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혜영의 경우

 

 

 

 

봉안당에 도착했을 때, 인혜의 앞에 그 아이가 서 있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안경을 쓴, 조금은 버석한 얼굴을 한 그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묵례를 했다. 나는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얼굴은 알지만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그렇다고 온전한 타인은 아닌 사람. 나에게 그런 관계는 그 아이뿐이었다.

 

그 아이는 말없이 인혜를 보다 걸음을 옮겨 복도로 향했다. 조용한 봉안당에 그 아이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인혜에게로 다가갔다. 유리에 사진이 붙어 있었다. 인혜와 그 아이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그게 사고였는지 재난이었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재난이라고 불릴 만큼 사상자의 수가 어마어마하지는 않았으니 사고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유례없는 일이었다.

 

뉴스에서는 그걸 ‘좀비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대학원에서 실험을 위해 기르던 쥐가 사망하기 전 인간을 물어 바이러스를 감염시켰고, 그 인간에서부터 또 다른 인간으로 바이러스가 퍼졌다. 전문가들은 혈액을 타고 퍼지는 바이러스의 특성상 감염률이 낮다고 했다. 실제로 대학원을 포함한 대학교와 그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감염자가 나오지 않았다.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수치였다.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바이러스가 시작된 학교는 인혜가 재학 중인 곳이었다.

 

바이러스가 퍼지던 날 인혜는 그 아이와 함께 동아리방에 있었다고 했다. 인혜가 먼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게 물렸고, 그 다음 인혜가 그 아이를 물었다. 그 아이의 손에는 사격용 공기총이 들려 있었으며 인혜의 왼쪽 어깨에 공기총에 맞은 흔적이 있었다고 경찰이 말해 주었다.

 

나는 사건에 대해 단편적인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 아이가 무슨 심정으로 공기총을 들었는지, 어쩌다 인혜의 왼쪽 어깨를 맞췄는지 알지 못한다. 인혜를 보낸 후, 나는 종종 그때의 인혜와 그 아이를 떠올렸다. 그럴 때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비가 온다고 했던가. 인혜를 보낸 뒤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1층으로 내려가 건물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하늘이 번쩍거렸고 천둥소리가 요란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가방을 쓰고 길을 내달렸다. 그러나 가방을 쓴 게 무색할 만큼 몸이 흠뻑 젖었다.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전광판은 어떤 버스도 도착한다는 표시를 띄우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으로 내가 타야 할 버스를 검색했다. 노선도를 따라 움직여야 할 자그마한 버스 표시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시끄러운 빗소리 사이로 누군가가 소리쳤다.

 

 

“버스 운행 중단됐답니다! 하천에 물이 범람할 위험이 있어서 지나갈 수 없대요!”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떤 버스든 봉안당에 오기 위해선 하천 위 다리를 지나야 했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비에 젖은 탓에 몸이 점점 으슬으슬해졌다. 나는 손으로 팔을 비비며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열었다. 어디든 몸을 말릴 곳이 필요했다. 다행히 근처에 모텔이 있었다. 나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가방을 손에 쥔 채 다시 빗속을 내달렸다.

 

 

 

 

 

 

 

 

 

“방이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어쩌죠.”

 

 

모텔 주인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주인의 시선이 닿는 곳엔 나와 그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도 나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불편하지만 않으면 두 분 같이 쓰시는 게 어때요.”

 

 

주인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 아이가 오른쪽 손바닥을 펼쳤다. 정말로 괜찮다는 듯. 그리고 다시 빗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저기요.”

 

 

그 아이의 걸음보다 내 목소리가 더 빨랐다. 그 아이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주인에게 방값을 건네고 열쇠를 받았다. 오래된 모텔에서 줄 법한 낡은 열쇠였다. 그 열쇠를 들어 보이며 그 아이에게 말했다.

 

 

“들어가죠.”

 

 

 

 

 

 

 

 

 

방은 작고 낡았지만 두 사람이 잠깐 묵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현관 앞에 수건을 깔고선 그 위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젖은 양말을 벗었고, 수건에 발을 닦았다. 내가 그러는 동안 그 아이는 현관에 서서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수건을 건넸다.

 

 

“그러다 감기 걸려요.”

 

 

그 아이는 내게서 받은 수건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끝을 눌렀다. 아직도 현관에만 서 있었다.

 

 

“저기요.”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최여진입니다.”

 

 

그런 나를 안다는 듯 그 아이가 말했다.

 

 

“그래요, 여진 씨. 그만 들어와요.”

