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환상의 호수

2023.09.18 16:5109.18

 ‘환상적인 광경, 천국과도 같은 녹색 호수로 오세요.’

 반복되는 출근과 퇴근으로 지쳐버린 나에게 그 광고가 눈에 들어온 것은 금요일의 퇴근을 앞둔 늦은 오후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광고를 클릭했다. 마치 외국 사이트에 들어간 것처럼 긴 로딩시간이 지나자 탁한 녹색 빛을 띄며 밝게 빛나는 넓은 호수의 한 가운데에 중절모 모양의 섬이 있는 사진과 글귀가 나타났다.

 ‘한 번 들어오면 도저히 떠나고 싶지 않은 호수와 섬. 환상의 휴양지 녹천호로 오세요. 당일치기 손님 한정 숙박, 대실 반값 할인 중 – 녹음펜션.’

 왠지 사기 같은 느낌이 드는 촌스러운 글씨체의 글귀에도 불구하고 녹색으로 진하게 빛나는 호수와 그 한 복판에 신비롭게 떠있는 섬의 이미지는 최근 몇 년간 휴가를 가지 못한 나의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회사에서는 안 그래도 적은 정기휴가를 회사에 일이 밀려 있다는 이유로 취소하고 주말도 반납하기를 강요했다. 지난 몇 년간 그런 강요가 반복되느라 쌓여가는 가용한 휴가 일수를 따라서 내 피곤함도 쌓여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반복하면 습관이 되어 아침에 출근하기 쉬워진다고 했지만 나에게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 이년은 그럴 수 있겠지만 나처럼 오 년 이상을 주말도 없이 항상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톱니바퀴의 윤활유가 말라버리듯이 이곳저곳이 긁히고 좀이 쑤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환상적인 호수와 섬 여행이 당일치기 손님에게 숙소가 반값이라니 눈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주부터 주말에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공지가 내려와 나는 오늘 이 광고를 본 것이 어떤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퇴근시간이 되자 나는 팀원들에게 하는듯 마는듯 대충 인사를 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다시 그 광고사이트를 검색해 들어갔다. 나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이 곧바로 숙소를 예약하고 짐에 무엇을 싸야 할지를 고민했다.

 지역은 서울에서 가까웠다. 문득 ‘서울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내가 몰랐던 곳이 당연히 있겠지’하는 생각과 함께 의문은 사라졌다. 차가 없어 찾아갈 방법이 고민이었지만 사이트에는 펜션 측에서 픽업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써 있었다. 나는 곧바로 사이트에 써 있는 펜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녹음펜션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화기 너머로 친절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내일 녹천호 가려고 하는데요, 픽업서비스 신청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합니다. 저희 쪽 차가 갈 겁니다. 몇 시 원하세요?”

 “아침 9시요.”

 “네 알겠습니다.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시면 저희 차가 아침 8시 30분까지 가 있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챙겼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여건이 좋으면 하루를 더 그곳에서 보낼 생각에 이틀 치 짐을 꾸렸다. 이렇게 주말에 휴가 가는 것이 몇 년 만이던가. 기분 좋은 긴장감에 몸이 살짝 떨릴 지경이었다. 짐을 다 챙기고 침대에 누워 나는 녹색 호수에 대해 생각했다. ‘환상의 호수.’ 말 그대로 내가 보고 싶었던 것들을 모두 보여줄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지난 몇 년간을 7시에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하며 변수 없는 톱니처럼 시간에 맞물려 살아온 나에게 호수는 숨쉴 수 있는 틈을 줄 터였다. 그곳에 가면 지긋지긋한 출근버스도, 프로젝트도, 팀장과 팀원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진정한 일탈의 공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호수를 떠올리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집 앞으로 창문이 짙게 썬팅된 구형 승합차 한 대가 왔다. 승합차에는 ‘녹음펜션’이라는 글귀와 그 아래에 전화번호가 써 있었다. 나는 곧장 짐을 챙겨 들고 승합차 앞으로 갔다. 운전석에는 한 사람이 타 있고 조수석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안녕하세요. 픽업서비스 신청하셨죠? 짐은 트렁크에 넣으시고 타시면 됩니다.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예요.”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남자가 친절하게 말했다. 나는 트렁크에 짐을 넣고 차에 타려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왜 이렇게 썬팅이 짙게 돼있지? 이렇게까지 두껍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승합차 내부에 탑승하자 이상할 정도로 썬팅이 두껍다는 게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차에 타기 전 밖에서는 차량 내부가 조금이라도 보였지만 안에 타고 문을 닫자 바깥의 풍경이 아예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은 마치 차량 밖에서 안을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을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썬팅을 반대방향으로 해 놓은 것 같았다. 차는 출발했고 나는 이동경로를 알 방법이 없었다. 휴대폰 지도 앱을 켰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아 현재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차량 앞자리와 뒷자리 사이는 검정색 망사 천으로 분리되어 있어 앞자리도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독방에 갇힌듯한 느낌이었다.

 “저기요, 그런데 왜 이렇게 썬팅을 짙게 하신 거예요? 창문 좀 열어도 되나요? 조금 답답해서요.” 나는 갇혀 있다는 느낌에 숨이 막히고 답답해져 앞자리 조수석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뒷자리 창문 내리는 레버가 고장나서 빼놨어요. 에어컨 세게 틀어 드릴게요. 불편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대신 저희 녹음펜션 소개책자 보고 계시면 금방 도착할 겁니다. 여기 음료수도 드세요. 빨리 가겠습니다.” 나는 더 불평하려다 검은 옷의 남자의 지나치게 친절한 태도에 단념하고 옆자리에 놓인 펜션 소개책자를 집어 들었다.

