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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재후는 꿈을 꾼다

2022.02.12 16:5602.12

나는 어느 날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으므로. 감은 눈에 힘을 주고 몸에서 힘을 뺐다. 또는 무작정 지칠 때까지 어느 곳이고 달렸다. 그러면 꿈에서 깼다. 원근감 없는 현실이 주는 아득함에 질렸다. 금방이라도 달아나버릴 듯한 천장과 가볍게 떠오르는 것 같은 몸은 이내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이치는 겨울 높바람에 묶였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흙냄새가 코끝에 뭉치고 기름에 전 내가 면봉 끝처럼 깊숙이 콧속을 찔렀다.

침대에서 몸을 비틀다 일으켰다. 창문을 밀치듯 닫았다. 창 바깥으로 꺼풀이 벗겨져 맨살을 드러낸 땅이 입김을 내불고 있었다. 꿈인가. 현실인가. 잠시 분간을 못하다가 꿈인지 현실인지 물어볼 사람이 없는 걸 깨달았다. 꿈에서라면 재후가 있을 것이고 나는 언제나처럼 재후에게 물을 것이었다. 여기 꿈이야, 현실이야? 물으면 재후는 꿈 아니야, 하고 살그머니 웃으며 대답할 터였다. 그 말을 믿고 정말 꿈이 아닌 줄 알고 근데 왜 이렇게 앞이 흐리지 재후야, 네가 잘 안 보여, 하다가 눈을 깜박거리는 와중에 재후의 얼굴이 아닌 황량한 원룸 벽지가 눈에 들어오면 나는 분노가 솟았다.

아니라면서. 꿈 아니라면서.

나의 화가 난 모습을 보거나 짜증 섞인 말을 들을 사람도 없었기에 속이 더 들끓었다.

냉장고 문을 연 뒤 사이다 병을 꺼내 따라 마셨다. 탄산 빠진 단 물은 꼭 재후와 닮았다. 단 한 번 끓거나 솟구치거나 힘을 발산한 적도 없이, 미적지근하게 식도를 타고 증발해버린 사람. 그런 사람은 매력 없었다. 그런데 또 그게 매력이었다. 달잖아. 나는 생각했다. 다니까 계속 마시는 것처럼 재후를 만났다. 은은히 배어나오는 그 단 맛이 좋아서. 사람의 단 맛이란 무엇일까. 나는 알아내지 못했고, 재후는 알려주지 않은 채 사라졌다. 굴착기가 움직이는 소리가 닫힌 창 너머로 들려왔다. 나를 깨우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몇 번째인지 모를 꿈을 단 채 욕실로 향했다.

여섯 번째 남자가 남긴 키스마크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내 허리 아래서 열심히 몸을 비비적거리던 남자는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처럼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몸 곳곳을 애무하며, 콘돔을 쓰지 않으며 흔적을 남기려고 애썼다. 나는 내버려두었다. 흔적이란 그렇게 남기고 남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재후가 알려주었다. 남자는 온 삶에 축적된 정력과 힘을 내게 모두 쏟아내고 껍데기만 남긴 뒤 연기처럼 사그라질 사람처럼 굴었다. 몇 번이고 사정한 뒤 몇 번이고 나를 껴안은 채 또 만나자, 한 마디를 겨우 했다.

나는 비누와 샴푸를 묻혀 키스마크와 남자가 남긴 잇자국을 박박 문질렀다. 여섯 번째 남자는 자신이 처음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 라고 답했다. 처음인 것 같던데. 그는 엉덩이로 손을 옮기며 말했다. 아니라고 했잖아. 처음은 언제나 재후의 몫이었다. 끝은 내가 곁을 주지 않았기에 누구의 것이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첫 번째 남자부터 여섯 번째 남자까지 내가 마음껏 흔적을 남기라 허락했던 까닭은 간단했다. 재후가 어떻게든 알아보았으면 해서였다. 재후, 네가 너를 남기지 않고 남기지 못했던 몸에 수없는 타인의 손길이 닿고 섞여 뿜는 악취를 알아챘으면, 그래서 나를 찾아와 여긴 꿈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고 나를 영원히 꿈에 가두어버렸으면, 해서.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고 나는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열 번째 남자를 만날 것이다. 왜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허한 거야? 외로운 거야? 그럴 거면 연애를 하든가. 섹스 파트너를 구하던가.

