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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덩굴

2023.08.20 15:4308.20

 

 

 아버지로부터 성묘를 하러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을 때부터 나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어차피 회사를 그만뒀으니 집으로 내려가야 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컵을 꺼내려다 문득 컵이 내 문제를 만들어낸 원흉처럼 느껴져 다시 내려놓았다. 집에 내려갈 짐을 챙기면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다니던 회사의 사수와의 다툼으로 나는 정신과 약봉지를 종류별로 얻은 채로 귀향해야 했다. 다툼을 중재해야 하는 부장은 ‘부하직원들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관리자’의 위치를 윗선에 보여주기 위해 나와 사수를 이간질했다. 물론 사수가 재수없는 인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부장의 탁월한만큼 추잡한 처세술에 더해 다른 생각할 정신을 모조리 말려버리는 업무강도로 나와 사수는 서로를 세상에서 없애고 싶을 만큼 증오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컵을 던져서는 안 됐다. 컵이 다시는 한 조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바닥에 흩어졌을 때, 부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진작에 그만뒀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 회사에 갔으면 안 됐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이 문제의 해결방법이라고 이제 와서 생각하지만 이미 컵은 깨져버렸다. 이 이야기를 친척들이 다 모이는 이번 성묘 겸 가족회의 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아파왔다. 고속버스는 우울한 기운을 내뿜는 나를 태우고 고향으로 달렸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에 들리지 않고 곧바로 선산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포장되지 않은 일 차선 도로를 한 시간 넘게 달리자 음습한 바위절벽을 작은 언덕들이 둘러싼, 내 부계 조상들이 잠들어 있는 우리 집안의 선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 가족과 친척들은 매년 여름 선산의 풀들을 정리해야 했다. 하필 무더운 여름의 한 가운데에 풀을 정리하는 것은 선산에 자라는 덩굴 때문이었다. 덩굴은 마치 우리 집안의 뿌리까지 휘감아 달라붙은 것처럼 이상할 정도로 무성하게 자랐다. 때문에 다른 묘처럼 가을에 풀을 정리하려 하면 이미 복잡하게 서로를 엉키고 파고든 덩굴의 줄기들이 단단하게 목질화되어 손쓸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풀을 베면서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어느덧 선산 가운데의 절벽 위까지 올라왔다. 절벽 위에 있는 열 평 남짓한 평지에서 바라본 선산은 내 조상들이 있는 곳이지만 음습하고 기괴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선산의 풍경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것처럼 빽빽한 수풀로 뒤덮여 있었다. 주된 수종은 상수리 나무였지만, 그것의 잎보다 더 옅은 색을 띄는 얇은 잎들이 나무의 표면을 뒤덮고 있었다.

 

선산의 작은 생태계를 한 종의 덩굴식물이 집어삼킨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산에서 덩굴식물이 나무줄기를 휘감고 올라가는 것은 으레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유독 왕성히 자라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이 기이할 정도였다. 수십년을 초연히 서있으려 하는 나무들을 능욕하듯, 이른 봄 나무 그늘에서 싹을 틔운 덩굴은 그것들의 줄기를 휘감고 올라가 분지된 가지의 몸통을 타고 흘러 나뭇잎들로 이루어진 밀도 있는 표면을 끝내 뒤덮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일은 매년 반복되었다. 여름이 되면 무성하게 자라 서로가 서로의 줄기를 감고 올라간 덩굴줄기는 가을이 되면 속은 죽고 겉은 목질화되어 웬만한 어린 나무만큼의 두께를 가진 덩어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봄에 올라오는 새로운 싹이 썩어가는 줄기를 또 타고 오르는 것이었다.

 

 “집에서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 좀 해봐” 아버지가 내 조부모의 묘비에 엉킨 거친 덩굴 줄기를 목장갑 낀 손으로 뜯어내며 말했다.

 “그냥 묘는 방수포로 덮어놓고 불 한번 지르면 안 돼요? 편한 방법 놔두고 매년 이러는 것도 귀찮잖아요.”

 “조상들 묘 앞에 불 지르는 게 말이나 되냐. 그리고 해 본적 있어, 네 할아버지 때. 일부러 한 건 아니지만.”

