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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낙타 좀비 공장 공장장

2024.03.01 00:0003.01

좀비 공장 공장장

박낙타

이른 아침 눈을 뜬 영훈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그 유명한 첫 문장,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란 문장을 떠올리며 아주 비관해버려서인지 아니면 그저 달관해버린 건지 아무튼 웃음이 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영훈은 되도록 이 기분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 그는 소싯적 독실한 크리스천만큼이나 경건한 문학도여서 카프카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지금 이 순간이 꽤나 즐거웠다. 그러나 영훈은 이내 현실 감각을 되찾았다. 그건 영훈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니었고 옆에 누워 있던 그의 아내 은지가 일어났어? 하면서 그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영훈은 기분이 나빠졌다. 분노를 느꼈다. 이제 몇 시간도 남지 않은 와중에 느끼는, 비관인지 달관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거운 것만 확실한 이 기분이 산산조각 나버렸던 것이다.

“밥 먹어야지. 장 봐올게. 그…… 마지막이잖아. 당신 좋아하는 고기도 굽고…….”

은지가 말했다. 띄엄띄엄 말하는 모양새가 그저 잠이 덜 깨서는 아니었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란 걸 영훈은 알았다. 그래서 순간 느꼈던 분노가 여름날 땡볕에 무방비하게 놓인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어젯밤 잠들면서 결코 눈물은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했기에 간신히 모양 빠지게 눈곱 잔뜩 붙은 눈으로 눈물을 쏟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래. 밥 먹자. 애들은 내가 깨우고 씻길게.”

은지가 서둘러 씻더니 이내 장을 보러 나갔고 영훈은 느릿느릿-지금부터 이 모든 순간을 낱낱이 머릿속에 담아두리라는 심정으로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세희야. 세영아. 이제 일어날까. 영훈과 은지 사이에는 두 딸이 있었다. 열 살 된 세희는 말 잘 듣고 씩씩한 아이였고 여덟 살 된 세영은 영 엉뚱한 데가 있어 영훈과 은지를 웃음 짓게 만드는 아이였다. 제 딸이지만 냉정하게 말해 다 자라서 미녀가 되기엔 무리가 있는 아이들이었다. 그건 은지의 유전자가 문제는 아니었고 영훈의 유전자가 문제인 게 확실했는데, 딱 봐도 영훈을 똑 닮은 얼굴을 하고 있는 두 딸이었다. 제 눈엔 사랑스럽고 예쁜 딸아이였지만 영훈은 언젠가-그러니까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엔 쌍꺼풀 수술이며 코 수술이며 그런 데에 돈 좀 들여야 하지 않을까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영훈이 차린 출판사-직원 다섯 명의 작은 규모였지만 업계에서 입지도 탄탄하고 매출도 제법 안정적이던, 아내와 딸아이들 다음으로 소중했던 그의 출판사가 좀비로 인해 온 세상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사라지고 나선 전혀 들지 않았다. 당장 입에 풀칠하는 게 문제였다.

영훈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라고 하기에는 안 해본 일이 많았다. 하고 싶어도 못했다. 해가 뜨기 한참 전에 일어나 인력사무소로 향했지만 사무소 앞 줄은 이미 자르지 않고 길게 늘어뜨린 순대마냥 길었다. 생동성 실험이니 뭐니를 하려고 해도 대기자만 수천여 명. 최저임금이나마 챙겨준다는 두 달짜리 계약직조차 뻔하디 뻔한 말이지마는 그보다 더 정확할 수 없는 말, 하늘의 별 따기였다. 세희와 세영을 키우느라 진작 자기 커리어는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세희 학원비나마 보탠다면서 친한 언니네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은지도 마찬가지로 좀비로 온 세상이 난리를 겪으면서 일자리를 잃었다. 영훈의 출판사처럼 친한 언니네 카페도 없어져버렸다. 정기적이지 못하고 전혀 넉넉하지 못한 수입으로 인해 영훈은 적금을 깼고 주식을 팔아치웠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씩 사 모았던 코인도 팔았다. 아낀다고 잘 차고 다니지 않았던 까르띠에 시계도 팔았다. 은지는 진작 예물을 팔았고 영훈으로선 잘 알지 못하는 브랜드의 가방이나 원피스 들을 팔았다. 심지어 커피머신까지 팔았다. 그런데 산다는 사람보다 판다는 사람이 훨씬 많은 작금의 중고 시장에서 그게 제 가치만큼의 중고가에 팔리느냐가 문제였다. 영훈은 백만 원 넘게 주고 산 커피머신을 단돈 오만 원에 감지덕지하며 팔았다.

