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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시티 공미포 오천 자

2023.12.15 00:0212.15

공미포 오천 자

노말시티

 

전송 버튼을 누르기에 앞서 지난 일주일 동안 썼던 공백 미포함 오천 자의 글을 다시 한번 훑어본다. 그럭저럭 괜찮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이 글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내가 아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삼십 초쯤 기다리면 점수가 뜬다. 내 예상은 좀처럼 맞은 적이 없다. 자신 있게 보낸 글이 바닥에 가까운 점수를 받기도 하고 고양이가 실수로 전송 버튼을 눌렀다고 우기고 싶어질 정도로 정말 마지못해 보낸 글이 지금까지 받았던 점수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높은 점수를 받은 적도 있다. 도대체가 기준을 알 수가 없다. 하긴 그 기준은 아무도 모른다. 어떤 인간도 모른다. 심지어는 채점하는 인공지능조차 기준을 설명할 수 없다고 어떤 전문가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기준을 설명할 수 있다면 인공지능이 스스로 쓰면 된다. 인공지능은 쓸 수 없는 글. 그게 명시된 기준이기는 하다. 하지만 대체 어떤 게 인공지능이 쓸 수 없는 글이고 어떻게 써야 그 비슷한 게 나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랜선을 통해 빨려 들어간 글은 지구상 어딘가에는 존재할 데이터 서버에 영과 일로 구분되는 어떤 상태들의 조합으로 저장된다. 그리고 숙성된다. 아까의 그 어떤 전문가가 쓴 비유다. 어떻게든 미화해 보려고 애쓴 흔적이 난다. 차라리 거름이 된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내 글은 거대 데이터베이스에 뿌려져 흡수되고, 사라진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내 글과 이미 축적된 수많은 다른 글을 양분으로 삼아 새로운 글을 토해낸다. 최신 트렌드에 맞게 깔끔하게 다듬어지고 최적화된 결과물이다. 심지어 그 글은 사전 분석된 독자의 취향에 맞게 세부 조정되어 전달된다. 제목은 같아도 읽는 내용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도 읽은 사람들의 감상은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같은 글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감상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듯이 다른 글이라도 서로 다른 사람이 읽으면 같은 감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을 항상 일어나게 만드니 놀라운 건 사실이다.

놀라움에는 항상 비밀이 있다. 마술이 대표적인 예다. 인공지능은 어떤 마술을 부리는 걸까. 다시 말하면 어떤 눈속임을 부리고 있는 걸까. 마술사는 항상 관객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관객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서로 다른 글로 같은 감상을 만들어내는지 궁금해하지만 애초에 질문부터가 잘못되었다. 과연 인공지능은 서로 다른 글로 같은 감상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직접 읽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글의 목적이라면 읽는 사람의 경험에 맞는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도 옛날 사람들이 노래는 잘했다는 느낌을 주려면 지역과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예를 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의역과 같다. 토속적인 작품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음식이나 꽃의 이름을 적당히 바꾸고 원작의 유머가 번역작에서도 유머가 될 수 있도록 내용과 문구를 손보는 일이다. 인공지능은 이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한다. 사람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뛰어난 마술사는 아예 질문이 머릿속에 떠오르지도 않도록 만든다. 인공지능에 의해 조정된 작품을 읽고 다른 사람과 다른 감상을 느끼면 우리는 생각한다. 세팅을 잘못했다고.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잘못된 작품을 내밀었다고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자신의 독해력이나 감정 상태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느끼는 마땅히 느껴야 할 감상을 느끼지 못한다고 믿는다. 그 정도면 다행이다. 진심으로 감상을 느낀다.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이니 당연히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감상을 느낀다. 일종의 플라세보 효과다.

그렇다고 나는 주장한다. 아니 함부로 주장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생각한다. 주장하고 싶어도 주장할 방법이 없다. 내가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는다. 독자의 감상을 받을 수 없다. 대신 인공지능의 채점을 받는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돈을 받는다.

내가 쓴 글을 독자에게 직접 제공하고 돈을 받아도 불법은 아니다. 그런 시장도 있다고는 들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인공지능은 독자의 취향에 최적화된 글을 생성해 제공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다. 몇몇 취향의 경우에는 세팅 값으로 집어넣을 수 없고 우회적으로 유도하려 해도 내부에서 검열된다. 그러니 그런 취향을 만족시키고 싶은 사람은 불법적인 경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작가에게 직접 의뢰하지는 않는다. 금지된 취향을 세팅할 수 있는 불법 앱을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심지어 특정 취향에 미리 최적화시켜 놓은 앱도 널려 있다. 심지어 그편이 더 안전하고 결정적으로 싸다. 그런데도 작가에게 직접 글을 의뢰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아마 그 자체가 취향일지도 모르겠다. 안전한 걸 싫어하거나 싼 걸 싫어하거나.

