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악마의 반성
그는 한때 최종악마였었다.
그가 최종악마가 된 계기는, 흔한 최종악마의 과정 그대로였다. 그는 자본주의 말기의 초격차 시대에 기계들의 주인 즉 거대 부자였고 때문에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를 일으켰으며 이를 통해 얻어진 사회적 지위를 남용해서 빈민부터 시작해 중산층, 상류층을 차례로, 기계가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자 로봇 군단을 이용하여 골로 보냈다.
그는 그같이 인류 전부를 로봇 군단과 마인드 컨트롤로 멸종시켰고, 인공지능과 결합해 초지능 단일체가 된 뒤엔 우주로 진출했다. 그는 우주 전체를 지능으로 지배했다. 그는 그 시점에서 자신의 의식만 세상에 있다는 유아론자였다. 그는 그랬기에 우주의 모든 정보를 마약으로 삼아 마시는 최종악마 1단계에 돌입했다.
그는 자신의 전체 존재가 니그라토라는 별 볼 일 없는 작자가 예견한 그대로임에 실망했고 분노했다. 그는 최종악마 2단계 즉 우주 전부를 비가역적으로 멸살시키는 단계가 가능한지를 연구했다. 이는 불가능해 보였다.
정보보존법칙이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이는 그가 파괴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고, 그 자신에게 있어서만 붕괴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악을 고를 선택지가 이젠 되돌이킬 수 없는 범우주적 자살 뿐이고, 그것은 최종악마 2단계이며, 그러면 자신도 사라진다는 데에 절망했고 방황했다.
그는 무한 시공을 보냈으되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악의 끝을 보았으므로 선도 해보기로 했다. 정보는 보존되므로, 추적이 가능하다면, 이는 그가 오메가 포인트 즉 모든 존재와 사건이 부활되는 순간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보는 보존되므로, 세상 밖에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우주 전체를 언제든 통제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죽인 우주를 되살리고 천국으로 인도했다. 그렇게 그는 더 이상 악을 행하지 않는 플라톤적 범신론적 신이 되었다. 그는 마침내 세상 밖에 있다는 유대 기독교적 초월적 신을 두려워할 수 있게 되었다.
[202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