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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날개의 행방

2022.02.22 17:5202.22

날개의 행방

 

청개구리는 팔다리를 쭉 뻗고 허연 배를 드러낸 채 내 손바닥에 누워 있다. 다른 손 검지로 조심스레 건드려봐도 꼼짝을 않는다. 오늘 아침에 잡았을 때만 해도 내 엄지만 한 초록색 등이 물처럼 반짝거렸는데 지금은 어느새 그 빛을 잃어버렸다. 그럴 만도 하다. 아침에 개울가에서 붙잡힌 이래 해가 머리 꼭대기를 지나갈 때까지 청개구리는 한 번도 내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뒷간에서 볼일을 볼 때도 청개구리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이제 어머니에게 갈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내가 맨손으로 개구리를 조몰락거려도 아버지나 할머니처럼 지집아이가 저래서 시집가겠냐, 징그럽지도 않느냐 골리거나 핀잔을 주지 않았다. 예전에,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손바닥 위에서 꼼짝 않는 개구리가 죽은 줄 알고 엉엉 울고 있자 어머니가 와서 내 손 위의 개구리를 살살 만지더니 말했다. ‘죽은 거 아니야. 기운이 빠져서 그래. 저기 나무 그늘 아래 놔둬볼래?’ 어머니 말대로 하고 조금 이따 확인해보니 개구리는 없었다. 그늘에서 쉬면서 다시 기운을 차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거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손길이 개구리를 살린 거라고 믿는다.

손바닥 위의 청개구리가 떨어질라 살금살금 걸어서 집으로 갔을 때 어머니는 마당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머니 뒤통수에 틀어 올린 동그란 머리카락 뭉치가 등에 업힌 막내의 이마에 닿아 있다. 하늘 올려다보기는 어머니에게 숨 쉬고 밥 먹는 일과 비슷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머니는 언제나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왜인지 슬퍼졌지만 어머니가 언젠가부터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어머니” 하고 부르며 다가가자 어머니는 젖혔던 고개를 내리고 나를 본다.

“개구리가 죽었나봐요.”

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어머니는 막내를 한 차례 고쳐 업고 이내 허리를 구부리더니, 내 손바닥 위에 늘어져 있는 청개구리를 들여다본다.

“안 죽었는데?”

지난번처럼 손가락으로 살살 개구리 등을 만지며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그 손가락을 뚫어져라 바라봤지만 어머니 손가락에서 빛이 번쩍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시 말한다.

“개구리 괴롭히면 못써.”

하지만 나무라는 투는 아니었고 웃음기도 얼마간 담겨 있었다. 잡아온 곳에다 놓아두면 곧 기운을 차려서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어머니는 덧붙였다. 그때 방 안에서 할머니의 기척이 느껴져서, 나는 ‘지집아이가 또 개구리 잡아다가 조몰락거렸냐?’ 하는 잔소리를 들을세라 얼른 밖으로 나갔다.

개구리를 잡았던 개울가에 가니 내 가장 친한 동무인 덕분이가 있었다. 개울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어깨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아 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이는 자주 여기 와서 울곤 했다. 그리고 여기 오는 것보다 더 자주 울었다.

내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덕분이가 어깨 너머로 돌아봤다. 본래도 동그란 눈이 퉁퉁 부어서 한껏 튀어나와 보였고, 코가 빨개진 정도를 보니 한참 전부터 울고 있었던 듯하다. 나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축축한 돌멩이 위에 청개구리를 내려놓고 덕분이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왜 울고 있어?”

답이 궁금한 물음은 아니었다. 답은 이미 알고 있다. 덕분이 아버지가 어제는 노름판에서 귀가한 것일 테다. 덕분이가 울음과 함께 말한다.

“아부지가 또 어머이를 때렸어.”

덕분이 아버지는 노름판에 끼어 있거나 술을 마시거나 덕분이 어머니를 때리는 이 세 가지 일만 하고 사는 것 같았다. 덕분이 어머니의 부탁으로 우리 아버지가 몇 번 노름판에서 덕분이 아버지를 데려온 적이 있다.

‘너희 아부지가 우리 아부지였으믄 좋겠다.’ 언젠가 덕분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덕분이 아버지가 소맷자락을 붙잡고 늘어진 덕분이 어머니를 흙바닥에 질질 끌면서 기어이 노름판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내가 아버지가 해 온 나뭇짐에서 큰 가지 몇 개를 빼내 아궁이까지 끌고 가거나 어머니 대신 빨랫감이 잔뜩 든 소쿠리를 잡아끌 때처럼 흙바닥을 끌려가던 덕분이 어머니의 얼굴은 피투성이에 멍투성이였다. 어머니의 재촉을 받은 아버지가 얼른 달려가 덕분이 아버지의 주먹질을 제지했고, 어머니는 덕분이 어머니를 부축해서 우리 집으로 데려갔다. 내 바로 밑의 동생인 선이와 나는 덕분이를 데리고 지금 여기 개울에 왔었다.

‘우리 어머이가 너희 어머이 같았으믄 아부지가 안 때렸을까?’ 하고 덕분이가 뒤이어 말했을 때 나는 그 말뜻을 금방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멍한 얼굴로 바라보자 덕분이는 다시 말했다. ‘너희 어머이는 선녀님 같잖어.’

나는 덕분이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처럼 생겼다고 해서 덕분이 아버지가 안 때릴 것 같진 않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맞아, 우리 어머니는 선녀님처럼 예뻐!’ 하며 신나서 소리치는 선이를 흘겨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어서 덕분이가 ‘우리 아부지는 왜 그럴까?’ 하고 물음인지 혼잣말인지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선이가 또다시 노래하듯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러는데’라고 지껄였을 때는 그 조막만 한 머리에 꿀밤을 먹일 수밖에 없었다. 선이는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보며 울먹울먹했고 덕분이는 그쳤던 울음을 다시 터뜨렸었다.

