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긴급 속보입니다.

세계적인 뇌과학자로 유명한 윤성국 박사가 실종되었습니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던 윤 박사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연구를 통해 기억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는 논문을 내놓았는데요, 아직 동물실험만 거친 단계라 사람에 대한 임상실험은 조심스럽다고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

 

“과거로 가더라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을 겁니다. 그래야 스릴을 더 만끽할 수 있죠.”

오 박사는 내 머리에 기계장치를 덮어 씌웠다. 마치 미용실에서 파마머리 할 때 쓰는 기계장치 같았다. 패치가 붙은 여러 선들을 내 머리 곳곳에 그리고 심장, 손가락에 붙였다.

“처음이라 중간중간에 저와 대화하며 시간 여행을 도울거니까 놀라거나 헷갈리지 마세요.”

난 조용히 눈을 감고 즐길 준비를 했다. 박사님과 대화를 하며 지시에 따라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

2040년!! 드디어 시간 여행 기술이 발명된다. 그동안 인간이 상상했던 것 중에 단연 최고다. 2040년이 되니 자율주행차가 곳곳에 다니고, 하늘을 나는 택시와 드론 택배가 일상화 되었다. 출산율이 낮은 우리 나라엔 AI 로봇이 수많은 일을 대신 했다.

무엇보다 내 손목엔 커다란 둥근 모양의 시계가 채워져 있었다. 연도와 시간 조절이 가능한 시계였다. 빨리 과거로 가고 싶었다.

“고객님 가고 싶은 시절로 시간 조절하고 리셋 누르세요.”

 

시간은 2010년 3월 2일 고3 시절 하교할 때였다.

나는 두 놈과 걸어가고 있었다.

“침착하시고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얘기하세요.”

박사의 말이 뇌를 통해 귓전에서 울렸다.

“네.”

앞에 가던 그놈들은 몸을 홱 돌렸다. 정목이가 나를 한 번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가 네야? 너 지금 누구랑 대화하니?”

“아, 아니야.” 난 어리둥절했다.

“야! 빵셔틀! 외계인 하고 대화하는 거야?”

계속 정목이가 비꼬듯 물었다. 정목이 이놈이 죽이고 싶은 놈이다. 놈은 외계인, 귀신, 초능력, 시간여행 등에 관심이 많았다. 괴짜였는데 일진이었다. 난 그놈의 빵셔틀 겸 샌드백이었다.

“정목이 니 말대로 진짜 외계인이 있나본데. 저놈인가 봐. 하하.” 똘마니 강수도 끼어들었다.

내 눈에는 얘들이 또래라기보다는 몇십 년 더 어려보였다.

“쟨 예전부터 혼잣말 전문이잖아. 그건 그렇고 수학 숙제 내꺼 해와라잉!” 정목이는 협박하듯 명령했다.

“어차피 내일 수학샘은 몸이 아플거니까 학교에 오질 않아.” 나는 저음의 목소리에 확신에 찬 말투였다.

“뭐? 또라이야 뭐야. 이제보니 외계인이 아니고 시간여행자 같은데? 넌 내가 찾던 고객이야.”

“집앞 도로에 빗물 고인 곳은 피해서 집에 들어가도록 해.” 나는 정목이를 보며 조언해주었다. 그리곤 다른 길로 가버렸다.

“뭐라는 거야? 거기 안 서!”

골목길로 들어와서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박사님께 급히 말했다.

“얼마전에 배운 무에타이로 쳐버리고 싶었어요. 근데 망설여버렸네요.”

“하고 싶은거 마음대로 하세요. 망설이면 오히려 당합니다. 잠시 쉼호흡을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세요.”

“그 다음날 점심시간 교실로 갈게요.”

난 손목 시계를 조절하고 리셋을 꾹 눌렀다.

 

점심 식사 후 시끌벅적한 교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정목이를 찾기도 전에 그놈이 먼저 내 멱살을 잡았다.

“너 뭐야? 진짜 시간여행자야?”

“글쎄, 흠.” 어제보단 평온해졌다.

“오늘 수학샘 안 온 걸 어떻게 알았지? 고인 물에 차가 지나가면서 내 옷이 흠뻑 젖어버렸어. 그건 또 뭐냐고?”

“다음날 니가 쌍욕하면서 다 말해줬잖아!”

정목이 뒤를 둘러보았다. 모든 아이들 두 눈은 우릴 향했다. 난 즐거웠다. 곧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할 테니까.

똘마니 강수가 다가왔다.

“정목아! 이놈 진짜 뭔가 있는가 본데! 그동안 니가 허무맹랑한 게 아니었어.”

