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닫히다

– 엄길윤 –

고등학교 다닐 때 나에겐 빵셔틀 비슷한 게 있었다. 왜 비슷한 거였냐면 하는 건 딱 빵셔틀인데 그런 말을 쓰면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그럼 부모님도 모시고 와야지, 내신도 떨어지지, 봉사활동까지 해야 했다. 한마디로 골치가 아파진다. 혹시 정학이라도 당하면 대학 진학에 큰 걸림돌이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괴롭히는 듯 괴롭히지 않는 듯 괴롭히고 못살 게 굴었다. 때리거나 돈을 뺏으면 티가 났기 때문에 주로 은따를 하고 창피를 줬다. 예를 들면 그 새끼가 학교 화장실에서 똥을 누면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비밀 단톡방에 올려 낄낄대거나 베프들하고 놀 때 녀석을 불러놓고 멀뚱히 구경만 시키는 거였다. 셔틀질을 시킬 때도 돈은 다 줬다. 물론 다시 바꿔오라고 몇 번 뺑뺑이 돌리긴 했지만 말이다. 절대 눈으로 드러날 증거는 남기지 않았다. 방과 후 학원이 끝나면 데리고 다니면서 애들 앞에서 오덕같다는 둥 거시기가 쪼그라들었을 거라는 둥 막말을 하고 모욕을 줬다. 그래도 녀석은 한마디 하지 못했다. 울상을 지으며 두 손을 어디에다 둘지 몰라 꼼지락거리고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3년 동안 데리고 놀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자 곧 괴롭히는 걸 그만뒀다. 그제야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이제 애들이 아니니까. 그리고 얼마 전 그 빵셔틀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왜 죽은 걸까? 한창 괴롭힐 때는 가만히 있더니 왜 풀어주자 일을 벌인 걸까? 장례식장에라도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다른 친구에게서 유서 같은 거 남겼느냐고 물었다. 혹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면 상황이 껄끄러워진다. 이제 맘잡고 대학 생활을 하려는 찰나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재수 없으면 내가 일진이었다는 안 좋은 소문이 퍼질 거다. 그 새끼는 왜 하필 지금 뒤지고 난리야!

 다행히도 유서는 없다고 했다. 유서는커녕 방안에 남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책상과 의자만 달랑 있지 책장이나 옷걸이, TV, 컴퓨터 같은 것도 어디로 치웠는지 싹 사라지고 없다고 했다. 그 새끼 애미가 장례식장에서 하소연하더라는 거였다. 뭣 좀 아는 거 없느냐고. 정색하고 내 이야기를 꼬발랐냐고 물으니 절대 아니라고, 했으면 엠창인생이라는 다짐을 받고 나서야 좀 마음이 놓였다. 나 때문에 죽은 건 아닐 거다. 대학도 못 들어갔으니 성적 비관일 가능성이 높다. 장례식장에 가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녀석은 나에게서 차츰 잊혀졌다.


잊혀야 했다.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녀석이 내 주위를 서성거렸다. 멀찌감치 나타나 나를 지켜봤다. 절대 다가오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세한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몸뚱이의 선이 그 새끼가 맞다. 3년 동안 그리 갈궈댔으니 친숙하다면 몹시 친숙한 모양새였다. 볼록 나온 배와 약간 굽은 허리, 습관처럼 땅을 바라보는 어눌한 시선까지. 틀림없다. 그 빵셔틀 새끼가 맞다. 녀석의 귀신이라도 나타난 걸까. 그렇다고 무섭지는 않았다. 변한 건 없다. 귀신이든 뭐든 이제껏 내가 가지고 논 장난감에 불과했다. 혹은 무의식적인 죄책감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냥 놔두기로 했다. 언젠가 없어지겠지.