친구들은 돌아가며 그렇게 말했다. 종로에 있는 술집에서였다. 한 명은 나랑 자려고 집적대는 놈이었고, 한 명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대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만난 형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재후가 있어야 했다. 빈자리는 빈자리로 남겨두었다. 누가 오더라도 원래의 주인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 친구 형은 그때 유튜브 알고리즘이 참 큰 일 했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게 왜 마음이 이끌려서는 결국 이 사달을 나게 만들었느냐고. 마치 나를 원망하듯이. 나는 그게 내 책임이냐고 따졌고 친구 형은 일정 부분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따졌다. 체념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뒤이어 염치라는 말이, 치졸하다는 표현이 끝말잇기처럼 이어졌다.

나는 욕실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순간 문이 꽝, 소릴 내며 닫혔다. 감색 문이었다. 재후와 다시 만나 동거를 시작했을 때 도배를 했던 문. 그게 날 노려보는 것 같아 나는 눈길을 다른 곳으로 굴렸다. 친구들의 말대로 재후의 꿈 일기 유튜브를 보지 말았어야 했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보지 않았으면 보지 않았던 대로 후회했고, 재후는 어쨌거나 죽었으리라는 것을.

 

재후를 만난 건 노량진의 한 고시 스터디 모임에서였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와 무작정 9급 공무원 고시를 준비했는데, 이유는 하나였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뭔가 앞뒤가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것 같지만 잘 생각해보면 아귀가 맞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긴 힘드니 안정적이고 여유시간이 확보되는 직장이 필요하고, 부모님과 누나는 거기에 공무원이 제격이라며 열성적이었다. 몇 해 전 임용고사를 통과해 공립학교 교사가 된 누나는 갖가지 시시콜콜한 예를 들어가며 공모원의 장점을 이야기했고, 어쨌거나 여유 있게 글 쓰려면 공무원이 최고지, 내 오랜 꿈의 정곡을 찌르며 말을 끝맺었다. 지방의 한 대학 문창과를 나온 나로서는 크게 선택지가 없었고, 어느 정도의 지원을 받으며 공부에 매진한다는 약속과 조건 하에 노량진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그곳에서 공부를 했으면 다행이련만, 낡아빠진 노트북으로 소설만 썼다. 몰래 느닷없이 올라온 누나가 그걸 알고 무작정 스터디를 찾아 나를 처넣었다. 그곳의 스터디장이 백재후였고, 내가 성을 떼고 부른 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재후와 나는 동갑으로 죽이 잘 맞았는데, 먼저 좋아한 건 재후였다. 그런데 웃긴 건 내가 먼저 커밍아웃을 했다. 스터디 면접 준비에서 퀴어 인권 관련 논쟁이 나온 직후였다. 호모포빅 발언을 일삼는 스터디원들을 향해 화를 내며 책상을 뒤엎을 기세로 커밍아웃을 했다. 나는 말리는 재후를 뿌리치고 가방을 메고 스터디룸을 나섰다.

왜 그래? 미안하다고 하잖아. 네가 그쪽인줄 몰랐다고 하잖아.

내가 그쪽이 아니더라도 그런 말은 해선 안 되는 거였어.

그건 맞는 말인데, 그렇다고 갑자기 나가버리면.......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물었다. 재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다 이내 핏기를 되찾았다.

나도 게이다, 혜준아?

그것이 내 삶에 일말의 균열을 일으켰고, 그 균열 속으로 재후의 삶이 스며든 게 그때부터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얼토당토않게 이루어진 그의 커밍아웃에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속으론 네가? 왜? 라고 거듭 묻고 있었다. 다행히 입 밖으론 그래서? 라고 물었다. 그는 그래서, 라고 몇 번 중얼거린 뒤에 그럼 같이 나가자, 말을 툭 던졌다.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재후는 이후 줄곧 꿈이 아니야, 라고 말할 때의 그 미소를 처음으로 그때 내보였다. 우리는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폈다. 한 모금 빨고 건네주고, 다시 한 모금 빨고 건네기를 몇 번 반복했다. 서로의 살갗을 맞대기 전에 숨부터 빌려준 우리였다.

넌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지? 공무원 되고 싶은 게 글을 쓰기 위해서라고.

나는 겨울 냉기에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난 그냥, 이 나라에서 게이로 태어나서 불안정하게 사는 와중에 그나마 먹고 자고 싸는 건 안정적으로 하고 싶어서. 너는 안 그러니?