 선산에서 덩굴을 걷어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해봤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비싼 돈을 들여 고용한 식물방역업체가 다녀가도 그 다음해에는 어김없이 싹이 올라왔다. 가족들은 아마 시청 규제 때문에 제초제를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애써 생각했지만, 우리 모두 제초제로도 그것을 완전히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무원들 몰래 강한 제초제를 써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상님들께 잠깐 양해를 구하고 불을 지르는 것이 해답처럼 느껴졌지만 아버지에게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선산 절벽 입구에는 제사를 지내려고 만들어 놓은 농막이 있다. 매년 할아버지 기일에 그곳에서 합동제사를 지낸다. 우리 가족에게 들러붙은 그 덩굴은 역시 그 건물에도 기어올라가 있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아버지와 산을 내려와 농막으로 향하면서 회사일에 대해 말했다.

 “그래서 너 그 회사랑은 완전히 끝난거냐? 그래도 괜찮게 받았잖아. 안 좋은 일 있었어도 얘기하다 보면 어떻게 잘 풀리지 않겠어?”

 “컵을 던졌는데 그게 풀리겠어요? 잘 풀려서 고소 안 당한 거예요. 그 개 같은 인간한테 끝까지 굽신거리면서 나왔는데 제 기분은 생각 안하세요?”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런 일 당연히 있는거야. 너 어릴 때부터 네 엄마 닮아서 화가 많아 가지고 성격 때문에 일 그르친 게 몇 번이냐? 참아야지. 화가 나도 참아야 나중에라도 일을 유리한 쪽으로…”

 “아버지부터 잘 하세요. 엄마 성격 그렇게 만든 게 지금 누구…”

 아버지와 나는 절벽 아래까지 내려와서 대화를 멈췄다. 저 멀리 덩굴 숲 속 어둠 속에서 어떤 형상이 매달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거 방금 움직였지. 고라니 같은데.” 아버지는 검은 형체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또 목이 걸려서 죽었나 본대요. 아니면 절벽 위에서 떨어졌을 수도 있고… 내일이 삭월이잖아요.”

 선산에는 살아있는 동물이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 흔한 고라니나 멧돼지도 거의 없었고 심지어 새들도 옆 산에서는 보였지만 우리 선산 위로 지나가기만 할 뿐 앉거나 날아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죽은 동물은 자주 보였다. 고라니나 쥐, 멧돼지 같은 들짐승들뿐만 아니라 날짐승들도 덩굴에 걸려 죽어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우리 가족들은 덩굴숲이 어찌나 빽빽한지 짐승들이 나무 사이를 뛰다가 허공에 걸린 덩굴에 목이 졸려 죽거나, 절벽 위에서 떨어져 덩굴에 휘감겨 죽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물들의 사체는 한 달 주기로 자주 보였고, 달이 뜨지 않는 삭월을 전후로 하여 사체가 발견되는 것이었다. 동물들의 죽음에 주기가 있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우리는 그저 달빛이 없어 어두워서 그랬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휴대폰 라이트를 켰다. 남색. 짙은 남색이 보였다. 잘 못 보거나 더위를 먹어서 생긴 환각도 아니었다. 그것은 덩굴에 목이 졸리고 사지가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당겨진 것처럼 기괴한 자세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남색 고어텍스 등산복을 입는 고라니는 없다. 다섯 걸음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나는 아래쪽으로 축 쳐진 사람의 손가락을 확인했다. 어제도 삭월이었다.

 

 

 “사람이 또 죽었어요.” 아버지는 제사용 농막에 들어오며 말했다.

 “또? 아니 어떻게 알고 자꾸 찾아와서 죽는 거야? 선산 둘레에 철조망을 다 쳐 놨는데도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것 같잖아.” 고모는 경찰에 신고를 한 후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친척들은 한 두 번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게… 제가 얼마전에 동창 놈이 하도 부탁을 하길래 덩굴을 조금 줬어요. 그랬더니 그 놈이…” 아버지가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이 소문을 낸 거야? 넌 그걸 왜 준거야?” 큰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러게나 말이에요… 자기 외삼촌이 화병이 나서 꼭 좀 부탁한다고 간절하게 부탁을 하길래 조금 줬더니… 그 사람이 효과를 보고 주변에 비슷한 증상이 있는 지인들한테 소문을 낸 거예요. “

 “하… 골치 아프게 됐네… 그럼 이런 일이 계속 생길 텐데. 넌 애초에 그걸 주질 말았어야지…”