 생각과는 달랐다.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하루도 빠짐없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헛것이나 죄책감이라고 하기에는 존재감이 너무 선명했다. 분명 저 멀리에 녀석이 돌아다닌다. 맥도날드 건물 유리창에도 비치고, 햇볕을 쬐면 그림자도 생긴다.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놈은 그만큼 멀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왜 나타난 걸까? 복수라도 하려고?

 그때부터 이상한 게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맥주를 사러 대형 마트에 들렀다. 가뜩이나 빵셔틀 때문에 머리가 복잡한데 네이버 카페에서 모임을 주도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약간 틀어졌다. 속상해서 한 잔 할 생각이었다. 주류 판매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음료 판매대의 줄지어 늘어선 병들이 모두 뚜껑이 열렸다. 손으로 돌려 따는 것 병따개로 따는 것 가릴 것 없었다. 황당해 마트 내부를 둘러봤다. 음료수뿐만이 아니었다. 통조림들의 뚜껑도 말끔히 제거됐고, 쌈장을 담은 플라스틱 통의 네모난 뚜껑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하다못해 과자 봉지들도 윗부분이 뻥 뚫려 안이 훤히 보였다. 내용물이 당장에라도 바닥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장바구니와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도 아무도 클레임을 걸지 않았다. 각 판매대의 직원과 담당자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나가는 고객을 붙들고 상품 설명에만 열을 올렸다.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맥주를 사기 위해 주류 판매대로 향하는데 멀리서 보니 맥주와 소주병도 모두 뚜껑이 열렸다. 순간 언짢았다. 여기까지 온 시간이 얼만데. 마침 주류 판매대 근처에서 마트 직원이 상품을 진열했다. 빠르게 걸어가 직원 뒤에 섰다. 검지로 주류 판매대를 가리키며 입을 뗐다.

 “저기요, 여기는 아무거나 막 진열해요?”

 3층 선반에 상품을 집어넣던 마트 직원이 뒤를 돌아봤다. 따지기 위해 다시 맥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하다. 순식간에 소주와 맥주가 뚜껑이 닫힌 채 진열됐다. 멀리서 볼 때는 분명히 뚜껑이 열렸었다. 잘못 본 게 아니다. 주류 판매대로 가서 맥주와 소주를 훑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언제 그랬냐는 듯 뚜껑으로 단단히 닫혔다. 헛것을 본 걸까. 새끼가 자살한 것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 걸까. 고개를 돌려 마트 안을 둘러봤다. 그게 아니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마트 안의 모든 상품이 뚜껑이 열렸다. 가까이 가서 확인했다. 뚜껑이 닫혔다. 멀리서 볼 때는 열려있던 게 다가가기만 하면 닫힌다. 몇 번이나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만져 보고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확인까지 했다. 멀리 있을 때는 열리고 가까이 가면 닫힌다.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이건 뭔 개지랄인가. 혹시나 싶어 주위를 살폈다. 있다. 마트 입구 쪽에서 빵셔틀 찐따 새끼가 서성인다. 뛰어가 보니 사라지고 없었다. 왜 멀리서 맴돌기만 하는 걸까? 아직도 자기랑 어울려주길 바라는 건가? 까고 있네, 븅신 새끼가!

 이상한 일은 마트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변기 뚜껑이 내려져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와 같이 사는 것도 아니었다. 소변을 보고 분명히 변기 뚜껑이 올려진 걸 확인했는데도 다음에 들어오면 다시 변기 뚜껑이 닫혔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큰 걸 보려고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변기 뚜껑이 닫힌 걸 발견하고 욕이 튀어나왔다. 씨발, 불길하다. 혹시 변기 안에 뭐라도 들었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슬쩍 변기 뚜껑을 열었다. 아무것도 없다. 화가 났다. 그 새끼의 짓이다. 잡아서 왜 그러는지 알아내야 한다. 닫힌 화장실 문을 밀치고 나와 닫힌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시민공원 나무숲 사이로 놈의 실루엣이 보인다.

