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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정원, 수영, 시체

2023.07.25 17:4707.25

 

 

 

 

 

 

 

 

 

 

 

 

 

 

 

 

 

1.

 

짧은 머리칼에 듬성듬성 자란 수염. 샐룩거리는 입술과 졸음을 이겨내려 미약하게 힘을 주는 눈꺼풀. 입가에 하얀 각질이 일어난 버짐은 얼굴 전체를 타오를 것 같았고, 피부는 백지처럼 새하얬다. 갈비뼈가 훤히 드러난 등으로는 커튼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빛들이 굴곡을 타고 들어왔다. 정원은 수영의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마치 마르고 건조한 모래 같았다. 정원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새삼 수영의 나이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나이를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의뢰서를 발견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문틈 사이로 두 개의 봉투가 놓여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우편물이 배달되는데, 우리는 주로 일거리가 있는지 확인했다. 근래에는 우편물이 줄더니 이번 달은 2개뿐이었고, 그중 하나마저 고지서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고지서 봉투를 열었다. 종이에는 전기세와 수도세를 포함한 미납금과 마지막에는 771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고지서에서 볼 법한 숫자는 아니었다. 평범한 원룸에 전기와 수도 모두 거의 쓰지 않는데, 언젠가부터 고정비용이라는 명목하에 빠져나갔다. 돈을 반년 정도 내지 않은 것은 맞지만, 너무 많은 금액이었다. 언제 이렇게 밀렸을까. 속 안에서 깊은 한숨이 나왔다. 변하지도 않을 고지서를 붙잡고는 손톱을 뜯었다.

 

“하수영”

낮은 목소리로 수영을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한 번 더 불렀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을 돌려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옆에 다른 우편물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 그 안에 내용물을 읽는 중이었다. 어깨를 치자 그제야 ‘아’ 하며 목을 젖혀 나를 올려다봤다.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수영에게 얼른 고지서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어. 어떻게 할래. 뭐라도 계획은 있어? 속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수영은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지 해맑게 웃었다.

 

“10억 원이래.”

똘망똘망하게 눈을 뜨며 말했다. 자신이 읽던 편지를 내 눈앞에 펼쳤다. 수영은 종종 엉뚱한 소리를 했다. 일은 잘하고 나이도 있지만, 아직 어린애 같은 면이 있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야. 정원아. 일자리가 있어. 10억 원짜리 일자리.”

그는 편지를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마지못해 편지를 손에 집었다. 방이 어두워 글을 보기 위해 커튼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에 종이를 갖다 댔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우리의 경력을 익히 잘 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수영이 말한 대로 분명 의뢰서다. 밑에는 날짜와 시간이 적혀 있었고, 그리고 정말 10억 원이 적혀 있었다. 나는 0을 하나하나 다시 셌다. 일십백천만……. 분명 10억 원이다. 조건엔 ‘시체 한 구 해부, 자세한 것은 만나서 얘기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겨우 시체 하나만 해부하면 10억을 준다고?

 

피식 웃었다. 수상쩍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다시 편지를 수영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런 일은 할 수 없어. 시체 한 구에 10억 원이라니.”

수영은 내 말에 고개를 여러 번 휘저었다.

“무조건 해야 해. 지금 우리 돈 없어.”

“너무 수상한 일이야.”

그는 끙하며 머리를 싸맸다.

“우리 일이 또 들어오지 않을 거야. 일이 들어온다고 해도, 이만한 돈을 벌 기회는 없어. 이상하더라도….”

“이상하더라도…?”

“하자. 괜찮을 거야. 위험하면 내가 지켜줄게.”

“안돼. 이 일은 위험해. 새로운 일을 찾을 거야. 이번 건 더 이상 말하지 마.”

단호하게 끝을 냈다. 수영은 잔뜩 실망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일은 할 수 없다. 함정이 분명하다. 사람이 곤궁하면 반드시 실수가 나오고, 미끼를 던져주면 물게 돼 있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나와 수영이다. 지금과 달리 장기밀매가 유행하던 때에는 인간을 많이 유인하기도 했다. 작고 가난한 마을에 수도를 끊어놓고, 그곳을 고치며 신뢰를 쌓고 다가간 기억도, 마을을 불태운 후 도와주겠다며 다가간 적도 있다. 이 편지 쪼가리도 분명 미끼일 것이다. 예전에 쉬면서 일하자는 수영의 의견을 들어준 것이 잘못이었다. 한창 수요가 있을 때 돈을 벌어뒀어야 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니, 약해빠진 생각이었다. 지금 상황을 타개해야 했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수영의 말대로 일을 구한다 해도, 받은 돈은 얼마 안 가 다 써버릴 것이다.