“내말이 맞다니까! 유튜브만 검색해도 시간여행자 얘기가 나오잖아! 너 미래에서 왔지? 맞지?”

“맞춰 봐.” 난 용기가 용솟음쳤다.

아이들은 정목이보단 나한테 더 집중했다. 난 그놈 눈을 보며 쌓였던 말들을 내뱉었다.

“중학교때부터 넌 날 놀렸지. 그때마다 넌 우리 부모님까지 욕하면서 저주같은 말을 퍼부었어. 진짜 저주를 받아서 부모님이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그리고 나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외국에 살다 왔어. 야이 개자식아!!”

“외국? 뭔 소리야! 너희 부모님 지금 살아 있잖아!!”

정목이는 오른손으로 내 멱살을 더욱 움켜잡고는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옳거니! 난 오른손 팔꿈치를 가로가 아닌 세로로 세웠다. 아래에서 위로 재빠르게 쳐올렸다.

퍽! 그놈 턱에 명중. 이빨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멱살은 힘없이 풀렸다. 옆에 강수는 순간적인 나의 공격에 눈알 초점이 흔들렸다. 반 아이들 눈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거침없이 하이킥! 내가 숏다리라 목덜미에 닿았다. 퍽! 그래도 그놈은 쓰러졌다. 앞에 의자를 번쩍 집어들었다. 쓰러진 그놈 머리통 위로 가져갔다.

“어!! 어머!!”

여학생들의 기절할 듯한 표정. 난 힘을 빼고 그놈 옆으로 내동댕이 쳤다.

“덤비고 싶으면 다 나와 봐!!”

난 희열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그놈이 다시 일어나 “죽여버릴테다!” 하며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난 여유로웠다. 바로 뒤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소염기가 달렸다. 머리통 조준. 아니지, 내 고통의 시간만큼 저놈도 고통 속에서 살게 해야지. 그런데 다들 가만히 총만 보고 있었다. 지금쯤 소리를 질러야 할 타이밍인데 말이다. 다들 진짜 총인지 알지 못한 모양이다. 나만 뻘쭘했다.

픽! 그놈 허벅지를 맞췄다. 하지만 소리가 픽! 하니 다들 진짜 총인지 또 모르는 모양이다. 아까 팔꿈치 공격 ‘퍽!’과 점 하나 차인데 이렇게 다른 반응일까 싶었다.

“악!!” 또 옳거니! 그놈은 비명 소리와 함께 허벅지를 움켜잡았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렀다. 이젠 축구는 다했다.

“흑!, 어머!”

아이들 반응이 이리 느려서야. 소염기를 빼고 쏠 걸 그랬나. 괴성을 지르며 우르르 반을 나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가 좀 풀리나요?” 박사님이 끼어들었다.

“네. 완벽하진 않지만 현실감이 있어요.”

난 다시 시간을 2023년 2월 14일로 조절하고 리셋을 눌렀다. 발렌타이때 나를 찬 그년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이제 좀 더 익숙하다.

그년은 양다리를 넘어 오징어 다리였다. 빌려준 돈과 명품백이 아까웠다. 출입문에서 잠시 기다려 입주민이 나오자 바로 들어갔다. 정면엔 CCTV가 보였다.

‘보이든지 말든지.. ’

오징어 다리 집 비번이 그대로이길 바라면서 비번을 눌렀다.

띠 띠 띠 띠 띠. 띠리릭. 단순한 년. 문이 열렸다. 정면에서 놀란 눈으로 나와 마주쳤다.

“이 미친 놈!! 신고할 거야!! 돌아가!!”

난 이미 눈이 돌아갔다.

“이년 죽이고 싶어요!”

“또 혼잣말로 뭐라는 거야 이 찌질아!”

남자가 쩨쩨, 쫀쫀, 쪼잔, 찌질이... 난 이런 단어들이 정말 듣기 싫었다. 이젠 안 들리게 할 때다. 총을 꺼냈다.

“이거 제발! 진짜 총이다!”

역시 인지 못하는 표정. 총만 빤히 쳐다보았다. 바로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으나 그놈처럼 고통을 주고 싶었다. 총으로 오른쪽 광대뼈를 찍었다. 쩍! 광대뼈 내려 앉는 명쾌한 소리.

“윽!”

이젠 얼굴이 진짜 오징어다. 쓰러진 오징어를 보며 시계 조절을 했다.

 

2025년 6월 27일. 이 날은 내 새차가 급발진 사고가 일어난 날이다. 그날 긴박했던 상황을 잊을수가 없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난 가해자가 되어 처벌을 받았다. 엿같은 세상이다!