 

 

그 아이는, 여진은 방으로 들어오는 대신 몸을 돌려 문을 열었다. 내가 어딜 가느냐고 묻자, 여진은 먹을 걸 사 오겠다 말하며 방을 나섰다. 나는 고개를 돌려 시계를 찾았다. 촌스러운 벽지 위에 더 촌스러운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저녁 여섯 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바이러스는 사람의 폭력성을 극한까지 끌어냈다. 감염자들은 타인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정신을 잃고 달려들었다. 할퀴고 때리고 물었다. 마치 좀비처럼.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인간의 뇌로 침입해 시상하부 속 폭력의 스위치를 켠다고 말했다. 그 스위치를 끌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었다. 시상하부를 제거한 후 인공 시상하부를 삽입하는 것. 당연히 위험한 수술이었고 사망 확률도 높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당국은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 뒤부터 보호자들에게 수술 동의를 받으러 다녔다.

 

그때 나는 조금 망설였던 것 같다. 동의서를 들고 방문한 공무원들에게 혹시 동의하지 않은 사람도 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으니까. 공무원은 있다고 대답했다. 내가 그런 감염자들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공무원이 답했다.

 

 

“뇌사로 판정돼 안락사 조치될 예정입니다.”

 

 

그 말을 들은 뒤에야 동의서에 사인할 수 있었다.

 

그 후로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안락사 조치된 감염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술 중 사망하거나 수술 후 후유증을 앓다 죽었다. 인혜는 전자였다. 인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일을 하다 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인혜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도 울지 않았다. 남편은 울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종종 조문객들이 쑥덕거렸던 것만 기억이 난다. 자식이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네. 독하다, 독해. 그런 말이 들려올 때마다 술을 마셨다. 그리고 자기 전에 변기를 붙잡고 토해냈다. 속이 쓰리고 목이 아팠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었다.

 

장례를 치른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혜의 방을 청소했다. 바닥을 닦고, 이불을 털고, 낡은 책을 정리했다. 인혜의 성격답게 까칠하고 모가 났지만 어딘가 모르게 둔한 방이었다. 한낮에 시작한 청소는 해가 질 무렵에야 끝이 났다. 커튼을 쳐 놓은 창문 너머로 노을이 보였다. 채도가 낮은 주황빛이 깔끔한 방을 비췄다. 나는 그때야 되어서야 울 수 있었다.

 

 

 

 

 

 

 

 

 

옷장에 걸려 있던 샤워가운에서 꿉꿉한 냄새가 났다. 세탁을 제대로 한 건지 의심스러웠지만 비에 젖은 옷을 입을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샤워가운을 입고 욕실을 나섰다. 방 안에 여진이 있었다.

 

여진은 음식이 가득 쌓인 테이블을 앞에 둔 채 로봇처럼 멀뚱히 서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 핫바, 컵라면, 음료수가 각각 두 개씩 놓여 있었다. 둘이 먹기에는 많아 보였다.

 

 

“이걸 다 사 온 거예요?”

 

 

내가 물었다. 여진은 별다른 기색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도 씻고 나오겠습니다. 먼저 드세요.”

 

 

그러고는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던 수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선 전자레인지에 도시락을 돌렸다. 낡은 전자레인지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인혜의 장례를 치르던 마지막 날 아침, 여진이 찾아왔다.

 

여진은 휠체어에 탄 채 간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인혜보다 먼저 수술을 받고 의식을 회복한 뒤 재활 훈련을 받는 중이라고 했다.

 

여진은 인혜의 룸메이트였다. 2학년 때,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인혜는 말했다. 인혜가 대학에 들어가고 기숙사며 자취방을 전전하기 시작한 뒤부터 인혜의 얼굴을 보기 어려워졌다. 거리의 문제였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마음의 거리. 인혜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와 남편으로부터 멀어지기를 원했다. 그때쯤 나는 남편과 별거를 선택했고, 나의 문제로도 바빠 인혜를 신경 쓰지 못했다. 인혜는 그걸 핑계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인혜의 자취방을 찾아간 건 두 번이었다. 벽에 인혜와 여진이 찍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네 컷으로 나뉜 사진이었는데, 어느 컷을 봐도 그 나이 아이들처럼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뿐이었다. 나한테는 그게 낯설었다. 인혜가 그렇게 웃는 모습을 요 근래 본 적 없었다. 부엌에서 컵에 주스를 따르는 인혜의 옆모습조차 사진 속 인혜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인혜의 자취방을 찾았던 두 번 모두 집에는 여진이 있었다. 말수가 적고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였다. 여진 또한 사진 속 모습과는 달랐고, 그래서 나까지 낯을 가리게 됐다. 아마 여진과 나눈 대화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분명 여진이 자기소개를 했을 텐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여진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인혜의 영정 앞에 꽃을 내려놓고 절을 했다. 모든 건 재활치료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여진은 관절이 망가진 로봇처럼 삐거덕거렸다. 마지막으로 허리 숙여 절을 한 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여진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입을 열면 별로 좋지 못한 말만 나갈 것 같았다. 딱히 여진을 미워한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을 만큼 여진과 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었는데. 나는 한참 동안 말을 고르다가, 다음 조문객이 온 소리를 들은 뒤에야 여진에게 한마디를 건넬 수 있었다.