 “야이 찌질한 새꺄! 자신 있으면 덤벼 봐!”

 소리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헐떡이며 나무숲과 산책로 사이에 도착하자 놈은 어느새 공원 호수 쪽을 맴돌았다. 이대로 녀석을 잡는 건 무리다. 씩씩거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분명히 나가기 전에 TV를 켜놨는데 와보니 꺼졌다. 베란다 문도 마찬가지였다. 닫혔다. 안방 창문도 닫혀있다. 집안 어디에서도 다른 사람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 누가? 베란다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빵셔틀 새끼가 이번에는 공원 벤치 앞을 서성인다.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늘 열어놓는 방문이 닫혔고, 열고서 그대로 놔둔 책상 서랍이 닫혔고, 침대 옆에 붙은 사진 속 나와 친구들의 눈이 감겼고, 설거지를 끝내고 놔둔 냄비 위로 뚜껑이 닫혔다. 환각이 아니었다. 볼 때마다 열고, 열고, 또 열었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시 주위의 모든 게 닫혔다. 사진들은 기분이 나빠 아예 싹 치워버렸다. TV 리모컨도 구석에 처박았다. 기분이 더럽다. 뭔가에 거부라도 당한 것 같다. 아직까지 빵셔틀 새끼가 귀신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귀신이라면 왜 복수를 하지 않는 걸까. 내가 조현병 뭐 그런 거라면 어째서 그런 게 생긴 걸까. 확실한 건 하나도 없다. 젖댄 건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 사물에만 나타나던 현상이 점차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는 거였다. 무섭다. 그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닫고 긴장했다. 그리고 그 찌질한 빵셔틀, 그 개새끼는 여전히 주위를 맴돌았다. 지금 일어나는 일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사실 나에게는 관계 의존증이 있다. 그건 바로 외로움이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외로움은 견디질 못했다. 혼자 있고 싶고 타인에게 시큰둥하지만, 그런데도 베프를 많이 만들고, 주말에도 약속을 빽빽이 잡아놓는 이유는 단지 그것 하나뿐이었다.

 고등학교 입학식이 끝난 후 반에 들어와 처음 그 빵셔틀을 발견했다. 혼자서 창가 근처를 서성이며 애들 눈치를 봤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꼼꼼이 살피면서도 애들이 모여서 뭐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 상황이 만족스럽고 아무런 방해도 받고 싶지 않지만, 그런데도 사람을 원한다는 걸 알아챘다. 교활하다고 할까? 틀림없었다. 애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벌써 한 무리의 아이들과 친해져 웃고 떠들면서도 녀석을 주시했다. 놈이 나를 보며 웃는다. 마치 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름끼쳤다. 나의 존재를 들켰다. 어디서 많이 보던 표정이다. 이중적인 모습. 겉과 속이 다른. 숨기고 싶다. 어떻게 그 모든 걸 알 수 있었을까. 내가 그러했기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필요했다. 그뿐이다. 그게 너무 역겨웠다.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추한 모습을 남한테서 본다는 게 얼마나 구역질이 나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그게 그놈이 빵셔틀이 된 계기가 됐다.

 녀석은 괴롭히기 쉬웠다. 소심하고 체격도 왜소한 편인 데다가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다. 엄마하고만 산다고 했든가. 엄마가 뚜렷한 직업도 없다고 들었다. 그러니까 막 대해도 된다. 무엇보다 외로움을 많이 탔다. 나처럼 말이다. 그걸 볼 때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재수 없는 새끼. 옆에 두고 나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못할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 난 이미 중학교 때부터 베프 삼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 대부분이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인맥은 힘이다. 집단은 애들 사이에서 어떤 부당한 일이라도 가능하게 해줬다.

