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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재앙세계: 어떤 여행

2023.11.24 12:3011.24

  새벽 다섯 시 정각, 언니 현경과 동생 현영 두 자매의 휴대폰 알람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다.

  오늘은 현경과 현영이 그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끝난 뒤로 마침내 해외여행을 가는 날이다. 목적지는 ‘유엔령 러시아 모스크바’. 그들은 부모님을 따라 해외로 여행 가기 시작한 열다섯 살과 열한 살 무렵부터 줄곧 모스크바 ‘성 바실리 성당’을 특히 가 보고 싶어 했다. 이국적인 모습은 물론 마치 다른 행성에 도착한 느낌까지 들 것이라 무척이나 기대했던 것이다.

  물론 부모님은 왜 하필 전범국인 러시아냐며 말렸지만 두 자매는 러시아가 유엔령이 되고 여행 제한에서도 풀린 지 한참이나 지났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현경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방에서 나와 현영의 방 앞으로 간다. 여전히 현영의 휴대폰 알람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현경이 문을 두드린다.

  >>야! 주현영! 빨리 일어나! 늦으면 안 된다고!

  방 안에서 현영이 소리친다.

  >아으⋯⋯ 진짜 이럴래! 늦긴 뭘 늦어! 언제 또 내 알람 시간까지 바꿔 놓은 건데! 어? 아으, 진짜 완전 피곤한 인간이야.

  현경이 방문을 홱 하고 열어젖힌다.

  >>됐고 빨리 준비나 해. 나 면세점 들릴 데 겁나 많다고.

  >그렇게 꾸미면서 도대체 왜 연애를 못 하시는 건지.

  >>한마디만 더 해라, 진짜.

  현영은 언니의 화 마지노선을 알아채고 곧바로 입을 닫는다. 둘은 씻고 나머지 짐을 싸면서 계속 티격태격하다가도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 협정을 맺는다. 현경과 현영은 원래 사과를 깎아 먹고 출발하려고 했었지만 생략하고 화장과 짐을 최종 점검한 뒤 집을 나선다. 빈속은 출국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 가서 채우기로 한다.

  공항에 도착한 현경과 현영은 공항 구경과 출국 수속과 면세 쇼핑을 시작한다. 점점, 녹초가 되어 간다. 두 자매는 쓰러지기 직전에 라운지에 도착한다. 기다렸다가 자리를 배정받고 짐을 대충 던져 놓는다. 그러고는 먹기 시작한다. 계속 먹는다.

  >언니. 시간 얼마나 남았어? 나 또 가져오게.

  >>안 돼. 이제 슬슬 가야 해. 기내식도 있으니까 인제 그만 처먹어. 나중에 속 안 좋다고 징징거리면 그냥 버리고 간다.

  >피붙이한테 말이 심하네. 그럼 나 콜라만 좀 더 마실래.

  둘은 탑승 게이트까지 뛰어간다. 갑자기 게이트가 더 먼 곳으로 바뀌었다. 현영의 속이 니글거린다. 현경도 괜찮은 건 아니다. 화장실 갈 시간이 애매해 그냥 줄을 선다. 거의 마지막 탑승객이다. 현경이 먼저 비행기 안으로 들어서고 현영이 언니를 뒤따르면서 홀로 준비한 인사말을 외친다.

  >즈드라스뜨쁘이째!

  아에로플로트 승무원들도 반갑게 맞아준다. 하지만 언니는 아니다. 현경이 뒤돌아보면서 말한다.

  >>야. 그래도 러시아 말은 아니지. 영어로 해야지, 영어. 아 맞다. 주현영 영어 못하지?

  >웃기시네⋯⋯ 화장실도 급해 죽겠는데. 아니, 저 언니들은 그때 모스크바에서 종전 시위하던 사람들인지 아닌지 그쪽이 어떻게 아시는지? 착한 언니들이면 어쩌려고.

  >>그쪽? 야이⋯⋯ 알았어, 알았어. 이제 여행 시작인데 우리 이러지 말아요, 동생님.

  두 자매는 또다시 평화 협정을 맺고 이 오랜만에 하는 여행의 시작에 재차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둘은 짐을 올리고 좌석에 앉지 않는다. 탑승객과 승무원 사이를 뚫고 화장실로 향한다.

  창가 좌석에 현영이 앉고 그 옆자리에 현경이 앉는다. 둘은 마주 보면서 씩 웃는다. 잠시 뒤에, 비행기가 속도를 높이면서 달리기 시작하고 이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창가 밖을 내다보던 현영이 고개를 홱 돌리고 말한다.

  >언니, 언니. 기내식은 언제 나와?

  현경이 기가 찬 듯 웃으며 대답한다.

  >>진짜 걸신들렸냐. 입 다물고 쉬고 있어.

  저 앞쪽에서부터 승무원들이 기내식을 나눠주기 시작한다. 그런데 조금 뒤 쿵 하고 비행기가 흔들린다. 승무원 중 몇 명이 넘어질 뻔했고 물과 음료수가 좌석과 복도에 조금 쏟아진 듯하다. 이내 방송을 통해 난기류 때문이니 놀라지 말고 안정된 뒤에 기내식을 이어 제공하겠다는 말이 들린다.

  >무섭다. 언니. 완전 놀람.

  >>그러게. 근데 뭐 곧 괜찮아지겠지. 쫄지 마.

  >아, 맞다. 근데 언니 있잖아. 내가 러시아 검색하다가 봤는데 언니 혹시 영구동토층인가? 아무튼 그게 뭔지 알아?

  >>영구 무슨 층? 그게 뭔데? 너 또 무슨 이상한 얘기하려고.

  >답답하다. 진짜.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모르네. 언니, 내 말 잘 들어 봐. 영, 구, 동, 토, 층, 이라고 이게 뭐냐면 일 년인가 이 년 동안 계속 영하의 기온을 유지하는 땅을 말하는 건데.

  >>근데 뭐. 그게 왜.

  >아 씨⋯⋯ 끊지 말고 들어 봐. 어? 아무튼 저쪽에 시베리아 땅은 그 자체가 영구동토층이래. 근데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한참 전부터 계속 땅이 녹으면서 옛날부터 그 안에 있던 그 뭐야, 방사능, 바이러스, 고대 동물 사체 막 이런 게 나오나 봐. 그래서 동물이랑 사람이 죽거나 이런저런 문제가 계속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블라디보스톡 남부에서도 뭔 일이 있었대.

  >>하⋯⋯. 야 주현영 너. 맛집 좀 찾아보랬더니 평생 안 하던 공부를 하셨네? 엉? 왜, 언니가 손뼉이라도 쳐 주리?

  >비아냥 개쩌네. 그래서 전혀 안 궁금하다 이거임?

  >>솔직히, 아주 매우 약간 궁금하긴 하다. 근데 블라디보스톡이 시베리아야? 그럼 우리나라랑 시베리아랑 완전 가까운 거네.

  >음⋯⋯ 맞으니까 뭔 일이 생겼겠지. 나도 몰라, 정확한 건.

  >>그래 아무튼.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때 저 앞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두 자매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기내식 제공이 재개되었다. 둘은 눈을 동그랗게 하고 서로를 바라본다. 현경이 다시 말한다.

  >>근데 여기까지 오려면 좀 걸리겠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서 그 뭐야, 블라디보스톡 남부에 루스키섬이라고 있는데 거기 노빅인가 누빅인가 아무튼 무슨 해변에⋯⋯.

  >>해변에 뭐? 야. 갑자기 왜 끊어. 끊지 말고 말해.

  >그게 그러니까 진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새 떼가 해변에 죽어 있었대. 그것도 동일한 종류의 새들이. 해변가를 전부 뒤덮을 만큼 죽어 있더래. 근처 휴양지 시설에 근무하는 한 직원이 발견했다나 봐.

  >>으⋯⋯ 징그러⋯⋯.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는 밝혀냈대?

  >뭐 일단, 아직 근본적인 원인까지는 모르나 봐. 그래도 유엔평화대⋯⋯ 극동캠퍼스? 아무튼 거기 연구진이 직접적인 원인은 찾아냈는데 이건 완전 더 징그러워.

  >>⋯⋯뭔데 그게.