작가로서도 그런 글을 써서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팔 필요가 없다. 인공지능은 그런 글도 사 준다. 심지어 비싸게 사 준다. 네거티브 정보로 쓰인다고 역시 아까의 그 전문가가 설명했다. 정확히 말하면 전문적인 정보가 깔끔하게 나오기로 유명한 프리셋이다. 프리셋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면 감점 요인이니 양해 바란다. 결론적으로 독자로서나 작가로서나 글을 직접 거래할 이유가 없다. 그 자체가 취향이 아니라면.

어떻게 보면 다행이기도 하다. 사실 엄청나게 다행이다. 많은 사람이 작가라는 직업은 사라질 거라고 주장했다. 아무도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읽지 않게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 예상은 맞았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읽지 않는다. 대신 인공지능이 읽어 준다. 그리고 돈을 지불한다. 심지어 과거 그 어떤 때보다도 수입이 높다. 산술적인 평균값은 조금 낮다. 그런데 중간값은 훨씬 높다. 베스트셀러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모든 작가가 비슷한 돈을 받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매기는 점수에 따라 받는 돈이 달라지기는 한다. 아무리 그래도 열 배 이상 차이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표절로 평가되어 아예 돈을 못 받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글을 그대로 제출하는 경우다. 그렇지만 않으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돈 정도는 받을 수 있다. 트렌드에 맞는 글을 쓰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오히려 트렌드에서 벗어나는 글을 써야 점수가 높다. 이 점을 좋아하는 작가도 많다.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면서도 먹고살 돈을 벌 수 있다. 어찌 보면 꿈같은 세상이다. 딱 한 가지, 자신의 글을 직접 읽어 줄 독자가 없다는 점만 참으면 된다. 심지어 그것조차 장점으로 여기는 작가가 있을 정도다.

물론 독자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작가가 더 많다. 그것도 인공지능이 제공해 준다. 인공지능은 매정하게 숫자 두 개로 된 점수만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실제로 글을 읽은 것처럼 다양한 독자의 반응을 생성해 보여준다. 당연히 이 또한 세팅할 수 있다. 독자의 장르 선호도별 반응이나 세대별 반응을 따로 볼 수 있는 건 물론이고 호의적인 반응과 비판적인 반응의 비율까지도 작가가 원하는 대로 조정 가능하다. 다양한 프리셋도 있다. 게다가 이 모든 게 무료다. 작가는 그저 아무 고민 없이 창의적인 글을 쓰는 데만 몰두하면 된다.

창의적인 글. 인공지능이 작가가 쓰는 글에 요구하는 조건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창의성이다. 인공지능은 쓸 수 없는 글을 쓰는 것이 창의성의 정의다. 인공지능은 평균적인 글을 쓴다. 창의적인 글을 쓰도록 세팅할 수도 있다. 내삽이 아니라 외삽을 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결과물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데이터를 모아 그 데이터의 범위 내에서 그럴듯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럴듯한 정도가 아니라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 인공지능의 아웃풋은 인풋보다 그럴듯하지만 범위는 좁다.

이것이 초기 인공지능이 겪었던 자기 되먹임을 통한 열화 문제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다시 인공지능의 인풋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아웃풋의 범위는 점점 좁아졌다. 처음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질은 여전히 좋았다. 그런데 점점 말도 안 되는 결과를 토해내는 경우가 잇달았다. 일종의 루프 현상이었다. 계산을 반복할수록 결과가 점점 좋아져야 하는데 자기 반복적인 루프에 걸리면 제자리걸음을 하게 된다. 그러다 중도에 계산을 멈추고 이상한 결과를 내놓는다. 인풋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루프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인간의 눈에는 충분한 다양성을 갖춘 것으로 보여도 인공지능의 관점에서는 그 특성이 죄다 비슷비슷한 경우도 있다.

합스부르크 부메랑이라고 불리는 이 현상을 알고리즘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모두 수포가 되었다. 해결책은 단순했다. 더 넓은 범위의 인풋을 제공해 주면 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할 수 없는 단 한 가지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작가였다.

 

“그런데 이렇게 써도 소설로 인정이 돼?”

“소설이라고 따로 카테고리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픽션과 논픽션으로만 나뉘어. 픽션이니까 소설이기는 한데 실제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다 픽션이야.”

“그러니까. 이거는 거의 뭐 있는 그대로 아닌가. 좀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실제 사실에 근거해도 픽션이기는 해. 논픽션은 그냥 팩트체크 과정이 하나 추가되는 거야. 그래서 더 비싸지.”

“팩트체크는 뭘로 하는데?”