 

 

“넌 살았구나.”

 

 

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한마디가 여진과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인혜의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혜와 여진의 자취방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 방치된 자취방을 청소한 뒤 인혜의 물건을 상자에 차곡차곡 담았다. 마지막으로 책상 위 책들을 집을 때, 벽에 붙은 사진 속 인혜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개구쟁이처럼 웃는 인혜의 얼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인혜의 짐은 고작 상자 두 개로 충분했다. 나는 그 짐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인혜와 여진의 사진은 챙기지 못했다.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의자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진이 욕실에서 나왔다. 마찬가지로 샤워가운 차림이었다.

 

여진은 말없이 맞은편에 앉아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나무젓가락을 뜯고 밥을 한 술 떴다. 그걸 입에 넣기 직전에 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내 존재가 생각이 났다는 듯.

 

여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나는 곧장 대답하지 않고 생각했다.

 

 

“……편혜영이에요.”

 

 

아줌마로는 불리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라는 말은 버거웠다. 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편혜영 씨도 드세요.”

 

 

그러고 나서야 젓가락을 들어 밥을 입에 넣는다. 나는 입맛이 없었지만 여진의 정성을 생각해 도시락을 열었다. 불고기에서 김이 올라왔다.

 

여진과 나는 말없이 밥을 먹었다. 여진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돈가스와 삼각김밥을 정신없이 입에 욱여넣었다. 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나는 뚜껑을 딴 음료수를 여진에게 내밀었다. 여진은 빵빵하게 부풀린 볼을 한 얼굴로 묵례를 하고선 음료수를 마셨다. 여진의 목울대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이네요.”

 

 

내가 말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았다. 여진이 눈을 깜빡였다.

 

 

“인혜 장례식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아서요. 인혜가 떠난 지 벌써 십 년이 됐는데.”

 

 

나는 의미 없이 젓가락으로 불고기를 뒤적였다. 다수의 입맛에 맞추기 위함인지 너무 달고 짰다.

 

 

“찾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진이 말했다.

 

 

“인공 시상하부에 적응하는 훈련을 받는 것부터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직장을 찾고 다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게 없어서요.”

“전부 십 년이나 걸렸군요.”

“그리고 찾아와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확신을 갖는 것까지 포함해서요.”

 

 

여진이 쌀밥을 우물거렸다. 밥을 먹는 속도가 느려졌다.

 

아직도 그치지 않은 비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굵은 빗줄기 탓에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여진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해서 왔습니다.”

 

 

여진의 말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될 것 같았다. 빗물에 바지 밑단이 살짝 젖기만 해도 칭얼거리던 어린 인혜가 떠올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왠지 기분이 좋지 않다며 투덜거리던 모습도.

 

 

“인혜는 비를 좋아했으니까요.”

 

 

그런데 여진이 덧붙인 말은 내 기억과 전혀 달랐다. 나도 모르게 눈썹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럴 리가요. 인혜는 비 오는 날을 가장 싫어했어요.”

“인혜는 맑은 날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여진의 목소리에 단호함이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했다.

 

 

“맑은 날에는 자신의 기분이 어떻든 억지로라도 웃어야 할 것 같다고 그랬으니까요. 반대로 비 오는 날엔 웃지 않는 게 감정 표현의 기본이라 마음이 편하다고 했고요. 비 오는 날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다른 거지만요.”

 

 

여진이 나를 바라봤다. 빤히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이상한 시선에 내가 먼저 말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계기가 뭐라고 하던가요.”

“스무 살에 집을 나올 때, 비가 내렸다고요.”

“…….”

“그날을 기쁜 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혜는.”

 

 

나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그게 좋을 것 같아. 어디선가 인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 덤덤한 목소리가.

