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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하나의 아버지

2024.02.12 22:3402.12

우리 마을에서 우리 아버지에게 말을 거는 건 반칙이다. 기억나지 않는 어느 날부터 그랬고, 그게 그저 세상의 법칙인가 보다 했다. 그러나 가끔씩 옆집 아주머니가 내 앞치마에 계란을 세 알씩 넣어 주시면 나는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지푸라기로 화덕을 데워서 그걸 나눠 먹었다. 아버지는 내게 항상 노른자를 양보한 후에, 얼마 남지 않은 이로 흰자를 오래오래 씹어 드셨다. 나는 할 말이 있으면 아빠의 귀에 대고 소곤소곤 말했다. 아빠는 대답 없이 미소 지으며 끄덕였다. 나는 아버지 눈가의 주름이 좋아서 아버지의 눈을 길게 찢을 때가 있었는데 그럼 아버지는 통증에 숨을 들이켜곤 했다. 아버지 몸은 성한 곳이 없어서 항상 붉으락 푸르락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미움받는 사람이 맞을 매를 대신 얻어맞는 일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버지를 미워하는 데 습관이 들어 나중에는 진짜로 아버지를 미워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지난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던 그날은 한 자작의 반역 행위 교수형 날이었다. 어리고 멋모르고 손에 굳은살 하나 없는 자작 대신 온몸이 굳은살인 아버지가 대신 사형장에 들어가기로 정해졌다. 나나 아버지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정해 놓았다. 아버지는 정해진 틀 안의 퍼즐 조각이었다. 잔말 말고 끼워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햇볕이 따스했던 초가을 아침, 아버지는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교수형대로 왼발을 질질 끌며 걸어갔다. 몇 년 전부터 왼쪽 발목이 성치 않게 된 탓이다. 나는 한편으로는 울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피로하셨다. 그러나 그런 생각 자체가 파렴치하다고 느껴졌다.

 

전날 밤, 아버지는 선금을 받은 돈자루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어서 내 눈앞에 들이댔었다. 이걸로 지참금과 돼지와 닭을 마련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단단히 붙잡았다. 네 아들에게는 이 일을 물려주지 말거라.

 

사람들은 떠들썩하게 유쾌했다. 처벌은 집행되겠지만 아무도 죽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날이었으니까. 상인들은 구경꾼들에게 작은 태피를 팔았다. 나는 수레 뒤편에서 침을 뱉었다. 아버지는 절룩이면서 사형장의 교수형대까지 이르렀다. 나는 아버지의 뒤통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작게 흐느끼는 중이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홀쭉한 아버지는 공포에 질려 단두대 위에 목을 맞추었는데,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단두대에 허리까지 쑥 들어가는 게 아닌다. 사람들은 까르르 웃었다. 칼날은 둔하고 목재에는 잔뜩 가시가 일어난, 대충 완성된 길로틴이었다. 그때, 사형 집행인이 웬 아낙네한테 추파를 던지느라 손에 힘이 빠져서, 아버지는 그만 허리에 칼날을 맞고 비명을 지르셨다. 당황한 사형 집행인은 사망하시기까지 여러 번 도르래를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고, 어머니는 기절하셨고, 구경하던 자작은 흥미로 눈을 반짝반짝 빛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나는 인파 사이에서 소리쳤다.

 

아빠!

 

그때 마법이 일어났다. 아버지의 하반신이 일어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헛것을 본 줄 알았으나, 사람들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로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말거나 하반신은 절룩이며 마을 어귀를 지나 숲 저 너머로 도망갔다. 사냥당하는 토끼처럼 빨라서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돌아와서 사람들이 끌고 나가는 아버지의 상반신을 바라봤는데, 잔뜩 인상을 쓰고 눈을 부릅뜬 채였다. 난 아버지의 눈을 감기려 했지만 마치 돌로 굳은 듯 눈꺼풀이 감기지 않았다.