난 소설 쓰는 것밖에 생각 안 해봐서.

신호등이 깜박이고 있었다.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하기 싫었다. 재후가 나처럼 게이라는 것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도, 소설 스터디를 나온 것도 모두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저 가눌 길 없는 충격과 놀람의 연속이었다. 배달 라이더들이 신호를 무시하고 굉음을 내며 스쳐 지나가고, 버스는 기우뚱거리며 빈 도로를 내달렸다. 우리는 한 아파트 단지 정문 입구를 지나쳤다.

나는 꾼 적이 없다?

느닷없는 재후의 말에 나는 오글거려 어깨를 툭 쳤다. 그 꿈이 아니라 자면서 꾸는 꿈. 한 번도 꿈을 꾼 적이 없어. 나는 그건 그것대로 고통이겠다며 공감 아닌 공감을 표했다. 그러다 말도 안 돼, 기억을 못하는 거겠지, 말을 엎었다. 재후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어쨌거나 난 꿈을 꾼 느낌도 흔적도 기억도 없어. 근데 신기한 게 있다. 나는 뭐냐고, 추운데 카페나 들어가자고 말하려다 말았다. 아침에 책을 사서 커피 값이 없었다.

너 만나고서부턴 꿈을 꿨어.

자꾸 이상한 말 할 거면 나 집에 간다.

그러자 재후가 다급히 나를 붙잡았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안듯이 붙잡았다.

진짜야. 너 만나고서부턴 꿈을 꿨어. 그것도 오랫동안, 끊기지 않고. 처음엔 꿈을 꾸는 게 병에 걸렸나 싶어서 병원도 가봤어. 옛날엔 꿈을 꾸지 않는 게 병인가 해서 병원에 갔었는데. 이번엔 그 반대로. 모른다더라. 그냥 심적으로 불안한 게 나은 거래나.

날 만나고? 너 나 좋아하냐?

나는 킥킥거리며 물었다.

응. 나 너 좋아해. 혜준아.

 

굴착기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 본격적으로 등단을 준비하면서 굴착기, 지게차, 1종 면허 등 각종 자격증을 따 생계벌이에 돌입했는데, 지금은 꽤 능숙해졌다. 나는 구덩이를 파고, 산을 쌓고, 다시 구덩이를 파고 산을 쌓기를 반복했다. 무료하고 지루한 일이었다. 동시에 간단하며 복잡할 것 없는 삶이었다. 흙은 아무리 만져도, 아무리 냄새를 맡아도 익숙해지지 않고 늘 새로웠다, 낯설었다. 나는 침묵을 동반한 그 일이 좋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것과 비슷했다. 입을 다물고,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면에서. 인력소에서 나온 사람들과 건설사 현장 관리자들이 어지러이 체스 말처럼 파헤쳐진 사방에 널려 있었다. 나는 소설을 구상했다. 동시에 어제 만난 일곱 번째 남자를 기억했다. 재후와 무척이나 닮았더랬다.

혜준아, 이것 좀 이 정도 간격으로 쪼개봐라.

인력소 단골 박 씨 아저씨가 기다란 보도블록들을 굴착기 앞에 쏟아 부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곤 끝이 뾰족한 삽으로 갈아 끼워 작업을 재개했다. 보도블럭들이 재봉틀 바늘처럼 다다다 쪼아대는 삽 끝에 툭, 하고 갈라지며 쪼개졌다. 정말이지 일정하고 간결한 작업이었다. 별 다를 것도, 별난 것도 없는 작업에 낸 시간의 구멍을 꿰고 꿰는 일, 이라고 나는 소설에서 작업을 그렇게 표현했다. 한 평론가는 그런 내 묘사에 진부함에 진부함을 꿰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소설을 쓸 시간에 돌을 더 쪼개고 산을 더 쌓는 게 어쩌면 경험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본심에 올랐잖아, 나는 그렇게 자위하며 그의 말을 깊이 새기리라 명심했는데 다음 날 새벽, 맥주를 3000cc 정도 들이키고 취해 시발새끼, 개소리 하지 마, 외치면서 잡지를 찢어버렸다. 만 오천원이나 주고 산 계간지였다. 거기엔 내 당선작이 실려야 했는데, 그렇게 허물어질 게 아닌데. 재후가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내가 일을 하는 이곳엔 커다란 주상복합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이따금 이 근처 하천을 재후와 산책할 때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이 돈만 있다면 이곳에 땅을 샀을 거라며, 반드시 개발이 된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하천은 수심이 깊고 더러웠다. 천변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는 인근 연립주택 주민들 차지였다. 그때 나와 재후는 한 연립주택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보증금을 누나가 대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내가 동성애자라는 걸 안 건 벌써 십년도 더 지난 뒤였다. 자연스러웠고, 속전속결이었다.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이 있지도, 그렇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이 있지도 않았지만 대충 그래라, 하는 느낌이 강했다. 달라질 건 없을 거다, 라고 말하는 부모님 앞에서 누나도 맞장구를 쳤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집안 전체가 무교였고, 더군다나 아버지는 기독교를 혐오하다시피 했다.