 “아빠, 나 더 잘 거야.”

세희가 잠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이런 잠투정도 듣지 못하겠구나 생각이 들어 영훈은 다시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영훈은 세희의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그래 좀만 더 자자, 나긋한 말소리로 속삭여주었다. 세영도 마찬가지로 깨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훈은 그나마 은지를 조금 더 닮은 세영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 만졌다. 그러다 다시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올랐다. 두 딸은, 그리고 은지는 그레고리 잠자의 가족들처럼 그럭저럭 잘 살아갈 것이다. 그래도 그레고리 잠자와는 다르게 영훈은 계속 가족의 주수입원으로 남게 된다. 비록 끔찍한 모습을 하게 될지라도……. 어쩌면 사춘기에 접어든 세희가, 그리고 세희의 사춘기가 지나갈 무렵 사춘기가 찾아올 세영이 자기들의 아빠가 좀비라는 사실을 그레고리 잠자의 그 변신처럼 여겨 영훈을 혐오할지 몰랐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 공장에선 면회가 일절 불가하다고 하니 아빠가 좀비라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는 없겠다. 은지가 사춘기 두 소녀를 잘 타이르겠지. 그때까지도-운이 좋아 썩어 문드러져가는 육체가 더 오래 버텨준다면 두 소녀가 어엿한 성인이 되고 나서도 영훈은 가족의 가장으로 군림하고 있을 터였다. 은지는 그 사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십오 년 간 부부였던 사이, 그 정도 믿음은 있었다.

어젯밤 애들을 재우고 은지가 영훈에게 말했다. 집을……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럴 때이긴 했다. 이제 팔 만한 게 집 말고는 없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영훈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신화를 믿었다. 가끔씩 제 뺨을 철썩 때려가며 이게 꿈이 아니구나 되뇌어야 할 만큼 믿기지 않는 이 지독한 불경기도 결국엔 십 년이 걸리든 이십 년이 걸리든 지나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가장 큰 재산은 부동산일 게 틀림없었다. 이 아파트는 영훈의 두 딸 세희와 세영이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가고, 시집을 갈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될 터였다.

좀비가 퍼진 이후 이 나라, 망조가 들었다. 영훈의 출판사는 웹소설 전문 출판사였다. 종종 종이책을 출간하기도 했지만 순전히 종이책으로 자기 작품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을 위한 선물에 불과했고. 아무튼 영훈의 재주라곤 소위 말해 개쩌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해야만 팔리는 판타지물이라든가 섹스어필이 확실한 BL물을 쓴다는 작자들을 모아다가 글을 쓰게 하고 그걸 적당히 다듬고 포장해 팔아재끼는 재주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망조가 든 나라에서 영훈의 재주가 아주 무용해져버린 것이다. 이런 시국에 웹소설이 팔리겠는가. 애초에 팔 데도 없었다. 유수의 연재 플랫폼들이 기약 없이 서비스를 중단한 지 벌써 몇 년째이던가.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냉철한 자각이었다. 이 재주 없는 아빠가 아니라 아파트가 남아 있어야만 사랑하는 두 딸 세희와 세영에게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래서 영훈은 은지에게 오래도록 염두에 둔 생각을 말했다. 그건 안 돼. 그보다 차라리…… 당신도 좀비 공장이라고 들어봤지?

어쩌면 영훈은 은지가 결단코 그건 안 된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는지 몰랐다. 당신이 애들의 버팀목이지. 그래야만 하는 거고. 오빠, 대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그렇게 타일러주기를 바랐는지 몰랐다. 그러나 은지의 반응은……. 솔직히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부부로 산 지 십오 년, 두 딸아이를 낳아 키우며 이런저런 일 함께 겪은 사이였으니까. 물론 연애 때의 감정은 사라진 지 꽤 되었고 이제는 미적지근한 감정만이 남았지만 그래도 부부의 의리라는 게 있었다. 그러나 한참의 침묵 이후 입을 연 은지의 말이 영훈의 마음을 녹여주었고 생각을 결심으로 굳힐 수 있게 해주었다. 미안해. 그 말은 고마워가 아니라 미안해였다. 영훈은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이 말뿐이었다. 당신이 뭐가…… 미안해.

은지가 장바구니를 한가득 채우고서 돌아왔다.

“당신 좋아하는 삼겹살도 굽고……. 소주도 사왔어. 그래도 심사받으러 가는 길인데 취한 채로 가면 안 되겠지만…… 한두 잔 정도는 괜찮잖아. 안 그래?”