“우리 집에 가자.”

나는 개울을 향해 쪼그리고 앉은 덕분이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하도 오래 앉아 있어서인지 금방 서진 못했지만 덕분이는 내 손길에 버티지 않고 순순히 몸을 일으켰다. 이런 일이 있을 적마다 어머니는 덕분이 어머니를 집에 데려다주고 덕분이는 우리 집으로 데려가 강냉이죽이나 옥수수죽 같은 걸 먹여서 보내곤 했다.

덕분이는 우리 집에 도착했을 때쯤 울음을 거의 그쳤다. 언제 왔는지 마당에서는 건넛집 옥 할매가 어머니와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고 있는 바가지 안에서 찐 감자 몇 알이 굴러다녔다.

내 손에 이끌려 마당으로 들어선 덕분이를 보고 한순간 반가운 표정을 했던 어머니의 얼굴이 곧바로 굳었다. 눈이 퉁퉁 붓고 코가 빨개진 덕분이를 보고 상황을 알아챈 것이다. 옥 할매도 덕분이를 한번 보더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나는 옥 할매가 무슨 쓰잘머리 없는 말을 보탤까봐 걱정했지만 옥 할매는 다행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 쪽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옥 할매는 찐 감자 같은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거나 허리가 아픈 우리 할머니 대신 살림 재주가 서툰 어머니를 많이 도와주고 아버지 말로는 이 동네 저 동네 휘젓고 다니는 덕분에 쓸 법한 바깥소식을 전해주는 고마운 일도 하지만, 가끔 은근슬쩍 어머니의 살림 재주를 타박하거나 아버지에게 막말을 할 때는 좀 미운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힘들까봐 감자움[땅을 파서 감자 등을 보관하는 곳]에서 감자나 고구마를 잔뜩 꺼내다가 부엌에 미리 갖다놓곤 했는데, 옥 할매는 우리 집에 와서 그 광경을 볼 적마다 아버지를 팔푼이라고 불렀다.

작년에도 아버지 혼자서 아침나절 내내 감자움을 채우고 있을 때 옥 할매가 왔다. 어머니가 돕겠다고 나서는데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움 근처에도 못 오게 했고, 그걸 본 옥 할매가 또 팔푼이 같다느니 어쩌니 구시렁거렸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본래 어머니뿐만 아니라, 거동이 힘든 할머니와 거의 어머니 등에 업혀 있는 막내를 빼면, 나와 선이가 움 근처에 가는 것도 탐탁잖아 했다. 움 안에 식량을 지키는 구렁이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선이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움 가까이에 절대 가지 않는다.

덕분이는 어머니가 끓여준 강냉이죽을 먹고 기운을 좀 차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끓인 강냉이죽은 할머니가 만들어준 것과 달랐다. 할머니의 강냉이죽이 한때 강냉이였던 것들로 만든 것 같다면, 어머니가 끓인 강냉이죽은 죽이 되었는데도 강냉이 한 알 한 알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강냉이가 혀에 닿자마자 부드럽게 부서지는 느낌이다. 반대로 할머니가 끓인 강냉이죽은 혀에 닿는 느낌조차 없다. 내가 그 말을 하자 어머니는 강냉이 한 알 한 알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그렇게 된다고 장난스레 답해주었는데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밥 지을 줄도 모르는 색시를 데려왔길래 난 혹시 이 서방(우리 아버지를 말한다)이 궐에 몰래 들어가서 옹주 애기씨라도 업어 온 게 아닌가 했지.’ 얼마 전에 옥 할매가 와서 한 말이다. 전에도 두 번인가 세 번쯤 한 소리였다. 어머니는 어쩐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었고, 아버지는 ‘무신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며 툴툴거렸다.

나는 옥 할매한테 말해주고 싶었다. 예전엔 밥도 못 짓고 바느질도 못했는지 모르지만 우리 어머니는 더 귀중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고, 강냉이 한 알 한 알이 살아 있는 죽을 끓일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청개구리라든가 시든 꽃이라든가 죽은 나무도 우리 어머니 손만 닿으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고, 오래전에 꺾어 와서 죽은 제비꽃도 어머니가 만지니까 다시 하얗게 피었다고. 하지만 그때 어머니가 내게 제비꽃을 건네면서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니 누구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개울에 들러서 청개구리가 어떻게 됐는지 확인해봤다. 역시나 청개구리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의 손길에 기운을 차려서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문득 청개구리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괴롭히려는 마음은 결코 없었다. 그저 신기하고 귀여워서 데리고 있으려던 것뿐이었다. 청개구리는 덕분이 어머니처럼 고통에 겨운 비명을 지를 줄 모르니 지금 아픈지 괴로운지를 알 수 있을 리 없다. 물론 덕분이 어머니가 아프다 소리 지른다고 해서 매질이 멈추지는 않았다.

나는 그날 밤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랫목에 누운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막 들려오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덕분이네 아버지는 왜 그런 거예요?”

어머니가 얘기해주면 나중에라도 ‘우리 아부지는 왜 그럴까?’라는 덕분이의 물음에 대신 답을 줄 수 있을 것이었다.

답이 바로 들려오지 않기에 나는 어머니가 혹시 잠들었나 싶어, 나와 어머니 사이에 누워 있는 동생들 너머로 슬쩍 보았다. 어머니는 잠든 게 아니라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면서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어머니의 답이 들려왔다.

“약해서…… 나약해서 그래.”