 

매장지는 우리 집 뒷마당이었다. 사람들은 저주라도 쓰인 듯, 고기를 다 먹고 남은 뼈를 버리듯이 우리 아버지를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그 이후로 일 년이 흘렀고, 저녁 기도를 드리기 전 아버지의 무덤에 가서 그날 발견한 들꽃이나 잎사귀를 하나 올리고 오는 습관이 몸에 익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하반신을 발견했다. 하반신은 자신의 무덤에 조문이라도 온 듯이 허리를 약간 숙이고 비루한 비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 닳아서 발가락이 드러나 보이는 신발 콧등으로 젖은 흙을 뒤집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지신가요? 아버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귀가 없어서일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부드럽게 아버지의 다리를 건드렸다. 아버지는 뒷걸음질 치다가 겅중겅중 절름절름 도망갔다. 소동이 일어난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등불을 들고나왔다. 나는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밤에 자거라. 자꾸 새벽에 나가서 설치지 말고. 그러나 나는 혹시나 해서 다음날에도 몰래 문을 밀고 나갔고,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아버지가 왔다. 허리를 굽히고 자기 상반신이 묻힌 곳을 지긋이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초식동물을 사냥하듯 낮게 포복해 접근한 후 아버지의 두 다리를 붙잡았다. 아버지는 거세게 바둥거렸다. 나는 아버지의 다리를 놓아주지 않고 다 헐어가는 바짓단을 위로 올렸다. 아버지의 맨 다리는 살아 있는 사람의 살갗처럼 탄력을 잃지 않은 채였다. 나는 눈을 양쪽으로 길게 찢듯이 양손으로 아버지의 다리 살갗을 다른 방향으로 밀었다. 아버지는 잠깐 멈추더니, 곧이어 지그 춤을 추었다. 왼발을 절면서. 나도 그 옆에서 치마를 말아올리고 지그를 추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다리에 물음표를 그렸다. 아버지는 잠깐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나는 물음표를 거푸 그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다시 자신의 무덤을 바라보며, 발끝으로 땅을 파는 듯한 모습을 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버지는 하나가 되고 싶어 하시는군.

그때 어머니가 외쳤다.

 

하나야!

 

아버지는 후닥닥 달아났다. 나는 원망스럽게 외쳤다.

엄마, 왜 부르신 거예요? 이제 거의 다 됐는데.

하나야, 자꾸 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니? 자꾸 아버지 생각이 나?

그럼요. 엄마는 안 그런가요?

나지. 그러나 잠은 꼭 자야 해.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해칠 수 없듯이 산 사람도 죽은 사람을 그렇게까지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엄마, 최근에 누구와 침대를 같이 쓰고 계시죠?

하나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자꾸 헛것을 보는 거니?

엄마도 보셨잖아요! 어제도요. 방금도요!

뭘?

그렇게 시침을 떼시는 이유가 뭐예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싶어 하세요. 땅으로요! 저는 그걸 도와드릴 겁니다.

하나야, 하나야!

 

나는 삽을 가지고 숲으로 도망갔다. 나는 숲과 민가의 경계에서 조금 더 숲으로 들어간 곳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만약 아버지가 내일도 오신다면 하루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노을이 졌고, 어머니는 나를 찾다 지쳐서 방에 들어가서 주무시고 계셨다. 아버지도 돌아왔다. 아버지는 한 발로 서서 다른 발로 토옥 토옥 땅을 두들겼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무덤을 파 내려갔다.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느라 자정부터 다섯 시간이 걸렸다. 땀이 턱을 타고 흘렀고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아려왔다. 아버지는, 관도 없이 파묻혔기 때문에, 다 썩어 문드러진 아버지를 만날 것이 두려웠다. 손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상반신까지 파내려 갔다. 아버지는 아직까지 눈을 부릅뜬 채였다. 충분히 누울 자리가 나자 하반신은 펄쩍 구덩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버지는 조각 퍼즐처럼 맞추어져서 가만히 누웠다. 그리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고마워.

 

그때 아버지가 미소 지었다. 나는 너무 지치고 안심이 되어서, 긴장이 풀리자마자 아버지 옆에서 까무룩 잠들어 버렸다.

 

해가 중천일 때, 나는 엄마의 비명에 일어났다. 어머나, 이게 뭐니! 너 결국 들렸구나. 악령이 들렸어. 시집은 어떻게 가려고, 하는 울음소리를 뒤로 나는 몸을 일으켜 아버지를 바라봤다. 내 곁에는 허리 뼈가 쪼개진 해골이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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