 연고도 없는 사람들이 우리 선산에 찾아오는 것도 그 덩굴 때문이었다. 덩굴은 분노를 치료했다. 적어도 우리 가족과 매일매일 악을 써대는 가족으로 인해 고통받는 간절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큰아버지, 고모, 그리고 우리 가족도 어릴 때부터 덩굴 달인 물을 자주 먹었고, 분명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덩굴이 분노를 완화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꽤 오래되었다. 1960년대부터 우리 선산에 있었던 덩굴은 집성촌이었던 선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 덩굴의 새순을 먹었더니 심성이 차분해지고 분노를 가라앉혔다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 덩굴을 화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훈화초’ 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버지 때에 와서야 그 효과를 확인하려고 우리 지역 국립대 분자생물학 연구실에 성분분석을 의뢰했다. 분석 결과(단백질을 침전시켜 뭘 어떻게 했다고 들었다) 알려진 종은 아니지만 미모사와 친척쯤 된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다른 식물에 비해 방어작용과 식물 운동성에 관련된 물질이 많고, 야간에 활성화되는 유전자군에 빛에 반응하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고 했지만 다른 성분은 일반 잡초들과 큰 차이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훈화초를 먹은 사람들은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훈화초의 효과가 있든 없든 간에, 사람들이 굳이 훈화초를 찾으러 여기로 오는 것은 그것이 우리 선산에만 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할아버지는 전쟁 후 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인 농업부의 특용작물 개량종자 시험사업에 참여할 농민으로 선정되었다. 그 결과로 특별히 육종 되었다는 구근식물의 종자를 받아와 선산 옆의 밭에 심었다. 그러나 종자 분류과정에서의 실수로 농업부에서 유전자 조작 후 쥐 잡이 식물로 시험 중이던 덩굴식물의 한 품종의 씨앗이 끼어들어왔고(우리 가족은 그것이 훈화초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을 받아 심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전에 본 적도 없는 덩굴이 산을 뒤덮어서 그 사실을 농업부에 신고했다. 그러자 한 무리의 공무원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와서는 산에 불을 질러 없애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조상들 묘가 있는 선산에 불을 지른다는 것이 영 꺼림칙했으나, 공무원들의 지시가 그렇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산에 불을 지르는 것을 허락했다. 할아버지는 그 일로 약간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훈화초는 불을 지른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계속해서 다시 덩굴손을 뻗어 올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선산이 다시 불바다가 되는 꼴을 볼 수 없다며 할아버지는 정부에 신고하지 않았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매년 여름 달이 뜨지 않는 날이면 짐승들이 죽어 나갔고, 요즘 들어 몇 번은 이번 사건처럼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지도 않았을 사람들이(적어도 죽은 사람들은 선산까지 차를 타고 왔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덩굴에 목이 감겨 죽을 수 있었을까? 아마 선산 절벽 위에서 떨어져 덩굴에 몸이 걸렸지만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라고 친척들은 추측했다.

 “오늘은 이쯤 하시고 다들 그냥 돌아가시죠. 경찰이랑 일은 제가 마무리할 테니까요.” 아버지가 말했다. 친척들이 돌아간 뒤 나와 아버지는 사건을 조사하러 온 경찰들을 덩굴에 걸린 시신이 있는 장소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20년이 조금 안된 호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그 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에 사람이 감겨 죽은 것이었다. 나는 그 호두나무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이상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 호두나무는 내가 아는 나무였다. 아니, 내 나무였다.

 내가 기억하는 선산에서의 첫 번째 사망사건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의 여름이었다. 학교는 방학이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아버지와 외식을 하고 영화를 봤다. 해가 지고 어두워질 무렵 아버지는 시장에서 호두나무 묘목 한 그루를 샀다. 그러고는 나를 태우고 선산으로 향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도 선산은 덩굴에 휘감겨 음산한 분위기를 풍겼고, 달은 뜨지 않았다.

 “영화 보느라 시간이 좀 늦었네. 그래도 학교 들어갈 때는 꼭 이렇게 나무 한 그루 심는 거야. 아빠는 국민학교 들어갈 때 할아버지랑 와서 감나무 하나 심었어.”

 “아빠 나무는 어딨어?”

 “어… 저기 덩굴 숲 안에 어디 있어.” 아버지는 조금 당황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빠 땅 팔 동안 돌아다니면서 놀아. 조심해, 어두우니까.”

 나는 ‘아빠의 감나무’를 찾아보려고 어둑어둑 한 덩굴 숲 속을 여기저기 헤맸다. 성인은 낫이나 정글도 없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우거졌지만 당시 이제 막 8살이 된 내 키로는 숲 속을 쏘다닐 수 있었다. 한여름의 열대야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기는 서늘했고, 플래시를 들고 있었음에도 두 걸음 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나뭇잎과 덩굴줄기가 우거져 어두웠다. 나는 바닥에 두껍게 깔린 이끼와 나무뿌리, 죽은 덩굴의 줄기들을 밟으면서 나무기둥과 덩굴 잎 사이를 헤치고 나아갔다.