  >이 새들이 무리 속에서 서로서로를 공격했던 흔적을 발견했다는 거야. 쪼고, 물어뜯은 흔적을 말이야.

  두 자매가 여태껏 나눈 이야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어느덧 승무원이 다가섰다. 승무원은 그들에게 ‘비프’와 ‘치킨’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말한다. 현경과 현영은 동시에 대답한다.

  >>>비프, 플리즈. 스파시바.

  >>치킨 먹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못 먹겠다. 날개⋯⋯ 어우, 생각만 해도 메슥거리네.

  >뭐 그렇게 됐네 언니. 그냥 비프 맛있게 드셔. 아무튼 언니, 완전 무섭지 않아?

  >>무섭긴 뭐가 무서워. 거기랑 모스크바랑 얼마나 먼데. 전혀 상관없을걸? 암튼 먹기나 해, 이 쫄보야.

  둘은 기내식을 다 먹고 커피를 기다리는 도중에 잠이 든다. 현영은 그대로 기절한 듯한 자세다. 하지만, 현경은 아니다. 괴로운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꿈틀거린다. 악몽이라도 꾸는 걸까.

 

  현경은 황량한 잿빛 땅을 홀로 걷고 있다. 움푹 팬 땅과 불쑥 튀어나온 땅을 피하면서 걷고 있다. 땅을 밟을 때마다 푸석거리는 소리가 난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뭔가가 발에 챈다. 그것은 뼈다. 동물의 것과 사람의 것이 함께 나뒹굴고 있다.

  아무리 소리쳐 봐도 소용없다. 현경은 지금 철저히 혼자다. 주위에는 어떠한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저편으로 높고 낮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루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경은 다가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느덧 다다른 도시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도시다. 껍데기는 있지만 알맹이는 전혀 없다. 껍데기마저 기울고 뒤틀리고 주저앉은 것도 있다. 현경은 걸음을 옮긴다. 또다시 수많은 뼈들이 발에 채기 시작한다. 도시의 건물들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현경은 재차 소리친다. 그러나 목소리는 홀로 울려 퍼지기만 할 뿐이다. 현경은 체념한 듯 그대로 눈을 감는다.

 

  다시금 쿵 하고 비행기가 흔들린다. 현경이 깜짝 놀라면서 눈을 뜬다.

  >언니! 깼어? 악몽 같은 거 꾼 거야?

  현경이 몇 차례 숨을 몰아쉰다. 띵, 동.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경고음이 울린다. 현영은 자신의 착용을 얼른 끝내고 언니를 도와주면서 다시 말한다.

  >저기요, 손님. 정신 좀 차리셔요.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 인상을 엄청 쓰던데.

  현경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한다.

  >>네 덕에 치킨도 못 먹었는데 악몽까지 꿨네. 영구동토층인지 뭔지 그 얘길 들어서 그런지 아주 그냥 세상이 망하는데 혼자 있는 꿈을 꿨지 뭐야. 와씨, 대박 리얼해.

  >아, 궁금하다. 무슨 내용인지. 언니 혹시 쉬 싼 거 아냐?

  >>미친⋯⋯ 그 입 좀 다물고 거기 영화나 봐.

  두 자매는 영화도 보고 모스크바 여행책도 보고 여행 계획도 점검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물론 또 한 번의 기내식도 든든히 챙겨 먹는다. 그리고 마침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들리자 기뻐한다. 현경은 순간 꿈 생각이 났지만 무시하려 애쓴다.

  공항에서의 지루한 절차를 모두 마치고 그들은 ‘아에로익스프레스’에 오른다. 열차는 공항을 떠나 모스크바 시내로 향한다.

  >언니. 신이 난다, 신이 나! 그치?

  >>진짜 얼마 만에 외국 땅을 밟는 거냐. 현영아, 우리 숙소 체크인한 다음에 유럽몰 가서 환전하고 쇼핑하고 밥 먹기로 했지? 그러고 저기 모스크바강변 산책하고?

  >응, 언니. 그러고 내일은 조식 먹고 바로 성당으로 가고. 드디어 간다, 가. 언니. 나 떨려.

  현경이 웃음을 지으면서 반대편 창가 쪽을 한번 보고 열차 내부도 둘러본다. 그러다 사선 방향 위,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다. 곧바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색깔은 노란색으로 길이는 엄지손가락만 하며 너비는 지렁이 정도인 벌레 두 마리가 천장에 붙어 앞으로 기어가고 있다. 현경이 보기에 뒤에 있는 것이 앞엣것을 쫓고 있는 듯하다.

  순식간에, 뒤엣것이 몸집을 부풀리며 앞엣것을 덮친다. 그런데 이제는 두 마리가 아니다. 한 마리다. 덮친 게 아니라 삼켜 버린 것이다. 뒤엣것의 너비가 엄지손가락만 해지더니 서서히 원래 너비로 돌아온다.

  현경이 시선을 고정한 채 급하게 현영을 부른다.

  >>야, 야. 주현영. 저것 좀 봐봐. 빨리.

  그때 하나가 된 노란색 벌레가 천장 틈 사이로 사라진다.

  >왜? 뭔데?

  현경이 허탈해하면서 말한다.

  >>아니, 천장에 이상한 똑같은 벌레 두 마리가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 있던 게 앞엣것을 잡아먹더니 바로 사라졌어.

  현영이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언니 옆에 더 달라붙어서 말한다.

  >내가 아는 사람 건너 건너서 들었는데 여기 대학 기숙사 중에 바퀴벌레 안 나오는 데가 없대. 무슨 사람들 다 아는 약이 있는데 그걸 뿌려서 근처에 못 오게 하는 게 최선이라나. 아무튼 관리 차원에서 뭔가 문제가 있다나 봐.

  >>근데. 그게 왜.

  >왜라니? 언니가 본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잊어버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별것도 아닌 거에 여행 무드가 깨지면 안 되잖아.

  현경은 알았다고 대답하고 잠시 눈을 감는다. 그러고는 ‘성 바실리 성당’을 떠올린다.

  그 뒤로 두 자매는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고 여행의 첫째 날을 마감한다. 신축 호텔이라 다행히 룸 컨디션은 좋다. 현경은 이미 잠든 현영을 잠시 바라봤다가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순간, 이번에는 잿빛 땅에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곧 잠이 든다.

 

  현경과 현영은 조식 마감 시간을 사십 분여 앞두고 일어난다. 여독으로 에너지 충전이 필요했던 탓이다. 둘은 대충 옷만 갈아입고 허겁지겁 식당으로 내려간다. 크레페와 캐비어를 엄청 떠서 먹는다. 배가 조금 불러올 때쯤에야 예쁜 식기와 작은 궁전 같은 식당 내부가 보이고 그곳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이 들린다.

  두 자매가 웃는다. 늦게 일어난 것에 비해 든든히 배를 채운 탓도 있지만 그들은 이제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지우러 갈 참이다.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다. 둘은 다시 허겁지겁 방으로 올라가 본격적인 여행의 시작을 준비한다.

  현경과 현영은 ‘붉은 광장’ 한가운데를 걷고 있다. 저편으로 그토록 바라 왔던 ‘성 바실리 성당’이 보인다. 믿을 수 없게도 광장에는 거니는 사람들이 많이 없다. 그래서인지 주위는 조용한 편이다. 둘은 이때다 싶어 사진을 여러 장 찍고는 성당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다 현영은 참지 못하고 달려간다. 잠시 뒤 현영은 뭔가를 보더니 뒤로 돌아서서 언니에게 소리친다.

  >언니! 언니! 오늘 문 닫⋯⋯.

  >>뭐? 뭔 소리야.

  현경은 설마 하면서 현영에게 달려간다. 현영 앞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영어와 러시아어로 ‘임시 휴관’한다는 메시지가 떡하니 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임시 휴관을 왜 하는 건데. 아이씨⋯⋯ 진짜 짜증나⋯⋯.

  그때, 안내판 한참 뒤에 서 있는 성인 남자 두 명이 두 자매를 쳐다본다. 곧 현경과 눈이 마주친다. 현경이 그 사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한다.

  >>오픈 투마로우? 오픈 투마로우?