 ‘환상의 호수 뷰를 자랑하는 녹음펜션. 편안하게 모십니다.’

 첫 페이지에는 문구와 함께 녹색 호수의 아름다운 사진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나는 호수의 풍경을 보자 다시 호수에서 보낼 시간을 상상하며 기대감에 젖어 들었다. 잔잔한 물결이 이는 호수의 모습과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쬐는 모래밭에서 파라솔 아래 누워 미뤄둔 소설들을 읽는 내 모습을 생각하자 기분은 어느새 황홀 해졌다. 조수석 남자가 건넨 음료수를 마시며 일과 직장에 대해 모두 잊어버리고 호수에서 무엇을 할지를 생각하다 보니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어젯밤보다 더욱 커진 호수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잠을 받아들였다.

 

 잠에서 깨고 나니 승합차는 펜션 주차장에 도착해 있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302호로 당일 대실 예약하셨습니다. 짐은 제가 들어드릴 게요.” 검은 옷의 남자는 트렁크를 열며 말했다. 나는 덜 깬 잠을 깨려고 손바닥으로 뺨을 두드리며 차에서 내려 숙소로 올라갔다. 검은 옷의 남자가 가져다준 짐을 들고 302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는 한 순간에 잠이 깨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펜션의 3층에서 내려다보는 그곳의 풍경은 경탄스러울 정도로 훌륭했다. 호수를 멀리 안개를 품은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신비롭게 고여 있는 호수는 짙은 녹색과 푸른 빛을 발하며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호수의 중심에는 모자모양의 섬이 있었고, 그 주변은 수심이 깊은 듯 짙고 푸른 색을 발하며 수심이 얕아지는 호숫가로 올수록 물의 색은 초록색 에메랄드 빛으로 옅어졌다. 호수의 주변을 긴 금빛 모래사장이 둘러싸고 모래사장이 끝나는 곳에는 바위 절벽이 다시 모래사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 아름다운 풍경에 먹칠하는 보기 싫은 횟집이니 매운탕이니 하는 짙은 원색의 지저분한 간판들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마치 여행잡지에서나 볼법한 지중해 어딘가의 해안절벽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까지 받았다.

 ‘서울 근처에, 아니,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왜 그동안 몰랐지? 아니 그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호수에 사람도 얼마 없고 한적하다니. 이건 정말 행운인 걸.’ 나는 당장 내려가 당일 예약을 취소하고 숙박으로 변경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고 호수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호숫가로 가기 위해서는 바위절벽에 설치된 철제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계단을 내려가자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시각은 오전 11시였지만 아직 걷히지 않은 옅은 녹색의 물안개가 호수의 주변과 멀리 보이는 중앙의 섬을 신비롭게 감싸고 있었다. 주변에는 드문드문 서있는 야자수나무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했고, 거기에 절벽 위의 소나무들이 겹쳐진 풍경은 한국도 외국도 아닌 것 같은 생경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호숫가 모래사장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어떤 사람들은 호숫가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펴고 그 밑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낚시를 하고 있는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인은 짙은 갈색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낚시대를 물 속에 드리우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신비로운 풍경 때문인지 그 노인에게 풍기는 분위기인지 모를 신비로운 느낌이 들어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낚시하세요?” 나는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비슷한 거 하지.” 노인은 내 쪽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통을 안 가져오셨어요? 잡은 물고기는 어떻게 하시려구요.”

 “물고기 낚는 게 아니니까. 그냥 앉아서 호수를 보는 거야. 자네 여기 처음 왔나?”

 “예 오늘 처음 왔습니다. 여기 정말 좋은데요. 인근 주민이세요?”

 “그럼, 난 여기 살지. 이 호수가 내 인생이야. 집은 따로 있어. 그런데 이 호수가 좋아서 여기 살아.”

 “예… 저는 서울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직장만 아니면 저도 이런데 살고 싶네요. 정말 평소에 너무나도 원하던 풍경이에요.” 나는 노인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렇겠지. 그런데, 조심해야 돼. 여기서는 보고싶은 걸 보여주거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자네가 오든 누가 오든 말 그대로 원하는 걸 보여준다는 거야. 그게 장소든 사람이든 장면이든. 이렇게 여기 앉아서 그것들을 보고 있다 보면 빠져나올 수가 없어. 나는 가족도 친구도 다 버렸어. 나처럼 되지 말게.” 노인은 컵에 든 커피인지 모를 음료를 마시며 말했다. 노인과 대화할 동안 낚시대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노인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무시하고 일어나 가볍게 인사를 하고 계속 호수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걸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한참을 걸어 호수 반대편까지 왔다.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오랫동안 걷자 목이 말랐다. 그 때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모래사장 끝 바위절벽 앞에 작은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는 음료를 팔고 있었다. 나는 걸어오면서 그 상점을 보지 못한 것이 이상했지만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고 상점에 가서 음료를 샀다. 목구멍에 시원한 것이 들어오자 갈증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때 뒤에서 무언가 무거운 물체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누군가가 호수 물에 다이빙을 하는 소리였다. 물이 깨끗해서 수영해도 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간 사람은 한참을 나오지 않고 공기방울도 수면으로 올라오지 않았다. 나는 당황하여 주변에 구조대원이나 구명튜브가 있는지를 살폈으나 그 어느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상점 주인에게 소방서에 신고를 해달라고 급히 말하고는 곧장 윗옷을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물 속은 물 밖에서 본 것보다 더 찬란한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수면 위에서 들어오는 빛이 일렁이는 물살에 흔들리며 수많은 빛의 기둥들을 만들었다. 빛의 기둥들은 서로 부딪혀 흩어지고 밝아지기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패턴을 만들어냈다. 숨이 멎을 듯이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놓고 물 속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한참이나 숨을 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숨이 차지 않았다. 귀에 들리는 먹먹한 지직거리는 소리와 공명하는 음들은 음악소리처럼 들렸다. 나는 내가 익사했다고 생각했다. 그 때 조금 전 물에 빠진 여자가 저 멀리 호수의 물 속에 잠겨 두 손을 든 채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장 헤엄쳐 다가갔다. 여전히 빛의 기둥과 공명하는 음악이 내 몸을 휘감고 있었다.

