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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없는 봄

09
“선, 선아. 선아.”
“응. 후나.”

01
온 세상에서 조각이 떨어졌다. 귀에는 바깥의 어떤 소리도 닿지 않았다. 이명. 입에서는 비명이 나오고 있었을까. 흔들리는 와중에 날카로이 벼려진 것이 옆에 꽂혔다. 쏟아지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검은 조각이. 붉은 것이 사방으로 튀어 바삐 시선을 움직였다. 하나를 찾기 위해. 무너지는 건물 사이로 한 모습이 보였다. 파열음도 없이 그 모습을 내리친 적은 유유히 멀어졌다. 물러나고 있다.
“선아…”
허리에 꽂힌, 타오르는 검은 조각을 놓았다. 대신, 앞에 놓인 흔적을 보았다. 얼굴이었을 자리에는 살점과 부품이 뒤섞여있다. 팔이었을, 다리였을, 그 모든 자리에 남은 것은 일그러진 조각. 붉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끊어진 전선. 망가진 부품. 그 중심에 파랗게 빛나는 것이 있었다. 별 같은, 그것. 손을 뻗어 이를 쥐었다. 색은 이리도 시린데, 손에 들어온 그것은 따뜻했다.
후나의 한쪽 볼은 뜨겁게 젖어 들고 있었다. 입에서는 제게도 들리지 않을 오열이 흘러나왔다. 별을 쥐고 그 위에 제 몸을 덮었다. 세상이 흘러내리고, 실감도 없는 고통이 밀려왔다. 이런 순간이 와서는 안 되었다. 후나의 허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부품을 적셨다. 마치 두 시신이 놓인 것처럼.

02
502호. 눈을 피한 채 시야의 한 구석으로 같은 인영을 보았다. 수없이 앞을 흘러가는 같은 그림자 속에서 습관처럼 한 모습을 찾았다. 보통은 이들이 차이가 없다고 말한다. 같은 모델, 같은 기능, 때에 따라 다르기만 한 배치. 같은 표정, 같은 말투… 인체 조직을 일부 지녔다 했다. 머리칼만 각자 다른 길이로 자라, 어떤 이는 어깨에, 어떤 이는 허리께까지 내려와 있었다. 살아있는 기간을 세는 용도일까. 급식을 젓가락으로 뒤적이며 턱을 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하나하나 제가 세어보았다. 몇 명이나 있는 것일까, 언젠가 흰 가운을 입고, 머리에는 온통 푸른 선이 그어진 헬멧을 쓴 이들이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지만, 숫자는 기억나지 않았다. 제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어 도로 밥알을 입에 넣는데 집중했다.
젓가락 끝이 자꾸만 푸석푸석한 알갱이를 놓쳤다. 짜증마저 나는 바람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다 먹지 않으면 또 한 소리 듣겠지. 문득 제 앞에서 배급 받은 종이팩을 끝까지 비우던 그녀가 생각났지만, 철제 컵을 괜히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실은 지나가는 모든, 같은 얼굴의 인영이 후나의 마음을 건드리는 탓이었다. 아픈가? 곰곰이 생각하다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간신히 떠낸 밥알을 혀에 얹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젓가락을 놓고 숟가락을 집어 밥을 잔뜩 퍼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대화 없이 식탁 옆을 지나치는 이들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밥을 또 넣고 또 넣었다. 반찬으로 나온 무말랭이까지 모조리 입에 넣은 후에야 식사가 끝났다. 그 후에 목이 축축하게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울음을 집어삼키며 식당을 나섰다.
두 달이 지났다.