  두 남자 모두는 쳐다만 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미동도 없다. 대신에 어딘가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뒤쪽 아니, 오른쪽이다. 성인 여자 한 명이 두 자매를 향해 오픈 투마로우 라고 계속해서 외치면서 지나가고 있다.

  >>우리한테 말하는 거지? 응? 내일 성당 연다고? 스파시바! 땡큐! 야, 너도 빨리 해.

  >스파시바! 땡큐!

  >>와, 감동. 완전 친절하시다. 저 봐. 끝까지 인사하시네?

  >진짜. 근데 저 이모? 아주머니? 아무튼 키 완전 크다. 그치?

  현경은 고개를 몇 차례나 끄덕거린 뒤에 저편에 두 남자와 성당 앞 동상을 차례로 보고는 말한다.

  >>근데 진짜 웃긴다. 저 사람들한테 내가 무슨 못 할 말이라도 했냐고. 그걸 대답을 안 해줘? 참나. 야, 이 동상은 포즈라도 잡고 있지, 쟤네는 멀뚱히 서서 뭘 한대?

  >언니. 진정 좀 하셔. 근데 저 아저씨들 좀 무섭다. 입은 옷도 특이하고 이상해. 아니, 지금 여기 분위기가 대체로 이상해. 그렇지 않아? 아까 그 키 큰 이모만 빼고.

  >>음, 그런 것도 같고. 아무튼 인제 어쩌지? 배는 아직 안 고프지?

  현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현경이 휴대폰 지도 앱을 켜고 살펴보기 시작한다. 현영은 주위를 둘러본다. 여전히 오가는 사람은 적고 오묘한 분위기다.

  >>현영아, 이렇게 할까? 여기 성당까지 왔으니까 외관만 둘러보고 내부는 내일 다시 와서 보자. 그리고 오늘은 내일 일정을 몇 개 당기면 될 거 같은데 저기로 조금만 가면 자라? 아니, 자, 랴, 지예라는 공원이 있어. 무슨 스카이워크 같은 것도 있고 그래. 아무튼 거기 구경도 할 겸 가서 쉬면서 오늘 일정을 다시 짜는 거지. 어때.

  >좋아. 나 스카이워크에서 사진 좀 많이 찍어줘. 프사 하나 나올 거 같은데?

  두 자매는 성 바실리 성당 밖을 한 바퀴 쭉 돌면서 외부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다. 아까 두 남자처럼 이상한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은 없는 듯하다. 그저 주위에 사람이 적을 뿐이다. 현경과 현영은 성당의 아름다움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어렸을 적 꼭 와보기로 약속했던 때를 이야기하며 웃는다.

  이제 그들은 ‘자랴지예’ 공원으로 향한다. 이곳도 전혀 붐비지 않고 있다. 생각보다 더 크고 좋아 보이는 공원의 모습에 여기저기 둘러보고 공연장 벤치에서 쉬기로 한다. 스카이워크에서 사진을 실컷 찍으면서 모스크바 시내의 전망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공원 중앙부를 돌아서 다시 공연장 쪽으로 가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나 있어서 헷갈린다.

  두 자매는 길을 잘못 들어 중앙부 속에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선다. 낮인데도 나무가 해를 가린 탓인지 주위는 어둡다.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나가는 길을 찾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다. 다만 현경과 현영의 눈이 어둠에 점점 적응해 가기만 할 뿐이다.

  >언니⋯⋯. 저것 좀 봐. 저런 나무도 있어?

  동생 앞에서 무서워하는 티를 안 내려고 노력 중인 언니가 동생이 가리키는 곳을 본다.

  한 나무의 뿌리가 일부 밖으로 빠져나와 길게 가로로 뻗은 곳은 옆 나무의 줄기다. 옆 나무는 줄기 굵기가 더 작고 전체적으로 곧지 못하다. 아예 뒤틀어져 있다는 표현이 제일 적합해 보인다.

  >>저게 뭐야⋯⋯. 옆 나무에 뿌리를 내린 거야?

  >으. 좀 징그럽다, 언니. 쟤가 쟤를 잡아먹는 거 같잖아. 봐, 삐쩍 말랐어.

  순간, 현경의 머릿속에 ‘노란색 벌레’ 두 마리가 떠올라 기어다닌다. 현경은 곧장 머릿속을 헤집어 벌레들을 없애 버린다. 그러고는 말한다.

  >>현영아, 완전 찝찝한데 빨리 나가자. 근데 대체 나가는 길이 어디야?

  둘은 나가는 길을 찾으려 두리번거린다. 헤매기 시작한다. 자신들도 모르게 방금 봤던 두 나무 옆을 스쳐 지나간다.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나무는 더 커지고 우거진다. 어느새 두 자매의 사방이 나무들로 가로막힌다.

  >>현영아, 현영아⋯⋯. 야, 주현영!

  >아 왜 자꾸 불러 정신없게! 이건 또 뭐야. 내 옷 좀 놔. 언니 무서워?

  >>무섭지 그럼 안 무서워? 사방에 얘네들 좀 봐봐⋯⋯ 다 똑같아. 싹 다 옆으로 뿌리를 뻗고 있잖아. 너도 보고 있지?

  현영은 사실 자신도 무서워하고 있었고 애써 땅바닥을 보면서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현영이 마음을 가라앉히면서 주위를 살피기 시작한다.

  크기가 좀 크다 싶은 나무는 모조리 옆 나무에 뿌리를 박고 있다. 나무가 나무를 잡아먹고 있다. 동생이 언니의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무작정 한 방향으로만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빽빽이 서 있는 나무들 탓에 뛰어갈 수는 없다.

  그때 저편으로 밝아지는 곳이 있다. 나무가 없는 곳이거나 구름이 걷혀 해가 들어오는 곳일지도 모른다. 두 자매는 더 빨리 걷는다. 그런데 갑자기 현영이 속도를 낮춘다. 잠시 뒤 말한다.

  >언니, 이, 이건⋯⋯ 옆으로 뻗고 또 옆으로 뻗고 또 옆으로 뻗고⋯⋯. 네 그루가 얽혀 있어. 그냥 여기 나무들이 서로서로를 죽이고 있어.

  >>현영아. 알겠으니까 얼른 가자. 저기로 가면 되겠지? 응?

  현경과 현영이 밝은 곳에 다다를 때쯤 그들의 눈에 햇빛에 비친 뿌리 한 가닥이 박힌 작은 나무 하나가 보인다. 바싹 메말라 애처롭다. 둘은 머리를 흔들고 다시 속도를 높인다. 저 앞으로 허리 높이의 띠가 보인다. 띠는 양옆으로 쭉 뻗어 있다.

  >언니! 저기 보이지? 우리가 무슨 출입 금지 구역 같은 데 들어왔나 봐. 얼른 나가자.

  >>응. 이제 됐네.

  드디어 그곳을 빠져나온 두 자매는 무작정 달리기 시작한다. 그곳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 아무 데로나 갈 참이다. 한참을 뛰어온 탁 트인 곳에 벤치가 여러 개 있다. 둘은 한 벤치에 나란히 앉는다. 그러나 곧 현경이 말한다.

  >>현영아. 우리 그냥, 공원에서 아예 나가자. 나가서 쉬자.

  >그래, 언니. 나가자.

  그렇게 현경과 현영은 공원에서 벗어난다.

 

  두 자매는 성 바실리 성당을 지나 붉은 광장 어딘가를 걷고 있다. 잠깐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한 탓이다. 현영이 입을 연다.

  >언니. 나 다리 아프고 배까지 고픈데. 언니는 어때.

  >>나도 그래. 음⋯⋯ 잠깐만.

  현경이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다시 말한다.

  >>그럼 저기 굼 백화점으로 가자. 왜 삼 층에 무슨 맛집 찾아 놓은 거 있었잖아. 거기 가서 뭐 좀 먹고 어디로 갈지도 정하고.

  >아, 거기 뷔페식당? 좋지. 빨리 가자.

  둘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다. 내부는 붐비지 않고 있다. 손님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이제 현경과 현영은 잠시 멈춰 서서 계속되는 이런 모스크바 중심가의 모습이 점점 더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조금 전 공원의 나무들이 떠오른다. 두 자매의 시선이 마주친다. 현영이 말한다.

  >왜 언니. 무슨 생각 하고 있어?