 

 

 

 

 

 

 

 

 

인혜가 열다섯이 되던 해부터 남편과 부딪치는 일이 잦아졌다. 잘못 빌린 돈과 그로 인해 쌓인 빚, 그 빚을 갚기 위해 또 빌린 돈. 어느 순간부터 대화가 길어지면 꼭 언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높인 언성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목이 따끔거려 대화 자체를 피하게 됐다. 그런 날이 늘어갔다.

 

남편과 내가 싸울 때마다 인혜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서 뭘 하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굳이 방문을 두드려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게는 이 가정을 무너뜨리지 않고 잘 보존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그게 인혜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갔던 인혜의 나이를.

 

어느 날 인혜가 말했다. 아주 덤덤한 목소리로.

 

 

“그냥 이혼하는 게 어때.”

 

 

출근과 등교를 준비하던 아침이었다. 교복 차림의 인혜가 빵을 가방에 넣으며 말하던 게 어렴풋이 기억난다. 마치 남 일을 말하는 듯한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그렇게 쉬운 줄 아니.”

“매일 싸우기만 하면서. 같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네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그런 말 그만하고 학교 가.”

“내 생각을 어떻게 하는데?”

 

 

인혜는 표정 변화가 적은 편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슬픈지 화가 나는지 아픈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때도 그랬다.

 

 

“이혼 하나 하려면 신경 쓸 게 한두 개가 아닌데, 그러는 동안 너 못 챙겨줘.”

“지금도 챙겨준다고는 생각 안 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챙겨줬으면 내가 있는 집에서 그렇게 싸우지 않았겠지.”

“한 번도 신경 쓴 적 없잖아.”

“내가 진짜 신경 안 쓴다고 생각해?”

 

 

인혜가 가방을 잠갔다. 나는 알았다. 인혜가 나와 남편의 싸움을 온전하게 남 일로 미뤄둘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피곤했고, 아침부터 이런 소모적인 대화를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어쩌면 어디에도 풀지 못 한 울분을 인혜에게 풀었던 것 같다. 못나게도.

 

 

“신경 썼으면 나와서 말리기라도 하지 그랬어. 다른 집 애들은 부모가 싸우면 그 사이에서 중재도 잘하던데. 너는 늘 무심하고 둔해서 그런 것도 할 줄 모르지.”

 

 

인혜는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인혜에게 학교에 늦겠다는 말을 한 뒤 방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인혜의 발소리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인혜가 이혼을 언급한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닫힌 욕실 문 너머로 구토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잠깐 멈췄을 때 욕실 문을 두드렸다.

 

 

“괜찮아요? 등 두드려 줄 테니까 문 좀 열어 봐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뒤로 다시 구토 소리가 났다. 저러다 장기까지 뱉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만큼 크고 긴 소리였다.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전원 버튼을 누를 때쯤 여진이 욕실에서 나왔다. 그새 얼굴이 핼쑥해졌다.

 

 

“아까 너무 급하게 먹어서 체한 것 같은데.”

“자주 이럽니다. 수술 후유증이라서요.”

 

 

여진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체하는 게요?”

“정확히는 식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수술 후유증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자신은 식욕과 체온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며 감정 표현이 미숙해졌다고 여진이 말했다. 그제야 도시락이며 삼각김밥을 입 안에 급하게 욱여넣던 여진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커피포트가 듣기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냈다. 나는 깨끗한 컵에 끓인 물을 담아 여진에게 건넸다. 여진이 고개 숙여 인사하며 컵을 받았다. 나는 다시 여진의 맞은편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비가 오고 있었다.

 

또 한참 대화가 없었다. 빗소리가 침묵과 침묵의 사이를 메워주고 있었다. 이번에 먼저 정적을 깬 건 여진이었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나는 무슨 말이냐는 듯 여진을 바라봤다. 여진이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인혜가 무심하고 둔하다는 말,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여진의 표정이 어딘가 모르게 확고해 보였다. 나는 여진이 어떤 확신을 갖고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여진 씨가 아는 인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보네요.”

“네, 아니었습니다.”

 

 

여진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여진의 경우

 

 

 

 

인혜와는 사격 동아리에서 만났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여자 동기들이 열 명은 됐던 것 같은데, 한 학기가 지나고 나니 동기들 중 여자는 나와 인혜가 유일했다. 그때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인혜와 가까워질 수 없었을 테니까.

 

인혜와는 늘 붙어 다녔다. 동아리방에서 같이 사격 연습을 했고, 둘 다 공강인 시간이면 별다른 이유 없이 만나 커피나 밥을 먹었고, 시험기간에는 도서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공부를 했다. 급기야 함께 자취를 하기로 결정했을 땐 너무 붙어 다니는 게 아닌가 싶어 웃기도 했다.