 처음 녀석에게 접근했을 때는 아마도 나를 반에 한두 명 있는 장난스러운 친구라고 생각했을 거다. 난 겉으로 보기에는 쾌활하고 사교성도 좋았다. 뒤통수를 때리고 아 미안, 이러면서 슬쩍 웃으니까 놈은 그저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거라고 착각했다. 관심을 가져줘서 기분도 좋았을 테고. 난 이런 일을 능숙하게 잘했다. 그렇게 말을 트고 친한 사이가 되면서 짓궂은 장난을 치던 게 점점 더 심한 장난이 됐다. 굴욕적으로 놀리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바지를 내리다 팬티까지 끌어 내린 경우도 많았다. 녀석은 당황하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우리 집은 나름 잘 살았고, 난 키도 큰 편이었다. 놈은 주눅이 들었다. 혹시 반항이라도 했다면 내가 나서기도 전에 친구들이 지근지근 밟아줬을 거다. 괴롭히면 괴롭힐수록 녀석을 더 짓밟고 싶어졌다.


괴롭히는 걸 멈추기로 한 때는 대략 대학 진학 후 3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내내 괴롭히고 졸업하고 나서도 술자리에 종종 불러냈다. 주로 내 베프들이나 인터넷 모임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날 때였다. 녀석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어딜 가도 아는 척해주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아마 나밖에 없을 거다.

 빵셔틀을 불러내면 늘 테이블 구석에 앉혔다. 말도 안 시키고 맥주나 밥을 주문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구경만 하라고. 네가 알아서 하라는 말만 몰래 해줬을 뿐이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질 때도 녀석은 눈을 떼굴떼굴 굴리며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주위 사람이 뭐 좀 시켜라, 말 좀 해라 권유해도 내 눈치를 보고는 괜찮다고 사양했다. 안 그러면 나한테 아주 개관광 당할 테니까. 아마도 다른 사람은 그냥 과묵하다고만 생각했을 터다.

 그래도 녀석은 내가 부르면 어김없이 나왔다. 아무리 괴롭혀도 만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빵셔틀이 됐을 때 그나마 알고 지내던 애들도 하나둘씩 떨어져 나갔다. 공부도 더럽게 못 해서 수능도 안 봤다. 그러니까 어디 갈 대학도 없고. 등록금이나 있었을까. 그 새끼 엄마는 아들은 내팽개치고 밖으로 싸돌아다녔다. 남자나 만났겠지. 애비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혼자 밥해 먹고 학교에 다닌 거로 안다. 학교를 때려치우지 않은 게 레알 기적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인터넷 카페 회원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윤석 씨.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그 친구 괴롭히려고 부르는 것 아니냐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눈치챈 사람이 있었구나. 곧바로 오해라고 해명하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했다. 이제 안 되겠다. 이 정도 했으면 녀석은 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난 이제 왕따나 시키는 애가 아니다. 그리고 다음 날 문자로 녀석한테 더는 괴롭히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연락 안 할 거라고. 너도 연락하면 뒤진다고. 나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왜 자살했을까. 빵셔틀에서 해방된 거다. 좋아해야 하지 않나.


빵셔틀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늘 주변을 맴돈다.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졌다. 개새끼가! 한 달에 한 번 갖는 베프와의 정기 모임에도 녀석이 서성였다. 오늘의 모임 장소는 서울의 유명 고깃집이었다. 모두 둘러앉은 자리에서 바삭하게 익은 삼겹살을 양파와 파채로 곁들여 쌈을 쌌다.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뭐가 재밌는지 다 익어가는 고기를 앞에 두고 낄낄거리며 웃는다. 커다란 쌈을 입에 넣다가 같이 좀 재밌자고 타박을 줬다. 그러자 시끌벅적 떠들던 애들이 돌아보는데 모두 눈을 감았다. 뭐야? 좌우 옆자리에 앉은 민혁이, 종현이를 살폈다. 걔들도 뜨고 있던 눈을 스르르 감는다.

 “야, 너희들 뭐냐? 왜 단체로 눈을 감아?”