 한참을 갔을 무렵, 눈 앞에 검은 형체가 감나무를 타고 올라간 덩굴줄기에 매달려 허공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후에 선산에서 볼 시체처럼 기괴한 자세로, 팔과 다리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당겨져 꺾여 있었다. 바닥에는 낫과 덩굴 줄기를 잘라서 넣은 검은 비닐봉지가 떨어져 있었다. 분명히 사람이었다.

 “아빠! 나무에 사람도 열려?” 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내가 왔던 방향으로 뒤돌아 긴박한 목소리로 소리쳤으나 너무 멀리 온 탓인지 아버지에게 소리가 닿지 않았다.

 “도와…” 검은 형체의 사람은 허공에서 흔들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간신히 말했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형체는 갑자기 나무 위쪽으로 끌려 올라갔다. 그때 바닥에서 작은 덩굴줄기 하나가 내 신발끈에 엉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두려움에 신발 한 짝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뒤로 돌아 달렸다. ‘저건 사람이 아니야. 내가 잘못 본 거고 분명 고라니 일거야’ 라고 생각하며 달리던 나는 나무 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져 그대로 기절했다.

 눈을 떠보니 집이었고, 아버지는 그날 내가 본 것은 고라니였다고 말해줬다. 나는 아버지가 거짓말을 해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내가 본 감나무가 아버지의 감나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감나무는 이미 우거진 덩굴 숲 속에 파묻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신발 한 짝도 그곳 어딘가에 있겠지만, 다시 찾으러 가지는 않았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자주 화를 낸다. 우울해서 화를 내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과거에 있었던 하나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 두 가지 상반되어 보이는 감정을 번갈아 만드는 것이다. 어머니에게 그 하나의 원인은 아버지 가족들이었다.

 “왜 또 당신이 가야 하는데?”

 “형은 이미 올라가서 못 내려온다잖아. 누나는 출근한다고 하고. 경찰이 조사받으러 오라는데 어떻게 해.”

 “그게 지금 몇 번째야? 도대체 선산 관리를 몇 십 년째 우리집만 하고 있냐고! 어? 이번에 사람 죽은 거 경찰이랑 뒤처리도 당신이 했다며. 왜 안 하겠다는 말을 못하고 항상 일을 떠맡느냐는 말이야!” 어머니가 소리쳤다.

 큰아버지는 서울에 살고 있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부터 제사가 아니면 선산이 있는 지방에 자주 내려오지 않았다. 산의 관리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하게 됐고 아버지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신이 당신 자식은 내팽개쳐 놓고 그 효도니 뭐니 하는 짓거리만 하고 다니니까 애가 회사도 짤리고 저렇게 된 거 아니야?”

 “그게 왜 내 책임이야? 애가 화를 못 참아서 그렇게 된 거랑 무슨 상관이야!”

 “니가 그때 나 때렸잖아. 당신 가족들이 나 무시했을 때 내가 한 마디 했다고 나 때렸잖아. 안 그랬어? 내가 그때 이후로 한이 맺혀서 그래. 그랬더니 내 자식도 저렇게 됐다고. 아니야? 이래도 당신 책임이 아니야?” 어머니는 울분에 차 소리쳤다.

 “20년도 더 지난 얘기를 왜 자꾸 해!”