  >>생각은 무슨. 그냥 잠깐 둘러본 거야. 배고프지? 얼른 올라가자.

  그들이 식당에 들어선다. 역시나 한산하다. 대충 자리를 봐 두고 음식을 고르러 간다. 종업원들의 표정이 어둡다. 예전에 러시아 사람들이 잘 지었다던 그 표정과는 또 다르다. 몇몇은 아예 핏기가 없어 보일 정도다. 현경과 현영은 그들과 되도록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 한다. 음식을 다 담고, 계산을 한다. 그러고는 자리에 앉는다. 둘은 별달리 사진도 찍지 않고는 그저 조용히 먹기 시작한다. 이내, 현영이 침묵을 깬다.

  >언니.

  >>왜.

  >오늘 무슨 날이야? 사람들 다 어디로 갔대? 망할 코로나에 전쟁도 끝났는데 도시 봉쇄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닐 거고. 그렇게 치자니 사람들이 아예 없지도 않고. 키 큰 이모도 만났고 말이야. 근데 분위기는 묘하고. 아까 그 공원 나무는 또 뭐냐고. 무슨 이상한 실험하나? 숨은 전범자들이?

  >>실험은 무슨 실험이야. 쓸데없는 소리⋯⋯.

  >잠깐. 나 아직 말 안 끝났어. 사실, 아까부터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 왜 내가 말한 새 이야기 기억나지? 영구동토층 말하면서 얘기한 거. 근데 봐봐⋯⋯ 아까 그 공원에 나무랑 비슷하잖아. 아니네. 완전 똑같네. 세상에⋯⋯ 어, 언니가 본 거. 그것도 있잖아. 벌레! 싹 다 똑같잖아!

  >>똑같긴 뭐가 똑같아! 여긴 모스크바라고. 아, 모르겠고. 조금 그런 게 있긴 해도 자꾸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 못 하지. 고생하면서 준비한 거 생각 안 나? 여기 오려고 우리 얼마나 기다렸어. 새는 새고, 벌레는 벌레고, 나무는 나무다⋯⋯ 이렇게 생각해. 뭘 어쩌겠어.

  >웃기시네. 언니 아까 무섭다고 나한테 매달렸잖아. 기억 안 나?

  현경과 현영은 멈추지 않고 티격태격하다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한다. 조식을 먹을 때와는 분위기가 정반대다. 그래도 둘은 각자 나름대로 속에서부터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잠시 뒤 현경이 현영을 한 번 힐끔 보고는 말한다.

  >>자, 이제 밥도 거의 다 먹었고⋯⋯. 내일 오후나 저녁 일정 중에서 뭘 제일 하고 싶어? 그 여행 플래너 좀 켜 봐 현영아.

  >응.

  현영은 플래너를 켜고 일정을 훑어본다. 그런데 점점 표정을 일그러트린다. 고개를 비스듬히 하고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언니. 무슨 소리 안 들려? 강아지 짖는 소리 같은데.

  >>어, 어. 들려. 들리네. 이 백화점엔 반려동물 데리고 들어올 수 있나 봐. 좋다.

  현영이 고개를 몇 차례 갸웃거린다. 그러고는 말한다.

  >그냥 짖는 소리가 아닌 거 같은데⋯⋯.

  곧 현경도 그것이 심상치 않은 소리임을 알아차린다. 식당의 직원들이 웅성거리고 그중에 일부가 식당 밖으로 나간다. 이제는 강아지 몇몇의 울음소리가 아니다. 거의 한 무리가 내는 소리다. 두 자매도 식당 밖으로 나간다. 그러고는 난간에 허리를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개가 개를 공격한다.

  한 개가 다른 개를 물어뜯는다. 다른 개가 쓰러진다. 그 옆에서는 서로서로를 물어뜯고 있다. 또 그 옆에서는 네다섯 마리가 뒤엉킨다. 또 그 옆에서는 열댓 마리가 뒤엉킨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는 한 개가 다른 개에게 쫓기고 있다.

  >언니.

  현경은 현영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언니, 언니!

  현경이 현영을 쳐다본다.

  >언니. 짐 챙겨. 여기서 나가자. 당장 나가야 해.

  >>아, 알았어. 근데 저게 다 뭐야⋯⋯. 백화점 한복판에 웬 개떼가⋯⋯.

  >언니! 이따 얘기해. 빨리 움직여!

  동생은 언니를 잡아끌고 식당 자리로 간다. 내부는 혼란스럽다. 각자 가방을 챙긴다. 동생이 말한다.

  >언니. 일단 식당에서 나가서 저 반대편 끝까지 뛰는 거야. 그러고 바로 일 층으로 내려가서 밖으로 나가자. 이쪽에만 개들이 몰려 있는 거 같으니까. 알겠지? 딴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뛰어.

  >>사람도 공격할까?

  >나도 모르지! 아 빨리 가자니까. 정신 좀 차려!

  현경과 현영은 뛰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한 사람을 지나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사람도 지나친다. 계단을 차례로 밟지 않고 몇 개씩 통째로 묶어 뛰어 내려간다. 곧 일 층에 다다른다. 개와 사람의 발악하는 소리가 섞여서 울려 퍼지고 있다. 두 자매는 출구를 찾아 헤맨다. 바로 근처에 있었지만 당황한 둘은 꽤 헤매다 찾는다. 그러나 찾은 것은 출구뿐만이 아니다.

  출구 옆 구석에 몸통에서 피를 흘리는 강아지 한 마리가 비틀거리고 있다.

  그 모습을 목격한 현경과 현영은 출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발악하는 소리가 점점 더 커진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데리고 가자.

  >>쟬 지금 어떻게 데려가, 어쩌려고.

  >몰라! 그렇다고 그냥 가? 언니도 못 나가고 있잖아!

  현경이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강아지 몸통을 붕대처럼 묶는다. 으르렁대는 강아지를 현영이 들어 안는다. 곧 강아지는 으르렁거림을 멈춘다.

  현경이 앞장서고 현영은 강아지를 안은 채 뒤따른다. 백화점 밖으로 나오니 구급차와 경찰차 여러 대가 온 것이 보인다. 현경과 현영은 상처 입은 강아지를 위해 도움을 청하려 다가가다가 이내 멈춘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 이 작은 강아지가 치료를 위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감이 전혀 오지 않은 탓이다. 그리고 다행히 피는 조금 멈춘 듯하다.

  두 자매는 방향을 틀어 붉은 광장을 가로질러 일단 굼 백화점에서 최대한 멀어지기 시작한다.

  현경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다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한다.

  >>동물 병원이 이 근처나 좀 더 가서도 있긴 있는데, 아이씨⋯⋯ 죄다 문 닫았어. 어쩌지?

  어째야 할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 건 현영도 마찬가지다.

  현경이 다시 말한다.

  >>우리, 숙소로 가자. 거기 직원한테 좀 도와 달라고 하는 거야. 만약에 안 도와주면 병원 문 연 데라도 알려달라고 하자. 그리고 가능하다면, 망할 이게 다 무슨 일인지도 알아보고.

  >응, 언니. 그게 좋겠다.

  두 자매는 택시를 잡으려고 큰 도롯가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때, 뒤쪽 붉은 광장에서부터 무슨 소리가 들려온다. 다급히 뛰는 소리다.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저만치서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필사적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런 그를 누군가가 뒤쫓고 있다. 서양인이다. 필사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현영의 품에 있는 강아지가 기운이 거의 없으면서도 짖으려고 낑낑거리기 시작한다.

  놀란 현영이 강아지를 달래 진정시키면서 현경에게 속삭인다.

  >언니. 저 기둥 뒤에 숨자. 뛰지 말고 걸어.

  둘은 커다란 건물 입구 기둥 뒤에 숨는다. 강아지는 조용히 안겨 있다. 현경이 붉은 광장 쪽을 조심스럽게 한 번 살핀다. 쫓고 쫓기는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현영이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없어, 이제?

  현경이 고개를 끄덕인다.

  현영이 다시 말한다.

  >여기도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분명히⋯⋯. 숙소는 안전할까?

  >>너 또 무슨 소리야. 지금 숙소 가는 길이잖아.

