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하나의 빛과 하나의 어둠이 노래가 되고 언어가 되는 이곳은 항구의 밤.

무한이란 단어는 있을 수 없는 단어.
그러나 늦은 밤 항구의 바다에게는 무한이라는 단어가 허용 되는 듯, 바다는 무한히 깊어 보였다.

짭조름하고 비린내 나는 바닷바람이 항구를 애무했다.


그리고 남자 또한 바닷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지난 과거를 회상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목덜미를 간지럽게 했다. 길게 자란 수염은 지저분해보였고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은 옷은 누더기 같았다.

휘렐 라이트 WheeRel Right 는 자신의 몰골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행을 떠난 지 2년. 꿈과 희망, 로맨스와 사랑은 없었다. 살기 위해 죽였고, 먹기 위해 죽였으며.

겁탈 당하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휘렐은 일주일 전 같은 남자에게 겁탈 당할 뻔 했다. 그는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자신의 몸을 으스러지게 껴안았다.

호모에게 겁탈 당하느냐, 혀를 깨물고 자살하느냐. 휘렐에게 선택의 폭은 좁았고, 진실은 가혹했다.


그는 가까스로 호모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했고, 그로 인해 자신이 몸담고 있던 용병단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는 갈 곳 없는 외톨이었다. 떠돌이였으며 거지였다.

휘렐은 그 일 후로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청각에 집중했다.

그래서 휘렐은 들을 수 있었다.

옆에서 들려오는 미약한 신음소리에 휘렐은 고개를 돌렸다.

회색으로 변색 된, 악취를 풍기는 골목길.

휘렐은 소리의 근원이 골목길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소지품인 숏소드를 움켜지며 골목길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길에 들어선 휘렐은 경직하고 말았다.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팔. 그 옆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남자. 그리고 한 여자를 붙잡고 있는 두 명의 남자.

멍하니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휘렐에게, 두 명의 남자에게 붙잡혀 있던 여자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남자의 손을 깨문 뒤 앙칼지게 소리쳤다.


“이봐요!! 구해줄려면 빨리 구해주고, 갈려면 빨리 가요!”

휘렐은 여자의 당돌한 태도에 반응했다. 즉, 자기도 모르게 숏소드를 움켜지고 남자들에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휘렐은 기절했다.








휘렐은 눈을 떴다. 초록, 파랑, 남색, 빨강, 노랑.

다양한 색의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후 휘렐은 그것이 어느 방의 천장인 것을 깨달았고, 자기가 누워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뒤통수의 지독한 고통도 느꼈다.

“으윽.”

짧게 신음하는 휘렐의 목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던 여자가 말했다.

“깨어났어요?”

휘렐은 옆을 바라보았고, 앞치마를 하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했다.

아니, 아름답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예쁘지만 날카로운, 차가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가슴이 찢어드는 듯한 애뜻한 감정이었다.

처음 보는 여자에게 그런 감정을 느낀 휘렐은 놀랬고, 그리고 잠시 후 자기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랬다.


휘렐은 이불을 움켜지며 말했다.

“누......누구요?”

“너무 놀라지마요. 벗기긴 했어도 먹지는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한 여인은 하던 요리를 멈추고 파이프에 불을 붙이곤 휘렐의 앞에 앉았다.

“나는 아까 그 여자에요. 골목길에서......”

“아.”

“당신이 멍청하게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어서, 남자들은 나를 놓쳤죠. 그래서 나는 남자의 거시기를 차버리고 도망쳤어요. 잠시 후 남자들을 따돌린 나는 기절한 당신을 업고 집으로 데려왔죠. 냄새가 심하게 나서 대충 당신 몸을 씻고 옷은 물속에 처넣어놨어요.”

휘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불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어차피 볼껀 다 봤으니 그만 신경써요. 배고프죠?”

휘렐은 대답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답했고 여인은 피식 웃으며 자신이 요리한 펜케이크를 내놓았다.


“루시아라고 불러주세요.”












휘렐은 난생처음 느끼는 감정에 당황했다. 가슴속이 답답하면서도 뭔가 끌어오르는 듯한, 차가우면서도 어지러운 느낌.

그 감정의 대상은 루시아였다.


몇 일간 휘렐과 루시아는 같이 살았고, 잠자리도 같이 했다.


휘렐에게 여인과의 경험은 환상적이었다. 잘생긴 편이었던 휘렐이었지만 그는 숫기가 없었고, 여자를 꼬시는 능력 또한 없어서 여태껏 총각이었다.

숫기가 없는 것을 과묵한 것으로 착각했던 휘렐은, 루시아와의 경험을 통해서 그것이 자신의 바보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몇 일간 루시아와의 생활은 휘렐에겐 꿈만 같았다. 몽롱하고, 슬펐으며, 아름다웠다.


루시아는 대부분의 시간을 휘렐과 함께 했다. 함께 시장을 갔으며, 함께 샤워를 했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나 7시만 되면 루시아는 휘렐에게 사과하며 홀로 외출했고, 홀로 남은 휘렐은 사색을 하며, 루시아와의 황홀한 밤을 기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7시가 됐을 때, 루시아는 휘렐에게 같이 외출 할 것을 제안했다.

휘렐은 설레이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긴장되고 무서웠다.

그러나 마법사들이 켜놓은 화려한 네온사인들이 마을을 비추었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며 휘렐은 긴장감과 무서움을 지워버렸다.



그러기에 충격은 더 컸다.



루시아는 자신과 휘렐이 처음 만났던 골목길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휘렐은 두 명의 남자에게 갑작스레 몸이 포박 되었고, 웃으며 인사하는 루시아의 얼굴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휘렐은 일주일간 게이 남자들의 장난감이 되었다.





며칠 후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휘렌은 길바닥에 버려졌다.

그 날은 억수같은 비가 내렸고, 늦은 밤이었다.

볼을 때리는 비를 맞으며, 휘렐은 루시아와의 생활을 회상했다.

눈물과 비를 구분하기 어려웠을 때, 휘렐은 정신을 잃었다.















“쏴아아아아아......”

파도소리를 들은 휘렐은 현재로 돌아왔고, 자신의 볼이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늘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휘렐은 몸을 일으켰다.

일어선 휘렐은 칠흑같은 어둠을 품고 있는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휘렐은 무한히 깊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항구의 밤을 음미했다.






JINS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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