그래서 이번엔 다른 회사 차를 주문했다. 이 차 타고 드라이브 하면서 첫 시간 여행을 마무리 하려 한다. 일단 안전벨트는 꽉 메고 시동을 걸었다. 앞에 탁 트인 시골길이 내 앞날 같았다. 룸미러를 보니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오른손으로 룸미러를 다시 조절했다. 그런데 아니다. 내 얼굴이 아니다.

“아무리 안전벨트도 총으로부터 안전할 순 없지. 흐흐.”

익숙한 목소리. 룸미러로 눈이 마주치자 내 동공은 흔들렸다. 얼굴이 늙어 있었다. 정목이 그놈이다! 총구가 내 앞으로 쑥 나왔다. 오른쪽 관자놀이에 갖다 댔다.

“내 목소리도 기억 나지?”

이번엔 여자 목소리. 오징어 다리??

“너희 둘이 어떻게?”

내 심장이 뚫고 나오는 듯 싶었다. 박사님이 말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이건가 보다했다.

“이걸 어쩌나? 우리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이유도 모른체 죽게 생겼군.”

그놈은 총구를 관자놀이에 더욱 쑤셔대고는 “내 다리 이 지경으로 만들고 그냥 넘어갈 줄 알았어? 이 빵셔틀아!” 하며 총구가 내눈 옆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 이 찌질아!”

난 침을 꼴딱 삼키고 애써 침착했다.

“날 어쩔셈이야?”

난 침착하게 말한다면서도 심장박동은 어쩔수 없었다. 진하게 썬팅 된 창문 너머로 젊은 무리들이 지나갔다.

“조용한데 가서 마지막 드라이브나 해보자고. 출발해!”

그놈은 관자놀이에서 총구를 떼는가 싶더니 뒤통수에 갖다 댔다.

난 천천히 출발했다.

“앞에 길이 탁 트여서 보기 좋네.”

그놈이 얘기하니 죽음의 길 같았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차라리 급발진이 낫겠다고.

그래서 내가 급발진을 하기로 했다.

왼손은 핸들을 잡은채 오른손은 변속기에서 살짝 손을 뗐다. 오른발을 밟아 속도를 서서히 높였다. 앞만 쳐다보면서 잽싸게 오른발로 엑셀레이터를 꽉 밟았다.

위이잉! 부우웅! 동시에 난 고개를 숙이면서 오른손으로 뒤통수의 총을 움켜쥐었다. 이 모든 게 한순간에 이루어졌다.

탕! 총알이 내 정수리를 지나가는 느낌. 총알은 앞 유리 하단부를 뚫었다. 곧 정수리가 잠시 뜨거웠고, 오른손은 총을 더욱 움켜 잡았다.

“서! 이게 진짜 죽고 싶어?”

그놈은 두 손으로 총을 잡아당겼다. 오징어도 총을 잡았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앞을 보고 한 손으로 운전하랴, 총을 잡고 버티랴, 분명 내게 불리했다. 왼손으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어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난 안전벨트가 있어서 충격이 덜했지만 뒤에 두 년놈들은 중심이 흔들렸다. 총잡아 당기는 힘도 흔들렸다. 그 바람에 탕! 탕!. 그놈이 자신도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깨진 앞 유리창으로 바람과 유리 파편이 들어와 우리 모두를 때렸다. 오른쪽에 불꽃이 튀었다. 난 다시 세게 부딪혔다. 쿠쿵! 불꽃이 마치 총구에서 나오는 불꽃 같았다. 두 년놈들은 흔들리면서 절대 총은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세게 잡았다. 내 오른손은 점점 뒤로 빨려 들어갔다. 점점 총 몸통 쪽에서 총구쪽으로 미끌리는 느낌을 받았다. 저 앞에 좌회전 구간이다!

“차 세워! 뒈지기 전에!”

명령이지만 그놈도 떨림이 섞인 목소리였다.

명령대로 했다. 급브레이크. 끼이이익!!

오징어는 앞좌석에 부딪혀 총을 놓쳤다. 쩍! 또 오른쪽 광대뼈를 부딪히고 기절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놈의 몸뚱아리는 내 바로 옆으로 쑥 삐져 나왔다. 총을 꽉 잡고 있느라 중심도 완전히 잃었다. 그러면서 탕!. 얼떨결에 내 오른쪽 허벅지에 총알이 박혔다.