03
“선생님.”
“네, 후나씨.”
“안드로이드는 죽으면 어디로 가요? 그러니까, 심장 말이에요.”
“코어 말하는 건가요?”
“네. 파란 색…”
심장이요. 그날 손에 쥐었던 선명한 파란색. 그렇게 강렬한 빛을 담고 있었구나. 언제나. 폐기되지요, 하고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은 펜 뒤꽁무니를 엄지로 누르면서 대답했다. 후나는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궁금했어요. 방해해서 죄송해요.
실은 대답은 저도 알았으나, 들을 것보다 볼 것이 더욱 중요했던 탓이었다. 선생님, 하고 물어보고는 괜히 아픈 반응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그렇게 매뉴얼을 읽는 것과 같은 어투와 표정. 손끝으로 의자 틀을 쓰다듬다가 그 차가운 감각이 손을 아리게 만들 때쯤 손을 떼었다. 여기는 너무 춥다.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움직이며 추운지도 모르고 한 여름을 에어컨 밑에서 살아가는 방이야. 후나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빠져 나왔다.
카디건을 걸쳤다. 옷이 팔을 감쌌는데, 아직 이 방식의 감각에는 익숙해지지 않은 듯 했다. 팔을 이리저리 돌려서 옷감을 느껴보았다. 새로 단 팔이다. 몸이 조금 더 바뀌었고, 후나는 이에 전보다 더 무감각해졌다. 이렇게 몸을 하나하나 새 부품으로 바꾸다 보면 무엇이 남을지 문득 궁금했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지만. 고개를 문득 들어 버릇처럼 지나가는 이의 얼굴을 확인했다. 안드로이드 한 무리가 지나갔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먼저 눈을 마주쳐오는 단 하나와 웃었지만, 이제는 누구든 뒷모습을 좇기에 바빴다. 그 방식, 그녀 특유의 속도, 기계적이었지만 자신과 맞춰온 눈 깜빡임은 어디에도…
어?
생각이 튄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후나는 분명 보았다. 익숙한 마주침. 걸음을 빨리 하여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간다. 미묘하게 자신들끼리 속도를 조절해 사람처럼 걷는 안드로이드 사이로, 눈을 피하는 단 하나. 입을 열어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어깨까지 닿은 머리칼을 흔들며 걸어가는 그 모습에 다시,
“선아!”

04
둘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대화. 후나는 얼굴을 사선으로 기울이고 있었고, 그 앞의 안드로이드는 곧게 서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
“왜?”
닮았어. 후나는 제 앞에서 가만히 움직이는 가슴팍을 보았다. ‘Android Q-1018’이라고 적힌 명찰 너머로 주기적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숨을 쉬지 않는다. 인간의 방식으로는. 이 아이가 숨을 쉬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그러니까, 자신의 움직임과 꼭 같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말할 때 잠시 틈을 갖는 것도. 묘하게 요동치는 말투도. 닮았어. 자신과, 그리고 또 선과.
“이후나, 안녕.”
이름을 붙여 부른 것은 찰나의 충동이었고, 다가간 이래로 후나는 시선을 떨군 채로 섰다.
“…너, 선이야?”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소근거리나 싶었다가 점점 커져서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전 개체의 기억을 이식 받았어.”
어떤 기억. 모두? 고개를 들었다. 분명 자신이 보았던, 완전히 박살이 난 그 잔해를 떠올렸다. 지킬 기억도 남아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푸른 두 눈을 뜬 안드로이드 Q-1018은 곧게 시선을 고정하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 서술은 일종의 과정이었다. 말끝이 종종 흐려지고 멎었다. 기억이 망가진 탓이었다. 또,
“당신, 후, 나, 당신을…”
문득 되풀이 되며 이어지지 못한 말로 그 감정도 조각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사랑하던 그 존재는 엉성하게 대체되어 자신의 앞에 서있었다.
비참했다.