덕분이 어머니를 마구 때리고, 술에 취해서 이따금 울짱이나 닭장 같은 것을 부수곤 하는 덕분이 아버지가 나약하다니.

“나약한데 어떻게 남을 때려요?”

내가 묻자 어머니는 몸을 살짝 일으키더니 동생들 너머 아예 내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러니까 자기보다 약한 것들한테만 그러지.”

이번에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동네에도 조무래기들만 패고 다니는 사내애가 몇 있다. 덕분이나 다른 애들은 그놈들을 무서워하지만 나는 무섭지 않다. 조무래기들이 비사치기 놀이 하려고 모아놓은 쓸 법한 돌멩이를 빼앗던 놈, 언니들의 물동이를 깨뜨리던 놈, 덕분이를 골리던 놈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한동안 잠자코 있으려니 어머니가 말을 잇는다.

“나약한 데다 심성까지 못돼서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만 때리는 거야. 말 못하는 짐승들 때리고 가만있는 울타리 부수고.”

“그런데 덕분이 어머니는…….”

“얼릉얼릉 자라.”

언제 깼는지 아버지의 나직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나는 ‘아프다고 하잖아요’라고 말을 맺지 못하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언제나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어머니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다. 막내가 갑자기 깨서 울거나, 아버지가 느지막이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를 붙들고 있지 않으면 늘 그랬다.

동생 둘은 아직 자고 있고, 막내가 등에 업혀 있지 않기에 어머니는 여느 때와 달리 고개를 한껏 젖히고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어머니가 이른 새벽부터 일하러 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지금껏 저렇게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또다시 슬퍼졌지만 어머니의 저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어머니” 하고 불렀을 때 나를 돌아본 얼굴에도 수심 같은 건 없었다.

어머니가 솥에 남은 강냉이죽을 마저 다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절반을 남긴 다음, 덕분이가 어쩌고 있는지 보고 오겠다 말하고는 집을 나섰다. 배는 당연히 차지 않았다. 덕분이네 들렀다가 산기슭까지 가서 열매가 덜 익은 다래나무라도 흔들어볼 작정이었다. 그 다래나무는 작년 늦여름에 벼락을 맞았었다. 다들 그 나무가 죽었다고 했는데, 올봄이 되자 타다 만 우듬지에서 꽃이 피었다. 어른들은 모두 천지신명께서 조화를 부려준 덕택이라고 했지만 나는 어머니가 사람들 모르게 나무를 매만져준 덕택이라고 믿는다.

덕분이네 지붕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박달나무가 눈에 들어올 때쯤 덕분이가 자기 집 마당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물 길러 가려는 듯 물동이를 양팔로 안고 있다. 덕분이가 나를 보더니 이쪽으로 걸음을 빨리했다. 퉁퉁 부어서 튀어나와 보였던 눈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고 코도 이제는 빨갛지 않았다. 덕분이가 나를 보고 슬며시 웃어서 나는 내심 안심하며 마주 웃어주었다. 우리는 나란히 우물로 향했다.

우물가에는 물을 길러 온 언니들, 그리고 나와 덕분이 또래뿐이었다. 어른들은 이 시간에 우물가에 잘 오지 않았다. 덕분이 아버지를 비롯해 노름판에 나가는 몇몇을 빼면 대부분 물 긷는 것보다 더 고된 일을 했다.

“우리 아부지 어젯밤에 또 나갔다?”

빈 물동이를 우물 옆에 내려놓으며 덕분이가 말했다. 덕분이의 얼굴이 조금 평온해진 것도 그 때문인 듯했다. 덕분이가 우물 안에 두레박을 던져 넣으며 덧붙인다. “이젠 아예 안 들어왔으믄 좋겠다.”

나는 덕분이를 도와 두레박줄을 끌어당겼다. 덕분이가 두레박 물을 물동이에 부으며 또 뭐라뭐라 했지만 나는 별 대꾸 하지 않고 우물 안을 들여다봤다. 이제 덕분이도 나도 키가 좀 자라서 발꿈치를 들면 우물 안이 들여다보였다. 어머니 흉내를 낸답시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눈이 너무 부시기에 대신 우물물에 비친 해님을 보려고 했는데 아직은 빛만 얼룩덜룩했다.

두레박으로 네 번 정도 물을 퍼 담았을 때였다. 갑자기 쨍 하는 큰 소리가 나더니 물이 반쯤 찬 물동이가 산산조각 났다. 나는 놀라서 뒷걸음했고 덕분이는 작게 비명을 질렀다. 어젯밤 자리에 누워서 하나하나 떠올렸던, 조무래기들만 패고 다니는 사내애 중 한 명이 어느새 뒤에 나타났다. 한 손에는 새총이 들려 있었다.

“야, 왕개구리!”

사내애가 소리쳤다. 애들이 덕분이를 놀릴 적마다 부르는 말이었다. 덕분이는 깨진 물동이를 잠깐 내려다보다가 마주 소리쳤다.

“야, 왜 그래! 깨졌잖어!”

사내애는 당연히 들은 척도 안 했다. 까맣게 탄 얼굴에 능글거리는 웃음을 띤 채 이쪽으로 다가오기만 했다. 나는 가만 서 있었지만 덕분이는 저도 모르게 뒤로 주춤하는 듯했다. 내가 덕분이 앞으로 나서서 사내애를 멈춰 세웠다.

“물어내.”

내 말에 녀석은 ‘넌 뭐야?’ 하듯 나를 보면서도 뭐라 대거리를 하진 않는다. 어느새 하나둘 우물가에 도착한 언니들과 조무래기들이 나와 덕분이와 사내애를 둘러쌌다.

“물어내라고.”