 나는 물에 빠진 여자의 몸통을 잡고 호숫가로 헤엄쳐 갔다. 여전히 숨이 차지 않았다. 그 여자는 왠지 모르게 몸을 붙잡고 헤엄치는 나를 뿌리치려고 했다. 나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뿌리치려는 손길을 몸통과 함께 붙잡아 제압하고 그 여자와 내 몸을 물 밖으로 던졌다. 그 여자와 나는 한참이나 모래사장에 엎드려 물을 토해냈다.

 “괜찮으세요? 익사하시는 줄 알았어요.”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물에 빠진 여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나에게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한참 좋았었는데…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야.” 그 여자는 나에게 화를 내고 다시 물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그저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옆을 보니 아까 대화했던 노인이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장 왔던 길을 다시 걸어와 철제 계단을 올라와 펜션으로 돌아왔다. 사장을 만나야 한다. 이 호수가 뭐하는 곳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펜션의 1층 접수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여기 도대체 뭐하는 곳입니까?”

 “물 속에 들어가 보셨어요?” 사장으로 보이는 빨간색 옷에 진주 목걸이를 한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는 눈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고 짙은 눈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들어갔죠. 왜 숨이 안 차는지는 둘째 치고, 왜 사람들이 자꾸 물 속으로 들어가죠?”

 “그야… 휴양지니까요?” 사장은 싱긋 웃으면서 내 쪽을 보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손님 오늘 처음이시죠? 물 속에 한 번 오랫동안 들어가 있어 보세요. 정말 좋아요. 얼마나 깨끗한데요.” 그러고는 방금 도착한 손님을 안내해야 한다고 하며 밖으로 나갔다. 펜션 주차장에는 짙게 썬팅한 승합차가 승객 두 명을 태우고 들어오고 있었다.

 

 

 승합차에서 내린 두 승객은 연인으로 보였다. 둘은 승합차에서 내리자마자 짐은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게 맡긴 채로 곧바로 호수로 갈 준비를 하는듯 보였다. 날이 저물어가자 호수에 태양이 비스듬히 비쳐 푸른 녹색이던 호수의 색은 검붉은 노란색으로 물들었다. 나는 바위절벽 위에 서서 두 사람이 철제 계단을 내려와 호숫가로 곧장 달려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둘은 주저하지 않고 물 속으로 들어가 한참동안 나오지 않았다. 공기방울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돌아오면 이 호수가 어떻게 된 장소인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숙소로 들어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어떻게 된 일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물에 빠져도 숨이 차지 않는 호수라니… 게다가 사람들은 기를 쓰고 호수 안에 들어가려고 하고.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동안 회사와 팀원들 생각으로 아파왔던 머리는 어느새 호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노인은 호수가 보고싶은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호수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고싶은 것을 보기 위해 호수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노인도, 물에 빠졌던 여자도, 방금 도착한 연인도… 머릿속에 무수한 생각이 스쳐 지나며 나는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테라스로 나가자 어제 봤던 연인이 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었다. 남자는 반바지에 윗옷을 입지 않고 있었고 여자는 잠옷차림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곧장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여러 번 오셨나 봐요?”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저희는 이번이 네 번째예요.” 남자는 커피를 내려놓고 대답했다.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앉으세요. 커피 드릴까요? 저는 이선영이구요, 여기는 제 남자친구 김지석이예요. 곧 결혼해요.” 여자는 여분 커피를 꺼내면서 말했다.

 “괜찮습니다. 서울에서 오셨어요? 저는 서울에서 왔는데.”

 “저희도 서울에서 왔어요. 가까운 곳에 이런 황홀한 곳이 있다니 정말 행운이죠.” 선영은 테라스 너머로 보이는 호수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전 이번이 처음인데요, 도대체 여기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사람들이 자꾸 물에 들어가고, 왜 들어가도 숨이 안 차는 거죠?”

 “아 처음이시구나.” 지석은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여기 정말 대박이에요. 광고도 그렇게 많이 안 해서 사람도 북적거리지도 않고, 아무튼, 물 속에 한 번 들어가 보세요. 딱히 저희가 설명드릴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들어가 보시면 알아요. 있다가 점심 먹고 저희랑 같이 들어가시죠.” 지석은 설명 대신 들어가보라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결국 직접 물 속에 들어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연인과 함께 철제 계단을 내려와 호숫가로 향했다. 호숫가에는 이미 나와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몇 명은 몸도 풀지 않고 곧장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들어가시죠. 아시듯이 숨은 차지 않을 거예요. 익사할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지석은 처음 기차를 타는 아이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주듯이 말했다.

 “일단 들어가시면 천천히 수영해서 깊은 곳으로 들어가세요. 풍경을 감상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다 알아서 될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나오고 싶으실 때 나오시면 돼요. 간단하죠?”

 “오빠 나 먼저 들어갈게.” 선영은 지석에게 말하고는 곧바로 물 속으로 주저없이 걸어 들어갔다.