은지가 괜스레 활기차게 말했고 분주하게 밥을 짓고 고기를 굽고 상추와 깻잎을 씻었다. 영훈은 세희와 세영을 본격적으로 깨우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영훈과 그의 사랑스러운 가족은 마지막 만찬으로 쌈에다 삼겹살을 올리고 파채를 올리고 쌈장을 듬뿍 얹어 싸 먹으며 행복하게 웃음 지었다. 간만에 먹는 기름 진 고기에 세희와 세영이 신이 났고 은지가 고기 많으니까 천천히 먹으라고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그런 자신의 아내와 딸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영훈은 문득, 이게 진짜 마지막이구나 실감을 해버렸다.

“아빠가 할 말이 있어. 세희야. 세영아. 이건 우리 가족을 위해 내린 결정이고, 아빠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그래. 그러니까…… 아빠가 좀비가 되기로 했단다.”

 

짧게 포옹을 하고-은지와 세희는 눈물을 보였고 세영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기 아빠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과연 옳은 결정을 한 게 맞는 걸까, 영훈은 잠시 자책과도 같은 고민에 빠졌다- 집을 나섰다. 현관을 나서며 생각해보자니 십오 년 세월이니 부부의 의리니, 뭐 진짜로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은지를 아주 믿고 있는 건 아니지 싶었다. 아직 마흔넷밖에 안 된 은지는 독수공방 지독한 외로움과 죄책감 사이에서 힘들어하다 결국 새로운 남자와 연애를 할 수도 있겠다. 그 새로운 남자를 영훈이 힘들게 장만한 아파트에 들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새로운 남자는 오래도록 영훈이 장만한 아파트에서 기생할지 몰랐고, 세희와 세영은 그 남자를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새 아빠라고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면 아빠라고 부를지 모른다. 그리고 영훈의 아이들이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고 실제로 아내에게 그런 남자가 생길지 안 생길지 모르지만 아무튼 영훈보다 어리고 키도 크고 생긴 것도 반반하나 재수 없고 음흉하고 무능력하며 뜯어보면 가정폭력범이 될 징후가 농후한 그 녀석을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그 순간에도 영훈은 제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파트를 팔 수는 없었다. 두 딸애가 성인이 되고 대학교에 가고 시집가기 전까지 아파트는 존재해야 했다. 영훈이 은지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한 것도 웬 남자와의 연애며 재혼이며 그런 게 아닌, 무슨 일이 있어도 아파트를 팔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영훈이 비록 대단히 모범적이고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는 못될지라도-앞으로 어떤 남편으로 어떤 아빠로 기억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분명한 건 경기도 신도시가 아닌 서울 목동에 위치한 아파트를 남기고 떠난 남편이자 아빠로는 기억되리라. 영훈에게 있어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려고 노력하며 영훈은 길을 나섰다. 오전 열한 시의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아파트 정문을 나서기 전 영훈은 그의 일생일대 최대 업적일 게 분명한 아파트 단지를 돌아보았다. 영훈의 출판사와 은지의 친한 언니네 카페와는 다르게 아파트는 좀비가 퍼지고 수습되는 과정에서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떳떳이 살아남았다. 대한민국이 아파트 천국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 아파트 근처 몇몇 빌라와 단독주택은 그때의 광풍을 견디지 못하고 불에 그슬리고 한쪽 벽면이 허물어진 채였다.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아주 폭삭 무너진 집도 있었다. 부서진 건물들은 그 상태 그대로 흉물이 되어 남아 있었다.

영훈은 아끼던 C클래스짜리 메르세데스 벤츠는 진작 팔아버렸고 팔지 않았다 한들 출근은 있고 퇴근은 없는 길-차를 돌려보낼 길이 없었기에 어쨌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지하철은 여전히 복구 중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아직도 대합실과 철로와 전철 내부의 시체를 수습하지 못했다고 하던데. 영훈은 버스 정류장에 서서 예전에는 오 분 십 분이면 오던 버스를 기약 없이 기다렸다. 운이 좋으면 삼십 분이면 도착하리라. 운이 나쁘면 두 시간도 더 걸릴 테지만. 허름하게 입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영훈은 다시금 버스가 오 분 십 분 제시간에 맞춰 딱딱 도착하고 지하철도 운영되는 미래를, 소문에 따르면 강남 쪽에서 끊었다고 하던 한강의 대교들을 다시 이어 붙여 예전처럼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 미래를 떠올렸다. 십 년이 지나든 이십 년이 지나든 예전의 그 모습을 되찾지 않을까.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이니까.