내가 또 한 번 말하자 덕분이가 뒤이어 소리쳤다. “물어내!”

사내애가 덕분이를 향해 새총을 쥐지 않은 주먹을 들어 보였다. 내 등 뒤에서 덕분이가 작게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가 다시 막아섰고, 내가 막지 않았더라도 녀석의 주먹은 덕분이에게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시늉일 뿐이었다.

“너 또 물동이 깼니? 왜 자꾸 심통을 부리니?”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언니 중 한 명이 말했지만 사내애는 그쪽으로 눈도 돌리지 않았다. 녀석의 눈은 오로지 내 뒤에 있는 덕분이에게만 붙어 있었다. 덕분이를 골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소리 지르니까 더 개구리 같네?”

덕분이는 내 뒤에서 씩씩거리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내가 대신 말했다.

“빨리 새 물동이나 가져와.”

녀석은 또다시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덕분이를 보며 이죽거렸다.

“너희 아부지가 또 너희 어머이 쥐어팼다며?”

등 뒤에서 덕분이의 울음 섞인 숨이 터지고 주위에서 언니 몇몇이 “얘!” 하고 소리 지르고 내가 사내애의 멱살을 잡는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언니들이 소리쳐 부른 게 나인지 아니면 사내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나오자 사내애는 당황한 것 같았다.

“이거 놔!”

녀석은 내 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했다. 나는 다시 달려들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덕분이가 내 뒷자락을 잡았다. “그러지 마.” 덕분이는 울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 순간 사내애의 눈이 또 한 번 짓궂게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너희 어머이도 개구리 닮아서 너희 아부지한테 매 맞는 거 아니냐? 너희 어머이 너랑 똑같이 생겼잖어.”

뒷자락을 붙들던 힘이 빠졌다. 내 옷을 붙들었던 손으로 얼굴을 가렸는지, 뭔가에 억눌린 흐느낌이 들려왔다. 하지만 덕분이가 붙들고 있었더라도 앞으로 튀어나가는 내 힘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여섯 걸음쯤 떨어져 있는 녀석을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내 몸이 하늘을 붕 날았다. 잿빛 치마가 펄럭이며 다리를 치는 느낌이 났다. 아래 있는 사내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지는 것이 보였다.

길게 느껴지는 찰나가 지난 뒤 나는 흙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사내애의 몸에 올라탔다. 두 주먹으로 녀석의 얼굴을 때렸다. 주위에 있던 언니들이 달려들어 나를 끌어당겼다. 언니들이 내지르는 외침 사이사이 덕분이의 흐느낌이 들렸다. 내 밑에 깔린 사내애도 뭐라뭐라 소리 지르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언니들의 손에 잡혀 나와 사내애 둘 다 일어났다. 사내애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녀석이 한 손으로 코를 쓱 훔치고 잠깐 들여다보더니 이내 얼굴을 씰룩거렸다. 울려는 참인지 소리 지르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먼저 소리쳤다.

“덕분이한테 사과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녀석이 움찔하는가 싶더니 씰룩거리던 것을 멈추고 마주 소리쳤다. 울음은 도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조무래기 몇몇이 빤히 쳐다보고 있는 데서 울기는 싫었을 것이다. 나는 양팔을 붙들린 채 사내애를 노려봤다. 녀석이 그러고 가만히 있었다면 나도 언니들이 붙들고 있는 대로 가만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내가 틀린 말 했냐? 쟤네 아부지가 쟤네 어머이 패는 거 맞잖어! 그렇게 생겼으믄 나 같아도 패겠…….”

내가 앞으로 튀어나가는 힘이 날 붙들고 있는 힘들보다 셌다. 나는 또 한 번 사내애의 몸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녀석도 맞고만 있지 않았다. 녀석이 주먹을 마구 휘둘러 내 얼굴을 맞혔다. “야, 그만해라!”, “하지 마!” 하는 언니들의 외침이 이어졌다. 그 와중에 덕분이도 훌쩍거리면서 끼어들었다. “하지 마…… 그러지 말어…….”

언니 여럿이 나와 사내애를 떼어놨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언니 둘이서 내 양팔을 하나씩 잡고 끌고 갔다. 그 뒤를 덕분이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물동이가 깨졌기에, 올 때와 달리 들고 갈 게 없었다.

우리 집이 저만치 보일 때쯤에야 언니들이 팔을 놔주었다.

“괜찮니?”

언니 한 명이 내 얼굴을 만지며 물었다. 주먹으로 맞은 곳이 화끈거렸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어서인지 아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언니들은 찬 걸 얼굴에 대고 있으라 이르고 떠났다. 나는 아직도 울상을 하고 있는 덕분이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했지만 덕분이는 고개를 저었다.

“너 혼나믄 어떡해?”

내가 괜찮다고 해도 덕분이는 막무가내로 따라왔다. 마당에 들어설 때는 한 손을 뻗어 내 손을 꼭 잡기까지 했다.

할머니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옥 할매를 본 순간 내 속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본 옥 할매가 바로 입을 열었다.

“야야, 너 얼굴이 왜 그러니?”

옥 할매의 말을 들은 할머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부엌에 있던 어머니도 나왔다. 어머니가 짧게 숨 들이켜는 소리를 내더니 득달같이 달려와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쌌다.

“얼굴 왜 이래? 넘어졌니?”

나는 어머니의 손에 감싸인 채 고개를 저었다. “어디 부딪쳤어?” 도리도리. “뭐 이상한 거 먹었니?” 도리도리. 어머니가 내 얼굴을 이렇게 만들 만한 게 또 있는지 생각하는 사이 덕분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제 편 들어주다 그런 거예요! 혼내지 마세요!”