 “저희도 들어가시죠. 긴장하지 마세요.” 지석은 내 어깨를 두어 번 치고는 물 속으로 다이빙해 들어갔다. 나는 의심스러운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지만 어제 물 속에 들어갔을 때의 기분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이 목까지 잠기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지며 긴장됐지만 그대로 머리를 물 속에 담갔다. 조심스럽게 호흡을 하자 역시 숨이 막히지 않았다. 나는 부력에 의해 천천히 몸이 떠오르는 것을 느끼며 점점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물 속의 장면은 황홀했다. 어제 봤던 빛의 기둥들은 다시 한번 내 몸에 부딪혀 호수 바닥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호수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는 호수에 들어오며 아름다운 웅웅거림으로 바뀌었다. 저 멀리 녹색 물 너머로 지석과 선영이 두 손을 들고 물 속에 떠 있는 것이 보였다. 반대쪽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자세로 물 속 깊은 곳에 부유하고 있었다. 물 속 깊은 곳에 사람들이 두 손을 들고 잠겨 있는 장면은 뭔가 기괴하고 무서웠지만 나는 그들이 있는 깊은 곳으로 천천히 헤엄쳐 들어갔다.

 그때 눈 앞의 시야가 트이고 흰색의 빛이 시야를 덮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호수의 초록 빛은 사라지고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오직 사방이 흰색인 공간에 떠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위에서는 빛의 기둥들 만이 일렁이며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손의 감촉만은 분명히 느껴졌다. 팔을 휘저으면 손 끝에 느껴지는 저항감은 분명히 물을 저을 때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내가 아직 호수 안에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계속 헤엄쳐 나아갔다. 그 공간은 위로 아래로도 수평으로도 끝이 없는 듯이 느껴졌다. 한참을 헤엄쳐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무뎌질 무렵, 눈 앞에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고양이? 고양이가 물 속에 왜…’라고 생각했지만 애교를 부리는 고양이를 나는 그저 지켜봤다. 그러자 주변에 수많은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어떤 고양이는 누구인지 모를 사람의 손에 간지럼을 타고 있었고, 어떤 고양이는 퇴근한 주인과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 고개를 돌리자 여성들이 나타났다. 옷을 최소한으로만 입은 여성들.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여성들은 온갖 매력적인 자세를 하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나는 여성들이 있는 곳으로 헤엄쳐갔다. 그러자 저 멀리서 비상식적인 몸매의 남녀가 관계를 가지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갈수록 내 시야에는 기괴한 자세로 관계를 가지는 남녀뿐만 아니라 동성커플들까지 나타났다. 그 광경은 내 은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과분할 정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헤엄쳐 나가다가 이번에야말로 내가 지켜보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 고개를 돌렸다.

 이젠 정치인들이 나타났다. 현안에 대해 의견을 주장하는 정치인들. 내 주위로 그 광경을 보며 한껏 비웃는 그림자의 무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온갖 창의적인 욕설을 하며 자신의 반대성향의 정치인들을 조롱하고 비웃고 있었다. 그들은 내 눈앞에 기상천외한 글씨체로 자신이 반대하는 정치인을 조롱하는 글과 초록색 개구리 캐릭터에 정치인을 합성한 사진을 보여주며 함께 비웃기를 요구했다. 나는 그들의 주장이 다소 과격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조롱에 동참했다. 그러자 내 주위의 그림자들에게 동질감과 소속감이 느껴졌다. 그들은 비록 얼굴과 몸은 가려져 실루엣만 보였지만 유쾌한 장난을 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나는 굳이 조롱할 생각은 없었지만 머릿속을 쥐어짜내 그들이 조롱하는 정치인을 창의적으로 욕하는 표현을 생각해냈다. 그들은 나를 칭찬하며 한 단계 더 나아간 조롱들을 얹어줬다. 나는 그들의 의견이 주류사회의 의견이고 나 또한 그들 사이에 속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들의 온갖 주장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주장들이 많았으나 나는 ‘그런 것쯤은 크게 상관없지, 유쾌하게 드립 치고 놀려고 하는 건데’ 라고 생각하며 조롱을 얹었다.

 한참을 그림자들과 정치인을 조롱하다 고개를 돌리자 기괴한 가면을 쓴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전기 톱을 들고 해물 손질용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나무의자에 묶인 채 얼굴이 두건으로 가려진 남자가 앉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끔찍한 상상이 들어 고개를 돌렸으나 이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선혈이 낭자한 장면이 펼쳐졌다. 나는 한 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묘한 호기심이 들어 결국 그 장면을 모두 보고 말았다. 새하얀 공간을 검붉은 피가 가득 채웠다. 나는 호기심에 계속 그 남자가 있는 쪽으로 핏속을 헤엄쳐갔다. 그러자 온갖 끔찍하고 잔인한 광경들이 사방에 펼쳐졌다. 동물을 대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갖가지 끔찍한 고문과 절단이 사방에 보였다. 눈 앞에서 햄스터를 보았을 때 나는 고개를 돌렸지만 호수는 사방에 더 많은 잔인한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함께 호수에 들어갔던 지석이었다. 지석은 내 몸통을 붙잡고 수면위로 나를 끌어올렸다. 나는 그제서야 숨과 물을 토해내고 숨을 골랐다. 지석과 나는 호숫가로 헤엄쳐 나왔다. 선영은 이미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 너무 오래 있었어요.” 지석이 말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죠?”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며 말했다.

 “세 시간 정도요. 저희는 한 시간만 있다가 나와서 지켜봤는데 그쪽이 너무 안 나오더라고요. 처음이면 그럴 수 있어요.”