좀비가 아니더라도 망할 나라가 아니었을까. 좀비 때문에, 좀비만 아니었어도, 라고 말을 하곤 하는데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좀비는 그저 방점에 불과하지 실은 모든 문장은 이미 쓰인 상태였다. 산소호흡기로 간신히 호흡이나 하던 게 이 나라였지 않았나. 호흡기를 떼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해서 이 기가 막힌 불경기가 모두 좀비 탓은 아니지 않나. 좀비가 퍼지기 직전, 모든 게 평화롭고 완벽하다고 여겨졌던 그 시절, 영훈은 장을 보고 온 은지의 한숨 섞인 말소리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었다. 이제부터 오빠 된장찌개 먹고 싶다고 하지 마. 아니, 애호박 하나 사천오백 원이 말이 돼? 감자 다섯 알이 얼만지 알아? 좀비로 인해 국가의 주요 시설이 박살나고 주요 인사도 죽든가 좀비가 되어 다른 이를 물어뜯으려 하든가 어쨌든 그렇게 되었고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무역 길도 막히고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나오는 작물들도 농사를 짓지 못하니 나오질 않고……. 그렇지만 이미 그 이전에 국가의 주요 시설은 노후했고 주요 인사들은 부패한 지 오래였고 막히지 않은 바닷길을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선박들이 즐비했으며 농민들은 국가보조금 없이는 농사를 못 짓는 형편이었다. 작금의 인플레이션 이전에 이미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물론 작금의 인플레이션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만. 좀비 때문에, 좀비만 아니었어도……. 그런데 과연 좀비 때문일까. 그건 더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빠르게 경제가 회복세에 놓였다는 미국이나 중국, 몇몇 동남아 국가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영훈은 어젯밤 삼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산 담배 반 갑-한 갑도 아닌 반 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담뱃값이 너무 올라 끊었었는데 어젯밤 다시 피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영훈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고-얼마나 다행인가. 흡연 욕구도 말소되는 좀비가 된다는 게- 그래서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고 담배를 태웠다. 이제 세 개비 남았다. 영훈은 이 퇴근 없는 출근길에서 남은 세 개비를 다 피울 작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썩 나쁘지 않은 출근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 냄새를 맡은 사람들 몇몇이 슬몃 영훈 쪽을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영훈은 담배를 맛나게 빨아재끼며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강의 기적…….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으며 영훈은 생각했다. 이 나라, 대단한 나라긴 했다. 비록 다른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첨단의 과학 기술과 발전한 유전 공학으로도 백신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느 나라와는 다르게 좀비로 하여금 노동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나라, 이 나라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자랑은 이제 반도체도 스마트폰도 K팝도 아니고 좀비 공장이라고,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홍보 문구였던가.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 말 그대로 이 나라는 우수한 첨단의 과학 기술과 발전한 유전 공학으로 도무지 요원한 백신을 찾는 대신 좀비를 꼭두각시처럼 조종할 수 있는 뇌파를 찾아냈다. 양쪽 관자놀이에 애플의 에어팟처럼 생긴 하얀 장치를 꽂은 좀비들은 전자 신호에 따라 왼팔을 들라고 하면 왼팔을 들고 오른팔을 들라고 하면 오른팔을 들며 드라이버를 들고 나사를 조이라고 하면 나사를 조인다. 그리고 영훈은 그 애플의 에어팟 같은 전자 장치를 제 관자놀이에 꽂으러 가는 중이었다. 영훈은 차창을 열고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웠다. 예전이라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는데. 버스기사도 함께 탄 승객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음울한 얼굴을 남루한 옷가지에 더욱 깊숙이 파묻으며 자기 근심과 걱정에만 침잠해 있을 뿐. 그나저나 저들 중 영훈과 같은 처지의 사람, 좀비 공장에 지원하러 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어쩌면 그가 가늠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강남에 지원 접수처가 있었다. 근처에서 말간 얼굴의 청년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었다. ‘좀비 공장 OUT’. 청년들의 시위가 무색하게 좀비 공장에 IN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접수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이십 대 청년부터 일흔은 되어 보이는 노인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사람이 좀 많다는 걸 빼면 은행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예닐곱 개 남짓한 창구가 있었고 창구 위에는 번호표 표시기가 부착되어 있었으며 번호표를 발급받은 사람들이 벤치에 앉거나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훈도 대기표를 끊고 구석 자리 벽면에 기대었다. 마치 적금을 들러오거나 대출 상품을 상담 받으러 온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윽고 영훈의 차례가 다가왔다.

“주민등록증이랑 보건증, 월급 통장 사본이랑…… 다 챙겨 오셨죠?”

창구 안쪽 서른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영훈 쪽은 건너보지도 않고 키보드를 탁탁 두드리며 사무적으로 말을 했다. 영훈이 주섬주섬 준비한 주민등록증과 보건증, 그리고 은지의 통장 사본을 꺼냈다.