 

‘쾅쾅쾅쾅’

 

누군가 부서질 정도로 현관문을 두들겼다. 우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재빠르게 몸을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문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갔다. 수영과 나는 문을 앞에 두고, 다리를 구부렸다. 현관문에 달린 안을 볼 수 있는 구멍으로부터 몸을 숨겼다. 가까이 붙을수록 쿵쿵대는 진동이 느껴졌다. 곧 소리가 멈추더니 문 위쪽에 구멍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더욱 몸을 낮추었고, 그럴수록 바닥에 쌓인 쓰레기들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밖에 그는 눈을 떼고 문을 걷어찼다.

“또 숨었군. 거지 같은 놈들.”

목소리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있었다. 집주인이었다. 우리는 세 들어 살며 반년째 돈을 못 냈다. 그는 몇 마디 욕을 퍼붓고, 문을 세게 걷어차더니 씩씩 화를 내며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지자 우리는 숨을 내쉬었다. 수영은 내 얼굴을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잘도 웃음이 나왔다.

“저 아저씨 처음 볼 때는 상냥했는데 말이야.”

“돈 앞에선 그런 거 없지.”

 

나는 일어나 거실로 갔다. 선반을 열어보니 약통과 캔이 있었다. 캔은 네 개 약은 반 통 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알약 몇 개를 입에 머금고 드링크와 함께 한 번에 삼켰다.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자극적이다. 목을 반쯤 뒤로 꺾고 숨을 몇 번 쉬었다. 금세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손에 든 캔을 보니 체리 맛이라는 단어와 함께 색스럽게 빛나는 빨간 체리 열매가 그려져 있다. 빠져들 것 같은 색이다. 체리는 나무에서 자라 열매가 된다고 들었지만, 지금 같이 사막으로 뒤덮인 세상에선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다 먹은 빈 캔을 대충 구석에 던지고 멍하니 서서 집을 둘러봤다. 4평 남짓한 방에 갖가지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플라스틱과 비닐, 일회용 용기들은 이사 오기 전부터 바닥에 깔려있었고, 그 안으로 모래와 먼지가 스며들어 단단한 층을 이루었다. 그 위로는 음식물이 든 통조림과 빈 약통, 캔이 흩뿌려져 있다. 구석에는 작업에 쓰인 천들과 큰 가방, 작은 메스와 집게, 전기톱이 있다. 창문은 50도가 넘는 햇빛을 막기 위해 여러 겹의 커튼을 쳤다. 이미 꽉 차버린 방 안에 우리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조신이 몸을 가눠야 했다. 좁은 것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냄새였는데. 바닥에서 올라온 냄새들은 이루 섞여 정신을 갉아먹었다. 일거리가 없어 집에만 있는 날이 계속되자 쓰레기들은 누워 있는 나의 감각을 옭아매 바닥으로 끌어당겼다. 어둠과 빈 약통, 플라스틱, 모래와 먼지, 칼과 옷들. 우리 둘을 제외하면 이 방의 모든 것은 조화롭게 이루어졌다. 나와 수영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존재들이지만, 점점 방 안의 것들처럼 죽어가고 있었다.

 

수영은 앉아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얼굴과 머리를 쓸어 넘겼다. 수영은 나를 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바닥에 깔린 의뢰서와 고지서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리고 의뢰서를 쥐며 말했다.

“그래 하자. 우리라면 분명 괜찮을 거야.”

 

 

 

 

 

 

 

 

 

 

 

 

 

 

2.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는 고물이나 다를 바 없는 차를 타고 달렸다. 의뢰 장소에 가는 중이다. 창문 너머는 모래뿐인 사막이었지만, 우리는 신기루를 좇는 사람처럼 기대감에 차있었다. 아마 남은 약과 드링크를 모조리 먹어서 일지도 모른다. 기분이 날아갈 정도로 좋았다. 오래간만에 샤워도 했다. 털을 깎고 비누칠하며 서로의 몸을 어루만졌다. 수도에서는 더러운 물이 나오고, 배수구는 막혀 물을 뿜어냈지만, 그런 건 이제 상관없다. 운전하는 수영을 본다. 바래진 흰 와이셔츠에 늘어진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땀이 줄줄 날 정도로 더웠지만, 수영은 신나있었다. 우리는 심하게 덜컹거리는 차에 몸을 맡겨 흔들었다. 수영은 춤을 추듯 더 흔들었다. 분명 잘 풀릴 거야. 이번 일만 끝나면 잘 살 수 있을 거야.