나를 내려다보는 어머니의 얼굴이 망연해졌다. “시방 그게 무슨 소리니?” 옥 할매가 말했고, 우리 할머니도 뭐라뭐라 중얼거렸지만 무슨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덕분이가 어찌 된 일인지 설명을 시작했지만 우느라 말이 너무 자주 끊겨서 내가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우물에 도착했을 때부터, 반쯤 찬 물동이가 깨지고, 사내애가 나타나 덕분이를 골리고, 급기야 덕분이 어머니 아버지에 대해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지껄인 일까지 끊지 않고 모두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는 옆에 엉거주춤 서 있는 덕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일그러졌던 덕분이의 얼굴이 조금씩 펴졌다.

“그렇다고 지집아이가 사내애랑 싸우믄 되니? 얼굴이 그게 뭐야?”

옥 할매가 빤히 그럴 법하면서 아무 타격 없는 말을 내뱉었고,

“저게 다리 사이에 뭘 달고 태어났어야 했는데…….”

할머니가 내 기억 속 아주 어릴 적부터 수없이 들었던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저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벌컥 치밀곤 했지만 지금은 사내애 때문에 차오른 화가 할머니의 말을 튕겨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화가 누그러질수록 꾸중 들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점점 고개를 들었다. 옥 할매가 “저거 숭 지면 어쩌네” 하면서 몸을 일으키자 우리 할머니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덕분이를 집에 데려다주기 전 우리 둘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남을 때리면 안 돼. 그럼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하지만 꾸중하는 투는 아니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내 얼굴을 보고 기겁한 아버지에게도 어머니는 내 편을 들어주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는 “지집아이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놓으믄 어쩌냐”며 가서 따지자고 했지만 어머니가 말렸다. 나는 “그 녀석은 코피까지 났다”고 덧붙이려다 말았다.

그 일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다음날 옥 할매가 와서 “저기 어디 있는 영험한 절”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기서 공양하고 빌믄 아들 낳게 해준다네. 벌써 여럿 효과를 봤대.”

옥 할매가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서 저런 말을 하는 의도가 어제 일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막 들은 얘기거나,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듣고 계속 별러오다가 내 다리 사이에 뭐가 달려 있어야 했다는 할머니의 푸념을 듣고 얘기해주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공양을 얼마나 해야 한다니?” 할머니가 혼잣말하듯 중얼중얼 묻자 옥 할매는 “공양이야 사정껏 하면 될 일이지” 했다. 어머니는 옆에 있었지만 막내를 먹이느라 분주해서인지 이쪽을 잠깐 돌아보지도 않았다.

옥 할매가 돌아가고 나서 할머니는 바로 어머니를 채근하진 않았다. 하지만 평소처럼 곧장 방에 들어가진 않고, 어머니가 빨랫감 챙기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어머니가 땅바닥에 놓았던 빨래 소쿠리를 번쩍 들려고 할 때, 그제야 슬며시 말을 걸었다. “얘, 거기 가보믄 어떠니?”

여하간 할머니는 누굴 때리거나 누군가에게 맞고 들어와도 되는 아이를 얻고 싶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소쿠리를 바로 들어 올리진 않았지만 뭐라 대답하지도 않았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어머니를 보고 있었고,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을 때 눈이 마주쳤다. 어머니가 마침내 빨래 소쿠리를 들며 말했다. “전 안 가요.” 그러고는 바로 빨래터로 향했다.

그런 다음부터 할머니는 어머니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을 걸면 시큰둥하게 고개만 끄덕이거나 저을 뿐이었다. 할머니가 어머니를 그렇게 대하는 걸 보니 이상했다. 할머니도 아버지만큼이나 어머니를 아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금도끼처럼 아낀다면, 할머니는 옥으로 만든 솥단지인 양 어머니를 아꼈다.

그러고 며칠 뒤 어느 밤인가 새벽인가 잠깐 잠이 깼을 때 먹먹한 귓속으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말씨는 조곤조곤했고, 거기에 대꾸하는 아버지의 목소리도 전에 없이 나직하고 조심스러웠다.

“……어디 있어요? 보기만 할게요. 보여줘요.”

“안 돼요, 약속했잖어요. 하나만 더…… 어머이도 아들을 바라시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뭔가를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저토록 간곡하게 말하는 건 처음이었고, 어머니의 부탁을 아버지가 들어주지 않는 것도 나는 처음 보았다. 평소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탁을 거의 들어주었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보고 싶어하는지 궁금했지만 그 궁금함을 이어갈 새도 없이 금방 도로 잠들었고 깨어난 뒤에도 그것을 떠올리지 못했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한 건 감자 수확이 끝날 즈음이었다. 내 얼굴에 난 상처가 없어졌듯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 서운함이 누그러진 것일 수 있지만, 어머니가 밭에 나가 삯으로 받아 온 것 하며 아버지가 해 온 나무와 바꿔 갖고 온 것들로 감자움이 가득 차서 기분이 좋아진 덕택이기도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아버지가 수시로 채워 넣기 때문에 감자움이 바닥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감자나 고구마 따위가 줄어들었다 싶으면 아버지는 더 일찍부터 산에 올라가서 더 늦은 시간에 내려왔고, 동네 모두가 그런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칭찬했다.

감자움이 가득 찬 김에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감자옹심이를 만들어 먹자며 말을 걸었고 어머니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업고 있던 막내를 할머니 방에 뉘어놓고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가 움에서 미리 옮겨다 놓은 감자가 부엌 한쪽에 쌓여 있었다. 어머니가 감자를 하나하나 집어 들고 강판에 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덕분이 어머니가 왔다.

