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건 뭐 '또' 시험기간에 거의 스스로를 위로(한자말로 줄이면 자위라고 하지요-_-)하는 꼴로 두들겨댄겁니다. 저는 왜 시험기간만 되면 이런 것들에 불타오를까요;;

독자를 배려하는 부분이 없어보인다면 그것때문일겁니다-_-

지난 번에 올린 것보다 먼저 쓴 것인데, 스토리(?)상 뒷 이야기(?)이기 때문에 늦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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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가 거의 17살짜리 인간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하 무라타수는 10살이었다. 그 작은(그러나 다른 종족이 보기엔 여전히 큰)우란은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짧은 뿔을 만지작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시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잘 아는 고블린 상인 안위에게 얻어낸 정보에 따르면 이번엔 흥미로운 것을 파는 인간상인들이 잔뜩 온다고 했다. 친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형이 유학을 떠난 이후 심심함을 느끼고 있던 소년은 장을 구경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형이 자신보다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만날 책만 붙들고 사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씩은 이렇게 나가서 시장구경도 하고 그래 야지. 책만 보고 사는 게 뭐 재미있다고.


  시장은 언제나 그렇듯 시끄러웠다. 안위의 말대로 이질적으로 생긴 수레에 이국적으로 생긴 물건을 잔뜩 담은 인간들이 많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약간 실망했다. 고블린들이 늘 갖고 오는 물건들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살 물건도 없었던 소년은 그냥 좀 더 둘러보기만 하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때였다. 괴상한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기에 흥미가 생긴 소년은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그래도 오늘은 건진 게 하나 있군. 북적대는 시장바닥을 헤치며 그 '무에에~'라고 하는 듯한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며 소년은 얼마 전에 뿔갈이를 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머리에 뿔이 있었으면 거슬리겠다 싶을 정도로 시장은 복잡했다.


  정신 없이 인파를 뚫고 나온 소년은 잠시동안 자신이 넓은 공터에 나왔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숨을 돌리고 나서 고개를 든 순간, 소년은 망치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 저게 뭐야? 머리는 우란 머리인데...몸은 살찐 말 같잖아?! 누가 장난친 건가? 아직 어리고 작은 우란은 홀린 듯이 가까이 가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하였다. 그 동물은 우란들처럼 얼굴에 비해 큰 눈을 순하게 굴리며 얌전히 있었다. 그 때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젊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인간 하나가 화를 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돌멩이에 놀란 물고기처럼 반사적으로 그 동물에게서 떨어져 나와 잽싸게 도망갔다. 나중에 안위에게(숨막힐 것처럼 보이는 낄낄거림과 함께)들은 말에 의하면 그 인간 상인은 한하가 가축도둑인 줄 알았단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소년의 머릿속은 혼란과 의문으로 가득했다. 이럴 땐 형이 정말 그리워진다. 뭐든지 가르쳐주었을 텐데.