 

수영을 만난 곳은 보육원이었다. 그때 나이가 25살이었고, 수영의 나이는 10살이었다. 그때 나는 이전 파트너와의 이익 분배 문제로 갈라서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있었다. 여러 사람과 일을 하며, 일 잘하는 사람보다 말 잘 듣는 사람을 원했다. 그러면서 적당히 손재주가 있고, 눈치 빠르게 나를 따르는 정도면 좋았다. 그래서 보육원으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일은 내가 가르치면 되고, 생활비 정도만 책임지고 나머지 돈을 가질 심산이었다.

보육원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은 나를 신기하게 봤지만, 금세 관심이 떨어져 헌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10살짜리 수영은 그곳에 있었다. 유독 나이가 많은 수영은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책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얌전한 아이처럼 보였지만, 어색한 동작과 나를 흘겨보는 시선을 어른인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를 의식하고 있구나. 수영은 내가 묻는 말에 모두 공손하게 대답했다. 수영이 마음에 들었다. 눈치가 빠르고, 누가 위고, 아래인지를 알고 있었다. 나는 수영의 손을 잡고 보육원을 나왔다. 사람이 귀한 시대라 가격은 비쌌지만, 초기비용쯤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수영이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옳았다. 일은 금방 배웠고, 몇 년이 더 지나자 나보다 더 잘했다. 그럼에도 돈 욕심은 없어서 내가 다 관리했다. 다만 하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우리가 연인이 된 것이다.

 

 

 

 

 

 

 

 

 

 

 

 

 

 

 

 

 

 

 

3.

 

몇 시간을 지나 도착한 곳엔 사막 한가운데 회색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2층 높이의 창문이 없고, 문 하나만 있는 건물이었다. 앞에는 키가 크고 마른 남자가 정장 차림으로 서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뒤에 다른 차들이 없는지 살피고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내부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가 옷 속을 스몄다. 꽤 넓은 공간이었다. 2층까지 천장을 헐어서 탁 트였다. 바깥과 차단되어 있지만, 형광등과 흰 벽으로 밝았다. 넓은 공간에는 수술대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트레이에 놓인 수술 도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로 가운을 입은 네 명이 서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와서인진 몰라도 경직돼 보였다. 작은 발소리가 넓은 공간에 퍼질 정도로 고요했다.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알코올 냄새나, 시체 썩은 냄새. 두 가지 중 하는 날 줄 알았다. 오히려 짙은 흙냄새가 미약하게 코를 자극했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냄새의 근원은 보이지 않았다.

 

수술대에는 천을 여러 겹 덮은 무언가가 있었다. 가까이 가자 명확하게 보였다. 그 길이와 굴곡은 분명히 사람이다. 천으로 덮여 있지만, 사람의 실루엣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며칠 동안 시체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이라기보다 상상에 가까웠다. 이렇게 거금을 들일 만한 시체가 무엇일까. 나는 아주 큰 생물의 사체를 상상했다. 아니면 부패하거나, 잘게 조각난 시체를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놓인 것은 분명하게 사람의 형상이었다.

 

“이게 물건인가요?”

침묵을 깨고 마른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나를 쓱 보더니, 별 대꾸 없이 뒷주머니에 걸린 무전기를 들었다. 무전기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다시 나를 보고 말했다.

“준비되면 열어보세요.”

나는 제일 위에 있는 천 하나를 집었다. 심장이 떨렸다. 아직 아까 먹은 약의 기운이 남아있는 걸까.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머뭇거렸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하나씩 천을 들어 올렸다. 한 겹씩 걷어낼 때마다 초록색과 갈색으로 물든 천이 드러났다. 심하게 부패한 시체인가. 그러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묘한 흙냄새만이 점점 코를 간지럽혔다.

 

마지막 천을 들자,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침을 꼴깍 삼켰다. 얼굴과 눈, 코, 입, 가슴, 팔, 다리, 생식기 모두 사람의 것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인간이 아니었다.

나무였다. 사람처럼 자란 나무.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다. 사람주위를 나무가 둘러싼 것이 아니다. 몸의 피부 전체가 나무로 이루어진 시체였다. 키가 180 정도로 생식기는 남자의 것이었지만, 곧게 뻗은 갈색 나무들이 몸을 이루었다. 길고 가느다란 녹색 줄기가 정맥처럼 몸을 휘감았고, 식물의 잔털과 잎사귀들이 곳곳에 자라있었고, 몸 군데군데에 불규칙적으로 피어난 꽃들은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여태껏 본 적 없는 기이한 형태였다. 시체는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감긴 눈을 뜰 것 같았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영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마른 남자는 우리를 살피더니 정적을 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게 무엇인지 저희에게 묻고 싶겠지만 안타깝게 저희도 정체를 모릅니다. 다만 내부적으로 나무 시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나무 시체.