덕분이 어머니는 늘 보던 것처럼 얼굴에 멍이 들고 코언저리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오늘 다른 점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는 것이었다. 덕분이 것과 똑같이 생긴 눈은 댕그랗게 떠져서, 꼭 분칠한 듯한 얼굴에서 튀어나오려는 것처럼 보였다. 회색 저고리에도 평시보다 피가 더 많이 묻어 있었다. 숨을 거칠게 내쉬며 울먹울먹하고 서 있는 덕분이 어머니를 뒤늦게 본 선이가 조그맣게 소리 지르며 부엌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갔다. 부엌의 어머니가 얼른 밖을 내다보았다.

“왜 그래요?”

어머니가 나와 덕분이 어머니 사이로 뛰어들다시피 하며 물었다. 덕분이 어머니는 이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떨리는 몸을 잡아주려는 듯 어머니가 두 손을 뻗어 덕분이 어머니의 양팔을 붙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덕분이는요?”

딸 이름을 듣자 덕분이 어머니는 그제야 넋을 다잡는 듯했다.

“더, 덕분이는…… 외, 외가에 시, 심부름…….”

덕분이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어머니는 저고리 앞섶을 흠뻑 적신 피가 어디서 나오는지 찾으려고 덕분이 어머니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그때 덕분이 어머니가 우리 어머니의 소매를 콱 움켜잡았다.

“어, 어찌해요…… 내가 잡혀가믄 우리 덕분이는 어찌…….”

다친 곳을 찾던 어머니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무언가를 알아챈 표정이 어머니 얼굴에 떠올랐다. 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잡혀가다니? 덕분이 어머니가 왜? 누구한테?

어머니는 더 이상 묻지 않고 덕분이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면서 내게 부엌에 들어가서 동생을 잘 보고 있으라고 일렀다. 나는 한달음에 부엌으로 뛰어 들어갔다.

“덕분 언니네 어머니 갔어?”

구석에 쪼그리고 있던 선이가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선이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덕분 언니네 어머니 너무 무서웠어. 꼭 귀신 같았어.”

나는 선이를 향해 쉿, 한 다음 옆에 있는 솥단지 뚜껑을 열었다. 찐 고구마 몇 개가 들어 있어서 하나를 꺼내 선이에게 주었다. 뜨거운 고구마를 호호 불면서 먹느라 한동안은 조용할 것이었다.

그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갑자기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도 덕분이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도 아닌, 아저씨들의 굵직한 목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저 집 뒤져봐!” “거기 찾아봐!” 하는 외침들이 오갔다. 잠시 후 아저씨 하나가 시뻘게진 얼굴에 무서운 표정을 짓고, 나와 선이가 있는 부엌에 들이닥쳤다. 그때까지도 세차게 뛰고 있던 내 심장이 한순간 멎는 듯했고 고구마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선이는 화들짝 놀란 데 이어 울음을 터뜨렸다.

“뭐야? 니들만 있냐?”

아저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당황한 듯 물었다. 즉시 어머니의 외침이 이어졌다.

“여기 없다고 했잖아요!”

아저씨 뒤에 어머니가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저토록 화를 내는 어머니는 처음 보았다. 덕분이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선이가 울음을 그쳤다. 아저씨는 아궁이 옆에 서 있는 우리와 부엌을 훑어보더니 몸을 홱 돌렸다. 그러고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덕분네 보면 꼭 와서 이르쇼. 서방 눈깔 후벼 파고 도망간 여편네 잡아야지.”

어머니가 얼굴을 한껏 굳히고 아저씨 어깨 너머로 우리를 건너다봤다. 세차게 뛰던 내 심장고동이 이상하게 잦아들었다. 다행히 선이는 아저씨가 한 말을 이해 못 한 듯, 슬쩍 보니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나와 선이는 아저씨들이 돌아간 뒤에 부엌을 나갔다. 할머니가 툇마루에 나와 앉아 있었다. 어머니에게 “덕분네가 뭘 했다고?” 하고 묻는 걸 보니, 아저씨들이 와서 시끄럽게 굴기 전 덕분이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온 건 모르는 듯했다. 할머니는 허리만큼이나 귀도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대충 둘러댄 뒤, 갈다 만 감자를 다시 갈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머니가 덕분이 어머니를 어디로 데려갔는지 궁금했지만 할머니 앞에서는 묻지 않고 어머니를 따라갔다. 부엌 바닥에 감자가 아까보다 높게 쌓여 있었다. 어느 사이에 어머니가 움에서 더 꺼내 갖고 온 듯했다. 우리 식구가 먹을 양으로는 이미 넉넉했는데 어째서 더 꺼내 왔을까 궁금하면서도 묻지 않고 그 옆을 서성거리자 어머니가 손을 쉬지 않은 채 나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시든 제비꽃을 되살릴 때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움에서 감자를 왜 이렇게 많이 꺼내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덕분이 어머니는 조그마해서 감자들 사이에 충분히 몸을 감출 수 있을 것이다.

 

어두워서 귀가한 아버지가 밥상 앞에서 덕분이 어머니 얘기를 꺼냈을 때도 어머니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도끼날을 갈려고 읍내에 들렀을 때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이제야 자세한 사정을 알게 된 할머니가 말했다.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서방 눈을 그렇게 만들믄…….”

“두 눈 다 못쓰게 될 수도 있다던데. 달아난 덕분네는 아직 못 찾은 것 같더라고요.”

나는 선이가 덕분이 어머니를 봤다고 지껄이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 애는 감자옹심이를 입에 넣느라 바빴다. 저 작은 몸에 벌써 두 그릇째가 들어가고 있었다.