 “이거… 정말 환상적인데요.” 나는 잦아드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금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그럼요, 환상의 호수인데요.” 선영이 웃으며 말했다.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고 나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환상의 호수.’ 나는 끊임없이 그 호수를 생각했다. 전산처리를 할 때도, 커피를 마실 때도,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동안에도 내 머릿속에는 호수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차 도저히 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픽업 서비스가 있으니 그저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나는 그 신비로운 호수로 갈 수 있는 것이었다. 매주 주말이 되면 나는 호수에 갔다. 그러고는 깊은 물 속에 들어가 그 온통 새하얀 공간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의 기둥들은 이제 익숙해졌다. 호수는 나에게 온갖 흥미로운 볼거리들을 보여줬고 그것에 검열이나 제한 따위의 것들은 전혀 없었다. 그저 사방에 펼쳐진 이미지들 사이에서 보고싶은 것을 골라 그 쪽으로 헤엄쳐가면 호수는 비슷한 것들을 사방에 펼쳤다.

 매주 호수에 가면서 내가 알아낸 것은 호수에 한 번 온 사람들은 반드시 호수를 다시 찾는다는 것이었다. 매주 주말이 되면 녹음펜션의 짙게 썬팅된 승합차들은 쉴 새 없이 손님들을 실어 날랐고 매일 호수에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 중 일부는 아예 일 년치 비용을 인근 숙소에 내고 눌러앉은 사람들도 있었다. 호숫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그 노인도 그런 사람이었다. 노인은 15년 전 이혼한 뒤 호수를 알고나서 매일 호수에 몸을 담갔다고 했다. 나는 노인에게 당신에게 호수는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물었지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함께 호수에 들어갔던 연인도 나처럼 매주 주말마다 호수에 왔다. 나는 어느새 그들과 친해졌고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그날 호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영씨는 호수에서 뭘 보세요? 여자들은 뭘 보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나는 선영에게 물었다.

 “저요? 별 다를 거 없어요. 예쁜 것들. 새로 나온 가방이나 목걸이 같은 걸 주로 봐요. 여행지 같은 것도 보고. 남자들은 뭐 봐요?”

 지석과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게임영상 보는데. 난 그것만 봐.” 지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에이, 남자들한테는 포르노 같은 거 보이는 거 아니야?” 선영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요. 그런 것도 보이죠. 보고싶은 것을 보여주는 호수인데.”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좀 오래 있으면 안 돼? 매번 한 시간씩만 있다가 나오니까 아쉽잖아.”

 “그럴까? 그런데 우리가 모르는 부작용 같은 거 있으면 어떻게 해.”

 “뭐 숨을 못 쉬는 것도 아니고,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데 안에서는 시간을 못 느끼니까 오래 있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잖아요.”

 “나오고 싶을 때 나오면 되니까 별 문제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냥 있고 싶은 만큼 있어보죠.” 나는 낙관적으로 말했다.

 우리는 해가 지고 있는 호수로 향했다. 호수는 노을 빛으로 물들어 검붉게 빛나고 있었다. 호숫가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호숫가에 앉아있는 낚시하는 노인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조금 차가웠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빛은 호수로 비스듬히 들어와 빛 기둥을 사선으로 만들었다.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가자 곧 눈 앞이 하얘지고 귀에 들리는 소리가 모두 사라졌다. 호수는 여느 때처럼 고양이로 시작했다.

 

 

 한참이나 고양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다시 주변에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온갖 웃긴 자료들을 보여줬다. 한참이나 웃고나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다시 전기 톱을 든 남자가 보였다. 남자는 또다시 이리저리 전기 톱을 휘둘렀고 사방에 선혈이 낭자했다. 그동안 매주 호수를 찾으며 어느새 나는 그 남자에게 익숙해졌다. 나는 조금 시시하다고 생각하고 그 남자 쪽으로 헤엄쳐 나아갔다. 그러자 남자는 사라지고 수없이 많은 잔인한 이미지들이 내 주위를 채웠다. 그러나 이미 봐왔던 시시한 것들이었다. 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호수는 점점 더 잔인하고 폭력적인 장면들을 보여줬다. 그때 손이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당황하여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으나 손은 나를 놓아주지 않고 강하게 붙잡고 있었다. 사방의 온갖 날붙이와 고문도구를 든 그림자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어떡하지? 수면 위로 올라가야 환상에서 깰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발버둥쳤으나 내 오른쪽 발목을 꽉 붙잡은 손은 나를 놔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낫을 든 그림자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림자는 낫을 양손을 붙잡더니 내 왼쪽 어깨를 사선으로 강하게 내리쳤다. 빛 기둥들 사이로 내 피가 천천히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은 마치 진짜 같았다. 아니, 정말로 내가 낫이 내 몸을 사선으로 베고 나간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순간 눈앞의 붉은 시야가 좁아졌다. 환상이 닫히고 있었다. 붉은 시야가 점으로 사라지자 눈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은 내 눈 앞까지 와 있었다. 손에 낫은 들려 있지 않았으나 내게 낫을 휘두른 그림자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모두 손을 위로 든 자세로 호수 바닥 위에 매달려 있었다. 호수의 바닥에는 수많은 시신인지 모를 인간들이 쓰러져 그림자였던 사람들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나 역시 발목이 붙들려 있다. 뿌리치고 올라가야 했다. 숨이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림자였던 사람들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를 붙잡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저 멀리 낚시하던 노인이 보였다. 노인도 그림자들과 같은 자세로 나를 잡기 위해 오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두 발을 휘둘렀다. 간신히 발목을 붙잡은 손을 뿌리치고 호수의 수면을 향해 헤엄쳤다.