“나무 시체는 본부에 있는 시체 처리실에서 발견됐습니다. 그곳엔 원래 달에 몇십구의 시신이 쌓이는데, 적당한 수량이 되면 태워서 처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고약하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오죠. 어느 날 관리인이 주위를 둘러보던 중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수상쩍게 여긴 관리인은 이를 보고 했고, 저희는 곧장 시체처리실에 문을 열었죠. 놀라웠습니다. 그 안에는 원래 있어야 할 시체 더미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대신 나무와 꽃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이 있었습니다.”

“숲이요?”

“네, 생생한 초록색 나무들과 식물들이 그곳에 있었으니 숲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겠죠. 꿈을 꾸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누군가의 소행이라 생각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출입구 CCTV를 확인해도 아무도 들어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시체 처리실 내부에는 CCTV가 없으니 그곳에서 벌어진 일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누가 이런 장난을 쳤을까. 애당초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나무와 풀들 사이를 뒤지다 발견했습니다. 이 인간의 형태를 한 나무 시체를요.”

그는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나무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희는 여러 가능성을 재고하던 중에 이 나무 시체가 시체들을 나무와 풀들로 변화시켰다는 가설을 떠올렸습니다. 죽은 사람을 식물로 바꾼다니 연금술 같은 이야기지만, 분명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그것 외엔 별다른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 후 저희는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실험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윗선 분들의 상의 끝에 나무 시체를 해부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저희에겐 마땅한 기술자가 없고, 조금의 손상도 용납할 수 없어 전문가가 필요했죠. 그것이 수영 님과 정원 님을 부른 이유입니다. 이제 아시겠나요? 저희 쪽에서 큰 금액을 두 분에게 제시한 이유를요.

“놀랍게도 말이죠. 그 숲은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생생한 초록빛과 숨이 멎을 듯한 산소로 가득한 곳은 살아생전 처음 봤습니다. 저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매료되었죠. 저희 쪽에서는 많은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이 나무 시체가 정말 시체들을 나무와 풀들로 만들었다면, 황폐해진 세상에 인류를 구할 수 있습니다. 비밀이 풀리고 우리가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지금 세상의 걱정거리들은 우스운 일이 되겠죠. 마침내 신의 축복이 온 겁니다.”

그는 잔뜩 상기된 얼굴이었다. 자신도 눈치챘는지 잠시 헛기침을 하더니 목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다시 말했다.

“말씀은 다 드렸습니다. 그러니 이 나무 시체의 비밀을 밝혀주세요. 그게 일의 성공 조건입니다. 준비되면 시작해주세요.”

 

마른 남자가 말을 끝내자 다시 고요해졌다. 나무 시체를 응시하자 선뜩한 기운이 감돌았다. 네가 정말 힘을 가지고 있어? 그는 속으로 인간들의 속셈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일어나 이곳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나무 시체에 물었다. 네가 힘을 갖고 있다 한들, 인간들을 위해서 사용할 거야? 나무 시체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수영이 어깨를 톡 치자, 정신이 들었다. 그래, 괜한 잡념이다. 세상을 바꾸든 말든 중요하지 않다. 나는 그저 내 일을 처리하고 돈만 받으면 된다.

 

우리는 가운을 입은 남자들에게서 수술복을 건네받았다. 얇은 장갑을 끼고 마스크와 모자를 썼다. 나무 시체를 만지자 사람의 촉감이 느껴졌다. 분명 오래됐을 텐데 딱딱하지 않고 물컹했다. 나는 메스를 집었다. 수영과 눈빛을 교환하고 바로 해부에 돌입했다. 메스로 목의 아래쪽부터 몸통의 중간선까지 세심하게 피부를 잘라냈다. 그 안에는 사람처럼 뼈와 근육, 지방처럼 보이는 것들이 붙어있었다. 모두 나무껍질이나 줄기였다. 지방과 조직을 가르고, 단단한 녹색 근육들을 잘라내자 중앙에 단단한 가슴뼈가 드러났다. 수영은 톱을 쥐어 조심스레 가슴뼈를 잘라냈다. 그리고 갈비뼈와 연골을 절단했다. 단단하고 큰 갈색 나뭇가지였다. 뼈를 없애자, 장기들이 명확하게 보였다. 색깔은 달랐어도 완전히 똑같은 모양새였다. 우리는 물컹한 장기들을 계속해서 자르고 꺼냈다. 폐와 심장, 기관 모든 것을. 그 과정은 3시간을 넘었다. 원래 속도보다 느렸지만, 그만큼 집중을 기하고 있었다.