 애들이 눈을 감은 채 대꾸한다.

 “뭔 소리야. 뜨고 있는데.”

 “눈은 딸치고 현자타임 때나 감는 거고.”

 “말 나온 김에 여자나 소개시켜 주라. 같은 과에 많을 거 아냐?”

 정색하고 왜 눈을 감았냐고 재차 물어도 베프들은 눈을 감은 채 뜨고 있다고 답했다. 자기들이 눈을 감은 것도 모르나. 애들이 너 좀 이상하다고 핀잔을 주자 더 캐물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 상태로 대화에 끼어들고 술잔을 부딪치며 큰 소리로 떠들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말할 때나 서로 장난을 칠 때도 어김없이 눈을 감은 상태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혼자 투명한 유리막에 갇힌 기분이었다. 답답하다.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그 새끼와 아무런 연관이 없을지도 모른다. 굳이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 내가 병에 걸린 걸 수도. 하지만, 정신병이 느닷없이 생기는 경우가 있던가. 조짐이라도 있어야지. 죄책감을 가진 것도 아닌데. 그럼 무슨 일일까? 대체 왜 나한테? 긴장하지 말자. 아무것도 아니다.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눈을 감은 친구들을 바라봤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라 평소와는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났다. 전공 수업이라 빠지면 큰일 난다.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끌어안은 이불을 박찼다. 기지개를 켜며 베란다 앞에 섰다. 커튼을 젖히고 유리문을 열자마자 햇볕이 쏟아져 들어온다. 어제 일 때문에 피곤하다. 하품하며 간밤에 톡이라도 들어왔나 스마트폰을 확인하다 밖을 봤다. 놈이 저만치서 우리 집을 지켜본다. 잠이 확 달아났다. 저 새끼가! 쫓아가려다가 멈췄다. 진짜로 놈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고, 가봤자 멀리 도망갈 게 뻔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신경질적으로 베란다 커튼을 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변기 뚜껑이 닫힌 게 보인다. 한숨이 나왔다. 변기 뚜껑을 올린 후 소변을 보다 세면대 위 거울을 바라봤다. 내 모습이 비친다. 근데 눈을 감고 있다. 뭐야, 씨발? 오줌발을 대충 끊고 거울로 가까이 가서 확인했다. 난 분명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거울에 비친 모습은 눈을 감았다. 소름이 돋아 뒤로 물러섰다. 내가 진짜 미친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럼 도대체 왜?

 차마 다시 거울을 볼 수 없어 머리만 감고 학교로 향했다. 내 얼굴이 이리 낯선 적이 있던가. 눈 감은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지하철역에 거의 다 도착하자 놈이 어디 있나 주위를 둘러봤다. 없다. 그럴 리가. 느낌이 쌔하다. 위를 올려다봤다. 근처 상가 건물 옥상에서 녀석이 고개를 빼고 아래를 굽어본다. 마트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그때처럼 지금도 진짜일까.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 갤러리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녀석이 건물 옥상 끝에 선 게 똑똑히 보인다. 확대하자 특유의 비굴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내리깐 시선과 오므린 입술. 괴롭힐 때마다 휴짓조각을 손에 쥐고 돌돌 말던 찌질한 모습까지 그대로였다. 이건 분명히 녀석이 있다는 증거다. 다시 고개를 들자 건물 옥상에서 안쪽으로 사라진다. 틀림없다. 왜 껄떡대는지 모르지만 잡히면 디진다!

