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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진정한 美는 마음 안에.

2005.08.30 20:4008.30

진정한 美는 마음 안에.















거미는 독특한 생물이다.

거미는 집을 만든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거미의 집은 사냥터이면서도 식탁이며, 음식 보관

창고이다.

거미는 집을 만든다. 서두르지 않고 조심스럽게, 예술품을 만드는 조각가처럼.

거미집은 예술이다. 규칙적이면서도 동시에 불규칙적인, 규칙적인 사물의 아름다움과 불규
칙적인 사물의 자유로움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예술품.

거미는 예술가다. 그는 자신이 먹어치울 사냥감을 거미줄로 결박한다. 사냥감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실용적인 이유 때문이겠지만, 동시에 아주 잔혹한 예술 행위가 되기도 한다.



독특한 생물이자 예술가인 거미의 여덟 개의 눈알이 아래로 향했다.










회색빛의 아침 안개가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방안은 전체적으로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코를 톡 쏘는 싸구려 향수 냄새, 물기를 잔뜩 섭취한 공기, 누렇게 변색 되어버린 벽지들.


그리고 흥얼거림.





A는 흥얼거리며 전신거울 앞에 서있었다.

그는 전신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단장을 하고 있었다. 무성의하게 헤집어놓은
머리, 다림질을 해놓지 않아 쭈글쭈글해진 티셔츠와 바지.

A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 노래를 흥얼거리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짧은 눈썹, 오똑하지만 모양이 고르지 못한 코, 귀밑까지 올라간 입, 짧은 턱. 잘나다고 말하긴 어려운 얼굴이었다.

거울 속에 있던 A의 얼굴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화려한 모양이지만 무표정을 하고 있는 가면이 나타났다.



가면을 쓴 채 거울을 이리저리 보던 A의 가면안의 얼굴에서 만족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가면은 매혹적인 도구이다. 일단 얼굴을 가린다는 기본적인 효과 외에도 많은 부수적인 효과를 자기고 있는 마력의 도구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왠지 모르게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눈과 눈, 얼굴의 표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를 훔쳐보는 인간에게 가면은 묘한 두려움을 준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가면 안의 얼굴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 기대감을 가진다.


저 가면안의 얼굴로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저 가면안의 얼굴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토록 특이한 도구이기에, 가면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거리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었다.


불꽃이 피어오르는 무늬를 가지고 있는 가면, 윗부분에 분홍색의 깃털이 달려있는 가면, 울퉁불퉁한 모양의 도깨비 가면. 지나치게 흰 빛깔의 드라큘라 가면.


거리에 사람들은 가면 안에서 웃으며 울며 노래 부르며 소리치며 대화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름다운은 외모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되었다. 여자는 큰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마르지만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한.
남자는 키가 훤칠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개성은 단순히 특이하고 엽기적인 것이라는 편견의 껍질이 씌워졌다. 사람은 외모에 따라 구별 되고 차별 되며 판단되었다.


이렇게 되니 예뻐지고 잘생겨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우성을 지르며 성형외과를 찾아갔고, 성형외과 의사들은 환호를 울리며 병원 입구의 크기를 늘였다.


사람들은 모두 잘생기고 예뻐졌으며, 개성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라는 동물의 배설물보다 가치 없는 것이 되었다.




획일성이라는 악마는 자유라는 천사의 천적이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닮아져갔다. 인간이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복제인간이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계 정부는 고민했다. 고민하고 고민하며 또 고민한 끝에 세계 정부는 하나의 결정을 내렸다.


‘가면을 써라.‘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실용적인 세계 정부의 말에 사람들은 만족하고 행복했다.





그 후로 얼굴은 속옷 속의 그것처럼 은밀한 부분으로 인식 되었다.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것. 표정 없는 가면은 자신을 표현하는 외적인 신분증이 되었다.



가면은 웃을 수도, 눈물을 흘릴 수도, 미간을 찌푸릴 수도 없다.




A는 가면 안에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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