 

해부 중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린 점점 능숙하게 나무 시체에 적응해갔다. 해부 과정은 여전히 조용했지만, 다들 긴장감은 누그러져 있었다. 이제 상체를 마무리하고 머리로 넘어갈 예정이다. 특별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특별한 것이 있다면 머리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간단한 마무리만 하고 넘어가려 했다.

 

“저게 뭐지.”

수영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식도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잘린 식도 윗부분이 조금 부풀어 있었다. 내가 놓쳤었나. 언제 이렇게 부풀어 올랐었지. 수영을 한차례 쳐다본 후 내가 자른다고 했다. 나는 메스와 집게를 들고 조심스레 접근했다. 식도를 살짝 집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안을 갈랐다. 그러자 안에 부풀어 있던 것이 툭 하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빨갛게 빛나는 작은 돌이었다. 녹색 혈관들 사이에 혼자 빨갛게 있었다, 이게 뭐지. 돌은 형광등에 빛을 받아 점점 영롱한 붉은빛을 발산했다. 나는 그 색깔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예쁜 색깔이다. 그리고 아까 전에 먹은 드링크에 그려진 체리가 떠올랐다. 생의 기운을 내뿜는 탐스러운 체리. 그 색깔과 비슷했다. 나는 왠지 모를 갈증을 느꼈다.

 

돌을 꺼내려 집게를 잡으려 했다. 내 왼손에 있는 작은 스테인리스 집게로 말이다. 그러나 잡히지 않았다. 손끝에는 이상한 감촉이 느껴졌다. 왼손을 보니 딱딱한 집게의 끝부분이 흐물흐물해지고 있었다. 집게는 어느새 액체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동그란 모양으로 뭉쳐지며 색깔이 빨갛게 변했다. 모두가 넋을 놓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일렁임이 멈추고 모양이 완전히 굳어지자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게 무엇인지 단박에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알아챘다.

 

그것은 체리였다. 빨갛고 탐스러운 체리. 방금 머릿속에서 떠올렸던 이미지다. 집게의 끝이 체리로 변한 것이다. 왜 체리로 변한 거지? 빨간 돌을 보자 내가 상상한 이미지로 변했다. 이 돌이 우리가 찾던 물건인가. 마른 남자는 잠자코 지켜보더니 무전기를 눌러 연락을 취했다. 찾았다고 말했다. 모두 빨간 돌과 체리로 변한 집게를 봤다. 정말로 변해버렸다.

 

그때 나는 다시 돌을 잡을 틈도 없이 수영이 손으로 돌을 집었다. 수영은 잠시 바라보더니 돌을 잡고 두 손을 살포시 모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무언가를 비는 모습이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 누구도 저지할 수 없었다. 수영은 눈을 떠 나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원아. 성공했어. 이게 찾던 거 맞지?”

마른 남자는 잽싸게 다가와 수영의 손에서 빨간 돌을 빼앗았다. 그에게 눈총을 주더니 수술대 옆에 깨끗한 비닐 팩에 돌을 넣었다. 그리곤 다시 무전기에 대고 보고했다.

 

“잘될 줄 알았어.”

수영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렸다. 적어도 몇 년간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장시간의 작업 탓인지 긴장이 풀어지고 몸에 힘이 풀렸다. 수영은 수술복을 벗고 나를 부둥켜안았다.

“이제는 잘될 거야.”

 

‘탁’

 

그때 무언가 땅에 떨어졌다. 마른 남자의 무전기였다. 다들 시끄럽게 얘기 중이라 듣진 못했지만, 앞에 가운을 입은 남자가 무전기를 들어 마른 남자에게 전해 주려 했다.

 

‘아아아악’

귀를 찢는 비명이 넓은 공간에 울렸다. 모두 비명을 지른 쪽을 쳐다봤다. 마른 남자는 우두커니 서 있었고, 가운을 입은 한 남자는 바닥에 넘어져 벌벌 떨고 있었다. 마른 남자는 전신의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눈에 초점도 없었다. 수영은 반사적으로 내 팔을 당겨 그에게서 떨어뜨렸다. 마른 남자에 경련이 심해지고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벌벌 떨던 몸은 휘어지기 시작했다. 육체가 가동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휘었다. 얼굴은 눈과 코와 입이 진흙처럼 뭉개지고 뒤섞였다. 모두 그에게서 떨어졌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그의 전신은 아까 봤던 체리처럼 일렁였다. 그리고 ‘파바바박’ 하는 소리와 함께 온몸이 굳었다. 경련과 일렁임은 멈췄다. 그의 육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초록빛 줄기와 갈색 나무로 변했다. 수술대에 있는 나무 시체처럼 변해버렸다.