“악!!” 총소리만큼이나 비명은 컸다. 이젠 그놈과 같은 처지다. 다시 오른발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오른손 허벅지에 고통이 찾아왔다. 위이잉! 부우웅! 그놈 몸뚱아리가 다시 뒤로 밀리자 난 총구에서 총 몸통쪽으로 옮겨 잡고 버텼다. 죄회전 구간이 눈앞에 다가왔다. 재빨리 왼손으로 뒤쪽 창문을 내리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 이젠 온 사방에서 세찬 바람이 들어 왔다. 그놈이 두 손으로 총을 당기자 난 총구를 놓치기 직전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른손이 총구를 놓치는 동시에 왼손은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다.

탕! 다섯 번째 총알이 발사되고 차는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가드레일에 부딪쳐 공중 2회전. 불완전 착지다. 예전 급발진 사고가 머리를 스쳐갔다. 데자뷰가 보였다. 저번처럼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믿었다. 쿠쿵쿵! 심하게 부딪쳤다. 뒤에는 부딪히는 소리와 죽음의 비명이 멋진 화음을 이뤘다. 창문 밖으로 튀어나가는 맑은 소리와 함께!

에어백에 처박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안전벨트에 가슴이 심하게 짓눌렸지만 중요치 않았다. 얼른 내려 두 년놈을 찾았다.

악! 오른쪽 허벅지를 잠시 잊었다. 그년은 이미 저멀리 나뉭굴어 있었고, 그놈은 비탈길 돌무지 저편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래도 총구는 이쪽을 향해 꽉 쥐고는 마치 날 쏘려는듯 엎드려 있었다.

난 피나는 허벅지를 오른손으로 억누르며 그놈에게 다가갔다. 그놈 오른발 의족은 어디로 날아가고 없었다. 잘린 다리만 흉물스럽게 보였다. 돌무지에 큰돌을 집었다. 그놈 머리를 향했다. 돌 무게에 오른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찍는 게 총보다 잔인한 느낌이었다. 그래, 이번엔 오른손이다. 의수도 있어야 발란스가 맞지. 더 고통스럽게 살게 해줘야지. 돌을 들어 오른손을 향했다. 하지만 돌 무게에 오른 다리에 또 고통이 왔다. 잠시 움찔했다. 하체가 흔들리고 말았다. 또 망설이면 안되는데...

탕!

그놈이 오른손을 들어 나를 향해 마지막 남은 총알을 발사했다.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죽일 수 있었는데 내가 먼저 죽었다.

죽으면서 눈을 떴다.

 

*

“아, 박사님 왜 비극이죠?”

“마지막 변수는 고객님 의지에 맡긴 겁니다. 망설이는 바람에 의지에서 꺾인 겁니다. 대신 짜릿하지 않았나요?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는 느낌!”

“박사님도 참! 뭔 이런 시나리오를!”

박사는 내 머리의 기계장치를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정말로 2040년에는 타임머신 같은 기계가 발명될까요?”

“아니요. 절대!. 과학 이론상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이 2030년이니 그땐 이 ‘최면시간여행프로그램’이 더욱 발전할 겁니다. 최면에다 증강현실, 가상현실을 접목시키면 상상을 초월하죠. 이것만으로도 획기적인 발명이죠.”

“다음엔 제가 시나리오를 짜 볼게요. 제가 작가지망생이거든요.”

“제발 좀 짜주세요. 전 글솜씨가 없어서. 이번 시나리오가 약간 어설펐을겁니다. 허허.”

이후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난 진지 모드로 박사님께 질문했다.

“원래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군요.”

그럼 난 정신질환도 없었을 것이다.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은 아직 개발중입니다. 그래도 고객님은 다행입니다. 어떤 고객은 최면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치료가 잘 되지 않겠군요?”

“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죠. 다른 사람을 통해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가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대리 만족요?”

“네. 여기 한 개 더 있는 기계로 두 사람을 서로 뇌에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기억을 공유하며 대리 만족을 느끼게 하는 거죠.”

“진짜 노벨상감인데요. 미리 축하드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고객님,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다른 고객 대신 기억 속으로 들어가 주세요. 이때까지 임상실험 중 고객님이 제일 잘 됐습니다.”

박사님의 칭찬에 난 우쭐했다.

“사실, 사람이면 저처럼 때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잖아요. 여기서 발산하니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난 순간 조현병이 있다는 걸 잊었다.

“그럼 해주시겠어요?”

“까짓 것. 진짜도 아닌데 해보죠 뭐.”

 

며칠 뒤 의뢰인을 소개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자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과거에 한 맺힌 놈이 있어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드립니다.”

“개인 정보 보호상 두 분 소개는 따로 하지 않는 점 양해 바랍니다.”

박사는 나와 그 사람에게 주의사항 몇 가지를 일러주었다.

“그럼 이 분이 제 고용주고 저는 킬러가 되는 거네요?”