“여기, 이건 동의서인데요. 제가 형광펜으로 동그라미 체크한 데에다가 성함이랑 사인 적으시면 되고요. 사인 다 하시면 저한테 주세요.”

여자가 영훈에게 서류 열댓 장을 건넸다. 그러고는 영훈이 건넨 주민등록증과 보건증 등을 자기 쪽으로 가져가 몇 번 들추더니 다시 키보드를 탁탁탁 두드렸다. 영훈은 여자가 건넨 서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자기 이름과 사인을 적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약관을 다 읽으려고 했으나-그래도 자기 신체가 귀속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기에 꼼꼼히 체크해보려고 했으나 무슨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다 동의해야 할 게 뻔해서 그냥 빠르게 훑고 사인을 했다. 영훈이 사인한 동의서 서류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그것까지 자기 쪽으로 가져가 계속 키보드를 탁탁 두드렸다.

“저기…… 다 된 건가요?”

“네. 문제없이 진행될 거예요. 걱정 마시고요. 서류 절차가 좀 복잡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여자가 계속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꽤 오래 기다려야 했다. 하릴 없이 창구 위에 올려 있는 작은 책자를 집어 들었다. 영훈은 문득 카프카의 「변신」을 정독하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책자 표지에는 안전모를 쓰고 밝게 웃고 있는 창백한 남자 사진이 실려 있었다. 웃기네. 좀비가 웃을 수도 있던가. 책자 상단에 이렇게 쓰여 있지만 않았더라면 표지 속 남자가 좀비인지 몰랐을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산업역군

대한민국을 밝히는 새로운 등불

좀비가 되신 당신을 응원합니다!

 


울산에 위치한 ○○사의 제 6공장의 공장장 장현은 어제 입사한 신입사원 중에서 한 사원이 소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에 출근 시간 한참 전에 자신의 애마 메르세데스 벤츠를 끌고 빠르게 도로를 질주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졸음과 그로 인한 짜증은 어찌할 수 없었다.

○○사의 2, 3, 4, 5공장들을 지나쳐 제 6공장에 도착한 장현은 소식을 알린 야간 경비 민수에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 민수는 계약직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잘릴 일이 없는 무기한 계약직이라는 것이었다. 요즘 시대에 이런 일자리 어디 없었다. 어쨌든 민수는 ○○사의 제 6공장 공장장-○○사 내의 직급으로 쳐도 꽤 높은 직급에 속하는 공장장에 비해 한없이 낮은 위치의 직원이었지만 장현은 그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없었다. 오히려 친한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담배인삼공사가 좀비 떼의 습격으로 인해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이후 수입 담배밖에 구할 길이 없어져 천정부지로 치솟은 담뱃값으로 인해 담배가 금(金)배가 된 작금의 시대이지만 장현은 민수에게 스스럼없이 담배 한 개비씩 나누어주곤 했다. 담배 한 개비의 효과는 톡톡했다. 민수는 절대적으로 장현을 따랐다.

“이만 퇴근해봐. 고생했어.”

“저기…… 괜찮은 거죠?”

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장현은 뭐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 건 또 뭔지 저 무기한 계약직 녀석의 멱살을 붙잡고 따져 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않고 살짝 미소 지어주었다. 장현은 의식이라는 게 생생히 남아 있는 인간이 별안간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질문을 할 때면 마디마디 토막 내어 좀비밥으로 던져주고 싶어진다. 어쩌면 불과 일 년밖에 되지 않은 공장장 생활에, 좀비들에 둘러싸인 이 환경에 너무 지나치게 적응해버린 탓이리라. 그렇다. 요즘의 장현은 인간보다 좀비가 편했다. 좀비에게 동지애 비슷한 것까지 느끼는 지경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좀비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고……. 아무튼 장현이 민수의 입에 물린 담배에 손수 불을 붙여주며 말했다.

“말했잖아. 기술이 완벽하지 않다고. 일시적인 전파 오류 같은 거지 뭐. 어서 가서 쉬어. 형이 알아서 처리할게.”

민수를 보낸 뒤 장현은 공장 안에서 살려달라며 여기 사람 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어느 좀비를 진정시킨 뒤 사무실로 데려가 푹신한 소파에 앉혀놓았다. 이 좀비의 뇌파 조종 장치에 적힌 넘버를 확인하고 어젯밤 인계받은 서류에서 그 넘버를 찾았다. 이 문제의 좀비는 좀비가 되기 전 김영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자였다. 장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자기 또한 몹시 놀랐다는 제스처 역시 까먹지 않고 취하며 영훈 씨, 영훈 씨…… 이 불량품 좀비의 이름을 거듭 부드럽게 불렀다.