 

연달아 비명이 들렸다. 마른 남자가 변하자, 나와 수영을 제외한 남자들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렁이고, 구겨지고, 휘어졌다. 곧이어 기괴한 파열음을 내며 온몸이 굳어갔다. 전부 나무 시체처럼 변하고 있었다. 수영은 내 손을 잡고 입구로 도망쳤다. 수영의 손에 이끌려 빠르게 달아났다. 달리며 뒤를 보자 이미 모든 사람이 나무 시체로 변해있었다. 그곳엔 더 이상 비명을 지를 사람도 없이 고요했다. 수술대 옆에는 빨갛게 빛나고 있는 돌이 보였다.

 

간신히 건물을 빠져나왔다. 앞에는 우리가 타고 온 차가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곧장 우리는 차에 타고 수영은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오래된 차라 그랬다. 수영은 계속해서 시동을 돌렸다. 제발. 조바심이 나면서도 우리가 나온 문 쪽을 확인했다. 문은 반쯤 살짝 열려있었다.

 

‘또르르르르’

바닥에 무언가 굴러 나왔다. 말도 안 돼. 그것은 빨간 돌이었다. 어떻게 굴러 나왔지. 분명 비닐 안에 담겨 있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봤다. 돌은 구르던 방향을 바꾸더니 우리 쪽으로 굴러왔다.

‘또르르르르’

 

“빨리 시동 걸어!”

수영에게 소리를 쳤다. 그러면서도 빨간 돌을 눈에서 떼지 않았다. 차는 계속해서 쉰 소리를 냈다. 돌은 계속 우릴 향해 굴렀다. 악의를 가진 듯. 명확하게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조금만 기다려.”

수영은 다급히 말했다. 돌은 코앞까지 다가왔다. 빨간 돌은 저물어가는 태양 빛을 받아 여러 광택을 뿜어냈다.

 

‘칙칙 드르릉’

차에 시동이 걸렸다.

“됐어.”

수영은 최대한 힘을 주어 악셀을 밟았다. 차는 덜컹거리며, 굉음과 함께 나아갔다. 건물에서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쳐야 했다. 모래가 거칠게 흩날렸다. 굴러오던 돌은 그 자리에 멈춰 서있었다. 마치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점점 건물과 멀어졌다. 구슬은 어느덧 건물과 함께 사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머리가 아팠다.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전부 빨간 돌 때문이다. 차는 계속해서 달려갔다. 하늘에 해는 저물고 있었다. 힘이 전부 빠졌다. 몸을 숙이자 구토가 나올 뻔했다. 방금 일어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꿈처럼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빨간 돌과 나무 시체. 체리가 달린 집게를 떠올렸다.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리 왜.”

수영은 한탄했다.

다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내가 돌을 보며 체리를 상상하자, 집게가 체리가 되었다. 빨간 돌은 내가 생각한 이미지를 구현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나무 시체로 변한 거지. 도대체 왜. 그때 수영이 돌을 집어 기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수영이 이상한 생각을 했더라면.

“너 돌을 잡고 무슨 생각 했어?”

내 목소리는 떨고 있었다. 사람들이 변한 것은 수영이 원석을 집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무슨 말이야. 그 돌을 잡았을 때?”

“잘 생각해봐. 내가 돌을 보고 체리를 생각하니, 집게가 체리로 변했어. 그러니까 네가 돌을 잡고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그게 지금 벌어진 일과 관련 있을 거야.”

나는 수영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수영은 불현듯 무언가 떠오른 얼굴이었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아까 그 남자가 돌로 세상을 바꾼다고 얘기했잖아. 그건 분명 멋진 일이니까, 그래서 돌을 잡고, 책에서 봤던 나무들과 꽃들을 떠올렸어. 세상이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렇다면 말이 됐다. 믿을 순 없지만 정말 빨간 돌이 바꾼 것이다. 사람들을 나무로 만들어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엔 풀리지 않은 하나의 의문이 있었다. 만약 수영의 생각으로 변했다면, 왜 우리는 멀쩡할까. 수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나에겐 영향이 갔어야 했다. 나도 몸이 꺾이고 변해 나무로 변했어야 했다.

“사실 하나 더 있어.”

“이제 돈을 벌었으니, 우리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영원히 너랑 같이 살게 해달라고 빌었어.”