  >아니⋯⋯ 그러니까 그게 소용이 있을까 해서⋯⋯. 방금 봤잖아. 개든 사람이든 멀쩡한 채로 공격했잖아. 그 뭐야, 무슨 좀비 같은 게 아니라고. 허, 미친⋯⋯ 좀비라니. 내가 뭔 소릴 지껄이는 거지?

  >>주현영. 정신 차려! 여긴 진짜야. 그냥, 뭔가 이상할 뿐이지. 어쨌든 빨리 여기서 벗어나자.

  둘은 강아지와 함께 다시 큰 도롯가로 향한다. 그러면서 지금 걷는 인도 왼쪽에 일렬로 서 있는 나무들 때문에 위압감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다. 인도 끝자락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한다.

  누군가가 피를 흘린 채 앞으로 고꾸라져 있다.

  현경이 머뭇거리다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아 유 오케이, 하고 묻지만 조금의 미동도 없다. 용기를 내어 한 발짝만 더 다가간다. 두 눈은 뜨고 있지만 눈동자에 생기는 없다.

  현경은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워한다. 이어서 현영도 굳이 확인하려 들자 현경이 말린다. 강아지가 현영의 품에서 살짝 꿈틀댄다.

  두 자매는 다시 큰 도롯가를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한다. 주변에 사람도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사람도 두 자매를 신경 쓰고 있지 않지만 둘은 본능적으로, 뛰어서 소리를 내거나 위치를 들키지 않도록 애쓴다. 이내 탁 트인 공간에 접어든다. 잠깐 속도를 줄이면서 주위를 살핀다. 곧 현경이 뭐라도 본 건지 현영의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리면서 말한다.

  >>현영아, 현영아. 저기 그분 아니야? 키 큰 이모.

  현영은 현경과 함께 그 사람을 바라본다. 그때 그 얼굴이 확실하다. 그러나 뭔가 느낌이 다르다. 어떤 알 수 없는 기운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갑자기 그 사람이 두 자매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그때와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그 안은 완전히 다른 존재인 듯하다.

  >언니. 뛰어.

  강아지를 안은 동생이 언니의 윗옷을 끌어당기면서 달리기 시작한다. 언니도 따라서 달리기 시작한다. 저 앞으로 큰 도로가 보인다. 키 큰 이모는 속도를 낮추지 않는다. 무언가에 조종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달려온다.

  계속 달린 두 자매는 도롯가에 닿는다. 몇 대의 차가 지나간다. 그들과 그 사람의 거리가 더 좁혀진다. 저 앞 도로 중앙 위에 멈춰 있는 차 한 대가 보인다. 현경과 현영은 무작정 도로 위로 뛰어든다. 다가오던 차가 둘을 피하려고 도롯가 쪽으로 방향을 급히 꺾으면서 인도를 타고 올라온다. 두 자매를 쫓던 그 사람을 친다.

  멈춰 있는 차는 버려진 차다. 운전석이 살짝 열린 채로 있다. 현영이 말한다.

  >언니, 얘 좀 안고 옆에 타.

  >>뭔 소리야. 너 운전해?

  >해. 어휴, 잘 좀 안아 봐. 빨리 옆에 타서 길 알려 줘.

  현영이 어설프게 시동을 건다. 그들이 그곳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최대한 멀리 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향한다. 현경에게 힘없이 안긴 강아지가 쥐어 짜내듯 으르렁댄다.

  >>도대체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어. 근데 어쨌든 시베리아만 이상한 게 아니고 여기도 뭔 일이 생긴 게 분명해. 우리 여기서 나가자. 응? 러시아에서 나가자고.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그럼 얘는 어쩌고? 어쨌든 일단 숙소로 가야지. 그래야 이것저것 처리하고 짐도 다 거기 있는데.

  >언니. 돈이랑 여권은 있잖아? 그치?

  >>그래. 다 챙겼잖아. 그래서 뭐. 어쩌게.

  >일단 공항으로 내비 찍어 줘. 그거 구글 맵으로 하면 되잖아. 바로 비행기 타러 가자. 가면서 언니가 일정 변경 같은 거 좀 해 주라. 그리고.

  >>그리고?

  >가는 길에 문 연 동물 병원 있는지도 좀 찾아 줘. 빨리 상처 소독도 하고 뭘 해야 할 텐데.

  강아지를 품고 있는 현경의 표정이 굳어진다. 그러고는 일정 바꾸는 거야 어떻게든 해 보면 될진 몰라도 짐이며 예약한 거며 모조리 다 버리고 갈 상황이 맞는지 무엇보다, 우연히 구한 강아지를 언제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어디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이내 덧붙인다.

  >>대사관으로 갈까?

  현영이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언니, 그것도 나쁘진 않은데⋯⋯ 중요한 건 우리가 거기 상황을 모르잖아. 혹시 가까이 있다고 해도. 솔직히 지금 공항 상황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긴 한데 그래도 거길 가야 여기서 아예 나갈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리고 걔⋯⋯. 나도 잘 모르겠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도 어쨌든 놓고 갈 수가 없는데 어떡해.

  현경이 내비게이션 도착지를 공항으로 설정한다. 그러고는 경로상에 있는 동물 병원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일단 그대로 계속 직진하면 돼. 병원은 가는 길 주위에 제법 있긴 있는데, 문 연 곳을 찾아야 하니까⋯⋯. 근데 있지 현영아.

  >왜? 왜, 언니.

  >>그, 그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아니 그 전에, 어떻게 된 걸까? 우리가 잘못 본 건 아니겠지? 우리는 어쩔 수 없었잖아. 그치? 진짜 무서웠어. 막 달려오는데⋯⋯. 근데 경찰이 우릴 만나면 어떻게 할까? 우리 말을 믿어 줄까? 누구한테 이유도 모른 채로 쫓기다가 어쩔 수 없이 차를 빌린 거라고 하면 믿어 줄까?

  >언니! 정신 차려! 아까 나무 사이에서 봤잖아. 나도 살짝 봤어.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여기서⋯⋯. 언니. 비행기 시간이랑 병원 빨리 알아봐 줘. 그런 건 언니가 잘하잖아. 딴생각하지 말고. 그리고 언니.

  >>응?

  >나도 무서워 미칠 거 같아. 우리 빨리 얘 치료시키고 비행기 타러 가자.

  그러면서 현영은 액셀러레이터를 더 강하게 밟는다. 옆에서 현경은 나지막이 으르렁거리는 강아지를 살짝 더 세게 품에 안는다.

 

  해가 지기까지 아직은 두세 시간이 남았지만 그들이 가는 길은 유난히 어둡다. 팔차선 도로 위에 차는 거의 없고 인도 위 사람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조수석에 앉은 현경이 고개를 앞으로 뺀다. 그러면서 턱을 쭉 뻗어 뭔가를 가리킨다.

  >뭐 해? 왜, 왜. 뭐 있어?

  >>또 누가 막 뛰어가. 근데 그 앞에도 누가 뛰고 있어. 자, 잡힐 거 같은데⋯⋯.

  >어디? 누가 잡히는데?

  현경은 두 눈을 떼지 못한다. 현영이 언니의 시선이 향한 곳을 찾아내고 차 속도를 조금 줄인다. 두 자매는 달리는 차 오른쪽 뒤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본다. 뒤에서 쫓아가던 검은 머리 사람이 노란 머리 앞사람 뒤통수를 내려친다. 앞사람이 그대로 고꾸라진다. 현영이 고개를 다시 정면으로 돌리자마자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산속에나 있을 법한 사슴으로 보이는 동물이 아슬아슬하게 차 앞을 스치며 뛰어간다. 피를 흘리면서 도로를 가로지른다.

  >>현영아, 현영아.

  현영은 현경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는다. 기분 나쁜 굉음 소리가 울리자 반대편 인도 위 누군가가 뒤를 돌아본다. 현영은 더 세게 밟는다. 그렇게 한참을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 큰 사거리를 지나고 난 뒤부터 같은 방향 도로에 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영은 문이 모두 잘 잠겨 있는지 또 확인한다. 옆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속 사람들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키 큰 이모’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언니. 괜찮아?

  >>응, 그럼. 괜찮지. 근데⋯⋯.

  >아까 그 일. 그거 말하려는 거지.