“따로 하는 건 없고. 그냥 인증된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거야. 그러니까 더 비싼 거고. 다시 말해서 그런 자격증 없는 우리 같은 사람이 쓰는 건 다 픽션이야. 형식이 뭐든 상관없어. 글자수만 맞추면 돼. 오천 자.”

“그냥 아무 글이나 써서 오천 자만 채우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아무 글이나 막 쓰면 귀신같이 잡아내서 최저점을 줘. 표절이 뜰 확률도 높고. 그게 신기하더라고. 좀 고민을 하고. 진짜 소설 쓰듯이 형식도 좀 갖추고. 그래야 점수가 잘 나와. 처음에는 무슨 꼼수가 없을까 하고 머리를 굴려 봤는데 다 시간 낭비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소설 쓰듯이 쓰는 게 제일 무난해.”

“최저점이라도 돈은 준다며. 그럼 그냥 물량 공세로 밀어붙이면 안 돼?”

“아. 그걸 말을 안 했구나. 점수가 낮으면 쿨타임이 생겨. 평소에 무난한 글을 많이 올렸으면 한두 번 최저점 받아도 상관없는데. 최저점을 몇 번 연속으로 받으면 쿨타임이 생기기 시작해서 점점 늘어나. 나중에는 한 달에 하나 올리기도 힘들어지니까. 아무거나 막 올려서는 돈 못 벌어. 이게 은근히 치밀하다니까. 진짜 사람보다 나아. 적어도 속은 편하고. 억울한 것도 좀 덜 하고.”

“그래서. 넌 만족하는 거야?”

 

적어도 직업적으로는 그렇다. 말하자면 생계를 유지할 돈벌이 수단으로는 만족한다. 습작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면 나쁠 것도 없다. 진짜 소설, 내가 직접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쓰는 소설을 쓰고 싶으면 쓰면 된다. 아무도 안 막는다. 그 결과물을 공개하고 싶으면 공개해도 된다. 아무도 읽지 않고 그걸로 돈도 벌 수 없겠지만, 어차피 그런 건 예전에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이 상황에 대해 내가 불만을 늘어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읽지 않는다. 그런 지가 좀 되었다. 변명하자면, 이제는 아무도 직접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를 해 본 적은 있다. 자신이 쓴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된 곳에 올리는 사람들은 의외로 꽤 있다. 그런데 솔직히 그런 글 중에 인공지능이 생성해 낸 글보다 더 나은 글은 별로 없다. 가끔 있기도 하다. 정말로 가끔 있다. 그런데 너무 가끔 있다. 그런 글을 찾아 헤매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인공지능에 입력하는 나의 취향 세팅에 공을 들이는 편이 낫다. 심지어 잘만 만들면 그런 프리셋 자체가 돈이 된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읽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이 직접 쓴 글을 읽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좋은 글을 읽었을 때의 짜릿함보다 싫은 글을 읽었을 때의 불쾌감이 훨씬 더 크다. 언젠가부터 그렇게 되었다. 무난하게 잘 읽다가도 불필요한 설정이나 지나가는 대사 한 마디에 마음이 상한다. 인공지능이 생성한 글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세팅만 잘하면. 사실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이다. 좋아하는 취향에 맞추는 것도 잘하지만 싫어하는 취향을 피하는 것도 잘한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민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그렇다. 일종의 알레르기다. 아무리 맛있어도 알레르기 성분이 포함된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 인공지능은 그걸 기가 막히게 잘 뺀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요즘에는 다들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직접 쓴 글을 다수에게 공개하기가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것을 싫어한다. 모든 사람의 알레르기를 모두 피하는 글은 쓸 수도 없고 써도 재미가 없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으니 참았던 것도 요즘에는 참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개인 맞춤으로 제작된 깔끔하고 안전한 글을 얼마든지 내어주는 요즘 세상에서는 참을 이유가 없다. 주인공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부터 플롯을 끌고 나가는 속도감까지 모두 내가 원하는 대로 맞추어진 글을 읽을 수 있는 세상에서 언제 지뢰가 터질지 모르는 검증되지 않은 글을 읽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 자체가 취향이 아니라면.

 

“그런데 오천 자를 딱 맞춰야 해?”

“어 딱 오천 자. 4999자도 아니고 5001자도 아니고 공백 미포함으로 딱 오천 자.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래야 표준화해서 처리하기가 쉽대.”

“그럼 그것도 일이겠다. 오천 자 딱 떨어지게 문장을 끝내야 하잖아.”

“아. 신경 안 써도 돼. 문장을 꼭 끝맺을 필요도 없어. 쓰다가 중간에 오천 자 딱 되면 그냥 그대로 내면 돼. 어차피 그런

 

* 딱 오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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