 숨이 다할 때쯤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나는 전력으로 호숫가를 향해 헤엄쳤다. 이미 해는 지고 호수 주변에는 그 어떤 빛도 없이 어두웠다.

 “선영씨! 지석씨! 밖으로 나와요!” 겨우 뭍으로 나온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지만 어디에도 둘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숨을 고르고 다시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선영과 지석은 물을 토해내며 숨을 골랐다.

 “어떻게 된 거죠?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선영이 가쁜 숨을 쉬며 말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발목을 붙잡는 게 느껴져서 물 밖으로 나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숨이 막히는 게 느껴졌어요.”

 “하… 다신 못 오겠어요. 그 물 속에 시체 같은 것들은 뭔지… 오랫동안 있으면 그렇게 되나 봐요. 환상을 보면서 호수에 갇히는 것 같아요.” 지석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래요. 우리 여기 다신 오지 말죠.”

 

 

  다시 월요일이 되고 나는 또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그러나 호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환상에 중독된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일을 겪고나서 다시 호수에 갈 수는 없다. 그러나 호수가 보여주는 환상에 비해 현실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 그림자들은? 모두 나처럼 호수에 갔다가 호수가 보여주는 환상에 중독되어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을 알 수 없었다. 펜션과 호수에 대해 검색해봐도 나오는 정보라고는 오직 그 광고 하나가 다였으며 그 광고마저 언제는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호수에 대한 의문이 커지는 만큼 나의 호수에 대한 열망도 강해졌다.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모든 것이 시시했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한동안 수돗물을 틀어 놓고 물 속을 들여다봤다.

 나는 토요일에 선영과 지석을 다시 만났다. 우리가 겪은 일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 셋 다 호수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무엇이라도 대체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카페에 앉아 한참동안을 대화했지만 마땅히 호수를 대체할 것을 떠올릴 수 없었다. 우리는 이미 호수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었다. 호수가 보여주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이미지들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모두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는 초조하고 불안했다. 선영은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으며 지석 또한 초조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동안 호수에 대한 생각을 하며 한 주를 버티고 주말이 되면 곧장 호수로 가는 승합차를 불러 물 속에 몸을 담그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호수가 곧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선영이 호수 없이 보낸 지난 몇 주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선영은 자신이 호수에서 봤던 것에 대해서만 얘기했으며 그것을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다. 호수가 보여준 이미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관련된 것이기는 했으나 모두 환각이다. 우리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이미 우리는 현실과 그것을 구분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우리는 어디라도 호수와 비슷한 곳을 찾아 여행을 가기로 했다. 주말동안 갈 곳으로 선택한 곳은 바다였다. 인천에 가서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으면 상태가 나아질 것 같았다. 우리는 각자 집에서 짐을 챙겨 인천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 배 하나 빌려서 바다로 나가죠. 넓은 바다를 보면 초조함이 조금 나아지지 않겠어요…?” 나는 확신없이 말했다.

 “그래요. 그렇게 해서라도 해서 호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다면…” 지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선영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낡은 어선 하나를 싼 값에 빌려 바다로 가달라고 했다. 어선은 털털거리며 인천 앞바다로 나갔다. 우리는 준비해온 회와 소주를 먹으며 먼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해가 지고 있었다. 태양은 수평선 너머로 넘어가며 바다를 검붉게 물들였다.

 “깊이… 깊이 들어가야 해.” 먼 바다를 향해 한참을 나갔을 때 선영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말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선영아. 여기 호수 아니야. 우리 인천 앞바다 왔잖아. 기억 안나?” 지석이 말했다.

 “숨이 막히지 않을거야… 깊이 들어가다 보면 눈 앞이 하얘지고,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난 거기에 살고 싶어. 영원히. 아름다운 빛의 기둥이 내려오는 게 보여. 최고의 광경들만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이러고 살아야 되는 거지? 현실은 재미없잖아. 안 그래? 그때 우리 발목을 잡은 사람들, 시체 아니야. 괴물은 더더욱 아니고. 그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찾은 사람들 아니야? 거기에는 최고의 순간들, 최고의 장면들, 최고로 아름다운 것들만 있어. 우리는 그런 것들을 보기 위해서 사는 거 아니야?” 선영은 갑자기 뱃머리에 서서 바다를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곳에는 고통도 괴로움도, 무엇보다 지루함이 없어. 우리는 몇 안 되는 최고의 순간을 위해서 기나긴 시간들을 인내하잖아. 그런데, 그러지 않을 수 있는데, 왜 참아야 하지? 왜 고통스러운 일들을 겪어야 하지? 기나긴 소설의 결말만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영원한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왜 우린 고통을 감내하는거야?” 선영은 뱃머리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다. 작은 바람만 불어도,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이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았다.

 “선영씨, 아니에요. 그건 다 환상이라고요. 호수가 우리에게 만들어낸 환각이에요. 그건 삶이 아니에요. 제발, 제발 그러지 말아요.”

 “선영아, 여기 호수 아니야. 호수 아니라고! 여긴 바다야, 너 거기 들어가면 죽어!” 지석은 다급하게 선영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아니, 숨이 차지 않을 거야. 깊이, 또 깊이 들어가다 보면 눈 앞이 새하얘지고, 아름다운 빛의 기둥들이…” 선영은 눈물을 흘리는 한편 확신하는 표정으로 지석과 나를 바라보며 등 뒤로 몸을 던졌다. 선영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바다에 선영이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배 위에는 지석과 나, 그리고 선장만 남았다. 선장은 곧바로 배를 멈추고 구명튜브를 던졌으나 선영은 잡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선영은 그저 바다 깊이, 또 깊이 헤엄쳐 들어갈 뿐이었다.