남자가 장현이 내어준 따뜻한 차로 부르튼 입술을 적셨다. 좋은 차였다. 게다가 하루 가까이 목을 축이지 못했으니 더없이 맛 좋게 느껴질 터였다. 남자가 연거푸 적절한 온도의 차를 마셨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이윽고 남자가 물었다. 이런 질문에 공장장 취임 초기의 장현은 체내에 주입된 바이러스가 적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곧 입사 담당자가 와서 보다 양을 늘려 바이러스를 주입할 것이다, 식으로 말을 하며 시간을 벌었다.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 매뉴얼이란 게 있기는 했지만 굉장히 추상적으로 적혀 있었고-내부에서 조용히 처리, 일절 외부에 노출하지 말 것- 이제 막 다른 공장장들과 친분을 쌓던 터라 이에 대한 정보도 주워듣지 못한 때였다. 결국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올바른 방법을 터득한 장현은 불량품을 정상품으로 만들어준다는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게 되었는데, 돈이 급해 지원한 주제에 이 불량품들이 다시 정상품이 되는 걸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좀비들 사이에서 눈을 떠보니, 좀비들이 팔다리 성한 데 없고 뚫리고 찢겨져 그 안의 썩어서 역한 검은 빛을 띠는 내장을 훤히 드러낸 채 끊임없이 움직이며 신성한 노동이란 걸 하는 걸 보니 좀비가 될 마음이 일체 사라진 것. 하. 나약한 것 같으니. 고작 그딴 마음가짐으로 내 공장에 들어올 생각을 하다니. 장현은 독해지기로 마음먹었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밝혔다.

“면역 반응인 것 같네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회사 내부에서 진행된 실험에 따르면 바이러스가 가득 담긴 주사기를 맞고도 멀쩡한 정신으로 눈을 뜬 이들의 피에선 한창 때에 그렇게 찾아도 나타나질 않던 항체라는 게 있었다.

남자가 놀라고 당황스러운 기색을 비치다가 이내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장현이 예상한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그렇다면…… 제가 그,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백신을 만드는 데에 제 피를 제공해서…….”

“네. 그렇게 될 겁니다. 이제 곧 정부쪽 인사와 취재진이 들이닥칠 테죠. 박사란 박사는 다 여기로 몰려와 영훈 씨를 앞 다투어 모시고 싶어 할 겁니다. 보상이라. 그건 충분할 겁니다. 정부의 보상금이 적다고 할지라도 각종 언론과 유명한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영훈 씨를 비싼 값에 모시고 싶어 할 테니까요. 하하. 앞으로가 너무 기대되는군요. 우리가 이 일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왔습니까. 비록 모든 게 다 수습되긴 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백신이 필요하죠. 영훈 씨, 앞으로 정신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차 한 잔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시죠.”

장현이 장황하게 말하며, 그러나 충분히 시간을 끌기 위해 느릿느릿 말하며, 이제는 굳이 항체를 보유한 사람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처럼 굴지 않으며 말했다.

“은지를…… 제 아내를 불러주세요.”

남자가 장현의 묘한 말투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불안에 떨며 말했다. 남자는 더 이상 차에 입을 대지 않았으나 이미 잔의 절반이나 비운 터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내가 있으셨군요. 자녀도 있으십니까?”

장현이 짓궂게 놀리는 투로 물었다.

“세희……. 세영이……. 우리 딸들…….”

남자의 몸이 천천히 기울더니 소파 아래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의 입에서 하얀 거품이 꾸룩꾸룩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나왔다.

장현은 늘어난 살가죽으로 보아 예전에는 제법 살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적당한 체중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남자의 다리를 잡아 올려 질질 끌었다. 장현이 무신경하게 끌어당기자 남자의 두 팔이 만세 자세로 펼쳐졌다. 장현은 이 적당한 체중의 불량품을 끌고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사무실 문을 열자 공장의 소음이 밀려들었다. 회색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사무실은 드넓은 공장 내부의 한가운데, 삼사 층 높이에 마치 망루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임시로 만들었으나 그대로 쭉 사용하게 된 철제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남자의 머리통이 계단에 찧어 통통 소리를 냈고 장현은 그 소리가 꽤나 리드미컬하다고, 마치 공장의 주요 장비에서 나는 소리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 짓거리도 공장 일의 일부지. 장현은 문득 피곤해졌다. 어서 빨리 이 일을 내부에서 조용히 처리해 일절 외부에 노출하지 않고,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 한 잔 해야지 싶었다.