  >>그 일뿐만이 아냐. 붉은 광장에서 쫓고 쫓기던 사람들, 시, 시체⋯⋯. 우릴 쫓아오던 키 큰 사람, 그리고 아까 그 사람들⋯⋯. 대체 뭐지. 사람이 사람을 해치려는 거긴 한데 이유도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해. 근데 또 뭐가 어떻게 이상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설명을 할 수가 없어.

  현영이 한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고 말한다.

  >사람만 그러는 게 아니잖아. 새가 새를, 나무가 나무를, 개가 개를. 공격하고 죽이고 있어. 아, 그 벌레도. 근데 그게 다가 아닐지도 몰라.

  >>동일한 종끼리⋯⋯ 서로서로를 없애는 건가. 스스로 자멸하고 있다고? 왜?

  >⋯⋯영구동토층. 그거야. 그게 녹아서 뭔가가 나왔고 이 땅 전체가 오염되고 있는 거야.

  >>그럼 지금 우리 주위에 이 많은 차들은 모두 우리처럼 탈출, 하는 중인 거네.

  >언니. 긴장 놓지 마. 겉모습만 봐선 알 수가 없어. 어떤 상태인지. 근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왜. 말해 봐.

  현영이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고는 말한다.

  >아니. 길이 점점 막히고 있잖아. 공항까지 별일 없이 갈 수 있을까. 거긴 어떤 상태일지 모르겠네. 병원은 아예 못 들르는 거 아냐? 아이씨 미치겠네⋯⋯. 걔도 진짜 악착같이 버티는 거 같은데. 그리고 있잖아. 만약에, 만약에 비행기를 못 타면 그땐 어떡하지. 엄마랑 아빠⋯⋯.

  >>아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현경은 짧게 대답하고 그 뒤로 말이 없다. 그들이 탄 차는 속도를 더는 높이지 못한 채로 움직이고 있다. 현영도 말이 없다. 적막감이 자동차 안을 채우기 시작한다. 현영이 미간을 일그러트린다. 그러고는 잠시 뒤 입을 연다.

  >언니. 이대론 안 되겠어. 다른 길 있는지 좀 찾아줘.

  현경이 지도를 검색하기 시작한다. 인터넷 속도가 유난히 더 느려진 것 같다고 느낀다. 곧 언니는 동생에게 찾은 길을 알려 준다.

  >>삼 킬로 정도 가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자. 조금 더 걸리긴 해도 차가 별로 없는지 파란색으로 나오네. 주위에 병원도 있어! 이걸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시 알려 줄게.

  >응, 언니. 일단 가 보자.

 

  두 자매가 선택한 다른 길은 상황이 조금은 더 나은 편이다. 현영과 현경은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병원까지 들를 수 있다는 믿음을 더 가진다. 현영이 속도를 더 높인다. 그들이 탄 차는 도심 외곽 지역인 듯한 곳을 계속해서 지나쳐 간다.

  현경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자마자 끊고 말한다.

  >>됐다! 저 앞에서 빠져서⋯⋯ 우회전하면 돼. 여긴 영업시간이 아예 안 나와 있어서 거르려고 하다가 왠지 혹시나 해서 전화 한번 해 봤는데, 받네. 얼른 가자.

  도로 우측 저편 외진 곳에 잿빛 이층 건물 한 채가 서 있다. 현영이 건물 앞 공터에 차를 대충 세운다. 현영이 바로 내리려고 하자 현경이 말한다.

  >>잠깐만. 주위 살펴야지.

  >없어, 아무도. 있는 거라곤 이 병원뿐인데. 근데⋯⋯ 병원 맞겠지? 엄청 낡았어.

  >>구글 맵 사진이랑 똑같아. 걱정 말고, 트렁크 좀 열어 봐. 그러고 나와서 얘 좀 데려가. 앓으면서도 틈만 나면 으르렁거리네.

  현경과 현영은 차에서 내린다. 현영이 현경에게 가서 강아지를 건네받는다. 현경은 트렁크로 가서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은색 렌치 하나를 꺼내 들고 트렁크를 닫는다.

  >뭐야, 그건 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현경은 그렇게 말하고는 렌치를 뒷주머니에 넣는다. 현영은 그 모습에 표정이 살짝 언다.

  >>야, 뭐야. 정신 차려.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따라와.

  현경이 곧 낡은 문에 노크를 한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조금 기다렸다가 현경은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조금씩, 조금씩 더 세게 두드린다.

  그때, 누군가가 문을 살짝 연다. 키는 작은 편으로 흰색 옷차림을 하고 있고 머리카락과 수염마저 희다. 그가 말한다.

  -크토 에토(누구세요)? 엄⋯⋯ 비즈네스 클로우즈드 투데이.

  >>노, 노! 이머전시 시츄에이션! 현영아!

  현영은 언니 앞으로 가서 수의사로 보이는 그에게 다친 강아지를 보여준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그 수의사는 비록 나이 들었지만 어떤 젊은 사람보다도 더 빠르게 뭔가를 준비하더니 강아지를 데리고 가면서 말한다.

  -유 웨이트 히어.

  현경은 수의사가 남기고 간 한마디에 표정이 급변한다. 심각한 표정이다. 현영은 언니가 지은 표정의 의미를 알 것만 같다. 동생이 머뭇거리다가 언니에게 말한다.

  >어, 어쩌지, 언니⋯⋯.

  >>‘책임감’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우리가 실수한 걸까?

  >내가 괜히⋯⋯ 미안해.

  현경이 급하게 휴대폰으로 뭔가를 찾아본다. 그러고는 현영에게 아예 못 데려가는 건 아니라고 말해 준다. 대신에 ‘케이지’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도 말해 준다.

  현영은 현경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한다.

 

  두 자매의 예상보다 빠르게 수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말한다.

  -유어 키드 이즈 파인. 와트 해픈?

  현경과 현영이 서로를 쳐다본다.

  >언니 이 선생님⋯⋯ 모르나 봐.

  현경이 수의사에게 말한다.

  >>유 해브 투 런! 이머전시 시츄에이션 아웃사이드. 오케이?

  -와트 알 유 토킹 어바우트? 와트 이머전시 시츄에이션?

  >>엄⋯⋯ 그게 그러니까⋯⋯ 아이씨! 이걸 어떻게 설명해?

  -마이 쏜 콜드 미, 스테이 히어. 마이 쏜 이즈 코밍 나우.

  >>현영아, 아들이 오고 있다니까 우린 빨리 가자.

  그러고는 수의사에게 다시 말한다.

  >>오케이, 오케이. 하우 머치?

  현경과 현영은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 지갑과 주머니를 살피기 시작한다. 수의사는 그 모습을 잠깐 쳐다보더니 말한다.

  -노 머니, 노 머니. 코리안? 고잉 홈? 웨얼 이즈 케이지?

  >>캔 아이 바이 원? 아워즈 브로큰.

  -오, 노. 아이 돈트 셀 케이지.

  현영이 현경에게 말한다.

  >없다는 거지? 어쩌지?

  >>다른 데서 구해야지. 강아지 데리고 빨리 나가자.

  현경과 현영은 몇 번이나 스파시바, 스파시바, 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한다. 수의사가 안에 들어가서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에 두 손에 박스를 들고 나타난다. 하지만 박스 안에는 담요가 깔려 있고 강아지는 그 위에 누워서 또 담요를 덮고 있다. 수의사는 박스를 건네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서 비닐 봉투도 건넨다. 붕대와 바르는 약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현경이 돈을 건네려 하자 수의사는 다시금 사양한다. 두 자매는 재차 스파시바, 스파시바 인사한다. 병원을 나서면서 현경이 말을 보탠다.

  >>비 케어풀.

 

  조심해. 조심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들을 못 만날 거야, 다시는.

  아니면 이미 벌써 당신과 아들은 영원한 이별을 맞았을지도 몰라.

 

  >언니, 언니! 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몇 번이나 불렀다고!

  >>어, 미안. 벌써 큰길로 나왔네? 잘했어. 이대로 쭉 가면 돼.

  >괜찮은 거야?

  >>당연하지. 그나저나 케이지가 걱정이네. 이대론 안 될 텐데.

  >이제 공항에서 해결할 수 있길 바랄 수밖에 없어.

  그들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현영은 액셀러레이터를 더 밟는다.