“킬러요? 아, 허허. 그런셈이죠.” 의뢰인은 킬러라는 말에 순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럼 제가 누굴 죽이.. 아니, 혼내 주면 되죠?”

“고객님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여당 대표 박정호.” 의뢰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박정호? 아, 티브이에서 몇 번 봤습니다. 외국에서 살다와서 얼굴이 바로 안 떠오르네요.”

“그러실겁니다. 몇 번이나 과거 기억 속으로 갔지만 중간에 깨는 바람에 실패만 했어요. 그것 때문에 더 스트레스가 쌓였습니다.”

“근데 왜 죽이고 싶은지...?”

“박정호는 대외적 이미지만 좋지요. 실상을 알면 그놈은 절대 정치를 해서는 안 되는 놈이예요. 나와 가족한테 저지른 온갖 악행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고객님처럼 학창 시절부터 절 괴롭혔죠.”

학창 시절 말에 난 바로 미간에 주름이 갔다.

“그런놈이 지금 여당 대표라니 어이가 없죠. 게다가 차기 대선주자 어쩌구 저쩌구... 정말 현실에서도 죽이고 싶습니다. 만약 대선 후보로 나오면 그놈의 만행을 다 폭로할 겁니다.”

“그럼 지금 제가 죽이고 나중에 의뢰인이 폭로하면 그 사람은 두 번 죽는 게 되네요.”

“그렇군요. 허허.”

“고객님께서 과거 기억에 복수한 걸 생각하시면 의뢰인 마음을 이해하실 겁니다. 규칙상 더 자세한 내용은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박사는 더 이상 질문은 곤란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렇게라도 저의 한을 풀고 싶습니다.” 의뢰인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있었다.

“아, 예. 잘 알겠습니다.”

박사님은 기계를 조작하며 “대신하는 거라서 한 번에 성공해야지 실패하면 다시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힘듭니다. 남의 기억을 대신하는 거라 느낌이 다를 수 있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고객님은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현실감이 더 높을 거예요.” 라고 했다.

“저야 좋죠. 허허.”

“의뢰인이 직접 시나리오를 짜 놓은대로 할 겁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의뢰인과의 대화가 있을 겁니다. 그래야 의뢰인이 대리 만족감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네.”

“그리고 두 분이 동시에 하기 때문에 과거 속으로 가는 게 빨리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허브차를 준비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고 잠자듯이 금방 의뢰인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겁니다.”

이미 내 앞에는 박사님이 따듯한 차를 끓이고 있었다. 흔한 허브향 차였다.

“고객님 부디 제 한을 풀어주세요. 홀짝홀짝 원샷!”

나도 홀짝홀짝 빨리 들이마셨다.

“이제 두 분다 편히 누우세요.”

박사는 기계를 우리 둘 머리에 씌우고 선으로 연결했다.

“곧 과거 속으로 빠져들겁니다. 의뢰인님, 구체적 장소와 시간을 한번 더 말씀해주세요.”

“10년전 7월 29일, 장소는 박정호 집 근처. 난 차에 타고 있어요.”

난 의뢰인의 말을 들으며 서서히 과거 속으로 빠져들었다.

 

“고객님! 이제 눈을 뜨셔야 됩니다.”

마치 몇 시간 잠을 잔 듯한 기분이었다. 기억을 공유하는 거라 진짜 느낌이 달랐다. 차안이었다. 고개를 들어 앞 창문을 통해 밖을 보았다.

“고객님, 이제 의뢰인이 지시를 할 겁니다.”

“보이는 저택이 박정호 집입니다. 오후 2시쯤에 경호원 두 명과 함께 나올 겁니다.” 의뢰인의 목소리는 아까 밝은 목소리와 달리 비장함이 담겨 있었다.

차안 시계를 보니 2시 20분 전이었다.

“10년 전에도 경호원을 두었나 보네요.”

“네. 워낙 귀하신 몸이라서.. 조수석을 보세요.”

권총이 있었다.

“네. 근데 전 오른손잡이라 왼쪽 운전석 창문을 열고 쏘기 힘든데요?”

“차옆을 지나가면 창문 열고 뒤에서 머리통 쏘면 됩니다. 경호원 때문에 정면에서 쏘기 힘들 거예요. 몸을 최대한 창문밖으로 내밀어 두 손 잡고 쏘세요. 주의할 건 옆으로 지나가자마자 창문 내리지 마세요.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완전히 지나간 다음 하세요.”

“걱정 마세요. 총은 제가 좀 쏴 봐서 잘 압니다.” 난 또 우쭐댔다.