개독 새끼들. 남의 돈 날라 튀면 천국 간다냐? 예수가 그렇게 멍청해?

사기를 당한 때문이었다. 시내에 커다란 부지를 매입해 대형교회를 짓는다면서 ‘헌금’이란명목으로 투자를 했는데 목사와 집사 일당이 그대로 돈을 들고 도망갔다. 재후는 그 얘길 들으며 깔깔거렸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나는 어떻게 되긴, 예수하고 하나님은 사기꾼이라고 엄마가 옆에서 거들면서 욕했지, 그런 것들 멀쩡히 살려둔다면서,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재후는 엄마는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자기도 딱히 성적 지향성이나 성정체성 때문에 부모로부터 탄압을 받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우리 둘 다 복 받은 거네. 길거리 호떡을 베어 물며 내가 넌지시 말했다. 해바라기 씨앗이 섞인 뜨거운 꿀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재후가 얼른 휴지를 빼 닦아주었는데, 그 행동이 그렇게 따듯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온기, 부모가 밑을 닦아주고 씻겨주고 안아주었던 손길에서 느꼈던 온기와는 또 다른 온기였다. 결의 재질과 방향이 다른 따듯함이 백, 재, 후, 라는 이름에 서린 낯선 어둠을 한 겹 벗겨냈다. 꿈을 꾸는 사람, 꿈을 꾸는 재후.

스물다섯의 우리는 각종 생계벌이 자격증을 따고, 각양각색의 알바를 했다. 넌 꿈이 뭐니? 어느 밤, 나는 악몽을 꿨다던 재후에게 냉수 한 잔을 건네며 말을 꺼냈다. 꿈, 꿈이라...... 있잖아, 혜준아. 나는 지금 꾸는 꿈이면 만족해. 자면서 꾸는 꿈? 내가 말했다. 그래, 그런 꿈으로도 족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 나는 그게 무슨 꿈이냐며 비웃듯 대꾸했다. 그런 건 누구나 꿀 수 있는 거야. 나는 그가 남긴 물을 마저 마시며 개수대로 갖다 놓았다. 자리로 돌아오니 재후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닿으면 찔릴 듯한. 그래서 영원히 박힐 것 같은. 왜 울어. 혜준아. 난 그런 꿈도 못 꿔봤다니까. 어떡해. 진짜 병인가 봐. 나는 알았다며, 울지 말라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지금 있는 이곳이 꿈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그래서 물었다. 재후야. 여기 꿈 아니지? 그가 내게 안겨왔다.

꿈, 아니야.

 

재후는 우울증도, 조울증도 어떠한 정신질환도 앓지 않았다. 정말 자면서 꿈을 꿔본 적이 없다는 말을 믿은 적은 없었다. 그저 신비주의,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또는 애인에게 일부러 내보일 은밀하고 사적인 약점 비스무리 한 거라고, 나는 여겼다. 처음 꿈을 꾸었던 날을 기억한다며, 일기로 기록해서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며 재후는 어린 아이처럼 장난기 어린 기쁨에 찬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산의 호수공원으로 여행을 간 때였다. 전국 최대 크기의 인공호수 공원은 겨울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제 팔도 안으로 굽는데 굽을 줄 모르는 나무의 가지들이 허공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땅은 단단한 듯 느껴졌지만 곧 꺼질 듯 속이 빈 것처럼 느껴졌다.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몸 곳곳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끝까지 번져갔다. 우리는 걷고, 벤치에 앉았다,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강아지를 보고 킥킥대며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다 적당한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펼쳤다.