밥상을 물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뒷간에 가려고 방을 나서자, 부엌을 나와 뒷마당으로 향하는 어머니가 보였다. 내 짐작이 맞다면 어머니는 옹심이를 한 그릇 떠 가지고 감자움으로 갈 것이다. 나는 혹시 어머니가 나에게 해줄 말이 있을까 싶어, 볼일을 보고 나와서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았다. 시든 제비꽃을 되살린 일처럼 어머니와 나만 아는 비밀이 또 하나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잠시 후 어머니가 집 옆구리를 돌아 나왔다. 아마도 비어 있을 그릇을 들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환했다. 환하다 못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 얼굴은 덕분이 어머니를 도운 기쁨만도 아니고, 나나 선이나 막내를 볼 적마다 짓는 환한 표정만도 아니고, 제비꽃이 되살아났을 때 떠올렸던 환희만도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합친 데다 내가 모르는 어떤 기쁨까지 더해진 얼굴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엇이 그리 기쁜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때 아버지가 방에서 나왔고 그러자마자 어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싹 가셨다. 그렇다고 얼굴을 일그러뜨리거나 한껏 굳힌 건 아니었지만, 환희의 빛은 사라졌다. 나는 차마 물음을 뱉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방에 들어갔다.

 

어느 때인가, 바깥의 소란스러움에 잠에서 깼다. 아직 밤인 듯 문풍지는 어둠에 젖은 칙칙한 잿빛이었다. 밖에서 아저씨 몇몇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낮에 들었던 소란과 비슷했다. 이리 나와! 거기 잡아! 이런 고함들 끝에 가녀린 비명이 붙어서 늘어졌다. 낮에 들었던 어머니의 단호한 외침도 섞인 것 같았다. 안 돼! 그러지 말아요! 아버지 목소리도 있었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밖을 내다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한 번 가슴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들켰다. 덕분이 어머니를 감자움에 숨긴 게 들통난 것이다. 어쩌다 들켰을까? 아저씨들이 다시 와서 집을 뒤져봤나? 아니면 감자움에 자주 가는 아버지가 찾아낸 걸까? 어쩌면 아버지는 이따금 한밤중에 감자움에 가서 움을 덮은 거적을 들춰보는지도 몰랐다. 어둠 속에서 거적을 들춘 순간 감자 더미에서 목만 나와 있는 덕분이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을까?

살려줘요! 악! 잘못했어요! 덕분이 어머니의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왜들 이래요? 때리지 말아요! 우리 어머니 소리도 점점 커졌다.

결국 동생들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막내가 톡 울음을 터뜨렸고, 선이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울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가는 모양이었다. 덕분이 어머니의 비명이 바로 문 밖에서 들리자 선이는 한차례 울먹이면서 양손으로 귀를 콱 틀어막았다.

덕분이 어머니의 절규가 길게 이어지면서 흐릿해지다가 마침내 끊겼다. 선이가 옆에서 찔끔찔끔 울기 시작했고 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 같았다. 세차게 뛰는 고동 소리가 밖까지 들릴까봐, 아까부터 똑같은 음높이로 울고 있는 막내를 품에 안았다. 그때 어머니의 말소리가 들렸다.

“당신이에요?”

어머니가 그렇게 날카롭게 말하는 건 처음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에 숨어 있었다고 했…… 숨겨준 게 아니라…….”

우리가 깰까봐서인지 워낙 숨죽이며 말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뭐라고 대꾸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반면 어머니의 말은 너무도 또렷하게 들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하고 도망갔으믄 ……받아야지.”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그런 짓을 했겠어요? 그런 가엾은 사람을 어떻게 발고해요?”

“……줬다가 들키믄 경을 칠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마구 튀어나오려는 외침을 최대한 억누르는 듯했다. 가끔 어쩔 수 없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낱말 몇 개만 알아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렇게 매정하게…….”

“……게 아니라 ……했다가 괜히…….”

그 뒤로 대화가 몇 차례 더 오갔지만 어머니의 말은 아버지가 내뱉는 낱말들에 번번이 끊겼다. 어머니가 결국 큰 소리를 냈다.

“사슴은 숨겨줘 놓고!”

아버지의 속삭거림이 뚝 그쳤다.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내 고동만 북소리처럼 귀에 둥둥 울렸다. 나는 아버지가 뭐라고 대꾸할지, 아니면 어머니가 무슨 얘기를 더 이어갈지 기다렸지만 그 뒤론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바깥 소리에 신경 쓰느라, 막내가 어느새 울음을 그친 줄도 몰랐다.

잠시 후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다. 아버지는 겁먹은 나와 선이와 내 품에 안겨 있는 막내를 흘깃 보고는 별말 없이 아랫목 자기 자리에 누웠다. 어머니는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방 문을 열어보았다.

어머니는 마당에 멀거니 서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지는 않았다. 문고리를 잡은 채로 아무리 기다려도 어머니는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나는 문을 도로 닫고, 어느 결에 잠든 선이 옆에 누웠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서 금방 잠이 오진 않을 것 같았다.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일갈이 계속 귀에 맴돌았다. 사슴은 숨겨줘 놓고! 아버지가 사슴을 어디에, 무엇한테서 숨겨줬다는 걸까? 아버지는 왜 사슴은 숨겨주고 덕분이 어머니가 숨은 곳은 일러바쳤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어머니가 들어올 때까지 잠들지 말자 다짐했는데 한참 후 아버지가 코 고는 소리를 듣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 또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나는 어머니의 손길에 잠에서 깼다. 아마도 셋쯤 셀 시간만 지난 듯했는데 어느새 바깥에선 희부연 빛이 문풍지를 뚫고 들어오고 있었다. 해님이 뜨고 있었다. 얼마큼 잤는지 알 수 없었다. 옆에서 “선아……” 하고 부드럽게 동생을 깨우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이가 좀처럼 깨질 않자, 어머니는 부름을 멈추고 막내부터 안아 올렸다.

