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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위험한 가계, 2086

2023.05.11 01:0605.11

2086.03.28

강철 까마귀들은 여느 때와 달랐다. 굴뚝이 아니라 마을을 향해 낮고 느리게 날아왔다. 방공호로 뛰어 가던 사람들은 그제야 알았다. 폭격이 아니라 거대한 안개 군단이 메마른 샛강을 건너오고 있었다. 까마귀들이 만든 어두운 일식 아래 안개는 구름처럼 전진했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찼다. 나무와 집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 갔다. 사람들은 안개 구름을 이불처럼 덮고 마지막 한숨을 쉬었다. 어머니 손은 내 손을 빠져나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 목소리는 방독면의 배기밸브를 뚫지 못했다. 절룩거리는 걸음 덕에 방독면은 수신호처럼 끄덕였지만 아무도 손을 흔들지 않았다.

 

2086.03.19 

사흘이 지나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잘 말린 연갈색 꽃다발이 되었다고 한다. 누나는 내일 아침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종이클립처럼 집에서 뽑혀나갔다. 사막빛 군복들 사이로 누나는 언덕을 넘어 사라졌다. 등만 보였던 어머니는 흘러내리는 풀먹인 벽지를 따라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머니 나는 왜 한쪽 다리가 짧아요. 나는 밤새 공습경보로 문풍지처럼 떨고 있는 초록색 밤하늘을 한 조각씩 삼키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아버지가 준 선물이란다.

굴뚝이 무너진 후 더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다녀온 몇몇은 침묵을 안고 다니다 밤이 돼서야 입을 벌리고 잠들었다. 한 밤이면 눈보라가 촛불로 버티는 유리창을 휘감으며 빈 집을 찾아 헤맸다. 어머니는 그 밤에 밀가루 반죽에서 수제비를 떼내고 있었다. 누나가 아침에 오면 잘 먹여야 한다고.

다음 날 아침 누나는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굴뚝이 사라졌는데 왜 까마귀들이 날아 오는지. 시들은 목화꽃 하나를 단 점퍼가 말했다. 이제는 우리 차례니까. 점퍼 아저씨는 그날 혼자서 언덕을 넘어갔다.

 

2086.02.28.

누렇고 딱딱한 태양을 머리에 인 군용 트럭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하얀 마스크와 복면의 행렬. 밀가루는 내 몸이요, 이 물은 언약의 피니라. 성찬식의 침묵이 깨졌다.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 대비하러 더러운 영들이 모인 이 곳. 아마겟돈***에서 성전을 바쳐야 합니다. 양소매를 걷고 수건으로 연신 이마를 훔치는 목사는 목구멍에서 일곱 번째 천사를 토해 냈다.

행렬에 끼지 못한 나는 누나가 헝겊으로 기워 준 마스크와 침침한 물안경을 쓰고 목사에게 물었다. 저는 왜 성전이 되지 못하나요. 목사 옆에 서 있던 검은 정장이 내 왼쪽 다리를 보더니 방독면을  건넸다. 안면렌즈에 비친 내 얼굴이 개구리 같아서 재밌었다. 개구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도.

 

2086.02.01.

그 해 겨울 눈 내리던 밤. 빛줄기들은 눈발보다 먼저 밤하늘의 두꺼운 종잇장을 뚫고 발전소 굴뚝들 사이로 낙하했다. 쏟아지는 빛줄기 틈새로 별똥별들이 팝콘처럼 튀어 올랐다. 그날 밤 사람들은 필라멘트가 터지는 거대한 전구를 보았다. 오래 전 굴뚝과 빛줄기에 체온과 시력을 빼앗긴 사람들은 그 순간 섬광의 축제를 즐겼다. 하늘을 뚫고 내리는 빛줄기에 맞서던 섬광은 보석처럼 흩어졌다. 지상에 도착하지 못한 눈이 섬광과 뒤엉켰던 밤. 사람들은 아침에 잠시 돌아올 체온을 기다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누나는 해고 통지서 하나 없이 굴뚝의 묘지를 걸어 나왔다.

숨죽인 촛불 아래 풀어진 칼국수 세 그릇을 남기고 어머니는 누나를 맞으러 정거장에 나갔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납 같은 은회색 입술로 누나는 말했다. 뭐가요. 굴뚝이 사라졌으니 더 많은 사람들을 부를텐데요. 모두가 굴뚝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 조금 빨라 졌을 뿐이에요. 아버지는 뭐 하세요. 이렇게 됐으면 뭐라도 하셔야지요. 차라리 가장 먼저 가셨으면. 어머니는 누나의 뺨을 때렸다.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인 건 아버지 덕분이야. 아버지가 입을 다무셨으니. 누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아니라 ‘그것’이 입을 닫았어야 했어요. 

 

2085.11.03.

바다를 건너 온 강철 까마귀들의 삼각형이 하늘을 가리면 친구들은 꼭지점을 머리에 이고 달려갔다. 동네 어른들은 혀를 찼다. 주사기가 뿜어낸 피처럼 매끈한 까마귀 꼬리는 자기 고향의 수 천만 채 집으로 가야할 혈관을 끊어버린 대가였으니까. 까마귀가 어디로 날아갈지 모두 알고 있었다. 바다를 횡단해 온 까마귀에 맞설 유일한 수호자. 그것에 생명을 공급하는 굴뚝. 굴뚝은 오직 그것만을 위해 세워졌다.