 “그만들 하세요. 그만하고 이거 마셔.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야.” 나는 주방 선반에서 가루가 든 유리병을 꺼내 뜨거운 물을 타고 두 컵으로 나눴다. 훈화초 가루는 집에 거의 항상 있었고, 자주 동이 났다. 어머니는 화를 내면 분을 참기 힘들어했고, 나는 어머니가 자칫 기절이라도 할까 두려워 그럴 때마다 가루를 탄 물을 어머니에게 먹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훈화초 가루를 탄 물을 먹고 진정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가루를 타고 나서 유리병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거의 매일 싸웠다. 너무 어릴 때부터 싸워서 도대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둘은 돈 문제, 내 양육 문제로도 싸웠지만 대부분은 아버지가 지나치게 자신의 가족사를 챙긴다는 이유로 싸웠다. 그게 아마 내가 태어났을 즈음 있었을 아버지 가족과의 안 좋은 기억을 어머니로 하여금 항상 떠올리게 만들었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분을 참지 못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훈화초가 우리집 선산에 자란다는 사실이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버지는 항상 아침에 선산에서 가져온 훈화초를 가루 내어 유리병에 채워 놓았다. 어머니는 훈화초 가루 탄 물을 매일 먹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도 매일 그것을 먹었다.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나는 방 문을 닫고 이불 속에 숨었으나 싸우는 소리가 다 들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이 뒤틀리는 듯하고 가슴 한 켠이 뜨거워진다고 느꼈다. 그때부터 나는 화를 자주 냈으나 훈화초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부모님은 나에게는 되도록이면 먹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처음 훈화초 가루를 먹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나는 친구가 내 실내화를 훔친 것을 알고 친구를 때렸고, 집에 돌아와 화분을 던졌다. 내가 계속해서 분을 참지 못하자 어머니는 결국 자신이 먹는 훈화초 가루 양의 절반을 탄 물을 나에게 먹였다. 그것은 약간의 떫은 맛과 매우 쓴 맛이 났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다 삼켰다. 그것이 목구멍 안으로 들어오자 가슴과 뱃속이 차가워지는 느낌이 나면서 온 몸으로 냉기가 퍼졌고, 이윽고 온 몸의 근육이 풀어지면서 마음 속의 불을 젖은 손으로 감싸 쥔 듯 몸의 떨림이 사그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을 먹은 후로 가슴 한쪽에 있는 덩어리를 덩굴이 휘감아 옥죄는 듯한 느낌이 났다. 나는 그 이후로 항상 마음 속이 불편하고 이 덩굴을 벗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하고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훈화초를 먹을수록 점점 더 악을 쓰고 화를 내는 아이가 되어 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여전히 싸웠다. 그럴 때마다 우리 가족은 거의 매일매일 훈화초 가루를 탄 물을 먹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후에 성인이 되면서 내 성격은 대외적으로는 많이 호전되었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면서 내 마음 속을 옥죄는 덩굴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러나 훈화초를 끊을 수는 없었다. 나는 사회에서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관리하는 대신 훈화초를 더 많이 복용했다. 훈화초를 먹어서 내 마음 속의 덩굴이 생긴 것을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애초에 먹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나는 훈화초가 없이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한 달에 한 번씩 훈화초 가루가 든 큰 유리병을 택배로 받았고, 그것을 소분하여 가지고 다니면서 회사에 나갔다. 하필 그 날은 가루가 없었다. 폭우로 인해 택배의 배송이 지연된 것이다. 단 하루, 그 날만 없었다. 어제는 있었고 내일은 택배가 도착할 것이지만 오늘만 없었던 그 날, 일이 벌어졌다.

 “지석씨, 이거 내가 전에 얘기한 거잖아요, 문장을 이렇게 쓰면 어떡해요? 보고서를 두괄식으로 써야지 이렇게 마음대로 써버리면 전부 다 읽어봐야 하잖아요. 이게 소설인 줄 알아요?” 사수가 말했다.

 “아뇨… 죄송합니다. 다시 써오겠습니다.”

 “아니, 내가 쓸 테니까 다시 안 써와도 돼요. 처음부터 잘 했어야지.”

 “죄송합니다. 주세요. 처음부터 다시 할게요.”

 “그래요. 저번 보고서도 다시 쓰더니 개차반으로 해 놓아서 내가 처음부터 한 거 알죠? 이번에도 그렇게 해보세요. 실수해 놓고 그렇게 화난 표정 짓고 잘 해보시라고.”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책상의 훈화초를 담아 놓는 유리병을 집었으나 비어 있었다. 지금 당장 이걸 먹어야 하는데, 훈화초가 없다.

 “정신병 있는 새끼 받아줬더니 내가 이런 일 일어날 거라고 했잖아. 안 그래?”

 “이래서 처음부터 의료기록 제대로 확인하고 뽑아야 하는 거야. 우울증 병력 같은 거 있으면 애초에 뽑질 말아야 돼.”

 실제인지 아닌지 모를 온갖 말들이 머리속에서 울렸다. 가슴 속의 덩어리를 덩굴이 옥죄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석씨, 지금 뭐합니까? 내 말 안 들려요?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요.”

 가슴이 답답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살려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팔을 휘두르든 창밖으로 뛰쳐나가든 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조여오는 덩굴 때문에 내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 앞에 보이는 컵을 집어 들었다.

 

 

 컵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났다.