나는 눈물과 눈곱이 잔뜩 맺힌 눈을 비비고 어머니를 다시 봤다. 어머니는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어머니가 입은 것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입은 것을 보지 못했던 옷이었다. 궐에 사는 공주님이나 저런 옷을 입을까? 어머니가 움직일 적마다 연한 진달랫빛 풍성한 치마가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저고리의 하늘빛은 막 세수를 마친 막내의 얼굴처럼 티 하나 없이 맑았다. 등에는 양쪽으로 옷고름처럼 생긴 하얀색 긴 끈이 달려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그 옷을 입은 어머니는 정말로 선녀님 같았다.

나는 또 한 번 눈을 비볐다. 내가 아직 자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꿈을 꾸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의 저 모습이 금방 깨버릴 꿈이라도 되는 양, 나는 허겁지겁 선이를 깨웠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이 아니라 거칠게 잡아 흔드는 내 손길에 선이는 뭐라고 칭얼대며 잠에서 깼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자, 어머니랑 같이 가자.”

어머니는 어느새 막내를 포대기에 싸서 앞으로 안고 있었다. 어머니가 나와 선이에게 각각 한 손을 내밀었다. 나는 꿈속 장면을 보듯 멍하니, 선이는 아직 반쯤 감긴 눈으로 그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당으로 나오자 그때야 나는 정신이 조금 들고 선이는 눈이 떠진 것 같았다. 어머니가 입고 있는 옷을 본 선이가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그 옷 어디서 났어요?”

“덕분 어머니가 주셨어.”

어머니는 막내를 앞에 매달고 두 손으로 각각 나와 선이의 손을 잡은 채 마당 한가운데 섰다. 선이가 다시 묻는다.

“덕분 언니네 어머니는 어디서 그런 옷이 났대요?”

“감자움에서. 덕분 어머니가 감자움에서 찾아주셨어.”

“나도 감자움 갈래요. 나도 그런 옷 입고 싶어요.”

감자움에는 절대로 가지 않던 선이가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있다고 한 구렁이는 한 번도 못 봤지만 이 옷은 실제로 눈앞에 있었다. 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어머니랑 같이 가면 이런 옷 매일 입을 수 있어.”

“어딜 가는데요?”

이번엔 내가 물었다.

“어머니 집에.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에.”

나는 어머니의 고향이 어딘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에게 고향이 따로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어머니는 웃고 있었지만, 내게 강냉이 한 알 한 알에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된다고 말했을 적의 장난기는 그 웃음에서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정말로 고향에 가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다음 순간 내 발이 땅바닥에서 들렸다. 공중을 붕 날아가 사내애를 때려줬을 때랑 비슷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놀라서 옆을 보니 어머니의 몸도 공중으로 들려 올라가고 있었다. 어머니 옷에 달린 두 줄의 긴 끈이 이제는 꼭 나비 날개 모양처럼 변해서 하늘거렸다. 저쪽 옆에서 선이가 “어어” 하고 짧은 외침을 토했다. 막내는 어머니 품에서 그저 편하게 잠들어 있었다.

우리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갔다. 집을 둘러싼 싸리나무 위로, 작년에 아버지가 새로 인 지붕 위로, 집 옆 박달나무보다 더 위로, 하늘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어머니, 무서워요.”

선이가 말했다. 나도 어머니 손을 더 꽉 붙들었다. 어머니가 말한다.

“괜찮아.”

그러자 시든 제비꽃이 다시 피었을 때처럼, 벼락 맞은 다래나무가 되살아났을 때처럼, 정말로 괜찮아졌다. 괜찮아졌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외가에 가는 설렘도 느껴졌다. 어머니의 고향은 어디일까? 이렇게 날아서 갈 수밖에 없는 곳일까?

좀 더 올라가자 고개 너머 집들까지 내려다보였다. 저기 어느 집에 덕분이가 있을 것이다. 조만간 덕분이를 만나 “나도 외가에 다녀왔다”고 자랑할 수 있다. 덕분이는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 생긴 일을 알까? 외가에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잡혀가고 아버지는 눈이 안 보이게 됐다는 걸 알면 얼마나 슬플까? 물론 눈이 안 보이게 되면 노름을 못 할 테니 그건 다행으로 여길지 모른다.

어느새 우리는 아버지가 매일 가는 뒷산 꼭대기보다 더 높이 올라와 있었다. 저기, 나무를 하고 있는 아버지가 보인다. 지게 옆에는 이미 나뭇가지가 한가득 쌓여 있다. 아버지가 도끼를 한 번 내리찍을 적마다 그 옆 나무들까지 바르르 떨렸다.

열심히 도끼질을 하던 아버지가 문득 뒤돌더니 위를 올려다봤다. 아버지가 우리를 발견한다. 아버지는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이윽고 아버지의 손에서 도끼가 땅바닥으로 떨어진다. 아버지가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온다.

“어? 아버지다.”

선이가 아버지를 향해 한 손을 흔들자, 아버지는 공중에다 두 손을 휘저었다. 선이처럼 반가움에 손을 흔드는 것 같진 않았다. 아버지가 뭐라뭐라 외치는데 들리진 않는다. 어머니가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아버지에게 말을 안 한 걸까? 내 손을 잡은 어머니의 손에 아까보다 더 힘이 들어갔다.

아버지가 아무리 팔을 휘젓고 소리를 질러도 우리는 계속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아버지도 계속계속 쫓아왔다. 그러다 결국 절벽 끝에서 멈춰 섰다. 아버지는 거기 서서 하염없이 우리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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