 

인혜와는 공통점이 많았다. 특히 부모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점이 그랬다. 그런 공통점 덕분에 인혜의 앞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인혜는 어설프게 내 눈치를 보며 죽을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미안하다 사과하지 않을 테니까. 가족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혜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놓기 시작했다. 인혜에게만큼은 그러고 싶었다.

 

자기 전 마주보고 누워 대화를 나누는 걸 인혜도 나도 좋아했다. 침대를 놓을 수 있을 만큼 넓은 크기의 자취방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생활했다.

 

 

“난 그때 내가 상처를 받았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무드등 불빛 덕분에 인혜의 하얀 피부가 잘 보였다.

 

 

“엄마랑 아빠는 늘 서로를 없는 취급했고, 나는 그 사이에 껴서 숨이 막힌 적이 여러 번이었어. 서로 코앞에 있음에도 굳이 나를 통해 말을 전달할 때는 투명인간처럼 사라지고 싶었지. 그래서 끝내 이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혼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더라. 그냥 조용한 집에 사람 하나가 빠졌을 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 우리 집엔 해당되지 않았던 것 같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인혜는 웃지도, 심각한 표정을 짓지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내 말을 들어줄 뿐이었다.

 

 

“가끔 생각해. 이혼하지 않고 계속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그럼 난 숨이 막힌 상태를 기본으로 여기며 살았을까? 그런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이제는 내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아. 식사 자리에서 눈치를 보고, 방에서 화장실까지의 거리가 천 리처럼 느껴지고, 하교 후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동네를 빙빙 돌았던 게 전부 전생의 일 같아. 자꾸 한 걸음 떨어져서 보게 돼.”

 

 

그렇게 말하던 순간조차도 나는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몰랐다. 아무도 나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걸까? 진짜 상처는 엄마와 아빠가 가지고 있을 텐데 내가 그걸 빼앗아도 되는 걸까? 오래도록 고민해 왔지만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답이 나온 적은 없었다. 그렇게 길을 잃은 질문에 처음으로 답을 내려준 게 인혜였다.

 

인혜가 한 손으로 내 뺨을 감쌌다. 손바닥 너머로 포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어둠속에서도 인혜의 눈빛이 잘 보였다. 어딘가 모르게 확고한 눈빛. 그것과 닮은 목소리로 인혜가 말했다.

 

 

“그때 얼마나 웃었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은 대답할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잊어버린 게 아니었다. 그저 정말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대로 운 적은 있어?”

 

 

나는 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내게는 감정 표현이 사치였다는 걸. 나는 늘 눈치를 보고 있었고, 엄마와 아빠의 기분을 살피는 게 가장 중요했고, 그래서 스스로는 뒷전에 둔 채 돌아보지 않았다는 걸.

 

인혜가 팔을 뻗어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내 등을 토닥였다. 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인혜로부터 무수히 많은 치유의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날 나는 인혜를 끌어안은 채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처음으로 내가 나의 감정을 마주한 날이었다.

 

 

 

 

 

 

 

 

 

혜영이 옷장에서 이불을 꺼내 주었다. 얼마나 오래 됐는지 솜이 다 죽어버린 이불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조차 있지 않으면 나는 당장이라도 얼어 죽을 것 같았다. 혜영에게 받아 든 이불로 어깨를 감쌌다. 다행히 침대 위에 쪼그리고 앉은 몸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커다랬다.

 

 

“온도는 이게 다인가. 더 안 올라가네.”

 

 

혜영이 보일러를 조작하며 혼잣말을 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열면 말 대신 치아가 부딪치는 소리만 났다. 혜영은 한참 동안 보일러와 씨름을 하다, 결국 방에 비치된 전화를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프런트에서 들은 사장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직 날이 춥지 않아서 방 온도는 이게 최선이라네요.”

 

 

혜영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혜영이 탁자 위를 어지럽힌 쓰레기들을 비닐 봉투에 넣었다. 플라스틱과 캔처럼 분리수거가 필요한 것들은 따로 모아두었다. 금세 빵빵하게 부푼 봉투의 손잡이를 묶는 손길이 야무졌다. 나는 덜덜 떨리는 몸으로 혜영의 움직임을 쳐다보기만 했다.

 

 

“……인혜가 그런 말도 할 줄 아는 아이였군요.”