첫 번째 꿈이 뭔지 알아? 너랑 섹스하는 꿈이었어. 그날도 했는데 말이지.

남사스럽다, 얘.

나는 재후의 어깨를 툭 밀었다.

근데 그게 끝이 아냐. 네가 전화번호 하나 안 알려주고 그냥 가더라.

어디서 했는데?

야외. 저번에 너 따라 구경 간 공사현장에서.

어머나. 개새끼네.

나는 입으론 그렇게 내뱉으며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재후는 재밌지 않느냐며, 좀 숭하긴 하지만 그게 자신이 꾼(기억하는) 첫 번째 꿈이라며 굉장한 의미를 부여했다. 나는 남하고 섹스를 하는 꿈은 천번만번도 더 꿨다고, 지겨운 클리셰에 불과하다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재후는 팔짱을 끼며 내 뺨에 얼굴을 부대꼈다. 나는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남들의 시선을 아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상관 쓰지 않기로 했다. 신기하지. 왜 그동안 꿈을 못 꾸다가 널 만나니까 꿈을 꾸게 된 걸까. 나는 그 말이 다분히 BL 만화나 순정만화에 단골대사로 나올 법한 말인 건 알고 있느냐고 말했다. 아무려면 어때. 진짜인데. 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거에 나가볼까? 평생 꿈을 꾸지 않고 살다가 운명적 연인을 만나 꿈을 꾸게 된 사람...... 같은 거 말이야. 그 전에 우리가 게이 커플인 걸 알려야 하는데 괜찮니? 내 반문에 재후는 대형견 마냥 머리를 얼레벌레 흔들었다.

그런 꿈 말고, 네 진짜 꿈이 뭐냐고.

생각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

사람이 꿈이 있어야지. 나 같은 애도 소설가라는 꿈이 있잖아.

굳이 따지자면....... 이혜준 남편?

미친년, 그를 떠밀었지만 그는 웃을 뿐이었다. 한없이 낮아지는 웃음, 0에 수렴하는 웃음, 흉내 낼라 치면 무섭게 무표정으로 바뀌는 웃음. 나는 내심 그런 재후를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네가 자면서 꿈을 꿀 동안, 다른 아이는 공부하며 꿈을 꾼다, 라는 오래 된 학창시절 명언을 떠올리면서. 근데 문득 꿈의 우열을 가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더군다나 한 번도 자면서 꿈을 꾸지 못한 재후에겐 꿈이야말로 그 꿈 자체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3주치 약을 타간다. 의사는 여느 때처럼 어떻게 지내느냐고, 운동은 하고 제 때 자고 제 때 먹고 제 때 싸느냐고 말을 건넸다. 나는 침묵을 부여잡다가 이내 놓쳐버렸다. 별다른 일은 없고, 밥은 그럭저럭 먹고요, 다만 일하는 게 힘드네요. 글 쓴다고 했죠? 의사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키보드를 두드리며 재차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소설 쓰나요? 시? 수필? 소설을 쓴다고 답하자 당분간 글을 쉬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글을...... 쉬라고요? 되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 가지에 얽매이거나 목매는 걸 잠시 놔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소설을 쓰지 않는 건 나를 유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더군다나...... 재후의 유언을 지키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의사는 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직도 애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가, 애인의 죽음이 지금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럴 것이 분명한데도 나는 애써 답을 회피했다. 의사는 그걸 눈치챘는지 잠은 잘 자느냐고 했다. 나는 아주 잘 잔다고 했다. 꿈도 꾸지 않고. 꿈을 꾸지 않은지 꽤 오래된 것 같다고 나는 부연한다.

그걸 왜 이제 말해요? 꿈 안 꾼 지 얼마나 됐는데?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것마저도 재후의 흔적일까 무서웠다, 라고는 대답할 수 없었다.

키보드에 놓인 그의 두 손이 더 빨라진다. 그대로 두 손만 분리돼 날아갈 것 같았다.

1년 정도 됐어요.

사람은 꿈을 꿔요. 기억하지 못하는 거지.

진짜 안 꿨어요.