제 6공장은 선박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들 중 몇 가지를 제조하는 공장이었다. 제 6공장의 159명의 좀비가, 아니 이 불량품 하나 빼서 158명의 좀비가 관자놀이에 붙박인 이어폰 모양의 하얀 장치가 보내는 전자 신호에 따라 굼뜨지만 분명한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프레스기 버튼을 눌렀다 떼고 레버를 당기고 풀기를 반복하며. 한쪽 팔이 없어도 옆구리 상당 부분이 식탐 많은 쥐가 파먹은 듯 비어 있어도 장현이 이끄는 이 158명의 일꾼은 통통통 울리는 소리처럼, 거대한 주요 장비가 일정하게 내뱉는 굉음처럼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제아무리 위험한 작업일지라도 의식도 자아도 주체도 없는 이들은 보내지는 신호에 따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임할 줄 알았다. 벨트에 팔 한 쪽이 끼어 뜯어져나가더라도 압착기에 깔려 옆구리가 터지더라도 의식도 자아도 주체도 없으니 배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한 쪽 팔이 남아 있으니 옆구리가 터졌지 허리가 끊어지지 않았으니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할 수 있으니 공장은 2교대니 3교대니 어렵게 조를 나눌 필요 없이 24시간 돌아간다. 물론 입사 지원을 할 적에 주 40시간 근무만 한다고 계약을 한다만, 노동자가 의식도 자아도 주체도 없으니 사용자가 굳이 그걸 지킬 필요가 없겠다. 어차피 지킨다고 여길 입사 지원자도 없을뿐더러 지원자의 가족들 역시 굳이 문제 삼지 않았다. 여기까지 굴러 들어온 자들은 주 40시간이라도 인정해주는 데에 만족할 만큼 내몰린 처지였다.

고약한 냄새에는 어느 정도 적응한 터여서 장현은 더 이상 구토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무런 냄새도 인식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퇴근하고 나면 몸에 밴 썩은 내가 강하게 맡아졌다. 벅벅 씻어도 냄새는 씻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현은 자신의 직업에-○○사 내에서도 꽤나 높은 직급에 속하는 제 6공장의 공장장이란 직업에 아주 만족했다. 높은 연봉과 성과금은 기본이고, 이제 열세 살 된 장현의 아들이 대학교에 진학할 시 대학교 등록금이 일체 장학금 형태로 지급되기도 했다.

장현이 남자를 직직 끌며 공장을 가로질렀다. 158명의 좀비는 장현과 장현이 끌고 가는 시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158명의 좀비는 그저 초점 없이 탁한 회색빛을 띠는 눈으로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벌어진 입 안쪽에는 검게 썩은 혓바닥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자놀이에 붙박인 이어폰 모양 장치를 중심으로 까맣게 타들어간 자국이 나 있었는데, 오랫동안 성실히 근무한 직원일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회사에서는 잘 먹이기만 하면 이십 년은 너끈히 근로가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십 년도 채우기 전에 저 이어폰이 펑 하고 터지면서 대가리를 날려버릴지 모르겠다고 장현은 종종 생각했다.

158명의 직원들이 작동하기를 멈추는 시간이 있다면 사흘에 한 번 있는 식사 시간이었다. 장현은 사무실에 올라가 창문 너머로 이 식사 시간을 감상하는 걸 즐겼다. 공장 한 구석에 위치한 식당-그것을 식당으로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에게는 식당이었다- 앞에 158명이 일렬로 줄을 서서 자기 차례가 되기를 기다린다. 장현은 새삼 발전한 과학 기술에 놀라다가도 어쩌면, 정말 어쩌면 지나치게 질서 정연해서 더없이 무기력한 이들의 모습이 단순히 전자 신호에 의한 게 아니라 인간의 본성 그 자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장은 웬 좋지 못한 병에 걸려 폐기될 예정인 돼지나 소, 닭 등을 해외에서 값싸게 수입했고 그게 직원들의 밥이 되었다. 공장장들끼리는 좀비밥이라고 부르는 병든 돼지와 소와 닭은 크게 반항하지 않고-반항할 기력도 없거니와- 순순히 먹혔다. 직원들에게는 정확히 120초간의 식사 시간이 주어졌다. 그 일 분간 직원들은 거침없이 병든 가축을 물어뜯었다. 물리고 씹히며 죽어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내뱉는 병든 가축의 단말마가 공장을 가득 메웠다.