 

 

휴지로 탁자를 닦던 혜영이 대뜸 말했다. 시선은 탁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말수가 적어서 무뚝뚝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휴지에 삼각김밥에서 흘러나온 김 부스러기가 붙었다. 혜영은 그 휴지를 잘 접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혜영이 다시 의자에 앉을 때쯤엔 몸의 떨림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입을 열어도 치아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뚝뚝한 편도 아니었습니다.”

 

 

혜영이 나를 바라봤다. 조금 피곤한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감정 표현도 잘했고,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죠. 적어도 제가 기억하는 인혜는 그렇습니다.”

“…….”

“인혜가 무심하고 둔하다는 편혜영 씨의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용한 방 안에 빗소리가 들어찼다. 그게 꼭 인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혜가 여진 씨에게는 자기 얘기를 많이 했나 보네요.”

 

 

한참 뒤 혜영이 말했다.

 

 

“나한테는 도통 자기 얘기를 안 해서. 내가 할 시간을 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씁쓸해 보였다.

 

 

 

 

 

 

 

 

 

인혜는 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해야 하는 말은 반드시 했고, 불의를 참지 못했다. 인혜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인혜를 정의로운 사람이라 말했지만, 인혜를 적으로 둔 사람들은 인혜를 예민한 사람이라 말했다. 인혜는 어느 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보는 인혜는 둘 다였다. 그러나 예민하다는 게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예민한 만큼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그래서 섬세했다. 가끔 인혜는 둔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바늘이 잔뜩 붙어 있는 상자 안에 24시간 내내 갇혀 있는 기분이라고,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인혜에 비하면 둔한 편이었다. 상처를 받았는지도 몰라서 제대로 울지도 못 했을 만큼. 나의 둔함은 인혜의 예민함을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너랑 있으면 바늘의 개수가 줄어든 기분을 느껴. 인혜가 그렇게 말해 줬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의 둔함을 사랑해 줄 수 있었다.

 

인혜는 부모님이 싸울 때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방 안에서 자신이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는 자신만 알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나한테 무심하고 둔하다고 말했어. 그 말이 너무 어이없었는데, 웃음은 나오지 않더라.”

 

 

웃는 얼굴로 맥주를 마시던 인혜의 옆모습을 기억한다. 인혜를 생각하면 꼭 새벽 공기가 함께 떠올랐다. 그런 시간에 서로의 이야기를 하던 때가 많았다.

 

 

“왜 싸우는 소리는 크게 들리는 걸까? 목소리 크기랑 상관없이 말이야.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를 듣는 게 너무 괴로웠는데, 그걸 아는 척하면 더 괴로워질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했어. 그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그건 나한테 일종의 방패였어. 어떻게든 그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 내 나름대로 노력한 건데, 엄마는 그걸 둔하다고 표현하더라. 내가 그 방 안에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지도 못 하면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인혜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늘 가볍게 하려고 노력했고, 나는 그런 인혜를 잘 알았기 때문에 너무 무겁게 듣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혜의 마음속에 그 시간들이 가볍게 남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자연스럽게 웃는 입 모양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난 늘 생각했어. 저럴 거면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남보다 못한 사람들끼리 왜 굳이 한 집에서 사는 걸까? 나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그저 핑계인 건 아닐까? 바늘들이 기어코 살갗을 찌르는 느낌이 들 때면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제발 내일 아침에는 이혼한다는 말을 듣게 해 주세요.’ 하고 빌기도 했어.

근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정작 정말로 이혼할 기미가 보이자 나도 모르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는 거야. 아빠가 짐을 싸서 나갔을 때, 엄마한테 아빠와의 별거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덤덤한 척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척일 뿐이었어. 그때 난 이미 스무 살이었고, 더는 엄마와 아빠의 일이 내 삶을 침범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전부 착각이었던 걸까.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 내가 정말로 어떤 결말을 원하는지. 그저 내가 바라는 건……”

 

 

인혜가 고개를 떨궜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인혜의 옆모습을 비췄다. 나는 지금도 인혜의 모든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날 보았던 인혜의 옆모습만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물을 많이 먹은 수채화 그림처럼 모든 것이 뭉개져 있었다.

 

인혜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반쯤 남은 맥주가 인혜의 목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몸을 움직여 인혜의 옆으로 더 붙었다. 그러자 인혜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또 조용히 인혜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 안았다.