“네. 지금 시뮬레이션 해보세요. 총은 그대로 두시고 몸을 빼내 두 손으로 그냥 해보세요.”

난 시키는대로 재빨리 창문을 열고 몇 번이나 해보았다. 맞은편 어르신들이 내 모습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보든지 말든지.’

남의 기억인데도 더 현실적이었다.

“고객님, 대신하는 거라 한 번에 성공하셔야 합니다.” 박사가 끼어들어 또 주의를 당부했다.

“도망은 정면 길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빠지세요. 산으로 가는 샛길이 보일 거예요. 계속 가다보면 산장이 있습니다. 샛길에는 CCTV가 없으니 안전해요.”

“있어도 상관없어요. 흐흐.”

“그렇죠. 제가 최대한 현장감을 느끼고 싶어서 도망가는 것까지 시나리오를 짜 봤어요. 샛길에 가면 흰색차 타고 산장으로 오면 됩니다. 거기서 박사님을 부르시면 현실로 돌아올 거예요. 권총 한 번 들어보고 무게감을 익히세요.”

난 살며서 권총을 집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침을 한 번 삼키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몇 분이 흘렀다.

철커덩!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호원 두 명이 먼저 나오고 박정호가 나왔다. 얼굴이 10년 전이나 티브이에서 얼핏 본거나 비슷했다.

‘그동안 관리를 잘 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노안이었군.’

“나왔습니다.”

곧바로 난 권총을 오른손에 집어들었다. 왼손으론 창문 버튼을 누를 준비를 했다.

“지나갈때까지 기다리세요.” 의뢰인의 목소리는 긴박함 그 자체였다.

경호원들은 앞뒤를 습관처럼 둘러보더니 양 옆에서 호위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5미터쯤 됐을 때 경호원 한 명이 내 차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난 눈을 피했지만 썬팅이 된 차라 안심했다. 바로 옆을 지나가면서 옆눈으로 또 내 차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도 경호원 눈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게 될 거야!’

완전히 옆을 지나가자 난 왼손으로 창문 버튼을 눌렀다. 쉬이잉, 문여는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경호원은 직감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썬팅한 창문이 밑으로 사라지자 사이드미러로 노려보는 내 얼굴을 들키고 말았다.

난 본능적으로 몸을 창문 밖으로 쭉 내밀어 왼쪽으로 돌렸다. 경호원도 본능적으로 뒤돌아서서 박정호를 가렸다. 두 손으로 총을 잡고 탕!. 경호원 뒤통수에 먼저 맞았다.

“이런!! 씨이!!”

놀란 박정호는 뒤로 돌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총맞은 경호원은 곧 왼쪽으로 고꾸라 졌다. 웅크린 박정호가 얼핏 보이자 난 다시 총을 발사했다. 탕! 하지만 나머지 경호원이 이미 박정호를 감싸 안고 있었다. 경호원은 등에 맞고 옆으로 쓰러졌다.

얼떨결에 방해물 둘을 제거하니 남은 건 박정호!

“계속 쏘세요!” 의뢰인이 재촉했다.

난 급하게 권총을 다시 꽉 잡았다. 박정호는 혼자남은 자신의 처지를 잘 아는지 벌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내가 일진들한테 당하던 모습이었다. 난 그 기억을 지우려 방아쇠에 집게 손가락을 더욱 세게 구부렸다.

탕! 탕!. 박정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하지만 총알을 이길 순 없었다. 곧바로 쓰러진 박정호의 머리와 두 손엔 피가 흥건히 흐르고 있었다.

“죽었어요?” 의뢰인의 다급한 질문이 들어왔다.

“최소한 머리에 한 발은 맞았어요!”

“그럼 나머지 두 발도 머리를 쏘고 도망치세요!!”

난 박정호를 그놈과 그년으로 치환시켜 발사했다. 탕! 탕!. 기관총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주변 주택에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총을 조수석에 던지고 창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알려준 길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사이드미러를 몇 번이나 쳐다보면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 사람이 미리 뒤쪽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다. 난 차에 내려 뒷좌석에 옮겨 탔다. 뒷좌석에 또 한 명이 있었다. 양쪽에 덩치 좋은 사람 사이에 끼여 뭐라 말할틈도 없었다. 차는 급출발해서 낮은 산을 넘어갔다. 가슴이 엄청 두근거렸다.

‘의뢰인은 스릴 만점이겠지.’

양옆에 덩치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덩치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산장까진 멀진 않겠죠?” 번갈아 양옆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대답없이 앞만 보고 있었다. 나만 또 뻘줌했다.