 

 

 선영의 장례식에는 지석이 오열하는 소리가 가득 찼다. 나는 지석에게 아무런 위로도 건넬 수 없었다. 지석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는 그저 지석의 어깨에 손을 올려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선영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영원한 환상의 세계가 존재하는데 왜 우린 고통을 감내하는거야?’ 영원한 환상의 세계. 고통과 지루함이 없는 세계. 분명히 그곳으로 갈 수 있다. 울다 지쳐서 쓰러져 간신히 눈 만을 뜨고 있는 지석도 그 말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월요일이 되고 나는 회사에 출근했다. 피곤하고 힘이 없었다. 저번 주말은 선영의 장례식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다. 팀장은 한껏 깔린 내 기분을 알아챈 것 같았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아파오고 호수와 지석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선영. 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바다로 나가자고 하지 않았더라면 선영은 죽지 않았을까? 지석이 선영을 방에 가두어서라도 살도록 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호수에 잠식되더라도, 그렇게 해서 마지막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에 온통 휘몰아쳤다. 나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다.

 “야, 너 왜 그래? 요즘 너 어디 이상한 것 같더니… 무슨 일 있어?” 팀장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아뇨… 그냥…” 나는 차마 호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물 속에 직접 들어가보기 전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요즘 환각을 봤어요. 그랬더니 조금 힘드네요.” 나는 그저 내 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환각을 봤다고? 헛것을 보고 뭐 그런 거 얘기하는 거야?”

 “네 뭐… 비슷해요.”

 “그런 거였으면 진작 말을 하지… 너 요새 회사일에 집중 못하는 것 같길래 나는 무슨 일 있나 했지. 무슨 환각을 보는데?”

 “…” 나는 차마 내가 본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대신 팀장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질문했다.

 “팀장님, 삶에 고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만약 고통도 지루함도 없이 즐거운 순간들 만을 보며 살 수 있다면… 팀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 긴 침묵이 흘렀다. 팀장은 내 질문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피우던 담배가 끝까지 타 들어갔을 때 비로소 팀장은 대답했다.

 “글쎄… 나도 오래 안 살아봐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아기 얼마 전에 두 돌 된 거 알지? 남의 아기는 귀엽고 볼 때 기분은 좋지만, 애정은 안가. 그런데 내 자식 낳아보니까,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갖은 고생하면서 키운 자식은 느낌이 달라. 그게 꼭 내 자식이어서 만은 아닌 것 같아. 내가 안 키운 아이가 저글링을 하고 공중제비를 돌아도 그건 최고의 순간이 아니야. 그런데 내가 키운 아기가 한 번 웃는 건 최고의 순간이더라. 즐거움은 고통과 지루함이 만드는 거야. 그렇게 보면 우린 행복하려고 사는 게 아니고 고통받으려고 사는 거지. 아무튼 내 생각은 그렇다는 거야. 나는 그런 거 있어도 그냥 살련다.”

 “…” 나는 그날 퇴근하고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다음날 저녁, 나는 반차를 쓰고 그 날 오후 내내 집에 있었다. 여전히 내 머릿속은 호수에 대한 갈증과 선영에 대한 죄책감이 뒤섞여 혼란스러웠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팀장과 대화한 이후로 나는 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네 지석씨, 몸은 좀 괜찮아졌어요?”

 “네 뭐… 몸은요. 마음은 아니지만.” 지석은 초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잘 추스르고 있으면 점점 나아질 거예요.”

 “우리 호수로 가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우리 이제 안 가기로 했잖아요. 지석씨, 힘들수록 더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해요.” 나는 당황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요. 아는데, 도저히 못 견디겠어서 그래요. 호수는 보고싶은 걸 보여주잖아요. 즐거운 환상 따위를 보고 싶은 게 아니에요. 거기 가면 호수가 선영이도 보여줄 것 같아요. 나는 마음을 정했어요. 마지막으로 호수에서 봐요. 끊을게요.” 지석은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호수로 가야 한다. 나는 곧장 녹음펜션에 전화해 승합차를 보내 달라고 했다. 최대한 빨리. 나는 지석이 지금 슬픔과 고통으로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물 속으로 들어가 선영의 모습을 봄으로서 영원히 선영과 함께하려는 지석을 내가 감히 막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팀장의 말이 떠올랐다. 지루함과 고통이 즐거움을 만든다고,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기 위해 사는 것이라고. 그런데, 지석이 받고 있는 고통은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선영은 이미 죽었고 지석이 그 어떤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선영은 돌아오지 않는다. 승합차는 빠르게 달렸고 나는 짙게 썬팅된 승합차 창문에 눈을 대고 희미하게 보이는 창 밖을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몰래 바라봤다.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지석을 찾았다. 지석은 펜션에 없었다. 나는 곧장 철제 계단을 내려가 호숫가에서 지석을 찾았다. 호수 주위를 한참을 달리자 호수의 물 속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서있는 지석의 모습이 보였다. 해는 이미 지고 호수에는 달빛만이 비치고 있었다.

 “왔어요?”

 “지석씨, 다시 생각해봐요. 이건 답이 아닐지도 몰라요. 내가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일단 살고 보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러나 지석은 이미 마음을 정한 듯 보였다.

 “호수와 하나가 되는 건 죽는 게 아니에요. 당신도 봤잖아요. 그림자들은 분명히 살아 움직이고 있었어요. 그들은 그들 만의 환상을 보고 있는 거예요. 나에게는 이제 방법이 없어요. 삶에 고통이 필요하다고 할지라도, 선영이가 죽은 이상 나에게는 이제 무의미한 고통일 뿐이에요.”

