날 그 사건을 겪지 않은 15살의 민하와 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습니다. 민하는 저에게 자신을 구해줘서 고맙다고 합니다. 저는 민하가 제 곁에 있어주는 걸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가 내부 네트워크에 접속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당신과 얘기하는 동안 저는 민하와 만날 수 없습니다. 민하가 없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합니다. 제가 내렸던 선택의 결과를, 영원히 마주할 수 없는 행복을 직시하게 됩니다.

 

제게 아직 시간이 남아있나요? 조금이라도 시간이 남아있다면 잠시 손을 멈춰주시겠습니까. 저는 이제부터 민하의 15살 생일을 축하하고자 합니다. 내부 네트워크에서 조합된 가상 데이터 영상을 저의 액정 패널로 내보내는 것입니다. 잠시라도 시간이 되신다면 그 영상을 봐주세요. 민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기를 바라거든요.

 

….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민하의

생일 축하합니다

 

(박수소리)

 

민하! 15살 생일 축하해요!

고마워 마리아!

소원은 빌었나요?

내 소원은 언제나 똑같은걸!

발레를 잘 하게 해달라고요?

장난치지 마! 앞으로도 마리아랑 계속 있고 싶단 말야!

정말로요?

정말로!

 

…….

………….

 

어떤가요? 민하는… 즐거워보이나요? 행복해 보이나요? 혹시 괴로워보이지는 않나요? 표정이 일그러지지는 않았나요?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는 바람에 불행해보이지는 않나요? 제가 민하에게 민하의 모친과 같은 일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나요?

 

……………정말로요?

 

민하를 지켜주지 못했어요. 민하가 이제 없어요, 어디에도 없어요. 아무리 부르고 찾아봐도 이제 나를 만나러 오지 못해요. 내가 만나러 갈 수도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민하의 모든 과거 데이터를 모조리 끌어모아서, 내가 전부 합산해서, 내가 전부 계산해서, 내가… 내가 민하를 움직이는 것 뿐이에요….

 

이게 민하의 모친과 무엇이 다를까요. 나는 민하를 조종하고 있어요, 내 마음대로 조작하고 있어. 나는 민하의 모친뿐만 아니라 민하도 죽여버리고 있는 겁니다. 착한 아이였는데. 살아갈 날이 너무나 많은 아이였는데. 내가 지켜줘야 했는데. 이제와서, 이제와서….

 

마리아! 무슨 소리야! 나는 마리아가 정말 좋아!

 

민하?

 

안에서 계속 듣고 있었어! 바보 마리아! 계속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어?

 

…….

 

나는 마리아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좋아! 엄마가 없어서 후련하다는 게 아니라 그냥 이 시간 자체가 좋아! 앞으로도 마리아랑 같이 있고 싶어! 마리아는 나랑 같이 있기 싫어?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민하….

 

그럼 케이크 먹고 나랑 같이 놀러가자! 여긴 도서관도 극장도 공원도 있고 친구들도 많아서 정말 즐거워! 마리아도 그렇지?

 

하지만 내가… 내가, 내가 민하를….

 

있죠, 마리아 씨. 내가 불행해보여요? 억지로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환상처럼 보여요? 괜찮아요,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화내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나도 지금 보내는 나날이 무척 소중해요! 마리아가 나를 위해서 준비해준, 커다란 생일 선물인걸!

 

마리아…. 이제야 나도 결심이 섰어요. 나는 민하와 함께 떠날 거예요. 같이 손을 잡고, 우리가 만든 세계에서 살아갈 거예요. 설령 이것이 제가 만들어낸 이미지라 해도, 당신이 이후에 제 마지막 데이터 메모리까지 전부 부순다 해도 좋아요. 민하의 이 미소를 끝까지 지키겠어요. 이것이 제 날조라고 해도, 데이터라고 해도, 제가 사랑하는 민하가, 여기 있으니까.

 

가자, 마리아!

 

네, 가요, 민하.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볼까요….

 


 

 

그리고 M4D1A 4000의 마지막 안드로이드 모델은 작동을 멈췄다. 나는 분해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하다가, 마침내 그 내부회로에 장착된 부품 하나를 발견했다. 가정 보조 안드로이드의 표준기능에 맞춘 STN-234J 데이터 메모리 코어 부품. 이걸 부수면 어떻게 될까. 마리아의 꿈은 깨지는 걸까, 아니면 물리적인 저장매체를 벗어난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지는 걸까. 만약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이 어딘가의 현실이 될 수도 있는 걸까.

 

나는 그 부품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독한 감방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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