 

인혜가 떠난 후, 그날 인혜가 미처 뱉지 못했던 뒷말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그러나 어떤 생각도 완전한 답이 될 수 없었다. 인혜의 답은 인혜만이 알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도 빗소리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멀뚱히 천장을 쳐다봤다. 낡은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있는 게 어둠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금방이라도 얼어 죽을 것처럼 떨던 게 전생의 일이라도 되는 듯했다. 이제는 이불을 덮지 않아도 될 만큼 몸에 열이 올라 있었다. 나는 로봇처럼 누운 채 숨을 쉬었다. 빗소리에 숨소리가 가려졌다. 끈질긴 소리였다. 마치 인혜에 대한 기억처럼.

 

인혜의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자 인혜의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수술을 받은 뒤부터 인혜의 손짓과 발짓, 목소리, 습관, 심지어는 양말을 신을 때 어느 쪽부터 신는지까지, 인혜의 모든 것이 잊히지 않았다. 수술 후유증 중 과잉 기억과 관련된 증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당신의 증상은 현재까진 의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나는 의사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옆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혜영도 나처럼 아직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모른 척을 해야 하나, 아니면 말을 걸어야 하나 고민했다. 혜영의 목소리를 듣기 전까진.

 

 

“내가 아는 인혜는 전부 거짓이었나 보네요.”

 

 

말끝이 긴 걸 보니 나에게 하는 말인 게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적당한 답을 찾지 못했다. 혜영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혼잣말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인혜에 대해 아는 건 뭐였을까요.”

“…….”

“인혜에 대해 뭘 기억해야 할까요.”

“…….”

“오늘 고마웠어요. 인혜에 대해 알려줘서.”

 

 

또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나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운 혜영의 뒷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본 뒤에야 내가 해야 할 말을 찾을 수 있었다.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혜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혜영처럼 혼잣말을 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인혜가 편혜영 씨 앞에서 보인 모습도, 제 앞에서 보인 모습도 전부 진짜일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그러니 편혜영 씨의 기억과 저의 기억을 합치면 온전한 인혜의 기억이 되는 거겠죠.”

“…….”

“저도 오늘 고마웠습니다. 인혜에 대해 알려주셔서.”

 

 

나는 다시 천장을 쳐다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곰팡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지럽고 촌스러운 벽지만이 거기에 있었다.

 

 

“……그래요.”

 

 

혜영이 말했다. 나는 계속 천장을 쳐다봤다. 혜영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동아리방엔 인혜와 나뿐이었다.

 

첫 번째로 사람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커다란 가구가 쓰러지는 소리와 무언가 깨지는 소리도. 소파에 앉아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우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사람이 사람을 물어뜯는 게 보였고, 물어뜯긴 사람 또한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을 물어뜯었다. 그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언젠가 인혜와 함께 보았던 좀비 영화 속 한 장면이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창틀을 쥔 인혜의 손이 떨렸다. 나는 인혜의 손 위로 내 손을 포갰다. 인혜에게는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겠지만, 실은 내가 인혜의 온기를 느끼길 원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인혜와 동아리방에 숨죽인 채 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혹은 얼마나 짧았는지 모르겠다. 어느 순간 문밖에서 도와달라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목소리를 들은 인혜는 지체 없이 동아리방을 나섰다. 내가 붙잡아도 소용없었다. 두려움에 우는 얼굴로 동아리방을 나서는 인혜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건 인혜가 아니라고, 그래서 더는 붙잡을 수 없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인혜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인혜처럼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그곳에 좀비처럼 입가에 피를 묻힌 감염자와 인혜가 있었다. 감염자의 이가 인혜의 팔에 박혀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인혜를 구해야 하는데, 지금 인혜를 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인혜가 한 손으로 감염자의 어깨를 밀었지만 감염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염자의 이가 인혜의 팔을 지나 어깨를 물어뜯었다. 인혜가 또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만약에 좀비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동아리방으로 가자.”

 

 

언젠가 인혜와 함께 좀비 영화를 보던 날, 인혜가 말했다.

 

 

“동아리방에는 총이 많잖아. 그중 하나를 들고 좀비들의 머리를 터트리면서 살아남는 거야. 이러려고 사격을 배운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인혜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인혜의 비명 소리 위로 겹쳐들었다.

 

나는 다급히 총 보관함으로 향했다. 손이 떨려 비밀번호가 잘 눌러지지 않았다. 나는 잘하지도 않는 욕을 읊조리며 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때렸다. 손등이 새빨개졌을 때쯤 보관함의 문이 열렸다. 손에 잡히는 아무 공기총이나 들어 장전을 한 뒤 인혜의 몸을 물어뜯고 있는 감염자를 향해 조준했다. 그러나 감염자는 내가 방아쇠를 당기길 기다리는 과녁이 아니었다. 박자에 맞춰 흔들리는 인형처럼 가늠자 안으로 감염자의 머리가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입 안에서 피 맛이 났다.