  도로 양옆으로 간간이 보이던 건물들의 개수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가, 이제는 아예 사라져 간다. 그 빈자리를 우거진 숲이 채우기 시작한다. 이내 창밖을 보고 있던 현경이 헉 소리를 내면서 입을 틀어막는다. 이어서 현영도 그 모습을 목격한다.

  숲의 나무들이 초대형 덩굴처럼 서로서로 엉켜 있다. 흡사 ‘재앙세계’의 정글 같은 모습이다. 그 모습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있다. 도로 양옆을 가득 채우고 있다. 현영이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은 채 정글 구간을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에 정글 저편 하늘에서 다가오는 것이 있다. 정확히는 날아오는 것, 새다. 새들은 대열을 갖추고 날아오고 있지 않다. 뒤엉켜 다가온다.

  쿵. 쿵. 현영과 현경이 탄 차 위로 무언가가 연달아 떨어진다. 도로 위로도 떨어진다. 새들이 떨어진다. 그 새 무리는 하늘을 나는 대신 서로서로를 공격해 땅으로 추락한다.

  >>조심해!

  언니의 고함 소리에 동생은 추락한 새 때문에 사고가 난 차를 겨우 피한다. 중앙 분리대에 거의 붙다시피 해서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둘은 모두 속이 뒤집어져 욕지기를 느낀다. 그러나, 참아 낸다. 지금은 그런 느낌조차 사치라는 사실을 그들은 안다. 그리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강아지도 그 사실을 아는 듯하다.

  두 자매가 탄 차는 속도를 낮추지 않고 계속 달린다. 저녁노을이 깃들기 시작한다. 둘은 곧 모스크바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참이다.

  앞으로 보이는 다리가 노을 탓인지 가로등 탓인지 불그스름한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노을이나 가로등 때문이 아니다. 두 자매는 지금 정확한 이유를 보고 있다. 다리 옆으로 흐르는 물이 온통 새빨갛다. 분명하다. 그리고 그 빨간 물 위로 뭔가가 잔뜩 떠 있다. 현영과 현경은 뭐라 말하고 싶은 것을 참는다. 하지만 손이 떨리는 것은 참지 못한다.

  잠시 뒤 현경이 숨을 고르고 말한다.

  >>현영아. 얼마 안 남았어. 좀만 더 가면 돼.

  두 자매는 운하를 가로지르는 짧은 다리를 또다시 건넌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그저 앞만 바라본다. 그러나, 새빨간 물과 그 위에 떠 있는 것들을 억지로 피했다고 해서 이 ‘재앙’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도로 양쪽으로 정글이 다시 펼쳐지기 시작한다.

  갑자기 현영이 차의 속도를 낮춘다. 저 앞에 아까 도심에서 봤던 사슴이 있다. 하지만 한 마리가 아니다. 수십 마리의 사슴들이다. 어느 것들은 도로 위에 뒤엉켜 있고 어느 것들은 도로 왼쪽 정글에서 오른쪽 정글로 쫓고 쫓기고 있고 또 어느 것들은 그 반대다.

  >>어쩌지.

  >최대한 보다가 됐다 싶을 때 그냥 밟을게. 진짜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이다. 자동차는 굉음을 내며 달려간다. 아슬하게 피해서 지나가나 싶었지만 왼쪽 뒷좌석 쪽으로 뛰어오는 것은 피하지 못한다. 차가 왼쪽으로 이백칠십 도 정도 돌아간다. 그러고 멈춘다.

  두 자매는 사슴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향해 있음을 확인한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침내 네 번째에 꺼진 시동이 다시 켜진다. 차는 후진하면서 다시 사슴 한 마리를 친다. 그러고는 이제껏 내던 굉음과는 완전히 다른 굉음을 내며 그곳을 힘겹게 벗어나기 시작한다. 현영이 벌벌 떨며 중얼거린다.

  >어쩔 수 없었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현경이 마찬가지로 떨리는 몸을 억누르며 말한다.

  >>이제 다 왔어.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현영과 현경은 저편에 있는 불 켜진 공항을 본다. 그러나 더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이미 수많은 차들이 공항 앞에 가득 차 있다. 차들 주위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두 자매는 차를 세우고 강아지를 데리고 걸어가기로 한다.

  현경이 든 박스 안 강아지는 기운을 조금 차렸는지 다시 으르렁거리기 시작한다. 현경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너 내내 운전해서 내가 데리고 있으려 했더니. 난 뭔가 불편한가 봐, 아까부터 계속.

  현영은 현경 앞에서 지친 기색을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강아지가 누워 있는 박스를 건네받는다. 거짓말처럼, 강아지는 으르렁거림을 멈춘다. 안정감을 느끼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짓는다.

  현경은 생각한다.

 

  왜? 나한테서는 왜?

 

  >언니? 빨리 가자.

  >>그, 그래.

  가까이 다가간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앞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국제선’ 입구 앞 차도와 인도의 경계는 없다. 온갖 차량들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고 군데군데 빈 공간을 당황한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멍청한 것들.

  >뭐라고?

  >>뭐? 아, 아냐. 어쨌든 이쪽으론 못 들어가겠다. 조용히 따라와.

  현경은 밑층으로 가는 길을 찾는다. 방금 걸어온 길 저쪽 한편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 있다. 현경은 박스를 안은 현영을 데리고 앞으로 간다. 그러나 작동이 멈춘 상태다. 현경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다.

  곧 현영이 현경을 부른다. 엘리베이터 뒤쪽으로 계단이 있다. 아무런 안내 표시도 없이 알아서 찾아 내려가라는 식으로 떡하니 있다. 둘은 주위를 한번 살피고 밑으로 내려간다. 현경이 내려가면서 나지막이 말한다.

  >>‘국내선’ 입구로 들어가자.

  그쪽 입구는 진입이 가능한 상황이다. 현경과 현영은 발걸음을 재촉한다. 박스 안 강아지도 꿈틀댄다.

  그들이 공항 안으로 진입하자마자 맞닥뜨린 모습은 일반 경찰이 아닌 듯 검정 유니폼에 방탄조끼 위에는 ‘POLI’라고 시작하는 단어가 보이는 완전 무장한 사람들이 빨리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모습이다. 현경과 현영은 그 사람들이 ‘특수 경찰’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 뒤로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무리 지어 있거나 모이려고 하는 모습도 있다. 그중에서는 ‘동양인’ 무리도 여럿 있다. 하지만 이곳은 ‘유엔령 러시아’ 국내선 구역이다.

  >뭐야? 이 사람들 왜 여기 있지? 아니 알 바 아니지. 언니, 빨리 다시 올라가자.

  현경이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말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냐.

  >뭐?

  >>지금 여기 국제고 국내고 구분 없어. 그냥 무작위야. 한국 사람들 어딨는지 찾아야 해. 어디 한국말 들리는 데 없어?

  현경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도 집중하기 시작한다.

 

  한국말, 한국말⋯⋯.

  들리지가 않아. 다른 소리뿐이야. 불필요해. 아무 소용 없어.

  현영이와 나한테 필요한 것은 한국말.

  다른 언어는 잡음일 뿐이야. 시끄러워.

  일단⋯⋯ 우리부터 아니, 우리만 살아남으면 돼. 그렇잖아?

  그렇다면 이상한 잡음을 내는 다른 사람들은 불필요한 존재일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어.

  렌치, 후두부. 렌치, 후두부.

  ⋯⋯.

  이게 뭐야. 이런 기분, 이런 감정, 도대체 뭐지.

 

  현영이 현경을 부른다.

  >언니, 언니! 정신 차려. 아까부터 왜 그래?

  >>어? 나 괜찮아. 한국 사람들 보여? 찾았어?

  >뭔 소리야. 여기서만 얼쩡거려서 어떻게 찾아. 일단 저쪽 반대편 카운터까지 가 보자. 얘도 좀 괜찮아진 거 같고. 근데 케이지 구해야 하는데 미치겠네.

  >>내가 잘 살필게. 가자.

  현경과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현영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반대편 카운터로 다가가면 갈수록 동양인 무리가 더 보이지 않는다.

  그때, 둘의 머리 위쪽에서 딱 ‘한 단어’가 울려 퍼진다.

  -엄마!