05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이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끝부터 검게 찢어진 제 머리 위까지, 보라색이 꽉 채우고 있었다. 눈을 뜬 차 안. 창에 댄 손을 돌렸다. 차가운 창이 손에 가득 차는 것을 느끼고만 있다가, 멀리서 빛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엄마 저거 봐. 무수히 많은 별이 올라가고 있었다. 하늘이 흔들리나 싶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입을 반쯤 연 채로, 별이 모두 집에 돌아가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손목에 뜨거운 것이 닿아 손을 도로 돌렸다. 창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보라색이고, 뒤집힌 세상에서는 바닥에 금이 끝없이 가있었다. 부서진 길, 그리고 묘한 봉우리를 보았다. 꿈일까?

06
이후나는 불량품이다.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같은 문장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며 앞을 보았다. 불량품. 인간과 로봇 사이의 어딘가에서 서서히 로봇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왼쪽 눈과 심장을 바꿔 달아야 했던 가장 처음의 사고 이후로, 자신은 몸을 더 신경 쓰지 않았다. 마냥 대체해버릴 수 있는 몸이니까. 죽지만 않을 정도라면 자기 마음대로, 망가지고 움직여도 변하는 것은 없다. 어쩌면 내심 아예 로봇이 되어버리고 싶은 것일지도. 그러므로 불량품인 이유는 몸의 반 이상이 로봇 부품이기 때문이 아니다. 차라리 훌륭한 로봇이고 싶었다. 이후나에게는 그럼에도 아직 인간이 남아있어서, 이렇게 마음이 삐걱거리기 때문이다.
선은 불량품이었다.
고개를 들어 테이블을 한참 가로질러 앉아있는 이를 보았다. 안드로이드가 사람에게 다가와 웃었다. 대화를 했다. 사랑을 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야. 사랑을 입에 담다니, 불량품이지. … 허무맹랑하기도 하지. 그 여름 밤의 대화 같은 것이 머리 뒤로 너무 아프게 울려서 또 회상을 되풀이하고는, 엎드려 팔로 만든 고리에 고개를 아예 파묻었다.
그러니까, 선과의 시간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이 묻힌 땅을 딛고 서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이후로, 후나는 말을 멈췄다. 이해할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었다. 무섭고 또 무서워서 복도의 끝부터 끝까지 수없이 내달렸던 열 살.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열일곱. 맹목적으로 싸우고 또 싸우고 있었다. 지켜야 할 사람은 다 죽고 사라졌을 텐데도 인류의 보존을 내세우고 움직이는 무리 속에서 저도 무기를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땅에 드리워질 때 발을 놀려 피하고, 총을 겨눈다. 묵직한 쇠의 감촉에 눈을 가늘게 뜨면 어서 쏘아야 했다.
딱 한번 맹목이 무너져 자신의 바닥으로 주저앉은 후나에게, 안드로이드 Q-0510이 손을 내민 것은 열일곱의 여름이었다.
그날 후나는 이름을 붙여줬다. 선. 너는 선이야.