“다른 사람들은 시나리오상 대화가 없습니다. 5분 안에 도착합니다. 죽여줘서 고맙습니다. 이제 제가 스트레스가 좀 풀렸네요.”

“네. 근데 차안 분위기 험악한데요. 하하.”

차는 계속 달려 어느 산장에 이르렀다.

“박사님!”

급한 마음에 차가 멈추기도 전에 허공을 보며 외쳤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두근거렸다.

“그냥 산장안으로 들어가면 현실로 돌아옵니다.”

박사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안에는 어떤 사람이 의자에 묶인채 있었다. 그 옆에는 또다른 박사인듯한 사람과 덩치들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오싹함이 몰려왔다. 또다시 심장 박동 소리는 재방송이 시작되었다.

‘남의 기억이란 느낌이 이런 건가?’

“박사님!! 박사님!! 현실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그러자 뒤에 있던 덩치 두 명이 날 앞으로 넘어뜨렸다. 내 손을 뒤로하여 밧줄로 묶기 시작했다.

“앗! 이건 더 이상 내 기억이 아니에요. 그만 하세요!”

엎드린채 밧줄에 묶이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발버둥 쳐봤지만 움직이는 건 내 상체와 번쩍 치켜 든 얼굴, 그리고 산장안에 메아리 치는 내 목소리 뿐.

그때 벽에 걸린 달력을 보고 내 머리는 정지상태가 되었다.

2023년 8월 7일! 바로 오늘이었다!

“아직도 짐작이 안 가나? 고객님!!” 덩치 한 명의 조롱섞인 목소리였다.

“분명히 과거 기억속이었다구!! 박사님과 의뢰인 말이 내 귀에 들렸단 말이야!!”

“그 참 말 많은 고객님이네!”

덩치는 듣기 귀찮은 듯 한 손으로 내 머리채를 잡아 치켜들었다. 그리고 힘껏 바닥에 눌렀다. 난 재빨리 왼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왼쪽 귀와 뺨이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쿵! 아픈 것보다 내 왼쪽 귀에서 뭔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덩치가 내 궁금증을 풀어주듯 다시 내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들어올렸다.

“잘 봐. 이젠 정확히 이해가 가겠지?”

‘헉! 이건 소형 이어폰?’

난 상황을 되감기 했다. 완전히 속았다.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긴급 속보입니다.”

벽걸이 티브이에서 나오는 귀에 익은 아나운서 목소리. 난 다시 고개를 들었다. 보나마나 내 얘기일 것이다. 티브이를 째려보았다.

차기 대선 주자였던 시민단체의 김광호 대표가 조금전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김광호?’

경찰은 테러로 규정하고 주변 CCTV를 통해 신원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난 고개를 들어 묶여 있던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사람도 궁금한듯 먼저 질문을 했다.

“그럼 당신은 누굴 죽였지? 최성출? 박정호?”

내가 입을 떼려다가 아나운서가 막았다.

! 또 긴급 속보입니다. 역시 차기 대선 주자 박정호 여당 대표가 사망했다는 소식입니다. 차량에서 발견된 총의 지문과 길거리 CCTV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한편 나머지 차기 대선 주자들은 오늘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경호를 강화한다고 했습니다.”

난 힘이 빠져 고개를 바닥에 쿵! 처박고 말았다.

산장 출입문이 열렸다. 여러 사람 발자국 소리에 난 다시 고개를 들었다. 오 박사와 의뢰인, 나머지 한 명은 박창우! 내 담당 정신과 의사였다.

“박창우 원장! 멋진 고객님 섭외 아주 잘했어!” 맞은편 최 박사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최 박사님, 노벨상 타면 노벨의학상입니까? 아니면 노벨물리학상입니까? 헷갈리네요.” 박창우 원장이 웃으며 다가왔다.

“정신치료를 해주니까 노벨의학상인데..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갔으니 노벨물리학상도 되겠네요. 저도 헷갈리네요. 허허.”

“그럼 그냥 둘 다 받으면 되겠네요. 하하!”

“최 박사, 내기에서 내가 졌네. 나보다 먼저 성공했군.” 오 박사도 가볍게 박수를 쳤다.

“야이! 미치광이야! 당신들이 무슨 박사야!!” 의자에 묶인 사람은 몸부림을 치며 포효했다.

“에헤이! 또 중요한 임상실험이 있는데 이렇게 화내면 뇌에 좋지 않아. 우리 실험 망치고 싶어? 어!!” 최 박사는 묶인 사람 어깨를 짓눌렀다.

난 모가지를 쭈욱 내밀어 오 박사를 향해 고개를 더 치켜들었다.

“그냥 임상실험만 하면 되지 사람을 죽일 필요까진 없잖습니까?”