  현경과 현영은 이 층으로 올라간다. 한국말인 듯 아닌 듯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둘은 이번에는 우측 끝에서 좌측 끝으로 쭉 이동하기로 한다. 중간 지점을 지날 때쯤 누군가가 하단은 남색, 상단은 흰색인 ‘반려동물 케이지’를 들고 뛰어가는 모습을 현경과 현영 모두 본다. 현영은 뒤에서 현경을 따라가면서 말한다.

  >저런 걸 어디서 구하지?

  현경이 앞에서 뭐라고 말하지만 현영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강아지는 흔들리는 박스 속에서도 잘 버티는 중이다.

  좌측 끝에 다다르자마자 현경이 말을 내뱉는다.

  >>개빡치네! 삼 층인가 봐.

  둘은 삼 층으로 올라간다. 도중에 위쪽에서 엄마, 소리가 또 한 번 들린다. 현경은 뒤로 돌아 현영을 잠깐 본다. 두 자매는 눈이 마주친다.

  그들은 곧 삼 층 우측 편에서 한국인 무리를 찾는다. 현경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이것저것 묻는다. 그러고는 현영에게 와서 말한다.

  >>저기가 줄이야. 줄부터 서자.

  줄을 선 뒤 현경이 다시 말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카운터 앞이랑 카운터에 직원이 몇 명인가 있어서 여권이랑 뭘 확인하고 가능한 대로 가벼운 짐 정도는 받아 줬었는데 갑자기 직원들이 아무 말도 없이 급하게 자리를 비우더래. 그래서 저렇게 다들 필요한 물건만 빼고 다 놔두고 가나 봐. 아무튼 우린 상관없고.

  >잘은 모르겠지만 그럼 여기 있을 필요도 없잖아. 출국 심사하는 데로 바로 가면 되는 거 아냐?

  >>이게 그 줄이래. 근데 왜 이렇게 줄이 안 줄어드는지 다들 모르겠대.

  현영이 느닷없이 강아지 박스를 현경에게 건네고 줄 밖으로 나가서 앞을 살핀다. 강아지는 짖기 시작한다. 현경이 놀라서 소리친다.

  >>주현영! 들어와! 빨리!

  그들 앞에 선 사람들이 고개를 뒤로 돌려 현영을 쳐다본다. 현영이 서둘러 현경에게 다가온다.

  >>미쳤어? 뭐 하는 짓이야?

  >왜? 잠깐 본 건데! 공항은 뭐 내내 안전하나? 아니잖아. 삼 층엔 경찰도 더 적은 거 같고.

  >>그건 모르겠고 아까 그렇게 누가 앞으로 가다가 다른 사람이랑 싸움이 심하게 났다고 했단 말이야! 그 뒤로 경찰인지 누군지가 둘 다 어디로 데려갔대.

  >내가 알고 그랬어? 박스나 이리 내. 얘는 또 왜 이렇게 짖는 거야?

  쿵, 갑자기 공항 전체가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난다. 쿵, 밑층이다. 또다시 쿵, 이번엔 외부일지도 모른다. 소리가 다르다. 공항 내부는 아수라장이 된다.

  서서 기다리던 줄은 이제 아무 의미가 없다. 출국 심사고 뭐고 모든 사람들이 섞여 그곳을 통과한다. 통제하는 공항 직원은 보이지 않는다.

  현경과 현영은 줄을 서고 있었을 때 눈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을 쫓으며, 큰 창문 밖으로 한국 ‘국적기’를 찾으며 한국행 게이트를 발견하려 애쓴다.

  그러나 현영의 양손에는 강아지가 있는 박스가 있다. 움직임에 제약이 따르다가 결국에 넘어지고 만다.

  >>괜찮아?

  >몰라, 접질렸어. 으⋯⋯. 얘는. 얘는 어때?

  >>야, 네 걱정이나 해! 어쨌든 빨리 가야 하니까 무조건 참아.

  현영은 엉거주춤하면서 힘겹게 일어난다. 현경은 현영 대신에 박스를 든다. 그러자, 박스 안 강아지도 힘겹게 일어서더니 짖기 시작한다. 현경을 향해 가진 힘을 모두 쥐어짜듯 점점 더 크게 짖는다.

 

  왜? 나한테만?

  ⋯⋯나에게서만 나는 냄새가 있는 거야.

  나는 감염됐나? ‘감염’이라는 표현이 맞긴 한 건가?

  모르겠어. 동생 말고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어. 소리를 듣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타인에 대한 적개심? 도대체 왜? 나는 비정상이 돼 버렸나? 언제, 어디서?

  ⋯⋯만약 그렇다면 현영이에게 옮길지도 몰라. 떨어져야 해.

  강아지. 강아지는? ‘케이지’가 필요하댔지.

  그런 다음⋯⋯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야, 지금은. 일단 현영이부터 보내야 해. 강아지도.

 

  >>현영아, 얘 잠깐만 맡아 줘.

  >뭐? 어디 가!

  현영은 불현듯 어디론가 향하는 현경을 쫓아가기에는 무리인 상태다. 현영은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보다 같은 장소에서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계속 기다려도 현경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영은 불안해서 굳어 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여 뒤쪽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시야에 현경은 여전히 없다. 현영은 몸이 다시 굳는다.

  잠시 뒤 현영이 앉은 의자 좌측 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인기척은 아닌 듯하다. 현영은 굳은 고개를 힘겹게 왼쪽으로 돌린다.

  그곳에 빈 ‘케이지’가 있다. 사용했던 흔적이 보이는 그것은 하단은 남색, 상단은 흰색으로 매우 낯익다. 아무도 없는 주위 어딘가에서 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또한 매우 낯익다.

  -빨리 옮기고 26번 게이트로! 26번!

  현영은 일어나 미친 듯이 주위를 살핀다. 그러나 현경은 보이지 않는다.

  현영은 홀린 듯 이제는 낡고 누추해 보이는 박스에서 견고해 보이는 케이지로 담요와 함께 강아지를 옮긴다. 비닐 봉투도 잊지 않는다. 그러고는 절뚝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조금 나가니 23번 게이트와 그 뒤로 24번 게이트가 보인다. 두 곳 모두 사람은 없다.

  저편에서, 누군가가 절뚝거리는 현영을 봤는지 마구 뛰어온다. 승무원이다.

  -한국분, 한국행 맞으시죠? 부축해 드릴게요, 서둘러야 해서. 근데 지금 반려동물은⋯⋯.

  현영이 울먹거리면서 말한다.

  >그럼 제가 안 탈게요⋯⋯ 얘는 태워 주세요. 많이 다쳐서 놔두고 가면⋯⋯ 전 언니도 찾아야 해서요.

  승무원이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즉시 한 손으로는 케이지를, 다른 한 손으로는 현영을 부축하고 게이트로 향하기 시작한다.

  >⋯⋯다 탈 수 있는 거예요? 그럼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될까요? 언니가 아직 안 왔어요⋯⋯.

 

  현경은 승무원의 부축을 받아 게이트로 향하는 현영의 뒷모습을 본다. 다시 한번 이게 최선이라고 속으로 되뇐다. 그러나 일말의 여유 따윈 없는데도 중간중간 승무원에게 뭐라고 말하는, 살짝씩 어깨를 들썩거리는 현영의 옆모습이 보인다.

 

  울어? 빨리 가. 빨리 타라고. 가면서 걔 이름 좀 지어 주고. 약도 발라 주고.

 

  승무원이 현영에게 정신 차리라고 소리친다. 현영은 마치 끌려가는 것처럼 게이트로 들어간다. 몇 분 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다른 승무원도 게이트로 들어간다. 저편 앞 게이트 쪽 방향에서 몇몇 검은색 머리의 사람들이 뛰어오고 있다. 만약 그들의 목적지가 한국이라면, 그들은 이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현경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탑승자는 바로 동생인 현영이다. 현경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분명히, 미소를 짓고 있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참고 싶어도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눈물이라는 사실을 현경은 안다.

  한참 뒤, 눈물로 젖은 소매로 현경은 몸 곳곳의 핏자국을 지워 보려 애쓴다. 하지만 더 번지기만 할 뿐이다. 현경은 한숨을 깊이 내쉬고 더 깊은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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