  하플링 여인 하나, 중년으로 접어든 남성 엘프 하나, 그리고 거대한 우란 학자 하나가 화사한 엘프식 방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인시아가 싸들고 온 고급 토끼굴 치즈는 화목한 분위기를 더했다. 단, 그녀가 와인 한 잔을 더 마실 때마다 엘렌의 얼굴이 미묘하게 움찔거렸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게 그 녀석이 처음 소를 보았을 때 일어난 일이지요."
  태바다 무라타수가 우란 특유의 그윽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대륙의 수많은 수수께끼 중하나를 동생 분이 처음 접했던 것이로군요."
  엘렌이 웃으며, 그러나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는 우란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주제 중 하나였다.
  "생물학자들은 인간과 유인원의 관계와는 달리, 소와 우란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더군요. 있다 해도 저 수절풍 너머에 있을까말까 한다고 하던데요."
  "그렇지요. 애당초 이 대륙엔 우란이 없었고, 저 대륙엔 소가 없었으니까요. 해부학적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우란은 사실 이 땅의 원주민이 아니다. 수세기전, '저 대륙'에서 건너온 정복군대에게 '이 대륙'이 점령당했을 때, 식민지화의 일환으로 그들 대륙에서 많은 인간들을 이주시켰었다. 그 중 우란도 상당히 많이 끼어있었다. 매사에 정중했던 우란들은 나중에 점령군의 지배가 허술해져 이 대륙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대부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점령군이 쫓겨난 후, 대대적인 문화혁명이 일어나 저 대륙의 문화는 거의 남지 않게 되었지만 이전에 인간과 하플링이 쓰던 언어는 거의 파괴되어 현재의 공용어가 자리를 잡은 후였다. 원래 사용하던 언어는 당시 학자들이 목숨을 건 노력으로 제작해놓은 연구서와 현재의 엘프어에서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게되었다. 그리고 정말 절묘한 순간에 바다를 가르는 거대한 태풍인 수절풍이 생겨났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우란들조차도 저 대륙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여봐란 듯이 와인을 음미하던 인시아가 그 때 끼여들어 말했다.
  "어허, 엘레­안. 잔이 비었잖아. 뭐 하는 거야?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태바다씨."
  "예."
  "소는 공용어, 그러니까 저 대륙에서 사용하던 말 아닙니까? 그런데 소가 없었다는 게 좀 이상한데요."
  "그것은 '우란 우자(牛)'를 엉터리로 갈겨쓰면 '소'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합니다. 실제로 저 대륙에서는 우란을 모욕적으로 부를 때 쓰인 표현이었다고 하는군요. 일부 엘프들이 하프 엘프를 반쪽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이런, 실례했습니다."
  벌레씹은 얼굴로 와인을 따르던 엘렌은 잠깐 지체했다가 이제야 그의 사과를 인식한 듯 급하게 대답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그런데 인시아, 오늘 너무 과음하는 거 아니야?"
  인시아는 그를 완벽하게 무시하며 새로운 질문을 내놓았다.
  "이 대륙의 농사법도 그 대륙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던데, 농사할 때 제일 많이 이용되는 것이 소 아닌가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저 대륙에선 염소와 비슷한 동물을 농사에 썼던 것 같습니다. 우란들은 동물을 부리지 않고 직접 농사를 짓고요."
  "인시아, 질문이 좀 무례하다는 생각 안 들어?"
엘렌이 다시금 우란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며 말했다. 태바다는 조카를 바라보는 삼촌 같은 웃음(엘렌의 삼촌은 오래 전에 세상을 떴지만)을 얼굴에 건 체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우란들이 소에 대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도 옛날이야기입니다. 요즘도 나이 많으신 분들 중 몇몇 많이 소를 불편하게 여기십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익숙해졌습니다."
엘렌은 식탁 위의 치즈를 바라보았다. 하긴 이제 우란들은 치즈같은 음식도 부담없이 먹는다.
  "세룩들은 도마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던데."
엘프가 별 생각 없이 말하자, 인시아는 '기회다!'라는 듯이 그의 빈틈을 파고들려고 했다. 빈틈이고 자시고 할만한 상황이 아니란 것도 무시한 체.
  "그거야 네가 인간을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 드는 거랑 똑같아."
  "…인시아, 이제 정말 그만 마시는 게 어때? 이상한 말만 늘어놓고 있잖아."
  "난 엘프냐?"
  하플링은 느닷없이 대단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해서 흥분한 모험가의 표정을 열연하기 시작했다. 진짜 엘프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태바다를 돌아보자, 우란은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원추리가 피었군요."
  엘렌은 '헛소리는 그냥 무시하거나 웃어 넘겨라'라는 연장자의 충고에 한숨을 푹 쉬며 와인 병을 바라보았다. 그가 애타는 눈으로 바라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병은 비어있는 것 같았다. 그는 사정하는 표정으로 인시아 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자비한 하플링은 비어있는 잔을 높이 쳐들며(그래도 엘렌의 어깨에 닿을락 말락 했지만)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일이지요."
  태바다가 인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엘렌이 새로 꺼내온 와인 병으로 잔을 채워주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하플링의 표정을 구경시켜주느라 태바다의 말에 늦게 반응했다.
  "에? 뭐가요?"
  "그냥 간단한 얘깁니다. 아마 저 대륙에 소를 데려가면 거참 우란 같이 생긴 동물이 다 있네 하고 신기해할 겁니다. 하지만 이 대륙에서 우란을 보며 거참 소 같이 생긴 사람도 다 있네 하고 여기지요. 뻔한 사실이지만. 이 대륙에 있든 저 대륙에 있든 우란은 똑같은 우란인데 말입니다. 뭐 그렇게 여기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요."
  "제가 제 고향에선 호비트라고 불리지만 엘프동네에선 하플링이라고 불리는 거랑 똑같죠, 뭐. 어유, 이 꺽다리 놈들."
  인시아는 엘렌을 경멸 적으로 진지하게(흔히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취했네'라고 말한다)바라보더니 태바다에게 '우란들은 우란을 빼면 누가 봐도 키가 크니까 예외'라고 둘러대었다. 엘렌은 애써 인시아의 시선을 피하는 척 하며 말을 꺼냈다.
  "재미있게도 우란과 비슷한 전설이 이 대륙에 있습니다. 미로에 사는 거대한 소인간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전설 속 존재라 애들 이야기에서도 잘 나오지 않지요. 미노…미노 뭐였는데. 워낙 황당 무계한 전설이라 여러분 종족이 처음 나타났을 때도 '전설의 실현'이라며 날뛴 작자는 없었다고 합니다."
  "전설이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라고 단정짓기도 좀 그렇지요. 누가 압니까? 지질학자들은 짐작도 못할 과거엔 두 대륙이 연결되어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합니다. 그 때 우리 우란의 조상이 이 대륙에서 살다가 대부분 저 대륙에 있는 상태로 두 대륙이 갈라지고 남아있던 소수는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그에 대한 얘기가 전승된 것일 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잠시 생각한 저명한 우란 문학가는 덧붙였다.
  "좀 비약인 듯 하지만 말이죠."
  "…빠르네요. 소설 쪽엔 손댈 생각 없으십니까?
태바다가 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려는 찰나, 인시아가 잽싸게 끼여들었다.
  "저기 태브아다씨, 가족사 얘기해줘요."
  "…네?"
  "우란들의 가족사를 들으면 밤이 후딱 지나간다고 해서요"
  "…아, 네…."