 

 

“여진아.”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그저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인혜가 말했다.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소와 함께.

 

 

“도망쳐.”

 

 

그 순간 떨림이 잦아드는 걸 느꼈다. 지금이라면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늠자를 통해 감염자를 바라봤다. 감염자는 며칠 동안 굶은 짐승이 고기를 뜯어먹는 것처럼 인혜의 온몸을 물어뜯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침내 가늠자 안으로 감염자가 완전히 들어왔을 때, 나는 감염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고막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 굉음이 사그라질 때쯤 감았던 눈을 떴다. 감염자가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그 아래 피가 흥건했다. 하지만 피가 흘러나오는 곳은 감염자의 머리가 아닌 인혜의 어깨였다. 내가 그 사실에 놀랄 틈도 없이, 어느새 또 다른 감염자가 된 인혜가 목각인형처럼 팔다리를 아무렇게나 움직이며 나를 향해 달려왔다. 나는 공기총을 손에 든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문득 생각한다. 내가 그때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감염자의 머리를 맞췄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혜는 감염자에게 물린 순간부터 감염이 됐을 테고, 감염자는 좀비 영화 속 사람을 먹어치우는 좀비와는 엄연히 다른 존재이니 나의 행동은 살인으로 간주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혜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수술 후 나 혼자 살아남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절망만이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전부였다.

 

넌 살았구나. 혜영의 한마디를 기억한다. 혜영의 그 말은 내게 형벌 같았다. 왜 인혜를 따라 죽지 못했는지, 나 혼자 살아남은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깨어난 후에는 내가 밟고 있는 이곳이 사후세계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졸업식 날 학사모를 쓰고 사진을 찍는데, 문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옆에 서 있지 않은 인혜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인혜가 맞이하지 못한 시간들을 살아가며 인혜를 기억할 것이다. 그게 살아남은 나의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비가 그쳐 있었다. 혜영은 나보다 일찍 일어난 모양인지 내가 눈을 떴을 땐 샤워가운 대신 다 마른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침구를 정리하고 욕실로 들어가 세수와 양치를 했다. 밤새 마른 옷을 입고 나가니 커피 냄새가 났다. 혜영이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을 건넸다. 나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대신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컵을 받았다.

 

혜영과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마시며 방을 나갔다. 1층으로 내려가니 프런트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사장이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혜영이 사장에게 열쇠를 반납했고, 나는 사장에게 묵례를 한 뒤 혜영을 따라 모텔을 나섰다.

 

오늘의 맑은 날씨를 위해 비가 왔다는 듯 하늘이 쾌청했다. 혜영과 나는 날씨가 좋다는 한마디조차 하지 않은 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 혜영과 나처럼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인 듯했다. 혜영이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전광판을 바라보며 물었다.

 

 

“몇 번 타요?”

 

 

나는 전광판 맨 아래에 나와 있는 네 자리 숫자를 가리켰다. 혜영은 맨 위 세 자리 숫자의 버스를 탄다고 말했다. 혜영이 타야 하는 버스는 3분 뒤 도착 예정이었다.

 

혜영이 가방에서 기다란 무언가를 꺼냈다. 자세히 보니 사진이었다. 인혜와 나의 자취방에 있던, 내가 어제 인혜에게 주고 왔던 그 사진. 혜영이 그 사진을 내게 건넸다.

 

 

“돌려줄게요.”

 

 

나는 사진을 받아들지 않았다. 그건 내가 인혜에게 주고 온 것이다. 더는 내 것이 아니다. 인혜가 받을 수 없다면 혜영이 가지는 게 맞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사진은 인혜 거니까 편혜영 씨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혜영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사이 혜영이 타야 할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승차를 위해 줄을 섰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뒤로 한 채 혜영은 사진을 반으로 찢었다. 정확히 두 컷씩 나뉜 사진 중 절반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그럼 반씩 나눠 갖도록 하죠.”

 

 

나는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사진을 받은 뒤에야 혜영은 사람들을 따라 버스를 탔다. 그리고 빈자리에 앉아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어떠한 인사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혜영이 내게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혜영을 태운 버스가 정류장을 떠났다. 나는 인혜의 사진을 손에 쥔 채,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버스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댓글 1
  • hummchi 23.10.03 22:48 댓글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도 그렇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킬도 정말 배울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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