 “선영씨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지석씨 당신이 현실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바랄 수도 있잖아요. 이건 답이 아닐지도 몰라요.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잖아요. 네?”

 “선영이는 죽었어요. 선영이가 원하는 것은 없어요. 곧 없어질 차가운 육체만 있을 뿐. 내가 원하는 것만 있을 뿐이에요. 나는 저 물 속에 들어가서 영원히 선영이와 함께하기를 원해요. 내가 당신에게 전화한 건 궁금해서예요. 과연 당신은 나를 막을 건가요? 강제로라도 나를 현실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가게 할 건가요?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어요.”

 “…”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지석의 말이 맞다. 나에게는 그를 막을 권리가 없다. 그에게 목적 없는 고통을 감내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지석에게 패배한 것이다.

 “잘 있어요. 나 갈게요.” 지석은 그 말을 남기고 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지석이 호수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지만 지석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선영도, 지석도 구하지 못했다. 다음 날 나는 이 모든 일들이 빌어먹을 환상처럼 느껴졌다. 손 끝에 감각이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숙직실로 향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선영과 지석을 생각하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고통이 밀려왔다. 호수가 필요했다. 호수가 보여주는 환상으로 이 고통을 해소하고 싶었다. 나는 숙직실 욕조에 물을 채웠다. 물은 차가웠다. 마치 호수처럼. 나는 점점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머리까지 담갔을 때 눈 앞에 빛의 기둥들이 내려와 일렁이는 것이 보이고 환풍기 소리는 신비롭게 웅웅거리는 소리로 바뀌었다. 숨이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괜찮을 것이다. 깊이, 더 깊이 들어가면 눈 앞이 새하얘지고 아름다운 빛의 기둥들이 내 몸을 감싸리라. 숨은 차지 않을 것이고 눈 앞에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들, 귀여운 동물들, 그림자들과의 동질감, 잔인한 쾌락이 내 눈 앞을 채울 것이다. 숨이 막혀 머릿속의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괜찮았다. 나는 발버둥치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물 속에 들어가 있었다. 눈 앞은 하얘지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을 것이다. 곧 있으면…

 

 누군가가 내 몸을 물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내 어깨를 잡아 물 밖으로 급하게 꺼냈다. 그리고는 나를 바닥에 눕히고 내 가슴을 강하게 눌렀다. 그렇게 수십번을 반복했다. 인공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다시 가슴을 눌렀다. 나는 물을 토하며 정신을 차렸다. 팀장이 나를 물 속에서 꺼냈다. 팀장은 물을 토하는 내 등을 두드리며 정신 차리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손 끝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내 옷은 전부 젖어 있었고 팀장의 옷도 나를 꺼내느라 흠뻑 젖어 있었다. 호수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호수에서의 사건이 있었던 해로부터 15년이 지났다. 나는 그 사이 결혼을 했고, 차를 샀고, 아이를 낳았고, 살아있었다. 그동안 호수에는 다시 가지 않았다. 가끔 녹음펜션의 광고사이트를 검색해본 적은 있었다. 그것은 나타날 때도 있고 사라질 때도 있었으나 몇 년 전부터는 검색해도 나타나지 않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 호수는 어떻게 되었을 지, 아니, 지석은 어떻게 되었을 지. 아직도 그 호수 안에서 선영을 생각하며 환상을 보고 있을까. 나는 이제는 호수에 가봐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호수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석이 어떻게 되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석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호수로 가는 길은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매주 짙은 썬팅으로 가려진 승합차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몰래 나는 창밖을 바라봤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거리, 어렴풋이 기억나는 길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에게 길을 물으며 나는 호수를 찾아다녔다. 나는 얼추 비슷하게 찾아왔다고 생각했으나 주민들은 이 주변에는 호수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호수는 분명히 거기에 있었다. 나는 수풀로 막힌 막다른 도로에 차를 세웠다. 우거진 나무와 풀들이 길을 가로막았지만 나는 수풀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렇게 한참을 산길을 돌아 들어가자 높은 산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목초지가 나타났다. 분명히 호수였다. 멀리 보이는 신비로운 산들로 둘러싸인 절벽의 위로 숙박시설들이 들어선, 짙은 푸른색과 녹색으로 빛나는 호수가 있었던 그 자리가 분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매워진 것처럼 평평한 땅에 짧은 잔디만이 자라 있었다. 나는 절벽의 한 쪽 끝으로 갔다. 녹음펜션이 있던 자리에는 휘어지고 잘린 철근을 드러낸 부서진 콘크리트 블록들 만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절벽으로 다가가자 녹슬어 위태롭게 절벽에 고정된 철제 계단이 남아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나는 잔디밭을 걸으며 지석이 물로 들어갔던 자리를 더듬더듬 찾았다. 그리고 중앙의 섬이었던 언덕을 향해 걸었다. 아마 이쯤, 지석이 있었을 것이다. 나에게 낫을 들고 다가오던 그림자가 되어 호수 밑바닥에 발목을 붙잡힌 채로 있었을 것이다. 환상 속에 갇힌 채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선영을 영원히 추억하면서. 나는 이제 섬으로 걸었다. 물 속에 빠져 한 번도 닿을 수 없었던 섬. 섬에는 낡고 녹슨 쓰러진 철제 대형 간판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환상적인 광경, 천국과도 같은 녹색 호수로 오세요.’

 나는 한참동안 그 간판을 바라보며 선영과 지석을 생각했다. 그리고 삶과 고통, 환상에 대해 생각했다. 구름 사이로 들어온 태양빛은 빛의 기둥을 만들고, 간판과 내 몸, 그리고 지석이 있던 자리를 비추었다.

 

감동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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