그는 떨면서 얘기했다.

“이런 건 괜찮지? 특별히 이미지를 떠올리진 않았으니까. 응 정원아?”

수영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내가 멀쩡했을까. 젠장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게다가 아무 돈도 가져오지 못했다. 젠장. 젠장. 앞이 막막했다. 나는 발로 조수석 앞을 걷어찼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더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하늘을 바라봤다. 해는 이미 떨어져 사막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잔열만이 모래사장에 흔적처럼 남아있었다. 뒤늦게 수영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영원히 나랑 같이 산다는 말.

“다시 얘기해봐. 영원히. 뭐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거야?”

분명 이미지는 아니었다. 모호했지만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수영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왠지 모를 차가운 불안이 스쳤다. 그는 아주 조용히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악’

나는 비명을 질렀다. 수영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아까 봤던 사람들처럼. 얼굴과 몸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흐느적거리며 일렁였다. 그는 벌벌 떨고 있었다.

“하수영!”

팔꿈치를 들어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그는 옆으로 휘청였다. 팔꿈치를 맞은 자국은 진흙처럼 깊숙하게 파였다. 이미 내가 아는 수영이 아니었다. 벗어나야 했다. 나는 다리를 뻗어 악셀에서 그의 발을 쳐냈다. 그리고 기어를 돌린 채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는 급하게 서버렸다. 수영은 운전석 앞으로 고꾸라졌다. 자세히 보니 팔꿈치를 맞은 부분은 다시 메워지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나는 조수석에서 뛰쳐나왔다.

 

앞을 향해 달렸다. 해가 진 사막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최대한 차와 멀어질 수 있는 곳으로 달렸다. 어딘가로 가는지 몰랐지만 멀리 가야 했다. 나 역시 나무 시체로 변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때 뒤에서 ‘탁’하는 소리와 함께 뒤가 환하게 밝아졌다. 자동차 등이 켜졌다. 그리고 웅웅대는 기계음이 들렸다.

‘칙칙 드르릉’

뒤를 돌아보자, 빛과 진동은 점점 가까워졌다. 차는 어느새 눈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피하려고 몸을 던지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몸은 이미 공중에 떠 있었다.

 

붕 뜬 몸은 바닥 정면으로 떨어져 몇 번을 구른 후에 멈췄다. 정통으로 부딪혔다. 숨이 쉬어지질 않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시야에는 우리가 탔던 낡은 차가 보였다.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수영이었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2인용 시체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 내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발목이 눈앞에 보였다. 나는 바닥에 피를 잔뜩 토했다. 시야는 흐릿해졌다. 수영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몸도 얼굴도 일렁이고 뭉개졌다.

수영은 시체 가방을 내 옆에 두더니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부서진 내 몸을 양팔로 천천히 들었다. 나는 외마디 작은 신음을 냈다. 저항할 수 없었다. 수영은 가방 안에 나를 집어넣었다. 뭐 하는 거야. 그는 주변에 있는 모래들을 가방 안에 넣었다. 내 피가 묻은 모래들이었다. 가방이 반쯤 차도록 넣었다. 모래는 코와 입속으로 들어왔다. 눈 안까지 모래가 파고들었다. 수영은 계속 모래를 넣었다.

 

수영은 가만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무슨 말을 계속 중얼거렸다. 그는 자기 몸을 꾸겨가며 내가 있는 가방 안으로 들어왔다. 뼈가 으스러지고 몸이 짓눌렸다. 내가 아래에 눕고 그 위에 모래, 그 위에 수영이 누웠다. 이제 고통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가깝게 수영의 얼굴만이 보였다.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이제야 그 말이 귀에 들렸다.

“영원히…. 같이…. 살자….”

“영원히…. 같이…. 살자….”

 

수영의 몸은 물컹하고 초록빛과 갈색으로 변했다.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 그 의미를 가늠할 수 있었다. 빨간 돌은 축복이 아닌 신의 장난이었다. 그걸 다루려 했다니.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실패해버린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도 교훈을 얻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살았을까. 의식은 점점 멀어져 갔다.

 

 

 

 

 

 

 

 

 

 

 

 

 

 

 

 

 

 

 

 

 

 

 

 

 

 

 

 

 

 

 

 

4.

 

후 하

후 하

후 하

 

하늘에 있는 축축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정말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나는 폐허가 된 길거리를 걷고 있다. 정원과 떨어져 뭐라도 없나 마을을 살피고 있었다. 기분 좋은 날이다. 나는 다 타들어 버린 건물 사이를 비집고 거리를 뛰어다녔다. 탄 냄새와 비 냄새를 코로 들이마셨다. 어제는 밤을 지새워 작업하느라 코밑에 바르고 있던 민트향 치약의 냄새가 이제야 없어지는 것 같았다. 우연히 성당 옆을 지나가다 거적때기를 두르고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엔 죽은 줄 알았지만 살아있었다.