술 취한 어른들은 밤에도 밝았고 추워도 따뜻했던 옛날 마을 이야기를 술 안주로 삼았다. 바닥을 드러낸 소주병은 닿지도 못할 굴뚝을 향해 종이비행기만큼 날아갔다. 모두가 두려웠지만 누군가는 다음 날 언덕 너머 굴뚝을 향해 순례를 가야 했다. 가족에게 남길 밀가루 한 포대와 식수 한 통을 받고 몇 차례 순례를 돌면 순례자는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까마귀보다 굴뚝이 더 두려웠다. 굴뚝의 신전 뒤 지성소에 있다는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전에서 일하는 누나는 내게 그것이 흡혈귀라고 말해 주었다. 신전의 장막으로 들어간  순례자들은 쥐어짠 수건처럼 밖으로 던져졌다. 

그것을 없애야 우리가 살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까마귀가 우리를 죽일 텐데. 누나는 말했다. 네가 정하지도 못하는 순서대로 죽을래, 아니면 누구 하나 살아남을 죽음을 맞을래.

 

2084.03.16.

아버지는 가끔 나를 연구소에 데리고 가셨다. 연구소는 옛날에는 나 같은 아이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배우는 학교라는 곳이었다고 한다. 교실이었던 방에는 나무등걸들이 포개져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빈 방 한 구석 찬밥처럼 담겨지거나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거리에서 성냥불 놀이를 했다.  유리창 너머로 아버지가 동료들과 한참을 얘기하던 그 날. 나는 연구소 책상에 앉아 알콜램프 불꽃을 입으로 불며 놀고 있었다.

아버지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것이 멈춘 순간. 화면에서 끊임없이 질문에 답하던 문장의 행렬은 순식간에 사라져 검은 빙판이 되었다. 연구원들의 놀란 얼굴은 검은 거울을 마주했다.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굶주린 쥐들의 시체를 찾았다고 했다. 그것과 굴뚝을 이은 검은 줄기를 갉아먹다 어둠 속 터진 불꽃을 삼킨 쥐들이었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안전관리를 더 철저히 합시다. 방역을 더 자주 하면 됩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유리창을 흔들었다. 처음부터 잘못됐어. 신경망, 학습, 지능. 그것은 사람이, 아니 단세포 동물조차도 아닌데. 단세포 동물도 스스로 힘을 만들어. 그것은 시계 태엽 만큼의 힘도 혼자 못 만들지. 유기체가 아닌 것을 생명이라 부르다니.

생명을 이어갈 힘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힘들을 가지러 싸우는 전쟁을 그것이 대신할 수 있나. 굶주린 쥐가 진실을 말했네. 우리 생명이 아니라 그것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고. 그것이 정지하는 날에 전쟁의 끝이 보일 거라고.

그것 없이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없어요. 병사들의 피와 살로 불태우던 전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까. 어떤 나라도 사람을 전장에 보내지 않아요. 그것의 지능 없이는 한 시간 뒤 공격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지능이란 말을 쓰지 말자고 했네. 이제 모든 전장은 무기 공장이 아니라 그것의 생명줄로 향할 거야. 그 생명줄이 끊어지면 뭐가 남을까. 병사를 전장에 보내지 않아도 그것을 위해 건강한 육신을 보내는 희생이 시작될텐데.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목소리들이 유리창을 깨뜨릴 바늘처럼 아버지를 찔렀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책상에 있던 알콜램프 삼발이 위 플라스크가 비명을 지르며 갈라졌던 날을. 아버지가 추방되던 그 날을.

 

2081.02.08

운명의 날 시계의 초침이 자정 10초 전을 가리키던 날은 가장 완벽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탄생한 날이었다. 

연구소장은 감격에 겨워 푸른 종이에 적힌 최종 보고서를 읽었다. 기후위기와 생태계 붕괴를 막을 인류 지성의 결정체라고. 화석연료 고갈도, 온실가스 배출량도, 물 소비량도 정확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더 이상 모든 가구가 하루에도 수 차례 겪는 단전과 단수는 없을 것이라 자신했다. 더 이상 인간의 섣부른 결정과 실수는 없다고. 인류는 세 번째 자살 기도의 문턱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대통령부터 산업자원부 공무원까지 일제히 박수를 쳤다. 박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기자가 연구소장에게 물었다. 우리만 그것을 갖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모든 나라가 그것의 개발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누가 막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막을 수 있습니까. 잠깐의 침묵이 안개처럼 내려 앉았다. 연구소장은 입을 열었다.

이 완벽한 인공지능은 국경도 종교도 없습니다. 인류가 지구에 출현한 350만 년 이래 꿈꾸었던 하나된 인류의 이상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비관이 아니라 희망이 필요합니다.

기자는 다시 물었다. 10년 전 IPCC 마지막 보고서에서는 이미 붕괴는 막을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기자는 마이크를 빼앗겼고 방송은 공습을 알리는 긴급속보로 바뀌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으며 방송을 보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와 누나는 왜 아버지가 저 행사에 가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어머니는 상을 치우며 말했다. 전기 끊기기 전에 빨리 자거라. 추울테니 꼭 내복 입고. 나는 물었다. 이제는 전기 끊기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아버지는 식탁에서 일어나 불 꺼진 침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어머니가 켜 둔 촛불 하나만 남았다. 

 


* 이 단편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기형도, “위험한 가계∙1969”,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1989를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또한 일부 문장과 비유는 같은 시집에서 기형도에 대한 오마주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고린도전서 6:19

*** <표준새번역 성경전서> 요한계시록 16: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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