 상가 건물로 뛰어들었다. 어차피 도망갈 곳은 없다. 아래부터 천천히 훑으며 올라가면 된다. 1층을 살핀 후 2층에 도착했다. 복도를 걸으며 두리번거리다 창문 맞은편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어느새 사람들 틈에 섞여 지하철 입구를 맴돈다. 언제 저기로? 상가 건물에서 나와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밀려드는 사람들을 헤치고 입구에 다다랐지만, 그 빵셔틀은 보이지 않았다. 또 놓쳤다. 이상하다. 존재하지만, 잡을 수가 없다. 시간을 봤다. 벌써 8시가 넘었다. 이러다 지각이라도 하면 나만 손해다. 스마트폰으로 열차 시간을 확인했다. 6분 후다.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내디뎠다. 보통 한 줄로 서고 왼쪽은 비워놓기 마련인데 오늘은 꽉 찬 데다가 두 줄로 섰다. 도저히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옆의 계단으로 내려가기에는 어느새 뒤에도 사람이 밀려들어 옴짝달싹하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가만히 서 스마트폰으로 단톡방에 뜬 새로운 대화를 확인했다. 뭔가 특별한 대화는 없다. 그냥 늘 똑같은 투정과 불만들. 그래도 방을 나가서는 안 된다. 나름대로 관계를 유지해주는 끈 역할을 하니까. 혹시 근처에 빵셔틀 새끼가 있을까. 주위를 살피다 앞의 사람이 커다란 헤드폰을 쓴 게 보인다. 날씨도 더운데 참 고생이다. 옆 사람은 줄 달린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는 게 음악이라도 듣는 모양이다. 신났네. 에스컬레이터는 왜 이리 느리담? 앞사람들이 언제 빠지나 확인하다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에스컬레이터 앞줄의 사람들이 전부 귀에 뭔가를 꼈다. 헤드폰에서부터 편의점에서 파는 싸구려 이어폰과 운동할 때 주로 끼는 블루투스 이어폰까지. 수십 명의 사람이 모두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뒤를 돌아봤다. 뒷사람들도 모두 이어폰을 꼈다. 옆 사람도 마찬가지다. 끼지 않은 건 나뿐이다. 뒤에 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고개를 돌려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을 내려다봤다. 검은 화면에 내 얼굴이 비친다. 눈을 감고 있다.


학교 조모임이 끝난 후 동기들과 술 약속을 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얼큰하게 취하고 싶다. 하지만, 우르르 몰려가 실내포차에 자리를 잡자마자 술맛이 확 떨어졌다. 베프들만이 아니었다. 동기들도 술자리에서 모두 눈을 감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주사를 부렸다. 미치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동기들만 눈을 감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메뉴판을 갖다 주는 종업원도 다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까지도 모두 눈을 감았다. 답답하다. 나만 홀로 떨어진 느낌. 아무리 말을 해도 동기들은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았다. 기분이 상했다. 취기가 아직 오르지도 않았는데 집에 일이 있다며 초저녁에 술자리를 나섰다. 견딜 수 없었다. 쓸쓸하고 외롭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가로등이 켜진 골목길을 걷는데 등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카드를 화살표 방향으로 넣어주세요.”

 현금지급기에서 나오는 안내 멘트다. 그나저나 분명히 근처에서 새끼가 서성거릴 거다. 뭔가 해볼 테면 해보라지. 이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신경 안 쓴다. 당하고만 살지 않을 거다. 주위도 살피지 않고 걸었다. 집 앞 골목에 들어서자 다시 뒤에서 기계음으로 된 여자 목소리가 들린다.

 “카드를 화살표 방향으로 넣어주세요.”

 근처에 편의점이 있던가. 좁은 골목이라서 아무것도 없을 텐데. 앞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 이런 곳에 현금지급기라니. 번화가나 길거리도 아니고, 이렇게 사람이 뜸한데. 순간, 오싹해 그 자리에 멈췄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현금지급기 안내 멘트가 뒤따라온다. 마치 움직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뒤를 돌아봤다.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걸어온다.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섰다. 그가 나를 쳐다본다. 여자 목소리로 현금지급기 안내 멘트를 말하며 무심히 지나친다. 남자의 뒤통수를 보며 벙쪘다. 무슨 일이지? 뒤편 골목의 가로등 밑에서 팔짱을 낀 여학생 두 명이 재잘거리며 걸어온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애들도 기계음으로 말했다.