기억을 못할 뿐이에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저 의사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병원을 나왔다. 꿈을 꾸지 않는 세상은 그 자체로 곧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재후의 담당의였던 의사는 그가 죽은 뒤 그대로 내가 바통을 이어받아 진료를 받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환자는 분리되어야 한다며, 더군다나 연인사이였다가 죽음으로 이별을 한 사람들은 각각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고집했다. 당신 아니면 진료를 받지 않겠다고, 그러다 죽으면 당신 책임이라고. 나는 죽을 만큼 우울하지도, 죽을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말은 그렇게 했다. 굴착기 삽으로 구덩이를 파듯 의사의 뇌와 마음에 묻힌 재후를 꺼낼 심산이었다. 내게는 하지 않았던 재후의 수많은 말들을 캐낼 것이었다. 쪼개야 한다면 쪼개고, 춥지 않게 잘 쌓아둔 산을 그대로 밀어 구덩이를 메우리라.

 

재후가 집을 나간 건 싸워서도, 어떠한 문제가 발생해서도 아니었다. 꿈을 꾸는 게 지겹다고, 계속해서 악몽을 꾸는 게 괴롭다고 했다. 이건 모두 내 탓이 아니라고 했지만 내 탓임을 장문의 편지에서 나는 읽을 수 있었다. 날 만나고부터 난생처음 꿈이란 걸 꿨고, 그게 악화되어 날 떠나는 거니까. 나는 하루 이틀 재후를 찾아다녔고, 끝내 찾았지만 감히 다가가 말을 걸 수 없었다. 꿈을 꾸지 않는 재후가 그렇게 맑고 유쾌해 보일 수가 없었다. 서점 근처 카페에서 퀴어 독서 모임 친구들과 떠들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저 관망하기만 했다.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입회원을. 그게 바로 나였다. 나였는데, 가지 않았다. 발길을 돌려 그대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되돌아갔다. 편지를 남기기 전부터 재후는 꿈을 꾸는 게 괴롭다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괴롭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치킨을 먹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이제 보니 나 할 것도 없고, 꿈도 없잖아. 공무원이라도 해서 벌어 먹고 살아야지.

그건 그렇지만.

너는 소설도 쓰고. 나는 그런 게 없잖아. 꿈 없는 인간이야.

꿈이 왜 없어. 너 꿈, 꾸잖아. 잘 때마다.

내 농담 아닌 농담에 재후는 아무런 표정 없이 닭가슴살 부위를 뜯었다.

재밌어? 웃겨?

난데없는 반문에 나는 응? 당황했다.

그래 재밌고 웃기겠지. 나는 한심한 인간이야.

무슨 일 있었어? 왜 그래?

나는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재후는 나를 바라보더니 그때처럼 석양으로 녹아내리는 눈으로 엄마가 왔다 갔어, 하고 말했다. 무슨 소리냐고, 엄마 돌아가시지 않았느냐는 말에 재후는 돌아가셨지, 자기 집으로 돌아갔거든,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하고 대답했다.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가 자신이 동성애자인 걸 알고 있다는 것과 회개해야 한다며 교회에 끌고 가려 했다는 것과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는 그녀의 물음에 단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한 아르바이트 인생을 대답이랍시고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는 처음으로 나를 만나 꿈을 꾸었다고 했다. 자면서 남들이 다 꾸는 꿈 한 번도 꾸지 못했는데 꿔봤다고, 판타지 같고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그 말을 하는 그의 표정은 시종일관 은은한 미소를 그렸다. 나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식어가는 치킨만 내려다보았다. 떠난다는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꿈을 꾸지 않는 게 더 좋았어?

나는 물었다. 재후의 눈물이 턱 끝에서 동글게 말렸다.

꿈을 꾸지 않았던 때가 더 행복했어? 아무런 꿈도 없이 깊이 잠들었을 때가?

재후는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말이 맞아. 꿈을 꾸면 깊이 잠들지 못하는 거래. 깊이 못 자면 피곤하지, 인생이.

그런 게 아니야.

잘 생각했어. 꿈은 이 정도로 꿔보는 거면 충분하지. 나라고 맨날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나는 꿈이 없는 삶을 원해. 행복한 꿈은 깨고 나면 비참하고, 비참한 꿈은 깨고 나면 더 비참해져. 재후야. 꿈이란 건 애초에 없는 건데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야. 너무 무섭고 끔찍한 나머지 이름을 붙인 거지. 네가 재후인 것처럼, 내가 혜준인 것처럼, 그것에도 꿈이라는 이름을. 치킨 식었어. 네가 좋아하는 양념 다 말라붙었다. 짠, 하자. 맥주 얼마 안 남았지만.