07
안드로이드 Q-1018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후나의 앞에 서서 푸른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또 그 모양이 제 왼쪽 눈과 꼭 같아서 지나쳐 걸어가버리려던 것을 관두었다.
“왜 왔어.”
“이후나가 아픈 것 같아 보여서.”
내가 아픈 거랑 넌 상관 없어. 사물함 문을 세게 닫았다.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에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너 보기도 싫으니까, 찾아오지마.”
너무 잔인하잖아, 하고 삼킨 말을 목 뒤 끝까지 눌러 담고 지나쳤다. 벌써 일주일 째다. 아직 두 달을 간신히 버텨내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다시 이렇게 찾아온 것처럼 저것이 나타났다. 기만이야. 그거 알아? 더욱 심한 말이 속에서 끓었으나, 뱉는 순간 자신의 목도 동시에 할퀴어버릴 것을 알았다.
“사과하고 싶어서 왔어.”
마치 인간처럼 눈을 아래로 깔고 말을 시작한다. 후나에게서 선이 배웠던 버릇이었다. 그녀가 화가 나서 눈도 마주치기 싫다 소리친 이후로 선이 시작한 버릇.
“무슨 사과.”
“말해서 미안해. 널 아프게 했어.”
“꼭 이런 식이지, 너는?”
치민 화에 발을 굴렀다. 빽, 하고 소리를 높이는 바람에 주변에 서있던 사람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사람 마음을 다 이해 못해서 그랬어. 아플 줄 몰랐어. 노력할게.”
“노력이 문제야? 정말 하나도 모르는 구나, 너, 네가…”
말을 이으려다 멈춘 후나의 무릎이 꺾였다.
“네가 감히…”
안드로이드 Q-1018, 라고 적힌 명찰이 전등 빛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후나는 무너져 울었다. 이런 식이지, 하고 제가 뱉은 말에 놀란 탓이었다. 마치, 이것은 마치 선과 싸울 때와 같아서. 싸우는 것마저 똑같아서 끔찍하게 아팠다. 감히, 감히… 감히, 하고 수없이 반복하며 쥘 수 없는 땅을 쥐듯 손을 떨었다.
한참을 울고 고개를 들었을 때, 아직 안드로이드 Q-1018은 앞에 서있었다.
“불량품.”
왜 안 갔냐고, 또 한번을 소리지르려다가 말이 막혔다.
“후나가 말했지, 선과 이후나가 불량품이라고.”
미안해. 난 선이 아니야. 말을 내려놓고 안드로이드 Q-1018은 몸을 돌려 문밖으로 향했다. 후나는 일어섰다.
다시, 다시 선이라고 하자. 네 이름은 선이야.

10
하늘이 보라색으로 물드는 시간이 찾아왔다. 후나는 몸을 돌려 선을 보았다. 귀가 찢어질 정도로 시끄러웠다. 붉은 등이 반짝이고, 통로를 함께 뛰었다. 문의 잔해 너머로 적의 거대한 팔이 들어왔다. 선과 후나는 다시 눈을 마주쳤다.

08
2099년, 겨울. 지난 겨울.
“무슨 생각해?”
옆으로 묶어 내려온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바닥에 닿았다. 비워진 연구실은 찬 공기로 가득 차서 손을 뻗었다. 체온이 없는 손이 추울까 꼭 쥐려고.
“어제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어. 오늘은 인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바보 같아. 인간이 뭐가 좋다고. 오늘은 왜?”
선의 말에 후나의 작은 몸이 들썩였다. 웃음소리를 흘려내며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다. 그 바람에 뒤통수가 찬 바닥에 조금 더 닿아 몸을 움츠렸다.
“후나를 닮아갈 수 있잖아.”
“이미 닮았는걸.”

11
2099년, 여름. 꽃 없는 봄을 지나고 난 또 다른 여름. 마음을 꺾어내어 서로를 다시 껴안고, 고개를 저었던 시간을 조심스레 밟아나갔지. 선이 죽었지만 또 너는 네게 찾아왔어. 너에게 다른 이름을 줄 수는 없었어. 나의 사랑을 선이라고 부르는 거야. 수없이 무너지고 또 발 밑이 시렸는데, 결국 다시 뛰는 우리를 보고 더욱 아파. 너는 선. 나는 후나.
별이 다 떠나고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 하늘에 저렇게 많더라고. 무수히 같은 모양으로 빛나는 별 중에 바로 그 하나지, 그때 보았던 그 심장 말이야. 네 심장. 푸른 별 같았던 그 심장.
우리는 붉은 복도를 뛰고 있어. 복도 끝은 다 무너졌고, 그 밖에는 또 검은 그림자가 우리를 덮쳐올 거야. 너는 열심히 뛰고 있지, 이 생을 다해서 삶을 지키려고. 검은 팔이 네 앞에 있어. 너는 웃으며 나를 보고.
“안녕, 또 만나.”
“또 사랑하자.”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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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경 16.08.01 09:07 댓글

    마지막이 정말 좋습니다. "또 사랑하자." 제가 본 작별의 말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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