 

 

 “지금 당장 가서 그 년놈들 뺨 싸대기 한 대씩 치고 와 아니, 칼로 찌르고 와. 안 그러면 나부터 죽어버릴 거야.” 어머니가 컵을 바닥에 던지며 소리쳤다. 어머니는 손에 식칼을 들고 있었다.

 “도대체 또 왜 그래? 벌써 몇 십년 지난 일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 지석아 가루 물에 타와라.” 아버지는 어머니를 말리며 말했다.

 “도대체 언제쯤 내 말을 들어줄 거야? 당신이 일하지 말고 당신 형이나 누나한테 하라고 해. 이렇게 당신만 일하면 그 년놈들이 도대체 나를 얼마나 비웃겠어? 그 인간들이 나를 이렇게 무시하는데 어떻게 남편이란 사람이 그 인간들 비위 맞추면서 힘든 일 다 해줄 수가 있냐고!”

 훈화초 가루가 없었다. 어제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웠을 때 둘이 먹었던 가루가 마지막이었다.

 “아버지, 가루가 없어요. 새로 가져와야 돼요.”

 “일단 네 엄마 진정시키고 있어. 가서 가져올게” 상황이 심각한 것을 느끼고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급한대로 어머니가 평소에 복용하는 진정제를 어머니에게 먹였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식칼을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천천히 분이 가라앉는 듯싶었다. 그럴 동안 아버지는 차를 운전해서 선산으로 향했다. 시간은 새벽 2시였고, 달이 뜨지 않았다.

 어머니는 진정제와 수면제를 먹고 조금 안정되었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나는 어린 시절의 괴로웠던 기억이 떠올라 가슴 속의 덩굴이 더욱 나를 옥죄는 듯했다. 마음 속의 방 문을 닫아도, 이불로 머리를 감싸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그것들을 뚫고 들어와 내 귀에 악을 써 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에게 훈화초를 준 것처럼, 분노는 대물림되었다. 선산에 불을 질러도 사라지지 않는 덩굴이 내 조상들의 묘비를 휘감고 옥죄어 우리 가족에게 단단히 들러붙어 있었다. 어머니와 나는 깨진 유리컵의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거실 바닥에 앉아 대화했다.

 “엄마, 그렇게 아버지 가족들이랑 사이 안 좋은데 왜 진작에 이혼 안했어?” 나는 진이 다 빠진 채로 어머니에게 물었다.

 “너 낳았으니까. 너 잘 키워야 되잖아.”

 “그럼 나 왜 낳았어? 이럴 거 알고 낳지 말았어야지. 그 전에 이혼했어야지. 아니, 애초에 결혼하지 말았어야지.”

 “이미 다 벌어진 일인데 어떻게 해. 살면서 이런 일들을 어떻게 다 예상하고 피할 수 있겠어. 그래도 너 낳아서 어떻게든 살았잖아. 그럼 된 거지.”

 나는 어머니의 그 말이 위선이고 변명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변명.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며 지금이라도 최선의 수를 두고 있는 자신에 대한 변명. 과거에 하나의 실수라도 있는 한 나는 지금의 상황을 오로지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거야? 화내고 고통받으면서?”

 “그렇겠지. 네 아빠가 안 변할 거니까. 나도 그렇겠지.” 어머니가 말했다.

 양 쪽 모두가 양보하고 타협해야 했다. 인간으로서 실수를 인정하고 묵묵히 살아나가야 했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변화 없는 콘크리트 블록 안에서 자란 나같은 세대에게 한 번의 실수 이후의 삶은 부정되어야 했다. 깨어진 유리컵은 다시 붙일 수 없다. 원인부터 발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인. 이 상황을 만든 다른 원인이 있다. 훈화초를 처음 먹은 이후로 나는 줄곧 사회생활의 정해진 길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 길에서 탈선했다. 가슴 속의 덩어리를 조이는 덩굴을 만들어낸 것은 훈화초였다. 지금껏 우리 가족은 훈화초에만 의지했다. 사회의 견고한 길 위에서 이미 탈선해버린 지금, 그 덩굴을 벗어야 했다. 이미 유리컵은 깨졌지만, 그 덩굴을 벗어 던지고 나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일들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컵을 빚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컵이 깨졌으니 손해볼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무너진 지금 해야 했다. 아버지에게 훈화초를 가져오지 말라고 전화해야 한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오늘도 달이 뜨지 않는 날이다.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곧바로 나가 택시를 잡았다.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갔을 리는 없다. 택시는 포장되지 않은 일 차선 도로를 달려 선산으로 향했다.