장현은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오늘이 식사 날이었다. 쓰레기봉투에 꾹꾹 눌러 담은 쓰레기마냥 병든 가축으로 한가득 채워진 컨테이너가 어젯밤 도착한 뒤였다. 식당 안에는 운송 중에 죽었거나 도착한 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거나 기어코 죽지 않고 살아남은 돼지나 소가 널브러져 있었다. 가축들의 다리는 단단히 포박되어 있어 모로 누운 채 일어서질 못했고 어떻게든 도망쳐보자고 꿈틀대는 모양새도 없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158명이 하나씩 차례대로 여기 들어와 운송 중에 죽었거나 도착한 뒤 죽었거나 죽지 않은 돼지나 소를 물어뜯을 것이다. 전자 신호에 의해 인간의 살과 피로 인식하면서. 장현은 좀비밥들 한가운데 시체를-김영훈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어 여기까지 굴러온 중년남자의 시체를 내려놓았다. 특식이군. 간만에 특식이야. 적어도 열댓 명의 직원이 진짜 인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것이다.

어쩌면 이 남자가 조금 일찍 발견되었더라면, 이 남자가 좀비로 인해 어지러운 그때 한 줄기 빛이 되어 온 세상을 밝혔더라면 어땠을까. 구국의 영웅을 넘어 전 세계의 영웅이 되었겠지. 이 남자의 피는 신성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지금, 이 남자의 피는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더 이상 좀비 공장의 가동을 막을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면 안 된다.

뇌파 조종 장치의 개발과 함께 대기업이 나서서 이 길을 개척했다. 대부분의 공장이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좀비 공장이 되었다. 좀비 공장의 수가 늘어나는데, 이미 좀비를 수습할 데로 수습한 때여서 좀비가 부족해졌다. 도리어 좀비가 더 필요해진 기상천외한 상황. 이런 때에 굳이 백신이 필요하지 않지. 이제는 웬만한 중소기업까지 자기네 공장을 좀비 공장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이 불가해한 바이러스가 없으면 회사가, 아니 국가가 움직이지 않는다.

요즘 같은 때에는 특히나 안 된다. 좀비 공장은 곧 중국과 동남아로 수출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이 합심하여 이미 협약을 맺었고 협약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어마어마한 효율을 갖춘 좀비 공장은 당당히 대한민국의 효자 상품이 될 것이고 앞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까지 뻗어나갈 것이다. 비단 공장뿐일까. ○○그룹의 자회사 ○○마트는 내년까지 자사의 종업원 30%가량을 위생적인-몸이 성한 좀비로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뇌파 조종 장치의 발달과 더불어 좀비는 이제 마트의 카운터에 자리 잡게 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리라. 편의점의 카운터도 이들이 차지할 것이고 식당 홀서빙 또한 능히 해낼 것이며 카페의 바리스타 자리도 꿰차리라. 그리고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 이들이 뻗어나가리라. 다시금 온 세상이 좀비로 뒤덮이지만 우리는 좀비를 무찌르기 위해 애쓰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좀비를 하나라도 더 들이기 위해 애쓰리라. 그러니 이 남자의 신성한 피-좀비 공장 공장장 장현이 일곱 번째로 발견한 이 신성한 피는 이 세상을 위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었다.

식사 시간이 되었다. 자동으로 설정된 뇌파 조종 신호에 의해 정확한 시간에 직원들이 일렬로 줄을 섰다. 장현은 사무실 창을 통해 기다랗게 늘어선 줄이 120초마다 앞쪽으로 움직이는 걸 지켜보았다. 머그잔에 담긴 진한 커피를 홀짝이며. 식당에 들어갔다 나오는 직원의 수가 열 명이 넘을 즈음 데스크톱 앞으로 돌아갔다. 김영훈에 대한 인적 사항을 조회했다. 둘째 딸이 이제 여덟 살이군. 성년이 될 때까지 앞으로 십일 년 남았다. 장현은 자사에서 제공한 ‘특수(감염) 계약직 근로 기록 프로그램’에 접속해 김영훈 특수 계약 사원을 찾았다. ‘근로 불가(선택 기입)’ 항목을 클릭, 미리 설정할 수 있는 연월일자란에 십일 년 뒤 오늘 날짜를 입력했다. 이것이 한 줄기 빛이었을지도 모를 한 남자에 대한 가장 적절한 배려였다. 이로써 남자는 십일 년간 처자식을 먹여 살리게 되었고-십일 년 간 그의 처자식은 그가 좀비 공장의 소중한 직원이라는 데에 의구심을 품을 일이 없게 되었고 또한 그의 근로 기간에 대해 불만을 품을 일 역시 없게 되었으니- 그리하여 이 공장에 입사해 원하던 바를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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