“아저씨 여기서 뭐 하세요?”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아저씨 뭐 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마을에 성직자다. 태어나고 줄곧 여기서 지냈어.”

성직자라면 보육원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장난감을 가져다주고 고민을 들어주던 아저씨가 생각났다.

“왜 여깄어요? 다들 도망갔어요. 아저씨.”

“갈 곳이 있었다면 나도 진즉에 갔을 거야.”

이상한 아저씨라고 생각했다. 나는 쪼그려 앉아 아저씨의 눈을 마주쳤다. 멀쩡히 살아있었지만 조금 지친 기색이었다. 저 멀리서 정원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원에게 이리 오라고 손짓했다.

“아저씨, 성직자면 제 고민 좀 들어주세요”

마침 잘됐다고 생각했다. 최근 고민이 있었는데 잘됐다. 그는 들어줄 기색은 아니었지만 나는 고민을 털어놨다.

“고민이 뭐냐면. 저는 사실 사람을 해부하는 일을 해요. 장기를 빼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에요. 근데 요즘 들어 제 일이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정원이라고 제 여자친구이자 저에게 일을 가르쳐준 여자가 있는데, 정원이는 옳은 일이라 말해줘요. 약한 사람으로부터 강한 사람으로 힘을 옮기는 일이니 좋은 일이라고요. 그래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분명 맞는 말 같지만, 조금 나쁜 짓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엔 일을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정원이 곁에 있으려면 일을 해야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남자는 내 말을 듣자 몸을 들썩이며 낄낄대며 웃었다. 그러다 목에 무언가 걸린 듯이 헛기침했다.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결국 너도 좀 먹은 세상을 더 좀 먹게 하는 벌레 같은 놈이었군. 뭐 그런 놈들만 살아남는 시대니 어쩔 수 없지. 사람을 죽여놓고 옳은 일인지 고민하다니. 미쳐버린 세상이야.”

벌레라는 말에 표정이 찡그려졌다.

“나름 진지한 고민이에요.”

그는 잠시 잠자코 있더니 내 눈을 보며 말했다.

“세상을 지켜보면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어. 그건 바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거야. 네가 한 일은 내가 보기에 나빠 보이지만, 네 여자친구 말대로라면 옳은 일일 수도 있어.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생물이 살아남는 자연스러울 일일 수도 있지. 옳고 그른 것은 이 땅의 자연과 신만이 아는 거야. 어떤 사람은 신이 세상에 무심해서 변했다고 말하더군. 말도 안 되는 소리. 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우린 가늠할 수 없어. 인간은 약하고 무지해. 기나긴 시간과 광활한 우주 속에 우린 너무 작은 존재들이야.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신을 믿고 기도하며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뿐이야.”

시큰둥하게 아저씨를 쳐다봤다.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느새 정원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원은 아저씨를 아래위로 훑었다. 내게 누구냐고 묻자,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정원은 가만히 아저씨를 쳐다보고는 나에게 손짓하며 지시했다. 아쉽다. 좀 더 얘기하고 싶었는데.

 

궤변을 늘어놓은 아저씨는 성직자가 맞았다. 거적때기를 벗기니 의복과 관련 서적이 나왔다. 성직자라고 해서 시체가 다르진 않았다. 물론 다를 거라고도 생각하진 않았지만. 알몸으로 누워 있는 아저씨의 눈을 감겨줬다. 아저씨의 말대로 기도를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눈앞에는 이미 주검이 되어버린 정원이 있었다. 얼굴의 살점 일부가 뜯기고 피로 덮였지만, 예쁘게 구겨진 주름살과 날카로운 눈매가 매력적인 그녀의 얼굴이 내 마음엔 보였다. 내 몸은 점점 흐물흐물해졌다. 빨간 돌은 어디서 온 걸까. 나무 시체 역시. 잘 모르겠다. 내가 해온 일이 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흙에서 싹이 자라고 싹이 꽃이 되며, 동물에게 먹히고 동물이 사람에게 먹혀 그 일부가 된다. 다시 사람은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그 거스를 수 없는 과정들을 몇 번 반복하면 진실을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영원히 알지 못할 것 같다. 서서히 눈이 감긴다. 마지막 기도를 한다. 다음에는 정원과 더 좋은 세상에 태어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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