 선산 입구의 공기는 아버지와 호두나무를 심으러 왔던 날처럼 스산했다. 어제 있었던 사망사건 때문에 선산 곳곳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으나 경찰은 저녁 즈음 조사를 마치고 철수한 뒤였다. 아버지는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넓은 선산을 어디부터 뒤져야 할지 막막했다.

 우선 제사용 농막으로 향했다. 그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러나 농기구 창고의 자물쇠가 열려 있었다. 훈화초 줄기를 자르기 위해 아버지가 낫을 챙겼을 것이다. 나는 낫과 플래시를 챙겨 창고에서 나와 선산 절벽 위로 향했다. 아버지도 플래시를 챙겼을 테니 높은 절벽에서 불빛이 보일 것이었다. 공기는 추울 정도로 습하고 차가웠고 벌레가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절벽에 올라가서 선산을 둘러보니 상수리나무 숲 한 가운데에서 불빛이 일정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불빛이 보인 곳으로 달렸다. 두 걸음 앞도 보기 어려웠다. 숲 속을 달리면서 팔과 몸통에 치이는 덩굴이 몸을 감으려 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계속 달렸다. 벌레도 없고 동물도 없다. 오직 코를 찌르는 풀 냄새만이 볼을 스친다. 나는 한참을 달리다가 땅 위로 드러난 나무뿌리와 떨어진 덩굴줄기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피가 나는 무릎을 땅에 대고 일어나기 위해 바닥에 손을 짚자 바닥까지 늘어진 덩굴이 내 손목을 휘감았다. 덩굴식물이 줄기를 움직여 나를 붙잡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 지금껏 이 망할 덩굴, 훈화초가 동물들과 사람을 잡아먹은 것이다. 훈화초가 자신을 먹은 동물과 인간의 분노를 완화하면서 마음 속에 덩굴을 감은 것은 동물과 인간을 덩굴 숲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을까? 더 이상은 생각할 시간이 없다. 이미 아래쪽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훈화초의 줄기가 내 몸통을 잡기 위해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나는 떨어뜨린 낫을 잡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그럴수록 훈화초의 줄기는 더욱 세게 내 팔과 다리를 조이고 잡아당겼다. 훈화초가 촉각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문득 훈화초가 미모사의 친척정도 되는 유전자 조성이라는 분석결과가 떠올랐다. 훈화초는 어느덧 내 몸 전체를 휘감고 어두운 나무 위로 끌고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줄기에 빽빽하게 난 넓은 잎들은 내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한 수액을 분비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식물이 나를 다 소화시키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나를 휘감은 줄기에 난 무수히 많은 잎들을 생각하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1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여전히 덩굴에 휘감겨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다리를 감은 줄기는 너무 강하게 조여와 이미 오른쪽 발에는 감각이 없었다. 훈화초가 촉각에 반응하는 것 같으므로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했다. 그래봤자 조금 늦게 죽는 것이 다일 것이다. 그때 멀리서 흰 불빛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불빛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시끄러운 모터소리를 내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양손으로 전기 톱과 플래시라이트를 동시에 들고 팔다리를 붙잡기 위해 기어오르는 덩굴줄기를 마구잡이로 잘라내며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떨어뜨린 플래시 불빛을 보고 찾아왔을 것이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산에 울리는 전기 톱 소리는 내게 환희의 송가처럼 들렸다.

 “아버지, 여기요! 여기예요!”

 “좀만 기다려, 이거 이상하게 점점 우거지는데” 아버지는 전기 톱으로 두꺼운 줄기더미를 내리쳐 잘라내며 말했다.

 덩굴은 잘려진 만큼 나무의 더 위쪽에 매달린 줄기들을 내려 숲의 출구를 막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거미가 거미줄로 지은 집처럼 돔 형태로 아버지와 내가 있는 나무 사이 공간을 뒤덮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감싸 통째로 소화시키려는 듯싶었다.

 “야 낫 들어라” 아버지는 내 몸을 묶고 있던 덩굴을 잘라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전에 이런 거 본 적 있어요?”