나는 맥주잔을 들이밀었고, 재후는 떨리는 손으로 맥주잔을 들고 잔을 부닥쳤다.

 

재후는 떠났고, 이후 2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애썼다. 소설을 아무리 써도 등단 언저리에도 가 닿지 못했다. 이름 없고 상금은 큰 공모전에 이따금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후 나는 동성애자들의 문화권에서 완전히 떠나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주류 이성애자들의 문화 속에서 그들의 친구인 척 살아갔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재후를 다시 만난 건 한 유튜브에서였다. 그때 그의 이름은 백재후가 아니라 백은매였다. 은매야. 나는 소리내어 불렀고, 재후는 은매로, 은매는 재후로 나타나 ‘유튜브 200만뷰를 자랑하는 꿈 일기 에세이 - 은매의 꿈’이라는 플랜카드를 달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나는 채팅창 한 귀퉁이서 그를 지켜보았다. 2년만의 재후는 살집이 올라있었으나 여전히 호리호리한 몸이었다. 안으면 좀 더 품에 알맞고 쏙 들어올 만한 크기였다. 그는 곧 자신의 꿈 일기를 담은 책이 나온다고 했다.

재후야. 오랜만이야.

나는 채팅창에 글자를 입력했다.

 

카페에 마주 앉은 나와 은매는 정적을 조금씩 슈니발렌 과자를 부수는 망치로 깨는 듯했다. 네가 나보다 먼저 작가가 되었구나.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네. 내 말이 힐난조로 들렸는지 재후는 그렇지 않다, 나는 재능이 없다, 다만 꿈 일기를 사람들이 좋아해주었을 뿐이라고 했다.

너와 사귈 때 꿨던 꿈들이야. 내가 말했지. 다 기록해놓는다고. 사람들이 좋아해줄 줄도 몰랐고, 정말 너와 헤어지고 나서 지금까지, 2년동안 꿈을 꾸지 못했어. 잠만 잤지. 너와 헤어진 이후의 시점부턴 모두 거짓말이야. 정말 꿈같은 상상력으로 지어낸 꿈 얘기지. 혜준아.

꿈이 돈도 되고. 꽤 알짜배기 시간이었네, 나랑 있는 동안. 그래, 왜 불러?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두려워 물만 홀짝였다.

나는, 있잖아...... 다시, 다시 꿈을 꾸고 싶어.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너 그거 집착이야. 사람은 누구나 꿈을 꿔. 네가 거짓말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기억이나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꿈도 사고파는 세상에 말이야. 그건 말이 안되거든.

그러면, 말이 안 된다면서 그땐 나랑 왜 살았어? 왜 내 말을 믿었어?

나는 빈 커피 잔을 빙글빙글 돌리기 바빴다.

재후의 말이 커피 잔을 지나칠 듯 말듯 스쳐갔다.

난 네 말 믿은 적 없어.

내가 단언하듯 말했다.

네 말을 이해한 거지.

이해하는 것과 믿는 건 무슨 차이가 있지.

믿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믿는 건 믿어야지, 그 사람이.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 이후로 재후를 몇 번 더 만났다. 우린 섹스를 하지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다만 꼭 맞붙어서 잠을 잤다. 꿈꾸는 재후를 옆에 두고 나는 꿈을 꾸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이 삶에서 어떻게든 벗어나야겠다는 결연한 의지, 다짐 따위를 맹세하며. 그런 재후가 어느 날 아파트 화단에서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꿈에서 깨려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죽는 건 또 두려워서, 실수로 현실인데 떨어져서 죽을까봐 묻곤 했다.

재후야.

응.

여기 꿈 아니지?

재후는 웃음을 터뜨리곤, 밝은 얼굴로 입술을 오므렸다.

꿈 아니야.

 

굴착기가 소음을 내며 멈춰 섰다. 나는 고장이 났다며, 더 일을 진행할 수 없다고 책임자에게 소리쳤다. 어차피 점심때니 밥이나 먹고 오라며 그는 나를 공사장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높게 지어진 주상복합의 골조를 바라보았다. 저기서 떨어지면, 꿈에서 깰 수 있을까. 이런 꿈 원하지 않는데. 나는 공사장 밖을 나가는 대신 공사 건물로 올라서기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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