“나도 라이벌들이 있어서 말이야. 분노는 가라 앉혀. 다음 실험에 지장을 주니깐. 군대를 장교로 갔다와서 사격 솜씨가 좋더군. 역시 킬러 기질이 있어.”

“무슨 임상실험을 이따위로 합니까?” 난 고개에 핏대가 우뚝 솟아오른 걸 느꼈다.

“뉴스 봤겠지만 우리와 여기서 실험하는 게 훨씬 안전해. 흐흐.”

오 박사는 한발자국 걸어왔다. 내 앞에 쪼그리고 앉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고객님이 과거의 진짜 기억을 지우고 싶다 했잖아. 조만간 그거 실험할 거야. 나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진짜 미치광이가 맞군!’

“난 노벨상 타고, 환자들은 치료도 하고. 일석이조잖아.”

“당신은 노벨상에만 집착하는 미치광이 살인자일뿐이야!! 정신치료는 박사 당신이 해야 해!!”

“흥! 그래도 고객님은 최면으로 스트레스 풀었잖아. 나한테 고마워 하라니깐!” 오 박사는 실실 쪼개듯 웃고 있었다.

“그땐 기분 좋았지.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서 더 슬플 뿐이야. 결론은 당신 실험은 실패야. 허무함만 남았잖아. 노벨상? 어림없어!!”

“오! 좋은 지적이야. 그러니깐 아예 기억을 삭제하는 실험을 하는 거야. 윤성국 박사도 쥐새끼로만 실험하는 건 한계가 있어. 인간 자체가 최고지. 그것도 살아 있는 뇌를 실험해야 빨리 끝날 수 있어. 윤성국한테는 뇌연구라해서 나라에서 지원해주고 말이야, 나한테는 최면이라서 무슨 미신처럼 알고 있어. 최면도 얼마나 과학적인데 말이야. 두고 보라고! 이건 세기의 발명이라고!!”

“오 박사와 최 박사의 최면 기술은 정말 노벨상감이야.” 박창우 원장 말투엔 부러움이 가득했다.

“당연하지. 이걸로 많은 사람들이 정신 치료를 할 수 있어. 근데 정부에서는 부작용을 걱정해서 실험 지원을 하지 않으니 참 답답해. 어리석은 인간들!” 최 박사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아냥거렸다.

 

다음날 최성출 야당 대표는 일정을 비공개로 하고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 광장으로 갔다.

“부산 시민 여러분 또 왔습니다. 항간에는 다음 테러 대상은 저라고..”

“대표님 보호해!”

경호원들은 모두 대표에게로 달려들었고, 대표도 몸을 숙였다.

픽! 그러나 이미 총알은 날아들었다.

“윽!” 최성출은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11시 방향 5층 건물!”

하지만 최성출은 경호원들을 뿌리쳤다. 계속 가슴을 움켜쥐며 마이크를 잡았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가 테러 때문에 멈추면 되겠습니까?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곧 쓰러졌다.

긴급 속보입니다. 최성출 야당 대표도 조금전 테러를 당했다는 소식입니다. 다행히 경호원들이 저격수를 먼저 발견하자 총알이 빗겨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야아! 최성출이 연기는 깐느 영화제 수상감이야. 박창우 원장!, 최성출과는 확실히 얘기가 끝났겠지?”

“당연하지. 당선되면 비밀리에 이 프로젝트와 노벨상 후보로 지원해주는 거지.”

티브이에서는 총에 맞고도 자기 할말 다하는 최성출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대통령 선거 직후

 

우리 둘은 다시 억지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입을 테이프로 막았다.

“실험 승인이 떨어졌어. 마취하기 때문에 고통은 없을 거야. 여기 유명한 윤성국 뇌과학자도 왔지. 윤 박사가 당신들 뇌를 좀 건드릴 거야.”

난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 윤 박사를 보았다. 그동안의 연구때문인지 납치때문인지 얼굴엔 주름이 가득했다. 마치 쭈글쭈글해진 오이지 같았다. 윤성국은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박사들을 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진짜 다들 미쳤군. 꼭 이런식으로 당신들 업적을 남겨야 하겠어?”

옆에서는 오 박사와 최 박사, 박창우 원장이 뇌 수술 도구를 준비하고 있었다. 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보려 했지만 수술 도구 소리만 들렸다.

윙윙~! 드릴 소린지 작은 전기톱 소린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음.. 음....”

난 마음속으로 테이프를 찢을 듯 소리쳤다.

‘안돼에!! 더 이상 내 기억을 ㅈㅗㄱㅏㄱ 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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