 “어렸을 때 선산에서 사람 하나 죽었을 때 마을사람 중에 풀이 움직이는 걸 봤다고 했던 사람이 있는데, 그때는 미친놈취급 받았지. 근데 정말이었어. 달이 안 뜨는 날마다 이랬던 거야. 동물이고 사람이고 이래서 죽은 거였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내가 톱으로 잘라서 입구를 벌릴 테니까, 그 사이로 너 일단 나가. 이 주변 줄기가 이쪽으로 많이 와있어서 여기만 나가면 빠져나갈 수 있을 거야. 난 그 다음에 자르고 나가마.” 아버지는 전기 톱의 꺼진 시동을 다시 걸며 말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한다. 아버지는 덩굴줄기가 거칠게 엉켜 만들어진 벽을 사각으로 썰었다. 돔형 공간에 그만큼의 출구가 생겼다가 곧 다시 엉켜 내려오는 덩굴줄기로 인해 막혔다. 나는 아버지가 다시 덩굴 벽을 잘랐을 때 내려오는 덩굴을 낫으로 베면서 나가는데 성공했다.

 “아버지, 내려오는 줄기 제가 벨 테니까 나오세요.”

 아버지는 전기 톱의 시동을 다시 걸고 덩굴 벽을 잘랐다. 그러나 짓이겨진 덩굴의 섬유질이 톱날과 모터 사이에 단단히 껴서 모터만 헛돌 뿐 톱날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낫으로 덩굴 벽을 잘라 작은 틈을 만들었고, 아버지가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을 때 아버지의 팔을 당겨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훈화초는 틈을 빠져나오려는 아버지의 몸통을 휘감고 아버지의 다리를 돔 내부의 줄기들을 통해 강하게 조였다. 나는 아버지를 휘감은 줄기를 낫으로 자르려 했지만 내 팔을 잡으려는 덩굴을 뿌리치면서 낫질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 너까지 잡힌다. 이제 어쩔 수 없어.” 아버지는 움직임을 최소화한 채로 허공에 매달려 말했다. 훈화초는 아버지를 조금씩 나무 위로 당기고 있었다.

 “아버지, 뭐라도 가져올게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계세요.”

 “아니, 이제 가져올 수 있는 게 없어. 전기 톱은 망가졌고 낫은 들지 않으니 이제 끝이다. 어쩔 수 없어. 이걸 없애 버려야 돼.”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버지. 그럼 이렇게 죽을 거예요?” 나는 낫으로 다시 덩굴을 잘라보려 했지만 이미 아버지 근처에 덩굴줄기가 무성하게 내려와 다가가기 어려웠다.

 “그만해라. 너라도 살아야 돼. 네 말 대로 불을 질렀어야 해. 농기계창고에 휘발유가 있으니 그걸 가져와라. 이 망할 풀을 다 불질러 없애 버려. 내가 이 덩굴에 잡아 먹히지 않게 해줘라. 그리고 우리 가족이 더 이상 분노에 잡아 먹히지 않게 해줘라. 네가 해야 해. 부탁이다.”

 “아버지…”

 나는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이 괴물을 내 손으로 불태워야 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겨우 발을 땅에서 떼고 농기계창고로 달렸다.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더 이상 저 괴물이 우리 가족을 조종하고 사람들을 잡아먹게 둘 수 없다. 아버지를 잃었으니 더더욱 그럴 수 없다.

 나는 농기계창고에서 휘발유통을 가져와 절벽 위까지 올라갔다. 거기에서부터 휘발유를 뿌리며 내려왔다. 선산 입구까지 오자 휘발유통이 비었다. 나는 제사용 농막에서 가져온 향을 꺼내 불을 붙였다. 향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차분하게 퍼져 나갔다. 선산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훈화초가 만든 이 불안한 고요를 깨뜨려야 했다. 거대한 화염으로 우리 가족을 뒤덮은 분노의 덩굴을 모두 불태우고 살아가야 했다. 나는 선산을 바라보며 두 번 절을 하고 불붙은 향을 미리 뿌려 뒀던 휘발유 위에 던졌다. 순식간에 선산 입구에서부터 절벽 위까지 불길이 번졌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선산이, 내 조상들의 묘가, 내 호두나무가, 그리고 아버지가 불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할아버지때처럼 불을 질렀어도 훈화초는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몇 번이고 불을 지를 것이다. 이제는 깨어진 컵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것이다.

감동란

ㅇㅇ

댓글 3
  • No Profile
    글쓴이 감동란 23.08.20 15:45 댓글

    안녕하세요. 재밌는 소설들 올려주시는것들 구경만 하다가 첫 소설 올려봅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평가 듣고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 hummchi 23.08.22 15:05 댓글

    무시무시 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hummchi님께
    No Profile
    글쓴이 감동란 23.08.22 19:45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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