 “원하시는 거래의 버튼을 눌러주십시오.”

 골목 끝으로 사라지는 여학생들을 보며 실감했다. 미쳤다. 내가 미쳤든 세상이 미쳤든 어쨌든 이대로 놔두면 큰일 난다. 빵셔틀이 어디에 있는지 살폈다. 저기다. 불이 환히 켜진 우리 집! 평소에는 닫혔던 베란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렸다. 베란다의 나부끼는 커튼 사이로 놈이 거실을 빙글빙글 맴돈다. 저 씨발 놈이! 집으로 뛰었다. 현관에 도착해서 문을 벌컥 열자마자 어둠이 쏟아졌다. 현관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고,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진 채 시커먼 거실로 뛰어들었다. 불을 켜니 아무도 없다. 화장실 문도 닫혔고, 거실 베란다 문도 닫힌 채 커튼이 쳐졌다. 방문도 모두 닫혔다.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거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지? 복수라도 하라고 씹새꺄! 소리쳐도 사방이 닫힌 거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겠다.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무섭다. 놈이 무서운 게 아니었다. 사람들이, 사방이 닫힌 게, 눈을 감고 귀를 막은 게, 나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게 두렵다.


이상한 현상은 기존의 것과 뒤섞여 때로는 전혀 뜻밖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사람들을 쳐다보면 모두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뒤돌아섰다. 눈을 감지도 않고, 귀에 뭔가를 끼지도 않고, 뒤돌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전화 통화를 했다. 번화가를 걷는 수많은 이가 모두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보이스웨어와 같이 변조된 음성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심장이 떨렸다. 나 혼자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 같다. 베프와 지인 중에도 귀를 틀어막고, 뒤를 보이는 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모인 고등학교 모임에서 성준이가 입을 벌리지 않고 말한다. 창민이가 감은 눈으로 내 쪽을 보며 잔액이 부족하다고 기계음을 내뱉는다. 앞자리에 앉아 장난을 치는 인호의 눈과 콧구멍, 귓구멍이 다 막혔다. 나머지 애들이 뒤돌아 앉은 채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옆으로 접근하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단절됐다. 뭔가에 가로막혔다. 무섭다.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새끼들은 병원에 가보라는 둥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는 둥 현 상황을 알아주지 않고, 공감하지 않는다.

 분명 빵셔틀 새끼와 관계가 있다. 하지만, 떼어낼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도 떨어지지 않았다. 심리요법도 받고 정신과에 가서 약도 타 먹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다못해 점집에 찾아가 상담도 하고 비싼 돈 들여 굿도 받았다. 기대와는 달리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그 새끼가 주변을 서성거렸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저 내 주위를 떠돌 뿐이었다.


이상한 현상이 계속될수록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친구들에게 서운했다.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도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않는다. 직접 겪어보면 좀 달라질까. 한 번 물꼬를 트기 시작한 서운함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들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감은 눈, 닫힌 콧구멍, 막힌 귓구멍, 뒤돌아선 모습, 기계음, 꽉 막혔다.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이 나에게 닫혔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됐다. 쓸쓸하고 무섭다. 외로움을 느껴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만나는 이들마다 전부 나를 향해 닫혔다. 외로움이 커진다. 두렵다. 그래서 더욱 다른 사람들에게 매달렸다. 악순환.


모든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됐다. 나는 무생물이다. 살아있지 않다. 이 세상에 혼자 고립됐다. 부모 형제도 마찬가지다.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닫힌 모습을 한 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주위에 아무도 없고, 만나고 싶지 않다. 외롭다. 소통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건 멀리서 내 주위를 서성이는 빵셔틀의 모습뿐이다. 그리고 나에게 자살한 빵셔틀만이 유일하게 남았을 때, 그 애는 어딘가로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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