  이번 인시아의 돌발행동은 태바다까지도 난처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우란이 엘프를 돌아보니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중이었다. 태바다는 한숨을 쉬고 나서 그래도 사람 좋은 우란답게 말을 꺼냈다.
  "제가 들은 건 제 증조부이신 호수안 무라타수께서 처음으로 화파야불 가문의 연소각 화파야불씨와 친분을 쌓기 시작한 무렵부터의 이야기인데…."
  태바다는 말을 끊었다. 그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기울어지기 시작한 작은 여인의 목과 고개의 각도가 90°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선 납시었군."
  친구가 만취했다는 사실을 점잖게 지적한 엘렌은 웃음을 터뜨리며 일어났다. 잠시 어안이 벙벙했던 태바다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 작은 몸으로 독한 왕국와인 2병을 작살냈으니…이 숙녀 분은 아무래도 침실에 모셔다 놔야할 것 같습니다."
  엘렌은 다소 심술궂은 표정으로 어린아이 들어올리듯 그녀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갑자기 귀를 그녀의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꼴에 여자라고 새근새근 잘도 자는군요."
  아무래도 별로 부유하지 않은 학자의 재정상황에 꽤 큰 타격을 입힌 친구가 코를 골면서 꼴불견인 모양으로 뻗지 않은 것에 대해 실망한 듯 했다. 잠시 주춤거리던 그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겁네요."
  태바다는 순간적으로 인시아의 얼굴이 꿈틀한 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다시 들여다보아도 그녀는 눈을 감은 체 곤히 자고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고 여겼다.
  "이리 주십시오. 제가 들겠습니다."
  "아 그럼 침실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 여편네에게 알맞은 토끼우리가 있거든요."
  우란은 손바닥만으로 그녀를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리곤 엘렌을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을 조심스럽게 받치고 올라가는 우란의 손바닥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인시아는 생각했다. 재밌었어. 우리자기한테 들려줄 얘기가 하나 더 늘었네.

  '…소는…참 우란같은 동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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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미소짓는독사
댓글 2
  • No Profile
    세뇰 05.08.03 11:09 댓글 수정 삭제
    픕픕픕. 재미있네요.

    그런데 이 시리즈는... 겁스 팬터지종족의 설정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많군요. 호기심많고 상인기질이 강한 고블린이라던지. 그렇다면 세룩은 파충인인 겁니까;
  • No Profile
    워크래프트와 겁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세룩은 얼핏보면 파충인처럼 보입니다만...엄청난 차이점이 숨어있습니다..쿡쿡쿡...-0-;; 2가지인데, 하나만 공개하자면...사막이 아니라 정글에 삽니다(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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